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신수아가, 나를 찾고 있었다.
그 사실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째서?
신수아가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함께 불안감이 몰려왔다.
숙명이 죽지 않은 것일까?
더군다나 그녀의 목소리가 어떻게 이곳까지 닿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불통신은 여전히 먹통이었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찾고 있었지만 돌아갈 방법이 없다.
돌아간다 하더라도 정착할 육체가 없다.
이현이 경계를 넘은 내 육체를 죽였을 테니까.
그 와중 메시지는 흐릿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어차피 이것 역시 헛된 희망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내 귓가에 목소리가 닿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 *
황혼이 비와 함께 도시에 내리고 있었다.
파괴된 도심 곳곳에서 피어오르던 불길은 예정에 없던 폭우에 식어가고 있었다.
도로에 늘어져 있는 마수들의 사체 역시 비에 씻겨 나가는 중이었다.
서강림의 육체도 바닥에 주저앉은 채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빗줄기가 그대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시체 꼴 같았으나, 아직 그의 몸에는 체온이 남아 있었다.
-으득, 으드득…….
그는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굳어 있었지만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움직임이 돌아오고 있었다.
폭우 사이로 서화경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현, 언독 발동한 거 맞냐! 아직 움직이고 있는데!”
“예, 발동은 됐습니다!”
“너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아니지?”
“그럴 거면 애초에 이야기도 안 했습니다!”
언독은 발동되었지만 서강림의 육신은 죽지 않았다.
서강림이 이현을 찾아와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을 때, 이현은 고민 끝에 서화경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다.
아무리 미운 놈이라지만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서화경은 그 소식을 듣고 서강림을 만류하거나 설득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서강림이 경계를 넘어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그 뒤를 대비해야 한다.
이에 서화경은 언독의 발동 효과를 변경하도록 지시했다.
언독의 발동 효과는 사망이 아닌 행동 불가.
원래대로라면 시체처럼 늘어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초인의 영역에 도달한 서강림의 육체는 언독에 저항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 때려 붓는 수밖에 없겠군. 도현아, 포박해라!”
“예, 어머니!”
강도현의 손가락 사이마다 고정되어 있던 부적들이 빠르게 서강림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온몸에 포박부가 붙자 움직임은 약해졌지만 눈빛은 한층 더 강렬해졌다.
부적들이 곧 떼어질 듯 진동하는 것을 보니 저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다들 준비해라!”
서화경이 주위에 있는 비호문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그들은 사전에 지시받은 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짐승처럼 변해버린 서강림을 보고 모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숙명이 보낸 꿈에서 봤던 그 장면.
자신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던 서강림의 모습이 현실로 나타났다.
서화경의 옆에서 보호막을 생성하고 있던 요한이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형제님을 불러올 수 있는 건가요? 경계를 넘으면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다고…….”
“소멸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넘어간 거라면 돌아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날을 대비해 그녀는 많은 것을 준비해두었다.
주위에는 미리 준비해 둔 부적들이 결계를 치고 있었으며, 곳곳에는 깃발들이 꽂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신을 불러오는 굿판 같은 형세였다.
서화경 역시 평소에 입던 옷이 아닌, 무복을 입은 채 양손에 원방울을 들고 있었다.
“선배, 괜찮을까요? 경계 너머에서 영혼을 불러오는 실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옆에서 의식을 함께 준비하던 이현이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경계를 넘은 인간의 혼을 불러오는 굿은 몇 차례 해봤지만, 모두 중간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서화경의 얼굴은 단호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확실하게 서강림과 연결된 길잡이가 있고, 제물도 넘치도록 충분해.”
그녀는 무당, 혼과 신을 부르는 능력자.
강력한 신을 부른 경험은 충분히 존재했으며, 서강림 역시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신이 된 인간이었다.
뛰어난 무당에 제물까지 넘치도록 준비해 두었다.
이 도시에 한가득 쓰러져 있는 마수들이 바로 제물이었다.
거기에 서강림의 영혼을 불러올 길잡이가 또 한 명 존재했다.
바로 신수아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내림을 한만큼 영혼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영혼과 영혼, 만신과 만신, 신과 신으로서 연결된 두 사람.
서강림의 영혼을 인도하기에 신수아만큼 적합한 사람도 없었다.
가능성은 충분했고, 굿판을 벌일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저 껍데기가 날뛰기 전에 의식을 끝내기만 하면 된다.
서화경이 비호문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이제 의식을 치를 거니까, 다들 죽을 각오로 서강림을 막아라! 이현! 무악 준비해!”
[이능 ‘초혼제’가 발동됩니다!]
혼을 부르는 의식, 초혼(招魂).
이현이 연주하는 피리 소리가 날카롭고 청명하게 초혼의 시작을 알렸다.
서화경의 떨리는 목소리에 오랜 옛날부터 무당들 사이에서 전해져 온 음율이 실려 왔다.
그 소리가 들려오자 서강림의 껍데기가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으드득……!
억눌려 있던 육체가 부풀어 오르듯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얽혀있던 사슬을 끊듯 서강림이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의 몸에 불이 붙었다.
[이능 ‘*염■§’이 발동됩니다!]
머리 위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데도 꺼지지 않는 불길.
그 불길로 부적이 모두 타버리자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지막 부적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서강림이 서화경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을 파괴하고자 달려들었다.
-콰과광!
그러나 그 사이로 누군가가 뛰어들어 서강림의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
장태헌이었다.
그의 권갑이 서강림의 검격을 받아냈으나 그 한 번만으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장태헌은 이를 악문 채 소리쳤다.
“강림이 형, 정신 차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비인지 눈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얼굴을 보고도 서강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마치 비호문 일행에게 찾아왔던 꿈, 서강림이 그들을 몰살시킬 때의 풍경처럼.
-쾅, 콰광!
서강림의 검이 무자비하게 장태헌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미 장태헌의 무기는 산산조각이 난 상태.
맨손으로 서강림을 상대하는 것은 자살 행위였으나, 그는 끈질기게 서강림을 가로막았다.
-푸확!
검이 찌르고 벤 자리마다 피가 흘러넘쳤고 휘두르는 검의 무게에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재생하는 뱀’의 재생 속도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불변하는 영원이 소멸하며, 빌렸던 운명도 각자의 주인에게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만큼 서강림의 힘이 줄어들어 있었으나 여전히 감당이 되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장태헌은 온몸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그 공격을 막고 있었다.
-타아앙!
그때, 서강림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뒤편에서 마취약을 바른 화살과 총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기 시작했다.
서강림이 온몸으로 공격을 받아내며 저격수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찰나, 그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하하, 서강림! 멋진 꼴이네!”
독고준의 두 눈이 환희와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피부가 기이한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수호신,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일부 강신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콰아아!
사방에서 자라나는 촉수와 검은 쥐들이 해일처럼 서강림을 향해 밀려왔다.
도망칠 곳도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서강림의 발목이 묶였다.
그 사이를 노리고 독고준이 죽일 듯이 검을 휘둘렀다.
“이 정도는 막아 주겠지? 죽으면 실망이야!”
검이 서로 부딪치는 철성(鐵聲)이 귀를 찌를 듯이 이어져 왔다.
잠시라도 틈을 주면 촉수들이 서강림을 붙들려 했고, 그것을 피하면 검이 날아왔다.
신력이 담긴 검격이 제법 매서웠으나 서강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저 그의 텅 빈 눈동자가 무자비한 빛으로 번뜩일 뿐.
[이능 ‘서■불$’이 발동됩니다!]
-쩌저정!
바닥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가며 촉수들을 모두 얼려버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대지를 향해 쏟아지던 빗방울의 끝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수만의 창날이 쏟아 내려오고 있었다.
그 공격은 독고준뿐만이 아니라 일대의 모든 사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피할 곳도 없이 공격이 내리꽂히던 그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신 차려, 서강림!”
[이능 ‘강제 해제’가 발동됩니다!]
유하랑의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며 시간이 역으로 흐르는 것만 같았다.
쏟아지던 얼음의 칼날이 다시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가고, 발목을 붙잡던 얼음도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그러나 서강림의 공격은 너무 광범위하여 일부만이 해제되고 있는 상황.
마력 회로는 이미 과부화 상태였으나, 유하랑은 멈추지 않고 서강림의 이능을 막아내고 있었다.
“우우웅!”
옆에서 리니가 사력을 다해 유하랑을 보조하고 있었으며, 미처 해제되지 못한 얼음송곳들은 요롱이의 화염으로 분쇄되고 있었다.
얼음송곳이 서화경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요한의 보호막이 필사적으로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서강림이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 그때.
-콰직!
독고준의 칼날이 서강림의 허벅지를 꿰뚫어버렸다.
공격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대로 서강림의 반격이 들어왔다.
가슴께가 깊게 베이고 있는 와중에도 독고준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와, 서강림 장난 아니네……! 이래야 주인공답지. 이대로 보내주기엔 아까워! 나는 해피 엔딩밖에 취급 안 한다고!”
그사이 피리 소리와 노래는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에 서강림의 몸은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텅 빈 얼굴에 고통이, 혹은 분노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서강림의 껍데기가 독고준을 내동댕이치고 서화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앞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마치 거대한 나무 같은 위압감.
비에 젖은 녹색 눈동자는 오로지 서강림을 보고 있었다.
-카가강!
맞부딪친 검이 울음을 토해냈다.
공방이 오고 갈 때마다 일어나는 쇳소리가 마치 악기의 선율 같았다.
신수아는 충격에 온몸이 떨리는 와중에도, 빗소리를 모두 삼켜버릴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서강림, 서강림 씨!”
그녀가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서강림의 표정에는 반응이 없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자신을 몰아붙이는 그 얼굴을 보면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서화경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의식이 시작되면 계속해서 서강림을 불러라. 육체로, 영혼으로 끊임없이 불러.]
[무불 통신도 통하지 않는데 소용이 있을까요?]
[상관없다. 멈추지 말고 계속 불러. 네가 이 중에서 가장 서강림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의 만신이며, 서로가 서로의 신이었다.
한쪽이 소멸하지 않는 이상 결코 끊기지 않는 관계.
아무리 떨어져 있다 한들 그 계약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신수아는 끊임없이 육체로, 영혼으로 서강림을 불렀다.
뜨거운 눈물이 빗물과 섞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목은 이미 갈라졌고,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으나 그녀는 멈추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강림,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