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태세 정비
드디어 장목면에 도착했다. 하청면 을 외곽으로 우회해 몇 번이나 소인 족을 만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싸우 지 않았다. 철저하게 미리 숨고 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성진의 감각과 똘이의 후각이 그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장목면에는 아직 소인족이 온 것 같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이제는 강철진이 앞장섰다. 강철진
이 가는 방향은 해안가가 아닌 산 쪽이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본 장 목면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안쪽이 라 그런지 처음 거제도에 도착한 남 부면보다는 나았다.
“이성진 씨. 여기는 해일이 안 왔 나 봅니다.”
산 중턱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창 고 3개와 숙소로 사용하는 건물 1 개가 보였다. 초소가 있는 철조망 앞으로 갔다.
하지만 초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예 인기척이 없었다. 건물의 크기로 봐서는 1개 소대 30명 이상 이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흐음. 혹시 여기 경비하던 군인들 은 비밀 기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요?”
인기척은 없지만, 흔적은 있었다. 밖으로 나간 흔적이 아니라 가장 안 쪽에 있는 창고로 움직인 흔적이었 다. 아주 미세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든 흔적이었다. 흔적을 지운 것 같았다.
“경비를 맡은 지휘관은 알고 있었 을 겁니다. 주기적으로 문을 점검해 야 하거든요.”
“일반 군인입니까?”
“아닙니다. 각 군의 특수부대가 경 비를 맡고 있었습니다. 해안 기지니
까 해군 UDT에서 파견 나왔을 겁 니다.”
“그렇군요. 들어가죠.”
강철진과 함께 가장 안쪽에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철진이 가르쳐 준 것처럼 냉동고 안으로 들 어가 문을 열었다.
“역시 이곳을 경비하던 군인들은 이곳으로 들어갔군요.”
“그런 것 같네요.”
강철진도 알아볼 정도로 문 안쪽에 는 흔적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5개 의 횃불이 꽂혀 있어야 할 자리에 4개만 있었다.
횃불 1개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리고 문을 닫았다.
횃불 1개에 의지해 통로를 따라가 자 강철진의 말대로 대형 금고문이 나왔다.
“세 번 11……
강철진이 다이얼을 조작해 번호를 맞추자 철컥하고 무언가 열리는 소 리가 났다. 이제 문을 열면 된다. 최소 3명이 달라붙어야 문을 열 수 있을 정도의 무게였다.
하지만 지금 이성진에게는 약간 힘 이 든 정도였다.
그그긍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꼼짝 마! 손들어!”
안에는 군인들이 총을 겨누며 기다
리고 있었다.
일단 손을 들었다. 강철진이 소리 쳤다.
“정보사령부 강철진 소령이다. 여 기 지휘관이 누구인가?”
하지만 군인들은 지휘관을 알려 주 지 않았다.
“무기 버리고 무릎 꿇어! 빨리!”
“강철진 씨. 시키는 대로 하죠.” 좁은 통로에서 피할 곳은 없었다.
잘못 움직이면 바로 쏠 기세였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아 이들 역시 무릎 꿇었다. 똘이도 이 성진이 무릎 꿇는 것을 보고 앉았 다. 하지만 언제든지 튀어 나갈 준
비는 했다.
군인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무기를 챙기고 이성진과 강철진의 손목을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결박했다.
“신분 확인은 안에 들어가서 하겠 습니다.”
군인들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 다. 나머지 군인들은 문을 닫았다. 비밀 기지 안쪽에도 전기는 들어오 지 않았다. 횃불을 들고 있었다. 한 참을 더 들어가자 문이 또 나왔다. 군인들이 문을 열었다.
유리문 너머로 빛이 보였다. 분명 전기 였다.
횃불을 끄고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
다. 유리문 안에는 또 유리문이 있 었다. 꼭 중간에 소독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밖의 문이 닫히자 천장의 환풍기가 열렸다. 그런데 소 독약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빨아들였다. 한쪽은 빨아들이고 한 쪽은 내보낸다.
환풍기가 닫히자 안쪽 유리문이 열 렸다.
“들어가시죠.”
거칠게 대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에 게는 더 상냥했다. 똘이만 군인들의 손길을 거부했다.
“이곳 경비 책임자인 윤진수 중위
입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중위 계급장을 단 남자였다. 강철 진이 바로 대답했다.
“정보사령부 강철진 소령이오. 신 분증은 주머니에 있으니 확인하시 오.”
윤진수 중위가 부하에게 눈짓하자 부하가 바로 강철진의 주머니를 뒤 졌다. 그리고 윤진수 중위가 신분증 을 확인했다.
“필승! 빨리 풀어 드려.”
윤진수 중위의 말에 군인들이 바로 이성진과 강철진의 결박을 풀었다.
“윤 중위! 지휘 통신실은 어디 있 나?”
“이쪽입니다. 하지만 지휘 통신실 은 안 열립니다.”
“내가 열 수 있네. 빨리 가야 해.”
아직 우윳빛 막이 거제도를 뒤덮지 않았다. 12시간 남았다.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윤진수 중위의 뒤를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지휘 통신실을 열 수 있다는 말에 이성진과 똘이 그리고 아이들이 따 라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외부와 통신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윤진수 중위의 임무는 통신이 두절 되거나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 기지에 들어와 지휘부가 올 때까지
지키는 것이었다. 통신이 두절되고 해일이 왔을 때 임무 매뉴얼에 따라 기지로 들어왔다. 하지만 지휘부는 오지 않았다.
지금 강철진 소령이 온 것이 기뻤 다. 윤진수 중위가 빠르게 지휘 통 신실로 안내했다.
지휘 통신실은 철문으로 막혀 있었 다. 강철진은 익숙하게 철문 옆의 단말기에 손을 댔다. 그러자 강철진 의 지문을 인식한 단말기에는 강철 진 소령의 이름과 1등급이라는 글자 가 나왔다.
철문이 철컹 소리를 내더니 옆으로 열렸다. 그리고 지휘 통신실 안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불이 켜진 지휘 통신실의 모습은 익숙했다. 커 다란 화면과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컴퓨터가 설치된 자리가 있었 다.
영화에서 보던 지휘실 같았다.
“문 닫히기 전에 들어와요.”
강철진의 말에 이성진과 똘이 그리 고 아이들이 먼저 들어갔다. 윤진수 중위와 병사 2명도 급하게 들어왔 다. 그러자 철문이 닫혔다.
강철진은 거대한 화면 맞은편에 있 는 자리에 가서 섰다. 그곳에는 컴 퓨터와 액정 단말기 한 대만 있었 다. 지휘관이 이용하는 곳이 분명했 다.
이번에도 강철진은 단말기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맞은편 거대한 화면 에 컴퓨터가 부팅되는 것 같은 글자 들이 나왔다.
10초 정도 지났을 때 강철진의 군 복 입은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1등 급 보안 취급자라는 글자도 나왔다.
이제 화면은 거제도 지도로 바뀌었 다. 지도에는 몇 군데 빨간색 점이 있었다.
“이제 수도 방위 사령부에 연락하 겠습니다.”
정보사가 아닌 수도 방위 사령부라 고 말했다. 왜 수도 방위 사령부인 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 다릴 때였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통신이 니까.
강철진이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러 자 화면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1분을 기다려도 하얀색 화면은 다 른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강철진 은 이성진을 힐끗 쳐다보더니 변명 처럼 말했다.
“마나를 이용한 통신이라 시간이 걸립니다. 평균 5분 정도 기다려야
연결됩니다.”
5분이면 아직도 4분이나 남았다.
“전부터 마나라고 말하던데 마나가 내가 아는 마나인가요?”
“이성진 씨가 아는 마나라면?”
“왜 소설이나 웹툰 같은 것을 보면 기와는 다른 마법을 사용하는 그런 기운이요.”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렇 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고는 마나 에 대한 설명을 더 자세히 했다.
“마나의 농도가 높은 곳에서는 전 자기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지 만 마나 역시 납으로 둘러싸인 곳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중간에 유리문을 통과할 때 환풍기 같은 것이 외부에서 들어온 마나를 빨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야 이 안 의 전자기기가 제대로 작동할 테니 까.
“아! 신호를 받은 것 같아요!”
화면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리 고 곧 사람이 나타났다.
[강철진 소령 자네 살아 있었군!]
“충성! 소령 강철진!”
별을 3개나 달고 있는 장군이었다. 쓰리 스타 그러니까 중장이었다.
[이거 거제도는 포기하려고 했는데 강 소령 자네가 그곳에 있으니 희망
이 있어.]
“정학철 중장님! 이곳에 남은 병력 이 얼마 없습니다. 내륙에서 구조 헬기를 보내 주십시오.”
정학철 중장의 얼굴은 난감하다였 다.
[대비도 하기 전에 침공당했네. 미 안하지만 거제도로 보낼 헬기가 없 네. 수도권에서 보낸다 해도 거제도 까지 도착하리라는 장담도 없고.]
정학철 중장의 말을 들어보면 전자 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헬기가 있 다.
[그리고 여기도 한참 전투 중이라 거제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전투 중이라는 말을 듣자 중간에 끼어들었다.
“서울에도 알 같은 것이 떨어졌습 니까?”
[누군가?]
강철진은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었 다. 이곳은 민간인이 절대 들어와서 는 안 되는 그런 곳이었다.
[강 소령! 지금 지휘 통신실에 보 안 등급이 안 되는 사람과 같이 들 어온 것인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성진 씨가 아니었다면 저와 제 아이들은 이곳 에 도착 못 했습니다.”
정학철 중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성진이란 이름을 어디서 들은 것 같기 때문이었다.
“저 역시 궁금합니다. 서울 피해가 큽니까?”
[피해야 크지. 하지만 이놈들 주거 지역이 아닌 곳에 착륙했어. 덕분에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아. 그건 그렇 고 강 소령은 지금부터 거제도 기지 의 사령관으로 임명하겠네.]
“네‘?”
[거제도 기지 사령관이 되어 거제 도를 탈환하게.]
“중장님! 이곳에는 군인이 저를 포 함해도 30명 정도뿐입니다.”
강철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소리쳤다.
“이곳에 소인족이 몇 명이나 있는 지 아십니까?”
[거제도는 소인족이 떨어졌나? 그 나마 다행이군. 강 소령. 이건 명령 이네. 보안 등급도 바로 올려 주지. 기지 안에 있는 무기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저는 정보만 취급했습니 다.”
[강 소령! 그러니까 자네가 적임자 야. 자네보다 다른 세계의 침공군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새로 들어온 정보는 차단막이 완성되기 전에 보내 주겠네. 차단막이 완성되
면 더는 통신을 할 수 없으니…….] 저 우윳빛 막도 알고 있었다. 다시 끼어들었다.
“정학철 중장님. 중간에 미안합니 다.”
[이성진 씨 더는 못 참겠소. 지휘 통신실에서 나가 주시오. 강 소령!]
강철진은 머뭇거렸다. 그러자 정학 철 중장이 소리쳤다.
[거기 중위! 이성진 씨를 내보내도 록!]
이 안이 다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윤진수 중위에게 명령했다. 윤진수 중위와 군인 2명은 이성진에게 다가 왔다.
“미안합니다. 나가 주셔야……. 억 ”
명령에 따르고 명령에 죽는 것이 군인이다. 더군다나 해군 특수부대 UDT 대원이라면 명령을 더 잘 따 른다. 지금 지휘 통신실에서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윤진수 중위의 목을 손날로 쳤다. 적당한 힘을 줬 기 때문에 목을 움켜쥐면서 쓰러졌 다.
군인 2명이 빠르게 총을 겨눴다. 하지만 한 명은 배를 한 명은 얼굴 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이성진 씨!”
“미안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학철 중장 님. 그 기지에 천하 그룹 김동수 회 장 식구가 있습니까?”
천하 그룹이라는 말에 강철진이 무 슨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봤다. 정 학철 중장은 천하 그룹 김동수 회장 이란 말이 나오자 이성진이 누군지 기억났다.
[자네가 그 사위군.]
“역시 있군요.”
[그렇네.]
역시 천하 그룹도 다른 세계의 침 공을 알고 있었다. 정부에 매년 막 대한 기부금을 내는 것은 물론 정치 권과 밀접했다.
“아라도 있습니까?”
[김 회장 손녀도 여기 있네.]
“잠시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정학철 중장은 잠시 고민했다. 하 지만 이성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 었다. 나중에 이성진이 딸과 통신할 수 없게 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천하 그룹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천하 그룹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면 다른 세계와의 전쟁은 어려워진 다. 이 마나 통신 역시 천하 그룹에 서 제공한 것이었다.
[알겠네. 그렇지 않아도 김 회장 손녀가 아빠와 연락이 되면 알려 달 라고 했었네. 잠시만 기다리게.]
정학철 중장은 누군가를 불러 지시 했다. 아라를 데려오라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성진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정학철 중장은 이성진에 관한 정보 를 기억해 냈다. 지금이야 A등급으 로 내려갔지만 10년 전만 해도 S등 급 비밀로 대통령과 관련자 몇 명만 알 수 있는 정보였다. 천하 그룹이 손을 써 드러나지 않게 한 것도 있 다.
정학철 중장은 이성진의 정보가 A 등급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볼 수 있 었다.
“부탁이요?”
[SAS 대원일 때의 기록을 봤네. 암 호명 서바이버 (survivor).]
역시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암호명 서바이버로 불렸다. 하지만 동료들은 줄여서 S.S 라고도 했다. 스페셜 서바이버 (Special Survivor)의 첫 글자만 딴 것이다.
SAS 특수부대원은 기본적으로 생 존 훈련을 받는다. 그중에서 생존에 뛰어난 대원이 있다. 생존에 뛰어난 대원 중에서도 스페셜이 붙은 사람 은 이성진이 유일했다.
[22살에 입대해 150회에 걸친 작 전을 성공! 아무도 살아나올 수 없
다고 생각한 곳에서도 혼자 생존!]
섬이나 해안 도시는 해일에 의해 70% 이상 기능을 상실했다. 천하 그룹에서도 이성진을 찾아 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생존 확률이 낮았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이성진 한 명 찾는 것보다는 수도 서울을 방위하 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프리카 인질 구출 작전에서 천 하 그룹 외동딸 김지혜를 구출. 사 랑에 빠진 이후 대한민국으로 귀 화.]
아픈 상처를 쑤시는 말이었다. 지 혜를 생각나게 하는 말이 더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이력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만 하시죠. 부탁이라는 것은 강철진 소 령을 도와 거제도를 탈환해 달라는 건가요, 정학철 중장님?”
[맞네. 이제 자네도 대한민국 국민 이 아닌가. 그러면 나라를 지킬 의 무가 있지.]
대한민국 국민은 맞다. 나라를 지 킬 의무라는 말에 잠시 생각해 본 다. 아라를 지킬 의무 때문에 열심 히 일한 것은 있어도 아직 대한민국 을 지킬 의무를 생각해 본 적은 없 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제게는 아
라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러니까 거제도를 탈환해야 한다 는 거네.]
“무슨 말이죠?”
[어차피 차단막이 완성되면 거제도 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네. 또한, 차 단막은 한 개가 아니야.]
정학철 중장이 무언가를 조작한 것 같았다. 정학철 중장 옆에 대한민국 지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200개가 넘는 초록색 점이 보였다.
수도권에는 10개가 넘었다.
[대전까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낙하 궤도를 가 지고 예측한 거네.]
“알이 저렇게 많이 떨어졌다는 건 가요?”
[더 많을 수도 있네.]
정학철 중장이 보여준 지도대로라 면 서울까지 가는 길은 완전히 막혔 다.
[거제도를 탈환하고 소인족에게서 차단막을 통과할 수 있는 기술을 탈 취하게.]
정학철 중장은 너무 잘 알고 있었 다.
“서울은 그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 까?”
[확보했네. 하지만 거제도까지 가 져다줄 수 없•어.]
거제도까지 가져다주려면 수많은 차단막을 통과해야 했다.
“항공 수송은 안 됩니까?”
[운용 가능한 전투기나 항공기는 수도권 방어에 투입하기도 모자라 네.]
이가 갈릴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정학철 중장의 말을 들어 보면 다른 세계의 침공을 알고 있었다. 또한 대비까지 하고 있었다. 이가 갈리는 이유는 극소수만이 그 정보를 알고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뒷북 행정에 당한 것 같은 느 낌이 들었다. 고통당하는 것은 일반 국민이니까.
“다른 세계에서 침공할 줄 알았으 면서 지금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든 겁니까?”
정학철 중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달까지 끌고 올 줄은 몰랐네. 다 른 세계의 침공은 우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날 줄 알고 대비하고 있 었네.]
그러니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거 다. 다른 세계와 연결된 통로가 있 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대비할 수 없다.
[자세한 정보는 강철진 소령에게 듣는 것이 나을 거야. 왔군.]
정학철 중장이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아라가 보였다.
“아라야!”
[후! 살아 있을 줄 알았어.]
아라의 표정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오래간만에 사고 친 아 빠에게 화난 표정을 보자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아빠! 지금 웃음이 나와?]
“이건 어쩔 수 없는 조건 반사적 행동이라고 말했잖아. 우리 아라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데……
[그래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웃 고 있어!]
“내 딸이 무사하다는 상황이지.”
정말 자연스럽게 안도의 미소를 지
었다. 그러자 아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태까지 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왜 울어?”
[바보 아빠가 무사해서 운다!]
“야! 말은 좀 좋게 해라. 둘만 있 는 것도 아닌데.”
평소 둘만 있을 때는 친구처럼 대 화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있을 때의 아라는 이성진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철저하게 지켰다.
지금 아라의 모습과 행동을 보니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아라야! 내가 곧 찾아갈게.”
[알아. 약속했잖아.]
그 어떤 상황에도 아라를 혼자 두 게 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만약 떨 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꼭 찾아 간다고도 했다.
[앞으로 나도 따라갈 거야.]
“어딜?”
[어디긴. 아빠 매년 혼자 가는 거. 내가 불안해서 따라 다녀야겠어.]
꼭 저런 식으로 애정 표현을 한다. 여기서 농담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라 뒤에 백발을 한 남자 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라야. 잠시만 비켜 주겠니?] 아라의 외할아버지이자 지혜의 아 버지 천하 그룹 김동수 회장이었다.
[네.]
아라는 서먹하게 대답한 다음 옆으 로 비켰다. 하지만 화면에서 벗어나 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성진을 더 보고 싶어 했다.
[흠흠. 아라가 있어서 짧게 말하겠 네.]
평소에도 이성진을 싫어했다. 하나 뿐인 막내 외동딸을 홈쳐 가더니 고 생시키다 죽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 지만 막내 외동딸인 지혜를 닮은 아 라는 아낌없이 사랑했다. 지혜가 남 기고 간 아이니까.
“어르신.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장인어른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해 서 어르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 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내가 인사 안 받는 것 알면서 인 사하는 것 지겹지 않나?]
말투가 삐딱했다.
[나에게도 한 약속이 있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아라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약속했었습니 다.”
[약속을 어긴 것으로 봐도 되나?] 약속을 어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고 아라를 데려간다고 했었다. 김동수 회장이 여태까지 참은 것은
딸인 지혜의 유언과 손녀인 아라가 이성진과 떨어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렇게 생각하실 것 아닙 니까?”
아라가 불안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잘 아는군.]
“마음대로 생각하시는 것은 좋습니 다. 하지만 저는 아라를 포기 안 합 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어르 신의 말에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 다.”
[할아버지!]
아라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팔을
슬며시 잡았다. 그러자 김동수 회장 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은 아라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다. 이성진을 찾아 주고 친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이성진의 얼굴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딸인 지혜도 모자라 아라까지 위험에 빠뜨렸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었다.
[살아서만 오게. 그때까지 아라는 내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성진이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그 러자 김동수 회장은 이성진이 허리 를 펼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짜 마음 을 말했다.
[살아서 오기만 하면 사위로 인정 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내 밑에 서 일해!]
“네?”
당황스러웠다. 15년 넘게 원수 보 듯 대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위로 인 정해 준다고 말했다.
[자네가 이뻐서 그런 것이 아니야. 아라 때문이지. 아직 아라는 아빠가 필요해.]
“인정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내가 사위로만 인정 안 한 거지 다른 거는 인정해.]
15년 동안 이성진은 김동수 회장 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반대로 괴
롭힘을 당했다. 직장에서 절대 해고 당하지 않는다. 대신 과도한 업무량 에 생각보다 적은 월급을 받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참고 견디며 아라 를 훌륭하게 키웠다. 또한, 이성진의 진짜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사위로 인정했으니까 이제 자네도 천하 그룹 사람이야. 어이 거기 좀 비켜 줄 수 있나?]
강철진 소령을 가리켰다. 강철진 소령은 잠시 당황했다가 바로 비켰 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 그룹 김 동수 회장의 말이었다. 장군들도 말 한 마디에 목이 왔다 갔다 한다.
[자네가 거기 올라서게.]
“제가요?”
[그럼. 누가 거기 올라서겠나.]
김동수 회장의 말에 이성진은 강철 진이 섰던 자리에 올라갔다.
[거기 패널에 손바닥을 올리게나.]
설마 하는 심정으로 패널에 손바닥 을 올렸다. 그러자 손바닥을 스캔하 더니 이성진의 사진이 나타났다. 그 리고 S등급이란 글자도 나타났다.
[살아서 만나려면 정보가 필요할 거야. 천하 그룹이 가진 대부분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걸세.]
강철진은 뒤에서 놀라 입이 벌어졌 다. 자신은 A등급 정보 취급자였다. 자신 위로 人人와 AAA등급이 있다.
그다음이 S등급이었다.
강철진이 아는 s등급은 대통령뿐이 었다.
[아라야. 아빠에게 인사해야지.]
김동수는 이성진을 인정하자 마음 이 후련해졌다. 그래서 인상이 펴졌 다. 그런 얼굴로 아라를 부르자 아 라도 기뻐했다.
[네. 할아버지!]
아라가 김동수 회장과 나란히 섰 다.
[아빠! 나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알았다. 아빠도 아라가 끓여 주는 된장찌개가 그립다.”
[호박하고 감자 팍팍 넣고 끓여 줄 테니까 빨리 오기나 해.]
“그래. 할아버지 말 잘 듣고.”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 전한 곳은 천하 그룹 김동수 회장 옆일지도 모른다. 군대 수준의 개인 용병을 가진 것은 물론 전 세계에 지사가 있어 어디든지 피할 수 있 다.
[알았어. 내가 어린애인가?]
부모는 나이에 상관없이 자식 걱정 뿐이다.
[아! 그리고 자네가 움직이려면 직 급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정 장 군!]
김동수 회장이 정학철 중장을 불렀 다. 그러자 옆에 있었는지 정학철 중장이 바로 나타났다.
[네. 회장님.]
[우리 그룹 용병 대장급이면 대한 민국의 군에서는 대령 대우던가?]
[그렇습니다.]
정학철 중장은 기뻤다. 김동수 회 장이 이성진에게 대령 대우를 하라 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학 철 중장이 알고 있는 정보의 반만 맞아도 거제도 탈환은 몰라도 상황 이 수습될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성진은 단순한 생존 전문가가 아
니니까.
[조금 전 내 사위를 천하 그룹 용 병대의 대장급으로 스카우트했네.]
[그럼 당연히 대령 대우입니다.] 김동수 회장은 씨익 웃으며 이성진 에게 말했다.
[사위 이제 대령이네. 알아서 잘해 봐.]
“감사합니다.”
[정 장군은 공식 문서 보내 주고.]
[네. 회장님.]
김동수 회장이 아라의 손을 잡았 다.
[아라야. 이제 할아버지하고 가자. 아빠도 할 일이 많을 거다.]
[네. 아빠! 약속했어. 꼭 와야 해!]
“아빠가 아라하고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니까 걱정하지 말 고 할아버지 할머니 말 잘 듣고 있 어.”
[알았다니까!]
“참! 깜빡할 뻔했다. 똘이야!”
“커컹!”
똘이는 왜 지금 불러 주느냐는 듯 짖었다.
[아빠! 그 개는 뭐야?]
“아라 네가 기를 개야. 이름은 똘 이!”
[정말?]
아라는 동물을 좋아했다. 그동안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집에 서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아라도 몇 번 조르다가 포기했다. 그런데 개를 기르게 된다니 기뻤다.
“똘아! 누나에게 인사해야지.”
“컹. 컹. 컹컹컹.”
똘이가 꼬리를 흔들며 빙글빙글 돌 았다. 그 모습을 본 아라는 너무 좋 아했다.
[말도 알아듣는 것 같아!]
“알아듣는 정도가 아니다. 똘이 점 프해서 앞발 들어!”
“키잉?”
“점프해서 앞발 들라고.”
살짝 뛰었다가 양손을 앞으로 들자
똘이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 자리에 서 펄쩍 뛰었다가. 뒷발로 섰다.
[우와!]
“똘이도 같이 갈 거니까 기대해.”
[알았어……. 저기……. 무사히 와 야 해. 아빠...]
[아라야. 가자.]
아라는 머뭇거리다가 김동수 회장 의 얼굴을 보더니 어쩔 수 없이 김 동수 회장과 함께 움직였다. 똘이가 다시 보자는 듯 짖었다. 아라는 뒤 를 돌아보면서 떠났다. 그래도 똘이 때문에 아라가 한 번 더 웃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화면에는 정학철 중장만 남았
다.
[강철진 소령!]
“네. 말씀하십시오.”
[지금부터 강철진 소령은 이성진 대령의 작전참모다.]
“알겠습니다.”
강철진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여태까지 이성진의 지휘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은 조언하는 참모가 어 울린다고 생각했다. 실전을 경험해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학철 중장은 이성진이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승낙했다고 생각했 다.
[이성진 대령. 거제도를 잘 지켜
주게나.]
천하 그룹의 사위로 인정받았으니 정학철 중장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 다. 조금 전과는 다른 말투와 태도 였다. 약간 정중하기까지도 했다.
이성진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용병대는 별도의 지휘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학철 중장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된다.
[맞네. 재량껏 해도 되네.]
정학철 중장은 이성진의 말을 오해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도 바빠서……. 새로운 정
보 업데이트는 3시간쯤 걸릴 것 같 네.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네.]
화면에서 정학철 중장의 모습이 사 라졌다. 그리고 자료를 받는 표시가 나타났다.
이성진은 쓰러뜨린 윤진수 중위와 군인들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에는 급해서 그랬습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윤진수 중위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대답했다. 속으로 욕을 실컷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정학철 중장과 이야기 중이었다. 이성진의 실력을 봐서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켜보다
가 결국, 대령이 된 것까지 들었다.
이성진은 이제 거제도 기지의 지휘 관이다. 중위 따위가 대령에게 욕을 할 수는 없었다.
“거기 두 분도 이해해 주세요.”
두 명의 군인은 차렷 자세를 하며 소리쳤다.
“괜찮습니다.”
이성진이 대령 대우를 받는 것 때 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 다. 이성진이 SAS 특수부대 출신이 면서 생존 전문가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짧지만 충분한 실력도 보여 줬다. 자신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움 직였다.
같은 특수부대인 UDT 대원으로서 실력 있는 지휘관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다. 150회의 작전 성공은 150번의 죽음에서 살아 돌 아왔다는 사실과 같았다.
말이 150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강철진 소령.”
“네. 말씀하십시오.”
“아이들 먼저 챙기고 다시 이곳으 로 오세요.”
강철진은 너무 급해 한결이와 유리 생각을 못 했다. 이성진이 한결이와 유리를 배려해 주니 또 고마웠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뭐
하시려고……
“저는 정보를 찾아보겠습니다.”
“단말기 조작하는 법을 먼저 가르 쳐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알아서 하죠.”
“알겠습니다.”
강철진은 이성진에게 경례하고는 한결이와 유리를 챙겼다.
“한결이는 유리 손잡고 아빠 따라 가자.”
한결이는 이성진과 함께 있고 싶었 다. 그 생각을 먼저 눈치챈 것은 이 성진이 었다.
“한결아. 아저씨하고는 나중에 다 시 만나면 되니까 아빠 따라가.”
“네•…”
강철진은 약간 섭섭했다. 아들을 뗏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해는 갔다. 한결이는 강한 것을 동경하는 것 같 았다. 동생인 유리를 지키기 위해.
“윤 중위하고 두 분도 강철진 소령 하고 같이 가세요.”
“알겠습니다.”
윤진수 중위와 군인 2명은 바로 경례를 하고 이성진의 명령대로 강 철진과 함께 지휘 통신실을 나갔다.
“자! 이제 한번 볼까?”
강철진이 단말기 조작이라고 했다. 손을 올려놓는 곳에 다시 손을 올려 놓았다. 그러자 이성진이 사진과 S
등급이 나왔다.
바로 앞의 컴퓨터를 이용해 정보 검색을 시작했다.
“다른 세계!”
자판으로 다른 세계를 치자 검색되 는 것이 너무 많았다. 또한, 이상한 것들도 많았다. 소설부터 신화까지.
“그럼 침공이나……. 소인족……
침공은 작전 계획이란 파일이 떴 다. 소인족 파일 역시 따로 존재했 다.
“작전 계획부터 볼까?”
파일을 클릭하자 대형 화면에 작전 계획 문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철 진이 돌아오기 전까지 쉴 새 없이
정보를 찾았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강철진이 돌아왔다.
“잘 왔어요.”
“필요하신 정보가 있으시면 말씀만 해 주시면 바로 찾아 드리겠습니 다.”
“그렇지 않아도 엘 파나 차원에 대 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 어요.”
강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 파나 차원이요?”
강철진은 다른 세계가 엘 파나라고 불리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강철진 소령은 엘 파나 차원을 못
들어 봤나요?”
“못 들어 봤습니다. 그러면 지금 지구를 침공한 곳이……
“네. 엘 파나라는 차원에서 침공했 다고 뜨네요.”
강철진은 이성진이 화면에 띄워 주 는 자료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자신감을 잃었다. 자신이 모르는 정보가 너무 많았다.
“제 등급이 A등급이라 S등급까지 는 보지 못했습니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반짝이던 눈 이 아니었다. 풀이 죽은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보면 되는 거죠.”
“제가요?”
강철진은 자신이 S등급 정보를 본 다는 것에 습관적으로 안 된다 생각 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네. 당연히 강철진 소령도 정보를 알아야 어떻게 대응할지 계획을 수 립하죠.”
“하지만 저는 A등급 보안입니다. S 등급 보안 자료를 볼 자격이 없습니 다.”
“강철진 소령! 지금 S등급 보안이 니 A등급 보안이니 따질 상황이 아 닙니다.”
강철진은 자신이 진짜 S등급 정보 를 봐도 되나 생각했다. 이성진의 말이 맞다. 하지만 정보 등급을 괜 히 나눈 것이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어서 나눈 것이다. 정보 계통의 일을 하면서 생각이 굳어져 있었다.
그래도 이성진의 말을 따라야 했 다. 그래서 절충안을 말했다.
“이성진 대령님……. 제가 요청하 는 정보만 볼 수 있게 허락해 주시 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 위치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보게 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등급을 나누고 지휘관에게 정보 열람 신청을 하는 겁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면 강철진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 다. 또한 강철진은 모든 것을 알아 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말하지 않으 려 했던 계획을 말했다.
“강철진 소령이 거제도를 맡아야 합니다.”
강철진은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봤 다.
“이성진 대령님은요?”
“저는 차단막을 통과할 수 있는 기 술을 얻으면 바로 서울로 떠날 겁니 다.”
“서울로 떠나신다고요? 따님 때문 에요?”
“네.”
강철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성진 대령님도 보시지 않았습니 까.”
지금도 대형 화면 한쪽에는 대한민 국 지도가 보였다. 강철진은 지도를 가리켰다.
“거제도에서 대전까지 직선으로 가 도 최소 5개의 차단막을 지나야 합 니다. 그 말은 최소 소인족이 장악 한 지역 5곳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 이죠. 위험합니다. 그리고 성공 확률 이 낮습니다.”
“저는 성공 확률 따라 움직이지 않 습니다. 해야 하니까 움직입니다.”
“아니요. 이번에는 아무리 이성진 대령님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입니 다. 대한민국의 군을 믿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거제도를 탈환 하고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군과 협 력한다면 더 빠르게 서울로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강철진은 도보로 5군데 차단 막을 지나가는 시간이나 대한민국 군대가 반격해 내려오는 시간이나 비슷하게 걸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강철진이 없을 때 검색한 자료를 보면 이 전 쟁은 쉽게 이길 수 없다.
강철진도 그것을 알아야 했다.
“제 생각은 안 변합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결심했는지 같이 정보를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일단 같이 보 세요.”
강철진을 손짓해 불렀다.
“좋습니다. 정보를 보고 이성진 대 령님이 혼자 가시는 것보다 반격해 내려오는 군을 기다리는 것이 더 좋 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겠습니 다.”
강철진의 눈이 다시 빛났다. 군의 편제나 정보는 아무래도 이성진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 다. 정보를 종합해 분석하고 최상의 결론을 내는 것은 자신 있었다.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보는 것이 낫겠어요. 엘 파나 차원이 어떤 곳 인지.”
단말기를 다시 조작해 엘 파나 차 원의 정보를 화면에 띄웠다. 강철진 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듯 집 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엘 파나 차원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마법과 검이 발달한 차원이었다. 환경은 지구와 비슷했 다. 하지만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니 었다.
강철진은 정보를 보면 볼수록 표정 이 어두워졌다.
엘 파나에 관한 정보를 볼 때까지
만 해도 이성진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 파나에 사는 종족과 특성 그리고 지구의 인간과 비교한 정보를 보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초인들 세상이군요.”
강철진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 다.
“지구인 입장에서는 초인이지만 초 인도 총 제대로 맞으면 죽는 것은 똑같은 것 같아요.”
이성진의 말대로였다. 정보에는 엘 파나 차원의 종족 대부분은 총을 맞 으면 죽는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가 문제였다.
“암호명 고블린인 소인족이야 몇 발 맞으면 죽는다지만, 암호명 오르 쿠나 늑대인간 같은 수인족은 죽을 때까지 쏘거나 머리를 터뜨려야 하 다니……
강철진은 다른 세계의 종족 암호명 과 기본적인 사항만 알고 있었다. 오르쿠는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 하 지만 코가 돼지 코다. 근육질의 타 고난 전사 종족이었다. 늑대인간은 늑대처럼 입이 튀어나오고 털이 많 다. 귀가 뾰족한 암호명 엘프도 있 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총에 맞 아도 잘 죽지 않는 특성이 아닌 마
법이었다.
“강철진 소령도 게이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요?”
강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의 존재만 알고 있었지, 어 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현재 확인된 곳만 6곳이네요.”
S등급 정보에는 엘 파나 차원과 연결된 게이트의 위치 정보까지 있 었다. 그리고 엘 파나 차원에서 흘 러 들어오는 마나를 막기 위해 게이 트를 납으로 둘러싸 막았다.
지구에서는 게이트를 통해 엘 파나 차원이 침공할 줄 알고 있었다. 그 래서 게이트를 중심으로 모든 준비
를 했다.
그 누구도 달보다 더 큰 행성을 지구 궤도에 보내 침공할 줄은 몰랐 다.
“모두 해일에 안전한 내륙 지역이 라 주변에 떨어진 엘 파나 침공군을 소탕하고 반격에 나선다고 기본 작 전 계획이 만들어졌더군요.”
이성진이 말 안 해도 화면으로 확 인했다. 강철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마나를 차단하지 못한 이상 엘 파 나 차원의 종족은 힘을 잃지 않을 테니 이성진 대령님 생각대로 반격 은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첫 번째 작전은 엘 파나에서
들어오는 마나를 차단하고 게이트에 서 침공군을 막는 것이었다. 만약 첫 번째 작전이 실패하면 두 번째 작전은 시간 확보다.
인간도 충분한 마나를 흡수하게 되 면 엘 파나 종족과 같은 힘을 지닌 사람이 나타난다. 현대 무기가 제대 로 작동하지 않는 이상 초인이라 부 르는 사람들을 모아 반격하는 것이 두 번째 작전이었다.
“섬이나 해안 기지를 최후 방어선 으로 생각했는데 거꾸로 당했으 니……
강철진은 한숨을 쉬었다. 엘 파나 차원 게이트가 내륙에 있다. 만약
엘 파나 침공군을 막지 못하면 내륙 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이나 섬에서 전력을 강화해 반격에 나설 계획이 었다.
그것이 거제도에 지하 벙커가 있는 이유였다.
“강철진 소령.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저 위에 있어요.”
이성진이 팔을 들어 위를 가리켰 다. 강철진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 를 들었다. 빛을 내는 LED 등과 천 장만 보였다.
“새로 나타난 달이요.”
“아!”
강철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어 새로 나타난 달 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만약 저 달이 그대로 낙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강철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거 대한 알이 떨어질 때도 속력을 줄이 지 않았다면 엄청난 재앙이 일어났 을 것이다. 답은 쉽게 나왔다. 강철 진은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멸망이 찾아오겠군요.”
“아무래도 지구상에 생물은 살아남 지 못하겠죠.”
“그러면 이성진 대령님은 싸워도 소용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엘 파나 차원의 침공군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아예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워도 소용없지 않은가 싶어 말한 것이다.
멸망보다는 생존이 나으니까.
“그건 아닙니다. 엘 파나 차원에서 온 놈들은 목적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목적이 없다면 지구를 그냥 파괴 하지 저렇게 군대를 보내 사람들을 잡아들이지 않으니까요.”
강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정보이기 때문에 확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구 점령이 목적인 것처럼 행동하
는 것은 확실했다.
“저 같았으면 지구 대륙 반쯤 날려 버린 다음에 군대를 보냈을 겁니 다.”
이성진의 말에 강철진은 소름이 돋 았다.
“비어 있는 거대한 알 10개만 속 도를 줄이지 않고 떨어지면……
“대도시에 한 개만 떨어져도 전멸 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분명 전략적 으로 우위에 설 수 있는 전술을 택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한복판이 아닌 경기도 지역에 거대한 알이 떨어졌다. 강철진은 화 면의 지도를 다시 자세히 봤다. 거
대한 알이 떨어진 지역은 모두 인구 가 많은 곳을 벗어나 떨어졌다.
“엘 파나가 무슨 목적과 생각을 가 지고 있느냐를 알아내야 이 전쟁도 달라집니다.”
“그렇군요.”
이성진이 말한 것과 S등급 정보를 종합하면 결론은 똑같았다.
“그건 강철진 소령과 다른 사람이 할 일이고.”
“네?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이성진이 말하는 것이나 행동을 봐 서는 마음을 돌린 줄 알았다. 그런 데 아니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를 전쟁에서 아
라를 혼자 둘 수 없어요. 제가 이 세상에서 사는 목적이자 대한민국에 남은 이유니까요.”
“그래도……
“누군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죠. 저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아라의 곁에 있으면서 지켜 줄 생각입니다. 그것이 내 사과나무니까요.”
가만히 옆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똘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똘이는 이성진이 관심 가져 주자 벌떡 일어 나 꼬리를 흔들었다.
“자식. 놀아 달라고 보채지도 않 네.”
“커컹!”
당연하다는 듯 짖었다. 중요한 일 을 하는 것이 분명한데 놀아 달라고 할 만큼 눈치 없지 않았다. 그저 주 인과 함께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좋 았다.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한 것 같고 강철진 소령은 남은 정보 열람해서 거제도를 어떻게 지킬지 계획을 세 워 봐요.”
“제가요?”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는 강철진 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작전참모가 해야지요.”
강철진은 여태까지 이성진이 다 알
아서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말 을 돌려서 했다.
“기준이라도 정해 주셔야 작전을 세울 수 있습니다.”
“날로 드실 생각하지 마시고 최대 한 여러 가지 계획을 만드시면 됩니 다. 상황은 계속 변하니까요.”
“알…… 알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까지?”
“최대한 빨리요.”
손을 흔들어 주고는 똘이와 함께 지휘 통신실을 나갔다. 강철진은 한 숨을 푹 쉬었다.
“최소 3명 이상 해야 하는데 이걸
나 혼자?”
정보를 정리하고 분류하면서 최상 의 작전 시나리오를 만들려면 강철 진을 포함해 3명 정도가 있어야 했 다. 하지만 S급 정보라 이성진 이외 에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가 없었다.
결론은 혼자 해야 한다.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해야지. 군인 인데……
오래간만에 처음 임관해 소위 계급 장을 달았을 때 했던 말을 했다. 불 평불만이 많은 시절이었다.
강철진이 작전 계획을 만들게 한 다음 이성진은 똘이와 함께 지하 기
지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대 부분 비어 있었다.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었다. 문을 열자 윤진수 중 위가 벌떡 일어났다.
“ 필승!”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식당이었 다. 윤진수 중위가 경례하자 나머지 군인들도 벌떡 일어나 경례했다.
윤진수 중위에게 이성진에 관한 이 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경례 안 해도 됩니다. 쉬세 요.”
쉬라는 말에 윤진수 중위와 군인들 은 손을 내렸다. 그리고 윤진수 중 위가 다가왔다.
“식사 준비할까요?”
“괜찮아요. 그런데 이곳에 무기와 탄약을 보관하나요?”
식당 한쪽 구석에 밖에서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탄약 상자와 무기 가 쌓여 있었다.
“두 군데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습 니다.”
“이유는요?”
“한 군데는 밖을 감시할 수 있는 곳입니다. 만약 일이 생긴다면 이곳 을두 번째 집결지로 생각했습니 다.”
좋은 생각이었다. 장기전의 경우 식량이 필요하다. 또한, 이 기지를
포기하고 후퇴하더라도 식량은 꼭 필요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지만, 윤진수 중위가 말한 밖을 감시하는 곳을 보 고 싶었다.
“감시할 수 있는 곳을 구경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안내하겠습니다.”
혼자 찾아가도 된다. 하지만 윤진 수 중위와 함께 가는 이유가 있다. 식당 안에 군인이 20명이 되지 않 았다. 나머지는 밖을 감시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이 갑자기 나타나면 공격할 수도 있 었다.
“나머지는 쉬세요.”
이성진이 윤진수 중위와 함께 나가 자 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를 하려다가 멈췄다.
윤진수 중위와 함께 복도를 몇 개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똘이는 얌전하게 따라 다녔다.
안에는 10명 정도가 파이프 관 같 은 것에 눈을 대고 있었다. 한 명은 뒤에서 감시하듯 보고 있었다. 파이 프에 눈을 대지 않은 군인이 문소리 에 몸을 돌렸다.
“중대장님 오셨습니……
윤진수 중위와 함께 온 사람이 누 구인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이성진 대령님이시다. 이 기지 지 휘관이 되셨다.”
윤진수 중위의 말에 모두 하던 일 을 멈추고 이성진을 향해 차렷 자세 를 하며 절도 있게 경례했다.
“ 필승!”
“모두 고생이 많네요. 편하게 대해 요.”
이곳에 있는 군인은 모두 20대 초 중반이었다. 일반병이다.
편하게 대하라고 해도 군인인 이상 이성진을 편하게 대할 수 없었다. 까마득한 연대장급이 대령이 었다. 해군으로 따지면 전단장 이상이다.
“진짜 거울을 이용해 밖을 감시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여러분 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밖을 감시할 수 있는 도구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자 윤진수 중위가 나 섰다.
“김 상병. 보여 드려.”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파이프 관으로 갔다. 그리고 눈을 댔다. 그러자 기 지로 들어오는 정문이 보였다. 어쩐 지 기지 문을 열 때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싶었다.
“재미있네요.”
“컹! 컹!”
이성진이 재미있어 하자 똘이도 재
미있다는 듯 짖었다.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잠망경의 원 리를 이용한 것이다. 수십 개의 거 울과 렌즈를 이용해 지하에서 지상 을 감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지 외부에서는 전자기기가 작동 안 하니 감시 카메라 대용으로 만들 었다.
하지만 옆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 다. 한 방향만 감시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개의 파이프 관이 기지 외부의 모든 방향을 감시한다. 지금 은 인원 때문에 10개만 사용하는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대원들까지 해서 총 몇
명이나 있나요?”
이성진의 질문에 윤진수 중위가 재 빠르게 대답했다.
“UDT 대원 11명에 일반 사병 23 명 총원 34명입니다.”
34명이면 많은 인원은 아니다. 하 지만 특수부대인 UDT 대원이 11명 이면 1개 중대 200명 이상 효과를 볼 수 있다.
적은 인원으로 최고의 경비를 하고 있었다.
“윤 중위는 어디까지 가 봤어요?”
“어디까지라고 하시면……
“아! 미안해요. 이 기지 어디까지 가 볼 수 있어요?”
이 기지 안의 시설물을 다 사용 못 하고 있었다. 윤진수 중위의 임 무는 이 기지를 지키며 지휘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식당과 거주 구역 그리고 이곳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은 문 이 잠겨서 이용하지 못하고 있습니 다.”
“그렇군요. 가죠. 모두 이용할 수 있게 LOCK을 풀 테니.”
“정말이십니까?”
“네. 모두 고생해요. 똘아 가자.” 문을 열고 나가자 뒤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이곳에 들어와서 불안했던 것이다. 왜 안 불안했겠는가.
거대한 해일이 몰려와 쑥대밭을 만 들었다. 명령대로 기지 안으로 들어 와 기지를 지키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지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들만 살아남은 것 아닌가 싶었 다. 또한, 가족들 걱정도 했다.
그 와중에 기지 지휘관인 이성진이 나타났다.
“저렇게 좋은가요?”
“저도 좋습니다. 대령님.”
윤진수 걸어가면서 중위를 쳐다봤 다. 그러자 멋쩍게 웃었다.
“제가 책임지기에는 너무 무거웠습 니다. 제 위로 책임자가 생기니 어 깨가 가벼워졌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요? 마음에 안 들지 않나요?”
계속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러자 윤진수 중위는 정말 놀랐다는 말투 로 말했다.
“그 유명한 천하 그룹 사위라는 것 도 의외였지만 SAS 대원이셨다는 것도 의외였습니다. 150여 회의 작 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대원이라면 마음에 안 들 UDT 대원은 없습니 다. 존경합니다. 대령님!”
“재벌 사위라서가 아니고요?”
농담처럼 던졌다. 그러자 윤진수 중위도 농담처럼 말했다.
“재벌가 사위이신 것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오늘의 전우를 잊지 않으 실 분이시니까요. 나중에 취직자리 하나 안 주시겠습니까?”
윤진수 중위를 쳐다봤다. 윤진수 중위의 얼굴은 전혀 부끄러움이 없 었다. 오히려 미소 지었다.
나중에 진짜 취직자리를 제안한다 해도 쉽게 올 사람이 아니었다. 지 금은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하는 말 이 분명했다. 예전 SAS 대원 중에 도 윤진수 중위 같은 놈■이 한 명 있었다.
나중에 탈탈 털어서 벗겨 먹겠다고 농담하던 놈이었다. 언제든지 벗겨 먹으라고 했었다. 하지만 영원히 그
농담은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
작전 중에 실종되었다. SAS 대원 에게 작전 중 실종은 곧 사망이었 다.
“제임스 같은 놈이네.”
“네?”
“아니에요.”
윤진수 중위에게 웃어 주고는 통제 실이라고 쓰인 문 앞에 섰다. 통제 실 문에도 단말기가 있었다. 그곳에 손을 대자 스캔하더니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통제실 안의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수많은 스크 린이 켜졌다. 각종 계기판과 컴퓨터 도 보였다.
“윤 중위. 이곳에 손 올려요.”
“여기 말입니까?”
통제실 안에 손을 스캔하는 장치가 있었다. 그곳에 윤진수 중위가 손을 올렸다.
“잠깐 기다려요.”
통제실 메인 컴퓨터 단말기에 손을 얹은 다음 윤진수 중위의 지문을 등 록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윤진수 중위가 올린 단말기에 불이 들어와 손을 스캔했다. 스캔이 끝나 자마자 메인 컴퓨터에 윤진수 중위 의 인사 기록이 나타났다.
거제 기지 내 출입 등급을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이제 윤 중위를 등록했으니 기지 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
“다른 대원들은 윤 중위가 직접 등 록해요.”
“제가요‘?”
“네. 윤 중위가 허락할 수 있는 출 입 등급은 발전소를 제외한 모든 곳 으로 해 놨어요.”
“이곳에 발전소도 있습니까?”
“아주 위험한 발전소가 2개나 있더 군요.”
윤진수 중위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위험한 발전소요?”
“네. 소형 원자로와 마나 발전소 요.”
윤진수 중위는 놀라 입을 벌렸다. 사람이 놀라면 입이 약간씩 벌어지 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윤진 수 중위가 정신을 차리고 입을 닫았 다가 다시 열었다.
“핵 발전소는 알겠는데 마나 발전 소는 잘……
윤진수 중위는 아직 정확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지휘 통신실에서 정 학철 장군과 통신한 것만 봤다. 그 저 ‘전쟁이 났구나.’ 정도로 알고 있 었다.
식당에서도 어디의 누가 쳐들어 왔 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 볍게 의논하던 중이었다.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전 SAS 대원 인 이성진이 기지 지휘관이 된 것이 기는 했다.
“이제 윤진수 중위도 알아야 할 것 같으니 정보 보안 등급도 올려놨어 요. 이곳 통제실에서 웬만한 정보는 다 검색이 될 겁니다. 일단 내가 아 는 것부터 말해 주죠.”
“네. 감사합니다.”
윤진수 중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휘 통신실에서 본 대한민국 지도 에 초록색 점들이 무엇인지 궁금했
다.
“혹시 하늘에 또 하나의 달이 생긴 것은 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달은 엘 파나라는 차원에서
말해 주면 말해 줄수록 윤진수 중 위의 눈이 흔들렸다. 간단하게 엘 파나 차원에서 침공해 왔고 마나라 는 것이 전자기기를 못 쓰게 만든 다. 그래서 이 기지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거제도에는 암호명 고블린 이라는 소인족이 새로 생긴 달에서 거대한 알을 타고 떨어졌다. 대략 이 정도였다.
“이럴 수가……. 외계인이 지구 르...”
"s’ .
윤진수 중위의 말처럼 어떻게 보면 외계인이 맞을 수 있다. 다른 차원 이 다른 은하계에 있는 행성일 수도 있으니까.
“윤 중위도 들었겠지만, 거제도를 탈환하고 수비하려면 사람들이 필요 해요.”
윤진수 중위는 고개를 흔들며 다른 생각을 떨쳐 냈다. 지금 지휘관이 말하고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UDT 대원으로 사람들을 구출해 기 지로 데리고 올 수 있는 팀을 만들
겠습니다.”
팀을 만들겠다고 말하고는 무언가 더 말할 것이 있는 표정이었다.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봐요.”
“네. 대령님……. 그런데 사람들을 데리고 와도 무장할 무기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겠다. 하지 만 윤진수 중위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따라와요. 무기고도 점검해 봐야 하니까.”
“무기고요?”
윤진수 중위가 급하게 이성진의 뒤 를 따라갔다. 똘이는 또 엎어져 쉬 고 있다가 이성진의 옆으로 달려갔
다.
“기록에는 1만 명 이상 무장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되어 있어요.”
“1만 명이요?”
놀라 소리치듯 말하자 똘이가 힐끗 윤진수 중위를 쳐다봤다.
“저기 대령님……
“왜요?”
“이 개는 항상 대령님만 따라 다닙 니까?”
“네. 똘이는 제 전우니까요.”
“컹! 컹!”
전우라는 말보다 이성진의 마음이 느껴져 짖었다. 동료라는 유대감이 느껴졌다.
“사람 말 거의 다 알아들으니까 장 난칠 생각 안 하는 것이 나아요.”
“장난칠 생각 없습니다.”
이성진의 개다. 대령 개면 개도 대 령이나 마찬가지다. 주인 따라 개 팔자도 바뀐다.
“여기가 무기고네요.”
무기고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 았다. 무기고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 무기가 이 안에 있는 줄 모른다. 보 안 때문인 것 같았다.
“손을 대 봐요.”
“제가 말입니까?”
“네.”
윤진수 중위는 단말기에 손을 댔
다. 그러자 손을 스캔하더니 무기고 가 열렸다.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불 이 꺼져 있다가 문이 열리면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와우!”
진열장같이 생긴 곳에 총이 가득했 다. 한쪽에는 탄약통이 쌓여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RPG도 있습니다.”
일명 RPG-7으로 불리는 무반동총 이다. 영화에서 보던 폭탄 발사기다. 앞에 나선형의 탄두가 달려 있다.
“첨단 무기는 하나도 없네요.”
윤진수 중위가 입구에 있는 컴퓨터 화면에서 목록을 보면서 말했다.
“마나 때문에 전자기기가 작동 안 하니 재래식 무기만 채워 놓은 것 같아요.”
윤진수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저 포인트도 GPS 장치도 없다.
“이 옆에 복도 끝에 있는 창고에는 1천 명이 1년을 버틸 식량이 있다 고 해요. 통제실에서 확인 가능하니 까 윤 증위가 확인하고요.”
“알겠습니다.”
윤진수 중위는 하나씩 이 기지에 대해 알게 되자 신기했다.
“여기 산소는 어떻게 공급할까요? 외부에서 환기구를 통해 들어온 것 을 정화해 사용할까요?”
그냥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이성 진의 대답은 상세했다.
“아니요. 이곳은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되게 설계되었더군요. 이 밑에 층에 발전소와 함께 산소 발생기가 있어요.”
있다는 것만 안다. 산소가 발생하 는 원리는 머릿속에서 지웠다. 필요 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만 내가 안내할 테니 윤 중위는 다른 곳들도 다 개방한 다음 대원들 출입 등급 올려요.”
“알겠습니다.”
무기 목록을 더 살펴보는 윤진수 중위를 놔두고 몸을 돌렸다.
“대령님! 어디 가십니까?”
“위에 올라가 보려고요. 대원들 다 등록한 다음 모두 올라오라고 해 줘 요.”
“모두요?”
“네.”
“알겠습니다.”
윤진수 중위는 왜 올라오라고 하는 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이유가 있으니 올라오라고 했겠지라 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성진은 신뢰할 수 있는 지휘관이 다. 바로 필요한 것들을 알려 주고 조치해 줬다.
“똘아 가자.”
“컹!”
똘이와 함께 무기고를 나왔다. 그 리고 어렵지 않게 지상으로 나가는 통로를 찾았다.
지상으로 나가려는 이유는 마나 때 문이었다. 마나 간섭 현상에 관한 자료도 있었다. 마나 때문에 능력이 생긴다. 능력이 생긴 이후 지속적으 로 마나를 흡수해야 몸이 안정된다.
안정되기 전까지 부작용이 나타난 다. 강철진이 급격하게 뛴 다음 허 기가 져 움직이지 못한 것 같은 부 작용이었다. 부작용은 한 가지뿐만 아니었다.
지금 이 기지에는 마나가 거의 없
다.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기지 안의 다른 대원을 마나에 노출시키기 위해서이 기도 했다.
안에서는 문을 쉽게 열 수 있다. 유리문을 지나 거대한 철문까지 쉽 게 열었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네.”
하늘에서 내려오는 우윳빛 막은 이 제 거제도를 거의 다 감싸고 있었 다.
“똘이야 여기 앉자.”
“ 컹!”
기지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공터 바닥에 그냥 앉았다. 똘이는 바로
옆에 붙어 앉았다. 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 다.
엘 파나 차원과 연결된 게이트는 언제부터 연결되었을까.
엘 파나 차원은 왜 지구를 침공한 것일까.
아라는 잘 있을까…….
생각이 복잡했다. 여러 가지 상황 과 겹쳐 쉽게 떨치지 못했다.
“컹!”
“알아. 문 열렸네.”
창고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진수 중위와 대원들이 나 오는 것 같았다. 곧 창고 문이 열리 고 윤진수 중위와 대원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뿐만 아니었다.
강철진과 한결이 그리고 유리도 같 이 나왔다.
“아저씨!”
한결이가 가장 기뻐하며 달려왔다. 유리도 질 새라 뛰기 시작했다. 나 머지는 멈춰서 도열했다. 지휘관에 게 인사하듯.
강철진 소령이 가장 앞에 섰다. 나
머지는 3열 횡대로 섰다.
“이성진 대령님 모두 나오라고 하 셨다고……
“네. 강철진 소령이 나왔으니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가 없겠네요.”
“무슨 설명을……
“강철진 소령이 마나 간섭 현상과 초인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암호명 고블린은 윤진수 중위도 아니까 그 건 안 해도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강철진은 이성진이 왜 모두 밖으로 나오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강철진 도 이성진 덕분에 마나 간섭 현상에 관한 정보를 더 자세하게 봤다.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는 것을 잘 듣도록. 마나 간섭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지구상의 전자기기 르..”
강철진의 설명은 자세하면서도 길 었다. 윤진수 중위를 제외하고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성진 대령님께서는 너희 들을 지상에 올라오게 하신 것이다. 너희들 중에 초인이 될 수 있는 사 람도 있다.”
지휘관 앞이라는 것도 잊고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윤진수 중위 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질문 하기 전에 땅이 울렸다.
쿠웅 하는 느낌과 함께 땅이 흔들 리자 지진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 만 지진은 아니었다.
“차단막이 완성되었네요.”
이성진의 말에 모두 이 울림이 어 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우와 아저씨! 예쁜 누나가 나타났 어요.”
한결이만 본 것이 아니었다. 누구 나 볼 수 있었다. 저 높은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거대한 여자가 나타났 으니까.
그리고 그냥 나타난 것만 아니었 다.
[지구의 인간에게 알립니다. 나는
엘 파나의 성녀 엘리스입니다.]
엘 파나 성녀 엘리스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분명 한국어다!
“예쁜 누나, 목소리도 예쁘네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 한결이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말했다. 모두 한결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한결이 의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다.
[파나 신을 모시는 성녀로서 약속 합니다. 무의미한 저항을 하지 않는 다면 해치지 않습니다.]
순간 비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 다. 무의미한 저항을 하지 않으면
해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었다.
소행성을 옮겨 지구에 해일을 일으 키고 거대한 알을 떨어뜨려 피해를 주는 동시에 차단막을 만들었다. 이 미 수많은 사람을 해쳤다.
임시 거제시장이 대화하러 나갔다 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우리는 당신들과는 다릅니다. 저 항하지 않는 종족을 무차별하게 죽 이지 않습니다.]
이 말은 좀 이상했다. 마치 지구에 서 엘 파나의 종족을 무차별하게 죽 였다는 말처럼 들렸다.
[저항하지 않고 엘 파나의 유일한
신 파나 님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 면 지구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엘 파 나의 종족과 똑같은 대우를 해 줄 것을 약속합니다.]
저 예쁜 성녀가 말하는 것이 꼭 지키지 못할 공약만 내세우는 누군 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리고 익숙한 느낌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처음 보는 성녀였다.
“요즘 여자 아이돌과 비슷하게 생 겨서 그런가?”
농담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강철 진을 쳐다봤다. 그런데 강철진의 모 습이 이상했다.
눈에 초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입 을 살짝 벌리는 것이 정신 나간 멍 청이 같았다.
강철진뿐만 아니었다. 윤진수 중위 도 군인들도 모두 눈에서 초점이 사 라지고 있었다. 똑같이 입을 벌린다. 심지어 침을 홀리는 사람도 있다.
한결이와 유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똘아!”
똘이도 초점을 잃으며 침을 질질 홀리고 있었다.
“똘아!”
“키잉.”
두 번째 부르자 똘이의 초점이 돌
아왔다. 그리고 고개를 마구 흔들더 니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르! 크릉!”
성녀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 할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똘아! 정신만 똑바로 차려라!”
똘이는 잠깐이지만 이성진을 잊게 한 저 성녀가 싫었다. 이성진이 두 번이나 불러 주지 않았다면 정신 차 리지 못했다.
“강철진 소령!”
대답이 없었다. 더 강하게 소리쳤 다.
“강철진 소령! 정신 차려요!”
하지만 똘이와는 다르게 강철진의 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세요. 파나 신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강철진 소령은 물론 윤진수 중위와 군인들이 동시에 환영한다고 소리쳤 다.
“다중 최면이냐!”
최면이라고 생각해 성녀를 바라보 자 성녀의 모습을 만드는 빛의 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주기적으로 깜빡였다. 또 한, 목소리가 너무 달콤하게 귀에
쏙 들어온다.
마치 어린아이일 때 어머니의 품속 에 있는 것 같은 포근함까지.
“아니면 마법인가?”
마나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마법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마법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눈앞에 있는 수십 명을 동시에 최면에 빠뜨릴 수가 없 었다.
“미안합니다.”
최면을 깨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통이다. 강철진의 얼굴에 손바닥 을 날렸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획 돌아갔다. 하지만 돌아간 속도만큼
빠르게 고개가 다시 돌아왔다. 마치 성녀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 럼.
한 대만 더 때려 보고 그래도 정 신을 못 차린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 해야 했다. 다시 손바닥을 날렸다.
짝 소리가 나더니 강철진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 o 으.”
—=5* •
“정신이 들어요?”
“네? 네……. 그게……. 그러니 까……. 성녀에게 가서 파나 신에 게……
좀 강하게 때려서 그런지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제는 약한
중격을 주면 된다. 뺨을 양손으로 짝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아……. 이성진 대령님……. 지금 제가……
“정신 차려요! 강철진 소령은 한결 이와 유리 데리고 기지 안으로 들어 가요!”
강철진은 한결이와 유리의 이름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뭇거리지 말고 한결이와 유리 데리고 들어가라고!”
“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철 진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강철진은 바로 한결이와 유리를 안고 기지 안
으로 달렸다.
“똘이야! 너도 따라 들어가!”
“ 컹!”
똘이는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강 철진의 뒤를 따라 뛰었다. 그것을 확인한 다음 윤진수 앞에 섰다.
“윤진수 중위!”
다시 손바닥을 휘둘렀다. 짝보다는 퍽 소리에 가까웠다. 윤진수 중위가 그대로 날아가 기절했다.
“이게 낫겠네.”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것보다 그 냥 기절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았 다. 다른 사람들은 손바닥이 아닌 손날로 목 부근을 때렸다. 한 방에
한 명씩 쓰러졌다.
“다음은……
한두 명도 아니고 31명이나 기지 안으로 데리고 가야 했다. 거제도에 서 힘이 강해졌다. 2〜3명씩 들고 들어갈 힘이 있다. 하지만 힘과는 관계없이 덩치 때문에 2명 이상은 들기 힘들었다.
“미안하지만 끌고 갑니다.”
기절해서 듣지 못한다. 그래도 말 은 해야 할 것 같았다. 2명의 소매 를 오른손으로 잡았다. 왼손 역시 2 명의 소매를 잡았다. 한꺼번에 4명 을 질질 끌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 다. 기절한 사람들을 끌고 가는데도
허공에서는 성녀가 똑같은 말을 반 복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세요. 파나 신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마지막 4명을 질질 끌고 가는데 강렬한 빛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녀가 보이던 자리 에는 환한 빛만 존재했다.
그리고 폭발했다.
번쩍하더니 수많은 빛의 알갱이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이성 진 눈에는 확실하게 보였다.
순식간에 퍼져 나간 빛의 알갱이는 이성진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뭐야 이거.”
빛의 알갱이가 다른 사람의 몸에 맞고 튕겨 나갔다. 그리고 더 잘게 부서져 공기와 같이 흩어졌다. 이제 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신 느껴진다.
사람이 공기가 눈에 안 보이지만 있다는 것은 아는 것 같다고나 할 까.
아니면 미세먼지가 눈에 안 보이지 만 목이 텁텁하고 눈에 무언가 들어 간 것 같은 느낌으로 아! 오늘은 미 세먼지가 많은 날이구나 아는 것처 럼 말이다.
“왜 내 몸에는 그냥 들어오는 건
데.”
더 놀라운 것은 빛의 알갱이가 튕 겨 나가지 않고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꽤 많은 빛의 알갱이가 의 도하지 않았는데 몸 안으로 들어왔 다. 순식간이라 피할 수도 없었다. 피할 곳도 없었고.
“젠장. 이러면 찝찝한데.”
남은 2명을 창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다음 문을 닫았다. 그리고 팔을 휘휘 돌리거나 스트레칭을 하 면서 혹시 이상이 있나 살폈다.
“이건가? 이래서 초인이 되는 건 가?”
스트레칭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몸이 더 유연해지고 힘이 강 해졌다. 주먹을 쥐었을 때 팔에 느 껴지는 힘이 평소와는 달랐다.
빛의 알갱이는 마나인 것 같았다. 마나를 받아들이면 초인이 된다.
강철진과 함께 있을 때 초인이 되 기 시작했다.
S등급 정보에 의하면 마나를 더 많이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강한 초 인이 된다고 했다.
“테스트해 봐야 하나?”
기절한 사람들이 깨어나려면 시간 이 걸릴 것 같았다. 꽤 강하게 쳤 다.
창고 안이 꽤 넓었다. 그래서 테스
트는 문제없었다.
팡 소리와 함께 몸이 10m를 움직 였다. 단 한 번의 도약이었다. 한 번에 10m를 움직이는 것은 전에도 가능했다.
하지만 속도는 2배로 빨랐다.
가볍게 오른 다리를 위로 올려 차 면서 뒤로 회전했다. 회전하는 동시 에 왼쪽 다리 뒤꿈치로 상상의 상대 턱을 올려 찼다. 그리고 오른손을 땅에 집으면서 다리를 오므렸다.
다리가 땅에 닿자 개구리가 점프하 듯 튕기면서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 아 가면서 가상의 상대 목과 명치를 때렸다.
펑펑하면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확실하네. 2배는 빠르고 강해졌 어.”
꽤 어려운 동작인데도 순식간에 해 냈다. 짧게 끊어 쳤는데도 힘 때문 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 o 으.”
—M •
뒤에서 누군가 신음을 냈다. 뒤를 돌아보니 윤진수 중위였다. 가장 먼 저 기절해서 그런지 가장 먼저 깨어 나는 것 같았다.
윤진수 중위에게 다가갔다.
“윤 중위 괜찮아요?”
“으윽……. 이성진 대령님?”
“네. 괜찮아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 이외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려다가 볼이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더니 깜짝 놀랐다.
“얼굴이 왜 이렇게 부었습니까?”
“그건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조금 전 엘 파나 차원의 성녀 엘리스를 기억해요?”
“엘리스요?”
윤진수 중위는 잠시 기억이 안 나 는 것 같이 생각하더니 곧 기억해 냈다.
“기억납니다. 부끄럽지만 정말 예
쁘고 사랑스러운……
윤진수 중위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았다. 마음에 있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윤 중위! 성녀 엘리스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 아니 적이라고 생각해요.”
윤진수 중위는 이성진이 적이라고 하면 적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런 데 생각과 마음은 다르게 움직였다. 이성적인 생각은 성녀 엘리스는 적 이다. 이렇게 인식한다. 하지만 마음 에서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확실하네요. 윤 중위 는 지금 최면에 걸린 것 같아요.”
“최면이요?”
“네. 혹시 성녀 엘리스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요?”
“당연히……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았다. 황당하 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들었는 데 그 말이 기억 안 난다.
“이성진 대령님.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입니다. 꿈을 꾸었는데 내 용이 생각 안 나는……
“그렇군요.”
최면을 당한 것과 비슷한 증상이었 다. SAS 대원일 때도 비슷한 경험 을 했다. 포로로 잡힌 동료가 저런 증상을 보였다. 그리고 포로로 잡은
적에게 이쪽에서 최면을 건 적도 있 었다.
양쪽 모두 최면 당시의 일은 제대 로 기억 못 했다.
“이성진 대령님. 성녀 엘리스가 무 슨 말을 했습니까?”
윤진수 중위는 꼭 알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알기 싫어도 알려 줘야 했다. 저렇게 먼저 물어보니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성녀 엘리스가 나타나서……
모두 초점을 잃고 투항하라는 성녀 엘리스의 말을 들을 것같이 행동했 다는 것을 말해 줬다.
“그래서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어
요. 미안해요. 윤 중위……
윤진수는 자신의 뺨이 왜 이렇게 부었는지 이제 알았다. 그래도 화는 낼 수 없었다.
“ o O O.”
기절해 있던 군인들이 하나둘씩 깨 어나기 시작했다. 윤진수 중위와 함 께 깨어난 군일들을 살폈다. 그때 기지 안에서 강철진이 나왔다.
“이성진 대령님!”
“잘 나왔습니다. 깨어나는 사람들 좀 같이 살펴요.”
“네.”
강철진은 윤진수와 함께 깨어나는 사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 정
신을 차렸다.
“모두 정신을 차렸으면 주목!”
지금은 존대해 줄 여유가 없었다. 짧고 강하게 소리치자 현역 군인이 라 그런지 모두 눈빛이 살아났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말할 테니 잘 들어요!”
모두 이성진의 입을 쳐다봤다.
윤진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했 다. 그러자 모두 눈이 흔들렸다. 그 나마 강철진만 덜 흔들렸다.
“모두 윤진수 중위와 비슷한 상황 인 것 같군요.”
이러면 문제가 많다. 거제도를 탈 환하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최면을
깨야 했다.
“일단 기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리고 보안 등급을 재조정합니다.”
이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기지의 정보를 가지고 항복하는 사 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면 모든 일이 틀어진다.
“저 이외에는 지휘 통신실과 통제 실 그리고 무기고에 접근할 수 없습 니다. 또한, 외부 출입도 못 합니다. 기지는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입구를 폐쇄합니다.”
이성진의 말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음 한쪽에서는 항 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
문이었다.
이성진만 앞에 없었으면 항복했을 지도 모른다.
“모두 기지 안으로 들어가세요.”
이성진의 말에 기운 없이 기지 안 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을 모아 거제 도를 탈환하기는커녕 항복하게 생겼 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의 비밀번호도 바꿨다. 바로 통제실과 지휘 통신실로 가서 모두의 보안 등 급을 내렸다.
그리고 최면을 깨기 위해 기지 안 의 모든 사람을 식당으로 모이게 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