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독고준은 아직도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었다. 물론 쓰고 나서 올리기 전, 서강림의 검열을 받고 폐기 처분되기는 했지만.
독고준이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는 내 창작이고. 나는 너랑 신수아의 팬이란 말이야. 눈앞에서 직접 보고 싶다고!”
“……넌 정말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왜 우리 연애사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
“나 말고 다른 사람도 그럴걸? 장태헌. 너도 그렇지?”
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장태헌이 어깨를 움찔했다. 그가 시선을 피하며 진땀을 흘렸다.
“아니, 뭐……. 좀 궁금은 한데……. 나는 이 자식 같은 음흉한 목적이 아니라, 두 사람이 요즘 그…… 사이가 서먹해진 것 같아서.”
“우리가?”
“응. 형 요즘 혼자 다니잖아. 문주님이랑 같이 있는 걸 잘 못 본 것 같아서…….”
그 말에 서강림은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사정이 좀 있었어서…….”
“흐음? 소홀했다는 건 본인도 인정하나보네.”
독고준이 흥미로운 눈빛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강림의 앞에 술을 한 잔 따라주며 말을 이어 갔다.
“자자, 무슨 고민이 있어? 나한테 말해봐.”
“세상에서 제일 고민 말하기 싫은 사람이 너야, 독고준.”
“강림이 형, 그러면 나한테 말해줘!”
장태헌이 독고준을 밀어내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서강림은 잠시 망설이다가 술을 홀짝였다.
“……개인적인 사정이어서. 아무튼 신수아 씨랑 권태기라거나 그런 건 아니야.”
“흐음? 그래? 그러면 다행이지만 네가 말도 없이 단독 행동 자주 하면 신수아 씨가 서운해할걸?”
독고준도 지지 않고 장태헌을 밀어내며 말했다. 두 사람이 힘싸움을 하는 사이 서강림은 퍼뜩 걱정이 되는 얼굴이 되었다.
“신수아 씨가 서운해해……?”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최근에 데이트 한 거, 오래되었잖아?”
독고준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데이트를 한 지 오래된 참이었다. 2주 전에 같이 집에서 요리를 해먹은 게 다였으니까.
그 뒤로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서강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신수아 씨가 나한테 서운해하면 어떡하지?”
갑자기 서강림이 불안한 눈초리가 되었다. 분위기가 바닥을 파기 시작하자 독고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얘 또 땅굴 파네. 자학할 시간에 저기나 봐봐.”
독고준이 어딘가를 가리키자, 서강림이 그 방향을 돌아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거기에는 신수아가 있었다. 호랑이 귀와 꼬리를 단 채, 밝게 웃고 있는 신수아가.
한 손에는 분홍색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라 서강림이 한참이나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신수아가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 강림 씨. 저 좀 이상하죠? 이런 건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뇨. 진짜 진짜 잘 어울립니다.”
서강림이 다급히 부정했다. 호랑이 꼬리와 귀를 단 신수아를 보니, 이상한 머리띠를 씌운 독고준이 이제는 제법 고마워질 지경이었다.
그 옆에서 토끼 귀를 하고 있던 유하랑이 폴짝 뛰며 말했다.
“다들 놀러오니 좋구나. 종종 이렇게 신역으로 나들이를 와도 좋을 것 같아. 안 그래요, 문주님?”
“그러게. 일이 바쁘니 자주는 못 오지만. 그래도 뭔가 문제 생기면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좋네.”
유하랑의 말에 신수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신역은 원하기만 하면 바로 현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말에 유하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주님은 너무 일 중독이야. 적당히 쉬엄쉬엄해야지!”
“잘 쉬고 있는걸?”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여기서라도 푹 쉬도록 하세요. 문주님.”
그렇게 다섯 명은 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앉아 축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수아가 가볍게 술을 마시며 말했다.
“이렇게 놀러 오니 좋네요.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고.”
“변장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올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신수아와 서강림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머지 멤버들은 서로 예리하게 눈빛을 나누고 있었다.
다같이 노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해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모인 것.
장태헌이 유하랑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보니 경품을 주는 행사가 있던데, 가보자꾸나. 서강림. 문주님도 같이 가요.”
“우리 셋이?”
“응. 저 둘은 자리 지키라고 하고.”
서강림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랑은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서 어린아이와 같았으므로, 그녀에게는 유해지는 면이 있었다.
서강림과 신수아, 유하랑이 축제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노점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와! 2천 점을 넘겼네!”
“이야, 저 말 녀석도 제법 힘이 세 보이는걸?”
시끌벅적한 곳으로 다가가자, 한 말 수인이 커다란 망치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지정된 바닥을 쾅 내리친 순간, 숫자판의 숫자가 파라락 올라가기 시작했다.
[2021점!]
2천 점을 넘기자 말 수인은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그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자, 여기 2천 점 넘겼으니 경품입니다. 감사합니다!”
“재도전하겠어!”
“네네, 그러면 요금은 아까와 똑같이…….”
보아하니 충격 수치만큼 점수가 나오고, 그 점수에 따라 경품을 교환해주는 구조 같았다.
가판대 위에는 여러 물건이 있었다. 신수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자, 유하랑이 슬쩍 바람을 잡았다.
“문주님. 문주님은 저 중에서 뭘 갖고 싶으세요?”
“나? 글쎄. 나는……. 저 호랑이 인형?”
이 기계는 지정 점수를 넘으면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구조였는데, 특수한 조건 하에 다른 경품도 받을 수 있었다.
1111, 3333 같이 정확한 점수를 낼 경우에도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서강림이 신수아의 말을 듣더니 슬쩍 보니 호랑이 인형의 목표치를 보았다. 9999라는 목표치였다. 그가 참가자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나온 최고 점수는 오천 점인가?’
1만 점까지 도달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9999점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뺄 생각은 없었다. 서강림이 앞으로 나가며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한 판 하겠습니다.”
“예, 예. 저기 망치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시죠.”
가게 주인은 서강림을 보고 빙긋 웃었다. 아무래도 보아하니 쥐 수인 같았는데, 쥐 수인들은 힘이 약한 편이었다.
가장 저렴한 경품을 얻으려면 천 점은 넘겨야 하는데,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꽁으로 돈을 벌 생각에 가게 주인이 히죽 웃던 그때, 서강림이 망치를 들고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쾅!
마치 무언가가 박살 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기계가 벌벌 떨릴 정도였다. 가게 주인이 놀라 숫자판을 보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경악을 하고 있었다.
“뭐, 뭐야?! 만 점이 넘었다고?”
“저게 넘을 수가 있는 거야?”
숫자판에 나온 기록은 11200점이었다. 서강림은 그것을 보고는 불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이 되었다.
‘힘을 빼고 쳤는데, 저 정도네.’
일단 만점을 넘겨서 가장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강림의 목표는 호랑이 인형이었다.
‘다시 한번, 조금 더 집중해서…….’
한 번 해보니 미묘한 힘의 차이를 알 것 같았다. 서강림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조금 더 신중하게 망치를 내리쳤다.
-쾅!
아까와 거의 흡사한 수준의 진동이 전해져 왔다. 다들 긴장해서 바라보고 있던 그때, 숫자가 미친 듯이 올라가더니 9천 점을 넘고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와, 정확히 9999점이야!”
“저걸 노리고 한 거야?”
“대체 얼마나 감각이 예민하면……!”
사람들이 감탄하는 사이, 가게 주인은 울상이 되어 서강림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쥐 수인이라 기본 경품도 타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서강림은 커다란 호랑이 인형을 신수아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녀가 얼굴을 조금 붉히고는 고맙다는 듯이 웃었다.
“고마워요, 강림 씨. 이거 귀여워서 갖고 싶었는데…… 덕분에 얻었네요.”
“마음에 들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상은 하랑이한테 줄까 하는데……. 응?”
주위를 돌아보니 유하랑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신수아가 인형을 꼭 안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리로 돌아간 걸까요?”
“한 번 가보죠.”
두 사람은 원래 자리를 맡았던 곳으로 돌아가 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음식만 남아 있을 뿐, 독고준과 장태헌도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것은 한 장의 쪽지뿐.
그것을 집어 읽어보자, 독고준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
[우린 돌아가서 나머지 일 처리하고 있을게! 일 걱정 말고 재미있게 놀고 와.]
애초에 그들은 서강림과 신수아를 단둘이 데이트에 보내기 위해, 신역까지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일을 걱정하는 신수아가 빨리 돌아가고 싶어할 것을 알기에 먼저 업무로 복귀를 했다.
신수아와 서강림이 멍하게 그것을 보다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독고준이면 몰라도 장태헌이랑 유하랑까지 이럴 줄은 몰랐네요.”
“음, 그래도 고마운걸요?”
신수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희 요즘 데이트 못 했잖아요. 강림 씨도 바빠 보였고. 이렇게 단둘이 있는 거 오랜만이네요.”
“……네. 그렇네요.”
“뭔가 바쁜 일이 있었나요? 저…….”
그녀가 말을 우물쭈물거리다가, 서강림의 옷소매를 조심스레 잡고 말했다.
“조금 외로웠어요…….”
그 말에 서강림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그가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아니, 그게 사실 뭘 좀 얻으려고…… 사냥을 다니느라 좀 바빴습니다.”
“같이 사냥하면 안 되나요?”
“개인적인 일이었어서요. 그렇지만 이제 다 끝났으니…….”
서강림이 쩔쩔매며 신수아에게 변명을 하던 그때.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수아! 여기 있었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호랑이 한 마리가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