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서강림은 두 사람을 조기 퇴근 시켜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윤봄과 윤겨울은 같이 식사를 못 하는 걸 아쉬워했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야간조는 부럽다는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음흉한 생각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서강림……. 탐난다. 야간조에도 오면 안되나?’
‘24시간 업무 돌리면 안 되나?’
서강림은 어쩐지 뒷목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사이, 강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강림에게 말을 붙였다.
“서강림 헌터도 고생 많았습니다. 이만 들어가시죠.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강도현은 안쪽의 휴게실로 향했다. 서강림은 퇴근하는 대신 그를 따라 들어왔다. 강도현이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를 한 잔 내리며 그를 힐끗 보았다.
“왜? 너도 커피 줘?”
“아니. 형은 퇴근 안 해?”
“난 일이 남아 있어서. 난 팀장이잖아.”
“도와줄게.”
“됐어. 너도 퇴근해라.”
강도현은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태블릿을 든 채 말했다. 그가 휴게실에 앉아 태블릿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자, 서강림이 그것을 조용히 가져가버렸다.
갑자기 태블릿을 빼앗긴 강도현이 미간을 찌푸린 채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뭐 하냐?”
“좀 쉬어. 선생님이 걱정하시더라.”
서화경이 언급되자, 강도현은 순간 움찔했다. 서강림은 팔짱을 낀 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요즘 새벽에 퇴근해서 새벽에 출근한다면서? 보호국에서 자는 일도 허다하다고 들었는데.”
“바쁜 시기니까 어쩔 수 없지. 국장 자리가 공석인만큼 팀장들이 일해야지.”
“그래도 형은 명백히 과로하고 있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어. 선생님도 보호국 소속이니, 잘 아실 테고.”
서화경은 비통의 날 이후, 보호국으로 들어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남부 지부에서 팀장직을 맡아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보호국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강도현은 현재 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아니, 무리라는 말로는 그의 과로를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비호문에 협조 요청하는 것도 처음엔 꺼려 했다면서?”
“우리끼리 처리 못 해서 타 문파에 도움 요청하는 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으니까.”
“보호국은 원래 타 문파랑 협력해서 일하기도 했잖아? 무리할 필요 없다고.”
강도현은 그 말을 들으며 태블릿을 받아갔다. 어쩐지 서강림을 보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밤에 꾼 꿈 때문이었다. 이틀 전, 어린 시절 서강림과 처음 마주했을 때와 이어지는 꿈이었다.
서강림이 입양된 후, 두 사람은 몇 년간 둘도 없는 단짝처럼 지냈었다.
무당 아들이라고 시비가 붙어 주먹질을 한 적도 수 차례였으나, 그때마다 서강림이 달려와 같이 싸워주곤 했다.
[우리 형 때리지 마!]
[야, 무당 아들 또 왔다!]
[저 새끼도 붙잡아!]
[내 동생한테 손 떼!]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둘 다 박살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서화경은 아들 둘이 얻어터진 것을 보고는 곧바로 상대방 집에 찾아가 어떻게든 사과를 받아내곤 했었다.
그리고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서강림과 강도현의 얼굴에 약을 발라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너희가 따돌림을 당한다니…….]
[괜찮아요, 어머니. 전 어머니 아들인 게 좋아요. 강림이랑 같이 싸우니 싸울 법도 하고요.]
[……그나저나 어머니. 싸운 거로 혼 안내세요?]
서강림은 혼이 날 줄 알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 서강림을 보며 서화경이 너털웃음을 쳤다.
[형이 맞고 있어서 도우러 간 거잖아? 도현이도 강림이가 맞길래 싸운 거고. 서로 지켜주려고 싸웠는데 내가 왜 혼내겠니?]
[하지만…….]
[수습은 내가 할 테니, 혹여라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또 싸워도 돼.]
서화경은 오히려 잘 했다며, 그날 저녁은 외식을 했다. 그때까지는 행복했었는데.
‘그랬는데, 내가 서강림에게 왜 그랬을까.’
우애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들고, 강도현이 본격적으로 무당이 되기 위한 수업을 듣기 시작한 뒤였다.
강도현은 신내림을 받으려 했지만 그에게는 신이 찾아와주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를 찾는 신은 없었다.
노력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경지. 무당이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어머니를 존경했고 그 뒤를 따르고 싶었다.
‘차라리 나랑 서강림의 입장이 반대였으면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영감도, 신기도 없는 강도현과 달리 서강림은 그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신기가 좋아, 서화경이 누름굿까지 해줘야만 했다.
강도현은 그런 서강림에게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누구는 신내림을 받고자 밤새도록 기도를 올리는데, 서강림은 신내림을 거부하고 있었다. 강도현은 그런 서강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강림, 너는 왜 신내림을 안 받아? 그토록 강한 신이 널 원하잖아!]
[형, 난 이런 거 받고 싶지 않아. 이 신이 날 떠나갔으면 좋겠어…….]
[배부른 소리 작작해! 게다가 네가 신내림을 안 받아서 주위에도 피해가 일어난다고!]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그 신은 당사자, 그리고 주위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치곤 한다.
서강림과 말이라도 한 번 나눈 아이들은 모두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겪었다. 그 이후 서강림은 더더욱 고립되고 말았다.
가족 역시 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다행히 서화경은 강한 무당이라 큰 일은 없었지만, 불운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에도 교통사고를 당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흔한 일이라고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강도현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서강림의 탓처럼 보였다.
[네가 신내림을 안 받아서 너희 부모님도 돌아가신 거잖아!]
결국, 그런 소리까지 내뱉었다.
그 이후 형제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그 말을 뱉은 것은 강도현의 마음에 큰 짐으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었다.
서강림과 두루뭉술하게 화해를 하긴 했지만, 아직 그때의 일을 사과하진 못했다. 감히 그때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서강림에게 그런 폭언을 했고, 외면을 해왔는데. 이제와서 힘들다고 서강림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비호문 역시 상황이 바쁜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 뻔뻔하게 비호문에 도움을 요청했다.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서강림을 비호문으로 되돌려 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가 태블릿을 다시 가져간 뒤,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일단 너도 퇴근해. 오늘 고생 많았다. 네 덕분에 한결 일이 많이 줄었어.”
고맙다는 말로 그는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었다. 서강림이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알겠어. 대신 내일은 형도 정시 퇴근해. 다같이 저녁이나 먹자.”
“알겠어. 이만 들어가 봐.”
서강림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떠나갔다. 홀로 휴게실에 남게 된 강도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서강림에게 자꾸 도움만 받네. 형이 되어서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지.’
그래도 덕분에 일이 많이 줄었다. 그가 앞으로 출근하기로 한 날은 일주일. 이 속도라면 일주일간 다들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강도현은 제외하고.
‘공문을 비롯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야간 조에게 지시할 내용들도 있고…….’
최소한 야간 조에게 지시 사항은 전달한 뒤에야 퇴근을 할 수 있을 듯싶었다.
그렇게 그는 사무실로 돌아와 또다시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야간조 차사들이 작게 소곤거렸다.
“오늘도 팀장님은 야근이셔? 일단 야간조에 전달 사항을 다 주셨으니 가셔도 될 텐데…….”
“자꾸 무리하시네. 다른 팀 팀장들은 퇴근했을 텐데.”
같은 차사들마저 걱정할 정도의 업무량이었다. 그러나 강도현은 내색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12시가 지날 무렵, 급한 서류는 어느 정도 처리가 끝났다. 오늘은 이만 퇴근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강도현이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사무실 안에 날카로운 비프음이 울려 퍼졌다. 차사들이 동시에 단말기를 확인했다.
“현재 신영 사거리 부근에 마수들이 대거 발생했다고 합니다!”
역시나 오늘도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일은 다 끝났지만, 마수 발생이라는 긴급 사태를 앞두고 퇴근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탈을 집어 들며 말했다.
“바로 출동하도록 하지.”
“팀장님, 팀장님도 가시게요?”
“그래.”
다들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야간에 발생한 마수는 빠르게 처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대기 인원을 남겨둔 채, 강도현은 차사들과 함께 번화가의 사거리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 * *
“아악, 마수다!”
“젠장, 보호국은 언제 오는 거야!”
마경에서 새어나온 마수들로 인해 도로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자정인 시각이라 인적은 드물었지만, 아직까지 활보하고 있는 시민들이 있었다.
사람 크기의 도마뱀 같은 것들이 빠져나와 공격하는 사이, 사람들은 다급히 건물 내부나 차량 안으로 몸을 피하려 했다.
“헉, 커흑……!”
취객 중 한 명이 벌벌 떨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취기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도마뱀 형태의 마수 한 마리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취객에게 다가왔다.
아가리를 쩍 벌리자 그 안에 있는 수십 개의 이빨이 보였다. 노란색 침이 엉겨 붙어 있는 입안을 보자 취객은 사색이 되었다.
이제 죽었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은 그때. 퍽 소리와 함께 마수가 단말마를 내질렀다.
“시민 보호국입니다! 모두 뒤로 물러나십시오!”
눈을 떠보자, 검은 수트에 탈을 쓴 차사들이 달려와 마수들을 삽시간에 처리하기 시작했다.
강도현이 빠르게 마수들을 향해 부적을 날리며, 일반 차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수들은 내가 제압하고 있을 테니, 나머지 인원들은 부상자 확인과 시민 대피를 우선시하도록 해.”
“네, 팀장님!”
평소라면 마수를 퇴치하는 데에 인원을 더 차출했겠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부상자들이 많았다.
우선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차사들의 역할이었다.
강도현이 달려드는 마수들을 검으로 베어내며, 주위 상황을 빠르게 훑었다.
‘마경의 위치가 보이지 않는군.’
마수들이 새어 나오는 마경을 찾아, 그곳을 공략하고 막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수들과 사람들로 인해 지옥도가 펼쳐져 있는 터라, 마경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만 해도 마수들이 강도현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키에엑!
도마뱀 형태의 마수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으나, 강도현의 검 앞에서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바닥에 마수의 피와 살점이 튀었다. 마수들을 퇴치하며 주위를 살피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개체 자체는 강하지 않은데, 수가 너무 많군.’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적이었다. 강도현이 마수들을 베어내가며, 빠르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마수들을 피해가며, 신기 같은 몸놀림으로 바닥에 부적을 네 장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수들을 유혹하는 아이템을 스스로에게 사용했다. 그러자 피냄새라도 맡은 것처럼, 마수들의 눈이 휙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도현이 마수들을 내려다보며 싸늘한 눈으로 말했다.
“자, 이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