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3.나에게 소중한 사람(3)
위이이이잉.
파란색 무늬의 주차단속 차량이 빠르게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엄마는 빨리 차를 빼려고 했지만, 이미 차량표지판이 찍히고 말았다.
“에휴······.”
나는 한숨을 내쉬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이거 다 얼마에요?”
가판대에는 팔다 남은 떡볶이가 눌어붙어 있었고, 오뎅과 순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네?”
내 물음에 엄마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주차 딱지가 끊긴 거 때문에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8만 원의 벌금을 내고 나면 정말 남는 게 없는 장사였다. 떡볶이랑 각종 분식들을 팔아봐야 일 매출이 20만 원을 넘지 못했다.
거기에 재료값이랑, 기름값, 가스비 등을 떼고 나면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었다.
“총각. 뭐로 줄까?”
엄마는 찌푸린 표정을 풀며, 열심히 철판에 있던 주걱을 휘휘 저었다. 굳어 있던 떡볶이들이 조금씩 풀어졌다.
“떡볶이랑··· 아니, 그냥 여기에 있는 메뉴 다 합해서 얼마에요?”
나는 품 안에서 되는 대로 돈을 꺼냈다.
그런데.
‘현찰이 없네······.’
가지고 나온 건 전부 금화였다.
이계에서 백 년 동안 익숙히 쓰던 화폐라, 나도 모르게 저절로 습관이 됐다. 오히려 천 원, 만 원짜리가 더 어색했다.
엉거주춤한 내 모습을 보던 엄마.
“너 혹시 준혁이 아니니?”
동공이 커진 엄마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
나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잠시간의 침묵 속에서 수많은 말이 오갔다.
주르륵.
눈물만이 흐를 뿐이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알 수 있었다.
15년 동안 엄마가 나를 생각했던 그 마음과, 한시도 나를 잊은 적이 없다는 그 눈빛이 어떠한 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전해졌다.
“준혁아!”
“엄마!”
엄마가 불판 위를 넘어 나에게 안겨 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엄마에게 헤이스트(Haste)를 비롯한 수많은 마법을 걸었다.
‘휴······.’
뜨거운 불판 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번쩍 안겨 온 엄마. 나는 그런 엄마를 위해 안전하게 들어 땅에 내려다 줬다.
“준혁아!”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나 또한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
그동안 고생만 시켜드리고,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데.
나를 보고 이렇게나 반가워해 주시다니.
정말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엄마는 내가 무능력하고, 돈 한 푼 없는 거지라도 나를 사랑해줄 것이다. 그저 겉모습은 개의치 않고, 오직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 이제 고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엄마가 얼마나 널 찾았는데······.”
설움이 복받쳤는지, 엄마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이따가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요. 저 배고파요.”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괜히 어리광을 부렸다. 100년 만에 부려보는 어리광이라 많이 어색했다.
“그래,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꼬······. 엄마가 금방 장 봐서 맛있는 저녁 해줄게.”
“고마워요, 엄마.”
나 때문에 급하게 장사를 접게 되었지만, 엄마의 표정은 잔뜩 신이나 보였다.
나 또한 밝은 얼굴로 열심히 뒷정리를 도왔다. 그저 둘이서 함께 있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 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지구로 돌아오기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면.
나는 정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세상을 탓하며, 엄마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저주했을 것이다. 처절하게 응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오순도순하고, 소박한 일상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하찮은 노점상이지만, 우리 네 가족을 지탱하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게 한 것도 다 노점상 덕분이다.
“아들. 엄마가 정말 맛있는 거 해줄게.”
엄마는 내가 또 어디론가 사라질까 봐 아예 팔짱을 끼고 다녔다. 다신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 모자는 곧바로 하나로마트로 이동했다.
하필 수요일이라 EN마트가 문을 닫았다며, 엄마는 아쉬워했다.
두나로마트에 들리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만두, 치킨, 초밥, 김밥, 주먹밥, 각종 밑반찬 등등······.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국의 음식들이었다.
‘다 먹고 싶네······.’
마음 같아선 아공간 주머니에다 마트 전체를 쓸어 담고 싶다. 당장은 돈보다 그런 게 더 땡겼다.
“준혁아. 먹고 싶은 거 골라봐. 엄마가 다 사줄게.”
“나는 이거.”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 나는 2000원짜리 닭강정 컵을 골랐다. 소(小)짜리.
“그거 말고 더 큰 거 골라.”
엄마는 직접 간장치킨과 양념치킨이 담긴 팩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엄마는 괜찮다는데 괜히, 내가 마음이 답답했다.
당장 8만원 과태료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지금은 제어 장치가 풀린 사람처럼 물건들을 마구마구 담았다.
“엄마, 이제 그만 사도 돼요.”
“이 정도면 되겠니?”
장바구니 안은 꽉 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은연중에 내가 마력을 분사해 쏟기지 않도록 힘을 썼지만, 엄마는 모르고 있었다.
“네. 이 정도면 충분해요.”
나는 더 고르려는 엄마를 질질 끌고 계산대로 향했다.
삑, 삑, 삑.
한참을 기다린 끝에, 점원이 바코딩을 시작했다. 하나하나 찍을 때마다 왜 내가 진땀이 나는 걸까?
오천 원,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 오만 원··· 구만 원!!!
계산대에 적힌 가격표가 올라갈 때마다 정말 혈압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마신을 때려잡을 때도 태연했던 나인데···.
고작 인간들이 만든(나도 인간이긴 하지만) 섬유질 쪼가리에 저절로 손이 떨려왔다.
당장 주머니에 백 원짜리 한 푼 없었다.
있는 거라곤 금화, 금, 보석 이런 것들뿐이다.
돈이 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챙겨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대충 금은방에 들려서 환전이라도 하고 오는 건데······!
엄마는 나와는 다르게 방긋방긋 웃는 표정으로 카드를 건넸다.
“네, 카드 받았습니다.”
삑.
삐빅.
“저, 손님······. 잔액 부족이라고 뜨는데요?”
“네!??”
엄마는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카드를 받아 들었다. 신용카드인 줄 알았는데, 현금카드였나보다.
“엄마. 이거랑, 이거는 빼도 돼요.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그 그럴래?”
나는 대충 비싸 보이는 음식들을 집어서 반품대에 올려놓았다. 가격표를 보니, 고기덩어리 하나에 만 원, 이만 원씩 했다.
‘물가가 엄청 올랐네······.’
아까 보니 떡볶이랑 분식 가격도 몇천 원씩 올랐던데, 다른 건 오죽하랴.
서민들의 벌이는 비슷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물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인구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이 이렇게나 살기 힘든데, 도대체 물가는 어떻게 계속해서 고공행진 할 수 있는 거지?
도대체 누가 돈을 다 틀어쥐고 있는 걸까?
머릿속에 풀리지 않을 의문들이 둥둥 떠다녔다.
“미안하다, 아들······.”
엄마는 풀이 죽은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들에게 맛있는 걸 잔뜩 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앞으로 제가 돈 많이 벌어서 고생시키지 않게 해줄게요.”
나는 빈말이 아닌,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백지수표를 믿는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너무 무리하진 마. 그저 엄마는 아들이 옆에만 있어 줘도 행복해.”
약간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늘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말을 돌리고 싶어졌다.
“근데 혜은이는 요새 뭐해요? 학교 다녀요?”
*
우리 두 사람은 장을 보고 난 후,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했고 나는 누워서 tv를 봤다.
오면서 엄마랑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는데, 대체로 나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대체 어디를 갔다가 이제서야 온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뭐? 원양어선? 배를 15년 동안이나 탔다고?
-아이고, 우리 아들. 엄마는 아들이 그렇게나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말하면서도 엄마가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는데, 괜한 기우였다.
엄마는 내 말이라면 의심하지 않고 그냥 다 믿었다. 절대적인 신뢰였다.
사실 그동안 믿음을 준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라도 잘해야겠다.
그렇게 결심을 하는데······.
쾅!
“엄마, 나왔어!”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혜은이니?”
엄마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물었다.
“어, 엄마. 근데 신발장에 이거 누구 신발이야?”
목소리가 낯이 익으면서도 약간 어색했다.
‘혜은이가 벌써 저렇게 컸나······.’
20살인 건 알았지만, 내 기억 속엔 영원한 5살이었다.
“어???”
거실로 들어온 여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165정도 돼 보이는 키에, 동그란 얼굴. 작지만 똘망똘망한 눈빛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혜은이의 물음에.
“준혁이가 돌아왔어. 네 오빠야.”
엄마가 대답했다.
혜은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오빠?”
하고 되물었다.
“···어, 그래. 혜은아. 나 기억하니?”
나는 약간 어색한 말투로 그렇게 되물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나는 그대로고 혜은이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오빠아ㅡ!”
혜은이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 곧바로 나에게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