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38화 (38/50)
  • 2장. 용족의 내분

    천안시까지 가는 동안 케르빌 제국 의 병사나 기사는 볼 수 없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뭐가요?”

    똘이와 함께 걷던 황수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술적으로 중요한 곳에 병사를 배치하는 것은 기본 아니야?”

    “아! 그거요?”

    황수정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 다.

    “제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왜?”

    “주요 도시만 방어하고 불리하면 무조건 성으로 퇴각하는 것이 더 나 으니까요.”

    이런 생각은 케르빌 제국의 용족 같지 않은 생각이었다. 대부분 죽으 면 죽었지 절대 후퇴하지 말라고 한 다.

    황수정은 이성진이 이상하게 생각 하는 것을 알았다.

    “저는 이상하게 인간들이 신경 쓰 여요.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굳이 죽지 않아도 될 곳에서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 성으로 후퇴하면

    가장 강력한 제가 나서서 해결하면 되는데.”

    이성진에게 처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인간을 배려하는 용 족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쓸데없이 병사를 소모하지 말라는 식으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배려는 배려일 뿐이다. 황 수정 역시 용족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호기심에 이성진을 만난 다 음 잡아 파나 신의 심장을 얻어 더 큰 힘을 얻으려 했다.

    뭐 지금은 이성진에게 푹 빠졌지 만.

    “너도 참 별난 용족이다. 심장을

    빼놓고 다니질 않나...

    “헤헤…….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셨 어요.”

    황수정은 잠시 죽은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가 죽으면서 엘 파나에 서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그래서 아 버지의 고향인 지구에 더 오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천안시에 가까워지자 케르빌 제국 의 깃발이 보였다. 30명 정도가 운 영하는 검문소 겸 주둔지였다.

    “저기는 병사가 있네?”

    “네. 아무리 그래도 도시를 드나들 수 있는 곳에는 병사를 배치해야

    죠.”

    황수정과 함께 검문소로 천천히 걸 어갔다. 그러자 대충 쉬면서 경계를 하고 있던 케르빌 제국 병사 2명이 나왔다.

    “정지! 어디서 오는 길이냐?”

    뒤에 있던 병사들이 활을 들고 경 계하는 것도 보였다.

    “고생들 하십니다. 정안에서 오는 길입니다.”

    “정안?”

    이성진의 말에 어디서 오는 길이냐 고 물었던 병사가 뒤를 슬쩍 봤다. 검문소 안쪽에 있던 병사가 지도를 꺼내 정안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지도를 들고 나왔다.

    “정안에 남은 사람이 있었나?”

    “아닙니다. 예산에서 친척을 찾아 정안까지 갔다가 없어서 다시 천안 으로 오는 길입니다.”

    이성진의 말에 병사는 고개를 끄덕 였다. 카반 왕국과 접한 지역의 사 람들을 예산이나 천안으로 데려왔 다. 아산시는 성이 있으니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멀리 돌아서 오거나 산을 넘어 천안으로 오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없었다.

    “딸인가?”

    “네. 제 딸입니다.”

    병사는 황수정을 위아래로 홀어봤 다. 그리고 검문소를 향해 소리쳤다.

    “카일! 수배자 그림 좀 가지고 와 라!”

    “네. 소대장님!”

    검문소에서 카일이라고 불린 병사 가 그림 수십 장을 가지고 달려왔 다.

    그러자 소대장이 화를 냈다.

    “멍청하기는! 다 가져오면 어떻게 하냐! 최근에 내려온 것만 가지고 와야지!”

    “죄송합니다.”

    소대장은 무언가 눈치챈 것 같았 다. 이성진이 황수정을 슬쩍 봤다.

    그러자 황수정은 고개를 돌렸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30명 정 도는 순식간에 처리하고 혼적까지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소대장은 수배 그림을 보더니 그중 한 장을 꺼내 황수정과 비교하기 시 작했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소대장은 다시 이성진을 보며 말했 다.

    “진짜 딸 맞나?”

    “네. 맞습니다.”

    이성진은 진짜 딸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황수정

    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끌어당겼다.

    “뭐……. 혼자 돌아다니는 여자아 이라고 하니 아니겠지.”

    이성진의 행동은 소대장의 눈에 자 신의 아이를 진짜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무기나 위험한 물건을 가지 고 있지 않나?”

    “없습니다.”

    이성진은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 다. 팔찌도 긴 팔에 가려 보이지 않 았다. 팔찌를 본다고 해서 일반 병 사가 마법 도구인 것을 알아볼 능력 은 없었다.

    “좋아. 통과해도 좋다. 하지만 문제

    일으키지 마라.”

    소대장은 더 묻지 않고 통과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감사합니다. 수정아 가자.”

    이성진이 황수정의 손을 잡고 똘이 와 함께 검문소를 통과했다.

    소대장은 이성진과 황수정의 모습 이 안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급 하게 검문소 안쪽으로 달려갔다.

    “여기는 천안시 남쪽 22번 검문소! 특급 수배자 확인!”

    소대장은 황수정이 수배자인 것을 알아봤다. 하지만 특급 수배자여서 모르는 척했다. 특급 수배자는 자신 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능력을 가

    졌다.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급 수배자를 발견하면 통과시키고 바로 보고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외모는 수배 그림과 똑같이 생긴 검은색 머리카락에 키 160cm 정도 의 여자아이가 맞습니다. 30대 초반 으로 보이는 남자와 커다란 개가 동 행하고 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소대장은 이마의 땀 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기사들이 알아서 하겠지.”

    아무리 봐도 위험한 여자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 이니 따라야 했다.

    이성진과 황수진이 간 방향을 보며 소대장은 잠시 불쌍하다고 생각했 다. 하지만 이내 곧 고개를 흔들었 다.

    자신은 판단할 위치가 아니다.

    소대장이 상부에 황수정을 발견했 다고 보고하는 순간 이성진과 황수 정 그리고 똘이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황수정은 이성진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슬며시 이성진의 손에 힘을 줘 당겼다.

    “왜?”

    “알면서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왜 인가요?”

    소대장이 눈치챈 것을 이성진은 알 고 있었다. 그것을 황수정도 알았다.

    “네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안 한 거야.”

    “그게 이유에요?”

    “네 부하잖아. 제대로 된 상관이라 면 부하 죽는 것 좋아하지 않지.”

    수많은 전투에서 어쩔 수 없이 죽 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소수의 죽음으로 다수를 살릴 수 있 다면 지휘관은 이를 악물고 결정해 야 했다.

    “조금 전 만났던 소대장의 이름은 카라스……. 제가 직접 소위 계급장 을 달아 줬어요. 그 누구보다 나에 게 충성을 바치는 부하죠.”

    “뭐 지금은 네가 성의 주인인 크리 스탈인 것을 모르니 저렇게 행동하 겠지.”

    “네……

    황수정은 이성진의 손을 놨다. 그 리고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고맙기는 이것도 빚이야.”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하는 말이 라는 것을 황수정도 잘 안다. 그래 서 더 고마웠다.

    “뭐 얼마든지 갚아 드릴게요. 성에 돌아가서 능력만 되찾는다면요.”

    황수정이 웃으며 대답할 때 이성진 은 천안 시내 방향을 바라봤다.

    “저놈들은 알면서도 찾아오는 놈들 이겠지?”

    황수정은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 들이 달려오는 것을 봤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어요.”

    황수정이 지구에 데리고 온 기사단 은 2개 기사단이었다. 친위 기사단 인 황금 날개 기사단과 흑기사단이 다.

    황금 날개 기사단은 1천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기사단은 3개의 대로 구성되어 있다. 1개의 대에 1 천 명씩이다.

    이성진은 흑기사단을 처음 만난다. 황수정이 성인이 되어 제대로 된 세 력을 가지기 전에 엘 파나를 떠났기 때문이다.

    풍기는 느낌과 마나로 봐서는 꽤 강력해 보였다.

    “100명이나 되는데?”

    “100명이 아니라 10,000명이라도 아저씨 옆에 있으면 안전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어느새 달려온 혹기사들은 이성진 과 황수정 그리고 똘이를 포위했다.

    혹기사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소리 쳤다.

    “바닥에 엎드려라!”

    바닥에 엎드리라는 한 마디면 충분 했다. 황수정이 자신들의 주인이라 는 것을 알면 저렇게 말하지 못한 다.

    그래도 황수정은 확인해야 했다. 모르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아

    니면 알면서도 배신자 황금 날개 기 사단과 같은 편인지.

    “그 목소리는 아심인가?”

    황수정은 목소리만으로 투구를 쓰 고 있는 혹기사가 누구인지 맞췄다.

    “나를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지. 평민으로 10살 에 기사단 종자로 들어와 15살에 수습 기사가 되었지. 공주님! 공주 님! 하고 따라다닐 때가 엊그제 같 은데.”

    아심은 황수정을 자세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공주님이라고 부 른 상대는 한 분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은 몇 명 없었다.

    “흑광 검술은 아직도 6식까지밖에 못 해? 내가 특별히 12식까지 가르 쳐 줬는데?”

    황수정은 매일 늦은 새벽까지 훈련 하는 아심에게 직접 혹광 검술을 12식까지 가르쳐 줬다. 그때 이제 막 흑기사가 된 아심은 황수정에게 가르침을 받고 실력이 늘었다.

    그래서 100명의 기사를 거느리는 조장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황수정이 직 접 흑광 검술을 가르쳐 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황수정의 명령이었으 니까.

    “크리스탈 전하이십니까?”

    “맞아! 나야.”

    아심이 황수정을 보고 크리스탈 전 하라고 하자 기사들이 동요하기 시 작했다. 아심의 충성심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모습으로……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네.”

    아심은 황수정이 자신만 아는 사실 을 말했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었 다. 행동과 말투 그리고 자신을 따 스하게 바라보는 눈빛 때문이었다.

    평민이라고 인간이라고 절대 무시 하지 않았다. 혹기사 대부분이 평민 이다.

    황수정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왜 크리스탈 전하의 명령 으로 수배령이 내려오……

    아심은 황수정을 누가 배신했는지 알았다.

    “황금 날개 기사단이 배신한 것입 니까! 전하?”

    “그런 것 같아.”

    아심을 제외한 흑기사들이 더 동요 했다. 황수정의 최측근이자 친위 기 사단이 배신했다.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아심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땅에 박으며 무릎을 꿇었다.

    “흑기사단 12조는 모두 무릎 꿇어

    라!”

    아심의 명령에 흑기사들이 아심과 똑같이 검을 뽑아 땅에 박으며 무릎 꿇었다. 그러자 아심이 소리쳤다.

    “혹기사단 12조 크리스탈 전하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황수정은 다행이라는 눈빛으로 이 성진을 봤다. 하지만 이성진은 아직 믿지 않았다.

    “아심 조장만 오라고 해. 다른 기 사들은 대기하고.”

    “네.”

    황수정은 이성진이 아심 조장만 오 라고 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가 없다 해도 지금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성진뿐이었다. 이 성진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아심은 일어나서 혼자 나에게로 와라! 나머지는 그대로 있고.”

    황수정의 어린 목소리에 위엄이 담 겨 있었다. 아심은 그대로 일어나 검을 뽑아 들고 황수정 앞에 달려와 다시 무릎 꿇었다.

    “흑기사단 12조장 아심, 크리스탈 전하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황수정은 다시 이성진을 봤다.

    “자! 이제 흑기사단 12조는 검을 뽑아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기사들 을 상대하라고 해.”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능력을 봉인한 황수정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심이 이성진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감히 누가!”

    아심이 소리치자 주변을 조용히 포 위하던 흑기사들이 나타났다. 그리 고 아심은 포위하던 흑기사들이 누 군지 바로 알아봤다.

    “1조와 3조……

    귀족들로만 이루어진 1조와 3조였 다. 평소 자신들은 평범한 흑기사들 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흑기사단이 사용하는 기본 검술은

    흑광 검술이었다. 하지만 1조와 3조 는 자신의 가문에서 배운 검술도 사 용했다.

    2가지 검술을 동시에 사용하면 실 력이 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다.

    하지만 케르빌 제국에서는 다르다. 영재 이상의 재능을 가진 아이만 뽑 아 어려서부터 가문의 지원을 받아 마나를 늘리고 검술을 배웠다.

    흑광 검술을 6식까지 익힌 일반 흑기사보다 더 강했다.

    “혹기사단 12조는 크리스탈 전하 를 보호하라!”

    아심의 부하들이 검을 뽑아 몸을

    돌렸다. 황수정을 보호하기 위한 대 형이었다.

    그리고 아심은 1조와 3조를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이 감히 크리스탈 전하에게 검을 겨누고도 살아남을 것 같으 냐!”

    아심의 말에 누군가 대답했다.

    “누가 크리스탈 전하라는 것이냐! 크리스탈 전하께서는 성에 계신다. 아심 조장! 분명 크리스탈 전하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에는 수배자를 체포하거나 죽이라고 되어 있다!”

    아심은 이를 악물었다. 정식 명령 서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지금

    황수정의 모습은 어린아이였다. 자 신이 크리스탈 전하라고 우겨도 증 명할 길이 없었다.

    “아저씨!”

    황수정은 아심에게 말하는 기사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조롱이 섞인 것 을 느꼈다. 저들 역시 황금 날개 기 사단과 한패라고 생각했다. 이런 것 도 모른다면 수많은 종족을 밑에 두 고 부리는 용족이라고 할 수 없었 다.

    황수정은 흑기사단 12조의 희생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이성진에게 1조와 3조를 해결해 달라고 부른 것이다.

    하지만 이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야.”

    아직 아니란 말에는 많은 뜻이 있 었다. 황수정은 이성진이 흑기사단 12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성진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황수정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심에게 명령을 내렸다.

    “흑기사단 12조는 반역자들을 죽 여라!”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심은 황수정 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정했다.

    “혹기사단 12조는 크리스탈 전하 의 명령을 따라라! 반역자들을 죽여 라!”

    흑기사단 12조가 검을 뽑아 들고 1조와 3조를 향해 달렸다. 곧 치열 한 전투가 벌어졌다. 아심은 황수정 을 보호하기 위해 남았다.

    “크리스탈 전하! 흑기사단 12조가 길을 뚫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조금 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았다.”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다시 이성진 을 봤다. 이성진은 황수정을 보지 않고 흑기사들의 전투를 보고만 있 었다.

    황수정의 눈을 외면하던 이성진의 손에 총이 갑자기 나타났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1조와 3조는 물론 12조까 지 바닥에 일제히 쓰러졌다. 300명 이 동시에 쓰러지는 것을 본 아심은 놀란 눈을 하고 이성진을 쳐다봤다.

    지금 황수정의 상황이 안 좋은 것 을 알고 있다. 황수정의 상황이 좋 았다면 처음 봤을 때 다 죽였다.

    배신자는 용서 안 한다.

    그럼 300명을 동시에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는 이성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분명했다. 그런데 용족의 기사단 300명을 거의 동시에 쓰러 뜨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놀라서 할 말을 잊은 아심을 놔두 고 이성진은 황수정에게 말했다.

    “저들 중에서 배신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기사는 20명뿐이다.”

    황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능력을 봉인했을 뿐이지 상황을 파 악하고 기사들의 움직임을 보는 눈 썰미는 그대로였다.

    흑기사단 12조 중 80명은 격렬하 게 싸우기는 했다. 하지만 서로 치 명상은 피했다.

    20명만이 죽을 각오로 싸웠다. 목 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아쉽네요. 20명이라도 살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황수정은 이성진이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20명까지 한꺼번에 죽였다 고 생각했다.

    충성스러운 20명의 기사가 아까웠 다.

    하지만 그건 황수정의 착각이었다.

    “20명은 안 죽였다. 그냥 기절만 시켰어. 나머지는 뭐……

    “ 진짜요?”

    20명의 기사가 죽지 않았다는 소 리에 황수정인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제 곧 일어날 거야.”

    이성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죽은 줄 알았던 20명의 기사의 몸이 움직였 다. 모두 머리를 흔들다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치열하게 싸우 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주 위를 둘러봤다.

    자신들을 제외하고 모두 쓰러져 있 기 때문이었다. 20명의 기사는 뒤를 돌아봤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존 재는 자신들의 주인인 황수정뿐이라 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황수정은 기사들의 사기를 위해서 라도 이성진의 정체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엘 파나에서 아저씨를 부 르던 이름을 말해도 될까요?”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아는 놈들은 다 알고 있다. 오히려 소문을 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아 는 놈들이라고 해 봐야 성의 주인 정도다.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가 나타났 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면 분위기 가 달라진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싸우 고 싶지, 싸워서 질 것 같은 상대화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나를 도와 성으로 가는 분은 엘 파나의 검은 사신 S이시다.”

    황수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 자 바로 앞에 있던 아심부터 조금

    떨어진 20명의 기사는 바로 믿지 못했다.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의 전설 같 은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하지만 15년 넘게 나타나지 않았다.

    왕국이 멸망하는데도 나타나지 않 은 것을 봐서는 죽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죽지 않았어도 폐인이 되었거나.

    그런데 눈앞에 있다. 그것도 30대 의 모습으로.

    아심은 나이를 먹지 않는 것 아닌 가 싶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존재 는 아심이 알기로는 용족뿐이었다.

    “혹시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님께

    서는 용족이십니까? 그래서 크리사 탈 전하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용족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300 명의 기사를 한 번에 쓰러뜨렸다.

    “아니. 나는 평범한 지구의 인간이 다.”

    황수정은 옆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 다. 이성진이 평범하다고 말한 것 때문이었다. 말이 되지 않는다. 이성 진이 평범한 인간이면 지구 침공도 못 했다.

    수십억 명의 이성진이 있는 지구를 침공할 간 큰 종족은 없다.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아심은 물론 20명의 기사도 믿지 못했다. 그런 기사들을 향해 황수정 이 소리쳤다.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지금 눈 앞에 결과가 있다. 그리고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

    황수정의 말에 아심과 20명의 기 사는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믿습니다.”

    “수정아. 이곳을 정리하고 천안시 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야 하지 않을까?”

    “안전하게요?”

    황수정은 이성진이 있는데 무슨 걱

    정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에는 흑기사들이 방심하고 있어서 쉽게 정리할 수 있었어. 하 지만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어려울 수 있어.”

    사실 흑기사들은 12조에 심어 놓 은 배신자들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 다. 자신들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 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 다.

    이성진의 공격을 눈치챘을 때는 늦 었다.

    만약 최선을 다해 경계하고 있었다 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뼈를 깎는 노력

    을 통해 기사가 된 이들이다.

    뭐 그래도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결과는 똑같았겠지만.

    이성진의 말을 들은 아심이 벌떡 일어났다.

    “크리스탈 전하! 전하께 충성을 바 치는 혹기사들을 모으겠습니다.”

    아심은 아직도 동료들을 믿고 있었 다. 그리고 황수정도 부하들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전 결과가 입을 쉽게 열지 못하게 했다.

    “믿어 주십시오! 혹기사단은 크리 스탈 전하의 은혜를 입어 탄생했습 니다. 몇몇 배신자가 있다 해도 소

    수일 것입니다!”

    아심은 확신에 가까운 말투였다. 황수정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흑 기사들 3분의 2 이상이 평민 출신 이었다.

    모두 황수정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황수정 덕분에 자신은 물 론 가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문제는 황수정의 지금 모습이었다. 흑기사들을 설득하고 모으는 데 시 간이 걸린다.

    고민하는 황수정의 마음을 이성진 은 잘 알 수 있었다.

    “수정아!”

    “네. 아저씨!”

    “계획을 약간 바꾸자.”

    “계획을 바꿔요?”

    “그래.”

    황수정은 계획을 어떻게 바꾸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지금쯤 배신자들에게 네가 나타났 다는 소식이 들어갔을 거야.”

    “아무래도……

    1조와 3조가 바로 달려온 것을 보 면 성에 있는 황금 날개 기사단도 알고 있다.

    “내가 아는 용족의 친위 기사단이 면 내가 같이 있어도 쉽지 않다.”

    황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진

    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문제였다. 이성진 혼자라면 황금 날개 기사단 도 문제없다. 하지만 이성진은 자신 을 보호하며 싸워야 한다.

    봉인한 심장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도중에 자신이 잘못될 수도 있었다.

    그러면 끝이었다.

    “더군다나 성안에서 싸우는 것은 내가 불리해.”

    각종 마법진에 방어 시설까지 있는 곳이다. 황수정이 미안한 표정을 지 었다.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를 잠 시 묶어 두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 비했다.

    각종 마법진은 물론 마법 무기와

    기사들의 무장도 충실했다.

    이성진을 잠시 묶어 두는 것은 확 실했다. 황수정 자신을 대상으로 직 접 실험했다. 자신도 잠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몰아붙였 다.

    몰래 이동 마법진으로 가려는 것이 실패한 이상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 는 것은 안 된다.

    “알아요. 아저씨의 계획을 말해 주 세요.”

    “일단 수정이 네가 평소의 모습으 로 돌아오는 거야.”

    “네? 하지만 심장이……

    황수정은 심장이 없는데 어떻게 평

    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궁 금했다.

    “대신할 것을 넣으면 되지 않을 까?”

    용족의 심장을 대신할 것은 존재하 지 않는다. 있다면 한 가지뿐이다.

    황수정은 설마 하며 고개를 흔들었 다.

    “아니요. 절대 안 돼요! 아저씨 심 장은……

    황수정의 말에 이성진은 웃을 수밖 에 없었다. 황수정에게 파나 신의 심장을 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황수정이 더는 파나 신의 심장을 탐 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거 말고.”

    “그거 말고 다른 것은 용족의 심장 을 대신할 수 없어요.”

    용족의 심장을 대신할 수 있는 것 은 없다고 확신했다. 용족의 심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불사의 존재가 될 테니까.

    “수정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잠 시 원래 모습을 되찾게 할 수 있는 대체 심장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 아.”

    “어떻게요?”

    “이동 마법진은 마나석으로 가동되 지‘?”

    “네. 설마……. 마나석을 심장 대신

    으로 사용하려고요?”

    “맞아!”

    황수정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 다. 이동 마법진에 사용된 마나석이 최상급인 것은 맞다. 하지만 마나석 을 심장에 넣는다고 해서 심장을 대 신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 마 나석과 용족의 마나가 충돌하는 이 유가 컸다.

    심장은 흡수한 마나를 종족에 맞게 변형해 저장하면서 몸으로 보낸다.

    마나석은 마나를 담고 있다. 심장 처럼 마나를 변형하는 기능이 없다. 오히려 황수정의 몸에 남아 있는 마

    나와 마나석의 마나가 충돌한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설명할 시 간은 없어. 이동 마법진에 가서 직 접 보여 줄게. 보면 알 수 있을 거 야.”

    황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래. 수정이 네가 평소의 모습을 되찾으면 흑기사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거야. 진짜니 가짜니 증 명할 필요도 없고.”

    “아무래도 그렇겠죠.”

    황수정은 이성진의 계획을 알았다.

    “그럼 성에 있는 황금 날개 기사단 을 반역으로 몰 수도 있고요.”

    “정답! 성의 주인인 네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상황은 반전이 지. 황금 날개 기사단을 제외하고 다시 충성스러운 부하로 돌아올 거 야.”

    황수정은 이성진이 자신을 위해 이 런 계획을 생각해 준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하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 다 음 말한 것이니까.

    “이제 더는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 이 없어. 머뭇거리면 머뭇거릴수록 희생만 늘어날 거야.”

    “알았어요. 아심!”

    “네! 크리스탈 전하!”

    “이곳을 정리하고 천안시로 들어간 다. 5분 주겠다!”

    “크리스탈 전하의 명대로!”

    아심은 20명의 기사에게 가서 280 명의 기사 시체를 한쪽으로 모으게 했다. 그리고 5명씩 팀을 만들어서 황수정을 보호하게 했다.

    황수정의 말대로 5분 만에 끝냈다.

    “크리스탈 전하! 명령을 내려 주십 시오!”

    “천안시로 들어간다. 목적지는 지 구 인간들 구역이다.”

    “알겠습니다! 흑기사단 12조! 목적 지 지구 인간 구역으로 출발!”

    5명의 흑기사가 먼저 출발했다. 그

    뒤를 이성진과 황수정 그리고 똘이 가 따라갔다.

    아심은 주변을 꼼꼼하게 경계하며 황수정의 옆을 지켰다.

    그리고 곧 천안 시내로 들어섰다. 멀리서 볼 때 예상했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자 천안시의 모습은 처참 했다.

    높은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아산 시에 떨어진 용족의 성 때문이었다.

    아산시와 천안시는 그리 멀지 않 다. 용족의 성이 떨어지며 생긴 폭

    풍 때문에 높은 건물은 모두 무너졌 다.

    카반 왕국과는 다르게 마법 도구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케르빌 제국이 아닌 다른 종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 는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거리 곳곳에 케르빌 제국 병사들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을 아래 로 깔아 보며 마음에 안 들면 두들 겨 패는 것도 보였다.

    황수정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일 이 이제는 불편했다. 이성진 때문이 었다.

    폐허 같은 거리에 거지같은 꼴을

    하고 두들겨 맞는 사람들이 자신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못 참을 것 같았다.

    “아심!”

    “네. 크리스탈 전하!”

    “가서 병사들에게 전해라. 지금부 터 지구의 인간들에게 폭력을 행사 하거나 불편을 주면 사형이다.”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아심이 흑기사 한 명을 보내 병사 들에게 명령을 전했다. 그러자 병사 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멈췄 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에게도 혹기 사의 명령을 전하기 시작했다.

    황수정은 이성진의 눈치를 봤다.

    “아저씨……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 하자. 앞으로가 중요한 것이겠지.”

    “네••••••

    옆에서 듣던 아심은 속으로 안심했 다. 이성진이 화를 내면 일이 다 틀 어진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황수정이 다시 성의 주인이 되는 일이 어긋나는 것은 두려웠다.

    “빨리 움직이자. 수정이 네가 성을 빨리 되찾을수록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시간은 빨라진다.”

    “알았어요.”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심과 흑기사들 역시 빠

    르게 움직였다. 폐허 같은 거리를 지나가자 그나마 온전한 건물들이 있는 곳이 나왔다.

    병사들과 흑기사들이 빈틈없이 경 계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12조의 조장인 아심이 앞장서자 막을 수 있 는 병사나 혹기사는 없었다.

    온전한 건물들이 있는 곳에 사람들 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빈 민가나 다름없었다. 씻지 못한 사람 과 신발도 없어 맨발로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주 철저하게 계획했구나.”

    황수정은 멋쩍게 웃었다. 이성진이 이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동 마법진을 이 안에 설치했다.

    “지나간 것은 잊어 주세요. 어쩔 수 없었어요.”

    이성진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하면서 미안해했다.

    “알았다. 가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사람 들의 모습은 더 가관이었다. 그리고 분수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그런 것 같네. 분수대만 멀쩡하잖 아.”

    주변이 다 망가진 것투성이다. 분 수대와 분수대 중앙의 석상만 멀쩡

    했다.

    “내가 가지고 올게.”

    이성진은 분수대 석상으로 뛰었다. 그리고 목을 잡아 뜯어 왔다.

    “크게도 만들었다.”

    “아저씨가 도망 못 가게 하려면 어 쩔 수 없었어요.”

    “알았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하는 데……

    분수대 주변 골목에서 무기를 든 병사들과 흑기사 그리고 로브를 입 은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반역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라!”

    이성진은 피식 웃었다.

    “쉬울 리가 없지.”

    골목은 물론 조금 높다 싶은 곳에 까지 병사와 기사가 나타났다. 궁수 와 궁수를 보호하는 기사였다.

    이곳에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 지가 보였다.

    황수정은 이성진에게 부끄러워 얼 굴을 붉혔다. 부하들이 자신을 몰라 보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 황수정의 마음을 잘 아는지 이성진은 대수롭 지 않게 말했다.

    “수정아 네가 평소 모습만 되찾으 면 쉽게 끝나는 일이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참고 기다릴 때야.”

    황수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능력을 되찾게 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 나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진 빚은 무슨 일이 있더 라도 갚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무기를 버 리고 투항해라! 그러면 안전은 보장 하겠다.”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에 살기가 넘쳐 났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도 안전하지 않다. 자기들 피해를 줄이 기 위한 헛소리라는 것이 너무 잘 보였다.

    “아심!”

    “네?”

    아심은 이성진이 자신의 이름을 부 르자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너의 주인이 평소 모습을 되찾으 려면 약간 시간이 필요하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진의 다음 말은 필요 없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최대한!”

    아심은 시간을 정해주지 않은 이성 진의 말에 자신의 능력을 시험한다 고 생각했다. 절반은 맞는 이야기였 다.

    이성진이 다 쓸어버리고 마나석을 황수정의 몸에 맞게 변형해도 된다. 하지만 황수정이 원하는 것이 아니

    다.

    황수정은 저들 중에도 속아서 온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심이 시간을 끄는 동안 빠르게 마나석을 바꿀 생각이었다.

    “모든 능력을 사용해 시간을 만들 어 보겠습니다.”

    아심은 황수정을 쳐다봤다. 이성진 에게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주인은 황수정이다. 황수정에게 허락을 구 하는 것이다.

    황수정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심이 황수정에게 고개를 숙인 다 음 앞으로 나섰다. 그때 이성진은 두 손으로 석상의 머리를 잡고 힘줘 서 누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돌려 가면서 누르며 압축했다.

    아심은 심호흡을 하고 크게 소리쳤 다.

    “나 흑기사단 12조의 조장 아심이 다!”

    아심은 싸우며 시간을 만드는 것보 다 대화로 시간을 만드는 것이 낫다 고 생각했다.

    이곳을 포위한 병사와 기사들도 아 심인 것을 안다.

    하지만 반역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 애써 동료였던 흑기사단 12조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야 죽일 수 있다.

    아심이 자신의 소속을 밝히자 얼마 전까지 동료였다는 사실이 기억났 다.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염려했는지 포위한 흑기사 중 한 명이 나섰다.

    “아심! 너는 지금 특급 수배자와 함께 있다. 그것만으로 반역이다.”

    반역이라는 말에 병사들과 기사들 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신들이 받은 명령은 절대적이다. 주인이자 충성 을 맹세한 이로부터 내려온 것이니

    까.

    하지만 그 명령이 가짜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아심은 지금 이곳에 있는 병사나 기사 그리고 마법사 모두가 배신자 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래서 투구 를 벗으며 말했다.

    “내 얼굴에 난 이 상처의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

    아심의 얼굴에는 대각선으로 흉터 가 있었다. 번개가 치는 듯한 모양 의 홍터였다. 아심이 투구를 벗고 상처의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고 하 자 다시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 대부분이 동요했다.

    아심의 얼굴에 난 상처는 황수정을 대신해 결투에 나갔기 때문에 생긴 상처였다. 마나의 양도 실력도 상대 보다 부족한 상황이었다.

    생명을 걸고 황수정의 명예를 지키 려 했다.

    죽음까지 각오한 결투에 결국, 이 기긴 했다. 하지만 거의 죽음까지 갔었다. 황수정이 치료해 줘서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얼굴의 홍터는 치 료받지 않았다.

    아심에게 훈장이나 다름없는 상처 였으니까.

    아심이 황수정에게 얼마나 충성스 러운지는 흉터가 증명했다. 아심이

    흉터의 명예를 건다는 것은 황수정 에 대한 충성을 걸고 말한다는 것과 같았다.

    아직도 황수정에게 충성하는 병사 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는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이분은 특급 수배자가 아니다.”

    아심은 황수정이 크리스탈 전하라 고 아직 밝힐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 다.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황 수정을 크리스탈 전하라고 주장해 봤자 통하지 않는다.

    아심이 얼굴의 상처를 걸고 특급 수배자가 아니라고 말하자 더 동요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혀 동요하

    지 않은 놈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크리스탈 전하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 다는 것이냐?”

    아심에게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아 니었다.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말한 것이다. 아심이 뭐라고 하든 황수정 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가 있다.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는 무조 건 따라야 한다.

    황수정 본인이 오거나 다른 명령서 가 오기 전까지는.

    “아니. 크리스탈 전하의 직인이 찍 힌 명령서가 있다면 따라야 한다.”

    아심이 오히려 명령서를 따라야 한

    다고 했다. 그러자 모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명령서를 따르지 않 을 것처럼 행동하는 아심이다. 그런 데 따라야 한다고 말하니 앞뒤가 맞 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해 라!”

    “아니. 나는 크리스탈 전하의 명을 받들어 이들을 지켜야 한다!”

    아심이 황수정의 명령에 따라 이성 진과 황수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 자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 들은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무슨 헛소리냐! 아심!”

    “헛소리가 아니다. 크리스탈 전하

    께서는 나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셨 다. 이들을 지키라고!”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황수정 이 직접 내린 명령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실이니 아심의 목소리 나 행동에 머뭇거림이나 떨림이 전 혀 없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거짓말이다! 아심은 반역자다.” 흔들리는 병사와 기사들 그리고 마 법사를 향해 배신자 기사는 소리쳤 다. 그러자 아심은 더 강한 신념을 담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크리스탈 전하의 명예를 걸 고 반역자가 아니다.”

    “반역자가 맞다. 반역자가 아니라 면 같은 흑기사들을 왜 죽였나? 천 안시 외곽에 280명의 흑기사 시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심 너와 네가 보호하는 저들이 죽인 것이 아 닌가!”

    배신자 기사의 말에 아심은 대답하 지 않았다.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왜 대답하지 못하지? 280명이나 되는 흑기사를 죽이고도 크리스탈 전하의 명예를 말하다니! 더는 못 참는다! 모두 죽여……. 으윽!”

    배신자 기사가 죽이라고 명령을 내 리려는 순간 이성진의 손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너무 강렬해 모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성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참았다. 수정아! 이제 너도 참 지 마라!”

    황수정은 배신자 기사의 말을 들으 면서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 었다.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마법 사들의 행동에서 누가 배신자고 누 가 배신자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그걸 넣으면 되는 건가요?”

    “그래.”

    이성진이 빛나다 못해 성스러워 보 이기까지 한 수정을 황수정의 가슴 에 댔다. 처음 석상의 머리 크기보

    다 10분의 1로 줄어든 크기였다.

    빛나는 수정은 스르륵 빨려 들듯 황수정의 가슴으로 들어갔다.

    그때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마법 사들은 눈을 회복했다. 배신자 기사 는 제대로 보이자마자 명령을 내렸 다.

    “모두 죽여라! 크리스탈 전하의 명 령이 다!”

    배신자 기사의 명령을 따라야 할지 몰라 병사들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배신자 마법사는 아니었다.

    바로 마법을 날렸다. 그것도 5단계 마법이었다. 불의 공이 날아갔다. 2 단계 마법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불의 공이 터지는 순간 반경 10m 에 불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흑기사 라 해도 순간적인 마나 불길에 의해 뼈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아심은 황수정을 두고 피할 수 없 었다.

    “모두 크리스탈 전하를 보호하라!” 아심이 자신의 모든 마나를 검에 담아 사방으로 휘둘렀다. 20명의 흑 기사들도 검을 뽑아 사방으로 휘둘 렀다.

    5단계 불의 공이 터지는 순간 불 길을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서였다.

    불길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에 성공

    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다. 마나를 온전히 검에 담았으니 불타 죽을 때 까지 불길을 밖으로 밀어낸다.

    성공하면 최소한 황수정은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아심과 20명의 기사들 눈 에 다른 마법사들이 공격하는 것이 보였다. 5단계 마법은 아니다. 하지 만 최소한 3단계 마법인 마나 화살 이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병사들도 활의 시위를 놨다. 마법이 걸린 활과 화 살은 강철도 뚫어 버리는 위력을 가 졌다.

    아심은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다

    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 믿을 것은 가만히 서 있는 이성진뿐이었다.

    왜 가만히 서 있는지 모른다. 하지 만 엘 파나의 사신 으가 맞는다면 황수정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 다.

    아심이 간절한 눈빛으로 이성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성진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둣이.

    아심은 이성진의 눈이 바라보는 곳 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가슴에 두 손을 올려놓은 황수정이 있었다.

    그리고 두 손 사이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도 봤다.

    이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이었다. 드디어 배신자 마법사가 날린 5단계 불의 마법이 머리 위에서 터지려는 순간 황수정의 몸 전체가 빛났다.

    쿠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더니 황수정을 중심으로 회오리바람이 나 타났다. 이 회오리바람은 5단계 불 의 마법을 소멸시키는 것도 모자라 날아오는 화살을 하늘 높이 날려 버 렸다.

    5단계 불의 마법을 소멸시킬 정도 니 3단계 다른 마법들도 소멸했다.

    회오리바람은 마치 아심과 20명의 기사를 보호하려는 듯이 계속 주위

    를 맴돌았다.

    배신자 기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 없었다.

    “계속 공격해라! 공격해! 명령이 다!”

    배신자 기사가 직접 검을 뽑아 들 었다. 그리고 회오리바람을 향해 달 렸다. 회오리바람이 마나로 만들어 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나를 담은 검으로 회오리바람을 잠시 가르면 된다.

    그 틈으로 마법이든 화살이든 들여 보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이야야아! 컥!”

    모든 마나와 있는 힘을 다해 회오 리바람을 가르려던 기사는 숨이 막 혔다. 그리고 하늘로 떠올랐다. 다리 를 버둥거리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회오리바람이 사라졌다.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이여! 무 릎을 꿇어라!”

    날카롭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퍼 져 나갔다. 한 번이라도 들었던 사 람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저들이 크리스탈 전하라고 부르며 충성을 맹세한 존재의 목소리니까.

    믿을 수 없다는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들 눈에 긴 검은색 머 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황수정 이 보였다.

    늘씬한 키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휘 날리며 서 있는 황수정은 아름답다 못해 고귀해 보이기까지 했다.

    누구라도 반할 만큼.

    그리고 황수정은 한쪽 팔은 들고 있었다. 무언가를 잡고 있는 것 같 았다.

    당황하는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들에게 아심이 소리쳤다.

    “크리스탈 전하의 명이 들리지 않 느냐! 모두 무릎을 꿇어라!”

    아심의 목소리에 정신 차린 병사들 과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배신자들 역시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황수정을 크리스탈 전하라고 인정 안 할 수가 없었다.

    황수정의 모습 때문이었다. 외모뿐 만 아니다. 머리를 제외한 온몸이 검은색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용족만 꺼낼 수 있는 일종의 생체 갑옷이다. 무수히 많은 비늘을 연결 해 만든 것 같은 생체 갑옷을 흉내 낼 수 있는 종족은 없었다.

    “커컥……. 전……하……. 용서

    ……. 크극……

    공중에 떠 있던 배신자 기사는 황 수정에게 용서를 구하다가 목이 부 러졌다. 그대로 땅에 쿵 소리를 내 면서 떨어졌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죽어 라! 아니면 죽지도 못하는 불길 속 에 영원히 가둬 놓겠다!”

    황수정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마 법사들은 벌벌 떨었다.

    황수정의 말에 먼저 반웅한 이들은 혹기사였다.

    배신자 흑기사들은 검을 들고 그대 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낫지 죽지도 못하면서 불 타오르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배신자 마법사들이었다. 하 지만 배신자 마법사들은 머리를 땅 에 박으며 소리쳤다.

    “크리스탈 전하! 저희는 명령을 따 랐을 뿐……. 아아악!”

    입을 연 마법사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불을 어떻게 해서든 꺼 보려고 뒹굴었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다른 곳으로 번지지도 않았다.

    불길에 살이 녹아내렸다가 다시 회 복된다. 다시 녹아내렸다. 또 회복된 다.

    황수정의 말대로 죽지도 못하는 불 길이었다. 그것을 본 배신자 마법사 들은 자신의 머리에 대고 3단계 마 법을 사용했다. 퍽 소리와 함께 머 리가 사라진 배신자 마법사들은 그 대로 쓰러졌다.

    죽지도 못하고 불길에 타오르는 마 법사 한 명만 계속 소리 질렀다.

    “시끄럽다!”

    황수정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비명이 사라졌다. 소리만 못 내게 한 것이다. 죽지도 못하고 불길에 고통 받는 것은 똑같았다.

    “흑기사단 12조장 아심은 들어라!” “크리스탈 전화의 명을 기다립니

    다!”

    “내가 이곳에 있음을 알리고 기사 와 병사를 모아라! 황금 날개 기사 단과 그들에게 협조한 반역자들을 응징하러 갈 것이다!”

    황수정이 목소리는 천안시 전체로 퍼져 나갔다. 아심에게 명령하는 동 시에 모두에게 황금 날개 기사단의 반역을 알린 것이다.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아심은 황수정의 명령대로 기사와 병사를 모으기 위해 움직였다. 나머 지는 아심이 알아서 할 것이다.

    황수정은 자신의 가슴에 잠시 손을 얹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마나와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아저씨! 이거 뭐에요? 마나석 맞 아요?”

    황수정은 절대 마나석 따위가 아니 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능력이 온전 했을 때의 절반에 가까운 힘을 낼 수 있게 했다.

    황수정의 질문에 이성진은 당연하 다는 듯이 대답했다.

    “본질은 마나석 맞아.”

    “본질은 마나석이 맞다고요? 이게 요?”

    황수정은 이성진에게 되물었다. 자 신이 아는 지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황수정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이성 진을 바라봤다. 수백 년 동안 마법 을 연구하고 안 배워 본 학문이 없 다. 그 어떤 마법이나 학문에서도 마나석을 용족의 심장 대용으로 만 드는 방법은 없었다.

    사실 비슷한 연구는 있었다. 용족 의 심장이 아닌 인공 생물 키메라를 더 강력하게 만들려는 연구였다.

    하지만 그 연구도 실패했다.

    “뭐 간단하게 설명할게……. 마나 석을 압축해서 단단하게 만들었어. 왜냐, 강대한 힘을 담을 수 있는 그

    룻이어야 하니까.”

    “그리고요?”

    이성진이 마나석을 압축한 것쯤은 황수정도 알고 있다. 그 정도는 황 수정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자신 의 몸에 들어와서 어떻게 심장 역할 을 할 수 있냐였다.

    “이건 내 자랑 같은데……. 나는 마나의 특성을 느끼고 그 특성대로 변하게 할 수 있어.”

    황수정의 입이 벌어졌다. 용족 중 에서도 몇 명만이 할 수 있는 능력 이었다. 자신도 능력만 온전하다면 할 수 있다.

    이성진의 능력이 용족과 견주어도

    될 만하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수백 년을 살면서 익힌 능력을 짧은 삶을 사는 인간이 이성진이 가지고 있었 다.

    “하지만 제 특유의 마나 성질을 알 아내 마나석의 마나를 바꿨다 해도 이렇게 많은 마나를 담을 수는 없어 요. 그리고 원래 있었던 것처럼 빠 르게 적응할 수도 없고요.”

    황수정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이다. 마나석은 생물이 아니다. 생물 의 심장을 이식해도 적웅하는 시간 이 필요하다. 마나석이 순식간에 황 수정의 몸에 적응했다.

    이성진이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이것 때문에 가능한 일이야.”

    황수정이 마지막으로 예상하는 것 이었다. 이성진이 가리키는 것은 파 나 신의 심장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아저씨는 신이 아니잖아요.”

    “신이 아니어도 넘치려고 하는 것 을 다른 곳에 담을 수는 있어.”

    어떻게 보면 황수정의 심장을 만들 어 주느라 점점 커져만 가는 신성력 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반쯤은 도박이었다. 성공할 것은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져서 그렇지.

    “엘 파나의 마나는 파나 신의 힘으

    로 조정 가능하다고 생각했어. 그리 고 그 생각은 잘 맞았고.”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고개를 흔 들었다.

    “아니요. 아저씨! 신의 대리자로 불리는 용족으로 말하는 건데요. 이 건 파나 신의 신성력이 아니에요. 달라요!”

    용족은 원래 파나 신을 받들며 파 나 신의 검이 되어 벌을 내리는 존 재처럼 여겨졌다.

    케르빌 제국이 벌을 내리는 검이라 면 신성 파나 제국은 모든 것을 감 싸는 바다 같은 곳이었다.

    “수정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이성진도 파나 신 심장의 신성력이 변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 계 기는 오르쿠의 왕이 되기 시작할 때 부터였다. 차고 넘치며 급속도로 변 하기 시작한 것은 아슬란과 싸우고 나서 였다.

    “아저씨도 느끼고 계셨어요?”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어.”

    황수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성진 을 향해 질문했다.

    “아저씨! 이 심장 대용 마나석 저 주신 것 맞죠?”

    황수정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준 거야.”

    “나중에 다시 돌려 달라고 하지 마 세요. 제가 심장을 되찾아도요.”

    “내가 준 걸 다시 빼앗을까 봐 그 런 말을 하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니까 미리 말해 놓 는 거예요.”

    아무래도 수상했다. 황수정이 저렇 게 말할 정도면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

    “수정이 너 그 마나석 가지고 뭐를 하려고?”

    황수정은 이성진에게 숨기지 않았 다.

    “두 번째 마나 심장을 만들 생각이 에요.”

    “두 번째 마나 심장?”

    두 번째 마나 심장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성진의 표정을 본 황수정은 바로 설명했다.

    “제 아버지가 남긴 것이 있어요. 지구의 인간은 마나를 이곳에 저장 해 사용할 수 있다고.”

    황수정이 가리키는 곳은 아랫배였 다.

    “단전?”

    이성진이 단전이라고 말하자 황수 정은 정답을 맞힌 아이처럼 손뼉 치 며 기뻐했다.

    “맞아요. 단전이라고 그랬어요. 그 동안 단전을 만드는 방법이 없어 대

    신할 것을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만들어 준 마나석을 단전처 럼 사용하겠다는 거야? 그게 가능 해?”

    “네. 가능해요. 제가 200살 때부터 연구해 왔어요.”

    다른 종족도 아닌 용족이 가능하다 고 한다. 그렇다면 가능할 것 같았 다.

    “물론 제 심장부터 찾아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그래. 내가 만들어 준 마나석은 임시니까.”

    아무리 잘 만든 마나석이라 해도 본래의 심장과 똑같을 수는 없었다.

    황수정 본래의 힘 절반밖에 낼 수 없었다.

    그 절반의 힘이라 해도 엄청난 것 이긴 했다. 하지만 다른 용족과 제 대로 싸울 수 없다.

    “제가 연구한 것 아저씨에게도 보 여 드릴게요.”

    “나에게도?”

    “네. 아저씨도 마나 심장이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황수정의 말을 들으니 잘하면 불안 정한 파나 신의 심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다.”

    “고맙기는요.”

    방긋 웃으며 말하는 황수정의 모습 은 예쁘다 못해 아름다웠다. 주변을 지키던 흑기사들이 멍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이제 본래 모습을 찾았으니 아저 씨라고 부르는 것은 좀 그렇지 않 니‘?”

    “네?”

    꼬마 여자아이였을 때야 아저씨라 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성숙한 여자의 모습 이었다. 최소 20대 중반 정도로.

    “다 큰 아가씨가 아저씨라고 부르 니까 어딘지 모르게 나이 들어 보이 는 것 같아서.”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웃을 수밖 에 없었다.

    “어쩜! 처음 만났을 때는 나이 많 다고 그러시더니?”

    “하하. 그때야 수정이 네 모습이 여자아이 였고……

    이성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래도 황수정은 이성진을 아저씨라 고 부르고 싶었다.

    “저에게는 그 어떤 단어보다 아저 씨라는 단어가 좋아요. 그냥 아저씨 라고 부를게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황수정의 모 습에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 에 없었다.

    “그건 알아서 해라.”

    “네! 아저씨!”

    저렇게 좋을까 싶었다. 하지만 평 소 냉철한 모습만 봤던 흑기사와 병 사들은 황수정의 색다른 모습에 놀 랐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알게 모르게 따뜻하게 자신들 을 대해 준 황수정의 본래 성격과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황수정을 환하게 웃게 해 준 이성진이 고마웠다. 자신들의 주 인의 본 모습을 보게 해 줬으니까.

    이성진과 황수정이 심장을 가지고 말하고 있을 때, 아심은 흑기사단과

    병사를 천안시로 모이라는 연락을 보냈다.

    하지만 아심의 뜻대로 되지 않았 다.

    아심이 급하게 황수정이 있는 곳으 로 달려왔다.

    “크리스탈 전하!”

    아심의 목소리에서 황수정은 무언 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냐 아심!”

    “천안시를 제외한 곳의 흑기사와 병사들이 성으로 돌아가고 있습니 다. 크리스탈 전하의 명령서를 받았 다는 이유입니다.”

    황수정은 주먹을 쥐고 분노를 드러

    냈다. 황수정이 분노하자 대기가 흔 들렸다. 주변의 마나가 황수정의 분 노에 혼들리기 때문이었다.

    “바토르! 네놈이 끝까지!” 황수정은 황금 날개 기사단장인 바 토르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마법 통신을 연결해라. 내가 직접 기사단과 장군들에게 명령하겠다.”

    아심은 정말 죄송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리스탈 전하! 명령서에는 성으 로 돌아올 때까지 그 어떤 마법 통 신도 금지한다는……

    아심은 황수정에게 오기 전에 어떻 게 해서든 설득해 보려고 마법 통신

    을 보냈다. 하지만 대부분 받지 않 았다. 그나마 천안시 근처 흑기사단 15조장과 연락이 되어 알게 된 것 이다.

    배신자들은 치밀하게 천안시의 혹 기사와 병사들에게는 명령서를 보내 지 않았다.

    “아심!”

    “네! 크리스탈 전하!”

    “직접 가서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려 라. 만약 내 명령을 거부한다면 죽 여도 좋다.”

    황수정은 혹기사단과 병사들이 성 으로 돌아가면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황수정의 손에 죽든지 아니면 배신 자 황금 날개 기사단의 손에 죽는 다.

    “크리스탈 전하……

    아심은 황수정이 어려운 결정을 내 린 것을 알았다. 평소 황수정의 행 동과 마음을 아니까.

    “천안시의 흑기사 전부를 데리고 가도 된다. 최대한 많이 데리고 와 라!”

    아심은 황수정이 본래의 모습을 찾 은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엘 파나의 검은 사신 S인 이성진이 옆에 있다.

    “크리스탈 전하의 명대로!”

    아심은 황수정의 명령대로 흑기사 를 모았다. 천안시에 남아 있는 흑 기사는 모두 700명 정도였다.

    원래 천안시에 1개 대 1천 명과 주변 주요 거점에 1개 대 1천 명 모두 합쳐 2천 명의 혹기사가 나와 있었다.

    이성진의 손에 죽은 배신자 흑기사 280명을 제외한 700명 정도면 일반 병사는 얼마든지 죽이거나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아심과 흑기사들이 황수정의 명령 을 수행하기 위해 떠났다.

    “아저씨, 여기 계속 있는 것보다 기사 주둔지가 지내기 편하실 거예

    요.”

    황수정은 이성진을 계속 길에 세워 둘 수 없어 말했다. 이성진도 고개 를 끄덕였다.

    “그래. 기사 주둔지로 가자. 똘이도 심심해하는 것 같고.”

    똘이는 계속 하품을 해대며 앉아 있었다. 그런 똘이를 향해 황수정이 노려봤다. 그러자 똘이는 화들짝 놀 라며 일어섰다.

    능력의 절반을 찾은 황수정은 최상 의 포식자나 마찬가지다.

    “똘이 겁주지 마라.”

    “키잉.”

    똘이가 이성진의 발에 머리를 비볐

    다. 황수정에게 보란 듯이.

    “알았어요. 가요!”

    황수정은 이성진이 똘이를 더 예뻐 하는 것 같자 또 섭섭한 감정이 들 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 도 조절이 안 된다.

    마나석 심장을 받고 나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이성진은 황수정과 함께 기사 주둔 지로 움직였다. 주위에는 병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병사들이 먼저 달려가 천안시 사람 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엎드리 게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황수정이 소리쳤다.

    “병사들은 들어라! 나 크리스탈의 명령이다. 지구의 인간들을 해치거 나 핍박하지 마라! 지금부터 지구의 인간들은 우리의 혈맹이다.”

    병사들은 황수정의 말에 거칠게 대 하던 천안시 사람들을 말로 대하기 시작했다.

    “고맙다.”

    “고맙기는요. 아저씨가 제게 해 주 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요.”

    “그래? 그러면 고마운 김에 저들에 게 의복은 물론 먹을 것도 좀 줬으 면 좋겠는데.”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당연하다

    는 듯 말했다.

    “기사 주둔지에 도착하면 즉시 마 법사와 병사를 보낼 생각이었어요. 그곳에 있는 식량과 의복을 지급하 고 병자를 치료하게요.”

    황수정의 대답에 이성진은 웃었다. 황수정이 완전히 자신의 편이 되었 다. 지구의 인간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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