소설리스트

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39화 (39/272)

# 39

24.금의환향

“끄으응······.”

아리는 경매장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쓰러진 채, 엎드려 있다가 이제 막 깨어났다.

“여긴······?”

아리는 깨어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이었으나, 얼굴에선 걱정스러움이 뚝뚝 묻어났다.

“준혁 씨는 어디 있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준혁을 찾았다. 다른 사람은 홀 안에 있는데 이준혁만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벅, 저벅.

그녀는 전전긍긍하는 표정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원프리홀의 입구로 나아갔다. 그러자 경호원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레이디. 위험합니다. 안에서 대기해주십시오.”

“사람이 한 명 사라졌어요.”

“네?”

경호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토끼 가면을 쓴 아리를 쳐다보았다.

“악마 가면을 쓴 ‘미스터 리’라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찾아봐도 이 홀 안에는 없어요.”

아리가 젖은 목소리로 그렇게 칭얼거렸다. 광대까지 가린 가면 아래로 드러난 예쁜 얼굴라인과, 작고 앙증맞은 입이 경호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음이 약해진 경호원이 손을 들어 인이어를 조정하더니 상급자에게 연락을 걸었다.

“경매 참가자들 중에 미스터 리라는 자가 있습니까? 악마 가면을 썼다고 하는데요······.”

“미스터 리? 그 사람은 갑자기 왜 찾아?”

“홀에서 어떤 여성분이 찾고 있는데, 동행인 거 같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봐.”

인이어의 반대편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오더니, 곧 사라졌다. 아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밖으로 직접 나가서 한번 찾아보면 안 될까요?”

아리가 양손을 붙잡고 간청하자, 그녀의 풀린 셔츠 단추 사이로 새하얀 가슴골이 모아졌다.

꿀꺽.

인이어로 상급자와 대화하던 경호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아랫도리가 순식간에 불룩해졌다.

풍만하고도, 아름다운 S라인 곡선. 남자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몸매였다. 토끼 가면에 가려진 얼굴도 매우 예뻐 보였고, 목소리 또한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경호원과 아리가 입구에서 잠시 실랑이하던 그때.

“아리 씨. 여기서 뭐 해요?”

그녀가 찾던 사람이 입구를 향해 걸어들어왔다.

*

“준혁 씨!”

입구에 서 있던 어떤 남자와 대화하던 아리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아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치더니, 내 가슴에 폭 안겼다. 나는 그녀에게서 전해져오는 따뜻한 온기와 포근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져서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윽.

그녀를 안은 채로, 풍성한 갈색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어줬다.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경호원은 이쪽을 쳐다보며 부러워죽겠다는 듯이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나는 경호원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그녀를 이끌고 좌석으로 이동했다.

“다 끝났어요. 이곳을 습격한 테러리스트들이 모조리 제압되었거든요.”

“네?”

내 품에 폭, 안겨 있던 아리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마치 새끼사슴 같았다.

나는 그녀의 이마로 내려온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다 주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곳 블랙 마켓의 경호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더군요. 별 탈 없이 무장집단들이 제압되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정말요?”

아리는 선망 어린 눈빛으로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이곳 경호원이 처리했다고 말해도, 마치 내가 처리한 거로 오해하는 듯싶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이제 안전하게 귀국할 일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이제 7600억이 생겼으니 앞으로 진짜 돈 걱정은 한시름 놓았네요.”

“지금 돈이 중요하게 됐어요? 이런 위험한 일을 겪었는데요.”

“무사하니 됐잖아요? 원래 큰돈을 벌기 위해선 큰 위험이 따르는 법이라잖아요. 액땜했다고 칩시다.”

“치~”

아리는 새초롬한 얼굴로 팔짱을 끼더니, 눈을 흘겼다. 놀란 표정에서 투정 부리는 꼬마 아이로 변하는 걸 보며 나는 아빠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매번 볼 때마다, 양파 같은 그녀의 새로운 모습들을 하나둘씩 알아나간다. 내겐 지구로 귀환 후 맛보는 새로운 즐거움이기도 했다.

‘7600억으로 앞으로 무얼 할까?’

막상 큰돈이 계좌에 입금되니 어리벙벙한 느낌이 들었다. 이계에선 그 누구보다 높은 부를 축적했었지만, 그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직 지구로의 귀환만 손꼽아 기다렸고, 그곳에서의 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별로 기쁘지도 않았고 그저 의식주에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모조리 싸 들고 갈 생각뿐이었다.

결국 그렇게 됐고, 금괴 이후에 이번이 두 번째 결실이었다.

‘금괴를 처음 팔았을 때만 해도 정말 날아갈 것 같았는데······.’

어린시절 imf부터 시작해서, 집안이 빚더미에 앉으면서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아파트 의류수거함에서 남들이 입다 버린 헌 옷을 주워 입으며 살았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맨날 놀렸고, 그런 놀림이 받기 싫어서 애들과 매일같이 싸웠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격차가 더욱 심해졌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뛰어야만 했다.

용돈이 생기면서 제대로 된 옷을 입게 되었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여자친구도 사귀어보았지만 그뿐이었다.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철이 들면서 아르바이트로 버는 수익 대부분은 집안 생계에 보탰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가······.’

처음 금괴를 팔고 4억9천만 원이 생겼을 때도, 가족들이 잠시 노동에서 해방되고, 잠시 돈에서 해방되었는데 그 1000배가 넘는 금액이 이번에 추가로 들어왔다.

이젠 잠시가 아닌, 가족들이 영원히 노동과 돈 걱정에서 해방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스터 리, 미스 최. 여기 계셨군요.”

아리와 나. 우리 두 사람이 연인처럼, 찹살떡처럼 찰싹 밀착해서 알콩달콩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도끼 눈으로 바라보며 한 남자가 다가왔다.

“레이바!”

아리가 깜짝 놀라 그렇게 외쳤다.

레이바가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풀고, 다시 환한 미소로 아리에게 인사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네, 덕분에요. 블랙마켓 경호원들이 무장단체들을 무찔러 줬다면서요?”

“아,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미연에 이런 일을 방지했어야 했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레이바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곤, 윙크를 한 채 머리를 꾸벅 숙였다. 내가 이번 테러 진압에서 세운 공을 모두 블랙마켓으로 돌려준 덕분에 레이바 또한 상부에서의 큰 문책을 피할 수 있었다.

내부에서 정보가 어디서 세어나갔는지 철저히 파악한 후, 그 자는 곧 처단될 것이다.

아무튼, 그 부분은 블랙마켓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지점장님이 우리를 보고 싶어 한다고요?”

아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레이바가 고개를 저었다.

“미스 최. 아쉽게도 지점장님은 미스터 리만 따로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하, 그렇군요.”

아리는 못내 아쉬운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나를 혼자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아리 씨.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이곳 지점장과 대화 좀 하고 올게요.”

“조심해야 돼요.”

아리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부모님 말고, 누군가가 이렇게나 나를 걱정해주다니?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러운 여자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죠.”

나는 레이바를 따라 원프리홀에서 나와 윈저성 북부에 위치한 베이스 캠프로 이동했다. 이번 경매를 위해 임시로 개설된 그곳은 지금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난리였다.

“이, 개 같은 새끼들!”

베이스 캠프 내부에선 굴비두름처럼 밧줄에 꽁꽁 묶여 잡혀 온 IS대원들과, 놈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마크 체이스가 있었다.

“지점장님! 미스터 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오오, 미스터 리!”

IS를 이끌고 온 수니파의 수장 압둘 바쿠르를 줘패고 있던 마크체이스. 그가 나를 향해 얼른 고개를 돌리며 반갑게 악수를 건넸다.

방금 전까지 아주 일그러진 얼굴이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딴 사람처럼 변했다.

“안으로 들어오시오. 내, 미스터 리의 활약은 레이바에게 보고 받아서 알고 있소.”

“그렇군요.”

내가 머쓱하게 대답하자, 마크 체이스가 주먹에 끼고 있던 가시박힌 금속 너클을 벗으며 말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나는 마크 체이스를 따라서 윈저성 내에 임시로 개설된 베이스 캠프로 돌어갔다. 그곳은 말만 ‘임시’지, 하나의 거대한 사무실처럼 모든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컴퓨터와 프린터기 같은 사무 기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 고풍스러운 왕가의 방안이 21세기의 현대 문명과 만나 색다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검은색 오피스 정장을 빼입은 중동의 미녀가 커피를 타와서 나와 마크 체이스 앞에 놓고 갔다.

아리보단 조금 빈약하지만, 그래도 풍만한 바스트와 골반라인. 그리고 이국적인 외모가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미스터 리께서 저놈들과 싸워서 멋지게 제압했다고 했죠?”

“네.”

“혼자서 화약무기로 무장한 병사들을 혼자서 제압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음······.”

마크 체이스는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으로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 말을 믿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회원들의 신원을 철저히 보장했기 때문에, 당연히 경매장 주변에 CCTV나 몰래카메라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주먹을 휘둘렀습니까, 아니면 발차기로 놈들을 때려눕혔습니까?”

“둘 다라고 해두죠.”

“뭐, 음······. 아무튼 알겠습니다. 레이바가 뒤늦게 당도해서 미스터 리의 싸움 실력을 견식하진 못했지만, 녀석들이 미스터 리에게 제압당한 건 확실히 두 눈으로 봤다고 했으니까요.”

“레이바의 눈을 믿으십시오. 그는 블랙마켓의 사람이 아닙니까?”

“솔직히 믿기진 않지만, 당신에게 IS 조직원들이 제압당했다는 걸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의문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군요.”

“제가 바로 이 시대의 김두한입니다.”

“김··· 뭐요?”

“한국 최고의 싸움꾼이란 말입니다. 사실 UFC에서 권투 글러브 끼고 싸우는 건 그냥 애들 장난 같은 거죠. 걔네들이 이런 실전 박투 같은 걸 어찌 알겠습니까?”

“······.”

마크 체이스를 설득하기 위해서 최대한 둘러대 봤는데, 오히려 역효과인 것 같았다. 마크 체이스는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방금 뽑아 놓은 서류 더미를 내게 건넸다.

“이번 테러집단 제압 건에 대한 포상입니다. 레이바에게 이걸 원하셨다죠?”

마크 체이스는 엄지와 검지를 둥그렇게 말아, 내가 레이바에게 농담으로 했던 머니 표시를 똑같이 돌려줬다.

“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작은 목소리로 긍정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블랙마켓 영국 지점장으로서 제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까지 사례를 해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은 본사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사안이라,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된 걸 알면 상부에서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얼만데요.”

나는 주야장천 떠들어대는 마크 체이스의 말을 자르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마크 체이스는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검지를 들어 1자 표시를 내비쳤다.

“1만 달러?”

“노노.”

“그럼 1억 달러?”

“노노노.”

“그럼 얼만데요?”

“10억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다니!

역시 세계적인 스케일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말이 1조지, 웬만한 중견규모의 기업들의 1년 매출을 아득히 뛰어넘는 금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순이익도 아닌, 매출.

게다가 재벌들 중에 1조나 되는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다들 부동산, 주식, 기업 등등 자신의 명의로 된 각종 자산 형태로 가지고 있고, 거기서 매겨진 가치가 1조인 사람은 여럿 있어도, 순수 현금만 따지만 한국에선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띠딕, 띡.

마크 체이스는 이미 본사에 보고가 끝났던지, 바로 그 자리에서 10억 달러를 내 비밀계좌로 입금해줬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미스터 리.”

“아니요. 제가 더 고마운걸요. 고작 이런 일을 한 거 가지고 1조··· 아니, 10억 달러라니.”

“고작이 아닙니다, 미스터 리.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지만, 생명은 한 번 죽으면 다시 되살릴 수 없는 법이죠. 게다가······.”

계좌 이체를 마친 마크 체이스가 양손으로 턱을 괴며,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이곳에 모인 부호들의 목숨값이 고작 1조밖에 안 나가겠습니까? 저희 입장에선 더 많은 사례를 하고 싶지만, 이번 테러가 무사히 무마됐음에도 회사가 입은 타격이 만만치 않은지라 이 정도밖에 못 해드린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뭐, 저는 이 정도로도 만족합니다.”

1조 이상 더 바란다는 건 과도한 욕심이겠지. 게다가, 블랙 마켓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들이 주최하는 경매가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인식이 참가자들에게 박혔을 수도 있다. 무사히 테러집단을 제압했다는 공도 있었지만, 그것을 미리 캐치하지 못하고 한 대 얻어맞은 후에야 대응했다는 게 큰 타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동안 쌓아왔던, 공고한 탑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우리 자주 보게 될 것 같은데, 잘해봅시다.”

내가 먼저 작별 인사겸 악수를 건네자, 마크 체이스도 유쾌하게 내 손을 맞잡았다.

“미스터 리는 앞으로 우리 블랙마켓의 VIP입니다. 블랙마켓 경매가 열릴 때는 초대장 없이 언제든지 참가 가능하다는 허락이 본사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여기 이 번호로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지 참가 의사를 밝혀 주십시오.”

나는 아리가 받았던 명함과 똑같은 명함을 마크 체이스에게 받아서 양복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당시엔 마크 체이스가 아리를 한 번 꼬셔 볼라고 건넨 명함이었다면, 이건 진짜 고객을 위한 영업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경매장으로 다시 돌아와, 아리와 함께 한국으로 출국할 준비를 했다.

다사다난했던 보석 판매 일정을 끝마치고, 10일 만의 귀국이었다.

“마크 체이스랑 무슨 얘기 했어요?”

비행기 안에서 토끼 안대를 이마 위로 올려 쓴 아리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그렇게 물었다.

“어, 음······. 우리가 입찰한 레인보우 다이아몬드가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고 앞으로 자주 거래하자고 하더군요.”

“오오, 그럼 우리 다음에도 블랙 마켓 경매에 참가할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요.”

“와우, 다행이에요. 근데······.”

아리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도 이런 테러를 당한다면, 차라리 안 나가느니만 못한 거 아니겠는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땐 또 다른 수가 생기겠죠.”

“그렇겠죠?”

나는 걱정하는 아리를 달랜 후에, 그녀가 잠들자 일등석의 좌석에 등을 기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회항해 이 씨발련아 개같은 련아! 좆같은 련아!”

기내에서 이상한 난동이 터졌다.

“퉤, 이 씨발련아 개같은 년아!”

그것은 분노에 찬, 악의적인 고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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