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11화 (11/50)

3장을 더 벗겨 냈다.

“이제 말할 건가요?”

“으읍! 으읍! 으읍!”

얼굴에 얹은 피부와 셔츠를 치웠 다. 하지만 입안에 넣은 셔츠는 빼 지 않았다.

“내가 입안에 있는 것을 빼 줄 거

란 생각은 안 하는 것이 나아요.”

김철구의 눈에서 희망이 사라졌다. 죽을 수 있는 희망이.

“지금부터 물어보는 것이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아니면 흔들어요.”

김철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 인 사고를 아직 한다.

“이곳을 들킨 이유가 김철구 씨 당 신 때문인가요?”

끄덕.

“당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도 들키 나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소인 족이나 엘 파나 그리고 성녀 엘리스 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마법인가요?”

김철구가 망설였다. 그리고 곧 고 개를 흔들다가 끄덕였다. 마법이란 단어는 사용해도 된다.

그럼 다음 단어도 조심스럽게 사용 해 볼 생각이다.

“만부장은 당신 때문에 온 건가 요?”

김철구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이건 또 다른 의미의 긍정이다. 반 웅이 너무 적극적이었다. 만부장이 라는 단어는 김철구가 거부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죽으면 위치를 들키지 않 나요?”

이번에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 덕였다.

“잘했어요.”

단검을 챙기며 일어섰다. 더는 물 어볼 것이 없었다. 소인족이나 엘 파나 그리고 성녀 엘리스란 단어를 물어보면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 렇게 세뇌당했으니까.

독방 문을 향해 걸어가며 김철구에 게 들으라고 말했다.

“피부는 다시 붙이면 됩니다. 인대 는 완전히 끊은 것이 아니니까 곧 회복될 거고요.”

사실이었다. 그리고 초인은 회복력 이 좋다. 충분한 영양분만 공급된다

면 회복력은 더 좋아진다.

“생각보다 많이 안 벗겨 냈어요.” 독방 문을 열자 이호진과 김필수가 긴장한 것이 보였다. 독방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밖에서 다 들었 기 때문이었다.

“입 안에 있는 것은 제거하지 말고 치료해 줘요.”

“네? 네……. 알겠습니다!”

하루 정도 지나면 팔과 다리를 움 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러면 대부분 죽으려는 생각을 버린 다. 그것이 사람이니까.

“아! 그리고 또 다른 스파이는 어 디 있죠?”

이호진과 김필수는 서로 쳐다봤다. 누가 세뇌당하지 않은 스파이에게 이성진을 안내할 것인지 미루고 있 었다.

사실 미룰 것도 없었다. 바로 옆방 이니까. 하지만 조금 전까지 이성진 의 모습을 생각하니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이성진이 필요해서 한 일인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누 군가는 대답해야 했다. 이호진이 결 심한 듯 나섰다.

“대령님, 바로 옆방입니다.”

이호진이 옆방 문을 가리켰다. 그

리고 독방 문을 열기 위해 움직였 다. 김필수는 자연스럽게 김철구를 치료하러 들어갔다.

독방 문을 열자 토실토실하다는 말 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은 동그랗고 기름기가 좔좔 흐 른다. 알맞게 튀어나온 배는 굴리면 잘 굴러갈 것 같았다.

“헤헤. 아는 것은 다 알려 드렸는 데요.”

눈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 일지 몰라도 간신배 같은 모습은 주 먹을 부른다.

“이호진 중사는 나가 있어요.”

이호진은 나가지 않고 머뭇거리며 슬며시 말했다.

“안상식 씨는 물어보는 대로 다 말 해 줄 겁니다. 굳이 조금 전과 같은 고문 안 하셔도 됩니다. 대령님.”

고문이란 말에 안상식의 조그만 눈 이 크게 떠졌다. 크게 뜬다고 해도 얼마 차이 안 난다. 하지만 놀라는 것은 확실했다.

바로 옆방에서 고문이 있었다. 그 런데 모르고 있었다. 비명이 들리지 않은 고문이었다.

“그건 제가 결정합니다.”

“그럼 저도 같이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이호진도 굳이 저런 고문

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성진이 너무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하니 무 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고문할 때의 이성진은 평소의 이성 진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사 람에게는 천성이라는 것이 있다. 타 고난 성격이다. 고치려고 해도 절대 고쳐질 수 없다. 그런데 순식간에 바뀐다?

이건 훈련을 통한 마인드 컨트롤이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진이 모두를 위해 악역을 감당 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외 면할 수가 없었다. 소인족에게서 구

해 준 빚도 있고.

“꽤 잔인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이호진은 다시 소름이 돋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본 안상식은 마음이 급해졌 다. 안상식은 눈치가 빠르다. 어디에 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본능적 으로 알 수 있다.

지금은 무조건 이쪽에 붙어야 살 수 있다.

“저기요! 두 분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나이도 5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는 것은 다 말해 드릴 테니 고 문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진짜입니 다.”

웃고는 있다. 하지만 저 작은 눈에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쉽 게 믿어 줄 수는 없었다. 단검을 꺼 냈다.

그러자 이호진이 급하게 나섰다.

“제가 먼저 질문하겠습니다. 그다 음에 대령님이 고문하셔도 되지 않 습니까!”

이호진은 이성진이 더 다치는 것이 싫었다. 살이 찢어지거나 뼈가 부러

지는 것만이 다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다치는 것도 다치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고문을 해도 이성진 의 마음 한쪽에는 죄책감이라는 것 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죄책감은 마음을 조금씩 상처 내는 칼날과 같 다. 이성진의 마음에 칼날이 하나라 도 적었으면 했다.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아니다 싶으 시면 그때 나서 주시면 됩니다.”

이호진의 말에 이성진이 고민하는 것 같자 안상식이 급하게 말했다.

“이분 말대로 해 주세요! 그다음 제 대답이 마음에 안 들 때 나서셔 도 됩니다.”

한 발자국 뒤로 빠졌다. 말은 안 했다. 하지만 이호진과 안상식은 바 로 알아들었다. 이호진은 옆방에서 이성진이 했던 질문을 기억해 냈다.

“안상식 씨! 소인족이 이곳을 알 수 있는 장치를 하고 있습니까?”

마법이라는 것은 잘 몰랐다. 그래 서 이호진은 자신의 상식대로 물어 봤다.

안상식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장치라기보다는 이상한 빛을 맞았 습니다. 추적 마법이라고 하더군요.”

“추적 마법이요?”

“네. 살아 있는 한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안상식은 말해 놓고 아차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졌다. 추 적 마법은 죽지 않는 이상 없앨 수 없다. 지금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성진에게 고문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실수했다.

“저기 그렇다고 저를 죽이지 않았 으면 합니다.”

이호진은 이성진이 죽이지 않을 것 을 알고 있다. 죽일 생각이었으면 옆방 김철구는 벌써 죽었다.

“걱정하지……

“이호진 중사. 이제 내가 맡을게 요.”

“네? 아직……

질문 하나만 했는데 이성진이 끼어 들자 당황했다. 그리고 이성진은 이 호진에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안상 식에게 다른 질문을 하면 바로 알아 들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상식에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상식 씨! 왜 죽이지 않아야 하 나요? 안상식 씨가 죽어야 마법이 풀리는데.”

이호진은 이성진이 왜 말을 중간에 끊었는지 알았다. 자신은 안상식에

게 죽이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 라고 하려 했다. 이성진은 죽이지 않을 거면서 죽일 것처럼 말해 정보 를 더 얻어내려 한다는 것을 알았 다.

저절로 침을 삼켰다. 그리고 과연 어떻게 될까 지켜봤다.

“그거야……

안상식은 왜 죽이지 않아야 하는지 물어보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약간 머뭇거리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맹렬하게 고민했다.

“제가 대령님이 원하는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무슨 정보를 원하는지 모른다. 그 렇다고 아는 모든 것을 그냥 말할 수 없었다. 다 말한다면 값어치가 떨어진다.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말한다면 적당히 말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정보라……. 아! 그 리고 전 이성진입니다.”

안상식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름을 밝히는 것은 일종의 호감 표시다. 눈•치 빠른 안상식은 그것을 알았다.

“이거 늦게 인사합니다. 이성진 대 령님! 어떤 것을 원하시든 제가 아 는 한도 내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믿어도 될까요?”

“네. 믿어 주세요.”

“그럼 어떻게 소인족에게 잡혀서 협조하게 된 것인지 모든 과정을 말 해 주세요.”

안상식의 얼굴이 구겨졌다. 모든 것을 다 알려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 기 때문이었다.

“말할 수 없나요?”

단검을 스윽 들자 안상식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말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단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요.”

“시간은 충분합니다.”

안상식은 이성진이 자신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조건을 걸었다.

“진짜 다 말해 드리겠습니다. 하지 만 제 안전은 책임져 주시길 바랍니 다.”

“안전이라……. 어떤 안전을 원하 는 건가요?”

“소인족에게서 지켜 달라는 그런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그 누구도 저를 때리거나 죽이지 않았 으면 합니다.”

“제대로 말해 준다면 그건 책임져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믿을 수 있겠 어요?”

안상식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지 않습니 까. 그래도 이곳 최고 책임자인 이 성진 대령님이 보장하신다면 믿어 보려고 합니다.”

“좋아요. 모든 것을 다 말해 준다 면 제가 책임지죠.”

“감사합니다. 그럼 믿고 말하겠습 니다. 그러니까 제가 소인족에게 잡 힌 것은……

안상식은 자신이 소동리 부근에서 소인족에게 붙잡힌 것부터 말했다. 그리고 소인족이 시키는 대로 시체 를 모아 태우고 쓰레기를 치웠다. 빠른 눈치 덕분에 소인족의 마음에

들어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관리하 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이 통하게 되 더라고요.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습 니다. 성녀를 보고도 제정신인 사람 들 대부분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았 거든요. 저도 끌려가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평소 친 한 소인족에게 뭐든지 할 테니 살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성으로 데리고 갔다는 말에 더 관 심이 갔다.

“성에서 코타파란 만부장을 만났습 니다. 그리고 스파이가 되어 숨어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알려 주라는 제안을 받았죠. 그래서……

코타파란이면 검을 빼앗기고 죽은 만부장이었다. 그리고 안상식은 세 뇌당한 스파이 그러니까 김철구를 감시하는 임무도 받았다.

코타파란에게 임무를 받고 몇 명의 포로와 함께 기지 근처까지 와서 탈 출하려는데 이호진과 김필수를 코타 파란이 잡은 것이다.

그 코타파란을 이성진이 죽였고 일 이 꼬였다.

“제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할게요.”

“네.”

“성에 들어가서 본 것을 모두 기억 해 말해 줘요.”

안상식은 살짝 웃었다. 이걸 물어 볼 줄 알았다. 안상식이 자신의 목 숨과 바꾸려는 정보가 성에 관한 것 이었다.

“제가 기억력은 또 뛰어납니다. 지 나다니며 소인족이 말한 것과 제가 직접 본 것을 종합하면 성의 문은 4개입니다. 그리고 성은 외성과 내 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내성은 문이 2개입니다.”

안상식은 꽤 자세하게 말했다. 자 신이 들어온 성문과 나간 성문이 다 르다는 것과 돌로 만든 주택에서 소

인족이 산다는 것까지 다 말했다.

“정말 자세하게 아는군요.”

“네. 아! 맞다. 그리고 세뇌하는 것 도 봤습니다.”

“세뇌하는 것을요?”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위치를 알 아야 했다. 하지만 묻기도 전에 안 상식이 먼저 말했다.

“내성 앞에 큰 건물이 하나 있습니 다. 뾰족한 탑이 양 끝에 있습니다.”

“지도를 그려 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아예 모르고 소인족 성에 침투하는 것보다 대략적인 지도가 있는 것이 낫다. 그렇다고 100% 믿는 것은 아

니다. 기억과 다를 수도 있다. 아니 면 지어낼 수도 있다. 현장에서 지 도와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호진 중사가 안상식 씨에게 지 도 그릴 수 있게 해 줘요. 그리고 불편함 없게 해 주고요.”

“알겠습니다.”

이호진은 이성진이 안상식을 고문 하지 않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독방에서는 못 나갑니다. 안상식 씨.”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 였어도 이성진 대령님과 똑같이 했 을 겁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안상식은 이성진이 웃으며 감사하 다고 말해 주자 안심이 되었다. 조 금 전까지 무표정에 무미건조한 말 투였다. 이제 위기를 넘겼다는 것을 알았다.

“저기……. 그리고 이건 확실하지 가 않은데요.”

안상식이 또 다른 정보가 있는 것 처럼 말했다.

“확실하지 않아도 말해 주세요.”

“그러니까……. 코타파란 만부장이 다른 소인족과 말하는 것을 들으니 내성에 거제도를 둘러싼 막을 유지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요?”

“소인족 중 누군가 내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니까 코타파란 만부장 이 짜증을 내면서 마나 생성막에는 문제없냐고 말했습니다.”

마나 생성막이라고 했다. 정학철 중장은 차단막이라고 했고.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말해 줘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안상식은 멋쩍게 웃었다. 이성진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에 기억나는 대로 말해 준 것이 다. 이성진 같은 사람은 무언가를 주면 절대 잊지 않는다.

독방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그리

고 윤진수가 들어왔다.

“대령님! 다음 지시를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이호진 중사는 안상식 씨에게 필요한 것 가져다 줘요.”

“네. 알겠습니다.”

“윤 중위, 갑시다.”

독방을 나오자 기다리던 똘이가 꼬 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윤진수와 함 께 입구로 갔다. 입구에 10명을 배 치했다.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입구로 가는 중간에 강철진이 합류 했다.

입구로 가면서 강철진과 윤진수에 게 스파이 김철구와 안상식에게 얻

은 정보를 말해 줬다.

그러자 강철진과 윤진수는 똑같은 생각으로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죽여야 하지 않나 요?”

“저도 강 소령님 생각과 같습니 다.”

“아니요. 어차피 기지 위치는 소인 족에게 들켰습니다. 저는 오히려 두 사람을 살려 두고 그것을 이용하려 고 합니다.”

이용하려 한다고 하자 강철진과 윤 진수는 어떻게란 표정으로 쳐다봤 다.

“먼저 입구를 살펴본 다음에 이야

기하는 것으로 해요.”

강철진과 윤진수는 궁금했다. 하지 만 이성진의 말이 맞다. 먼저 할 일 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다.

지금은 기지의 안전을 확인할 때였 다. 궁금함을 참으며 입구로 갔다. 그렇다고 생각을 멈춘 것은 아니다.

조용히 가면서 스파이 김철구와 안 상식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나름 대로 고민했다.

“꽤 잘해 놨네요.”

기지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첫 번째 거대한 금고문을 지나야 한다. 그리 고 긴 통로를 따라 내려와 두 번째 로 유리문을 지난다.

지금 유리문 앞에는 장애물이 있었 다. 책상이나 의자 같은 것으로 만 든 것이다.

“ 필승!”

UDT 대원 중 한 명이 이성진을 보고 바로 경례했다.

“고생하네요.”

“아닙니다!”

장애물 위에는 중기관총이 설치되 어 있었다. 그것도 2정이나.

입구가 뚫려도 소인족이 쉽게 기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긴 통로에 는 총알을 피할 곳이 없었다. 방패 를 앞세우고 들어온다면 장애물 뒤 에 숨겨 놓은 RPG-7 포탄 발사기

에서 포탄이 날아갈 것이다.

“윤 중위! 이곳은 맡겨도 되겠네 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더 조치했으면 해 요.”

윤진수는 자신이 봐도 완벽하게 준 비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성진이 보기에 부족한 것이 있다.

“네. 말씀하십시오!”

“만약 밀릴 것 같으면 천장을 무너 뜨렸으면 좋겠어요.”

“천장이요? 하지만 일부분만 무너 뜨려야 하는데……

무기고에 TNT 폭발물이 있다. 외

벽이 아닌 기지 안쪽의 천장을 폭파 해 무너뜨리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 만 일부분만 무너뜨리는 것은 자신 없었다.

“저기에 폭약을 설치하면 돼요.” 윤진수는 이성진이 가리키는 손을 따라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작은 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윤진수가 물어보기 전에 알려줬다.

“만약을 대비해 통로를 무너뜨릴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요.”

S급 정보에는 이 기지에 관한 정 보도 있었다. 기지가 발각되고 입구 가 뚫리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

그렇다고 누구나 볼 수 있게 틈을 만들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 으면 틈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럼 저곳에 폭약을 설치하면

“네. 정확하게 유리문이 있는 곳만 무너져 내려요. 정말 위급한 순간에 만 사용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설치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점이……

“이건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은 데……

오해란 말에 윤진수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여기서 오해라는 단어가 나 올 일이 없었다. 하지만 곧 이성진

의 말을 듣고 오해가 아닌 자신의 실수인 것을 알았다.

“유리문과 입구 사이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방어해야 해요. 저 유리문 이 뚫리는 순간 기지 안의 전자기기 는 모두 멈춰요.”

이중 유리문이 뚫리면 외부 마나가 기지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마나 간섭 현상에 의해 전자기기가 멈춘 다. 그런 일을 대비해 문을 수동으 로 열거나 닫을 수 있게 해 놨다. 하지만 지휘 통신실은 열 수 없다.

“아! 마나……

윤진수는 잊고 있었다. 보이지 않 지만 불편함 없이 마시는 공기 같은

경우다. 기지 안에 있고 전자기기가 제대로 작동한다. 마나 간섭 현상을 잊었다.

“죄송합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 다.”

“그럴 수도 있죠.”

문이 버티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이 뚫렸다면 여기 는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 나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후회해도 늦은.

“그럼 윤 중위는 그렇게 하고 강철 진 소령은 나와 함께 문까지 가 보 죠.”

“알겠습니다.”

강철진과 함께 유리문을 지났다. 똘이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다가 이 성진이 움직이자 따라왔다. 긴 통로 를 따라 문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문은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다.

문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도 있다. 하지만 강철진과 둘이서만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온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손으로 문을 확인했다. 문 이 찌그러지거나 금이 가 있는 곳이 없나 꼼꼼하게 살피면서 말했다.

“기지 전체가 울릴 정도의 폭발력 인데 문이 버티고 있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못 믿었 는데 진짜 핵을 직격으로 맞아도 버

틴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보 장교가 못 믿으면 어떻게 하 나요!”

이성진의 말에 강철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군 공사 부실 공사가 많아서요.” 강철진은 설계와는 다르게 지어진 군 시설을 많이 봤다.

“이 기지는 천하 그룹에서 지은 겁 니다.”

“천하 그룹에서요?”

“네.”

“어쩐지 기지가 제대로 돌아간다 했습니다.”

천하 그룹에서 지었다면 믿을 만했

다. 부실 공사는 용납하지 않는 곳 이었다.

“문이 안전한 것은 확인했고……. 강철진 소령.”

“네. 말씀하십시오.”

“아직 기지 정보를 다 못 봤죠?”

“못 봤습니다. 빠르게 보겠습니다.” 강철진은 기지 정보를 보라는 말로 들은 것 같았다. 강철진에게 다시 S 등급 정보를 볼 수 있는 권한을 줬 으니 볼 수 있다.

“돌아가면 가장 먼저 기지 정보 중 에 C-66 설계도면을 봐요.”

“C-66 설계도면에 중요한 것이 있 습니까?”

강철진은 이성진이 이유 없이 C-66 설계도면을 말하지 않았을 것 으로 생각했다.

“네. 이 기지를 빠져나갈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있어요.”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강철진은 마나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입 구는 하나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C-66 설계도는 마나 발전기가 있 는 곳입니다. 원자력 발전기에 문제 가 생겼을 경우 외부의 마나를 이용 해 발전기를 가동하게 되어 있어 요.”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사항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나 발전기가 있는 곳에 다 른 입구가 있는 것은 몰랐다.

“그곳에 환풍기로 가장한 비밀 통 로가 있어요. 비밀 통로는 10km 정 도에요. 중간중간에 강철 문이 있어 요. 200kg이 넘어요. 통로가 좁아서 혼자서 들어 올려야 합니다.”

“혼자서 요?”

“네. 이 기지 안에 초인이 되면서 힘이 강해진 사람은 강철진 소령뿐 이니 저를 제외하고는 비밀 통로를 이용할 수 없어요.”

강철진은 이성진이 마치 기지 안에 없을 것같이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

래서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혹시 비밀 통로를 이용해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네. 나가서 소인족 성으로 갈 겁 니다.”

이건 또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성진이 소인족 성으로 간다는 말 을 듣자 스파이를 어떻게 이용하려 는지 알았다.

“스파이가 죽지 않으면 소인족은 스파이가 아직 들키지 않았다고 생 각할 수도 있군요.”

“네. 소인족은 이 안의 상황을 모 르니까요. 소인족이 이 기지에 집중 하고 있을 때 뒤통수를 칠 겁니다.”

“안상식이 그려 준 지도를 가지고 가실 생각이시군요.”

“네.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설마 혼자서 가실 겁니까?”

“아니요. 2명 정도는 데리고 갈 겁 니다.”

혼자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몇 개 없었다. 하지만 백업 팀이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명은 이미 정해 놨다.

“강철진 소령은 이 문이 뚫리면 소 인족에게 강력한 저항이 있다는 것 을 알려 준 다음 천장을 폭파하고 비밀 통로로 탈출하세요.”

“알겠습니다.”

“돌아가죠.”

강철진과 함께 통로를 되돌아갔다. 그리고 윤진수의 지휘 아래 열심히 장애물을 설치하는 군인들을 만났 다. 가볍게 고생하라고 말해 준 다 음 윤진수를 데리고 통제실로 갔다.

통제실에서 비밀 통로를 이용한 소 인족 성을 공격하겠다는 계획을 알 려 줬다. 윤진수도 스파이를 죽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성진 대령님 이 돌아오실 때까지 강철진 소령을 도와 기지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꼭 죽음을 각오하고 말하는 것 같 았다.

“문을 뚫을 정도면 천장을 무너뜨 렸다 해도 금방 뚫릴 거니까 무조건 피해요.”

“그럴 겁니다.”

윤진수는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서 기지를 지킬 생각이었다. 그것이 윤진수의 임무 였다. 그리고 소인족에게 한 방 먹 여 주고 싶었다. 이곳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인이 있다고.

“이호진 중사와 김필수 중사 두 명 을 데리고 갈 겁니다.”

“두 사람이면 이성진 대령님의 뒤 를 맡길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장 합니다.”

윤진수가 보장한다고 말할 때 똘이 가 쳐다봤다. 이놈 대화 내용을 알 아듣는 것 같았다.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러자 똘이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바로 준비하고 갈 겁니다. 안 보 이면 출발한 줄 알고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강철진과 윤진수를 통제실에 남겨 두고 나왔다. 이호진과 김필수는 아 직도 독방에 있었다. 독방으로 가서 이호진과 김필수를 데리고 무기고로 갔다.

“지금부터 존대는 하지 않습니다.” 존대하지 않는다는 말에 이호진과

김필수가 긴장했다. 이성진이 존대 하지 않는 경우는 작전 중 뿐이었 다.

지금부터 작전 시작이란 말과 같았 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장비를 챙겨서 소인족 성을 공격하러 간다. 김필수 중사!”

소인족 성을 공격하러 간다는 말에 놀랄 사이도 없었다.

“네. 대령님!”

“안상식 씨가 그린 지도 가지고 있 나?”

“네. 가지고 있습니다.”

김필수는 주머니에서 종이 여러 장 을 꺼냈다.

“제가 안상식 씨에게 설명을 들었 습니다. 이것은 안상식 씨가 들어온 문과 근처입니다. 이것은……

김필수는 한 장 한 장 들은 대로 설명했다. 상세하지 않아도 대략적 으로 머리에 담을 수 있었다.

“좋아. 개인 장비를 챙기고 TNT 폭약 배낭 3개를 만든다. 그리 고……

이호진과 김필수에게 임무를 정해 줬다. 이호진은 내성에서 멀리 떨어 진 곳에 숨어서 저격한다. 그리고 퇴로를 확보한다. 김필수는 내성 앞 의 세뇌 마법진이 있는 곳까지 같이 가 마법진 확보와 폭약 설치를 담당

한다.

“그다음 김필수 중사는 30분을 기 다렸다가 내가 안 오면 건물을 폭파 하고 이호진 중사와 함께 소인족 성 을 벗어난다.”

“그럼 대령님은……

“난……. 어떻게 해서든 내성에서 탈출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혼자서 내성에 들어간다고 하니 걱 정된다. 하지만 이호진이나 김필수 는 명령을 따르는 군인이다.

“알겠습니다.”

“장비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떠 난다. 해산.”

해산이란 말에 이호진과 김필수는

무기고에서 탄약과 폭약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성진 역시 무기를 챙겨 야 했다. 엄청난 양의 무기가 있는 무기고에서 필요한 무기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무기 목록을 검색했다.

“응? 이런 것도 있네.”

무기 목록 중에는 세트 목록이 있 었다. 특수부대용 무기 세트였다.

소음기가 달린 소형 MP5 자동 소 총부터 특수 합금 나이프까지 필요 한 것은 다 있었다.

“꼭 나 쓰라고 가져다 놓은 것 같 네.”

SAS 대원일 때 애용하던 무기들이

었다. 무기 목록에서 위치를 파악했 다. 그리고 찾아갔다. 커다란 은빛 무기 가방이 보였다. 한두 개가 아 니었다.

무기 가방 한 개를 열었다. 목록대 로 다 있었다.

“옷도 있네.”

그렇지 않아도 옷이 필요했다. 여 태까지 매물도에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 붙는 검은색 위장복과 방탄조끼였 다.

“진짜 옛날 생각난다.”

검은색 위장복으로 갈아입었다. 살 이 빠져서 그런지 딱 맞았다. 방탄

조끼와 무기까지 모두 챙겼다.

“웅? 똘이야!”

분명 이곳까지 소리 없이 따라 왔 었다. 그런데 똘이가 사라졌다.

“어디 간 거야?”

똘이에게 기지에서 기다리라고 말 하려고 했는데 사라졌다. 무기고 안 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찾을 수 없 었다. 결국, 포기하고 이호진과 김필 수에게로 갔다.

출발할 준비가 끝났을 시간이었다.

“대령님 멋지십니다.”

이호진은 보자마자 엄지를 들어 올 렸다. 김필수도 늦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음……. 두 사람도 안에서 이 장 비로 바꾸는 것이 낫겠다.”

“더 있습니까?”

이호진과 김필수도 이성진이 입고 있는 위장복과 방탄조끼를 입고 싶 었다. 지금 둘이 입고 있는 것은 일 반 군복이었다. 아무래도 특수부대 용 위장복과 방탄조끼를 입는 것이 움직이기 좋았다.

“위치를 알려 줄 테니 가서 장비를 교체하고 와.”

“감사합니다.”

이호진과 김필수에게 특수부대 세 트가 있는 위치를 알려 줬다. 그리 고 두 사람이 돌아오기 전까지 똘이

를 기다렸다. 하지만 똘이는 이호진 과 김필수가 장비를 바꾸고 올 때까 지 돌아오지 않았다.

“작전 목표에 도착해서 임무가 바 뀔 수도 있다는 것 생각하고 살아서 돌아오자.”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작전이 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세뇌 마법 진을 파괴하면 사람들이 최면에서 풀렸을 때 세뇌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성은 더 중요했다. 마나 막이라고 부르는 차단막을 없앨 수 있다.

마나막이 사라지면 거제도를 벗어 날 수 있다.

미안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아라 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네. 대령님.”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출발한다.”

무기고를 나서서 기지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문 앞에 멈췄다. 문을 열기 위해 멈 춘 것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생겼다.

“똘이 너.”

똘이는 꼬리를 세우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성진을 쳐다보고 있었 다. 이번에는 꼭 따라가겠다는 의지 였다.

“알았다. 같이 가자.”

똘이의 꼬리가 내려갔다. 그리고 눈은 꼭 웃는 것처럼 보였다. 지하 로 내려가는 문은 다른 장치가 없었 다. 문을 들어 올려야 했다.

문의 아래 틈을 잡았다. 그리고 있 는 힘껏 들어 올렸다.

이 문 역시 강철과 납 그리고 콘 크리트로 만들어졌다. 그그긍 소리 를 내며 힘겹게 올라갔다. 빛이 비 치는 문 근처를 제외하고 어두컴컴 한 통로가 나타났다.

“빨리 지나가!”

이호진과 김필수도 이성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두께만 Im가 넘는

문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리는 것 을 보니 잠깐 저런 일이 가능한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컹!”

똘이가 한심하다는 듯 이호진과 김 필수에게 한 번 짖고는 먼저 어두컴 컴한 통로로 달려갔다. 그제야 이호 진과 김필수도 빠르게 지나갔다.

이호진과 김필수가 지나가자 손바 닥으로 문을 조금씩 받치면서 통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문을 지 나면서 손을 놨다.

무게 때문인지 문이 빠르게 떨어졌 다. 쿠웅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이 닫히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만 보였다. 탁 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호진이 발광 스틱을 꺼내 중간 부근을 부러뜨렸기 때문이었다. 조 그만 봉에서 빛이 나왔다. 그렇게 밝은 빛은 아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빛이다.

“앞장서겠습니다.”

이호진이 가장 앞에서 걸어갔다. 어차피 통로는 하나였다. 갈림길이 없다. 그래서 이호진이 하고 싶은 대로 놔뒀다.

이 기지의 특징은 계단이 없다는 거다. 통로가 약간씩 경사졌다. 대신 원형을 그리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갔다. 그리고 두 개의 문이 보였다. 왼쪽에 있는 문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림이 있었다. 원자력 그림이.

오른쪽에 있는 문은 하얀색 날개 그림이 있었다.

“문을 올릴 테니까 빠르게 들어가 도록.”

“예!”

이호진과 김필수는 낮고 확실한 목 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에 놀라서 반 응이 늦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 었다.

이 문 역시 아래에 틈이 있었다. 이 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힘을 줬다.

그그긍 소리와 함께 문이 올라갔 다.

이호진과 김필수는 빠르게 문을 지 나갔다. 똘이 역시 뒤처지지 않고 지나갔다. 이번에도 손바닥으로 문 을 지탱하면서 지나갔다.

쿠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 런데 이번에는 통로에 불이 들어왔 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m 밖에 있는 유리문 안쪽에 불이 들어왔다.

“이곳은 전자기기가 되는 것 같습 니다.”

이호진은 잘못 온 것 아니냐고 돌 려 말했다. 마나 발전기가 있는 곳 이면 전자기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은 불이 들어왔다.

“저건 전등이 아닌 것 같은데?”

이호진의 말대로 이상해서 유리문 뒤에 있는 등을 확대해서 봤다. 전 등이 아니었다. 약간 큰 수정같이 보였다.

“전등이 아니라고요?”

“가 보면 알겠지.”

이번에는 이성진이 앞장섰다. 유리 문에는 그 어떤 장치도 없었다. 그 냥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어 있 다. 혹시 모르니 조심스럽게 유리문

을 열고 들어갔다. 똘이까지 다 들 어온 다음 유리문을 닫았다.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 다. 이곳 역시 2중 유리문였다. 다 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호진은 천장과 벽에 있는 등을 유심히 살폈다.

“진짜 전등이 아닌 것 같습니다.”

투명한 수정이 빛을 내고 있다. 전 선이 연결된 것 같지도 않았다. 투 명한 수정이 그냥 고정되어 있었다.

“신기한 것은 나중에 구경하기로 하고 계속 간다.”

마나 발전기가 있는 곳까지 간 것 도 아니다. 저 앞에 보이는 마지막

문을 지나면 마나 발전기가 있는 곳 이다.

빠르게 걸어가 마지막 문을 열었 다. 마지막 문은 그냥 철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상한 것과는 다른 것이 보였다. 발전기 하면 커 다란 쇳덩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엄 청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옆에 사람에게 말하려면 소리쳐야 할 정 도로.

그런데 이곳은 너무 조용했다.

농구 코트 정도 하는 넓이의 중앙 에 거대한 유리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리관 안에는 기하학적인 도형 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잠시 모두 두리번거리며 마나 발전 기가 있는 곳을 구경했다. 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바닥 아래로 무언가 지나가는 것만 알았다.

다른 사람은 다 구경하지만, 이성 진은 아니었다. 비밀 통로를 찾았다.

“이쪽으로.”

이곳에는 성인 남자가 허리를 굽혀 들어갈 수 있는 환풍 통로 같은 것 이 9개 있다. 그중 들어온 문에서 왼쪽부터 5번째 환풍 통로가 밖으로 나가는 비밀 통로였다.

5번째 환풍 통로를 막고 있는 판 을 떼어 내고 허리를 굽혀 들어갔 다. 이성진의 뒤를 따라 똘이, 이호

진, 김필수 순으로 들어갔다.

30m 정도 가자 허리를 펼 수 있 을 정도로 높아졌다.

“지금부터 구보로 이동한다.”

이곳 역시 벽에 수정이 달려 있었 다. 신기한 것은 자동 센서처럼 사 람이 지나가면 켜지고 없으면 꺼진 다는 것이다.

lkm쯤 가자 문이 하나 나왔다. 역 시 들어 올리고 통과했다. 그렇게 9 개의 문을 통과했다. lkm당 문이 하나씩 있었다.

마지막 문에 도착했다. 마지막 문 앞에는 익숙한 잠망경이 있었다.

외부를 살펴보고 나가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잠망경에 눈을 댔다. 그러자 외부 가 보였다. 풀이 무성했다. 풀 때문 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경계 태세로 나간다.”

이호진과 김필수는 바로 자동 소총 을 점검했다. 총알은 제대로 있는지 탄창을 빼서 확인한 다음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도록 장전했다. 물론 소음기가 달린 상태였다.

그리고 위급한 순간 빼서 쏠 수 있게 권총도 점검했다.

모든 점검이 끝난 것을 확인했다. 마지막 문을 열 차례였다. 마지막 문은 그냥 밀면 되는 것 같았다. 오

른쪽에 경첩 같은 것이 있었다.

힘껏 밀었다. 꽤 무거웠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흙이 떨어져 내렸다. 문은 완전히 밀리지 않았다. 밖으로 밀어 열은 다음 옆 으로 밀어야 열리는 구조였다.

조용하고 빠르게 문밖으로 나가 주 변을 살폈다. 이호진과 김필수가 뒤 따라 나와 좌우로 경계하듯 퍼졌다. 무성한 풀숲 가운데였다. 외부에서 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안전한 것을 확인한 다음 문을 다 시 닫았다. 풀숲 한가운데에 바위로 위장한 문이었다. 문이 닫히자 그럴 듯해 보였다. 비밀 통로 문이라고

알지 않고는 그냥 바위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똑.

혀를 움직여 조그만 소리를 냈다. 멀리 퍼지지 않으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다. 먼저 반응한 것은 똘이였다. 조용히 쳐다봤다. 그 다음 이호진과 김필수가 다가왔다.

지도를 꺼냈다.

말없이 현재 위치를 손으로 가리켰 다. 기지 입구에서 반대편으로 10km 떨어진 곳이다. 이호진과 김 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아는 곳이었다. 조금 만 더 가면 자주 가던 낚시터가 있

다. 이런 곳에 비밀 통로가 있을 줄 은 몰랐다.

이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지는 말 안 해도 안다. 멀리서도 보 이는 커다란 성이니까.

현재 위치에서 성까지 가는 길을 손가락으로 주욱 그었다. 도로를 따 라가지 않는다. 산을 넘어 직선으로 간다.

이호진과 김필수가 고개를 끄덕였 다. 똘이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 을 아는지 가만히 있었다. 이성진이 말하지 않고 손으로만 대화하는 것 을 몇 번 봤기 때문이었다.

지도를 다시 품에 넣고 손을 들어

출발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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