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4화 (4/50)
  • 4장. 실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 고 있었다. 절도 있게 열을 맞춰 움 직였다. 하지만 옆의 동료와 대화는 계속하고 있었다.

    20명이었다. 20명 모두 갑옷을 입 었다. 방패도 들었다. 투구는 바가지 처럼 생겼다. 얼굴을 다 가리는 것 이 아니었다.

    숨어 있는 곳을 지나쳤다. 하지만 100m도 안 가서 멈췄다.

    “키키엑!”

    한 놈이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 멈 췄다. 20명씩 2개 소대였다. 40명이 멈춰서 한 일은 등에 지고 온 것들 을 도로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강철진이 이성진에게 조그만 목소 리로 말했다.

    “차단선입니다.”

    그냥 고개를 끄덕여 줬다. 저놈들 은 지금 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익숙하게 장애물을 설치하고 머물 곳을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저 차단선이 다 만들어지고 난 이후다. 제대로 훈련받았다면 주 변 수색을 할 것이 분명했다.

    “강철진 씨. 아무래도 저놈들 제거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거요? 그냥 가면 안 될까요?”

    혼자였다면 그냥 숨어서 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철진과 아 이들이 있었다. 강철진은 몰라도 아 이들까지 데리고 저놈들의 눈을 피 해 도망갈 자신이 없었다.

    차단선을 만들면서도 10명 정도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나마 원거리 무기가 몇 개 없어 서 다행입니다.”

    강철진의 말대로 소인족 그러니까 암호명 고블린은 20명이 한 개 부 대로 창병과 검병 그리고 궁병으로 되어 있었다.

    활을 든 궁병은 5명이었다. 40명이 니 10명이 활을 들고 있었다.

    “잘 들으세요.”

    강철진은 이성진을 믿을 수밖에 없 었다. 전투에도 전문가니까.

    “내가 저쪽으로 넘어갈 테니까 이 곳에서 화살 든 놈들을 저격해 줘 요.”

    “제가요?”

    강철진은 목소리가 커질 뻔했다. 이성진이 도로 저쪽으로 넘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놀랐다. 그런데 저격이 라니.

    “그냥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넘어가서 자리 잡은 다음에 총을 쏘

    면 제가 있는 방향으로 놈들이 몰릴 겁니다. 그때 화살 든 놈들만 처리 해 주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합니 다.”

    강철진은 자신이 없었다. 살아 있 는 생명체에 총을 쏴 본 적도 없었 다. 그리고 만약 이성진이 실패해서 숨어 있는 곳을 들킨다면 다 죽는다 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에 숨어 봤자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때가 되면 기회도 없어요.”

    강철진은 이를 악물었다. 이성진의 말이 맞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

    과 직접 행동하는 것은 달랐다.

    “그럼 손들고 나가서 항복할까요?”

    “그래도 될까요?”

    어이가 없었다. 다른 대답이 나오 길 기대하고 말한 것이다. 대부분 이렇게 말하면 대답하지 않거나 아 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강철진은 강철진 나름대로 고민이었다. 강철진도 아이들만 없 으면 이성진의 말대로 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이기 도 했다.

    “항복하면 저놈들이 살려 준다는 확신만 있다면 강철진 씨 말대로 하 겠습니다. 저는 확신이 없어서 그렇

    게 못 합니다. 그리고 강철진 씨가 항복하면 그때는 끝입니다. 나 나름 대로 가겠습니다.”

    “우리를 두고 혼자 간다는 말인가 요?”

    “네. 처음에 약속한 대로 내 말을 안 듣는다면 어쩔 수 없죠.”

    고민하는 강철진을 멈추게 한 것은 한결이었다. 한결이가 옆에서 이성 진의 편을 들었다.

    “아빠. 아저씨 말 들어서 안 된 일 없었어요. 저는 아저씨 말대로 했으 면 좋겠어요.”

    한결이 말대로 이성진 말을 들어서 여태까지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

    었다. 한결이의 말을 듣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군인답지 못한 모습 을 보였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실전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기 때문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해하는 것과 앞으로 어 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다르다. 이 상황을 끝내고 나서 군 기지까지 간 다음 다른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숨겨 놨던 고무보트는 두 번째 해 일에 사라졌을 테니 군 기지에서 필 요한 물건을 챙겨야 한다. 하늘 위

    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저 우윳빛 막 도 군 기지까지 가야 하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총알은 30발뿐이니 신중하게 쏘 세요.”

    “네.”

    “그럼 준비하세요.”

    그나마 거제시 외곽에 있는 도로라 폭이 짧은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 힘이라면 도약 한 번에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똘아!”

    입에 손가락을 대며 똘이를 조용히 불렀다. 똘이는 짖지 않고 눈을 크 게 뜨고 이성진을 바라봤다.

    “너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지켜 줘.”

    똘이는 짖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 다. 아직 이성진의 손가락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용 히 하라는 신호를 제대로 알아들었 다.

    “약간 아래로 가서 넘어갈 겁니 다.”

    이성진은 강철진에게 말한 다음 천 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이성진 이 잘 가나 지켜보는 강철진이 답답 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보는 사람이 답답해도 어쩔 수 없었다. 큰 소리가 나지 않게 움

    직이려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다. 발을 옮길 때 발바닥에 닿는 것이 단단한 돌인지 그냥 흙인지 파악하 고 돌과 돌이 부딪히지 않게 해야 했다.

    소인족을 신경 쓰면서 10m 움직이 는 데 5분이나 걸렸다. 그리고 기회 가 왔다.

    멀리서는 듣기 힘든 스윽 하는 소 리가 들렸다. 이성진이 땅을 발로 미는 소리였다. 그리고 아주 낮게 반대편 도로로 날아갔다. 이미 봐 둔 돌이 있었다.

    돌을 손으로 집으며 팔에 힘을 줬 다. 몸무게를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다. 몸이 땅에 닿지 않았다. 지금 이성진은 한쪽 팔로 몸을 공중에 띄 워 버티고 있었다.

    SAS 전성기 때도 자주 써먹던 방 법이었다. 소인족은 풀에 가려 이성 진을 볼 수 없는 위치였다.

    천천히 다른 팔을 땅에 댔다. 그리 고 다리를 내렸다. 소리 없이 몸이 땅에 안정적으로 닿았다. 이제 다시 소리 내지 않고 이동할 차례였다.

    대각선으로 움직여 숨어서 저격하 기 좋은 위치를 확보했다.

    이곳에서 총을 쏘면 소인족들이 몰 려올 것이다. 그때 강철진이 뒤에서 활을 든 놈들만 처리해 주면 된다.

    심호흡하고 땅에 엎드렸다. 저격용 망원경이 없어도 150m 거리면 백 발백중이다. 다 맞출 수 있다.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보게 하는 능력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 은 능력을 사용하면 실수할 가능성 이 크다.

    총을 소인족에게 겨눴다. 첫 번째 는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이다.

    다시 심호흡하며 머리를 조준했다. 맞추고자 하는 위치에서 약간 아래 로 내렸다. 총알은 직선으로 날아가 지 않는다. 회전하며 물결치듯 위아 래로 움직이며 날아간다. 그것을 감

    각적으로 계산한 것이다.

    수없이 종을 쏴 봤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당겼다. 첫 발만 천천히 당 길 것이다. 첫 발만 제대로 들어가 면 감각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니까.

    후우. 후우…우…. 탕!

    탕 소리와 함께 퍽 하며 소인족 한 명이 뒤로 날아갔다. 감각대로 맞았다. 하지만 이성진은 두 번째 총알을 발사하지 않았다.

    “뭐야?”

    총소리가 나자마자 소인족은 익숙 하게 방패 뒤로 머리를 감추며 앉았 다. 들은 대로 총을 잘 아는 것 같 은 행동이었다. 몸집이 작으니 방패 로 대부분을 가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갑옷을 입고 있다. 확실 하게 죽이려면 머리를 맞혀야 하는 데, 그마저 방패로 가리니 노리기기 어려웠다.

    “키익. 킥킥키에키!”

    소인족들이 마구 소리 질렀다. 그 리고 행동을 봐서는 어디서 총알이 날아온 것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방패 뒤에 숨어서 몸을 돌리고 있었 다.

    옆머리가 보였다.

    탕! 소리와 함께 또 한 놈이 옆으 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소인족 동료 가 쓰러진 방향을 보고 어디서 총알 이 날아왔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모두 이성진을 향해 방패를 돌렸으 니까.

    “키엑! 키키엑! 키에!”

    활을 든 놈들이 방패 뒤에서 움직

    이는 것 같았다. 화살을 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성진이 어디쯤 있는지 모 르니 화살을 쏠 수 없었다.

    “키키엑! 키에엑! 키에!”

    소인족 중 누가 또 소리치자 방패 뒤에서 소인족 한 놈이 머리를 슬그 머니 드는 것이 보였다. 절대 놓치 지 않는다.

    탕! 소리와 함께 뒤로 날아갔다. 웃기는 것은 머리를 든 놈이 죽었으 니 이성진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줄 놈이 없다는 것이다.

    “키키키키에겍! 키키켁!”

    소인족도 바보는 아닌지 이번에는

    두 놈이 동시에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래도 바보였다.

    타당! 두 발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두 놈 모두 뒤로 날아갔다. 두 놈은 사이가 좋았는지 바로 옆에 있는 두 놈이 머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 금 떨어진 곳에서 한 놈씩 머리를 들었다면 조금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직 강철진은 총을 쏘지 않고 있 었다. 잘하는 행동이었다. 놈들이 당 황하면서 우왕좌왕하거나 이쪽으로 달려올 때 쏴야 했다.

    4발에 4놈 죽였다. 총알은 26발 남았다. 소인족은 36놈 남았다.

    “키이 키이케어 키키기킥!”

    자, 다음은 누가 머리를 내밀 거 냐.

    너냐!

    타당! 또 두 놈이 머리를 내밀었 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놈만 제대 로 맞췄다. 한 놈은 머리를 위로, 한 놈은 머리를 옆으로 내밀었기 때 문이었다. 옆으로 머리를 내민 놈은 투구 끝에 총알이 맞았다.

    “키키킥. 키킥. 킥!”

    소인족이 방패 뒤에 숨어서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완벽하게 가려서 오기 때문 에 총을 쏠 수 없었다. 근접전을 하 려는 것 같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강철진 씨! 쏴요!”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맨 뒤에 있 던 놈이 앞으로 튕기듯 엎어졌다. 뒤에서 총알이 날아오자 소인족 중 일부가 뒤로 돌았다.

    타다당!

    정확하게 뒤를 돈 세 놈이 뒤통수 에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키이익! 키익!”

    소리 지르는 놈이 지휘관이 분명했 다. 당당하게 방패 뒤에서 나와 부 하들에게 검을 휘두르며 소리 질렀 다. 하지만 당당하다고 해서 날아오 는 총알이 봐주지 않는다.

    탕 하는 소리와 동시에 퍽 하고 머리에 총알을 맞고 날아갔다.

    지휘관 잃은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 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른 놈이 또 소리 질렀다.

    체계적으로 잘 짜인 군대가 분명했 다. 이제는 원형으로 진을 만들어 총알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원형 안에서 활을 든 놈들이 화살을 활에 걸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익숙하지 않은 능력을 사용하지 않 으려고 했다. 하지만 저 방패 틈으 로 안에 있는 화살 든 놈을 저격하 려면 망원 렌즈가 필요했다.

    이성진에게는 망원 렌즈 대신 먼 곳을 가까이 보는 능력이 있다.

    강철진이 한 발씩 쏘며 놈들이 움 직이지 못하게 하는 사이 화살 든 놈들을 가까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그래서 조금 더 뒤에서 봤으면 좋겠 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방패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보였다.

    틈이 있다. 이곳이다 싶을 때 방아 쇠를 당겼다.

    타당. 타당. 탕. 탕. 타당.

    8발이 방패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시간 차이를 두고 쏜 것 은 앞에 두 놈이 있고 그다음 한 놈, 또 한 놈 그리고 두 놈이 있기 때문이었다.

    활을 든 놈은 더 없었다. 이성진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 다가 사이좋게 죽은 두 놈이 궁병이 었다.

    “어이! 여기야!”

    궁병만 없다면 할 만했다. 이성진 이 일어섰다. 그러자 소인족은 소리 를 지르며 이성진을 향해 달렸다.

    탕 소리 한 번에 한 놈씩 쓰러졌 다. 하지만 그건 이성진이 쏘는 경 우만 그랬다.

    강철진은 첫 발을 제외하고 제대로 못 맞췄다. 소인족이 너무 뛰기 때 문이었다. 강철진이 쏘는 총알은 모 두 갑옷이나 방패에 맞고 튀었다.

    그러니 소인족은 이성진에게 더 적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성진이 쏘 면 동료가 쓰러진다. 이성진만 처리 한다면 뒤에 있는 어설픈 놈은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철컥! 철컥!

    총알이 떨어졌다. 알고 있는데도 아쉬운 것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소 인족 놈들은 30m 거리까지 다가왔 다.

    살아남은 열 놈은 총알이 떨어진

    것을 알았다. 검과 창을 높이 들고 소리 지르며 더 빠르게 달려왔다.

    20m... 15m..

    강철진은 이성진이 맞을까 봐 총을 쏘지 못했다.

    10m...

    이제 조금만 뛰면 이성진에게 도착 한다. 소인족들은 이성진이 도망가 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 면서 포기했구나 생각했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복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 복수의 욕망이 너무 잘 보였다. 더 빠르고 과격하 게 달려왔다.

    하지만 그건 소인족 그러니까 암호

    명 고블린 생각이고.

    “끝난 줄 알았지?”

    “키이이이엑?”

    6연발 리볼버를 주머니에서 꺼내 순식간에 겨눴다. 못 알아듣는 소리 지만 꼭 ‘말도 안 돼!’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K2 소총 총알이 떨어진 것은 맞 다. 하지만 6연발 리볼버는 남았다. 일부러 10m 안까지 접근하기를 기 다렸다.

    권총으로 정확한 사격을 하려면 10m 안쪽이 가장 좋았다. 그 이상 거리는 명중률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주머니에서 꺼낸 6연발

    리볼버를 본 소인족들은 당황해 대 부분 멈칫했다. 열 놈 중 세 놈만 끝까지 달려왔다.

    탕탕탕!

    당연히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 전 투 경험이 있는 놈들이었다. 당황해 서 멈추면 더 빨리 죽는다는 것을 잘 아는 세 놈이 죽었다. 남은 일곱 놈은 그제야 다시 이성진을 향해 달 렸다.

    다시 3발의 총성이 들리고 세 놈 이 쓰러졌다. 이제 남은 놈은 네 놈 이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단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왼손은 리볼버를 그대로 들고 있었다.

    이제 근접전이다.

    창을 든 두 놈, 검을 든 놈이 두 놈이다. 가장 긴 무기인 창을 먼저 찌른다. 그사이 검을 든 놈들이 옆 으로 돌아 포위하듯 진형을 만든다.

    그건 놈들 생각이고 이성진은 포위 될 생각이 없었다.

    창으로 찌른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 지 않았다. 오른쪽 창을 단검으로 쳐 내면서 앞으로 뛰었다. 왼쪽 창 이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쳐 지 나갔다.

    왼쪽에 있는 놈에게 리볼버를 겨눴 다. 그러자 방패 뒤로 머리를 숙였 다. 총알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 속

    임수가 통했다.

    다시 오른쪽 놈이 창을 뒤로 빼 이성진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당황했다. 자신들은 세 발자국 이상 뛰어야 하는 거리를 이 성진은 한 발자국만 뛰어서 눈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이 엑!”

    비명을 지르며 뒤로 빠지려 했지만 늦었다. 얼굴에 단검이 박혔다가 뽑 혔다.

    이성진은 단검을 뽑는 힘을 이용해 빙그르르 돌며 방패 뒤에 숨은 놈의 뒤통수 목 부근에 다시 단검을 꽂았 다.

    “크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놈을 확인하면서 단검을 뽑아 그대 로 굴렀다. 그러자 이성진이 있던 자리에 검이 떨어졌다. 남은 두 놈 이 뒤에서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 다.

    두 바퀴 굴러서 벌떡 일어난 이성 진은 그대로 단검을 던졌다.

    이성진을 쫓아오던 놈들은 이성진 이 단검을 던질 줄 몰랐다. 한 놈■이 반응도 하기 전에 얼굴에 단검을 맞 았다. 그리고 단검을 꽂은 상태로 넘어졌다.

    이제 한 놈 남았다.

    마지막 놈은 이성진 앞에서 멈췄 다. 그리고 신중하게 방패와 검을 들고 자세를 낮추며 기회를 엿봤다.

    좋은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이성진 을 이길 수는 없다.

    리볼버를 올렸다. 그러자 방패를 위로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이성진은 땅을 박차고 뛰 었다. 소인족은 자기들 기준으로 거 리 계산을 한 것 같았다.

    힘차게 한 발만 뛰었더니 어느새 마지막 놈의 뒤에 가 있었다. 땅에 닿는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며 오 른발을 들어 뒷목을 가격했다.

    빠각 소리와 함께 목이 부러진 것

    같았다.

    다른 세상에서 온 놈들이라도 목이 부러지면 죽는 것은 똑같았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40명의 소 인족은 전멸했다.

    “강철진 씨는 나오지 말고 아이들 과 함께 있어요!”

    “알겠습니다!”

    강철진이 힘차게 소리쳐 응답했다. 이성진이 왜 나오지 말라고 한 것인 지 잘 알았다. 한결이와 유리에게 잔인한 장면을 보여 주지 않으려 한 것을.

    해일에 죽은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보는 것과 총으로 머리가 날아가고

    피를 흘리며 죽은 사람을 보는 것은 다르다.

    소인족 역시 얼굴이 못생긴 것과 키와 덩치가 작다는 것을 제외하고 는 붉은색 피를 흘리는 인간과 똑같 았다.

    단검을 회수하고 소인족 시체를 뒤 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가죽으로 된 주머니 2개씩은 다 가 지고 있었다. 하나는 물주머니였다. 다른 하나는 횐색 가루였다.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먹어보니 밀 가루 같기도 하고 쌀가루 같기도 했 다. 최소한의 물과 식량은 들고 다 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긴 대롱과 침통도 찾아냈다. 딱 봐도 입에 대고 쏘는 용도였다.

    “아프리카 원주민이냐.”

    갑옷만 벗겨 놓고 검과 방패만 없 다면 아프리카 원주민이라고 생각해 도 될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도 소인족이 있다. 소인 족이라고 얕보다가 큰일 난다. 작은 몸집을 이용해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숨어 있다가 기습하면 꽤 골 치 아팠다.

    더는 찾을 것도 없고 정보가 될 만한 것도 없었다. 소인족에게 갑옷 을 벗겼다. 5명 정도의 것을 모아

    방패와 검까지 챙긴 다음 방패에 얹 어 질질 끌고 갔다.

    “고생했어요!”

    “네. 강철진 씨도 잘하셨습니다.”

    사실 저 정도 사격 실력 가진 강 철진에게 등을 맡기기는 힘들다. 하 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강철진이 뒤에서 사격한 것 때문에 소인족이 당황했다.

    아이들을 살펴봤다. 유리는 귀를 막고 있었다. 한결이는 유리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저기……. 그런데 그건 왜?”

    강철진은 이성진이 왜 갑옷은 물론 검과 방패까지 챙겨 왔는지 궁금했

    다.

    “총알 몇 발 남았나요?”

    “아!”

    강철진은 총알이 없으니 검과 방패 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 다. 그리고 총알이 몇 발 남았는지 세어 보지 않아서 몰랐다.

    강철진이 탄창을 빼서 보려는 데 이성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3발 남았습니다.”

    “3발이요?”

    강철진은 이성진의 말에 설마 하며 탄창을 뺐다. 탄창에는 2발만 보였 다.

    “2발인데요?”

    “1발은 장전되어 있으니까요. 안전 장치 채우세요.”

    “아!”

    강철진은 얼굴이 붉어졌다. 군인이 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 었다. 사격이 끝나면 총 옆에 단추 비슷한 것을 돌려서 안전에 놔야 했 다.

    탄창을 다시 끼우고 총이 발사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하면서 이성진에 게 다시 물었다.

    “이성진 씨…….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궁금해서 묻는 말투가 아니었다.

    “뭐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묻는 거죠?”

    “마치 전투를 즐기는 것같이 보여 서요.”

    강철진이 이성진이 소인족과 전투 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이다. 생 명 죽이는 것을 즐긴다면 위험하다 고 생각했다.

    강철진의 말에 이성진은 SAS 특수 부대 신병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대 부분 같은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많은 작전에서 살아남았 을 때 이성진을 닮을 수밖에 없었 다.

    “돌려서 말하지 말고 죽이는 것을

    즐기냐고 묻는 것 아닌가요?”

    강철진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성진의 눈빛과 박력 때문 이었다.

    “시간 없지만 간단하게 말하죠. 그 냥 죽이라고 한다면 못 죽입니다. 죽이는 것을 즐겁게 생각한다면 미 친놈이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강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 소인족 한 명을 죽였을 때는 몰 랐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지금은 살아 있는 생명을 죽였다는 것 때문 에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생명으로 안 봅니다. 내가 즐거워 보였다면 그건 생명으로 안 보기 위 해 안간힘을 쓰는 겁니다. 아니면 벌써 미쳤어요. 난 작전에 들어가면 목표만 생각합니다. 그 목표를 달성 하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한다면 즐겁 게 죽일 수 있습니다.”

    강철진은 알까? 평소에 혼자 있으 면 바퀴벌레 한 마리도 쉽게 못 죽 인다. 집 안에 무당벌레나 벌 같은 것이 들어오면 창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게 한다.

    “지금 내 목표는 하나입니다. 서울 에 있는 내 딸 아라를 찾는 것! 그 것이 아니었다면 강철진 씨도 못 만

    났습니다. 당신도 군인이니 잘 알 겁니다.”

    강철진은 머리로 알고 있던 것을 몸으로 알게 됐다. 작전 정보 장교 이니 현장이 아닌 작전실에서 현장 대원들에게 목표를 위해 목숨을 버 리라고 강요할 뿐이었다.

    “지금 강철진 씨 당신 목표는 군 기지로 가서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 하는 것이 아닌가요?”

    “맞……맞습니다.”

    “그럼 그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하 지 마세요. 그러다가 죽으면 아이들 을 챙길 사람은 없습니다. 나요? 나 도 믿지 마세요. 군 기지에서 필요

    한 것 얻어서 바로 바다를 건너갈 수도 있습니다.”

    강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할 사이에 어떻게 하면 군 기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지 그거나 고민하세요.”

    “네•…"

    강철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강철진에게 이성진이 소인족 갑옷을 던졌다.

    “억. 이건 왜?”

    “아이들에게 입혀요.”

    “아이들이요?”

    “저놈들 원거리 무기 있잖아요!”

    “아! 네. 네.”

    강철진은 이성진이 말은 저렇게 해 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한 것도 확실하게 알았다.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미친놈•이라 면 이렇게 배려하며 챙기지 않는다. 강철진은 이성진이 던진 소인족 갑 옷을 한결이에 몸에 대봤다.

    “딱 맞네요.”

    어색하게 이성진에게 말했다. 하지 만 이성진은 대답하지 않고 남은 소 인족 갑옷을 분해했다.

    이성진이 갑옷을 분해하는 것을 보 고 강철진은 소인족 갑옷을 한결이

    에게 입혔다. 유리에게는 약간 컸다. 하지만 조절할 수 있는 끈이 달려 있었다. 약간 덜렁거리기는 했다. 하 지만 머리만 맞지 않으면 충분히 방 어할 수 있다.

    “자. 이것 차요!”

    “네?”

    한결이와 유리에게 갑옷을 다 입히 자 이성진이 또 갑옷을 던졌다.

    “총알도 없는데 우리도 입어야죠.” 이성진이 던져 준 갑옷은 소인족 갑옷을 분해해 이성진과 강철진의 몸에 맞게 고친 것이었다.

    팔에 차는 갑옷은 소인족 다리 부 근 갑옷을 그냥 사용했다. 다리는 2

    개에서 3개를 연결했다. 몸통 역시 2개 정도 연결하니 몸에 딱 맞았다.

    “투구까지 할 시간은 없으니 머리 만 조심하고 대신 방패 들어요.”

    “네.”

    이성진의 말대로 방패를 들었다. 그러자 이성진이 검도 줬다.

    총알이 없는 총은 그냥 몽둥이일 뿐이다. 강철진은 또 소인족을 만나 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 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나도 질문 하나 합시다.”

    “네. 말하세요.”

    “이놈들 분명히 총에 관해 알고 있 었어요. 단순히 갑옷이 튼튼하다든

    가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총성이 들리자 방패 뒤로 머리를 감춘 것이 그 증거였다.

    “저도 이성진 씨 생각과 같습니 다.”

    “다른 세계에도 총이 있는 것 같지 는 않은데 어떻게 알았을까요?”

    다른 세계에도 총이 있다면 소인족 도 총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니면 양이 부족하든지.

    그래서 많은 정보를 가진 강철진에 게 묻고 있었다.

    “저도 그건 잘……

    “그래요? 그럼 한 가지 더.”

    “네.”

    “이놈들 중 총을 경험해 본 놈들은 몇 놈 안 돼요. 나머지는 신병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6연발 리볼버를 꺼냈을 때 멈칫한 놈들은 신병이 분명했다. 제대로 싸 워 본 적이 없었다.

    “네.”

    강철진이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것 으로 봐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더는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 낭비 였다.

    “군 기지 가서 통신 가능해지기를 바라야겠군요.”

    “네•…”

    강철진도 이성진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막상 다른 세계의 침 공이 일어나자 기존에 알고 있던 것 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이제 출발하죠.”

    벌써 20분이나 더 지체했다. 총소 리가 났으니 소인족이 더 몰려올지 도 몰랐다.

    “네. 한결아! 유리야!”

    한결이와 유리가 갑옷 때문에 불편 한 것을 참으면서 강철진에게 다가 왔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많이 들 리는 것을 봐서는 몸에 딱 안 맞는 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똘이야!”

    “컹!”

    “그래. 아이들 잘 지켰다. 가자.”

    똘이를 한번 쓰다듬어 줬다. 그러 자 똘이는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또 앞장섰다.

    만약 소인족이 또 나타난다면 똘이 가 먼저 알아차릴 것이다. 냄새를 확실하게 기억했다.

    조심스럽게 1시간 정도를 걸었을 때 총소리가 들렸다. 한두 명이 쏘 는 것이 아니었다.

    “강철진 씨! 여기서 기다리세요.”

    “네.”

    “똘이는 아이들 지켜 줘.”

    “컹!”

    몸을 낮추고 낮은 언덕 도로를 향 해 빠르게 달렸다. 낮은 언덕을 넘 으면 바로 거제시가 보인다. 낮은 언덕 근처에서 조용히 최대한 소리 가 나지 않게 움직였다.

    낮은 언덕에서 머리를 살짝 들었을 때 소인족이 추가로 왜 오지 않았는 지 알 수 있었다.

    소인족은 지금 거제시를 공격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