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외전. 시민 보호국의 일상
깃대에 걸린 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깃대가 세워진 곳은 평범한 단독 주택이었다.
그리고 주택의 대문 앞에 한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이제 초등학생 저학년 쯤 되었을까 싶은 아이였다.
긴 머리를 하나로 땋아 내린 남자아이는 어딘가 모르게 부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였다. 지루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가 혼자 축구공을 툭툭 차며 홀로 장난을 치고 있던 중, 골목 어귀에서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아, 축구할 사람이 한 명 모자라는데. 어디서 구하지?]
아이 중 하나가 불만스럽게 툴툴댔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근처를 둘러보다 저들끼리 작게 속삭였다.
[어? 저기 있는 거 강도현 아냐? 혼자 있네.]
[쟤도 부를까? 한 명 모자라잖아.]
[맞아. 그리고 강도현 쟤 축구 잘해. 마침 축구공도 갖고 있네.]
어린 강도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못 들은 척하고는 있지만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 채였다.
강도현이 다시 공을 차던 그때, 한 아이가 강도현을 향해 소리쳤다.
[야, 강도현! 우리 축구할 건데 같이하러 갈래?]
툭툭 튀던 공이 멈추고, 강도현이 슬쩍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무심한 척하고 있었지만 기분이 들뜨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 부족해?]
[응. 너만 오면 바로 할 수 있어.]
[그럼 갈게.]
강도현은 태연한 척 아이들에게 다가갔지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도현의 얼굴에서 미소는 곧 사라지고 말았다. 운동장에 다다랐을 때, 한 아이가 강도현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강도현 쟤는 왜 데려왔어?]
[사람 모자라서 한 명 데려오라며. 쟤 수업 때 보니까 축구도 잘하던데?]
[등신아! 그렇다고 무당 아들을 데리고 오냐?]
무당 아들이라는 말에 아이들 중 몇몇은 낯빛이 어두워졌고, 몇몇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한 아이가 물었다.
[무당 아들이 왜?]
[무당 자식이랑 놀면 우리도 재수 없어져. 귀신이 따라붙는다고! 쟤랑 놀면 안 되는 거 몰라?]
귀신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겁이 질렸다. 강도현을 데리고 온 아이의 표정이 특히 좋지 않았다.
멀찍이 서 있던 강도현은 언제 축구를 시작하나, 축구공을 든 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 강도현을 데려오자고 말한 아이가 등이 떠밀려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아이가 머뭇거리다가 강도현에게 말했다.
[……어, 야. 사람 안 모자라대. 너 가야겠다.]
사람 수를 세어 보니 강도현이 빠지면 한 명 부족했다.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익숙했다.
또 억지로 날 빼려는 거구나. 그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강도현이 울컥해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는 분명히 모자라다고 했잖아.]
[이따가 한 명 더 온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내가 무당 아들이라서 그래?]
그 말에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었다. 아이들은 눈을 피하거나, 강도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린 강도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무당 아들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아직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로 저주라도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강도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저 이글이글 타는 듯한 눈으로 아이들을 노려볼 뿐. 아이들이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가, 되레 화를 터트렸다.
[아, 재수 없게 있지 말고 빨리 가라고!]
[얼른 가서 귀신이랑 놀아!]
강도현은 작은 주먹을 꾹 쥔 채, 결국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갈 곳은 깃발이 달려 있는 무당집밖에 없었다.
정말로 귀신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덜 외로울 테니까. 그러나 강도현에게는 그런 능력이 조금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강도현은 외톨이였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를 피했고 꺼림칙하게 여겼다.
[쯧쯧, 하필 무당 자식으로 태어나서 애가 안타깝게 되었어.]
그가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강도현은 자신의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에 조금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서화경을 흉흉한 존재처럼 여겼지만, 강도현은 어머니를 존경했다.
가슴앓이를 하며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서화경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강도현은 그런 어머니를 존경했다. 어머니 같은 무당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당 아들이라는 호칭이 싫지는 않았지만…….
‘딱 한 명만 나랑 친구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내년에 반이 바뀌면 친구가 생길까. 중학교에 가면 그런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서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 도현이 왔니.]
어머니, 서화경이었다. 평소라면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을 강도현인데, 그녀의 옆에 있는 낯선 아이를 보고 순간 멈칫했다.
[어머니, 그 애는……?]
자기보다 키가 작은 남자아이였다. 더벅머리에 퀭한 눈, 죽은 사람 같은 모양새라서 처음에는 귀신인가 싶었다.
하지만 강도현의 눈에 비치는 걸 보면 분명히 인간이었다. 서화경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 애 이름은 서강림이야. 내 수양아들 삼았단다.]
[수양아들……?]
[네 동생이 될 아이란 이야기야.]
동생. 그 말에 강도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친구가 갖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생기다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 사실이 중요했으니까.
그 아이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저 반가워, 강도현이 환하게 웃으며 서강림에게 다가갔다.
[너 서강림이랬지? 난 강도현이야!]
그러나 서강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도현을 보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서화경은 괜찮다는 듯이 서강림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도현이랑 친해져도 도현이에게 아무런 일 안 생길 거야. 그리고 너희는 오늘부터 형제니까, 사이좋게 지내야 해.]
그 말에 서강림은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린 서강림이 조심스레 앞으로 나와서 강도현을 바라보았다.
강도현은 여전히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으니까, 형이라고 불러.]
[……응, 형.]
서강림이 쭈뼛거리며 형이라 부르자, 강도현은 씩 미소 지었다. 두 명이서 축구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연습은 할 수 있을 테니까.
처음으로 생긴 친구이자, 새로 생긴 동생이었다. 강도현은 서강림과 앞으로 정말 친하게 지내겠다고, 잘 대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는, 분명히 그랬었다.
* * *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날카로운 알림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시체처럼 침대에 축 늘어진 채, 강도현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아직 잠기운이 남은 얼굴에는 찝찝함도 함께 남아 있었다.
‘……옛날 꿈을 꿨네.’
오랜만에 서강림과 처음 만났을 때의 꿈을 꿨다. 그 꿈을 다시 떠올릴 틈도 없이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 강도현은 긴 머리카락이 잔뜩 헝클어진 채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비통의 날이 지나고, 숙명이 쓰러졌지만 출근은 해야했다.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근무 환경이었다.
강도현은 여전히 시민 보호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일반 차사에서 팀장이 되며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시각도 더 빨라진 상태였다.
‘밤새 들어온 보고는……. 다행히 별일 없었군.’
그는 출근 준비를 하며 야간조가 보내온 보고서를 체크하고 있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출근인 셈이었다.
숙명이 사라지고, 운명 보호국의 실체가 밝혀진 뒤 많은 이들이 보호국을 떠나갔다.
그대로 운명 보호국을 폐쇄할 수도 있었지만, 세상에는 아직 마경과 마수가 남아 있었고 그걸 해결해야 하는 단체는 여전히 필요했다.
이에 운명 보호국은 시민 보호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투명한 운영을 하며 그 역할을 이어가려 하고 있었다.
‘사람이 턱없이 부족한 게 문제지만.’
시민 보호국 바로 옆에 집을 얻었기 때문에 출근은 순식간이었다. 강도현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차사들이 좀비 같은 몰골로 그를 돌아보았다.
“팀장님 오셨슴까…….”
“좋은 아침임다아…….”
마수와 마경을 상대하는 곳이다보니, 시민 보호국은 24시간 내내 불이 켜져 있었다.
사람이 많았을 때는 3교대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인원이 줄어 2교대로 빡빡하게 일을 돌리고 있는 상황.
남들이 보면 노동부에 신고라도 하라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들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조금만 버티자. 1시간 지나면 주간조 출간한다.”
“네엡…….”
퇴근만이 희망이었다. 그들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기를 하던 중, 드디어 퇴근 시각이 다가왔다.
그에 맞물려 주간조 차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역시 다들 반송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아……. 다들 퇴근하세요.”
“그래, 너희도 수고해…….”
주간조로 출근하는 사람 중에는 윤봄과 윤겨울도 있었다. 지금 막 회사에 왔지만, 퇴근해야 할 사람들처럼 눈아래가 거뭇거뭇했다.
윤봄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오……. 오늘도 일찍 출근하셨네요.”
윤겨울 역시 쌍둥이답게 윤봄처럼 피폐해진 얼굴이었다. 그가 괴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강도현을 응시했다.
“팀장님, 대체 어떻게 이 시각에 계신 거죠? 분명 자정 넘어서 퇴근하신 거 아니에요?”
“시간 관리 잘하면 할 수 있어.”
태연하게 말하는 강도현 앞에서 쌍둥이 남매는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을 보냈다.
쌍둥이 남매도 며칠째 야근을 하고, 어젯밤에는 마수까지 퇴치하고 와서 녹초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쌍둥이 남매 외로도 출근한 사람들 역시 모두 표정이 비슷했다. 강도현이 혀를 쯧 차더니 품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가서 팀원들 수대로 커피 사와서 마셔.”
“와아, 팀장님 개인 카드다~ 감사합니다.”
윤봄이 비실비실 걸어와 카드를 받아갔다. 그리고는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조금 일이 쉬워지겠네요. 구원 투수가 와주기로 했으니.”
“……아. 이제 올 때가 되었군.”
그 꿈은 이 일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강도현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정시 출근 시각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비호문에서 파견된 서강림입니다. 오늘부터 임시 차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는 얼굴이 많은데도 남을 대하듯 정중한 태도였다. 서강림이 안으로 들어서자, 일반 차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 정말로 서강림 헌터인 거지?”
“비호문 부문주가 도와주러 온 거야?”
다들 야근과 초과 근무에 지쳐서 누구의 도움이라도 달게 받았을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닌 서강림이 왔다고?
모두 피곤에 쩔어 있는 와중, 눈동자가 희망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