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18화 (18/50)
  • 2장. 사람답게

    이성진과 진명수 그리고 장재웅이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본 것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이었다.

    이호영은 옥수수 바구니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한쪽에 수확한 옥수 수를 쌓아 놓고 오면 그냥 바꿔 주 고 있었다.

    이성진이 도착하자 일단 바꿔 주는 것을 멈췄다.

    “오셨습니까! 명수야! 너는 줄 하 나 더 세워라!”

    진명수가 이성진을 쳐다봤다. 이성 진이 아무 소리 안 하자 진명수는 바로 뛰어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옥수수를 부은 다음 이쪽으로도 와라!”

    이호영에게 몰리던 사람들이 진명 수에게도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 직 꽤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아직 10 바구니도 못 채 웠는데 이러다가 20바구니 못 채우 는 것 아니냐!’고 하는 소리가 들렸 다.

    그리고 다른 농장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멀리서 오르쿠 하나가 다가

    왔다. 그리고 곧 기분 나쁘다는 듯 소리쳤다.

    “크흥. 옥수수 절반도 안 된다. 이 거 왜 이러냐?”

    이호영이 바구니를 바꿔 주다 말고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밥 먹다 나온 아들 님! 저녁때까 지는 다 채워 놓겠습니다.”

    “크흥! 못 채우면 농장 관리자 다 죽는다!”

    이호영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오르쿠가 밥 먹다 나온 아들이었다. 이름 그대로 밥 먹다 나와서 그런지 먹을 것에 더 예민했다.

    “크흥. 눈 찢어진 인간 어디 있 냐?”

    오르쿠는 한진구를 찾았다. 이호영 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싶어 이성 진을 쳐다봤다.

    “그게••••••

    밥 먹다 나온 아들은 이호영이 이 성진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무슨 상 황인지 알았다.

    “크홍. 죽었나? 그럼 네가 새로운 관리자냐? 재수 없게 생긴 놈?”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 었다. 갑자기 재수 없게 생긴 놈이 라니.

    “크흥. 너는 앞으로 재수 없게 생

    긴 놈이다.”

    왜 재수 없게 생긴 놈인지 궁금했 다. 그것을 밥 먹다 나온 아들은 바 로 눈치 챘다.

    “크르흥! 왜 기분 나쁘나? 그럼 덤 벼라!”

    밥 먹다 나온 아들은 이성진의 멋 진 얼굴이 싫었다. 이상하게 멋져 보여서 재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얼굴을 반쯤 짓이겨 놓을 생각이었 다. 어차피 옥수수 수확량도 못 맞 출 것 같았다.

    “내 이름은 이진성이요. 밥 먹다 나온 아들!”

    밥 먹다 나온 아들은 황당한 표정

    을 지었다. 인간 따위가 자신의 이 름을 당당하게 밝혔다. 이건 도전이 었다. 밥 먹다 나온 아들이 울퉁불 퉁한 몽둥이를 들었다.

    “크흐흥! 얼굴을 짓이겨 주지!”

    밥 먹다 나온 아들은 이성진을 향 해 달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푸르흥! 밥 먹다 나온 아들! 멈춰 라!”

    밥 먹다 나온 아들은 고개를 돌려 멈추라고 외친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어쩌다 낳 은 세 번째 아들이 다가오자 불만스 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크흥. 왜 그럽니까?”

    “푸르흥. 내가 이름을 기억한 인간 진성이다. 나와 전사의 대결이 약속 되어 있다!”

    전사의 대결이란 말에 밥 먹다 나 온 아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성진을 다시 쳐다봤다.

    자신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인간처 럼 보였다. 그런데 오르쿠 전사 중 에서도 전사로 불리는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전 사의 대결을 약속했다.

    전사의 대결을 약속했다면 자신이 이성진을 건드리면 안 된다. 이성진 을 건드리는 순간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결과는 안 봐도 빤히 보였다.

    자신의 죽음이었다.

    “크흥…… 알겠어요! 하지만 오늘 옥수수 수확량을 못 채우면 그건 그 냥 못 넘어갑니다.”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은 자신 이 봐도 옥수수 수확량을 못 채울 것 같이 보였다.

    “푸흥! 못 채운다면 내 것을 가져 가라!”

    밥 먹다 나온 아들은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이 자신의 먹을 것을 양보하는 것을 보고 또 놀랐다. 이 성진이 먹을 것을 포기할 정도의 전 사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진이 거부했다.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 호의

    는 고맙다. 하지만 옥수수 수확량은 내 책임이다. 그것을 원하고 나에게 이 농장을 맡긴 것 아닌가?”

    이성진의 말에 밥 먹다 나온 아들 은 어이가 없었다. 인간 따위가 오 르쿠 전사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 들에게 반말을 한다. 그런데 더 어 이없는 것은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의 반응이었다.

    “푸홍! 푸흥! 내가 이름을 기억한 인간 진성! 미안하다. 잊었다. 네가 강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간이 반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 아들인다.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눈 도 껌뻑였다.

    “푸흥! 나는 진성 네가 어떻게 모 자라는 옥수수를 채울 것인지 지켜 보겠다!”

    “마음대로.”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에게 대 답해 준 다음 바구니를 바꾸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오늘 20바구니를 다 채우면 감자 20개를 줍니다.”

    사람들은 이성진의 말을 듣고 반신 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여태까지 그 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파란 완장 을 차고 있지만 이성진은 처음 봤 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 같자 이

    호영이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감자 20개 준다잖 아! 싫으면 하지 마!”

    이호영까지 준다고 하자 누군가 소 리 쳤다.

    “진짜 줍니까?”

    이호영이 이성진을 쳐다봤다. 그러 자 이성진은 다시 소리쳤다.

    “여기 있는 오르쿠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 앞에서 약속합니다. 20바 구니를 채워 오면 감자 20개를 줍 니다.”

    오르쿠의 이름을 부르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지키지 않으면 오르쿠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비켜!”

    한 명이 새치기를 해서 옥수수 쌓 아 놓는 곳으로 달려가자 우르르 달 려가기 시작했다.

    “장재웅 씨도 바구니 바꿔 주세 요!”

    “알겠습니다.”

    장재웅도 진명수 옆으로 가서 바구 니 바꾸는 일을 도왔다. 3명이 하자 생각보다 빠르게 바구니를 바꿔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감자 20개를 주며 사람들 을 열심히 일하게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이호영 씨!”

    “네!”

    “바구니 들어!”

    이호영은 더는 바구니를 바꿀 사람 이 없는데 왜 그런가 싶었다. 하지 만 이성진의 말이니 바구니를 들었 다.

    “뭐해?”

    “네?”

    “뛰어가서 옥수수 따 와. 이호영 씨라면 지금부터 시작해도 100바구 니 넘게 딸 것 같은데.”

    이호영은 잠시 당황했다가 바구니 4개를 포갠 다음 옥수수 밭으로 뛰 었다.

    “명수 너는 안 가냐?”

    “네? 네! 가겠습니다!”

    진명수는 자신도 따라고 할 줄은 몰랐다. 바로 바구니를 들었다.

    “2개 들고 앞뒤로 가득 채워서 뛰 어 와라! 이것부터 훈련 시작이다! 강해지고 싶으면 열심히 뛰어라!”

    “네!”

    진명수는 강해지는 방법 중의 하나 라는 말을 듣자 어깨가 아픈 것도 잊고 바구니 2개를 들고 뛰었다.

    “재웅 씨는 나하고 바구니 바꿔 주 는 일 하면 됩니다.”

    “하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재웅은 자신도 뛰어가야 하나 싶 었는데 아니자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밥 먹다 나 온 아들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 었다.

    해가 지기 전에 옥수수 수확량을 채운 것도 모자라 10%나 더 수확 했기 때문이었다.

    “밥 먹다 나온 아들! 약속대로 옥 수수 수확량을 맞췄다.”

    “크흥! 인간…… 인정한다. 하지만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이 이름을 기억했다고 해서 나도 이름을 기억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재수 없……”

    “이름 기억하면 저것 다 준다.”

    밥 먹다 나온 아들은 이성진이 말

    을 중간에 자른 것에 기분 나쁘지 않았다.

    “푸흥흥! 진짜냐?”

    농장의 기본 원칙은 하나였다. 매 일 수확한 일정한 양만 오르쿠에게 바치면 된다. 넘치게 수확해도 일정 한 양만 바친다. 나머지는 관리자가 알아서 보관한다.

    보관하는 이유는 매일 일정한 양을 오르쿠에게 바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농 장에 일하는 사람이 적어 수확량이 적어도, 매일 똑같은 양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르쿠는 관리 책임

    을 묻는다.

    이호영이 혹시 오늘 수확이 모자랄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관리자들이 따로 모아 둔 옥수수가 있다고 말해 줬다.

    오늘 수확한 양은 평소보다 10% 더 많았다. 10%는 따로 쌓아 놓았 다. 그것을 준다고 한 것이다.

    “내 이름을 기억한다면 주도록 하 지.”

    오르쿠가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의 미가 있다.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 들은 강함에 이끌려 이름을 기억했 다.

    밥 먹다 나온 아들의 성향을 봐서

    는 먹을 것으로 기억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푸훙홍. 이름 기억하겠다. 말해라 이름!”

    밥 먹다 나온 아들은 사실 먹을 것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성진의 가명 인 진성은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어쩌다 나온 세 번째 아들이 이름을 기억한다.

    곧 이 근방의 모든 오르쿠가 이성 진의 가명인 이진성을 기억할 것이 다. 어차피 기억할 것,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

    으면서 이득을 얻기 위해 이성진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거기다가 먹을 것도 얻으니 더 좋 았다.

    “이 진성이 다.”

    “푸훙. 나도 기억했다. 이진성! 그 럼 저건 내 거다!”

    밥 먹다 나온 아들이 기분 좋게 웃으며 한쪽에 쌓인 옥수수를 가리 켰다.

    “물론이다.”

    이성진과 밥 먹다 나온 아들이 옥 수수를 가지고 흥정하고 있을 때 파 란색 완장을 찬 2명은 사람들 틈에 서 숨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

    다.

    오르쿠가 2명이나 와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기 때문 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이성진이 오르쿠와 대등하게 협상하고 이름까 지 기억하게 하는 것도 보고 들었 다.

    자신들도 먹을 것을 더 줬다면 이 름을 기억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꽤 많은 옥수수와 다른 먹을 것을 바쳤는데도 이름은 기억해 주지 않 았었다.

    “푸흥! 내 옥수수! 잘 보관해라.”

    10%는 작은 양이 아니다. 그런데

    보관하라고 말하니 황당했다.

    “저걸 내가 보관해야 하나?”

    밥 먹다 나온 아들이 인상을 썼다. 그러자 이호영이 나섰다.

    “농장 관리자가 머무는 곳에 창고 가 있습니다. 그곳에 따로 모아 놓 으면 됩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오르쿠 혼자 저 많은 양을 다 들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 수확한 옥수수는 어떻 게 하나 싶었다. 그런데 곧 3m가 넘는 초록색 괴물이 끄는 거대한 마 차가 도착했다.

    마차가 도착하자 이호영은 능숙하 게 농장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옥수

    수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진 명수는 사람들 몇 명을 데리고 마차 에서 무언가 들어 있는 포대를 내렸 다. 100포대 넘게 내리고 도축한 돼 지와 달걀 등을 내렸다.

    옥수수를 수확한 대가인 것 같았 다.

    이호영은 꼼꼼하게 살피면서 농장 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지 시를 내렸다. 그러다가 사람들 사이 에 숨어 있는 동료 2명을 발견했다.

    “두 사람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이호영과 눈이 마주치자 2명은 머 쓱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나왔다. 오 르쿠와 이야기가 좋게 끝난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냥.”

    “어…… 그냥.”

    이호영은 한숨을 쉬고 싶었다. 평 소에도 순찰을 핑계로 돌아다니면서 눈치만 보는 2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든지 불리하면 도망부터 갈 것 이다. 그래도 내쫓거나 불평할 수 없는 것이 초인 5명이 있다는 것과 3명이 있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었 다.

    외부에서 보기에 이 작은 옥수수 농장을 얻기 위해 초인 5명과 싸우 는 것은 손해다.

    더군다나 양계 농장을 빼고는 다

    고만고만한 농장이었다.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이 옥수 수 농장의 새로운 책임자 진성 님에 게 인사해.”

    이호영이 진성 님이라고 부르는 사 람이 이성진인 것은 알고 있었다. 오르쿠에게 전혀 겁먹지 않고 반말 하는 사람은 이성진뿐이니까.

    “안녕하십니까! 권진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양장우입니다.”

    절대 이성진이 아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허리까지 90도로 굽혀서 인사했다.

    오르쿠가 이름을 기억한다. 이호영 이 말하는 것이나 공경한 태도를 봐

    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진 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성진에게 한진구가 당했다고 생 각했다. 이호영과 진명수도 부상당 한 것 같고.

    “나중에 인사하지.”

    지금은 저 둘의 인사를 받을 때가 아니었다. 오르쿠에게 인정받았다는 확실한 인상을 더 심어 줘야 했다. 그래야 초인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더 쉽게 다룰 수 있었다.

    “밥 먹다 나온 아들!”

    “크흥. 진성! 왜 부르냐?”

    권진권과 양장우는 오르쿠가 크게 기분 나빠 하지 않으면서 이성진의

    가명을 부르자 더 위축되었다.

    “언제든 놀러 와라. 먹을 것 준비 해 두지.”

    “푸훙! 전사는 마음대로 먹어도 된 다! 준비해 두지 않아도 내가 옥수 수 따서 먹는다!”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말해도 콧바 람을 내뿜는 소리가 달랐다. 좋아하 고 있었다.

    “푸흐응! 내가 이름 기억한 인간 진성! 내 것은 없나?”

    먹을 것을 더 좋아하는 밥 먹다 나온 아들을 임시로 옥수수 농장 방 패막이로 사용하려고 한 것인데, 뜻 밖에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도

    끼어들었다.

    당연히 준비해 줘야 했다.

    “내 이름을 첫 번째로 기억해 준 오르쿠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푸홍! 30일이다. 그 안에 다른 놈 들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라! 내일 본다! 가자!”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은 이성 진의 의도를 눈치챘다. 아니 눈치챘 다기보다는 이성진이 회복되기 전에 다른 인간이나 오르쿠와 싸워 다치 는 것이 싫었다.

    자신을 더 짜릿하게 만들어 줄 때 까지 지켜 줄 생각이었다. 멀리서 계속 이성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래서 밥 먹다 나온 아들이 이성진에 게 시비를 걸 때 끼어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오래 기다려 줄 수는 없 었다. 30일이란 시간을 정했다.

    어쩌다 낳은 세 번째 아들은 다른 오르쿠들과 함께 마차를 끌고 사라 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옥수수 농장의 정 리였다.

    오늘 옥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고 감자를 받아 가기 위해 사람들이 기 다리고 있었다.

    “저 포대가 감자인가?”

    이호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호영 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옥수수 한 마차의 대가로 감 자 110포대와 돼지 한 마리 그리고 달걀 100개를 받습니다.”

    마차 하나 크기가 40피트 컨테이 너였다. 가끔 뉴스나 영화에서 화물 선에 실려 있는 가장 큰 컨테이너라 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옥수수 농장에서 일한 사람들 의 숫자는 얼핏 봐도 100명 정도였 다.

    “그럼 약속대로 사람들에게 감자 20개씩 나누어 줘.”

    “알겠습니다.”

    이호영과 진명수 그리고 권진권과 양장우는 감자 포대를 풀었다. 그리

    고 감자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것 을 본 이성진은 어이가 없었다. 바 로 옆에 서 있는 장재웅에게 물었 다.

    “집에서 먹은 감자는 저렇게 크지 않던데요?”

    감자 대부분이 작은 호박만 했다. 어떤 감자는 수박 크기였다. 지금 작은 감자만 따로 골라내는 것이다.

    “우리는 관리자가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가장 작은 감자가 주먹만 해요.”

    골라내는 감자를 보니 장재웅의 말 대로다. 이것도 잘만 이용하면 될 것 같았다. 옥수수 농장이 작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다른 농장에 비해 작은 것뿐이지 100명이 일하 기에는 컸다.

    그리고 확인할 것도 하나 있었다. 농작물의 크기가 커도 너무 컸다. 또한, 말하는 것이나 상황을 봐서는 매일 농장에 와서 수확하는 것 같았 다.

    “옥수수 농장 수확이 끝나면 그때 는 무슨 일을 하죠?”

    장재웅은 이성진의 질문을 이해하 지 못했다.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 정이었다.

    “옥수수를 다 따 버리면 그때는 다 른 농장에 가서 일하나요?”

    “네? 다른 농장에 가서 일을 해 요? 하하!”

    장재웅은 이제야 이성진의 질문을 이해했다. 그래서 웃으며 대답했다.

    “옥수수를 다 딸 수가 없어요. 2일 이면 새로 자라요! 이 농장의 옥수 수나 감자는 오르쿠가 준 것들이에 요. 그걸 심어서 관리하고 수확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장재웅의 말대로라면 감자나 옥수 수는 지구 것이 아니다. 엘 파나의 것이다.

    “왜 저렇게 잘 크고 빨리 자라냐고 오르쿠에게 물어봤는데 대부분 잘 모른다는 대답만 했어요. 자기는 주 술사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나요?”

    오르쿠에 대한 정보 중에는 주술사 에 대한 것도 있었다. 마법 대신 주 술을 사용한다. 지구로 말하자면 샤 머니즘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럼 작은 감자는 일한 사람들에 게 주고 나머지는 관리자가 다 가지 는군요.”

    “ 아마도요.”

    장재웅이 아마도라고 대답했다. 하 지만 관리자가 어떻게 사용하든 오 르쿠는 상관하지 않는다. 초인이 되 었다는 이유 하나로 관리자가 된다. 그리고 마음대로 한다.

    어느새 이호영과 관리자들은 감자 의 분류를 끝냈다.

    “이제 나누어 주겠습니다.”

    이호영은 간단하게 보고하고는 사 람들에게 주먹만 한 감자 20개씩을 주기 시작했다. 권진권과 양장우는 처음에는 감자를 왜 20개씩 주냐고 투덜댔다. 하지만 이호진이 감자를 나누어 주면서 밥 먹다 나온 아들과

    의 일을 말해 주자 불만이 쏙 들어 갔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감자를 다 나누어줬다. 사람들은 모두 돌아 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이호영과 진명수, 권진권과 양장우 그리고 장 재웅뿐이었다.

    장재웅은 이성진과 함께 집으로 돌 아가기 위해 기다린 것이다.

    이호진이 관리자 중에서 나이가 가 장 많아 그런지 리더처럼 이성진에 게 모든 것을 말했다.

    “남은 것들을 집과 창고로 옮기겠 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호영은

    진명수와 권진권 그리고 양장우와 함께 한쪽에 있는 3개의 커다란 수 레에 바구니와 남은 감자 그리고 돼 지고기와 달걀을 실었다.

    이호영과 권진권 그리고 양장우가 수레 하나씩을 잡았다. 3명 모두 힘 이 강해진 초인이다. 그러니 1톤 트 럭 짐칸만 한 수레를 쉽게 끌 수 있었다. 진명수는 이성진의 옆으로 왔다.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

    수레가 먼저 출발하고 그 뒤를 진 명수의 안내로 따라갔다. 농장에서 10분쯤 가자 농장 외곽에 커다란 창고 2개와 3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창고에 그려진 표시는 농협이었다. 농협의 창고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호영이 자 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옥수수 농장이 다른 농장보 다 좋은 점은 농협에서 사용하던 창 고와 건물이 딸려 있다는 겁니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창고에서 누군가 횃불을 지피는 것 이 보였다. 그리고 곧 사람들이 우 르르 나왔다.

    성인 남자 5명과 여성 7명이었다.

    “관리자님! 오셨습니까!”

    “한수! 별일 없었지?”

    “네.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분

    아침에 나간 한진구가 없다. 그리 고 못 보던 사람이 파란색 완장을 차고 나타났다. 한진구가 죽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성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호영와 대등한 관계인지 아니면 더 위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이분은 이 농장의 책임자로 오신 분이야. 인사 드려라!”

    한수라고 불린 남자는 바로 두 손 을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어이쿠! 책임자로 오셨군요. 김한 수입니다. 이곳 창고를 관리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진성입니다.”

    김한수는 거의 60대로 보였다. 김 한수 뒤에 있는 4명의 남자는 3~40 대로 보였다. 여자 7명 중 5명은 나 이가 비슷해 보였다. 2명은 2〜30대 로 보였다. 그들 역시 두 손을 모으 고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관리자이시면서 농장 책 임자이신데…… 말씀 편하게 하세 요. 저는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입 니다.”

    “그건 앞으로 다시 말하기로 하고. 이호영!”

    “네!”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창고에서 나온 남자 와 여자들이 수레를 끌어야 했다. 하지만 이성진의 뒤를 바로 따라가 려면 어쩔 수 없었다.

    3대의 수레가 왼쪽 창고로 들어갔 다. 창고 안에는 감자로 생각되는 포대와 옥수수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제 이건 다 내 건가?”

    이성진의 말에 이호영과 진명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진 권과 양장우는 아니었다.

    “저기, 원래 5등분해서 나누어 가 졌습니다.”

    권진권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 러자 이성진은 이호영을 쳐다봤다.

    “팔 다 나았지?”

    “네. 다 나았습니다.”

    초인이 되어 좋은 점은 역시 회복 이 빠르다는 것이다.

    “나는 적당히는 안 될 것 같은데?” 이호영은 적당히란 말을 죽인다는 말로 들었다. 그동안 같이 농장에 있던 정을 생각하면 죽일 수는 없었 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호영이 삼단봉을 꺼냈다. 권진권 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이성진과 이 호영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지만 설마 하는 생각은 항상 최 악의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잊고 있 었다. 능력을 얻어 초인이 되고 나 서 어렵지 않게 살게 된 이유 때문 이다.

    이호영이 땅을 박찼을 때는 늦었 다.

    “억!”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어 깨가 부서졌다. 이호영은 능력에서 자신과 큰 차이가 없는 권진권을 봐 줄 수가 없었다.

    봐주다가는 반격당한다. 반격당하 는 것뿐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성진이 적당히 할 수 없

    다고 한 말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권진권이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 각했으니까.

    “미쳤어요?”

    권진권이 뒤로 빠지며 왼손에 단검 을 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 호영이 뒤로 빠지는 권진권에게 달 려가 왼팔을 삼단봉으로 쳤다.

    또 빠악 소리와 함께 왼팔이 부러 졌다.

    “크아악!”

    권진권이 팔을 덜렁거리며 양장우 가 있는 방향으로 도망쳤다. 양장우 는 벌써 삼단봉을 꺼내 들고 있었 다. 권진권이 양장우 뒤로 숨었다.

    “장우 씨! 막지 마요.”

    “호영 형님! 왜 그러는 것인지 이 유나 알고 싶습니다.”

    이호영은 살짝 고개를 돌려 이성진 을 쳐다봤다. 양장우도 이성진 때문 인 것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시간 을 벌거나 틈을 노리기 위해 물어봤 다.

    이호영이 고개를 돌리자 이때다 싶 었다. 이호영이 고개를 돌린 틈을 타 양장우가 공격했다.

    이호영이 양장우의 공격을 눈치챘 을 때는 늦었다. 양장우의 삼단봉이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호영은 순간적으로 죽음을 예감

    했다. 그리고 양장우의 삼단봉이 느 린 동작으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단검이 느린 동작으로 양장우의 팔을 향해 날아 가는 것이 아닌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와 몸을 있는 힘껏 틀었다.

    “억!”

    “크윽!”

    갑자기 날아온 단검이 양장우의 팔 에 꽂히긴 했다. 하지만 힘을 완전 히 줄일 수는 없었다. 양장우의 삼 단봉은 그대로 이호영을 향해 떨어 졌다. 이호영은 간신히 머리를 피했

    다. 대신 왼쪽 어깨를 내줬다.

    “이호영! 가슴이 비었잖아! 뭐해!”

    어깨의 통증 때문에 양장우를 공격 할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이성진 의 목소리가 정신을 깨웠다. 단검 때문에 오른쪽 팔에 힘이 안 들어가 는 양장우의 가슴이 비어 있다는 것 을 알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삼단봉을 아래 에서 위로 올려쳤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양장우가 옆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커헉. 커억……”

    양장우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이 호영의 공격에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이성진은 피를 토하는 양장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팔에서 단검 을 뽑았다.

    양장우는 피를 토하면서도 두려운 눈빛으로 이성진을 쳐다봤다. 자신 을 죽이지 말라고 눈빛으로 애원했 다. 그리고 후회했다.

    아침에 이성진이 한진구에게 당하 는 것을 봤었다. 이성진이 아무 능 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오르쿠와 이호영 때문 이었다.

    오르쿠가 없을 때 기회를 봐서 이 호영을 따돌리고 이성진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모아 온 것과 지위를 빼앗기기 싫었다.

    “아프다. 참아라.”

    이성진이 가슴을 더듬더니 부러진 갈비뼈를 잡고 원위치로 들어 올렸 다.

    “으아악!”

    원래라면 가슴을 열어서 부러진 갈 비뼈를 폐에서 빼내 제자리에 잘 연 결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초인이 된 이상 그런 수술을 필요 없다.

    잘 먹고 쉬어 주기만 하면 빠르게 낫는다.

    이호영 역시 반나절 만에 단검에

    잘린 근육이 붙었다.

    모두 초인이 되는 적응 기간을 넘 긴 것이다.

    “양장우라고 했나?”

    양장우는 식은땀을 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가지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양장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힘을 가지면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안 그런가! 양장우 중 사?”

    양장우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군인이었다는 것은 권진권만 아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양장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작을 보니까 군더더기가 없더 군. 봉을 사용하는 방법을 훈련받았 어. 그리고 신발이 양장우 너만 군 화더군. 외모로 봐서는 20대 후반 정도니까 중사나 상사 정도로 생각 했지. 중사는 찍은 거야.”

    양장우의 동작이 깔끔해서 단검으 로 팔을 맞출 수 있었다. 어설펐다 면 어깨나 목에 단검이 꽂혔을 것이 다.

    양장우는 가슴이 편해지는 것을 느 꼈다. 폐가 벌써 회복하는 것이다.

    “군……인이셨습니까?”

    “옛날에.”

    뒤에서 이성진을 지켜보던 장재웅 과 이호영은 이성진이 왜 강한지 알 았다. 그냥 군인이 아닌 것이 분명 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재웅은 이성진이 기억을 잃지 않았음을 알았다.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뒤에서 놀라든 말든 이성진은 양장 우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양장우! 왜 군인이 되었지?”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부사관이 되었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왜 군인이 되었는지는 상관이 없 지. 군인이 되는 순간 지켜야 할 의 무가 있으니까. 양장우 너는 아직 대한민국의 군인인가?”

    양장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국민의 지키는 것이 군인의 임무 가 아닌가?”

    양장우가 더 고개를 숙였다. 그리 고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 지킵니까? 당신은 오르쿠 와 싸워 본 적이 있습니까? 총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게 달려옵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싸웁니다. 바로 옆

    에서 동료의 머리가 몽둥이에 터져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양장우는 그때 생각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공포가 다시 살아났다.

    오르쿠 한 명을 죽이려면 수백 발 을 쏴야 했다. 그것도 운이 좋아 눈 이나 입 안 또는 심장을 정확하게 맞춰야 죽일 수 있었다.

    “검은색 구름이 몰려왔을 때는 온 몸을 가렵다고 긁으며 죽어 갔습니 다! 탱크나 장갑차도 뒤집어 버리는 힘을 가진 오르쿠와 싸워 봤습니 까!”

    양장우는 급기야 고개를 들고 소리 쳤다. 양장우의 말에 이호영이나 진

    명수, 권진권은 고개를 돌렸다. 양장 우처럼 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 으로 본 적은 있었다.

    학살당하는 군인과 경찰 그리고 사 람들을…….

    “웃기는군.”

    웃긴다는 말에 양장우는 억울한 눈 빛을 했다. 이성진은 싸워 보지 않 아서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 다.

    “오르쿠가 두렵다고 사람들을 노예 처럼 생각하고 부려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건가?”

    “그럼 나 보고 어떻게 하라고!”

    갈비뼈의 통증도 잊고 양장우는 소

    리 쳤다.

    “나하고 같이 이 지역을 먹으면 되 지.”

    이제는 더 할 말도 없었다. 정확하 게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 다. 갈등하는 양장우의 표정을 보니 더는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네 친구 챙겨서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 6시에 와라. 안 온다면 떠난 것으로 알겠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 을 때는 모르는 사람이다.”

    양장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권진 권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권진권 을 부축해 창고를 나갔다.

    이성진이 몸을 돌리자 창고를 지키

    는 사람들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 고개를 돌렸다. 저런 모습도 이 해가 된다.

    새로운 관리자가 왔다. 그리고 바 로 싸움이 일어났다. 주도권 싸움으 로 생각할 것이다. 아무런 힘도 없 는 저들에게는 새로운 관리자가 두 려움의 대상이다. 새로운 규칙을 주 고 그것을 지키라고 할 테니까.

    “이것들 먼저 정리하고 다 같이 모 여 저녁 먹읍시다.”

    이성진의 말에 바로 반웅한 사람은 이 창고를 관리한다는 김한수였다.

    “뭣들 해! 말씀 못 들었어? 빨리 움직여!”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가 수레에 있는 물건을 내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바구니를 내려 망가진 것 과 망가지지 않은 것을 나눴다. 남 자들은 감자 포대와 돼지고기 그리 고 달걀을 내렸다.

    “이호영! 진명수! 두 명도 도와!”

    이호영과 진명수는 두말하지 않고 달려가 수레에서 물건 내리는 것을 도왔다.

    이호영과 진명수가 물건 내리는 것 을 돕자 사람들은 놀랐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일이 끝났다.

    물건 정리가 순식간에 끝나고 모두

    이성진 앞으로 모였다.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호영!”

    “네.”

    “전에는 이다음에 어떻게 했어?”

    “알아서 각자 할 일을 했습니다. 여자들은 바구니를 고치고 남자들은 물건을 다시 정리하거나 창고를 고 치고 밤새 불침번을 섭니다.”

    짜임새 있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아니었다. 초인이 된 관리자들은 그 냥 얼굴 마담인 것 같았다. 실질적 으로 이 창고를 운영하는 것은 김한 수 같았다.

    사람들이 김한수를 힐끗 쳐다보는

    것이 그렇게 보였다.

    “김한수 씨!”

    “네. 말씀하십시오.”

    김한수는 바로 달려와 허리를 숙였 다.

    “이곳에 몇 명이나 살고 있습니 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입니다.”

    김한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저기 있는 사람 중 부부인 사람은

    몇 명입니까?”

    “저까지…… 5명입니다.”

    “그럼 10명이고 남은 여자 2명은 누구 딸입니까?”

    “제 딸입니다.”

    “그래요? 나머지 분들은 아이들이

    없나요? 3〜40대로 보이는데.”

    김한수는 땀을 홀리며 대답하지 못 했다. 이호영은 뒤에서 지금까지 이 성진처럼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창고 관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창고나 건물에 숨겨 두지는 않았 을 것 같고…… 근처에 있다면 다 데리고 오세요!”

    김한수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전

    에 있던 관리자가 아이들을 싫어해 서 아이들을 다른 장소에서 키웠을 뿐입니다!”

    이호영은 한진구가 아이들을 유독 싫어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한진구 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 다. 옥수수 농장을 지키고 이익만 얻으면 되니까.

    “음식물 빼돌렸다고 그러는 것 아 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한수는 눈을 크게 떴다. 가장 걱 정하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진 구가 제대로 일도 못 하는 아이들에 게까지 먹을 것을 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먹

    고살려고 조금씩 창고에서 음식물을 가져갔다.

    그것뿐만 아니다. 티가 나지 않는 정도로 음식물을 빼다가 팔아 다른 것과 교환하기도 했다.

    절대 들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 다. 관리자들은 창고 안의 물건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저 김한수가 보고하는 대로 믿었다.

    큰 차이가 안 나기 때문이기도 하 지만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한수는 이성진의 말을 곧이곧대 로 믿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 변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약 속합니다. 아이들은 몇 명이나 있나 요?”

    몇 명이나 있냐고 묻자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달려와 무릎을 꿇었 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아이 들만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특히나 어머니들이 울먹이고 있었 다.

    “아이들을 건드리다니요?”

    아이들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꼭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처 럼 말하고 있었다.

    뒤에서 이호영이 사람들 대신 대답

    했다.

    “한진구가 몇 번 아이들을 판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팔아? 어디에?”

    “네. 양계 농장에 팔았습니다. 하지 만 고아인 아이들만 팔았습니다.”

    고아인 아이들을 팔았다. 하지만 저들이 보기에는 자신들의 아이도 팔릴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 창고에서 다 같이 살기 위해서 여러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겁니 다.”

    이성진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눈

    빛을 보였다. 지금까지 초인이 된 관리자 중 이성진 같은 사람은 없었 다. 아니 있었지만 다 죽었다.

    대부분 오르쿠와 싸웠으니까.

    “둘 중 하나를 택하세요! 이 창고 에서 나가거나 아이들과 함께 살거 나!”

    사람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나간다 고 해도 초인인 관리자가 가만히 두 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자니 어떻게 될 까 두려웠다.

    김한수는 생각 끝에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정말 아무 일도 없다고 약속하시

    는 건가요?”

    “약속합니다. 가족이라면 같이 살 아야지요.”

    김한수는 처음으로 이성진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금까지 초인 인 관리자의 눈을 이렇게 본 적이 없었다. 기분 나쁘다고 한 대 맞으 면 죽을 수도 있었다.

    이성진 역시 김한수의 눈을 쳐다보 며 피하지 않았다. 김한수는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런 눈을 하고 우리를 속인다면 천벌 받을 겁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진심이 보이 는 눈이었기 때문에 김한수는 이성

    진을 믿기로 했다.

    “거짓말이라면 천벌이 아니라 더한 것도 받을 생각입니다. 아이들을 가 지고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김한수는 그제야 이성진에게서 눈 을 뗐다. 그리고 뒤로 돌아 사람들 에게 말했다.

    “아이들 데리고 와요. 도망갈 생각 말고.”

    몇 명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것을 잘 아는 김한수 가 미리 말했다. 도망가 봤자 걸리 면 다 죽으니까.

    “크흑•…”

    사람들은 일어서서 창고 밖으로 나

    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였다.

    “김한수 씨.”

    “네.”

    김한수는 이성진이 갑자기 부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믿을 수 없는 말을 들 었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 게 준비해 주세요. 정확하게 말하자 면 이 창고에서 같이 생활할 사람들 이 먹을 저녁을 준비해 달라는 겁니 다.”

    김한수는 도대체 뭐를 얼마나 준비 해야 하는지 몰라 다시 물었다.

    “옥수수죽과 돼지고기 그리고 달걀 요리를 준비할까요?”

    “쌀은 없나 보군요.”

    “있습니다.”

    제대로 못 먹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해 못 하는 것 같 았다.

    “이 창고 안에 있는 모든 재료를 사용해도 됩니다. 지금까지 먹어봤 던 것 중에 최고로 준비해 주세요.”

    “정…… 정말이십니까?”

    “네.”

    김한수는 이호영을 쳐다봤다. 이호 영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이 창고 안의 모든 것은 진성 님

    것이니까 말대로 해……요.”

    이성진이 김한수에게 말을 놓지 않 는데 말을 놓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김한수는 남아 있는 부인과 딸들을 데리고 음식을 준비하러 갔다. 그러 자 이호영이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저 사람들을 왜 신경 쓰시나요?”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이호영은 이성진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혼자 살 수 없다니.

    “이해 못 하는 것 같은데 저들 역 시 사람이야.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 게 생각하고 대접해야 하는 것 아닌

    가?”

    이호영은 이성진이 이상을 좇는 사 람인가 싶었다. 다른 세계의 종족이 쳐들어왔다. 기존의 질서는 무너졌 다. 힘이 최고가 되어 버린 이곳에 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은 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 다.

    그래서 이성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지금 이 현실에 사람이 사람을 사 람답게 생각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그것을 잊는다면 인간은 영 원히 오르쿠의 지배를 받게 되겠

    지.”

    단호하고 확신하는 대답에 이호영 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머리 로는 절대 이성진의 말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슴은 믿 고 싶었다.

    이젠 잊어버린 감정이다. 가슴 뛰 는 대로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 하는 감정.

    그것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호영뿐만 아니었다. 진명수나 장 재웅도 이성진의 대답에 가슴이 뛰 고 있었다. 또한, 음식을 준비하며 귀 기울이던 김한수 역시 가슴이 뛰 었다.

    장재웅이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 다.

    “진성 씨는 오르쿠의 지배에서 벗 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쉽지는 않겠죠.”

    쉽지는 않다는 대답에 장재웅은 실 망하지 않았다. 이성진의 표정이 어 두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 법이 있는 것 같았다.

    “진성 씨가 생각하는 방법이 있나 요?”

    “방법이라……

    이것을 이해할지 모른다. 장재웅의 눈빛을 보니 꼭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지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르쿠 를 몰아내는 것만 있지 않아요.”

    “그러면요?”

    장재웅은 물론 이호영이나 진명수 는 오르쿠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 은 오르쿠를 몰아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르쿠의 특성상 끝까지 싸울 테니까.

    “지배하거나 친구가 되는 거죠.”

    모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지금까지 이성진이 했던 말 중에 가 장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었 다.

    오르쿠를 지배하다니.

    “하하.”

    장재웅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나 싶 었다.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장재웅을 보고 이성진은 담담 하게 말했다.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네. 저도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합 니다.”

    장재웅은 이성진을 조금 더 지켜봐 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있을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오르쿠에게 인정받아 이름을 기억 하게 했다. 작은 곳이지만 옥수수 농장도 손에 넣었다. 이성진의 말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현

    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 다.

    왜 이성진 같은 사람이 없겠는 가…… 지금도 있다. 단지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창고로 들어왔다. 부모 뒤에 숨어서 어색하게 따라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김한수가 부모와 아이들을 데리고 이성진 앞으로 왔다. 그리고 가장 앞에 김한수가 섰다. 만약 무슨 일 이 일어난다면 자신이 먼저 당하면 서 막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김한수 씨!”

    “네. 말씀하십시오.”

    “옆 건물에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지낼 만한 공간이 충분한가요?”

    “충분합니다만…… 그곳은 관리자 님들이 사용하시는 곳인데……

    “그럼 되었습니다. 그곳에 다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앞으로 창고의 모든 관리를 전적으로 김한수 씨에게 맡 기겠습니다.”

    김한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창고 관리를 김한수가 해 오긴 했다. 하 지만 전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이성진이 말한 전적이란 것은 창고

    의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창고 안의 것은 모두 이성 진 것이다.

    그래서 김한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전적이라고 하시면 어디까지……”

    “오르쿠에게 줘야 할 양만 계산해 남겨 두면 나머지는 김한수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네. 대신 아이들을 잘 먹이세요.”

    오르쿠에게 줘야 하는 양은 옥수수 농장 수확에 차질이 생겼을 때 모자 라는 양만 보충하면 되는 양이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양이면 충분했 다. 옥수수가 열리는 한 창고가 비 는 일은 없다.

    김한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 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제 마음대로 사

    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사용한 것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 도 앞으로는 몰래 가지고 가지 않겠 습니다. 매주 일한 만큼 적정하게 가져가겠습니다.”

    역시 김한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 았다. 어떤 사람은 권한을 주면 그 권한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챙 기려 한다. 하지만 김한수 같은 사 람은 정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 려 한다.

    만약 김한수가 권한을 가졌다고 생 각해 나중에 일정 선을 넘는다면 그 냥 두지 않는다.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믿음을 주고

    있다.

    상대방이 믿음을 주면 그 믿음이 깨지지 전까지는 끝까지 믿어 준다. 그것이 기본이 되면 더 강한 믿음이 되어 돌아온다. 힘이 되어 줄 것이 다.

    “알겠습니다. 김한수 씨가 알아서 하세요.”

    “네. 진성 님!”

    김한수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뒤에 서 있는 부모들 역시 김한수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다.

    이성진이 어떤 것을 베푸는지 안 다.

    “여보. 오래간만에 감자전 좀 만들 게 감자 갈아 줘요!”

    한 명이 시작하자 너도나도 나서기 시작했다.

    “나는 돼지비계로 기름 만들어 줄 게.”

    “술이 빠지면 쓰나. 숨겨 놓은 옥 수수 술을 꺼내 오지.”

    아이들은 부모가 기뻐하는 것 같자 얼굴에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리 고 부모들을 따라 일을 돕기 시작했 다.

    곧 창고 안은 고소한 냄새와 함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 지 느끼게 해 주는 그런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호영과 진명수 그리고 장재웅은 갑자기 바뀌어 버린 분위기를 느꼈 다. 이성진이 이렇게 만들었다.

    모두 이성진을 쳐다봤다.

    “자! 그럼 나도 좀 도와 볼까?”

    이성진이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 준 비하는 사람들에게 갔다. 그러자 장 재웅도 팔을 걷어붙였다.

    “나도 돕겠소!”

    이호영과 진명수는 서로를 쳐다봤 다. 그리고 곧 씨익 웃었다. 진명수 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이것도 좋은 것 같네요.”

    “너만 그러냐? 나도 좋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이호영과 진명수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 하는 것을 도우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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