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28화 (28/50)
  • 5장. 대전으로.

    3일 뒤 이성진은 똘이를 데리고 하늘의 검과 하늘의 딸 그리고 오르 쿠 대전사들과 인간 대표인 강한결 과 장재웅, 김한수, 이호영, 진명수 와 함께 북쪽 마나막 앞에 있었다.

    마나막 앞에서 가장 먼저 하늘의 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크홍! 위대한 왕이시여! 꼭 가셔 야 하겠습니까?”

    “가야 해!”

    단호한 이성진의 말투에 하늘의 검

    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하늘의 딸과 강한결에게 이성진이 떠나지 않도록 설득하려고 의논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하늘의 검이 설득 당했다.

    하늘의 딸은 남편인 하늘의 검이 다시 오르쿠를 장악하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이성진을 배신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성진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이성진을 제외 하고 가장 강한 오르쿠인 하늘의 검 이 이성진이 없는 동안 오르쿠를 장 악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었 다.

    이성진이 없다면 오르쿠의 구심점

    은 당연히 하늘의 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강한결은 맹목적으로 이성 진을 믿었다. 무인도에서 거제도로 건너가 거제도의 소인족을 장악했 다.

    그다음 고성 지역으로 넘어와 결 국, 오르쿠도 장악했다.

    강한결은 딸인 아라를 찾아가는 이 성진의 여정이 위대한 여정이 될 것 으로 생각했다.

    이성진이 가는 곳마다 결과가 같으 니까.

    딸인 아라가 있는 서울까지 갔을 때 대한민국에 떨어진 엘 파나의 종 족들은 모두 이성진을 따를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하늘의 검의 의견에 반대했 다.

    장재웅과 강한결이 이성진에게 다 가왔다.

    “장재웅 씨. 고성에서 만난 이후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안 한 것 같 네요.”

    장재웅은 두 손을 모으고 과분하다 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위대한 왕인 이성 진 님을 만나서 행운이었습니다.”

    장재웅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장재 웅은 기절해 있는 이성진을 구해 줬 다. 오르쿠가 발견하기 전에 장재웅

    이 구해 준 것이 행운이 아니었다.

    이성진을 구하는 행운이 있었기 때 문에 오르쿠와 인간이 친구가 되어 같이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오르쿠와 싸운 이전 일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나간 일에 얽매여 미래를 포기하는 그런 어리석은 일 을 하면 안 된다.

    “이성진 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강 한결과 함께 사람들의 능력을 올리 고 오르쿠와 함께 미래를 준비하겠 습니다.”

    장재웅의 말이 끝나자 강한결이 말 을 이었다.

    “저는 왕의 위대하심을 널리 알려

    충성스러운 사도들을 모으겠습니 다.”

    강한결은 벌써 이성진의 일대기를 적은 책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사람들과 오르쿠를 모아 이성 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 줬다.

    이성진도 알고 있으면서 막지는 않 았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강한결을 중심으로 사람과 오르쿠가 모이는 것은 사실이니까.

    “사도까지 만들 필요는 없고 다 함 께 힘을 합치며 인간과 오르쿠가 반 목하지 않게 힘써 줘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냥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는 위대

    한 왕이신 이성진 님이 있어야 가능 한 일입니다.”

    광신도에 가까운 눈빛을 하며 말하 는 강한결에게 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 잘 부탁해요.”

    “무조건 잘하겠습니다.”

    강한결이 머리 숙이고 대답하자 이 호영과 진명수가 다가왔다. 이성진 은 두 사람에게 씨익 웃어 줬다.

    이호영과 진명수도 씨익 웃으며 이 성진에게 답해 줬다.

    어떻게 보면 이호영과 진명수는 이 성진의 제자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 람은 이성진에게 훈련받아 능력이

    크게 발전했다. 일반 오르쿠 전사와 싸워도 패하지 않을 정도로.

    이호영은 이성진을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럴 수 없 었다. 이성진을 껴안았다가는 하늘 의 검이나 강한결에게 어떤 일을 당 할지 모른다.

    하늘의 검과 강한결에게 이성진은 진정한 왕이면서 신과 같은 존재이 니까.

    “위대하신 왕을 만나 고마웠습니 다.”

    이호영 역시 이성진을 만나지 않았 다면 지금까지 허접한 초인 관리자 이상이 되지 않았을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성진이 약속한 대로 자신은 더 강해졌다.

    그것을 보답하는 길은 이성진이 원 하는 대로 사람들을 돌보며 오르쿠 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이호영을 만나 반가웠어. 다 시 만날 거야.”

    “물론입니다. 다시 만나는 날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호영이 고개를 숙이자 진명수는 그냥 달려와 이성진을 껴안았다. 외 모로는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성

    진이 15년 전부터 엘 파나에 갔었 고 나이가 40대가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버지 같은 생각이 들었 다.

    “왜 이래?”

    “그냥요. 조금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요?”

    “다 큰 사내자식이 뭐하는 짓이 야?”

    이성진이 말은 그렇게 해도 진명수 를 밀어내거나 하지 않았다. 진명수 의 마음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그런 마음.

    “같이 넘어가고 싶은데……

    “명수 너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 야. 그때까지 더 연습하고 능력을 키워!”

    사실 가장 강해진 사람은 진명수였 다. 이성진에게 훈련받아 약점인 육 체도 일반 초인 관리자처럼 강해졌 다.

    전자기를 이용해 쇠구슬을 쏘아 보 내는 것도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 에도 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일반 오르쿠 전사를 소리 없이 죽일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아주 깜짝 놀라 게 해 드릴게요.”

    “그래라. 이제 떨어져라.”

    진명수는 하늘의 검과 강한결이 노 려보는 둣한 느낌을 받으며 이성진 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진짜 노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의 검과 강한결의 눈빛은 어디 서 감히 위대한 왕의 몸에 손을 함 부로 대냐였다.

    마지막으로 이성진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김한수였다. 창고를 관리하 는 일반인이었다가 지금은 장재웅과 강한결을 도와 오르쿠가 장악한 지 역의 모든 창고와 농장을 관리했다.

    “위대한 왕께서 저와 저의 식구들 에게 해 주신 것은 영원히 잊지 않 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위대한 왕

    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김한수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인사 였다. 초인이 된 관리자처럼 능력도 없다. 그저 이성진을 만나 창고를 관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혜택을 얻었다.

    가족의 안전이라는 가장 큰 혜택 으

    “저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모두를 위해 일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 다.”

    “위대한 왕을 위해 일하는 것이 모 두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김한수도 강한결의 이야기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첫날부터 이성진의 이야기를 듣고 더 열심히 나가는 것 은 물론 사람들을 모았다.

    이성진을 따르는 것이 사람들을 위 한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 었다.

    오르쿠 지역의 모든 창고와 농장을 관리하는 책임자이다 보니 이야기 모임에 나오는 사람의 숫자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너무 눈을 반짝이며 공손하게 말했 다. 이래라저래라 할 시간도 없었다.

    김한수는 뒤로 물러서 다른 사람과 오르쿠들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러

    자 이성진은 사람들과 오르쿠를 주 욱 둘러봤다.

    짧은 기간에 정도 들고 많은 것을 이뤘다. 파나 신의 심장의 도움을 받은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이다. 그렇다고 미안해하거나 은 것은 없다.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있는 것은 다 이용한다. 죄책감 같 이용할 수 그것이 살

    아가는 법이었다. 특히나 이런 세상 이 되어 버린 곳에서는.

    “자! 그럼 모두 성녀 엘리스가 보 내는 적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기를 바란다. 내 목적을 이루면 꼭 다시

    찾아온다고 약속하겠다.”

    딸인 아라의 안전을 확인하고 마나 막이 사라졌다면 찾아오는 것은 당 연했다. 이들이 믿고 따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니까.

    만약 성녀 엘리스가 보낸 군대에 의해 이들이 다 죽었다 해도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복수해 줄 생 각이다. 물론 전제조건인 딸 아라의 안전이 확보된 다음에 가능한 일이 었다.

    “똘이야! 가자!”

    “ 컹!”

    더 머뭇거렸다가는 안 될 것 같았

    다. 그래서 마나막에 손을 댔다. 그 리고 똘이의 마나가 마나막의 마나 와 성질이 같아지도록 도왔다.

    이성진의 손이 마나막을 통과하자 하늘의 검이 소리치며 무릎을 꿇었 다.

    “킁! 위대하신 왕께 영광과 충성 을!”

    하늘의 검이 소리치며 무릎을 꿇자 오르쿠 대전사와 사람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위대하신 왕께 영광과 충성을!] 이성진은 뒤돌아보지 않고 똘이와 함께 마나막을 넘어갔다. 마나막을 넘어가기 위해 집중했기 때문이었

    다.

    이성진과 똘이가 마나막을 넘어갔 어도 사람들과 오르쿠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쉬우면서도 혹시 다시 넘어올까 싶은 기대도 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록 그 누구도 먼저 돌아가자는 말을 하 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주술사 하늘의 딸에게 급한 통신 주술이 왔기 때문이었다. 하늘의 딸 은 통신 주술의 내용을 듣자마자 하 늘의 검에게 급하게 말했다.

    “하늘의 검! 남쪽 지역에 소인족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주술사 하늘의 딸의 말에 모두 놀 랐다. 하늘의 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크홍! 소인족이 어떻게? 몇 명이 나‘?”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직접 가 봐 야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최소 수천 명이라고 해요.”

    하늘의 검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 다. 남쪽 지역에서 소인족이 나타났 다. 이성진의 부하 소인족이 아닐까 싶었다.

    “크흥! 하늘의 딸! 전사들에게 소 인족을 공격하지 말고 포위만 하라 고 전해!”

    “알았어요.”

    주술사 하늘의 딸도 하늘의 검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만약 소인족이 거제도에서 건너왔다면 공격하면 안 된다.

    주술사 하늘의 딸은 오르쿠 전사들 에게 소인족을 포위하고 절대 공격 하지 말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주술사 하늘의 딸 통신이 끝나자마 자 하늘의 검은 대전사와 사람들에 게 소리쳤다.

    “킁! 모두 남쪽으로 간다!”

    오르쿠들은 마나를 이용해 달려가 고 사람들은 크롤링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달려갔다.

    쉬지 않고 달려 3시간 만에 소인 족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리고 소인족이 어떻게 넘어왔는 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마나막 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술사 하늘의 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자세히 봤다. 그리 고 소인족이 계속 넘어오는 것을 보 니 마나막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 었다.

    마나막과 마나막이 연결되어 있었 다. 그러니까 거제도의 마나막과 오 르쿠 지역의 마나막을 연결한 통로 를 만든 것이다.

    마법을 사용 안 하는 오르쿠는 생

    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소인족만 넘어오지 않았다. 무장한 인간들도 같이 넘어왔다.

    소인족과 인간들은 진형을 짜고 오 르쿠를 경계했다. 소인족 숫자만 1 만 명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또한 소인족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 다.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 다. 소인족의 날 선 분위기에 오르 쿠 전사들도 홍분했다.

    걸어온 싸움을 피하는 오르쿠는 없 으니까.

    이러다가 전투가 벌어질지도 몰랐 다. 하늘의 검은 소인족의 정체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홍! 내가 가서 소인족과 이야기 하겠다!”

    하늘의 검이 소인족을 향해 가려 하자 강한결이 나섰다.

    “굳이 하늘의 검께서 나가 이야기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크흥! 한결! 좋은 생각이라도 있 나?”

    “소인족만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인간들도 있습니다. 저들 중에는 위 대하신 왕께서 말한 강철진이란 인 간도 있을 겁니다.”

    하늘의 검은 강한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검도 강한결의 이

    야기 모임에 나간다. 거제도 이야기 를 들었다.

    “크흥! 인간과 대화하는 것은 인간 이 낫겠지. 좋다! 나 대신 한결이 간다.”

    “감사합니다.”

    강한결은 오르쿠 진영에서 나와 소 인족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소인 족 진영에서는 강한결이 다가오자 특수부대 전투복을 입고 총으로 무 장한 남자가 나왔다. 허리춤에는 짧 은 검을 차고 있었다.

    소인족 진영까지 300m 정도 떨어 진 거리에서 강한결은 멈췄다. 그리 고 소리쳤다.

    “강철진 소령과 대화하고 싶습니 다!”

    강한결의 말에 소인족 진영에서 나 온 남자가 소리쳐 대답했다.

    “내가 강철진이요!”

    강한결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소 리 쳤다.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의 충성스 러운 신하인 강한결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철진은 강한결이 이성진을 위대 하신 왕이라고 부르자 놀란 표정을 했다. 이성진이 오르쿠 지역으로 넘 어갔다는 것을 알고 많은 준비를 하 고 왔다.

    소인족의 정보에 의하면 오르쿠는 호전적이면서 적에게 절대 굽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넘어오자마 자 들리는 소리는 위대하신 왕 이성 진이었다.

    “강한결 씨라고 했나요?”

    일단 강철진의 목소리가 부드러워 졌다. 그리고 아들과 이름이 똑같아 서 더 부드럽게 말한 것도 있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의심을 풀지는 않았 다. 이성진이 이곳에 있으면 몰라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은 어디 있 습니까? 만나고 싶습니다.”

    강철진의 질문에 강한결은 아무렇 지 않게 대답했다.

    “조금 늦으셨습니다. 몇 시간 전에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께서는 북쪽 으로 가셨습니다.”

    강철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 나막을 연결한 유투진 마법사의 말 을 빌리면 마나막을 그냥 통과할 수 없다.

    강철진은 다시 퉁명스러운 목소리 로 질문했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강철진의 퉁명스러운 말에 강한결 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믿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강한결은 이성진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강철진은 일단 강한결의 이야기를 들어 줬다. 그냥 들어 주는 것은 아 니었다.

    강한결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소인 족과 강철진에게 있어 손해가 아니 기 때문이었다.

    아직 소인족 부대가 다 넘어오지 않았다. 강력한 오르쿠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 2만 명의 정예 소인 족이 필요했다.

    2만 명의 정예 소인족이 오르쿠와

    싸우며 시선을 끄는 동안 강철진과 특수부대원들은 이성진을 찾을 계획 이었다.

    마나막을 연결해 넘어온 것을 오르 쿠에게 너무 빨리 발각되었다. 2만 명의 정예 소인족이 다 넘어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강한결이 벌어 준다는데 안 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강철진은 강한결의 이야기 를 들으면 들을수록 믿을 수밖에 없 었다. 거제도에서 이성진과 함께하 지 않았다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이야 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드님 이름이 제 이름과 똑같다

    는 것을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 실 겁니다.”

    “그래서요?”

    그래도 강철진은 의심을 풀지 않고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따님을 구하고 장목면 비밀 기지 까지 가는 길에……

    강철진은 강한결이 말하는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존경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 다. 저런 표정까지 꾸밀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해도 이야기 하는 내내 눈빛과 표정을 똑같이 유 지할 수는 없다.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께서는 마 나막 생성 마법진을 통해 고성 지역 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장재웅 아 저씨를 만나……

    소인족 마법사인 유투진은 물론 사 르바와 케이루 그리고 저반카와 오 피앙의 이름까지 다 나왔다.

    더는 의심할 수 없었다. 강철진은 손을 들어 강한결의 이야기를 멈추 라는 신호를 줬다. 강한결은 이야기 를 멈추고 강철진의 말을 기다렸다.

    “진짜 이성진 대령님이 이곳을 떠 났습니까?”

    강한결은 강철진이 이성진을 대령 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

    다.

    “거제도에서는 대령이셨는지 몰라 도 이곳에서는 위대하신 왕이십니 다. 말조심하시죠.”

    강철진은 오히려 강한결의 저런 태 도에 더 믿음이 갔다. 이성진을 진 짜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 면 나오지 않을 태도라고 생각했다.

    “말을 정정하겠습니다.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께서 진짜 마나막을 넘 어 떠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몇 시간 전에 떠나셨 습니다.”

    강철진은 몇 시간만 빨리 왔다면 이성진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그리고 오르쿠가 적이 아니라면 함께 힘을 합쳐야 했다.

    강철진은 소인족에게 들은 정보를 가지고 강한결에게 요구 사항을 말 했다.

    “좋습니다. 이성진 님이 이곳의 위 대하신 왕이시라면 오르쿠 중 위대 한 하늘의 검과 하늘의 딸을 데리고 오십시오. 우리 쪽에서 확인할 겁니 다.”

    이 지역을 오르쿠가 장악했다는 것 은 넘어와서 알았다. 하지만 하늘의 검과 하늘의 딸의 얼굴을 아는 소인 족이 있다. 마법사인 유투진과 특수 부대인 크로우의 대장인 저반카였

    다.

    두 소인족은 죽은 하늘쿤 왕자와 함께 만났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서 의논한 다음……

    강한결이 다 말하기도 전에 하늘의 검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흥! 의논할 필요 없다!”

    하늘의 검은 강한결과 강철진의 대 화를 멀리서 마나를 이용해 듣고 있 었다. 강철진의 요구 사항을 듣자마 자 조용하고 빠르게 달려온 것이다.

    소인족이 반응하기도 전에.

    하늘의 검이 강철진 앞에 나타나자 소인족 일부가 달려 나왔다. 검은색

    석궁을 들고 마나를 이용해 빠르게 달려오는 소인족은 특수부대 크로우 였다. 가장 앞에는 저반카가 있었다.

    크로우들은 순식간에 달려와 강철 진의 뒤에 섰다. 저반카는 강철진의 바로 옆에 서서 하늘의 검이 공격하 면 막을 준비를 했다.

    하늘의 검은 저반카를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검은색 석궁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기억을 해냈다.

    “크홍! 소인족 크로우군. 하늘쿤 왕자와 같이 있던 놈 맞나?”

    저반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 다.

    “위대한 하늘의 검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말은 반갑다고 해도 표정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했다. 하 늘의 검이 공격하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해도 강철진을 보호할 수 없 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반카의 귀에 의외의 말이 들렸다.

    “크홍! 이제 하늘의 검이다. 위대 하신 왕 이성진 님 이외에는 위대한 을 사용할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르쿠가 자신의 이름을 바꿨다. 그것도 이성 진을 높이기 위해서다.

    자존심 강한 오르쿠가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잘 아는 저반카는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강철진에게 말했다.

    “강철진 씨. 아저씨는 진짜 왕이 되신 것 같아요.”

    강철진은 저반카의 말에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역시 이성진 대 령……

    대령이라고 말하려다가 강한결의 표정을 보고 말을 바꿨다.

    “아니…….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 이시네요.”

    “크흥! 오르쿠는 위대하신 왕 이성 진 님의 부하다. 소인족도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의 부하 아닌가?” 하늘의 검 말에 저반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 소인족은 위대하 신 왕 이성진 님의 부하입니다.”

    “크훙! 그럼 오르쿠와 소인족은 친 구다. 싸울 이유가 없다.”

    하늘의 검의 말이 끝나자 강한결이 끼어들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간과 오르쿠 그리고 소인족이 힘을 합쳐 성녀 엘리스가 보내는 적을 상대해 야 합니다. 그것이 위대하신 왕 이 성진 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 다.”

    강철진과 저반카는 성녀 엘리스가 보내는 적이 있을 거라는 말에 놀랐 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급한 것이 있었다.

    오르쿠와 소인족이 같은 편이라는 것을 각자의 진영에 알려야 했다.

    저반카는 부하 소인족 한 명을 소 인족 진영에 보내 오르쿠가 적이 아 님을 알렸다. 하늘의 검은 간단하게 마나를 담은 목소리로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의 부하가 맞다.’ 소리치 는 것으로 오르쿠 진영에 알렸다.

    덕분에 날선 긴장감은 사라졌다. 그리고 소인족이 어떻게 마나막을

    연결해 넘어올 수 있는지 알게 되었 다.

    마법사 유투진의 작품이었다.

    거제도의 마나막 성질을 알아낸 다 음 일부분을 차단하는 마법진을 만 들어 냈다. 하지만 차단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거제도 마나막을 넘어온 다음 또 문제가 있었다.

    오르쿠 지역의 마나막은 거제도의 마나막과는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 었다. 유투진은 어렵게 오르쿠 지역 의 마나막의 성질을 알아냈다.

    그다음 마나막을 차단하는 것이 아 닌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마법진을

    만들었다. 마나막에 구멍이 뚫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마나막에 구멍이 뚫리면 마나막은 자연스럽게 뚫린 구멍을 메꾸려고 한다. 하지만 마나막끼리 연결해 버 리면 구멍이 뚫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나막이 통로를 메꾸려 하지 않는 다.

    이것을 알아내려고 유투진은 자신 의 모든 능력을 동원했다. 덕분에 7 단계 마법을 넘어서 8단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 다.

    오르쿠와 소인족이 같은 편인 것을 알게 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처음 한 일은 이성진이 넘어간 북쪽 마나막으로 가는 것이었다.

    오르쿠 지역 마나막 일부를 차단할 수 있는 마법진을 유투진이 만들 수 있었다. 혹시 이성진이 아직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 다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유투진이 마나막을 차단하 고 오르쿠들과 함께 넘어갔을 때 이 미 이성진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간 후였다.

    다른 지역의 마나막의 성질은 또 다르다. 유투진은 다시 다른 지역의 마나막의 성질을 알아내 연결할 수

    있는 마법진 연구를 시작했다.

    그 시각 이성진은 대전을 향해 가 고 있었다.

    이성진은 오르쿠 지역 마나막을 넘 어간 다음 똘이와 함께 북서쪽으로 움직였다. 다른 지역의 마나막 역시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북서쪽 지역으로 들어가자 마자 나온 곳은 덕유산이었다.

    덕유산을 넘으면 바로 무주가 나온 다. 무주에서 도로를 따라 금산을 지나 대전까지 갈 생각이었다.

    초인의 능력이 있는 이성진과 똘이 가 덕유산을 넘는 것은 쉬웠다.

    그런데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인 35번 도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을 때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을 발견 했다.

    인간 군대였다. 하지만 지구의 인 간은 아니었다. 창과 방패 그리고 검을 찬 인간들이었다. 군대가 주둔 하고 있는 곳의 깃발 문양을 보니 어디 군대인지 알 수 있었다.

    인간들의 왕국인 카반 왕국 깃발이 었다.

    군대를 우회해 갈 수도 있었다. 하 지만 이성진의 감각이 피하지 말라 고 알려 줬다. 카반 왕국이면 마법 술사가 만든 마법 도구를 다른 왕국 에 파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성진이 엘 파나에서 사용했던 마 법 도구를 만든 마법술사도 카반 왕 국 사람이었다.

    잘하면 마법 도구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법 도구를 구하려면 의심받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들어야 했다.

    그냥 지역 사람인 것처럼 위장했 다. 덕유산을 빠르게 넘어오느라 옷 은 먼지 범벅이다. 35번 고속도로를 따라 아래로 한참 내려가야 카반 왕 국 영역 마나막이다.

    그 사이에 사람이 사는 마을도 꽤 있다. 지도를 확인하니 가장 가까운 마을은 안성면이었다. 안성면 안에 장기리와 사전리, 진도리 같은 작은 마을도 있었다.

    카반 왕국군의 주둔지를 향해 가려

    는 순간 안성면 방향에서 5명의 사 람이 오는 것이 보였다.

    입은 옷을 봐서는 대한민국 사람이 분명했다. 카반 왕국군 주둔지에서 는 저들을 확인할 수 없는 위치였 다.

    저 사람들과 합류할 수 있다면 쉽 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로 물러나 5명과 합류하기 위해 35번 고속도로 옆으로 조용하게 달렸다.

    그리고 커브 구간에서 35번 고속 도로 위로 올라와 주저앉았다.

    “똘아! 내가 말하기 전까지 절대 아무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컹!”

    똘이는 작게 짖었다. 지금 상황에 크게 짖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곧 5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5명은 여자 2명에 남자 3명이었다. 50대 남자가 가장 앞에서 걷고 있 었다. 5명은 이성진과 똘이를 보고 도 놀라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50대 남자가 먼저 인사했다. 그리 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냥 지나 가면 안 된다.

    “저기 물 좀 있나요?”

    지나가려던 사람들이 멈췄다. 그리

    고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생수병을 하나 꺼냈다.

    “여기요. 마시고 돌려주세요.”

    생수병 안에는 물이 가득했다. 하 지만 생수병을 재사용하는 것 같았 다. 새것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생수병을 받아 두 모금 먹은 다음 손바닥에 물을 따라 똘이에게도 먹 였다. 똘이가 할짝할짝 물을 마시자 5명 중 여자 2명이 관심을 보였다. 똘이의 덩치가 커지기는 했어도 귀 여운 구석이 남아 있다. 이빨과 발 톱만 드러내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

    다.

    “아저씨! 개 이름이 뭐에요?”

    “똘이요!”

    똘이는 눈치 빠르게 꼬리를 흔들며 이름을 물어본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를 다리에 비볐다. 여자 는 그런 똘이의 몸을 만지며 좋아했 다.

    “우리 태일이도 살아 있었으면 좋 았을 텐데……

    개를 길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똘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영아! 이제 가자!”

    “네. 아빠!”

    50대 남자가 아빠인 것 같았다.

    “여기 생수병이요.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50대 남자는 이성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는 거야 상관없는데……. 어디까지 갑니까?”

    “대전까지 가려고요.”

    대전이라는 말에 지영이란 여자가 좋아했다.

    “어머. 우리도 대전까지 가는 데……

    대전까지 간다고 말하면서 똘이를 계속 쳐다봤다. 그런 지영의 모습을 본 50대 남자는 얕은 한숨을 쉬었 다. 딸이 얼마나 개를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50대 남자는 이성진에게 악수하자 는 듯 손을 내밀었다.

    “김진명입니다.”

    이성진은 바로 손을 잡았다.

    “이성진입니다. 여기는 똘이고요.”

    “ 컹!”

    “네. 대전까지만 같이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골치 아픈 일에는 엮이 기 싫으니까요.”

    김진명이 말하는 골치 아픈 일은 통행증이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이었다. 엘 파나의 성이 떨어진 이 후 사람들 대부분이 세뇌당했다.

    하지만 세뇌당해 같은 편이 되었다

    고 해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 다.

    카반 왕국군이 발행하는 통행증이 있어야 했다. 가끔 통행증 없이 돌 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대 로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것 이 맞았다.

    그런데 김진명은 이상하게 이성진 에게 마음이 쓰였다.

    마음이 쓰이는데다가 딸인 지영이 가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이 보이 자 승낙한 것이다.

    “골치 아픈 일이 안 생길 겁니다.”

    “믿겠습니다.”

    이성진은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른다. 그냥 김진명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다. 그리고 이성진의 말은 김진명을 진짜로 안 심시 켰다.

    “대전까지 가려면 바쁘니까 빨리 가죠. 저녁에나 도착할 텐데.”

    김진명이 몸을 돌려 걸어가자 이성 진도 바로 뒤따라갔다. 김진명의 딸 인 지영은 똘이와 함께 걸었다.

    그리고 카반 왕국군 주둔지를 무사 히 지나 김진명의 말처럼 저녁이 되 자 대전 외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전 외곽에도 카반 왕국군이 검문 검색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만난 카반 왕국군처럼 대충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법 도구의 왕국이란 명성 처럼 대전시에 전구 대신 마법등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가서 그런지 대전시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검문 검색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대전시가 마법등으로 환하 게 빛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그 어떤 환경오염을 발생시키는 발 전소의 도움 없이.

    그러고 보니 정말 공기가 맑다는 기분이 들었다. 엘 파나의 침공이 일어난 이후 모든 전기 통신이 끊겼 다. 사실 전기 없는 세상은 불편하 다.

    하지만 그 전기를 생산해 내기 위 해 운영하는 발전소는 많은 유해 물 질을 내놓는다. 화력 발전은 미세 먼지를, 원자력 발전은 핵폐기물 을..

    마법등으로 환하게 빛나는 대전시 를 구경하면서 검문검색 줄은 점점 줄어들어 이성진이 포함된 일행 순 서가 되었다.

    그런데 카반 왕국군 병사가 김진명 을 바로 알아봤다.

    “진명. 오늘은 조금 늦었네? 그런 데 이 사람은 누구야?”

    병사는 이성진을 가리켰다. 분명 대전시에서 나갈 때는 5명이었다.

    그런데 들어올 때는 6명이다.

    “이번에 제가 고용한 조수입니다. 힘 좋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제이콥 백부장님?”

    “고용? 외부에서 고용했다고?” 제이콥 백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 다. 김진명이 외부에서 조수를 고용 한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네. 아시지 않습니까? 외부에 조 금 모자라게 줘도……

    김진명은 낮은 목소리로 제이콥 백 부장에게 말했다. 제이콥 백부장은 김진명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지금 대전시는 카반 왕국군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대전시에서 마법 물 품을 생산해 내는 것은 물론 귀족들 이 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전시 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 었다.

    그런데 가끔 대전시에 들어오기 위 해 자신의 노동력을 싼값에 제공하 는 사람들이 있다. 대전시의 사람들 은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번 다.

    김진명이 주머니에서 은색 동전 하 나를 꺼내 슬쩍 제이콥 백부장에게 줬다.

    제이콥 백부장은 전혀 거리낌 없이 은색 동전을 받았다.

    이성진은 벌써 카반 왕국의 은화가 돌아다니나 싶었다.

    카반 왕국은 동화와 은화 그리고 금화를 화폐로 사용했다. 동화 1천 개가 은화 1개다. 은화 1백 개가 금 화 1개이고.

    “이거는 통행료고……. 그래도 그 냥 보낼 수는 없지.”

    김진명은 받을 것 다 받아 처먹고 보내 주지 않는 제이콥 백부장을 속 으로 욕했다. 괜히 은화를 줬나 싶 었다. 사실 왜 은화를 꺼냈는지 자 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딸인 지영이가 오래간만에 똘이 때 문에 즐겁게 웃었기 때문에 이성진

    을 신경 쓰고 검문검색을 쉽게 통과 하게 해 주려는 것인가 싶었다.

    그래도 은화 1개는 너무 많았다.

    김진명이 속으로 투덜대는 사이 제 이콥 백부장은 부하에게 손짓했다. 이성진을 검색하라는 것이었다.

    대전시에 처음 들어오는 모든 사람 은 무조건 검색해야 하는 것이 원칙 이었다. 제이콥 백부장은 은화가 아 닌 금화를 줬어도 검색했을 것이다.

    병사 2명이 다가왔다. 이성진은 가 만히 서 있었다. 병사 1명이 이성진 의 배낭을 빼앗듯이 가져갔다. 그리 고 안의 물건을 땅에 쏟았다.

    다른 1명은 이성진의 몸을 수색했

    다.

    배낭 안에서는 음식물과 지도가 나 왔다. 그런데 몸수색 중 단검이 발 견되자 병사가 소리쳤다.

    “단검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병사가 소리치자 이성진 대신 김진 명이 변명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외부에서는 무 기라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을.”

    김진명은 자신의 배낭에서 짧은 검 을 꺼냈다.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제이콥 백부장도 잘 알고 있다. 하 지만 이성진에게서 발견된 단검은 일반 단검이 아니란 것을 한눈에 알 아봤다.

    제이콥 백부장이 다가왔다. 병사에 게서 단검을 받아 살펴보면서 말했 다.

    “병사였나?”

    “네. 병사였습니다.”

    “이름!”

    “이성진입니다.”

    제이콥 백부장은 이성진의 눈을 똑 바로 봤다. 그러자 이성진은 일부러 자세를 낮추고 눈을 피했다. 제이콥 백부장은 이성진이 눈을 피하자 피 식 웃었다.

    전형적인 비겁자라고 생각했기 때 문이었다. 전투에서 도망쳐 살아남 은 병사라고 여겼다.

    “이 단검은 압수다.”

    “네.”

    제이콥 백부장은 김진명에게 몸을 돌렸다.

    “싸게 쓰는 것은 좋은데 이런 놈은 오래 데리고 있지 않은 것이 좋아. 비겁한 놈들은 항상 뒤통수를 치거 든 ”

    김진명은 제이콥 백부장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문제없 이 대전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그래도 제이콥 백부장에 게 인사를 안 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밖에 없으니 까.

    “감사합니다. 제이콥 백부장님 말 대로 오래 데리고 있지 않겠습니 다.”

    “그래. 그럼 대충 챙겨서 가 봐!”

    제이콥 백부장이 빨리 가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김진명은 땅에 떨 어진 이성진의 물건을 빠르게 배낭 에 담았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눈짓 했다.

    이성진은 배낭을 받아 김진명과 함 께 대전시로 들어갔다.

    대전시는 의외로 많이 부서진 곳이 없었다. 돌아다니는 카반 왕국군 병 사들만 안 보인다면 아무 일도 없었 다고 생각해도 될 만했다.

    대전시로 들어와서 계속 걷다가 김 진명이 멈췄다.

    “이성진 씨. 대전까지 같이 왔으니 까 이제 헤어지죠.”

    김진명은 계속 이성진이 신경 쓰이 는 것이 싫었다. 더 같이 갔다가는 집에 머물라고 할 것 같았다. 여기 서 헤어져야 그러지 않을 것 같았 다.

    이성진도 대전에 들어왔으니 같이 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혼자 돌아다니면서 마법술사를 찾으면 된 다.

    “도와주신 것 감사합니다.”

    “네. 그럼.”

    김진명이 가볍게 인사하고 떠나려 하자 딸인 김지영은 아쉬워했다. 똘 이가 너무 귀여우면서 마음에 들었 기 때문이었다. 대전까지 오는 내내

    똘이는 김지영의 곁을 떠나지 않으 면서 애교를 부렸다.

    김지영은 그런 똘이와 헤어지기 싫 었다.

    “저기……. 아빠……. 이성진 씨 대 전에 머물 곳도 없잖아요. 더군다나 벌써 저녁인데……

    “여관이나 호텔 영업하는 곳 많 다.”

    김진명은 딱 잘라 안 된다는 식으 로 말했다. 김지영은 시무룩한 표정 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 며 똘이를 바라보는 순간 김지영의 마음은 또 변했다.

    똘이가 애처로운 눈빛을 하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지영은 똘이를 떠돌아다니게 할 수 없었다.

    “아빠! 하룻밤만 재워 주는 거잖아 요.”

    “지영아!”

    “아빠!”

    김지영의 울 것 같은 얼굴을 보자 김진명은 마음이 약해졌다. 김진명 은 한숨을 쉬더니 이성진을 향해 말 했다.

    “하룻밤 재워 줄 테니 대신 아무것 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괜찮습니다. 똘이야! 그렇게 보지 말고 가자!”

    “컹!”

    똘이는 이성진의 말에 언제 그랬냐 는 듯이 반짝이는 눈을 하고 김지영 에게서 돌아섰다.

    김지영은 갑자기 돌아서는 똘이를 보며 서운한 마음에 눈물을 홀렸다. 딸이 우는 것을 보니 김진명은 마음 이 불편했다.

    부탁하는 마음으로 이성진을 불렀 다.

    “이성진 씨!”

    김진명의 표정과 김지영이 우는 것 을 본 이성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 말했다.

    “그럼 하룻밤만 자고 가겠습니다.

    똘이야!”

    “ 컹!”

    똘이는 기분이 좋은지 김지영을 향 해 달려갔다. 그리고 폴짝 점프해 김지영의 얼굴을 핥았다.

    “똘이야!”

    김지영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웃는 것을 보자 김진명은 마음이 놓였다. 김진명은 어차피 집에 같이 가는 것, 다른 사람을 이성진에게 소개했 다.

    “여기는 내 조카 김정진입니다.”

    김진명을 제외한 남자 중 한 명이 었다. 김정진은 이성진에게 살짝 고 개 숙여 인사했다.

    “김정진입니다. 원래 외부인에게는 이름을 잘 말 안 합니다.”

    김정진 다음으로 일행 중 김지영을 제외한 여자 2명이 자신을 소개했 다.

    “저는 이진숙이에요.”

    “ 강소라요.”

    간단하게 자기 이름만 소개한 다음 입을 닫았다. 김진명 일행은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니까 빨 리 가서 저녁 먹읍시다.”

    김진명은 어차피 이성진을 집에서 재우기로 한 것 빨리 집으로 돌아가 고 싶었다.

    김진명의 뒤를 따라 30분 정도 가 자 완전히 대전 시내 중심가로 들어 섰다. 마법등 때문에 환해서 그런지 밤이 되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이 돌 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 표정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카반 왕국군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오르쿠 지 역과는 다르게 카반 왕국은 세뇌를 확실하게 한 것 같았다. 마법진이나 마법 도구를 잘 사용하는 곳이니 당 연할 수도 있었다.

    조금 더 가자 김진명의 집에 도착 했다. 시내 큰 도로에서 약간 벗어

    난 언덕길 쪽 빌라였다.

    “이성진 씨는 미안하지만, 옥탑방 을 쓰세요.”

    4층짜리 빌라였다. 김진명이 옥탑 방을 쓰라고 하면 쓸 수밖에 없다. 알았다고 대답하려는 데 김진명이 1 층 출입구 유리문에 손을 대는 것이 보였다.

    유리문에 손을 대자 우웅 하는 소 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마법 도구를 설치한 유리문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김진명 역시 초인이었다. 약간 다른 초인이긴 하 지만.

    마법사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 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소인족 지역이나 오르쿠 지역에서 는 인간 마법사를 판별할 능력이 없 었다. 카반 왕국 정도 되어야 판별 할 능력이 있다.

    김진명은 이성진이 전혀 놀라지 않 는 것을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직 제대로 된 마법사는 아니다. 1 단계 마법도 다 배우지 못했다. 하 지만 마나를 이용해 마법 도구를 사 용하는 것을 처음 본 대부분의 사람 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성진 씨는 마법사를 본 적이 있

    나 보군요.”

    “네. 많이 봤습니다.”

    김진명은 이성진의 말을 다르게 오 해했다. 병사였다고 들었기 때문이 었다. 전투 중에 마법사를 봤을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까지는 나갈 수 없으니 까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주세요.”

    김진명이 빌라로 들어가면서 말했 다. 이성진은 똘이와 함께 따라 들 어갔다.

    “그냥 잠만 자면 됩니다.”

    “저녁은 지영이가 가져다줄 겁니 다.”

    김진명은 이성진을 집안으로 들어

    오게 할 생각이 없었다. 외부인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기 때 문이었다.

    예전에 신기하다고 건드린 사람이 있었다. 그 이후에 외부인은 절대 집 안에 들이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김진명이 먼저 올라가라는 듯 비켜 섰다. 똘이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 옥상으로 갔다. 옥상에는 천막을 치 는 데 사용하는 파란색 비닐 같은 것으로 덮여 있는 것이 있었다. 그 옆에 작은 방이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싱크대 하나 와 매트리스 하나가 있었다. 깨끗하

    게 청소되어 있었다.

    가끔 누군가 와서 자는 것 같기도 했다.

    “똘이 네 덕분에 잠은 편하게 잔 다.”

    “ 컹!”

    똘이가 나 잘했죠라는 표정으로 짖 었다. 사실 카반 왕국 돈이 없어 그 냥 노숙할 생각이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매트리스에 누워 대전시에서 마법술사를 어떻게 찾을까 고민했다.

    마법술사를 찾는다 해도 바로 무기 를 만들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마법진이 새겨진 마법 도구를 구해

    서 분해한 다음 비슷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양반도 지구로 왔으면 좋겠는 데.”

    엘 파나에서 사용했던 마법 도구를 만든 카반 왕국 마법술사가 있었으 면 했다. 마법술사라 해도 다 같은 마법술사가 아니다.

    장인의 경지를 넘어 명인이라고 불 릴 정도로 뛰어난 마법술사였다.

    “저기요! 저녁 드세요!”

    김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일어나 문을 열자 김지영이 쟁반에 밥과 반찬을 가지고 온 것이 보였 다.

    “감사합니다.”

    흰밥과 김치찌개였다. 그것도 돼지 고기가 들어간…….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다.

    “똘이는 제가 따로 밥 줘도 될까 요?”

    “그러세요.”

    김지영은 기뻐하는 얼굴로 문 옆에 놔둔 사료를 바로 똘이에게 내밀었 다. 똘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성진과 똑같이 밥과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똘 이는 김지영의 기분을 좋게 해 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맛있는 척 사료를 우걱우걱 먹기 시

    작했다.

    “어머! 배고팠구나. 모자라면 더 줄게.”

    “끼잉••••••

    이제 맛없는 사료는 먹고 싶지 않 았다. 그런데 김지영은 똘이의 울음 을 더 먹고 싶다는 것으로 알아들었 다.

    “잠시만 기다려! 금방 가지고 올 게!”

    김지영은 급하게 일어나 몸을 돌렸 다.

    “어멋!”

    너무 급하게 가려다가 발이 파란색 비닐에 걸렸다. 그리고 넘어지기 직

    전 이성진이 달려와 몸을 잡았다.

    “조심하시지.”

    “감사합니다.”

    김지영은 크게 다칠 뻔했다는 것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 성진이 순식간에 다가와 자신을 넘 어지지 않게 붙잡았다는 것을 알았 다.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김지영의 눈에 불안감이 보였다. 하지만 이성진은 그런 김지영보다 파란색 비닐이 벗겨져 나타난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성진은 김지영의 질문에 대답하 지 않고 거꾸로 물었다.

    “혹시 아버님이 마법술사입니까?” 김지영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대답은 다르게 나왔다.

    “아니요. 그냥 마법사세요!”

    거짓말이다. 파란색 비닐 안에 있 는 것들은 마법 도구였다. 만들다가 실패한 것 같았다. 그냥 마법사가 저렇게 많은 마법 도구를 가지고 있 지는 않는다.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김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파란 색 비닐이 벗겨지면서 나온 마법 도 구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성진의 시선이 마법 도구를 향했 으니 김지영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 다.

    “이성진 씨! 어떻게 마법 도구인 것을 아나요?”

    김지영은 이성진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법 도구를 알아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성진은 김지영의 질문에 사실대 로 말했다.

    “마법 도구를 본 적이 있으니까 요.”

    하지만 김지영은 이성진의 말을 쉽 게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드러난 마 법 도구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부 품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부품만 보고 마법 도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대전시와 카반 왕국 성에서만 마법 도구를 만 들기 때문이었다. 마법 도구를 분해 하는 순간 안에 새겨진 마법진이 파 괴 된다.

    “아무리 봐도 마법술사나 마법사같 이 보이지는 않는데요?”

    “마법술사나 마법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마법 도구를 만드는 것은 많 이 봤습니다.”

    엘 파나에서 봤다는 말은 하지 않 았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진실만 을 이야기한다. 단 몇 가지만 빼고.

    덕분에 김지영은 헷갈렸다. 이성진 의 눈과 말은 진실을 말한다고 가리 킨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옥상으로 올라오는 입구에 서 김진명이 나타났다.

    “어떻게 마법 도구를 만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까?”

    “아빠!”

    김진명은 이성진이 아버님이 마법 술사냐고 물을 때부터 듣고 있었다. 김지영이 혼자 저녁을 가져다주는 것이 불안해서 올라왔다.

    이성진 역시 김진명이 옥상 입구에 서 숨어서 몰래 듣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성진은 김지영에게 말하는 동시 에 김진명에게도 말한 것이다.

    이성진은 김진명을 간단하게 설득 할 자신이 있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겠죠?”

    이성진은 마법 도구를 집었다. 김 진명은 이성진을 막지 않았다. 어차 피 부품일 뿐이다. 완성되지 않은 부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없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김진명의 생각일 뿐이 었다. 김진명은 곧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이성진의 손에 들린 마법 도구 부품을 바라봤다.

    “어떻게 마법진을 가동할 수 있 지‘?”

    이성진의 손에 들린 마법 도구 부 품 안에 새긴 마법진이 빛나고 있었 다. 마법진이 가동할 때만 빛이 난 다.

    이성진은 이성진 나름대로 놀랐다. 마법 도구를 만드는 마법술사가 기 본적인 것을 모른다.

    “당연히 마나를 마법진에 공급했으 니까요.”

    김진명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 시 물었다.

    “마나를 공급하면 마법진이 가동하 는 것은 맞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마법 도구의 마법진을 어떻게 가동했냐고 묻는 거요!”

    “이건 내가 아는 마법술사가 가르 쳐 준 것이라서 말해 주기가 그렇네 요.”

    엘 파나에서 마법 도구를 만들어 준 양반이 가르쳐 준 것이다. 하지 만 마법술사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 다. 마법 도구는 최소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마법진을 연결해 만든다.

    부품 하나하나에 마법진을 새긴다. 부품을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마법 진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어차피 부품 하나에 새기는 마법진 역시 마나만 있으면 언제든 지 가동할 수 있다. 그 마나를 공급 하는 곳이 마법진끼리 연결하는 연 결 부위였다.

    연결 부위에 적당한 양의 마나만 공급하면 마법진은 무조건 가동된

    다.

    문제는 연결 부위의 방향과 적당한 양의 마나를 공급하는 것이긴 했다. 이성진은 카반 왕국어를 알고 있다. 덕분에 마법진의 연결 방향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김진명이 방향을 안다고 해서 마법 진을 가동할 수는 없다. 마법 도구 를 가동할 수 있는 마나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성진 씨도 마법술사입니 까?”

    김진명의 말투가 달라졌다. 이성진 이 마법 도구를 확실히 알고 있다. 마법술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투가 공손해졌다.

    자신보다 뛰어난 마법술사라면 나 이가 어떻게 되든 존중해 주는 것이 맞다.

    “마법술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김 진명 씨를 도와줄 수는 있겠죠. 사 실 마법술사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 니까요.”

    이성진이 마법 도구 부품을 살짝 던졌다 받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김 진명의 눈에 알고 싶다는 열망이 보 였다.

    김진명이 마법 도구 부품의 마법진 을 가동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알자마자 던진 미끼였다.

    마법술사는 지구로 말하면 과학자 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알고 싶은 열망이 크다.

    “이성진 씨는 마법술사가 아니면서 어떻게 아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 고 생각했다. 마법술사가 아닌데 마 법술사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 고 말했다.

    “말했지 않습니까! 아는 마법술사 가 가르쳐 줬다고요.”

    김진명이 아는 마법술사 중에 이런 것을 아는 마법술사는 없었다. 지구 에서 새롭게 나타난 마법술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성진이 말하는 마법술사가 엘 파나의 카반 왕국 마법술사라고 는 상상할 수 없었다.

    카반 왕국 마법술사는 지구의 마법 술사에게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줬 다. 지구 마법술사는 그저 마법 도 구의 부품만 만들어서 바치면 되니 까.

    이성진의 말이 진실이라면 김진명 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 다.

    천재!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법 도구를 만 들 수 있는 천재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그럼 조금 전 말한 대 로 나에게도 가르쳐 줄 수 있습니 까?”

    김진명의 눈빛은 간절했다. 그런 김진명의 눈빛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 다만……

    말끝을 흐리자 김진명은 이성진이 원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 계속 머무셔도 됩니다. 옥탑 방이 아닌 4층을 내어 드리겠습니 다.”

    김진명의 말에 딸인 김지영이 놀란 눈을 했다. 4층은 자신도 쉽게 들어

    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2층에 김정 진과 강소라, 이진숙이 산다.

    3층에 김진명과 자신이 살고 있다. 4층은 김진명의 개인 연구실이나 마 찬가지 였다.

    그런데 이성진의 대답은 의외였다.

    “저는 옥탑방이 좋습니다.”

    옥탑방이 좋다는 말에 김진명은 이 성진이 또 다른 것을 원하는 것 같 다는 생각을 했다.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김지영은 아버지가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이성진이 이곳에 머물 면 똘이와 지낼 수 있어 좋기는 했

    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성진에게 너무 저자세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

    “아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김진명은 김지영의 말에 얼굴을 굳 히며 말했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지영아! 아직 너는 모른다.”

    김진명은 김지영에게 자세하게 설 명할 수가 없었다. 마법 도구에 대 한 열망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은 배울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배 우고 싶다는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김지영이 마법술사가 되어 마법 도

    구를 만들면서 그런 것을 느껴 보기 전까지는.

    “아빠! 또 그런 말을……

    김지영은 김진명의 말에 섭섭한 감 정을 감추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이 야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 도구에 관한 것만 나오면 ‘아 직 너는 모른다.’라는 식의 말을 수 십 번 들었다.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지영아! 나중에 이야기하자. 이성 진 씨!”

    김진명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진이었다. 김진명은 다른 원하 는 것이 있다면 말하라는 듯이 이성

    진을 쳐다봤다.

    “이것들은 마법술사에게 의뢰받은 것들이죠?”

    “맞습니다.”

    당연한 것을 왜 묻나 싶었다.

    “의뢰받은 것을 가져다줄 때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김진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도구를 사기 위해 마법술사를 만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냥 마법 도구를 사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마법 도구 부품을 가져다줄 때는 마법술사의 작업실까지 가야 했다.

    마법술사의 작업실은 허락하지 않 으면 들어갈 수 없다. 잘못하면 거 래하는 마법술사가 다시는 거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이 허무 하게 사라질 수 있었다.

    당황해하는 김진명의 마음을 잘 아 는 것처럼 이성진은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마법술사의 작업실에 들어갈 생각 은 없습니다. 그냥 카반 왕국 마법 술사를 만나 보고 싶은 것뿐입니 다.”

    이성진 역시 마법술사의 작업실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성진이 원하는 것은 마법술사가 있는 곳의 위치와 경계 정보였다.

    마법술사를 만나면 마법술사의 수 준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마법술 사의 수준이 높다면 필요한 것을 몰 래 가져오거나 따로 의뢰할 생각이 었다.

    아무도 몰래 대전시를 돌아다닐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알고 가면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김진명 과 같이 가면 혼자 갔을 때보다 의 심받지 않는다.

    “정말 마법술사만 만나 보기만 하 면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거야 쉽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마법 도구 부 품의 마법진을 어떻게 가동했는지 알려 드리죠.”

    이성진의 말에 김진명은 기쁜 얼굴 로 다가갔다.

    “여기 보시면 이 부품은 마나가 이 곳에서 이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 니다.”

    “한쪽만 흐르는 것이 아니었나요?” 카반 왕국 마법술사가 원하는 대로 마법진만 새겼지 어떻게 마나가 흐 르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김진명이었 다.

    김진명은 마나가 한 방향으로만 움 직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성 진이 알려주는 것은 한 방향에서 들 어와 두 군데로 나누어 간다.

    “음……. 여기 이상하게 생긴 문자 있죠?”

    김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반 왕국어인 것을 안다. 그런데 일반적 인 카반 왕국어가 아니었다.

    “이 문자가 있으면 두 군데로 마나 가 나누어져 간다고 생각하면 됩니 다.”

    “그래요?”

    “그리고 이곳으로 마나가 들어오니 까 마법 도구의 심장인 마나석 대신

    에 마나를 이렇게 공급하면…… 이성진이 손을 대고 마나를 공급하 자 다시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되는데 아직 완성 안 된 부품이라 너무 많은 마나를 공급하면 마법진 에 과부하가 걸려 고장 납니다.”

    김진명도 완성되지 않은 마법진에 마나를 과도하게 공급하면 마법진이 고장 나는 것은 알고 있다.

    몇 번이나 망가뜨려 봤으니까.

    “제가 해 봐도 되겠습니까?”

    김진명은 자신이 만든 마법 도구인 데도 이성진에게 허락을 맡고 있었 다.

    “김진명 씨 겁니다.”

    이성진이 마법 도구 부품을 건네자 김진명은 바로 이성진이 손을 댔던 부분에 손을 대고 마나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법진은 빛나지 않았다.

    “분명 이성진 씨가 가르쳐 준 대로 했는데……

    “마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부 품의 크기를 봐서는 최소 3단계 마 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나석이 들어 갈 것 같은데요.”

    김진명은 이성진이 하려는 말이 무 엇인지 알았다. 3단계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는 마나가 있어야 한다. 하 지만 자신은 아직 1단계 마법을 사

    용할 수 있는 마나밖에 없다.

    “마나석이라도 구하기 쉬우면 연구 가 빨라질 텐데……

    김진명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 럴 만도 했다. 카반 왕국군은 마나 석을 지구의 마법술사가 쉽게 가질 수 없게 할 것이다.

    마법진만 그릴 줄 알고 마나석만 있으면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 으니까.

    “그래도 이 문자가 마나를 두 군데 로 나누어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 으니……

    김진명은 이성진에게 고마운 눈빛 을 보냈다. 그리고 마음이 급했다.

    4층 연구실에 있는 다른 마법 도구 부품들도 확인하고 싶었다.

    “내일 아침에 카반 왕국 마법술사 에게 가는 날입니다. 푹 쉬시고 아 침에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김진명은 바로 내려가려 했다. 하 지만 김지영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 고 멈췄다.

    “지영아! 가자.”

    김지영은 김진명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이성진과 똘이를 번갈아 바라 봤다.

    이성진은 김지영이 원하는 것을 짐 작했다.

    “똘이야. 오늘은 지영 씨와 같이 자라.”

    “끼 잉?”

    똘이는 이성진과 떨어지기 싫었다. 똘이가 고개를 흔들자 김지영은 풀 이 죽었다.

    “오늘만이야. 너 예뻐해 줬잖아.”

    똘이는 오늘만이란 말에 엉덩이를 일으켜 김지영에게 다가갔다. 김지 영은 똘이와 함께 잘 수 있다는 것 에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에 봐요! 똘이야! 가자! 맛있는 간식도 줄게.”

    똘이는 이성진을 쳐다보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지영을 따라갔

    다.

    김진명과 김지영이 내려가자 이성 진은 식어 버린 저녁을 먹은 다음에 매트리스에 누웠다.

    내일 아침 찾아가는 마법술사의 수 준이 높기를 바라면서.

    원하는 마법 도구를 얻을 수 있다 면 서울까지 가는 길이 더 편하고 안전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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