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서강림이 나서겠다고 하자, 안나비는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그녀가 윤봄과 윤겨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면 서강림 헌터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추가 인력으로는…….”
“아뇨. 혼자로도 충분합니다.”
어떤 마경일지는 모르지만, 굳이 인원이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서강림은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윤겨울 역시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혹시 모르니 같이 가도 되는데?”
“아니. 차사들 인원 부족하잖아. 나 혼자 다녀올게.”
“네! 저희가 일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서강림은 고개를 끄덕인 뒤, 창문을 통해 건물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출근 시각이라 도로가 혼잡한 것이 보였다.
이 상태라면 마경까지 가는 데에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었지만 서강림에게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럼 다녀올게.”
그는 곧바로 창문을 연 뒤, 그대로 뛰어내렸다. 아니, 달려나갔다.
평소에는 조금 느리더라도 차를 타곤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는 창틀을 박차고 크게 뛰어, 다음 건물의 옥상까지 뛰어넘었다. 중간 중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은둔자’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그는 순식간에 사거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저기가 마경인가.’
금줄이 폴리스 라인처럼 쳐져 있는 가운데, 문 하나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서강림이 옥상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리자 근처에 있던 차사들이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헉, 서강림 차사……!”
“증원 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바로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내 받을 사항이 있습니까?”
“특별히 없습니다만,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홀로 온 서강림을 보고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그러나 서강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그러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서강림은 망설임 없이 마경의 문을 열었다. 아래로 발을 뻗은 순간 기분 나쁜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주위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처럼 바뀌는 풍경 속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건 향냄새였다.
서강림은 장례식장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던 터라, 원래부터 조문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대체 누구의 장례식인가 싶어 서강림은 근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영정 사진을 본 순간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쯧쯧. 젊은 사람들이 불쌍하게도 됐지. 교통사고라니…….]
사람들이 혀를 차는 가운데 서강림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정 사진은 바로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그가 가장 후회했고,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순간.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바로 어린 자신이었다.
[내가, 나 때문에…….]
어린 서강림은 넋이 나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강림이 홀린 듯이 어린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어린 서강림은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혼잣말을 되뇌고 있었다.
[내가, 신내림을 받았더라면 엄마랑 아빠는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내가 선택을 잘 했더라면…….]
그 말을 듣는 동안 서강림은 몸 안의 피가 마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자신은 그런 후회를 했었다. 신내림을 그냥 받을걸. 왜 그걸 굳이 거절해서 부모님을 죽게 만들었을까.
그 일을 수없이 후회했고,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길 바랐다. 그때, 어린 서강림이 고개를 들어 성장한 자신을 바라보았다.
[후회하지?]
후회. 그 단어가 가슴에 칼날처럼 박혔다.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어린 서강림이 말했다.
[돌아갈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그 말은 너무도 유혹적이고 달콤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살릴 수 있다면?
그때, 그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하나 떠올랐다.
[회귀하시겠습니까?]
회귀. 이미 그는 한 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서강림은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시스템창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어린 자신을, 과거를 뒤로한 채 장례식장을 나서려했다.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림아, 강림아.]
돌아보니 그곳에는 차에 깔려 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의 기억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가 손을 뻗은 채, 애절하게 서강림을 부르고 있었다.
[강림아, 살려줘. 엄마 너무 아파. 살고 싶어. 살려줘, 강림아…….]
그 목소리가, 그 말들이 서강림의 폐부를 깊게 찌르고 들어왔다. 늘 보고 싶었던 어머니였지만 이런 모습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울먹이는 어조로 말했다.
[과거로 되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해주렴. 신을 받아들이면 우린 죽지 않을 거야.]
“…….”
[아빠도, 엄마도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런 미래를 원하지 않니?]
그래, 그런 미래를 원했다. 아무도 죽지 않은 세계. 모두가 곁에 남아 있는 세계.
그리고 그런 서강림을 유혹하듯 시스템창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회귀하시겠습니까?]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서강림은 어머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서글픈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알아? 나, 한때 부모님을 불러내려고 했었어.”
그는 죽은 부모님을 다시 만나려고 했다. 그에게는 강신술이 있었으니까. 가짜 육체에 부모님을 정착시켜, 그들을 이 속세로 불러 들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신술을 사용해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서강림의 부름에 응하지조차 않았다. 그것을 보고 서화경이 말했다.
[강림아. 나도 네 부모니까 안다. 두 사람 다 널 만나고 싶겠지만, 참고 있을 거라는 걸.]
[……어째서죠? 돌아와서 제 곁에 있어 주실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산 사람은 산 사람과 살아가야 하니까. 그걸 아니까, 너희 부모님이 강신을 거부하는 것이란다.]
그런 부모님이 살기 위해, 그에게 회귀를 종용한다?
게다가 지금 눈앞의 어머니는 숙명을 신내림 받으라고 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서강림은 부모님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회귀를 해서 신내림을 받아봐야 숙명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 뻔하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내 어머니가 아니야. 난 회귀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육성으로 낸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지며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질척이는 타르 같은 형태로 모습을 바꾼 마수가 기괴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후회하잖아! 돌아가고 싶잖아!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 세계에서……!]
-촤악!
서강림이 검을 휘두른 순간, 마수는 반토막이 나서 철퍽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 사체를 물끄러미 보는 서강림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하나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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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회귀자의 꿈
[등급] 귀일품(鬼一品)
[설명] 대상이 가장 후회하던 순간을 보여주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며 유혹하는 마수.
그 꿈에서 영원히 사는 것 또한 행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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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신을 본 순간부터, 저것이 마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모습으로 유혹을 하던 그때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창이 없었어도, 정말로 회귀할 수 있었어도 서강림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현재를 얼마나 힘겹게 쟁취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완벽하지 않은 현재라 한들, 과거로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회귀는 한 번으로 족했다.
마수가 스러지자 주변의 풍경도 변하기 시작했다. 황폐한 토굴 한가운데 서 있던 서강림이 발길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야, 잡아, 본때를 보여줘!]
어린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어린 서강림을 골목 구석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늘씬하게 얻어맞은 듯, 얼굴이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대장으로 보이는 아이가 서강림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 새끼, 독하기도 하네. 잘못했다는 소리 한번 안 하고.]
어린 서강림은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멍하게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답지 않은 눈빛이었다.
이미 그에게는 불행이 일상이었고 삶이었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길을 가다가 뺨을 맞더라도 불만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괴롭힘 정도야 아무 상관없었다. 때문에 구해 달라 소리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들아, 내 동생한테서 손 떼!”
어린 강도현이 달려와 대장인 아이에게 주먹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아이가 당황했다.
한 대 얻어맞긴 했지만 크게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대장인 아이가 바닥을 나뒹굴며 소리쳤다.
[저 새끼 혼자야! 잡아!]
그래 봐야 애들 싸움, 쪽수로 밀어붙이면 이길 상대였다. 강도현이 싸움을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얻어맞기 일쑤인 강도현이 잽싸게 공격을 피하더니, 그대로 아이의 명치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컥, 크억……!]
몸놀림이 마치 전문적인 선수 같았다. 이렇게 강도현이 사람을 잘 패던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이, 이 새끼 왜 이렇게 쎄?]
[원래 이렇게 강했나?]
강도현이 강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회귀자였으니까. 능력이 봉인되었다 한들, 몸으로 학습해두었던 무술 실력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잠시 후, 아이들은 모두 코피가 터져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강도현이 눈을 부릅뜬 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너희, 한 번만 더 서강림 건드리기만 해봐. 그땐 가만 안 둬.”
[으, 응……!]
“가봐. 꼴도 보기 싫으니까.”
강도현의 말에 아이들은 주춤거리다가 쏜살같이 도망을 쳤다. 서강림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게 강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일어나. 집에 가자.”
[형.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형까지 곤란에 빠질 뻔하고…….]
“왜 너 때문이야?”
[내가 신내림을 받지 않아서, 내 주위 사람한테까지 피해가 오는 거야…….]
강도현은 과거의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알고 있었다. 서강림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모른 척했고, 그에게 모진 말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는 회귀자였으니까. 강도현이 서강림을 바라보며,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냐, 강림아. 넌 신내림 같은 거 안 받아도 돼.”
그가 주먹을 꾹 쥔 채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 거, 받지 않아도 돼. 진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