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서클 대마법사의 귀환-34화 (34/272)

# 34

20.기록 경신

“랏(lot : 경매작품번호) 1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덜컹!

경매장의 조명이 모두 꺼진 후 10분쯤 지났을까?

단상 위로 한 줄기 핀 조명이 둥그렇게 중앙을 비췄다.

두둥ㅡ!

웅장한 BGM과 함께 조명이 경매사에서 다시 단상 위의 보석으로 포커싱이 맞춰졌다.

이미 경매가 시작되기 전, 입찰자들은 오늘 출품될 경매 물품 리스트를 받아 놓은 상태. 전문가들로부터 감정된 가격 (appraisal)이 적힌 리스트를 확인하며 아리와 나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제일 마지막이에요.”

“하이라이트군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빛깔을 모두 품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지구상 단 한 개밖에 없었다.

바로 레인보우 다이아몬드.

결국 오늘 경매의 하이라이트이자, 대미(大尾)를 장식할 끝판왕이었다.

아리는 흥분기가 가득한 얼굴로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볼륨감 있는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검은색 라쏠베이스 정장에, 가지런히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머리. 옅은 화장이 드러나는 핑크빛 볼터치까지.

오늘 그녀의 모습은 평소보다 10배는 더 예뻐 보였다.

평소에도 엘프 취급을 받던 그녀가, 제대로 풀셋팅을 갖추니 주변 여자들을 가볍게 압살하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반면, 나는 아리가 사준 슬림형 맨잇슈트 정장을 입고 왔다. 그녀가 선물한 정장이자,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정장이기도 했다.

우리와 같은 입찰자들 외에도, 외신 기자들과 경매 관계자들이 듬뿍듬뿍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최상급 보석들이 출품되는 보석 경매, 매그니피선트 주얼스(Magnificent Jewels)에 참가하게 되어 매우 기대가 돼요.”

상기된 얼굴로 아리가 작게 소곤거렸다.

우리 두 사람은 연인처럼 딱 붙어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경매를 구경했다.

“오늘 크레스티 관계자로부터, 우리 보석이 가장 기대받는 출품작이라고 귀띔을 받았어요.”

“어차피, 얼마가 나오든 결국 불발이잖아요?”

“쉿!”

아리는 검지를 들어내 입술에 갖다 대고는 눈을 흘겼다. 혼내는 듯한 얼굴이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내 입술에 닿자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짜릿한 전율!

오늘 내 보석이 경매가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와 단둘이 이렇게 뜻깊은 추억을 쌓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솔직히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 회장이라도, 이런 미녀와 단둘이 연인 같이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낼 수 있을까?

다달이 몇천만 원씩 꽂아주고, 빌라나 명품백을 던져주고 스폰서 하는 거 말고.

진짜,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최고의 미인과 단둘이 호흡할 수 있느냔 말이다.

나는 이미 경매 금액보다 즐기는 마음으로 매그니피선트 주얼스(Magnificent Jewels)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크레스티 경매 중에서도 최상급 보석들이 출품되는 경매답게, 보는 눈이 즐거웠다.

최저가로 시작한 경매 보석이 1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억 원 이상부터 경매를 시작하는 매그니피선트 주얼스. 그 이하의 짜잘한 보석은 취급도 안 한다는 뜻이었다.

아마 수천억 원대를 호가하는 우리 보석 차례가 오려면 몇 시간은 지나야 할 듯싶었다.

“10만 5천!”

“네, 10만 5천 달러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어제 우리와 파트너쉽을 체결한 블랙마켓의 중개인 레이바. 그도 오늘 경매에 참가했다. 레이바는 오늘도 흰색 터번에 흰색 가운, 그리고 덮수룩한 수염을 한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경매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가 노리는 목적은 오직 하나, 레인보우 다이아를 최고가로 올리는 것.

짤짤이로 몇 개의 보석을 구매하며 신뢰도를 올린 후, 최종 경매에서 레인보우 다이아에 역대 최고가를 불러서 남들이 경매에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오늘 레이바와 우리의 전략이었다.

“10만 5천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낙찰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레이바! 모두 박수 부탁드립니다.”

경매사는 낮은 호가 보석부터 열심히 바람잡이를 하며 흥행몰이를 시작했다. 뒤에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태풍들이 잠자고 있었지만, 그는 매 순간 영혼을 갈아 넣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매 출품작마다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의 열정에 감염되어, 많은 사람들이 수만 달러 단위의 호가를 마구 질러댔다. 대놓고 판을 깔아 놨으니, 돈이 넘쳐나는 부호들이 지갑을 안 열수가 없었다.

찰칵찰칵, 찰칵찰칵.

롯 번호 1번부터 38번까지 진행되는 동안, 기자들은 열심히 출품된 보석들을 찍어댔다.

무색의 다이아부터 시작해서, 오렌지 다이아몬드, 옐로우 다이아몬드, 브라운 다이아몬드 등등 저가의 다이아와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 등의 보석등이 먼저 경매되었다.

보석 중의 왕이자, 영원 불멸의 사랑을 의미하는 다이아몬드.

개중에서 가장 희귀한 다이아는 당연히 그린, 블루, 레드, 핑크였다. 저 4가지 색상은 전 세계에서 아주 일부 광산에서만 채취가 되고, 그 양도 아주 극소량이었다.

그래서 경매에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흠······.”

나는 맨 뒤 순서라, 손가락만 빨며 그것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짜잘한 보석을 몇 개 더 내다 팔 걸 그랬나?

아리는 지겹지도 않은지 2시간이 넘은 시간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경매를 지켜봤다.

레이바 또한 몇억짜리 거래로 몇 번 입질을 하다가, 이제는 레인보우가 나올 때까지 무한정 존버하고 있었다.

‘언제 나오나, 언제 나오나······.’

레인보우 다이아의 경매 순서는 롯 59번이었다.

오늘의 라스트 경매이자, 하이라이트.

이제 9번만 더 건너가면 바로 우리 차례다.

*

1시간 정도 더 지났을까?

9번의 경매가 스피드하게 진행되며,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어··· 어떡해요.”

아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배고픈 아기새처럼 애처로운 얼굴이었다.

스윽.

그녀의 애처로운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할 거 없어요. 마음 편히 가져요.”

“그래도 떨려요. 이런 최고가 경매는 정말 처음이라······.”

보석에 목숨을 건 그녀인지라, 오늘 경매가 정말 의미가 남다른 모양인 것 같았다.

아리 쥬얼리샵은 본래 그녀의 어머니가 설립한 회사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딴 공방을 만들었고, 작은 공방에서 곧 주얼리샵으로 발전했다. 비록 지금은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어머니의 가업을 물려받아 쥬얼리 샵을 운영하게 된 아리는, 가업으로 놀고먹지 않고 기술을 갈고 닦아 세계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미 실력적인 면에선 흠잡을 데가 없는 그녀였다. 하지만, 아직 최고가 경매엔 인연이 없어서 한국의 작은 주얼리샵으로 남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회가 왔다.

최고가 보석 경매를 통해 세계만방에 명성을 떨칠 기회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온리원 다이아몬드! 레인보우 다이아몬드를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공개하겠습니다.”

펄럭!

꺼졌던 핀셋 조명이 다시 활짝 켜지며, 오늘의 라스트 경매 작품이 베일을 벗어냈다.

“와아아ㅡ!”

찰칵, 찰칵!

관중들의 놀람과 흥분의 도가니 속에 공개된 역대급 보석.

7가지 빛깔을 모두 간직한 430캐럿의 대형 보석이 사람들에게 공개되자, 너나 할 것 없이 홀린 듯이 그것을 쳐다보았다.

입찰하기 전 나눠줬던 감정사들의 감정가가 무려 4억 달러에 매겨졌던 그 보석!

경매 시작가가 4천억 원에 시작될 것이 유력한 그 보석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반짝반짝거렸다.

‘매혹 마법을 걸어 놓길 잘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홀린 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며, 아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됐다.

이 정도면 정말 어그로 제대로 끌었다. 비록 오늘 경매에선 불발이 나겠지만, 차후에 있을 블랙마켓 경매에서 제값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

“자, 그럼 롯 59번 레인보우 다이아몬드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오오······.”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즐기며, 경매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경매 시작가는 감정가와 동일하게 4억 달러에서 시작하겠습니다.”

“헉······!”

이미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경매사의 입에서 4억 달러란 금액이 튀어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4천억 원이 무슨 애 이름이란 말이던가?

그 돈이면 보석이 아니라, 다른 자산을 사도 평생 놀고 먹을만한 불로소득이 다달이 나올 것이다.

빌딩, 차, 땅, 아파트, 상가······.

무엇을 사도 손해 볼 일이 없지만, 저 보석을 사면 그저 관상용일 뿐이다. 재테크용으로 사는 부호들도 있겠지만, 저 보석에서 월세가 나올 리 만무하다. 희귀성 때문에 가치가 더 오를지는 몰라도.

“호가는 천만 달러입니다. 천만 달러씩 순차적으로 입찰이 가능하고, 한 번에 더 높은 금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자, 질문 없으시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4억 달러 있으십니까?”

“······.”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1년과도 같은 10초 정적이 흘렀을까?

“4억 달러!”

레이바처럼 터번을 둘러쓴 중동의 왕족이, 번호가 적힌 피켓을 번쩍 들었다. 입찰자로 입장할 때 하나씩 받는 피켓이었다.

“네, 4억 달러 나왔습니다. 4억 1천만 달러 있으십니까?”

“4억1천!”

“4억2천!”

“4억3천!”

매혹의 마법 덕분일까?

그동안 숨죽이며 지켜보던 부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피켓을 들어 올렸다. 정말 광기에 찬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호가를 불식시키는 절대 호가는 이제 시작이었다.

“6억 달러!!!”

“뭐?”

“진짜야?”

누군가 피켓을 들고 6억 달러를 외치자, 경매장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레이바!’

나와 아리는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6억 달러면 우리 돈으로 6천억 원이 넘는 금액을 단박에 입찰한 셈이었다.

“···6억1천만 달러 있습니까?”

“······.”

없었다.

“카운트 세겠습니다. 10, 9, 8, 7, 6······.”

눈 깜짝할 사이에 10초가 지나갔다.

“없습니까? 그럼, 이번 레인보우 다이아몬드의 경매는 레이바에게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계십니까?”

“······.”

결국 6억 달러로 입찰된 이날 경매는, 이제껏 치러왔던 세계 보석 경매에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설을 쓰고 끝이 났다.

아리와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경매장을 나왔고, 곧 경매 관계자와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

전 세계 신문과 뉴스엔 이번 크레스티 초호화 경매에 모든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6억 달러짜리 입찰에 많은 논란을 낳았으며, ‘과연 레이바란 자가 6억 달러를 온전히 지불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정체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며, 그가 지불의사가 불투명한 신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수십만 달러 단위의 중소규모 보석 경매에 자주 참가했던 그였지만, 이런 수억 달러 단위의 경매는 처음 참가하는 것이었고, 과연 그만한 지불 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레인보우 다이아몬드에 대한 입찰이 불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크레스티 경매사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 놓았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뇌리속엔 세계 최초의 레이보우 다이아몬드가 선명하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

“드디어 초청장이 왔군요.”

아리와 나는 나이트 타임 스퀘어(Night Times Square) 호텔에서 비밀스러운 초청장 하나를 받았다.

바로 블랙마켓(blackmart) 초대장이었다.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암시장. 이번 크레스티 경매에서 우리의 존재를 선명하게 알린 후, 드디어 본 무대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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