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31화 (31/50)
  • 1장. 켈빈

    제이콥 백부장이 있는 곳은 대전시 남쪽 부근의 카반 왕국군 주둔지였 다. 똘이는 맥 아저씨 집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카반 왕국군은 빌라 단지를 주둔지 로 이용하고 있었다. 전원주택 개념 의 빌라 단지라 꽤 넓은데다가 야트 막한 산 중턱에 있었다.

    빌라 단지 입구와 몇 군데만 카반 왕국군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렇다고 경계가 허술한 것은 아니

    다.

    이 빌라 단지 주변에는 숨겨진 마 법 도구들이 수없이 깔려 있다. 쉽 게 말해 지뢰다. 지뢰와 다른 점은 카반 왕국군이 지나갈 때는 공격하 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법으로 아군과 적군을 인식한다.

    입구에 다다르자 카반 왕국군 병사 가 손을 들었다.

    “정지! 더는 다가오지 마라!”

    입구에서 약 30m 떨어진 곳이었 다. 이곳부터 입구까지 마법 도구가 숨겨져 있다. 입구에 있는 병사가 잠시 마법 도구를 꺼 놓지 않으면 바로 공격받는다.

    “무슨 일로 찾아왔나?”

    병사는 이성진을 위아래로 홅어보 더니 별 볼일 없는 지구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투가 거칠게 나왔다.

    “제이콥 백부장님을 찾아왔습니 다.”

    이성진은 의심받지 않기 위해 어눌 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이콥 백부장님을? 네놈 따위가? 혹시 마법술사나 능력을 가진 자 냐?”

    지구 인간 중 마법술사나 초인이라 면 백부장을 만나러 온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백부장들이 실적을 위해

    마법술사나 초인들을 모집해 성으로 보내기 때문이었다.

    “힘이 강해지고 빠르게 달릴 수 있 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사는 이성진의 대답에 고개를 끄 덕였다. 하지만 다가오라는 말은 하 지 않았다.

    “기다려라! 제이콥 백부장님에게 연락해 보겠다.”

    카반 왕국군 주둔지에 함부로 지구 인간을 들여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병사는 초소처럼 생긴 건물에서 마 법 통신으로 제이콥 백부장에게 찾 아온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제이콥 백부장님이 곧 나오신다고

    했다. 기다려라!”

    “네.”

    병사의 말대로 10분 정도 기다리 자 제이콥 백부장이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그리고 병사가 이성진을 가리키며 말하자 제이콥 백부장은 다시 걸어서 이성진을 향해 다가왔 다.

    숨겨진 마법 도구는 제이콥 백부장 을 아군으로 인식해 공격하지 않았 다.

    “나를 찾아왔다고?”

    “네. 경비대에 지원하면 성으로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이콥 백부장은 눈을 반짝였다.

    비밀리에 받은 명령이 있었다. 오늘 지구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경비대 에 지원하면 성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할 것이다.

    그 인간을 성으로 보내라! 였다. 제이콥 백부장의 말투가 공손해졌 다.

    “잘 찾아왔습니다. 오늘 오후에 바 로 성으로 출발하는 지원자들이 있 습니다.”

    하루나 이틀 정도 걸릴 줄 알았는 데 오후에 바로 성으로 출발하는 사 람들이 있다니 잘된 것 같았다.

    “잠시 기다려 주시고……. 다른 사 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말을 험하게

    해도 이해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제이콥 백부장은 초소에 있는 병사 에게 몸을 돌려 소리쳤다.

    “임시 방문증을 가지고 와라!”

    제이콥 백부장의 말에 병사가 초소 에서 목에 걸 수 있는 명찰 비슷한 것을 가지고 뛰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떠나는 사람들과 함 께 갈 거다. 굳이 방문 기록을 할 필요가 없다.”

    병사는 평소와는 다른 제이콥 백부 장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잠 시 방문하더라도 기록을 남겨야 한

    다고 항상 교육했던 제이콥 백부장 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부장의 명령에 말단 병사 가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병사는 방문증을 건네고는 같이 초 소 방향으로 갔다. 이성진은 일부러 신기한 것을 보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갔다.

    주변을 머릿속에 넣고 파악하기 위 해서였다. 걸어가면서 마나를 이용 해 마법 도구가 숨겨져 있는 곳도 파악했다.

    습관 같은 것이었다. 만약을 대비 해 도주할 때 마법 도구를 피하거나

    파괴해야 하니까.

    초소를 지나자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제이콥 백부장이 슬그머니 말했다.

    “혹시 김진명 마법술사와 함께 오 지 않았습니까?”

    “기억하는군요.”

    “네. 그때는 미안했습니다.”

    제이콥 백부장은 함부로 대하지 말 라는 명령도 같이 받았다. 그래서 보는 눈이 없을 때는 이성진에게 함 부로 말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같은 편일 줄 몰라서 그랬습니다. 성으로 출발하게 되면 그때 가져갔

    던 단검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굳이 안 주셔도 됩니다.”

    돌려주면 좋다. 하지만 굳이 필요 하지도 않았다. 근접전을 해야 할 경우 병사의 검을 빼앗아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암살 작전도 아닌 염 탐 작전이다.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 하지만 제이콥 백부장은 이성진을 같은 편 이라고 생각하자 무언가 해 줘야 한 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닙니다.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말하죠.”

    병사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제이콥 백부장은 병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장 외곽에 있는 빌라로 갔다.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빌라 1층은 계단을 제외하고 벽을 허물었다.

    벽을 허물어 넓어진 1층에는 사람 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3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카반 왕국군 옷이 아니었다.

    “오늘 오후에 성으로 떠난다. 여기 같이 떠날 새로운 동료가 있다. 잘 지내도록!”

    제이콥 백부장은 이성진에게 눈짓 으로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 다. 이성진을 성으로 보내는 지원자 명단에 넣으려면 할 일이 있기 때문

    이었다.

    제이콥 백부장이 나가자 사람들은 이성진을 한번 쳐다보더니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누군가는 검을 닦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같이 지원한 듯한 사 람들은 이성진에게 관심을 끄고 서 로 대화했다.

    반겨 주지 않는 것을 안 이성진은 벽에 가서 등을 대고 앉았다. 그러 자 옆에 앉아 있던 허름한 옷을 입 은 40대 남자가 슬며시 다가왔다.

    “허일용이네.”

    허일용은 이성진의 어려 보이는 외 모 때문에 처음부터 말을 놨다.

    “반갑습니다. 이성진입니다.”

    이성진은 일부러 웃으며 허일용이 다가온 것이 기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허일용은 씨익 웃으며 말했 다.

    “자네는 돈 때문에 지원했나? 아니 면 카반 왕국 주민이 되기 위해 지 원했나?”

    허일용의 말에 경비대에 지원하면 꽤 많은 돈과 카반 왕국 주민이 될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았다.

    “둘 다입니다.”

    “그래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 있잖아!”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은 꼭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다 가가 많은 것을 묻는다. 원래 성격 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눈빛과 행동을 봐서는 아니었다.

    주변 인물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유 리하게 써먹기 위해 접근한다.

    말할 때 눈은 웃지 않고 있다.

    “어차피 경비대가 되면 카반 왕국 주민이 되는데 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그렇네요.”

    허일용은 이성진을 그저 그런 놈■이 라고 평가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경 비대에 지원한 것으로 생각했다. 죽 을 곳인지도 모르고 가라면 시키는 대로 가는 그런 바보 같은 놈이라

    고.

    “이런 멍청이를 봤나. 그런 생각으 로 경비대에 지원했다가는 큰일 나! 너 나 잘 만난 거야! 앞으로 나만 따라 다녀! 그러면 좋은 일만 생길 거야!”

    허일용의 말에 눈을 감고 있던 남 자가 피식 웃으며 눈을 떴다.

    “어이! 그 사기꾼은 멀리하는 것이 좋아. 안 그랬다가는 좋은 일은커녕 먼저 죽을 거야!”

    허일용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남 자에게 소리쳤다.

    “남상수 당신은 빠져!”

    남상수가 스윽 일어나더니 허일용

    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그러자 허일용은 다급하게 소리쳤 다.

    “왜 이래! 이곳에서 사고 치면 성 으로 못 가!”

    “죽이지만 않으면 되거든? 맞고 꺼 질래? 그냥 꺼질래!”

    허일용은 입술을 깨물더니 아무 소 리도 못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 러자 남상수가 검을 넣고 이성진 옆 에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왔 어?”

    남상수는 이성진이 대전에 살지 않

    는다고 확신하며 말했다. 대전 초인 대부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경비대 를 지원하면 3일 동안 테스트를 받 는다. 테스트에 합격해야 성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이성진은 같이 테스트를 받 지 않았다.

    원래라면 다음번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성으로 떠나는 당일 제이콥 백부장이 데리고 왔다.

    이유는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모른다. 하지 만 테스트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뛰어나다.

    “남쪽에서 왔어.”

    이성진은 허일용에게 대하는 것과 는 다르게 대답했다. 남상수는 이성 진의 말투와 기세에서 역시라고 생 각했다.

    “이거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것을 괜히 끼어든 것 같네.”

    남상수는 능력만 좋은 순진한 친구 인 줄 알았다. 남을 이용해 먹고 버 리는 허일용에게 당하는 줄 알고 끼 어들었다. 이성진의 말투가 그랬으 니까.

    하지만 지금 보는 이성진은 맹수였 다. 조용히 기다릴 줄 아는 맹수!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하이에나 같은 허일용이 이성진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이용당하면 당했지.

    “알았으면 다시 눈 감고 잠이나 자 든지!”

    이성진은 이 안에서 가장 강한 사 람이 남상수인 것을 알았다. 허일용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남상수 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경험상 가장 강한 남상수와 비슷하 거나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행동한다.

    “훗! 대전에 안 살아서 나를 잘 모 르는 것 같군! 한번은 그냥 넘어간 다. 앞으로 나에게 그런 말투로 말 하지 마라!”

    남상수 역시 이성진보다 더 강하다

    는 것을 보여 줘야 했다. 그래야 앞 으로 성으로 가서도 편해진다. 더 강한 사람이 더 높은 지위를 얻게 될 테니까.

    “아! 미안!”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표정은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듯 보여 줬다. 그 러자 남상수는 이성진의 옆에 앉았 다.

    “그렇게 도발해도 이곳에서 싸울 수 없다. 다행인 줄 알아라!”

    사실 허일용이 접근했을 때 아무것 도 모르는 척 허일용의 수작에 넘어 가려고 했다. 그래야 주목받지 않고 성으로 가니까.

    하지만 남상수가 끼어들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이미 주목은 받았다. 남상수가 관 심을 가졌다는 것 자체로.

    “남상수라고 했나?”

    “그래.”

    “너는 왜 경비대를 지원했지?”

    왜 경비대를 지원했냐는 물음에 남 상수는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까!”

    남상수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성으로 가면 경비대로 지원한 사람 들은 다시 세뇌를 받는다는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 전히 지배받는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 만 그건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 대신 얻는 것이다.

    그리고 높은 자리라고 생각한 것은 모래로 쌓은 성처럼 무너져 버릴 것 이다.

    아슬란의 죽으라는 말 한 마디에.

    물론 시간이 더 지나면 카반 왕국 이 점령한 지역의 사람 모두가 더 강력한 세뇌를 받는다.

    “지배할 수 있는 기회라……. 그렇 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이지. 내 능력이면 카반 왕국 귀족의 눈에 들 거다.”

    “알아서 검이 되겠다는 거군.”

    좋게 말해서 검이라고 한 것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앞잡이다. 그런데 이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상 수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세뇌와는 상관없다. 세뇌는 그저 아슬란에게 충성하라는 것뿐이다. 이런 생각은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을 얻으려 하는 것뿐이다.

    남상수의 본능이다. 아니 사람들

    대부분 본능일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알고 누리며 살아왔던 법 과 제도가 무너진 곳에서 본능이 다 시 살아난 것일 수도 있었다.

    “잘해 봐.”

    남상수는 이성진의 대답이 이상하 게 들렸다. 자신과는 목적이 다르다 는 것을 느꼈다. 돈도 지위도 목적 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성진은 왜 경비대에 지원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사이 성으로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제이콥 백부장과 병사들이 1층으로 들어왔다.

    “성으로 갈 시간이다. 모두 나와서 버스에 올라타라!”

    사람들은 주섬주섬 일어나서 밖으 로 나갔다. 밖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버스 한 대와 군용 트럭 그리 고 지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버스가 서 있다는 것에 놀라지도 않고 올라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 올라타고 제이콥 백부 장은 가장 앞에 서 있는 지프에 탔 다. 뒤에 군용 트럭에는 카반 왕국 군 병사가 탔다.

    곧 지프를 선두로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성진은 전기가 없는 이곳에서 버스를 어떻게 움직 일 수 있는지 알았다.

    엔진 구동음이 들리지 않았는데도 버스는 움직였으니까.

    마법 도구가 유명한 카반 왕국의 교통수단은 마차다. 말이 끄는 마차 가 아니다. 마법 도구를 이용한 마 차다.

    그 마법 도구를 이용해 버스나 차 를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법 도구로 움직이 는 버스가 익숙하다는 듯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카반 왕국이 점령한

    곳으로 넘어와서 버려진 차를 보지 못했다. 대전시에만 최소 수십만 대 가 있을 것이다.

    카반 왕국이 마법 도구로 버려진 차를 개조했다면 이것 역시 문제였 다. 차만 개조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대전 하면 대한민국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생각나는 것이 있을 것 이다. 일명 계룡대라고 육해공군 본 부가 대전에 있다.

    대전 근방에 군부대도 꽤 있다. 그 중에는 기계화 부대도 있을 것이다. 기계화 부대가 아니더라도 최소 전 차 대대는 있다.

    두꺼운 강철 장갑으로 둘러싸인 전

    차를 카반 왕국군이 개조해서 이용 한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

    엘 파나의 강점은 마나를 이용한 마법과 검술 그리고 초인이다.

    지구의 강점은 과학 기술을 이용한 무기였다. 그리고 엘 파나로 넘어가 면서 초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기 힘든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엘 파나로 공수해 장점으로 삼았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엘 파나에서 침공해 지구의 과학 기술로 만든 것 을 이용한다.

    엘 파나와의 전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고 있

    을 때, 비어 있던 옆자리에 남상수 가 털썩 앉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남상수의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맥 아저씨를 도와 반란을 성공하는 것 이 더 중요했다. 생각이 많은데 옆 에 남상수가 앉아 질문하니 대답하 지 않았다.

    “강한 사람은 강한 사람을 알아보 지! 내가 보기에 이성진 너는 강 해.”

    남상수의 감각이 뛰어난 것은 인정 해야 할 것 같았다. 남상수는 본능 적으로 강한 자를 알아본다. 마나를 받아들이고 초인이 되면서 감각이

    살아났다.

    하지만 거대한 산 밑에서 올라가 보지 않고 막연히 ‘산이 높구나!’ 느 끼는 것이다.

    “너와 내가 같이한다면 꽤 빠르게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 때?”

    남상수는 지금 손을 잡자고 제안했 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타기 전에 남상수는 누군가 와 손잡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 다.

    그래서 다르게 물었다.

    “경쟁자가 되지는 않고?”

    “훗! 경쟁자가 되어도 좋지! 그러

    면 더 빠르게 올라갈 테니까! 하지 만 일정 수준까지는 같이 도우면서 올라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남상수의 말투나 눈빛은 꼭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경비대에 지원해 위로 빠르게 올라 가는 방법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이다.

    “같이 도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남상수는 이성진이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했다. 다른 지역에 서 왔다면 대전시에서 무슨 일이 일 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남상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카반 왕국은 곧 전쟁을 일으킬 거

    야.”

    “그걸 어떻게 알지?”

    남상수는 이성진만 볼 수 있게 주 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대위 계급장이 었다.

    바로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내 전문이니까.”

    남상수는 진짜 전문가 앞에서 전문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은 카반 왕국군이 움 직이는 것만 보고도 알 수 있지. 그 리고 이성진 너에게도 손해는 아닐 거야. 나에게는 부하들이 있거든.”

    “부하들이 있어?”

    “아! 물론 이 안에는 몇 명 없어.

    먼저 지원한 놈도 있고 다른 지역에 서 지원한 놈도 있어.”

    남상수는 그냥 경비대를 지원한 것 이 아니었다. 카반 왕국의 지배 아 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하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대위였던 남상수가 카반 왕국의 경 비대에 지원해 한 자리 얻으려고 하 는 것을 욕할 생각은 없다.

    세뇌당한 것을 아니까.

    카반 왕국의 아슬란에게 충성하는 것이 기본인 세뇌다.

    당연히 아슬란의 눈에 들거나 카반 왕국에서 출세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었다.

    “부하가 꽤 많은가 봐?”

    “꽤 많지.”

    “그럼 내가 필요 없지 않나?”

    “아니. 필요해! 내 부하 중에는 너 같이 강한 놈이 없거든.”

    남상수의 강한 놈이 없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강하다라……. 너는 강하다는 것 이 그냥 능력이 강한 것을 말한다고 생각해?”

    이성진의 질문에 이번에는 남상수 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아니지. 능력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어. 더 강한 능력자나 감당할 수 없는 숫자로 밀어붙이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감당할 수 없 지.”

    남상수가 생각하는 강함은 달랐다.

    “너같이 상황 파악 잘하고 믿으면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이 더 강하지. 등을 맡기고 싸울 수 있으니까.”

    남상수가 짧은 시간에 이성진을 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느 낀 것을 남상수는 믿었다.

    카반 왕국군의 침공 이후에 살아남 을 수 있었던 능력 중 하나니까.

    “상황 파악 잘하고, 믿으면 끝까지 함께하는 것은 맞아! 하지만 남상수 너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아서 안 되겠는데?”

    남상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 다. 언제나 자신이 남을 평가하고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성진은 자신 을 평가했다. 그리고 상황 파악 못 한다고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서 남상수는 더 이성진이 탐났 다. 그냥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알 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성진이 강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느낌도 그렇고 제이콥 백부장이 테 스트도 없이 갑자기 데리고 온 것도 이성진이 강하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남상수는 이성진에게 더 권 유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계속 권 유하는 것보다 다른 기회를 기다렸

    다가 말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거절해도 곧 내 제안을 다 시 생각하게 될 거야.”

    남상수는 양팔을 들어 뒷머리에 대 고는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콧노래 를 불렀다. 다른 자리로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냥 남상수를 놔두고 버스 창밖으 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는 곧 대전 시를 벗어나 동쪽으로 갔다.

    검문소가 몇 개 있어도 그냥 지나 쳤다. 대전시를 벗어나 1시간쯤 달 리자 버스가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남상수가 팔을 내리고 창밖

    을 보면서 이성진에게 말했다.

    “곧 카반 왕국이 전쟁을 준비하는 증거가 나올 거야. 그리고 현대 전 술을 익힌 나는 눈에 띄겠지.”

    남상수의 말대로 카반 왕국이 전쟁 을 준비하는 증거가 보였다. 그리고 이성진이 우려하는 증거였다.

    최소 수백 대의 전차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카반 왕국군 병 사들이 전차에 달라붙어 있다.

    “부하 말에 의하면 전차에 마법 도 구를 설치한다고 하더군.”

    “그래 보여.”

    누가 봐도 마법술사처럼 보이는 사 람이 병사들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카반 왕국군이 전차에 어떤 마법 도 구를 설치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방어 마법 도구다. 전차 전체를 반 투명한 막으로 둘러싼다. 반투명한 막은 물리적인 충격을 막아 준다. 마나석 안의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 지.

    카반 왕국이 자랑하는 마차 군단이 전차 군단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방어 마법 도구를 설치한 마차에 마 법 도구로 무장한 병사들이 올라타 고 적을 향해 돌진한다.

    그 돌진을 일반 병사로는 절대 막 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차 군단의 취약점은 마나

    석의 마나가 떨어졌을 때 쉽게 부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차는 마나석의 마나가 떨어져도 강철로 만들어져 있으니 쉽게 부술 수 없다.

    “그런데 부하가 먼저 경비대에 지 원했으면 너보다 지위가 높지 않을 까?”

    “높아 봤자 얼마나 높겠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어.”

    남상수는 자신 있었다. 초인으로서 의 능력도 전략 전술도 부하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부하들이 먼저 자리 잡고 있으니 더 빠르게 올라가겠지. 어때?”

    “뭐가 어때?”

    “아직도 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 이 없어?”

    남상수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이성 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기대는 바로 무너졌다.

    “ 없어.”

    “뭐?”

    남상수는 이성진을 잘못 파악했나 싶었다. 외로운 늑대처럼 혼자 다니 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료를 만들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리고 더 황당한 말을 이성진에게 들었다.

    “나를 같은 기준선 상에 놓지 않았 으면 한다.”

    같은 기준선 상에 놓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은 남상수 자신은 쳐다볼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결국, 나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거네.”

    남상수가 생각하는 길은 그저 카반 왕국군 안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 다. 바라보는 곳이 다르니 다른 길 이 맞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남상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버스 안의 사람들 시선이 모였다.

    그래도 이성진은 담담하게 대답했 다.

    “후회라……. 절대 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좋아! 지금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 도 날 원망하지 마라.”

    남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이성진 옆에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 이었다.

    “왕따는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 야!”

    이성진에게 말했다. 하지만 남상수 는 버스 안의 사람들에게 지시한 것 이었다. 버스 안에 탄 사람들 대부 분은 이미 남상수와 함께하기로 했

    다.

    다른 자리로 가는 남상수에게 이성 진이 툭 하고 한마디 던졌다.

    “남상수. 만약 바로잡을 기회가 온 다면 주저하지 말고 잡아라!”

    남상수는 다른 자리로 가다가 멈췄 다. 이성진의 말이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왜 그 런지 모른다.

    바로잡을 기회라는 말이 선명하게 새겨진 것 같았다.

    남상수는 고개를 돌려 이성진을 쳐 다봤다. 그리고 이성진의 눈과 마주 쳤다. 순간 남상수는 끝없는 어두운 구덩이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

    았다.

    심지어 부르르 몸이 떨리기까지 했 다. 순간 알았다.

    자신과 비숫하다고 생각한 이성진 은 깊이도 알 수 없는 강한 사람이 라는 것을.

    이를 악물었다. 이성진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이성진의 눈을 더는 쳐다볼 수가 없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 고 다른 자리에 앉는 순간 버스가 멈췄다.

    성이 보이는 곳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고 병사가 올라왔다.

    “모두 내려라! 이곳에서부터는 걸

    어서 간다!”

    남상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 다. 이성진에게 받은 충격 때문에 일어날 수 없었다. 남상수가 일어나 지 않자 다른 사람들도 일어나지 않 았다.

    “뭐야? 안 내려?”

    병사가 짜증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이성진이 일어섰다. 이성진이 일어 서자 허일용이 급하게 일어서 이성 진을 따라 내렸다.

    이성진이 내리자 남상수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 야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상수를 따른다는 증거였다.

    이성진을 따라 내린 허일용은 바짝 붙으며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 다.

    “이거 내가 실수한 것 같은데 앞으 로 잘 지내고 싶습니다.”

    남상수는 허일용 같은 사람을 싫어 했다. 그래서 허일용을 부하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강하다 고 생각한 남상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이성진을 보고 기회다 싶었 다.

    남상수 패거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면 남상수와 능력이 비슷하거나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진의 옆에 붙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실수한 사람과 잘 지내고 싶은 마 음은 없습니다.”

    이성진이 딱 잘라 말해도 허일용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웃었다.

    “하하!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허일용은 이성진에게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비켜라!”

    제이콥 백부장이 다가와 허일용을 밀쳐 냈기 때문이었다.

    “아! 네……. 넵!”

    허일용은 급하게 옆으로 비켜섰다. 제이콥 백부장은 허일용이 비켜서자 이성진에게 단검을 건네면서 말했

    다.

    “성안으로 같이 들어간다.”

    제이콥 백부장의 말에 버스에서 내 린 사람들은 놀랐다. 제이콥 백부장 이 직접 무기를 주는 것도 놀랄 일 이다. 그런데 성안으로 같이 들어간 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기에는 처음 도착하면 성 외곽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기다 렸다가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성진은 분명 특별대우를 받고 있 었다. 경비대 지원 테스트도 받지 않고 성으로 가는 당일 합류했다.

    거기다가 성안으로 그냥 들어간다.

    그것도 제이콥 백부장과 함께.

    “알겠습니다.”

    보는 시선이 있어 이성진이 단검을 받으며 대답했다.

    “따라와라!”

    제이콥 백부장은 자신이 타고 온 지프로 갔다.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았다. 이성진이 조수석에 타자 곧 바로 성으로 출발했다.

    그 모습을 본 남상수는 이를 악물 었다.

    이성진이 말한 출발선이 다르다는 말이 생각나서였다.

    “따라잡아 주겠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하지만

    빠르게 성을 향해 멀어져 가는 지프 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뒤에서 남상수가 어떤 생각으로 주 먹을 불끈 쥐고 있는지 상관없이 이 성진은 엘 파나의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소인족 성이나 오르크 성과는 다르 게 카반 왕국 성은 엘 파나의 카반 왕국을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았다.

    카반 왕국답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슬란답다고 해야 하나 싶었다. 마

    법 도구의 왕국이 가진 자부심 같은 것이 보였다.

    다른 왕국과는 차별화된 성으로 만 들면서, 카반 왕국의 마법 도구 기 술이 엘 파나 최고인 것을 보여준 다.

    아슬란도 카반 왕국 마법 도구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그러니 엄청난 돈과 마법 도구가 들어가는 성의 개조를 한 것 같았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 만, 제대로 누릴 수만 있다면 카반 왕국처럼 살기 좋은 곳도 없습니 다.”

    이성진이 차창 밖의 건물을 보자

    제이콥 백부장이 한 말이었다. 제이 콥 백부장의 말에 이성진도 동감이 었다.

    어떻게 보면 카반 왕국은 가장 지 구와 닮았다.

    지구가 과학을 이용해 발전했다면 카반 왕국은 마법 도구를 이용해 발 전했다. 건물을 짓는 것은 물론 운 송 수단까지 마법 도구를 이용했다. 카반 왕국의 상류층의 삶은 지구에 서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전기 대신 마법 도구로 거의 모든 것이 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 반 왕국을 한 단계 더 발전하게 한 것은 지구에서 엘 파나에 만든 6왕

    국 때문이었다.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개념을 카 반 왕국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카반 왕국도 한 가지만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개념이 있었다.

    신분제였다. 왕과 귀족이 모든 것 을 가지는 신분제 사회인 카반 왕국 에게 민주주의는 기존의 삶을 파괴 하는 것이었다.

    “제이콥 백부장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갑자기 이성진이 나이를 묻자 제이 콥 백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대 답했다.

    “실제 나이는 35살입니다. 카반 왕

    국에 신고한 나이는 37살입니다.” 제이콥 백부장도 신분을 속이고 카 반 왕국군에 들어왔다. 15년 전에 이성진이 엘 파나에 있을 때 봤다면 20살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갑자기 제이콥 백부장이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말하며 힐끗 이성진을 쳐다봤다.

    이성진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 다. 그러자 제이콥 백부장은 확인하 둣 말했다.

    “오르쿠가 배신했다는 말도 안 되 는 소문이 들려서요. 인간이 마나막 을 넘어 다닌다는 소문도 있고요.”

    제이콥 백부장은 이성진과 만난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이성진은 분명 카반 왕국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성진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지 시가 내려왔다.

    지구의 세뇌당한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올 리가 없 다. 그렇다면 이성진은 세뇌당하지 않았다. 아니면 세뇌를 풀었거나.

    세뇌를 풀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카반 왕국군 내 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이 마음에 걸 렸다. 며칠 전부터 카반 왕국군에 비상이 걸렸다.

    언제든지 이동해 전투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명령이었다. 또한, 무기 를 만들기 위한 마법 도구 생산도 늘어났다.

    오르쿠와의 전쟁을 하기 위해서라 는 소문이 들렸다. 준비하는 마법 도구가 오르쿠를 상대하기 위한 것 들 위주였으니까.

    거기다가 다른 지역에서 인간이 넘 어올 수 있으니 마나막 경계에 있는 부대는 경계하라는 명령도 내려왔 다.

    하지만 카반 왕국군은 말도 안 되 는 명령이라고 생각해 그냥 넘기는 분위기였다. 강력한 명령이 아닌 권 고 수준의 명령이어서 그런 것도 있

    었다.

    하지만 마나막을 카반 왕국에서 만 들었다는 자부심 때문인 것도 있었 다. 지구의 인간 따위가 마법 도구 의 왕국인 카반 왕국에서 심혈을 기 울여 만든 마나막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성진을 만난 제이콥 백부 장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오르쿠 지역에서 넘어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제이콥 백부장님은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네요.”

    제이콥 백부장은 이성진의 싸늘한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주어진 임무만 생각하세요!”

    “알겠습니다.”

    이성진의 말이 맞다. 너무 많은 정 보를 알고 있어도 안 된다. 제이콥 백부장은 자신이 알아야 할 정보라 면 벌써 알려 줬을 것으로 생각했 다. 알려 주지 않았다면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이콥 백부장은 이성진에게 걱정 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만약! 제 신분이 드러나면 바로 자살할 겁니다.”

    이성진은 살짝 이빨에 힘을 줬다. 하고 싶은 말을 막기 위해서였다.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반란 조직

    이다.

    중간 고리만 끊기면 다른 사람을 찾아내기 힘들다.

    중간 고리인 제이콥 백부장은 죽음 을 각오하고 있다. 죽지 말라는 말 을 할 수 없다.

    이성진이 아무 말 안 하는 사이 지프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반 왕국군의 성은 4개의 구역으 로 나누어져 있다. 제일 외곽에는 평민과 노예 그리고 외곽 경비대가 산다.

    2번째 구역에는 평민과 병사들이 산다.

    3번째 구역에는 상류층과 귀족들

    그리고 마법 도구를 만드는 생산 시 설이 있다.

    4번째 구역은 내성이었다. 내성은 아슬란의 왕성이었다.

    지금 도착한 곳은 3번째 구역 입 구였다. 1번째와 2번째까지는 제이 콥 백부장의 신분으로 검문검색 없 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3번째 구역부터는 아니었 다. 제이콥 백부장 혼자라면 몰라도 이성진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다.

    “잠시 기다리시면 마중 나올 겁니 다.”

    제이콥 백부장도 누가 마중 나오는 지 모른다. 3번째 구역으로 들어가

    기 위한 문 옆에 지프를 세워 놓고 기다렸다. 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왜 서 있나 궁금한 듯 쳐다봤다.

    하지만 제이콥 백부장을 보고 다가 오지는 않았다.

    가끔 안에서 나오는 사람을 기다리 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카반 왕국군 소속 마법 술사의 복장을 한 사람이 안에서 나 와 걸어왔다.

    정확하게 지프를 향해 걸어오는 것 을 본 제이콥 백부장은 운전석에서 내렸다. 이성진도 따라 내렸다.

    “제이콥 백부장인가요?”

    “그렇습니다.”

    제이콥 백부장의 대답에도 마법술 사는 다른 질문을 했다.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새가 되고 싶나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인지 모르 겠습니다.”

    제이콥 백부장은 진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 다.

    그러자 마법술사는 웃으며 손을 내 밀었다.

    “자투란입니다.”

    “제이콥입니다.”

    원래 약속된 말을 하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약속된 암호였다.

    “여기 이 사람인가요?”

    “그렇습니다.”

    자투란은 이성진을 위아래로 훑어 봤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다가왔다.

    “이걸 손목에 차세요.”

    이성진은 얇은 금속 팔찌를 받아 손목에 채웠다. 자투란은 이성진이 익숙하게 마법 도구를 손목에 채우 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냥 손목에 채울 수 없는 마법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마나를 이용해 몸에 부착하 는 것이다. 적은 마나를 사용하면 부착이 안 된다. 많은 마나를 사용 하면 마법 도구가 망가진다.

    꽤 정교하게 만들어진 마법 도구기 때문이었다.

    “내성을 제외한 모든 곳을 돌아다 닐 수 있는 신분증입니다. 앞으로 브리더라고 부르겠습니다.”

    팔찌는 브리더라는 사람의 신분으 로 등록되어 있었다.

    자투란은 이성진에게 말한 다음 제 이콥 백부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3일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나면 됩 니다. 만약 3일 후에 아무도 없다면 그냥 돌아가세요.”

    “알겠습니다.”

    제이콥 백부장은 대답한 후에 다시 지프를 타고 떠났다.

    “브리더 님은 저와 함께 가시죠.”

    자투란의 뒤를 따라 3번째 구역 입구로 갔다. 병사들은 자투란과 함 께 오는 이성진을 막지 않았다. 오 히려 고개를 숙이며 검문검색 없이 통과하게 했다.

    자투란과 함께 문을 통과하자 카반 왕국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귀족 또는 고위 관료만 탈 수 있는 고급 마차였다.

    이 마차 역시 마법 도구로 움직인 다.

    시종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기 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어 줬다.

    자투란과 이성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시종 은 말 없는 마부석에 앉았다.

    그리고 곧 마차는 출발했다.

    “이 안의 대화는 밖으로 새어나가 지 않습니다.”

    자투란은 이제 말해도 된다는 듯 이성진에게 말했다. 이성진은 그제 야 궁금한 듯 물었다.

    “의외군요. 귀족이 이 일에 끼어들 다니.”

    자투란은 이성진의 말에 미소 지었 다.

    “카반 왕국 귀족이라고 해서 다 똑 같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것은 다르다고 해도

    모든 종족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자투란은 이성진이 지구인이기 때 문에 모든 종족이라고 말했다.

    “올란 백작가에서 이런 생각을 가 진 사람이 나오다니 신기하네요.”

    이성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성 진의 솔직한 심정보다 자투란은 올 란 백작가를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궁금했다.

    “내가 올란 백작가의 사람인지 어 떻게 알았습니까?”

    “마차에 그려진 문양은 올란 백작 가의 것이니까요.”

    “올란 백작가를 어떻게 알고 있습

    니까?”

    지구에서 올란 백작가를 아는 사람 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 다.

    “혹시 엘 파나에 오셨었습니까?”

    “네. 15년 전에 갔었습니다.”

    이성진의 대답을 듣고 자투란은 이 해하지 못한 것들이 이해됐다. 왜 급하게 지구의 인간을 이곳까지 오 게 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스승인 켈빈이 그렇 게 기뻐했는지.

    “그렇군요. 그래서 켈빈 스승님께 서 기다리고 계셨군요.”

    자투란이 켈빈 스승이 기다린다는 말을 하자 이성진은 무슨 소리를 하 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자투란은 이성진의 표정보다 이성진 의 외모가 신경 쓰였다.

    “15년 전에 엘 파나에 오셨었다면 지금 나이가?”

    “외모와는 다르게 좀 있습니다.” 이성진이 말하자 자투란은 바로 고 개를 숙였다.

    “이거 미안합니다. 저보다도 어린 줄 알았습니다. 저는 28살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자투란의 모습도 의 외였다. 귀족은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래서 스승이라는 켈빈이

    더 궁금했다.

    맥 아저씨에게 듣기로는 카반 왕국 군의 모든 마법 도구 책임자라고 했 다.

    “그런데 조금 전 켈빈 스승께서 저 를 기다린다고 했나요?”

    “네. 켈빈 스승님을 모르시나요?” 켈빈이란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맥 아저씨가 말해 준 것 이외에는.

    “제 기억에는 켈빈이란 사람이 없 습니다.”

    “그런가요?”

    자투란은 켈빈 스승이 그렇게 기뻐 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런데 켈빈 스승이 기다리던 사람 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걱정 이 되었다.

    마법술사로서 뛰어나다. 그리고 제 자 사랑도 많다. 하지만 가끔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때는 무서울 정도 로 일을 많이 준다.

    켈빈 자신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을 많이 하니 제자인 자투란도 일 이 많아지는 것이다.

    천재 마법술사라고 생각하는 켈빈 스승이 힘들 정도로 일을 많이 한 다. 평범한 마법술사인 자투란은 그 럴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못한다고 혼나는 것은 물론 자괴감 이 들 때도 있다. 따라갈 수 없는 실력 차이 때문에.

    “혹시 얼굴 직접 보시면 기억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름이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 다. 그리고 맥 아저씨가 켈빈에게

    무언가 말해 준 것일 수도 있다. 엘 파나의 검은 사신 드라는 것을 안다 면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엘 파나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종족 이 없을 정도인 엘 파나의 검은 사 신 으가 같은 편이 되는데 좋아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마차는 귀족들이 사는 곳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마차가 멈췄다. 그러자 자투란은 바로 마차 문을 열고 내렸다.

    “다 왔습니다.”

    자투란의 뒤를 따라 마차에서 내렸 다. 엘 파나에서 봤던 카반 왕국의 대귀족 저택과 비슷했다.

    지구의 프랑스 저택이라고 생각해 도 된다. 넓은 마당이 있다. 마당 수준이 아니다. 숲과 분수대까지 있 다.

    저택 앞에는 시종으로 보이는 사람 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들어가시죠.”

    자투란의 공손한 말투와 태도에 시 종들은 모두 허리를 굽히며 이성진 에게 인사했다.

    켈빈 마법술사는 안 나온 것 같았 다. 자투란의 말을 들어 보면 나왔 을 것 같은데 안 나왔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는데 안 나오다니.

    저택으로 들어가자 양쪽으로 올라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 거실이 나 왔다. 거실 크기만 해도 40평은 넘 어간다.

    “스승님께서는 위층에 계십니다.”

    자투란은 익숙하게 계단을 올라갔 다. 자투란의 뒤를 따라 2층으로 올 라갔다. 2층에는 중앙과 좌우에 복 도가 있었다. 중앙의 복도로 갔다.

    중앙 복도 끝에 커다란 문이 있었 다. 시종들은 1증에서 대기하고 올 라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올라오지 말라고 말해 놓은 것 같았다.

    자투란이 커다란 문에 손을 댔다. 그러자 자동으로 열렸다. 문 역시 마법 도구로 열리는 것이었다. 강철

    로 만든 문이었다.

    “스승님! 오셨습니다.”

    커다란 방에 책이 가득 찬 책장이 벽에 있었다. 그리고 벽난로와 푹신 한 카펫이 깔려 있다. 문 맞은편 기 다란 책상에 앉아 있던 안경 쓴 남 자가 벌떡 일어났다.

    “플레임 캐논!”

    자투란은 켈빈이 플레임 캐논이라 고 소리치자 급하게 옆으로 피했다. 그리고 켈빈의 손에서 화염방사기 같이 불꽃이 이성진을 향해 날아왔 다.

    하지만 이성진은 아무렇지 않게 팔 을 들어 손바닥을 폈다.

    “아쿠아 배리어다! 장난꾸러기 케 빈!”

    아쿠아 배리어라고 해서 진짜 물로 만든 막이 생긴 것은 아니다. 마나 를 뿜어내 막을 만들어 날아오는 화 염을 막았다.

    후끈한 열기와 불꽃이 방 안으로 퍼져 나갔다.

    자투란은 급하게 자신에게 날아오 는 불꽃을 피했다. 그러면서 이성진 이 너무 쉽게 스승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곧 화염은 사라지고 켈빈은 그 어 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이성진을 향 해 달려왔다.

    “아저씨!”

    “어이쿠!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장 난은 똑같구나!”

    이제는 다 커 버린 켈빈이 달려와 안기자 피하지 않고 받아 주며 말했 다.

    자투란은 스승인 켈빈이 이성진을 아저씨라고 부르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나 이가 많은 것은 알았다.

    하지만 스승인 켈빈 마법술사가 아 저씨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줄은 몰 랐다.

    “케빈 네가 13살 때 만났으니까 지금은 31살인가?”

    “아니요. 32살입니다.”

    켈빈은 이성진에게서 떨어지며 32 살이라고 말했다.

    “맥 아저씨가 말해 준 거냐?”

    “네. 하지만 믿을 수 없어서 아저 씨하고 장난쳤던 플레임 캐논을 사 용했어요.”

    켈빈은 자신이 마법술사가 되기 전 이성진에게 돌을 던지며 플레임 캐 논이라고 소리쳤던 추억을 잊지 않 고 있었다. 이성진이 진짜 엘 파나 의 검은 사신 S라면 아쿠아 배리어 라고 말하며 마나를 이용해 막는다.

    “맥 아저씨의 말을 못 믿었던 거 냐?”

    “아저씨 같으면 믿겠어요?”

    켈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15년 이상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사 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캘빈은 자신 과 이성진만 아는 방법으로 확인한 것이다.

    “저기……. 스승님……

    자투란은 불꽃 때문에 여기저기 그 을린 모습으로 켈빈을 불렀다.

    “아! 자투란, 미안! 내가 전에 이 야기했었지? 내가 죽을 뻔했을 때 나를 구해 주고 나를 마법술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신 분이야.”

    자투란은 켈빈에게 이성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켈빈이 이성진에

    게 말하는 것을 듣고 설마 했다. 그 런데 진짜였다.

    자연스럽게 눈을 크게 뜨며 마치 연예인 보는 둣한 표정을 지었다.

    “영광입니다!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님을 제가 모시고 왔다니……

    자투란도 어렸을 때부터 엘 파나의 검은 사신 S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다. 더군다나 귀족 가문인 올란 백작가 소속이다.

    이성진이 가문의 문양을 쉽게 알아 본 것이 이해가 갔다.

    자투란은 이성진에게 한쪽 무릎을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자투란 드 올란이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님을 뵙습니다.”

    자투란에게 이성진은 영웅이나 다 름없었다.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켈빈 마법술사에게 영웅이니까.

    “아저씨! 자투란은 내 제자이자 친 구입니다. 나이 차이도 3살밖에 안 나서 제가 많이 의지해요.”

    켈빈은 이성진에게 자투란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성 진도 알아들었다.

    “자투란 마법술사. 일어나요.”

    “감사합니다.”

    자투란의 눈은 아직도 신기한 사람 을 보는 듯 반짝였다. 이성진은 자 투란이 일어나자 켈빈에게 몸을 돌

    렸다.

    “케빈 네가 마법술사로 재능이 있 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성 장할 줄은 몰랐다.”

    13살 어린아이 케빈이 카반 왕국 의 모든 마법 도구를 책임지는 켈빈 마법술사가 되었다. 자랑스러우면서 도 뿌듯했다.

    “고아인 저를 아저씨가 맞아 죽기 직전에 구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켈빈 마법술사도 없었어요.”

    이성진은 켈빈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빵 한 개를 품에 안고 빼 앗기지 않으려고 두들겨 맞던 아이 였다.

    “너도 참 독했지. 굶어 죽으나 맞 아 죽으나 똑같다고 악을 지르면서 기절할 때까지 빵을 놓지 않았으 니.”

    켈빈도 이성진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 게 웃었다.

    지금은 그저 추억이 된 일이다.

    “아저씨를 계속 세워 놓고 말했네 요. 이쪽에 앉으세요!”

    켈빈은 푹신한 소파로 이성진의 팔 을 잡아끌었다. 자투란은 방의 구석 으로 가서 벽 안에 숨겨진 공간을 열어 따뜻한 차를 꺼냈다.

    그리고 이성진과 켈빈 마법술사 앞

    에 놓고는 옆으로 가서 다소곳이 서 있었다.

    “이름을 켈빈으로 바꾼 거야?”

    “네. 맥 아저씨가 자일 남작 가문 의 양자로 들어가게 해 주셨어요. 지금은 자일 백작 가문의 가주 켈빈 드 자일입니다.”

    맥 아저씨라면 케빈을 귀족 가문의 양자로 보낼 수 있었다. 마법 도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몰락한 귀족이 라 그런지 귀족 가문과 친분이 있었 다.

    “맥 아저씨도 짓궂게 케빈……. 아 니 켈빈 너라고 안 알려 주고 보내 다니.”

    지금쯤 대전시에서 ‘깜짝 놀랐지!’ 라는 표정으로 있을 맥 아저씨를 생 각하며 웃었다.

    “원래 장난이 심하시잖아요.”

    “켈빈 너만 하겠냐.”

    “그때는 어렸헜고요.”

    켈빈은 자신이 어렸을 때 장난이 심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 는 것 같았다.

    “아저씨. 오르쿠 지역에서 넘어오 셨어요?”

    켈빈은 이성진이 오르쿠 지역에서 넘어왔다는 것까지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맞아. 맥 아저씨가 자세한 이야기 안 해 줬어?”

    “간단하게 으가 돌아왔다. 그렇게 말하고 어떻게 만나는지만 알려 주 셨어요.”

    으가 돌아왔다는 것 한 마디로 충 분한 정보 전달이 가능했다. 맥 아 저씨와 켈빈은 항상 s라고 불렀었 다.

    “지금 아슬란 공왕은 마나막을 열 어 오르쿠 지역으로 넘어가려고 해 요.”

    켈빈의 말에 놀랐다. 아슬란 공왕 이 마나막을 열려고 할 거라고까지 는 상상하지 못했다.

    “맥 아저씨 말고 마나막을 열 수 있는 마법술사가 있어?”

    마나막이 사라진 이후 오르쿠와 전 쟁할 줄 알았다. 만약 마나막을 열 수 있다면 오르쿠가 불리했다.

    오르쿠는 마나막을 열 수 없다. 아 슬란 공왕이 마나막을 열어 오르쿠 를 기습하고 도망친다면 오르쿠는 쫓아올 수 없다.

    “네. 마나막을 만드는 기술은 맥 아저씨가 제공했지만 그 마나막을 만든 것은 다른 마법술사니까요.”

    켈빈의 말을 들으니 마나막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맥 아저 씨가 기술을 제공했다고 해서 다른

    마법술사가 쉽게 마나막을 열 수 있 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맥 아저씨의 기술을 이해할 수 있 는 마법술사가 있어?”

    이성진의 질문에 켈빈이 씨익 웃었 다. 저 웃음은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켈빈 너야?”

    “네. 맥 아저씨의 제자나 다름없는 제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어요?”

    맥 아저씨가 나중에 괜찮은 마법술 사가 될 거라고 하더니 괜찮은 정도 를 넘어선 것 같았다.

    “언제 넘어가는데?”

    “마나막을 열어서 오르쿠 지역으로

    넘어가 전쟁하는 것은 오늘 결정 났 어요. 원래는..

    켈빈은 원래 아슬란 공왕이 세운 계획을 말해 줬다. 처음에는 마나막 이 사라진 다음 오르쿠와 전쟁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법 도구로 무장했 다 해도 오르쿠의 강함은 무시할 수 없었다. 카반 왕국이 오르쿠를 이기 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해도 피해를 많이 입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회의 끝에 마나막을 열어 오르쿠를 기습하기로 했어요. 마나 막을 여는 준비는 제가 하고 한 달 후 넘어가요.”

    “맥 아저씨에게 연락했어?”

    “아저씨 오기 전에 연락했어요.”

    “뭐라고 해?”

    “뭐라고 하기는요. 그러냐? 알았 다! 그러고 끝이던데요?”

    맥 아저씨는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 는 것 같았다. 심각해진 이성진의 표정을 본 켈빈이 미소 지으며 말했 다.

    “맥 아저씨는 아저씨를 믿으니까 걱정 안 하는 거예요.”

    옆에 서 있던 자투란은 고개를 끄 덕였다.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가 있다. 그 어떤 것보다 든든했다.

    “한 달 안에 세뇌 마법진에 마법

    도구를 설치하면 되는데 맥 아저씨 가 걱정하겠어요?”

    다른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 다. 변경된 계획은 오르쿠를 이쪽 지역으로 넘어오게 해서 아슬란 공 왕을 성에서 내보내는 것이었다.

    맥 아저씨가 한 달 안에 마나막을 차단해 오르쿠가 넘어올 수 있게 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켈빈! 몇 가지만 묻자.”

    “네. 아저씨!”

    켈빈은 이성진을 믿는다고 해도 심 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이성진을 보 며 긴장했다.

    “기존 세뇌당한 카반 왕국 사람들

    이외에 지구에 와서 세뇌한 지구 인 간들도 세뇌 마법진에 마법 도구를 설치하면 세뇌가 풀려?”

    “네. 풀려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 요.”

    켈빈은 맥 아저씨가 이성진에게 상 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기술적인 이야기여서 안 했 을 수도 있다.

    “시간이 걸려?”

    “네. 세뇌 마법진에 마법 도구를 설치하고 바뀐 세뇌 마법이 전체로 퍼져 나가려면 1시간 정도 걸려요. 만약 중간에 멈추거나 아슬란 공왕 이 개입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

    켈빈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슬란 성격 아시잖아요. 자신이 가지지 못하면 파괴하는 성격을요.”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 세뇌 마법

    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세뇌 한 사람들에게 자살 명령을 내릴 수 도 있었다.

    원래 자신의 부하들만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기사단과 마법 병 단 그리고 친위대만 10만 명 정도 다.

    세뇌가 필요 없는 아슬란 공왕에게 충성하는 부하들만 데리고 다시 시 작할 수 있다.

    그 대가로 100만 명이 넘는 대전 지역 사람들이 죽는다. 카반 왕국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가 그 누구도 모르게 마법 도구를

    설치하시면 나머지는 저와 맥 아저 씨가 책임지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저씨가 그 누구도 모르게 마 법 도구를 설치하는 겁니다.”

    켈빈이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인정 한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찌르르 울 리는 감각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 었다.

    “켈빈! 마나막 여는 것을 미룰 수 있어?”

    켈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아니더라도 억지로 마나막을 열 수는 있어요.”

    그럼 결론은 하나였다. 아슬란 공 왕이 마나막을 열기 전에 오르쿠를

    데리고 와야 한다.

    “켈빈! 잘 들어라. 맥 아저씨가 아 직 그 이야기는 안 한 것 같은데 내가 세운 계획은……

    이성진은 오르쿠를 이쪽 지역에 넘 어오게 해서 아슬란 공왕을 유인해 내려는 계획을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켈빈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 를 끄덕였다.

    “아저씨 말대로 아슬란이 오르쿠를 상대하기 위해 성을 비운다면 더 좋 네요. 성에서 멀면 멀수록 아슬란이 세뇌 마법진에 영향을 줄 수 없으니 까요.”

    켈빈은 몇 가지 마법 도구를 추가

    로 설치하면 아슬란이 세뇌 마법진 에 개입할 수 없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세뇌 마법진이 있는 곳을 언제 살펴볼 수 있어?”

    성의 구조를 빨리 파악한 다음 맥 아저씨에게 가야 했다. 생각보다 빠 르게 움직여 오르쿠를 데리고 와야 한다.

    “오늘은 늦어서 안 되고요. 내일 아침 제 경호 기사로 위장해서 같이 가시면 돼요.”

    “경호 기사? 지구의 인간을 경호 기사로?”

    마법 도구를 책임지는 켈빈의 경호

    기사가 카반 왕국군이 아닌 지구 인 간이라는 것은 의심받기 딱 좋았다.

    “그래서 브리더라는 신분을 준비한 겁니다. 실제 제 경호 기사입니다.”

    지금 브리더는 저택 지하의 특수한 방에 있었다. 모든 마법 탐지를 막 는 방이었다. 이성진이 브리더의 신 분으로 돌아다녀도 걸리지 않기 위 해서는 진짜 브리더는 지하 방에 있 어야 했다.

    “그리고 브리더는 제 개인 경호 기 사이기 때문에 항상 마법 투구를 쓰 고 다녔어요. 얼굴을 아는 사람은 저와 자투란뿐이고요. 그리고 예전 에 크게 다쳐서 말을 못 하는 것으

    로 알아요.”

    “진짜 말을 못 해?”

    “아니요. 못 하는 척하는 것이에 요.”

    켈빈의 말을 들으니 왜 브리더라는 경호 기사를 뒀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안 왔다면 브리더가 세뇌 마 법진에 마법 도구를 설치할 생각이 었어?”

    켈빈은 이성진의 말에 ‘역시 아저 씨!’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뇌 마법진에 접근할 수 있 는 사람은 저와 아슬란 공왕뿐입니 다. 브리더를 세뇌 마법진에 남겨 두고 저는 밖을 막을 계획이었어

    요.”

    “알았다. 그럼 내일 아침에 세뇌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가자.”

    “네. 준비해 놓을게요.”

    준비해 놓는다고 말한 다음 켈빈은 더 말할 것이 있는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적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었 다. 하지만 자투란은 스승인 켈빈의 머뭇거리며 약간 수줍은 듯한 표정 을 짓는 것을 처음 봤다.

    “켈빈! 또 말할 거 있어?”

    “저기……. 다 커서 이런말 하기 좀 그런데요.”

    “괜찮으니까 말해.”

    켈빈은 오늘 아니면 언제 또 이성

    진과 함께 있을까 생각하며 말했다.

    “오늘 밤은 저하고 같이 있어 주시 면 안 될까요?”

    “뭐?”

    이성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과는 다르게 자투란은 옆에서 당 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듣기에 따라 서는 오해할 만한 말이기 때문이었 다.

    “예전에 아저씨와 함께 밤을 새우 며 대화했던 것이 기억나서 그래 요.”

    자투란은 당황하다 못해 이제는 웃 음이 나오려고 했다. 언제나 당당하 고 카리스마 넘치던 스승인 켈빈이

    애원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이성 진에게 말하니 당연했다.

    “어째 켈빈 너 갑자기 18년 전 꼬 마 아이로 돌아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어 요. 전 아저씨 앞에서는 13살 꼬마 아이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성진은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 다. 어린 꼬마 켈빈의 모습이 보였 기 때문이었다.

    “좋다. 여기서 밤새 같이 이야기하 자. 자투란 마법술사도 같이 있으려 면 앉아요!”

    “아닙니다. 저는 서 있겠습니다!” 켈빈이 나가라고 눈치를 줬다. 하

    지만 자투란은 일부러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스승인 켈빈의 다른 모습 을 보고 싶어서기도 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와 함께 밤새도록 있고 싶어서다.

    켈빈은 자투란이 안 나갈 것을 알 았다. 어쩔 수 없이 자투란과 함께 아침이 될 때까지 이성진과 함께 엘 파나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바로 내성으 로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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