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37화 (37/50)
  • 1장. 용족을 만나다.

    이성진과 똘이는 다시 대전시 근처 까지 와서 마나막을 넘어갔다.

    성이 있는 곳에서 넘어가는 것보다 대전시 방향에서 마나막을 넘어가는 것이 서울과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마나막을 넘어 케르빌 제국 영역으 로 들어간 곳은 천안으로 가는 도로 였다.

    드비쉬 공왕가의 정보에 의하면 케 르빌 제국의 성은 정확하게 아산시 에 떨어졌다. 다른 왕국의 성이 인

    구 밀집 지역을 피해 떨어진 것과는 달랐다.

    케르빌 제국 5개의 성이 유기적으 로 연결되어 수도권을 에워싸는 마 나막을 만들기 위한 위치라고 보기 에는 어려웠다.

    일부러 아산시에 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케르빌 제국답다고 나 할까.

    침공한 나라의 도시 하나쯤은 본보 기로 지워 버린다. 다른 케르빌 제 국의 성들도 인구 밀집 지역에 떨어 졌다.

    아산을 제외하고 충주와 정선 그리 고 동두천과 춘천이었다. 서울을 포

    위하고 있었다.

    아직 내륙 지역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꽤 시간이 지나 그런지 도로 는 깨끗했다. 망가져 녹슨 자동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한참 가자 조그마한 마을이 나왔다. 하지만 버려진 마을 같이 적막했다.

    천안 바로 밑 소정면이라는 것은 소정 면사무소를 보고 알았다.

    정말 사람 한 명 없었다. 사람 한 명 없는데도 어떻게 사는지 길고양 이 몇 마리는 봤다.

    똘이가 달려가 장난 몇 번 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다 끌고 갔나 보네.”

    소정 면사무소 근처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 같은 것들 이.

    “크르르!”

    똘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이 이를 드러냈다.

    “똘이야. 괜찮아.”

    이성진은 똘이에게 괜찮다고 말한 다음 똘이가 이를 드러낸 방향을 향 해 소리쳤다.

    “숨어 있는 것 다 알고 있다. 그러 니 나와라.”

    이성진의 말에 누군가 머뭇거리며 나왔다. 14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

    이였다.

    얼마나 안 씻었는지 머리는 떡 지 고 온몸이 먼지투성이다.

    “크르르.”

    “똘이야. 괜찮다니까. 어린아이잖 아.”

    똘이는 이성진의 말에도 드러낸 이 를 집어넣지 않았다.

    “애가 놀라서 겁먹잖아. 똘이야. 이 제 진짜 그만해라.”

    똘이는 이성진의 단호한 말에 어쩔 수 없이 멈췄다. 그리고 이성진을 쳐다봤다. 자신을 왜 말렸냐는 눈빛 이었다.

    “어린아이잖아.”

    이성진은 똘이에게 말한 다음 아직 도 겁먹고 있는 아이를 향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니? 배 안 고파?”

    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에 손을 대고 끄덕이는 것을 보니 배고 프다는 뜻이었다.

    “짜잔! 신기하지!”

    팔찌 안에 넣어 놨던 비상식량 중 초콜릿 바를 꺼냈다. 대전시 지역은 파괴된 곳이 거의 없어 대형 마트나 물류 창고가 온전했다.

    이성진이 왕이 되어 성에서 지낼 때 빵이나 초콜릿 바 같은 것들이 이성진을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었

    다.

    이성진은 팔찌에 조금씩 넣어 놨었 고.

    포장지를 뜯어 초콜릿 바가 보이게 한 다음 흔들었다. 초콜릿 바가 흔 들리는 대로 아이의 눈도 흔들렸다.

    “배고프면 와서 먹어도 된다.”

    초콜릿 바를 내밀자 아이는 머뭇거 리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이 성진의 손에 있는 초콜릿 바를 탁 낚아채고는 몸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성진의 손이 더 빨랐다.

    어느새 아이의 뒷덜미를 잡았다. 이성진이 들어 올리자 버둥대면서

    소리를 질러 댔다.

    “야! 이거 놔! 안 놓으면 후회한 다!”

    이성진은 발버둥 치는 아이의 모습 보다 목소리 때문에 놀랐다. 남자아 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목소리는 여자아이 였다.

    “놔 줄 테니까. 도망가지 않는다고 약속해라.”

    “싫어!”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꽤 성격 있 어 보였다. 그러니 혼자서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 같았다.

    “안 도망가면 더 먹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든 이성진의 손에서 벗

    어나려던 발버둥이 멈췄다.

    “ 진짜야?”

    “난 거짓말 안 한다.”

    “거짓말!”

    “내가 거짓말하는 것 봤냐?”

    이성진의 말에 여자아이는 잠시 생 각하더니 버럭 소리 질렀다.

    “사람들은! 거짓말 안 한다고 해 놓고 거짓말 많이 해!”

    “나는 안 한다.”

    소리치는 여자아이에게 진심을 담 아 말했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고개 를 돌려 이성진의 눈을 빤히 쳐다봤 다.

    그리고 곧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거짓말할 것 같지는 않네. 지 금은……

    여자아이를 땅에 내려놨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초콜릿 바를 바로 입에 넣고 순식간에 씹어 삼켰다. 그리고 이성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더 줘야지.”

    이성진은 웃으며 팔찌에서 빵과 초 콜릿 바를 더 꺼내 줬다.

    여자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안 했 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성진 에게서 빵과 초콜릿 바를 받았다.

    포장지를 찢다시피 했다. 빵과 초 콜릿 바를 마구 입에 넣었다. 그리 고는 몇 번 씹지도 않고 삼켰다.

    “너 이름이 뭐니?”

    “아직 배고파!”

    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배고프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라 생각이 나는 이성진은 팔찌에서 빵을 더 꺼냈다. 비상식량이야 습관적으로 챙긴 것뿐 이다.

    마나가 많아지고 능력이 늘어나니 그렇게 많이 안 먹어도 버틸 수 있 다.

    하지만 이성진은 여자아이에게 빵 을 바로 주지 않았다. 빵을 높게 들 어 올렸다. 그리고 웃으며 다시 물 었다.

    “이름이 뭐니?”

    “우웅!”

    여자아이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볼을 양껏 부풀어 오르게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수정!”

    “성은?”

    “황수정이야!”

    황수정이라고 말하고 빵을 쳐다봤 다. 대답해 줬으니 빵을 줬다. 금방 빵을 먹어 치우고는 다시 이성진을 쳐다봤다. 아직도 배가 고픈 것 같 았다.

    “얼마나 굶은 거니?”

    “몰라. 음……

    황수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을 펼

    쳤다. 5개의 손가락을 내밀면서 말 했다.

    “5일 정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 아.”

    황수정이 5일이나 제대로 못 먹었 다는 데도 이성진은 크게 놀라지 않 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도 배고프겠네.”

    “그럼 배고프지.”

    황수정은 이성진이 팔찌에서 먹을 것을 더 꺼낼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 고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성진은 그냥 먹을 것을 줄 생각이 없었다.

    “여자아이가 이렇게 더럽게 하고

    다니면 안 되지.”

    황수정은 순간 이성진을 의심하는 눈빛으로 봤다. 하지만 이성진이 눈 을 피하지 않자 투덜거리듯 말했다.

    “더럽게 하고 다녀야 이상한 생각 을 하지 않거든.”

    “꼬마에게 이상한 생각 안 한다.”

    “누가 당신이 이상한 생각한데? 다 른 놈들이 그런다는 거지……

    황수정은 먹을 것을 달라는 둣 다 시 손을 내밀었다.

    “씻으면 얼마든지 줄 거다.”

    씻으면 얼마든지 준다는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 했다.

    “아하……. 나 생각보다 예뻐!”

    “예뻐도 애다.”

    예뻐도 애란 말에 황수정은 더 발 끈했다.

    “나 원래 모습 보면 안 반하고는 못 배길걸?”

    “아이에게 반하는 그런 취미 없으 니까 그냥 씻어라.”

    황수정은 입을 살짝 벌리고 ‘뭐 이 런 놈이 다 있어.’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답은 아니었다.

    “나 지켜 줄 거 아니면 먹을 거나 주고 가!”

    “지켜 달라는 말이야?”

    황수정은 이성진의 말에 더 발끈했

    다.

    “누구를 지켜 준다는 말을 하는 거 야! 나는 내가 알아서 지킬 수 있 어. 그러니까 먹을 거나 주고 가라 고!”

    누가 보면 꽤 어렵게 살아 성격이 남을 쉽게 못 믿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뭐 알아서 지킨다니……. 내가 상 관할 일은 아닌 것 같네. 그럼 똘이 야! 가자!”

    이성진이 똘이를 불러 진짜 가려고 하자 황수정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 먹을 것은 주고 가야지!”

    다급하게 소리치는 황수정에게 이

    성진은 등을 돌리며 말했다.

    “잘해 주고 안전한 것 같으니까 먹 을 것 더 달라고 하는 그런 막돼먹 은 아이에게 줄 음식은 없다. 알아 서 찾아 먹어라. 아! 그리고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니까 보따리 내놓 으라는 속담 아는지 모르겠네.”

    이성진이 손을 흔들며 진짜 똘이와 함께 걸음을 옮기자 황수정은 어쩔 줄 몰랐다.

    이성진의 말이 맞다. 황수정은 이 성진의 눈빛에서 그 어떤 음흉함도 보지 못했다.

    먹을 것을 주면서 엉뚱한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안심하고 이성진에게 무 리한 요구를 했다.

    황수정은 입술을 깨물더니 곧 소리 쳤다.

    “씻을게! 씻으면 되잖아!”

    이성진이 걸음을 멈췄다. 똘이는 그냥 갔으면 하는 눈빛으로 이성진 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성진이 멈추 니 똘이도 멈춰 기다릴 수밖에 없었 다.

    “아주 깨끗이 씻어야 할 거야!”

    “씻는다고! 대신……

    “먹을 것을 줄게.”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고개를 끄 덕이고는 앞에 보이는 작은 개울로

    갔다. 논에 물을 대는 곳이었다. 물 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안으로 텀벙 들어가더니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씻기 시작했다.

    이성진은 뒤로 돌아 팔찌 안에 황 수정이 입을 만한 옷이 있나 생각했 다. 하지만 14살 여자아이가 입을 만한 옷은 없었다.

    이성진은 근처 집으로 가 입을 만 한 것이 있나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황수정과 비슷한 또래의 여 자아이가 있었는지 옷과 운동화를 찾을 수 있었다.

    이성진이 옷과 운동화를 찾아 나오 자 물이 뚝뚝 떨어지는 황수정이 집

    으로 들어왔다.

    “어디 간다면 간다고 말하고 가야 지. 그거 나 줄 거야?”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깨끗한 옷 과 운동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표정 은 밝았다.

    “그래. 너 줄 거야. 안에서 갈아입 고 나와.”

    “여기서 갈아입어도 되는데?” 황수정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 다.

    “그럼 그러시던지.”

    이성진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옷과 운동화를 주자 황수정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쳇. 재미없어.”

    이성진에게 옷과 운동화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황수정이 옷을 갈 아입을 동안 이성진은 팔찌에서 코 펠 세트와 음식을 꺼냈다.

    불을 피우고 갖은 재료를 넣어 끓 이기 시작했다. 그냥 잡탕이다. 하지 만 고추장이 들어가면 훌륭한 맛이 난다.

    “우와. 냄새 좋다.”

    황수정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나는 고 추장찌개 냄새에 군침을 홀렸다.

    “끼 잉.”

    똘이도 맛있는 냄새에 못 참겠는지

    낑낑 댔다.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 졸아야 맛 있다.”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똘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배고프긴 하지만 맛있게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똘이가 슬며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황수정이 똘이의 목을 휘감 았다.

    “너 어디 가려고! 그리고 감히 나 에게 이를 드러내?”

    똘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성진의 행동 을 봐서는 황수정을 공격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호오. 털이 꽤 부드럽구나. 너 내 애완동물 해라.”

    “크릉.”

    똘이가 참지 못하고 이를 드러냈 다. 그래도 황수정은 똘이에게 겁먹 지 않았다.

    똘이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 하고 이를 더 드러내려는 순간 이성 진이 말했다.

    “똘이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내 동 료다. 그러니까 많이 먹고 싶으면 목 놔라.”

    먹을 것을 안 준다는 말은 안 했 다. 먹을 것을 준다고 약속했다. 약 속은 지킨다. 단지 적게 줄 수 있다 고 협박했다. 황수정은 바로 알아들 었다.

    “쳇! 이렇게 예쁜 모습을 보고도 눈 하나 안 흔들리는 인간은 처음이 야! 너도!”

    황수정은 똘이를 풀어 주고는 이성 진에게 다가갔다.

    “이제 먹을 것 줘.”

    “기다려. 똘이하고 내가 먹을 것

    먼저야.”

    “알았어.”

    황수정은 이성진의 말대로 기다렸 다. 이성진은 똘이에게 줄 것과 자 신이 먹을 것을 다른 그릇에 떴다. 그리고 남은 것은 통째로 황수정에 게 줬다.

    황수정은 냄비를 받더니 이성진이 준비해 둔 수저를 들고 허겁지겁 먹 기 시작했다.

    “안 짜냐?”

    “우웅……. 안 ……. 짜……. 말 시 키……지 마.”

    황수정은 이성진이 만든 고추장찌 개가 정말 맛있었다. 그 어떤 산해

    진미보다도.

    “똘이야. 우리도 먹자.”

    “ 컹!”

    똘이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 성진과 똘이가 한 그릇을 먹을 동안 황수정은 냄비 하나를 다 먹었다.

    “아! 이제 살 것 같네. 고마워.”

    배가 부르다고 하면서 이성진에게 처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마운 줄 알면 깨끗이 씻어 와 라.”

    이성진이 똘이가 먹은 그릇까지 내 밀자 황수정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이성진이 내미는 그룻을 받아 다시 개천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성진은 씨익 웃었다.

    “생각보다 말 잘 듣네.”

    “끼 잉?”

    똘이는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성진도 분명 알 텐데 왜 그냥 두는 것인지 몰랐다.

    황수정이 설거지를 끝내고 오자 이 성진은 팔찌에 다시 집어넣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움직이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 서 태울 것을 찾아 모닥불을 피웠 다.

    황수정은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면서 오래간만의 평화를 느꼈다.

    그런 황수정을 쳐다보다가 이성진이 불쑥 말했다.

    “어린 용족이 왜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냐?”

    황수정은 화들짝 놀라 용수철이 튀 어 오르듯 뒤로 튀어 올랐다. 그리 고 눈을 크게 뜨고 이성진을 바라봤 다.

    “당신 누구야!”

    황수정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이성진은 모닥불 앞에 앉아 아무렇 지 않게 대답했다.

    “나? 능력 잃은 어린 용족에게 먹 을 것 주고 옷도 구해 준 은인이지 않을까?”

    황수정은 이성진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자신을 안심시키고 사로잡 거나 죽일지도 모른다.

    용족의 특성상 독은 통하지 않는 다. 마나 저항력 때문에 7단계 마법 이상이 아니면 타격을 안 입는다.

    하지만 물리적 피해는 입는다. 현 재 가진 힘으로는 어른인 이성진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를 했 다. 이성진이 마나를 사용할 줄 아 는 초인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먹을 것 줬다고 다 은인이야? 토 해 낼까?”

    황수정의 말에 이성진은 웃을 수밖

    에 없었다. 지기 싫어하는 용족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토해 내.”

    “뭐?”

    황수정은 토해 내라는 말을 들을 줄 몰랐다.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의외의 말을 들으니 경계심 이 조금 풀어졌다.

    이성진도 황수정의 경계심이 풀어 진 것을 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 았다. 경계심이 풀어진 황수정을 어 설프게 잡았다가는 절대 마음을 얻 지 못한다.

    “은인 아니라며! 토해 내 그럼.”

    “야! 벌써 소화 다 되어서 똥 되는

    중인데 그걸 어떻게 토해 내! 내일 아침에 싸서 줄게!”

    “누가 용족 아니랄까 봐 말 참! 예 쁘게 한다! 쯧!”

    황수정도 이성진의 말이 칭찬이 아 닌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지금 용족 비하하는 거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 하는 거다. 배고픈 용족 먹여 줬더 니 고마운 줄 모르고 화를 내잖아. 그리고 뭐? 아침에 싸서 줘? 영양 가 다 빨아먹은 다음에 쓰레기를 돌 려주는 용족에게 내가 좋은 말을 할 수 있을까?”

    황수정은 말이 막혔다. 능력만 온 전히 가지고 있었어도 이성진의 말 을 무시할 수 있었다. 아니 처음부 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힘이 없어 자신의 말이 무 조건 옳다고 우길 수가 없었다.

    “와서 앉아라. 어린 용족 어떻게 할 생각 없다.”

    이성진이 황수정을 빤히 쳐다봤다. 황수정은 이성진과 눈싸움하듯 노려 봤다.

    한참을 노려본 황수정은 한숨을 내 뱉었다.

    “내 눈을 계속 볼 수 있는 것을 보 니 당신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네.”

    “그럼 평범한 인간일까? 용족을 한 눈에 알아봤는데?”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자신이 멍 청한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도망칠 수도 없는데 이 런 소모적인 싸움을 할 수 없지.”

    황수정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런데 내가 용족인 것은 어떻게 알았어?”

    “그냥.”

    황수정은 믿지 않았다. 세상에 알 려진 용족의 외모와는 전혀 다른 자 신이기 때문이었다.

    외모로만 보면 그냥 평범한 여자아

    이였다. 그것도 지구의 인간과 비슷 할 정도로.

    “혹시 검은 머리 용족을 본 적이 있어?”

    “없어. 처음이야.”

    황수정은 한숨을 쉬었다. 이성진의 말이 앞뒤가 안 맞기 때문이었다.

    용족을 알아본다. 그런데 검은 머 리 용족은 본 적이 없다.

    엘 파나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용족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용족은 금발과 파랑 그리고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눈의 색도 머리카락 색과 똑같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냐고!”

    “너 자꾸 반말한다.”

    이성진이 반말한다고 뭐라 하자 황 수정은 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용족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은 데……. 내가 어려 보여도 꽤 나이 가 많다는 것도 몰라?”

    “알지. 그래도 용족의 관점에서는 애잖아.”

    “야! 너 515살 먹은 애 봤냐?” 이성진이 손을 들어 황수정을 가리 켰다.

    “여기 있잖아.”

    “아! 진짜 장난은 그만해라.”

    황수정이 화를 내자 이성진은 씨익 웃었다. 용족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상상할 수 없는 마나를 가진 존재!

    기본 마법 방어력으로만 7단계 마 법을 견뎌 내는 존재!

    혼자서 어지간한 왕국 정도는 멸망 시킬 수 있는 존재!

    등등 엘 파나에서는 두려움의 대상 이었다. 다행인 것은 용족의 숫자가 몇 명 안 된다는 것이다. 30명 정도 였다. 대신 수명이 길었다.

    기본이 2천 년이다. 가장 오래 산 용족은 6천 살까지였다.

    “용족의 나이로 500살이 성인이니 까……. 지구에서는 20살이라고 본 다. 그러니까 너 아직 애야.”

    “하! 진짜 말이 안 통하네. 마음대 로 해라.”

    “하세요! 라고 해야지.”

    “안 해! 내가 더 나이 많으니까 안 해!”

    황수정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행동하지 않는다. 용족답게 깔끔하고 단호하게 행동한 다.

    그런데 이성진과 같이 있으니 진짜 애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내가 왜?”

    이성진은 이유를 말해 주는 대신에

    팔찌에서 초콜릿 바를 꺼냈다. 그리 고 포장을 벗겨 입에 넣고 먹었다.

    황수정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치사하게 먹을 것 가지고 협박하 냐!”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내 것 가지고 내가 알아서 한다는데 무 슨 상관이냐? 내일 아침 해가 뜨면 각자 갈 길 가자고.”

    이성진이 각자 갈 길 가자고 하자 황수정은 갑자기 섭섭한 마음이 들 었다. 그거뿐만 아니었다.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도 들었다.

    헤어지기 싫었다.

    “어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여자아

    이 버리고 갈 거냐!”

    황수정은 자신도 모르게 빽 하고 소리쳤다.

    “가실 건가요? 라고 말해야지.”

    한결같은 이성진의 반응에 황수정 은 항복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건 가……요.”

    어렵게 ‘요’를 붙이는 황수정을 보 고 이성진은 씨익 웃었다.

    “그래. 그렇게 하나씩 해 가면 되 는 거다. 그래 나도 좀 묻자. 귀하 디귀하신 용족께서 경호기사도 없이 혼자 거지꼴이 되어서 돌아다니시는 이유가 뭐냐?”

    황수정의 나이가 500살이 넘었다 는 것이 의외이긴 했다. 용족은 숫 자가 적다. 그래서 500살이 넘어 성 인이 되기 전에는 엄청난 보호를 받 는다.

    하지만 500살이 넘어 성인이 되면 언제 보호했냐는 듯이 관심을 끊는 다. 그렇다고 그냥 두는 것은 아니 다.

    500살 선물로 어지간한 왕국과 전 쟁도 할 수 있는 힘을 받는다.

    기사단과 노예 등을 말이다. 또한, 500살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 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용족 특유의 엄청난 마나가 느껴지 지 않아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하! 이거 쪽팔린 이야기인데…… 요.”

    마지막에 슬쩍 이성진의 눈치를 보 며 존댓말을 사용했다.

    “혹시 가출했냐?”

    가출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설마 싶었다.

    “진짜 가출한 거야?”

    황수정이 가출했다면 문제가 커진 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 었다. 500살이 넘었다. 용족 성인이

    다. 독립했다. 가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가출이 아니라면……. 왜 이러 고……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머뭇거리 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누구 좀 만나려고 몰래 나왔어 요.”

    “몰래? 그리고 500살 넘은 성인 용족이 이렇게 능력이 없다는 것도 이상해! 무슨 문제 있냐?”

    “하아! 그게……

    황수정은 이성진의 눈을 다시 바라 봤다.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 해서였다. 이성진의 눈이 전혀 흔들

    리지 않았다.

    황수정은 어차피 이성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신 으를 만나 보려고 몰래 나온 거예요.”

    사신 으란 말에 이성진은 황당했다.

    “사신 으가 용족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가만히 안 있을 건데?”

    황수정은 이성진이 엘 파나에 와 봤다는 것을 확신했다. 자신이 용족 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했다. 더군다 나 사신 으의 성격도 알고 있다.

    “사신 S< 알아요?”

    “당연히 잘 알지.”

    “직접 봤어요? 잘생겼어요? 진짜

    그렇게 강해요? 우리 용족이 일대일 로는 마주치기 두려워할 정도로요?” 황수정은 무슨 아이돌 팬처럼 사신 으에 관한 것을 물었다. 눈이 반짝반 짝하는 것이 동경하는 것 같기도 했 다.

    “그건 나중에 알려 줄게. 그런데 진짜 무슨 생각으로 혼자 나온 거 냐?”

    “헤. 나름 철저하게 준비했다고요! 사신 으는 일단 어린아이를 쉽게 해 치지 않아요. 그래서 능력을 봉인해 성에 놔두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왔죠.”

    황수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

    에 없었다. 만약 황수정이 용족 특 유의 엄청난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면 아무리 어린아이의 모습이라 해 도 가만히 안 있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좋아. 어린아이의 모습과 능력을 봉인했다고 하자. 사신 s가 어디 있 는 줄 알고?”

    “서울로 가는 길목인 천안에서 기 다리고 있으면 만날 것 같았거든요. 꽤 확실한 정보에 의하면 사신 으는 서울이란 곳에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황수정은 자신이 이성진에게 숨김 없이 다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도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당황해하 지 않았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말 안 한다.

    그냥 이성진이 따뜻했다.

    항상 날이 선 것처럼 긴장하며 사 는 삶이었다. 이성진에게서 자신이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 같 았다.

    따뜻하고 자신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그런데 왜 천안이 아닌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어차피 이성진에게 다 말하는 것 거리낌 없이 용족의 치부라고 할 수 도 있는 비밀을 말했다.

    “배신당했어요.”

    “배신? 용족을 배신하는 간 큰 놈 들이 있어?”

    자존심 강한 용족이다. 성인이 되 면 관심을 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족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을 가 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힘이 약해 죽거나 도태 당하는 것 은 몰라도 용족을 배신하는 것은 절 대 용서 안 한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것은 금방이다.

    한 번 용족을 배신하는 일이 일어 나면 다른 용족을 배신하는 일이 일 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배신은 철저하게 응징했다.

    “아까 제가 물었었죠? 검은 머리를 한 용족 본 적이 있느냐고요.”

    “없지. 하지만 검은 머리의 용족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었어.”

    검은 머리의 용족 소문을 들었다는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은 눈을 반짝 였다. 그런 소문이 날 리가 없었다.

    평소에는 검은 머리가 아닌 황금색 머리와 황금색 눈동자로 지낸다. 능 력을 봉인했기 때문에 원래 검은색 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검은 머리의 용족은 나와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에요. 순혈이 아닌 혼혈이거든요.”

    그 말이면 충분했다. 순혈만을 고

    집하는 용족에게 혼혈이 나왔다. 처 음부터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족의 아이는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뭐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에 왔을 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어요. 하지만 믿었던 사람에 게 배신당하니 좀 충격이네요.”

    “아버지의 고향?”

    “네. 아버지가 지구란 곳에서 왔다 고 들었어요.”

    황수정은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말 을 하면서 자신이 왜 이성진에게 끌 리는지 알았다.

    얼굴도 못 본 아버지의 관한 일은

    어머니에게 들은 것이 다였다.

    인간인 주제에 용족인 자신에게 할 말 다 하면서 은근 챙겨 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평생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 성진에게서 본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었다. 지금 능력을 봉인했기 때문에 이성진이 가진 파나 신 심장의 영향을 받았다 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능력이 온전했다면 이렇게까 지 이성진에게 빠지지 않았다.

    “뭐 다 각오하고 온 거기는 한 데……

    어색하게 웃는 황수정을 보며 이성

    진은 또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는 골드 일족으로 살아오면서 보호 받은 거야?”

    “그렇죠. 엘 파나에서 골드 일족의 일원인 저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 어요.”

    이성진에게 대답하면서 황수정은 자신의 이름을 다시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 본명은 크리스탈이예요.” 황수정이 본명을 밝혔다. 하지만 이성진은 의외의 말을 했다.

    “그건 능력 다 찾았을 때 부르라고 하고, 지금은 황수정이다. 내가 보호 해야 할 아이의 이름은.”

    이성진이 보호해야 할 아이라고 말 하자 황수정은 울컥할 뻔했다. 어머 니가 죽고 자신을 이렇게 대해 준 종족은 없었다.

    골드 일족도 같은 울타리 안에 넣 어 줬을 뿐이었다.

    “ 알았냐?”

    “네! 알았어요!”

    황수정은 크리스탈이라는 본명보다 이성진이 불러 주는 이름인 황수정 이 더 좋아졌다.

    “그런데 나는 아저씨 이름도 모르 는데요?”

    “아! 안 가르쳐 줬나?”

    “네.”

    “이성진이다. 너 만한 딸이 있고.”

    “이성진……

    황수정은 이성진이란 이름을 잊어 버리지 않으려는 듯 속으로 되뇌었 다. 그리고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저씨! 천안으로 가요!”

    “갑자기 천안은 왜?”

    어차피 천안으로 가긴 해야 했다. 하지만 해가 졌다. 아침에 갈 생각 이었다.

    “천안에 가서 사신 으를 기다렸다가 도움을 요청해야 해요.”

    “ 도움을?”

    “네. 제 능력을 되찾고 배신자들을

    처리해야 해요!”

    황수정은 이성진을 위해 능력을 되 찾고 싶어졌다. 자신이 능력을 되찾 는다면 이성진 하나쯤은 그 어떤 일 이 있더라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꼭 능력을 되찾아야 하니?”

    “네. 꼭이요. 그래서 아저씨에게 은 혜 갚을게요.”

    은혜 갚겠다면야 좋은 일이다. 아 직 확실하게 들은 것은 아니다. 하 지만 황수정이 아산 지역 성의 주인 인 것 같았다.

    “그럼 천안까지 가서 기다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황수정은 이성진이 사신 S 와 친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아! 어디 있는지 아세요?”

    “하하! 그게……

    이성진은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 다. 황수정은 장난인 줄 알았다.

    “장난하지 말고 사신 S 어디 있는 지 아냐고요!”

    “장난 아니야. 수정이 네가 기다리 던 사신 으가 나야.”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하면서도 황수정의 마음은 기뻤다. 자신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수없이 들었던 전설과도 같 은 이야기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성인이 될 때쯤 성전이 선 포되고 지구에서 세운 6왕국은 멸망 했다.

    다시는 못 만나는 줄 알았다. 그러 다가 지구 침공의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의 고향인 지구에 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신 드도 만나 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더 큰 이유는 엘 파나에서 살기 싫은 것이긴 했지만.

    이성진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신 으를 만나면 싸워 보고 싶었다. 사신 으를 이겨 자신의

    가치를 보란 듯이 증명하고 싶었다. 물론 온전한 능력을 가졌을 때 이야 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성진의 능력을 보 고 싶었다.

    “아저씨가 사신 으라는 증거를 대 봐요!”

    “흐음. 못 믿으면 어쩔 수 없고.”

    믿지 못하면 말라는 식의 반응에 황수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성진에 게 다가갔다.

    “왜 이래?”

    그냥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손을 내밀어 이성진의 가슴을 만지려 했 다.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능력은 봉 인했지만 이렇게 직접 만져 보면 알 수 있어요!”

    피하려는 이성진에게 한마디 한 다 음 기어코 이성진의 가슴에 손을 댔 다. 이성진은 황수정이 파나 신의 심장을 확인하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황수정이 이성진의 가슴에 손을 대 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두근! 두근…….

    이성진의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성진의 심장 안에 있는 파나 신의 심장을 느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따뜻함과 신성 함이 었으니 까.

    “확인한 것 같은데 그만 손 떼지?” 황수정은 이성진의 말에 정신을 차 렸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오래 느 끼고 있었다.

    “크홈•…”

    황수정은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 다.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런 황수정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 는지 이성진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 다.

    “확인했어?”

    “네. 확인했어요. 진짜 파나 신의

    심장이 있네요.”

    황수정의 말에서 아슬란이 죽기 전 에 했던 말이 다 사실인 것을 알았 다. 지구에 온 대부분이 파나 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다.

    오르쿠의 지도자였던 하늘의 검과 하늘의 딸이 알고 있었다. 아슬란이 알고 있었다.

    2번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해도 3번 째는 아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나를 속이고 있 었던 거예요?”

    황수정은 이성진이 자신을 속였다 는 것에 발끈했다.

    “내가? 언제?”

    “아저씨가 사신 s였으면서 마치 잘 아는 사람인 척했잖아요.”

    “당연히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대답했지. 내가 나를 모르면 말이 안 되지. 그리고 나에게 사신 으냐고 안 물어봤잖아. 아느냐고만 물어봤 지.”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사신 S 인 줄 누가 알 수 있을까.

    “치! 완전히 내가 듣던 사신 으와는 다르네!”

    삐친 듯이 말하고는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네가 들었던 사신 으는 어땠는데!” 황수정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 했다.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냉철한 암살 자이자 우리 용족도 마주치기 꺼리 는 존재!”

    “어째 나 칭찬하는 것으로 들린 다?”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냉철한 암살 자와 다르다면 반대다. 최소한 자비 롭고 인정 많다는 것이다.

    “몰라요!”

    그냥 투덜댄 것뿐인데 자신의 마음 을 들킨 것 같았다.

    “야! 너 이리 와!”

    “끼잉?”

    갑자기 화살이 똘이에게 돌아갔다. 똘이는 도망갈 수 없었다. 최상위 포식자인 용족이 달려들어 목을 잡 기 때문이었다. 황수정과 싸우는 것 이면 상황이 다르다. 싸우는 것이 아니어서 저항하지 않았다.

    괜히 똘이에게 화풀이하는 황수정 을 보며 이성진은 웃을 수밖에 없었 다. 하는 짓이 정말 14살 여자아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본질은 용족이라는 것을 잊 지 않았다.

    처음에는 성인이 되지 않아 능력을 가지지 못한 용족 아이인 줄 알았

    다. 그래서 도와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쯤 계산적이었다. 황수정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다 면 엄청난 힘이 된다. 능력을 되찾 게 도와주면서 조건을 걸 생각이었 다.

    “똘이 괴롭히지 말고 앞에 와서 앉 아 봐라.”

    똘이가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것 도 외면할 수 없었다.

    “왜요!”

    “왜기는. 도와 달라며.”

    황수정은 똘이를 놔주고 이성진 앞 으로 왔다.

    “그냥 아무 계획 없이 도와 달라고

    한 것은 아니겠지?”

    이성진은 용족이 아무 계획 없이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진 의 생각대로 황수정은 아무 계획 없 이 나오지 않았다.

    “계획은 있어요. 조금 수정은 해야 겠지만요.”

    “그래? 한번 들어 보자.”

    “그러니까……

    황수정은 머뭇거렸다. 말하기 곤란 한 내용이 있는 것 같았다.

    “일단 말해 봐.”

    황수정은 숨겨도 이성진은 다 알 것 같았다. 계획을 들으면 끝을 예 상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

    사신 으이니까.

    “천안에서 성으로 갈 수 있는 이동 마법진을 설치해 놨어요.”

    이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신 s 를 만나 이동 마법진을 통해 성으로 간다는 계획은 말이 안 된다. 이성 진이 바보처럼 걸려 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동 마법진을 몰라볼 것으 로 생각한 거야?”

    “아니요. 알아보시겠죠. 하지만 용 족이라도 빠져나올 수 없는 이동 마 법진이니까 어쩔 수 없이 성으로 이 동해요.”

    마나 저항력이 강한 용족도 빠져나

    올 수 없는 이동 마법진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성으로 이동한 다음에는?”

    “기다리고 있는 기사와 마법사를 해치우고 지하로 가면 돼요.”

    “기다리고 있는 기사와 마법사를 해치워?”

    황수정은 멋쩍게 웃었다.

    “아저씨를 잠시만 잡아 두면 제가 봉인을 풀고 나오려고 했어요.”

    “봉인을 풀고 나를 잡으시겠다?”

    “헤헤……. 지금은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황수정은 이성진이 오해할까 봐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성진은 지

    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그냥 믿을 수 없는 상황 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그냥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 하자 황수정은 섭섭한 기분이 들었 다. 하지만 이성진의 말도 맞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성으로 가는 것 까지 모든 것이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했다.

    그리고 이성진이 원하는 것도 알고 있다.

    “용족을 그냥 믿어 달라고 했을 때 믿어 줄 수 있는 종족이 얼마나 될 까?”

    이성진의 말대로 용족의 약속을 그 냥 믿을 종족은 몇 없었다. 힘 있는 용족은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용족과 약속할 때 는 심장에 맹세를 새겨야 했다.

    하지만 용족에게 심장에 맹세를 새 기라고 할 정도의 미친놈은 엘 파나 에 몇 명 없었다.

    “아저씨! 처음 계획은 아저씨를 잡 아 파나 신의 심장을 얻으려고 했던 것은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 요. 진짜 아니에요. 그러니까 믿어 주세요!”

    이성진이 원하는 것이 심장에 맹세 를 새기는 것인 줄 안다. 하지만 황

    수정은 이성진에게 그냥 믿어 달라 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진은 애타는 표정으로 말하는 황수진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심장에 맹세를 새긴다고 할 줄 알 았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진짜 함정인 거니?”

    다른 이유가 있어 어쩔 수 없이 함정을 팠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 다.

    “아니요. 만약 함정이라고 생각하 시면 지금 이곳에서 저를 죽이세요. 그것이 아저씨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방법이라면요.”

    이성진 역시 황수정의 눈을 똑바로 봤다. 황수정은 이성진의 눈을 피하 지 않았다.

    이성진은 황수정의 눈과 몸짓에서 거짓을 읽을 수 없었다.

    “함정이 아니라면 왜 심장에 맹세 할 수 없는 거지?”

    이성진의 말에 황수정이 가슴이 보

    이게 옷깃을 펼쳤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이성진이 말릴 사이도 없었 다.

    그리고 왜 황수정이 심장에 맹세를 새길 수 없는지 알았다.

    심장 부근에 길게 흉터가 있었다.

    “너……. 미쳤구나? 심장을 뺀 거 야?”

    황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든 종족이 그렇듯 용족 역 시 심장이 마나를 움직이는 근원이 자 마나를 모으는 곳이죠. 아저씨를 만나 의심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 었어요.”

    능력을 어떻게 봉인했나 궁금했었

    다. 성인 용족이 어린아이의 능력을 가진 것처럼 봉인이 가능할 리가 없 었다.

    마나의 중심인 심장을 꺼냈으니 가 능한 것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나를 만나기 위해 어린아이처럼 다닌다 해도 너무 심 했다 싶었는데……

    황수정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아무리 위장이라 해도 며칠씩이나 굶어 가면서 하지는 않 는다.

    황수정을 따르던 부하들의 배신이 쉬웠던 이유도 알았다.

    “내가 만든 함정에 내가 빠진 꼴이

    죠.”

    “그럼 배신자들이 심장을 먼저 찾 으면……

    황수정은 전혀 걱정 없다는 표정으 로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오신다 해도 7일은 걸려야 봉인을 풀고 제 심장 을 꺼낼 수 있어요.”

    용족의 특성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용족이 황제가 된다. 그런 황 제가 직접 와서 봉인을 풀어도 7일 이나 걸린다.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심장 없이 살 수 있는 시 간이 30일뿐이라는 것이에요”

    아무리 용족이라 해도 심장 없이는 못 산다. 30일도 대단한 것이었다. 황수정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가지 정보가 있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여자 용족이 곧 성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성장하면 어디까지 성장할지 모를 정도라고.

    “설마 수정이 네가 최초로 여자 황 제가 될지도 모른다던 용족이야?”

    “에이. 설마요. 그랬으면 지구에 왔 겠어요?”

    이건 거짓말이었다. 이성진의 말이

    맞았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3천 년 을 산 용족과 비슷한 힘과 마법을 사용했었다.

    케르빌 제국의 황제 이외에는 자신 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케르빌 제국 역사상 여자 용족이 황제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럼 며칠 남은 거야?”

    “오늘이 15일째니까 15일 남은 거 죠.”

    너무 편안하게 말하는 황수정을 보 고 이성진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15일밖에 안 남았는데 걱정도 안 되냐?”

    “네. 안 돼요!”

    황수정은 이성진을 만나기 전까지 만 해도 절망했다. 천안시에 만들어 놓은 이동 마법진을 통해 성으로 간 다 해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 다.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용 족이 점령한 지역으로 갈 수도 없었 다. 누구의 사주인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용족의 사주인 것은 분명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죽음이었다.

    거기다가 인간들까지 말썽이었다. 약한 여자아이 혼자 돌아다니니 어 떻게 해 보려고 난리였다.

    방법을 찾다가 안 되면 성으로 돌 아가 깔끔한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그런데 이성진을 만났다.

    이성진이 도와주기로 했다. 걱정할 리가 없다.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가 도와주 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더 믿음이 갔다.

    “하여간 용족의 성격은 정말 파악 하기 힘들다니까.”

    “힘들게 파악하실 필요 없어요. 저 는 무조건 아저씨 편이니까.”

    “알았다. 알았어. 대신 심장을 되찾 으면 맹세를 새겨라.”

    “물론이에요. 어머니와 한 번도 보 지 못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약속 해요!”

    황수정에게 있어 어머니와 아버지 는 그 어떤 존재보다 소중했다. 그 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걸고 약속했 다.

    “좋아. 계약 성립! 계약한 이상 약 속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 질지 모른다.”

    “협박 안 해도 돼요! 지킬 거니 까.”

    황수정은 이성진이 심장에 새길 맹 세의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약속했 다. 그 무엇이 되었든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성진이 어떤 내용을 맹세 하라고 할지 짐작하고 있었다.

    이성진과 함께 돌아가 봉인한 능력 을 되찾는 순간 이성진과 함께 자신 을 죽이려 한 놈들을 찾아 죽일 것 이다.

    철저한 복수 또한 용족의 자존심이 니까.

    “그럼 쉬었다가 해가 뜨면 천안으 로 가자.”

    “네. 아저씨! 그 전에 먹을 것 좀 더 주면 안 돼요?”

    “너 먹여 살리려면 돈 많이 벌어야 겠다.”

    “치! 성에 돌아가 능력만 되찾으면 제가 아저씨 먹여 살릴게요.”

    이성진은 팔찌에서 간편하게 먹을

    것을 꺼내면서 웃었다.

    “안 먹여 살려도 된다. 계약한 약 속이나 지켜라.”

    “지킨다니까요!”

    이성진은 꽤 많은 음식을 꺼냈다. 용족의 식사량을 어마어마하다. 오 르쿠는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마 나가 없으니 더 배고플 수밖에 없 다.

    황수정이 먹는 동안 이성진은 꽤 강력한 아군을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성진과 황수정은 밤을 보내고 해 가 뜨자 천안시로 출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