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27화 (27/50)
  • 4장. 진정한 화합

    “푸흐흥! 위대한 왕께서 직접 나오 실 필요까지는……

    하늘의 검은 이성진이 나올 것이라 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진이 진 주시에 있는 것을 알고 대전사들과 함께 먼저 달려왔다.

    그리고 전사의 게임을 하는 것을 봤다.

    적의 사기를 꺾으려는 전사의 게임 은 화려하고 강한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성진은 물론 자신의 의견

    을 반대하는 상급 대전사들에게 아 직 강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나선 것이다.

    마지막 나온 아들이 상급 대전사라 고 하지만 자신과는 차이가 난다. 좋은 제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생각대로였다.

    “왜 내가 나서면 안 되나?”

    하늘의 검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 했다.

    “푸흐홍! 제가 감히 위대한 왕께 검을 겨눌 수는 없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검을 겨눠 봤자 두들겨 맞는 것은 변함없다. 상급 대전사들에게 아직

    강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 려 하는데 이성진에게 형편없이 두 들겨 맞으면 안 된다.

    “아니. 겨눠도 돼!”

    하늘의 검은 애써 일그러지려는 얼 굴을 폈다. 검을 겨눌 수 없다고 말 했는데 위대한 왕은 겨눠도 된다고 했다. 이런 경우 싸움을 피하면 겁 쟁이로 소문난다.

    고민하는 하늘의 검에게 이성진이 나직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다 생각이 있어서 나온 거니까.”

    생각이 있어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 면서 단검을 뽑았다. 그러자 하늘의

    검은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대검을 들었다.

    “먼저 공격한다!”

    하늘의 검은 찔끔했다. 원래 약한 존재가 먼저 공격한다. 그런데 이성 진이 먼저 공격한다고 말하며 달려 왔다.

    자신이 마지막 나온 아들을 한 방 에 쓰러뜨렸듯이 이성진도 자신을 한 방에 쓰러뜨리려는 줄 알았다.

    그래도 그냥 쓰러질 수는 없었다. 거대한 대검에 마나를 최대한 담아 이성진의 단검을 막았다.

    쿠웅!

    하늘의 검은 눈을 크게 뜨고 이성

    진을 쳐다봤다. 이성진이 자신과 싸 울 때 사용했던 기술을 사용하지 않 았다. 마나와 마나가 부딪히는 대결 이었다.

    하늘의 검과 마지막 나온 아들이 싸운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마나였다. 이성진의 단검과 하늘의 검의 거대 한 대검이 부딪히자 회오리바람이 불 듯 바람이 일어나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홍! 감사합니다.”

    서로 검을 댄 상태였다. 하늘의 검 은 이성진이 자신에게 사용했던 마 지막 기술만 아니면 화려하고 멋있 게 싸울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싸웠다.

    이성진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 주려 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맙기는, 나도 생각이 있어서 하 는 일인데.”

    이성진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늘의 검이 짐작한 대로 체면을 세 워 주기 위한 것과 진주시의 사람들 에게 인간도 얼마든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 다.

    반란을 끝내기 위해 막강한 힘을 보여 줘 사기를 꺾는다. 하지만 그 렇다고 오르쿠를 너무 겁내거나 두 려워하지 않았으면 했다.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럼 더 화려하게 해 볼까?”

    이성진의 단검이 떨어졌다. 그리고 하늘의 검의 거대한 대검이 휘둘러 진다. 이성진이 가볍게 뛰어오르며 대검을 피해 단검을 하늘의 검 얼굴 로 찌른다.

    하늘의 검은 고개를 살짝 틀어 피 하면서 거대한 대검을 그대로 위로 쳐올렸다.

    이성진은 쳐올리는 거대한 대검에 살짝 손을 대며 반동을 이용해 하늘 의 검을 뛰어넘었다.

    하늘의 검이 빙그르르 몸을 돌리며 원심력을 이용했다. 거대한 대검 역

    시 하늘의 검을 따라 돌며 이성진의 몸을 향해 들이닥쳤다.

    다시 한 번 이성진의 단검과 하늘 의 검이 휘두른 거대한 대검이 부딪 혔다.

    이번에는 바람 대신 쿠웅 하는 울 림이 땅을 뒤흔들었다. 진짜 싸움에 서는 사용하지 않는 소모적인 마나 의 부딪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오르쿠나 진주시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마 나 많은 마나가 부딪혀야 땅이 울릴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 었다.

    “크흥! 마나가 더 늘어나셨습니

    다.”

    하늘의 검은 지난번에는 이성진이 자신의 거대한 대검을 피하던 것을 기억하며 말했다.

    “그냥 늘어나더라고.”

    웃으며 말하는 이성진을 보며 하늘 의 검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 다. 파나 신의 심장을 가졌다. 지금 지구에 퍼지고 있는 마나는 엘 파나 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파나 신이 관리하는 엘 파나의 마 나다. 이성진에게 더 친화적일 수밖 에 없다.

    “크흥! 그럼 아직 제가 보여 드리 지 못한 기술을 보여 드리겠습니

    다.”

    “얼마든지!”

    이성진의 단검과 하늘의 검의 거대 한 대검이 다시 떨어졌다. 그런데 하늘의 검의 대검이 두 개로 나누어 졌다.

    길이와 넓이는 똑같다. 단지 폭만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두 개로 나누어진 거대한 대검의 손잡이를 연결했다. 그리고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돌 리기 시작했다.

    두 배로 길어진 거대한 대검은 빙 글빙글 돌아가며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것이 땅이든 지나

    가는 바람이든.

    “골치 아프네.”

    마나로 강화된 거대한 대검을 뚫고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두 배로 길어진 길이 때문에 회전 반경 도 넓어졌다.

    “미안하다!”

    이성진의 미안하다는 말이 하늘의 검의 귀에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이를 악물고 검에 마나를 더 보냈 다.

    이성진의 공격이 무엇일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성진의 단검이 푸르게 반짝였다. 그리고 회전하는 거대한 대검과 부

    딪혔다.

    하늘의 검은 어이가 없었다. 이성 진의 푸르게 빛나는 단검에 자신의 거대한 대검이 잘려 나갔기 때문이 었다.

    하늘의 검은 이제는 거대하다고 말 할 수 없는 대검의 회전을 멈추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오르쿠들이 함성을 질렀다.

    하늘의 검의 공격을 너무 쉽게 막 아 낸 이성진을 향한 것이면서, 동 시에 이성진을 상대로 거의 밀리지 않고 싸우는 하늘의 검을 향한 것이 었다.

    오르쿠들은 진주시의 인간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도 잊 고 강한 전사들의 싸움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크훙! 위대한 왕이시여! 반칙입니 다.”

    “그렇게 거대한 검을 두 개 연결하 는 것도 반칙이지!”

    “크흥! 위대한 왕께서 제 검을 벌 써 2개째 망가뜨리셨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하늘의 검은 이럴 줄 알았으면 평 범한 검을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싶 었다. 이성진과 싸울 줄 몰랐다.

    “그럼 무기 없이 할까?”

    하늘의 검의 귀에는 주먹으로 두들

    겨 팰까로 들렸다.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싸움을 피하는 것은 오르쿠가 아니니까.

    “크홍! 좋습니다!”

    하늘의 검이 망가진 검을 땅에 버 렸다. 이성진은 단검을 다시 넣었다. 그리고 주먹으로만 싸우기 시작했 다.

    피하고 때리고 피하고 때리고 간단 한 싸움이었다.

    하늘의 검 입장에서는 못 맞추고 맞고 못 맞추고 맞는 패턴의 연속이 었다. 희한하게 이성진은 자신의 공 격을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점을 보인 다음 마나를 집중해

    반격하려는 속임수를 써도 걸려들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성진은 지금 하늘의 검 몸 안의 마나 움직 임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공격이 강한 공격이고 어떤 공격이 약한 공격이며 다음 공격은 팔일지 다리일지 다 보인다.

    체면 세워 주는 것은 검으로 싸울 때면 충분했다. 주먹으로 싸우는데 체면 세워 주겠다고 얻어맞는 것은 사양이 었다.

    결국, 하늘의 검은 2시간 동안 화 려하게 얻어맞고 뒤로 누웠다. 지켜 보던 오르쿠들이 또 함성을 질렀다.

    누워 있는 하늘의 검을 향해 이성 진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참 진하다. 졌다는 말을 안 하고 2시간 동안 맞고만 있냐?”

    “크흐흥!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때 리시는 위대한 왕께서 더 대단하십 니다!”

    하늘의 검은 진짜 2시간 동안 쉬 지 않고 때리는 이성진이 대단하다 고 생각했다. 지쳐서 그만 때릴 때 까지 버티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뼈마디가 분리되는 것 같았다.

    “이제 다 도착한 것 같네.”

    오르쿠 성에서 출발한 검은 전사단

    과 오르쿠 전사들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고성 지역에서 출발한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과 부하 오르쿠 1만 명 그리고 크롤링 마차를 탄 초인 관리자 100여 명 역시 보였다.

    “하늘의 검. 엄살 부리지 말고 일 어나라.”

    “크흥! 끙!”

    하늘의 검이 힘겹게 일어났다. 그 리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완벽하게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현이었다. 그러자 구경하던 오르쿠들이 소리쳤 다.

    [위대한 왕! 위대한 왕!]

    진주시 바리케이드 앞에서 구경하 던 사람들은 갑자기 이성진을 향해 위대한 왕이라고 소리치는 오르쿠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한결 이었다.

    그냥 오르쿠의 편인 줄 알았던 사 람이다.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오르쿠를 너무 쉽게 두들겨 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 르쿠가 위대한 왕이라고 부른다.

    한결은 오르쿠가 왜 갑자기 인간들 을 친구라고 부르며 싸우려 하지 않 았는지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오르쿠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멀어 판단력이 흐려졌을지도 모른다. 이 성진이 했던 말이 그냥 떠올랐다.

    ‘다 죽일 거냐고.’

    진짜 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보이는 오르쿠 의 숫자는 셀 수도 없으니까.

    2만 명의 오르쿠를 상대할 수 있 다는 확신도 이제는 없었다.

    조금 전 보여 줬던 오르쿠의 강함 이라면 2만 명이 아닌 1천 명도 감 당하기 어려웠다. 저렇게 강한 오르 쿠가 이끄는 오르쿠는 더 강할 테니

    까.

    물론 한결은 하늘의 검이 오르쿠들 의 왕이었던 것을 모른다.

    한결의 눈에 오르쿠들이 질서정연 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 보였다. 진 주시의 사람들 눈에도 점점 이러다 다 죽는 것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한결은 이성진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이성진은 100명의 사람과 함께 진주시 바리 케이드로 움직였다.

    한결은 혼자서 바리케이드 앞을 벗 어나 이성진을 향해 걸어갔다.

    서로 30m 정도 거리가 되었을 때

    멈췄다.

    한결은 바로 소리쳐 물었다.

    “당신이 오르쿠들의 새로운 왕입니 까?”

    “맞아요.”

    이성진의 입으로 직접 듣자 한결은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인간이 진짜 오르쿠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오르쿠는 진짜 왕에게 하듯 무릎 꿇 는다.

    멍한 표정의 한결에게 이성진과 함 께 온 장재웅이 소리쳤다.

    “강한결 씨! 나 장재웅입니다.”

    강한결은 정신을 차리고 장재웅을 봤다. 그리고 반갑게 소리쳤다.

    “재웅 아저씨!”

    한결은 장재응을 잘 알고 있었다. 고성 지역의 저항군 리더나 마찬가 지였기 때문이었다.

    “한결 씨! 상황이 변했어요. 한결 씨가 어떤 마음인지 무슨 생각인지 알아요. 하지만 전쟁은 피할 수 있 으면 피해야 하잖아요!”

    한결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 는 것과 오르쿠를 증오하는 마음은 다르다. 진주시 사람들 대부분이 얼 마 전까지 오르쿠에게 노예 취급당 하고 가족을 잃었다.

    “피할 수 있을까요?”

    한결은 장재웅에게 하는 말이 아니

    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저항 의 의미로 반란을 일으켜 다 죽어도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저항이 일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고성 지역의 저항군 지도자 격인 장재웅이 새로운 왕인 이성진 의 편에 서 있다.

    이젠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저항 이 일어날 거라는 확신도 사라졌다.

    “피할 수 있어요!”

    장재웅의 말이 피할 수 없다는 것 처럼 들렸다. 한결은 이성진을 바라 봤다.

    “지금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습니 다.”

    이성진이 이름을 말하려는데 한결 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들을 필요는 없겠네요. 다른 것을 묻겠습니다. 진짜 오르쿠와 인 간이 친구가 되어 살 수 있습니까?”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성진은 그렇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친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지 않 을까요? 서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때까지는 시간이 걸 리고요.”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

    이었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오르쿠 가 있고 될 수 없는 오르쿠가 있을 것이다. 인간 역시 친구가 될 수 있 는 인간이 있고 친구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있을 것이다.

    지금 한결이 할 수 있는 일은 하 나였다.

    “좋은 말이네요. 하지만 저는 그렇 게 못 하겠습니다. 내일 아침 모든 저항군을 모아 끝까지 저항할 겁니 다.”

    “한결 씨!”

    장재웅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소리 쳤다. 장재웅이 소리쳐도 한결은 대 답하지 않고 이성진에게 다른 한 가

    지를 부탁했다.

    “대신 바리케이드 너머에 있는 사 람들은 저항군이 아닙니다.”

    이성진은 한결이 무슨 의도로 말하 는지 알았다. 그리고 한결이 선택한 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바리케이드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저항군이 아니란 말은 바리케이드에 서 죽겠다는 말이었다.

    이성진은 이런 고집을 가진 사람을 많이 봤다. 그들 대부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절대 바꾸지 않는다.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이성진의 질문에 한결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르쿠를 증오하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버틸 것 같나요?”

    한결은 오르쿠를 증오하는 사람들 만 모아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차 피 오르쿠를 막을 수 없다.

    그냥 항복해 버리면 언젠가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때는 그냥 적응해 사는 사람들까지 죽을 수 있 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저는 저의 신념대로 행동하겠습니

    다. 그러니 위대한 왕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애써 주십시오!”

    한결은 이성진을 위대한 왕이라고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로 뒤돌아 바리케이드로 걸음을 옮겼 다.

    한결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이성진은 한결의 등 뒤에 대고 소리 쳤다.

    “내 이름은 이성진입니다.”

    진짜 이름을 밝히자 장재웅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여태까지 진성 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결은 바리케이드로 가다가 멈칫 했다. 뒤돌아서서 머리를 숙여 인사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리케이드에 서 지켜보는 사람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바리케이드로 발걸음을 옮겼 다. 한결이 진주시로 돌아가자 이성 진과 고성 지역 초인 관리자 100명 은 오르쿠가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이성진은 돌아오자마자 하늘의 검 과 상급 대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긴 회의 끝에 진주시를 공 격하기로 결론이 났다.

    두 개의 달이 환하게 비치는 밤이 지나고 해가 뜨자 오르쿠들은 각자 의 무기를 들고 질서 정연하게 늘어

    섰다.

    정가운데에는 1만 명의 검은 전사 단이 서고 오른쪽에는 진주시를 책 임졌던 5천 명의 오르쿠가 섰다. 왼 쪽에는 고성 지역에서 온 1만 명의 오르쿠가 섰다. 그리고 상급 대전사 들이 데리고 온 2만 명의 오르쿠는 뒤에 대기했다.

    이제 이성진의 명령만 떨어지면 진 주시를 향한 공격이 시작된다.

    이성진의 앞에 하늘의 검이 서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의 검! 시작해라!”

    “킁! 위대한 왕의 명령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늘의 검은 손을 올려 가슴을 두 드린 다음 뒤로 돌았다. 그리고 목 소리에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킁! 위대한 왕의 명령에 따라 진 주시를 공격하라!]

    하늘의 검이 소리치자 모든 오르쿠 가 전사의 함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4만 5천 명의 오르쿠가 지르는 전 사의 함성은 엄청났다. 분위기가 후 끈 달아오르며 아지랑이 같은 열기 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지랑이가 아니었다. 전투를 앞둔 오르쿠의 열 기와 마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반응 한 것이다.

    1〜2천 명도 아니고 4만 5천 명의 오르쿠가 동시에 전사의 함성을 지 르니 상승 작용을 한 것이다.

    전사의 함성이 끝나자 오른쪽 진주 시를 책임졌던 5천 명의 오르쿠가 먼저 움직였다. 그다음 왼쪽 고성 지역에서 온 1만 명의 오르쿠가 움 직였다.

    그런데 움직임이 이상했다.

    바리케이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 다. 좌우로 달려가는 것이 바리케이 드를 우회하려는 것 같았다.

    진주시 바리케이드에서 결사 항전 을 준비한 1천 명의 사람들은 당황 했다.

    지난 밤 회의 끝에 오르쿠와 끝까 지 싸울 사람들만 모았다. 싸우기를 원하지 않은 사람들은 진주시 안에 남았다.

    지금 오르쿠들의 행동은 자신들을 공격하기보다는 우회해서 진주시 안 으로 들어가려는 것같이 보였다.

    그렇다고 바리케이드를 벗어나 우 회하는 오르쿠를 막으러 갈 수도 없 었다.

    예전에 세웠던 계획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그 어떤 방법으 로도 막을 수 없었다.

    바리케이드에 모인 1천 명이 당황 하는 사이 1만 명의 검은 전사단이

    전진했다.

    검은 전사단의 목적은 확실해 보였 다. 바리케이드를 향해 오고 있었으 니까.

    바리케이드에 있는 1천 명은 이를 악물고 검은 전사단을 공격할 준비 를 했다.

    우회하는 오르쿠는 한결이 장담한 대로 진주시의 사람들을 해치지 않 기를 바라면서.

    검은 전사단이 100m 정도 앞에 왔을 때 바리케이드에서 공격이 시 작됐다.

    첫 번째 공격은 화살이나 창이었 다. 그냥 화살과 창이 아니었다. 진

    주시 초인 관리자들도 그동안 꾸준 하게 능력을 키웠다.

    화살과 창은 마나로 강화한 것이 다. 마나가 화살과 창에 머무는 시 간이 짧다. 실험한 결과 150m가 최 대였다.

    그래서 검은 전사단이 100m 정도 왔을 때 공격한 것이다.

    한 번에 화살 100발과 창 50개가 날아왔다. 연속으로 10번이 한계였 다. 모두 화살 1천 발과 창 5백 개 가 검은 전사단을 향해 무섭게 떨어 져 내렸다.

    일반 오르쿠 전사라면 피해를 봤을 지 모른다. 하지만 검은 전사단에게

    는 통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무 기로 떨어져 내리는 화살과 창을 가 볍게 쳐 내거나 박살 냈다.

    화살과 창의 공격을 막으며 검은 전사단은 어느새 바리케이드 30m 앞까지 왔다. 바리케이드는 오르쿠 전사가 뚫지 못하도록 건물을 무너 뜨리거나 대형 트럭 같은 것을 옮겨 와 만들었다.

    높이 5m에 두께는 7m에 이르는 거대한 바리케이드였다.

    그리고 바리케이드 중앙에 오르쿠 가 2~3명만 들어올 수 있게 해 놨 다.

    인위적으로 협소한 계곡 같은 바리

    케이드를 만든 것이다.

    꽤 많은 계획과 준비를 한 증거였 다. 이 바리케이드를 시작으로 안으 로 들어갈수록 이런 바리케이드가 수십 개 있었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사람들은 오르 쿠가 통로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전사단의 행동은 또 예상을 벗어났다.

    검은 전사단은 바리케이드 10m 앞 에서 일제히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 다. 그리고 가볍게 5m 높이의 바리 케이드 위에 올라섰다.

    사람들이 어어 하는 사이에 검은

    전사들이 눈앞에 있었다.

    “죽어라!”

    정신 차린 초인 관리자 하나가 검 에 있는 마나를 다 담아 검은 전사 를 향해 찔렀다.

    와직.

    그런데 검은 전사의 몸에 검이 박 히지 않았다. 오히려 검이 부서졌다. 자신의 모든 마나를 담은 검이 검은 전사의 몸에 박히지 않고 부서진 것 을 보며 당황하는 사이 검은 전사가 씨익 웃었다.

    문신 같은 주술이 가득한 얼굴에 누렇고 하얀 이빨이 보였다.

    이제 죽었다 싶었다.

    “크흥! 위대하신 왕의 명령에 따라 체포한다!”

    검은 전사는 체포한다는 말을 하고 는 무기가 아닌 주먹으로 초인 관리 자의 머리를 쳤다. 살살 힘 조절해 서.

    퍼억 소리와 함께 초인 관리자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리케이드 위 여기저기서 일어나 는 일이었다. 그리고 바리케이드를 지나 안쪽으로도 검은 전사들이 떨 어져 내렸다.

    일대일로도 안 되는데 1만 명의 검은 전사들이 들이닥치자 대부분 금방 진압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10명 남짓이었다. 그 중심 에는 한결이 있었다.

    검은 전사들도 쉽게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어지간한 오르쿠 전사보다 나았다.

    만약 이성진의 명령이 체포가 아닌 사살이었다면 금방 끝났다. 1만 명 의 검은 전사가 마나를 담은 무기를 던지는 것만으로 바리케이드는 박살 났을 테니까.

    그리고 학살이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죽이지 않고 사로잡으려니 힘들었다.

    검은 전사단이 끝까지 저항하는 한

    결과 사람들을 빙 둘러싸고 포위했 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상처 입 지 않고 제압할 방법이 없었다.

    특히나 한결 때문에 더 그랬다. 휘 두르는 검에 순간적으로 마나가 날 카롭게 실려 검은 전사를 뒤로 밀어 낸다.

    잘못하면 몸을 강화한 주술이 깨질 수도 있었다. 죽이는 것이라면 주술 이 깨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체포해 야 하니까 문제였다.

    “크흥! 뭣들 하는 것이냐!”

    하늘의 검이 바리케이드를 한 번에 넘어와 소리쳤다. 이성진의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보러 온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자랑인 검은 전사단 이 아직도 저항하는 인간들을 다 체 포하지 못했다.

    “크홍! 저항이 워낙 강해서……

    “킁! 비켜라!”

    하늘의 검은 전사를 노려본 다음 한결에게로 걸어갔다. 한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 이성진과 마지막 에 싸웠던 오르쿠란 것을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한결 바로 앞까지 걸어온 하늘의 검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크흥! 위대하신 왕의 명령이 아니 었다면 인간은 모두 죽었다. 위대하 신 왕은 너를 꼭 살려 오라고 했다.

    무기를 버려라!”

    이성진이 한 명령 중에 자신과 이 야기한 남자를 꼭 살려 오라는 것도 있었다. 이름도 알려 줬다.

    “그럴 수 없다. 나는 죽는 한이 있 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다!”

    하늘의 검은 답답했다. 전사의 명 예대로라면 깔끔하게 죽여 주는 것 이 맞다. 하지만 이성진의 명령이니 그럴 수 없었다.

    “크홍! 전사로 인정할 만한 인간이 다. 한결이라는 이름 기억하겠다.”

    하늘의 검이 이름을 기억한다고 하 자 한결은 놀랐다. 오르쿠가 이름을 기억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드문 일

    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고성 지역에서 오르쿠가 이름을 기억한다 고 선언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이 이성진인 것도 알았다.

    한결은 그냥 웃음이 나왔다.

    “훗! 처음부터 시작이 달랐구나.”

    만약 오르쿠에 대한 증오심 대신 이성진과 같이 오르쿠에게 인정받고 같이 살아가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 와도 너무 멀 리 왔다.

    “크흥! 무슨 소리냐? 이제 항복해 라. 진주시 인간들도 전사들의 보호

    를 받고 있다.”

    한결은 오르쿠 전사가 진주시 사람 을 보호한다는 말에 눈을 크게 떴 다.

    “보호하다니?”

    “크흥! 위대하신 왕께서는 힘 있는 인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항하는 인간이 있을까 걱정하셨다. 그래서 1만 5천 명의 오르쿠 전사를 진주 시 안으로 먼저 보냈다.”

    한결은 좌우로 먼저 움직인 오르쿠 들의 목적을 알았다. 또 웃음이 나 왔다.

    “위대하신 왕이라고 불릴 만하네. 하지만 당신들 오르쿠는 저항한 우

    리를 용서할 수 있나?”

    “크흥! 용서? 못 한다.”

    “그럼 죽여라!”

    한결은 이성진에게 모든 것에서 밀 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깔끔하게 죽는 것을 선택했다.

    “크흥! 그건 위대하신 왕께서 결정 할 것이다.”

    하늘의 검은 주먹을 들었다. 한결 은 자신의 얼굴과 비슷한 크기의 주 먹이 눈앞으로 날아오는 것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한결이 쓰러지자 나머지는 쉽게 제 압되 었다.

    하늘의 검은 한결을 직접 둘러메고

    바리케이드를 떠나 이성진에게 갔 다.

    진주시 반란은 2일이 지나기 전에 끝나 버렸다.

    1만 5천 명의 오르쿠가 진주시 인 간들을 감시 보호하는 동안 진주시 외곽의 오르쿠 주둔지에는 1천 명의 사람들이 묶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결은 이성진을 위해 만든 천막 안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이성진이 보 였다.

    “으음……. 여기는……

    “머리가 좀 아플 겁니다.”

    한결은 자신이 하늘의 검의 주먹에 맞아 기절한 것을 기억했다.

    “왜 죽이지 않은 겁니까? 오르쿠는 우리를 용서 못 한다고 했는데

    살아서 노예로 치욕적인 삶을 살라 는 것이냐고 소리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의미 없었다. 자신이 선택 한 길을 이성진이 방해했다. 나중에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다.

    그런 한결의 귀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말이 들렸다.

    “오르쿠가 용서 못 한다고 해서 예

    전과 같이 다 죽이거나 노예로 삼는 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물론 위대한 왕인 이성진 씨 때문 에 앞에서는 못 하겠죠.”

    그냥 투정 비슷하게 튀어 나온 말 이었다. 그런데 이성진은 그것도 인 정했다.

    “맞아요. 모든 오르쿠가 끝까지 인 간을 친구로 생각한다고 장담할 수 없죠. 그래서 한결 씨가 필요합니 다.”

    “왜 제가 필요하죠? 위대한 왕께서 계시는데……

    이건 진심이었다. 오르쿠가 경배하 고 따르는 위대한 왕인 이성진이 있

    다. 문제가 생기면 이성진이 해결할 것이다.

    “나는 곧 떠날 겁니다. 내가 없는 이곳에서 누군가는 인간을 위해 일 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결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결도 마나 막을 통과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 봤다. 하지만 통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성진은 곧 떠날 것처럼 말했다.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 한결에 게 이성진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한결 씨와 장재웅 씨가 같이 힘을 합쳐 인간을 대표한다면 내가 없어

    도 오르쿠가 함부로 인간을 대할 수 없을 겁니다.”

    한결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자 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고통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죽 음을 택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믿으세요!”

    이성진을 믿고 싶다는 마음을 먹자 한결은 무언가 자신을 포근하게 감 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 다.

    “당신을 믿으면 정말 할 수 있나

    요?”

    “있습니다.”

    한결은 마나가 아닌 다른 힘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신성력 이라는 것은 아직 몰랐다.

    한결은 이성진에 대해 더 알고 싶 었다.

    “믿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위대 한 왕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내 이야기를요?”

    “네. 위대한 왕의 모든 이야기를 요.”

    한결은 동화책을 읽어 주기를 기다 리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이성 진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난감했 다. 한결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 유는 지금 힘차게 뛰고 있는 파나 신의 심장 때문인 것 같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본 능적으로 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 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 하는 이성진의 모습을 보던 한결은 더 자세하게 말했다.

    “엘 파나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듣기 원합니다!”

    한결은 확신에 가까운 추측으로 엘 파나에서부터의 이야기를 듣기 원했 다. 지구에서 먼저 엘 파나로 넘어

    간 것은 성녀 엘리스가 허공에 나타 나 한 이야기로 짐작할 수 있었다.

    이성진은 오르쿠를 단기간에 손에 넣었다. 그냥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오르쿠 사회를 잘 안다. 어떻게 잘 알 수 있을까!

    엘 파나에서 오르쿠를 먼저 겪어 보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

    한결의 결론은 그랬다.

    “긴 이야기가 될 텐데요?”

    “저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 다.”

    이성진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이 성진의 말대로 할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꼭 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자신이 믿는 사람의 일대기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15년도 더 된 이야기죠. 특이한 임무를……

    이성진은 처음 엘 파나로 넘어갔을 때부터 시작했다. 정찰 임무에서 암 살과 대규모 전쟁까지.

    한결은 더 눈을 반짝이며 이성진의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 다. 사소한 이야기를 빼고 큰일들만 이야기하는데도 한결은 중간에 감탄 사를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감정 이입도 했다.

    “엘 파나는 정치 기반이 완전 중세

    였군요.”

    “그래서 지구에서 넘어간 사람들이 왕국을 만들고 버틸 수 있었어요. 누구나 평등하다는 기본 이념을 그 대로 가지고 만든 왕국이었으니까 요. 하지만 평화 협상 도중에……

    이성진은 파나 신의 심장을 자신이 가진 것까지 모든 것을 말했다. 그 래서 엘 파나의 케르빌 제국을 중심 으로 모든 왕국이 힘을 합쳐 지구에 서 만든 6왕국을 멸망시키고 지구까 지 침공했다는 것까지도.

    이성진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 면서 한결이 화를 낼 줄 알았다. 어 떻게 보면 파나 신의 심장을 홈친

    것 때문에 엘 파나의 침공이 일어났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결은 이성 진의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 다. 오히려 더 궁금해했다.

    “그래서 지구로 돌아온 다음 어떻 게 대한민국으로 오신 겁니까?”

    이성진은 아직도 눈을 반짝이는 한 결에게 기억을 잃은 다음 아라의 엄 마 지애를 만난 것부터 이야기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한민 국으로 돌아와 지애가 죽은 다음 딸 인 아라를 키우며 산 것까지.

    “크흠•…"

    한결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눈 가에 손을 가지고 갔다. 아무리 봐

    도 눈물을 닦는 것 같았다. 곧 한결 이 고개를 돌렸다.

    “결국, 따님이신 아라 양을 찾기 위해 이곳을 떠나셔야 한다는 거군 요.”

    “맞아요.”

    “감동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반응인가 싶었다. 중 간에 원망을 들을 각오도 했었다. 엘 파나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 은 사람은 한결뿐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한결이 필요해 죽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원망과 독설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한결

    은 너무 정중하다. 아니 정중하다 못해 존경 이상의 눈빛을 담고 있 다.

    파나 신의 심장 때문에 세뇌되듯 마음이 바뀐 것은 안다. 그래도 이 건 너무하다 싶었다.

    감동이라니.

    “저 강한결……. 위대한 왕이신 이 성진 님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겠 습니다. 그리고 왜 위대한 왕 이성 진 님이 이 먼 길을 떠나셔야 하는 지 알리겠습니다.”

    한결은 가장 사랑하는 딸을 위해 떠나야 하는 길 도중에도 어렵고 힘 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도

    알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할 몫이니까.

    한결은 자신이 지금 이성진의 사도 처럼 행동하려 한다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설마 책으로도 만들 것은 아니 죠?”

    “아! 그걸 잊었습니다. 역시……. 위대하신 왕께서 제 부족함을 채워 주시는군요. 책으로 만들고 이야기 로 만들면 오크쿠들도 위대하신 왕 이성진 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태도가 더 바 뀌었다. 어쨌든 이성진이 원하는 방

    향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말은 못 했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 장재웅 씨와 힘을 합쳐 인간을 대표하는 자 리에 올라갈 생각은 있는 거죠?”

    이성진의 말에 한결은 고개를 끄덕 이며 말했다.

    “네. 지금은 꼭 하고 싶습니다. 그 것이 제가 한 잘못을 되돌려 놓는 일이라면……. 그리고 위대한 왕이 신 이성진 님이 바라시는 것이라면 하겠습니다.”

    저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을 봐서는 이제 완전히 마음을 돌린 것 같았다. 2시간이 넘게 이야기해 준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은밀하게 부탁 할 것이 있었다.

    “인간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라간 다음 초인이 된 사람들을 모아 오르 쿠와 함께 훈련해요.”

    “오르쿠와 함께요?”

    한결은 왜 오르쿠와 함께 훈련하라 는 것인지 몰라 궁금한 표정을 지었 다.

    그런 한결에게 이성진이 생각하는 또 다른 상황을 이야기했다.

    “마나막이 1년 뒤에 사라질 겁니 다. 더 빠를 수도 있고요. 그때 성 녀 엘리스는 이곳과 거제도를 가만

    히 두지 않을 겁니다.”

    한결은 이성진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진의 말대로였다. 파 나 신의 심장을 찾기 위해 지구를 침공했다. 그리고 파나 신의 심장은 이성진이 가지고 있다.

    오르쿠 성과 소인족 성은 이성진이 장악했다. 이성진의 세력이 된 것이 다. 이성진을 사로잡아 파나 신의 심장을 되찾으려면 세력부터 깎아 내야 한다.

    혼자인 이성진도 버거운데 전사만 12만 명에 달하는 오르쿠와 소인족 10만 명이 있으면 더 어려워진다.

    엘 파나의 사신 S 인 이성진의 지

    휘 아래 22만 명의 군대가 있다면 그 어떤 엘 파나의 종족도 쉽게 덤 빌 수 없다.

    마나막이 사라지는 순간 엄청난 전 력을 투입해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위 대하신 왕께서는 모두 힘을 합쳐 다 가오는 위험에 대비하라는 것이시군 요.”

    “네.”

    한결은 이성진의 말을 예언같이 받 아들였다. 그리고 이 일은 혼자만 힘써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오르쿠와도 협력해야 한다.

    “그럼 이제 일어나요. 그리고 같이

    나가서 밖에 있는 사람들도 설득해 줘요.”

    한결은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고 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위대 하신 왕 이성진 님의 명령대로 하겠 습니다.”

    “그래요.”

    이성진은 한결과 함께 천막 밖으로 나갔다. 천막 밖에는 아직도 1천 명 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곁에는 검은 전사들이 지키고 있 었다.

    그리고 천막 밖에서 기다리던 하늘 의 검과 하늘의 딸 그리고 대전사들

    이 바로 이성진을 향해 다가왔다.

    “크흥! 위대하신 왕이시여! 인간들 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하늘의 검이 대전사들을 대신해 물 었다. 대전사들은 지금 무릎 꿇은 인간들만이라도 죽여야 한다고 주장 했다. 본보기를 보여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 의 생각이었다.

    “저들은 고성 지역으로 보낸다. 그 리고 여기 강한결이 관리하게 한 다.”

    하늘의 검은 이성진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인간들을 살려서 데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전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고개를 살짝 돌렸 다. 대전사들이 안 된다며 들고 일 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대전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크흥! 나하고 이야기할 때는 이런 반응이 아니었는데……. 대전사 당 신들 내가 우습게 보이나?”

    하늘의 검은 살짝 화가 나 으르렁 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대전사 중 한 명이 조용하게 대답했다.

    “크흥! 절대 우습게보지 않습니다. 하늘의 검의 강함은 인정합니다. 하 지만 위대하신 왕의 말씀은 더 중요

    합니다.”

    대전사의 말을 들은 오르쿠들은 고 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성진은 오르 쿠들의 왕이자 신성의 대상이었다.

    말이 곧 법이자 지켜야 할 의무였 다. 그 어떤 오르쿠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줬으니 믿음이 더 강했 다.

    오르쿠의 믿음의 기반은 강함이다. 거기에 파나 신의 신성력이 더해져 더한 믿음이 생겼다.

    “크훙! 위대하신 왕께서 반역한 인 간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관리 하게 하신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입 니다.”

    대전사의 말에 갑자기 한결이 나섰 다.

    “그렇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 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한결의 말에 오르쿠는 물론 무릎 꿇고 있던 사람들도 놀라 한결을 쳐 다봤다. 한결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위대하신 왕께서는 오르쿠와 인간 이 친구가 되어 협력해 다른 적을 막아야 한다고 제게 말하셨습니다.”

    한결의 말에 오르쿠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다른 적이라니.

    하늘의 검이 소리쳤다.

    “킁! 인간들이 없어도 오르쿠만으

    로 적을 막을 수 있다! 한결 너는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인간은 인정 할 수 없다.”

    하늘의 검이 말하는 인정은 싸우는 전사의 인정을 말하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그런 전문적인 전사가 아니다.

    “그럼 위대하신 왕께서 제게 거짓 말을 했다는 건가요?”

    “크……흐흥……

    하늘의 검은 콧바람만 내뿜을 뿐 대답할 수 없었다. 이성진이 가만히 있으니 한결에게 진짜 말한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했다가는 이성진을 욕 보이는 짓이다.

    “위대하신 왕께서는 15년 전부터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로 불리셨고 엘 파나에 적이 많으십니다. 성녀 엘리스 역시 위대한 왕을 적으로 생 각합니다. 오르쿠 여러분, 생각해 보 십시오. 위대한 왕을 모시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한결이 그냥 저항군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핵심을 집어 말한다.

    한결의 말에 오르쿠들은 지구에 침 공한 다른 종족들이 이성진을 공격 할 것이란 것을 알았다. 당연했다.

    하지만 질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 다. 이성진이 있는 이상 피해를 볼

    지언정 패배는 없을 테니까.

    그것이 엘 파나의 검은 사신 으의 전설이다.

    “만약 우리가 진다면 오르쿠는 물 론 인간들까지 모두 죽을 겁니다.”

    이건 오르쿠가 아닌 무릎 꿇고 있 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이었다.

    “진짜 적은 지금 눈앞에 있는 오르 쿠가 아닌 모든 인간을 노예로 삼고 죽이려는 놈들이 적입니다. 우리가 왜 죽음을 각오했습니까? 다른 사람 들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데 위대하신 왕께서 모든 것을 제게 알려 주시고 마음을 바꾸게 했습니 다. 이대로 그냥 죽을 수는 없습니

    다. 사람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오르쿠와 협력하는 일이 될지라도 요!”

    한결의 말이 울림이 되어 무릎 꿇 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결이 오르쿠에게 말할 때는 실망 했었다. 그런데 지금 말을 들으니 실망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니었다.

    오르쿠와 힘을 합쳐 싸우지 않는다 면 인간은 최소 노예가 된다. 아니 다 죽을지 모른다.

    어제까지 같이 생활하며 지켰던 사 람들이.

    그래도 마음이 움직였을 뿐 완전히 돌아서지는 않았다. 그것을 잘 아는

    한결은 이성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위대하신 왕이신 이성진 님! 저들 은 이제 위대하신 왕의 전사가 되어 종족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저들에 게 축복을!”

    축복이라는 말을 들었다. 축복을 어떻게 주란 말인가 싶었다. 그렇다 고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르쿠도 이해할 만한 말을 했다.

    “나의 전사가 된다면 저들 역시 오 르쿠의 전사나 마찬가지이다. 고성 지역으로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전 사의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축복이다.”

    마지막은 한결이 축복을 주라고 말 해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무릎 꿇 은 1천 명의 귀와 가슴에는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들을 지켜라! 그것을 위해 싸 워라!

    오르쿠들에게는 전사의 훈련이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실력이 떨어지 는 인간이 실력을 키우기 위해 훈련 을 한다. 그것을 욕할 오르쿠는 없 었다.

    더군다나 위대한 왕의 전사라고 선 언까지 했다. 그렇다면 위대한 왕의 전사에게 맞는 실력을 쌓는 것이 맞 다.

    “크흥! 모든 것은 위대하신 왕의 명령대로!”

    하늘의 검이 주먹을 들어 하늘을 향해 지르며 소리쳤다. 그러자 오르 쿠들이 똑같이 소리쳤다. 그 울림이 또 1천 명의 마음에 박혔다.

    저 강하고 흉포한 오르쿠들이 이성 진의 말 한마디에 복종하고 따른다.

    “이제 저들은 포로도 죄인도 아닌 전사다. 일으켜 세워라!”

    이성진의 말에 검은 전사들이 1천 명의 사람들을 부축해 일으켰다.

    “이제 새로운 전사들을 맞아 축하 하며 먹고 마시며 즐겨라! 인간은 오르쿠의 친구다!”

    “킁! 인간은 오르쿠의 친구다! 친 구와 함께 적을 죽여라!”

    하늘의 검이 이성진의 말을 받아 소리쳤다. 그러자 오르쿠들이 또 소 리 쳤다.

    [킁! 친구와 함께 적을 죽여라!]

    열광하는 오르쿠를 보며 이성진은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을 알았다. 나 머지는 협력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반역자에서 전사로, 전사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은 오르쿠의 환영 을 받으며 같이 마시고 즐기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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