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그 말에 서문용녀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주제도 모르는 차사 따위가 팀장 자리에 앉더니,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인가.
그래 봐야 안나비의 실력이 자신보다 한참 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콰과광!
안나비가 서문용녀를 향해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뇌격이 곤두박질쳤다.
서문용녀가 안나비와 신수아를 몰아붙이는 사이, 다른 팀장들도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 앞을 주성태와 다른 차사들이 막아섰다.
주성태는 욕을 지껄이면서도 도망칠 기색은 없었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차사들이 사력을 다해 팀장들을 막아섰다.
덕분에 안나비와 신수아는 2 대 1로 서문용녀와 맞붙을 수 있었으나 여전히 서문용녀는 강적이었다.
‘지금 여기서 안나비를 죽이면 뒤처리가 곤란하겠지만 상관없어.’
서문용녀의 공격에는 오로지 살의만이 담겨 있었다.
그대로 태워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광대패와 손을 잡은 배신자라고 안나비에게 이름표를 붙이면 그만이다.
지금 잘난 듯이 흘러나오는 고발 방송도 마찬가지다.
저런 증거들이야 전부 무시하고 날조하면 되는 일, 어차피 영원이 이 세상을 지배하면 의미 없는 일일 뿐.
[이능 ‘뇌룡’이 발동됩니다!]
이능이 발동되자 서문용녀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손끝부터 시작해 비늘이 돋아나며 피부가 경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용과 인간을 반쯤 섞어둔 듯한 그 모습과 함께, 서문용녀의 몸을 타고 전류가 흘러넘쳤다.
“팀장 자리가 또 비게 생겼군요. 아쉬워요.”
서문용녀가 손을 휘두른 순간, 사방이 표백될 정도로 밝은 빛이 찾아왔다.
하늘에 나타난 것은 빛으로 이루어진 용.
서문용녀의 손짓에 따라 번개가 일렁거렸다.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았다.
먹물이 종이에 퍼져 나가며 길을 남기는 것처럼, 번개가 하늘에 길을 그리며 안나비를 향해 날아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 번개 사이로 무언가가 고개를 쳐들었다.
“오오옷-!”
그것은 큼지막한 토우들이었다.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토우들은 뇌격을 대신 받아냈다.
인간이었다면 골수까지 타버릴 전력이었으나, 토우들은 기껏해야 손끝만 조금씩 부스러졌을 뿐이었다.
“오옷!”
토우들이 쿵쿵거리며 서문용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뇌격도 채찍도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서문용녀가 신수아의 상극이라면, 안나비는 서문용녀의 상극이었다.
‘전격이 통하지 않는다 한들, 안나비 따위는 내 상대가 안 돼!’
서문용녀는 채찍을 거두는 대신 근처의 시체에서 검을 집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무기였지만 압도적인 실력 아래에서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토우들이 산산조각 나는 와중, 녹색 안광이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카가강!
토우들이 방패막이가 되어 준 틈을 타, 신수아는 다시 한 번 응전에 나섰다.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전류가 제 살을 파고 들어왔지만 모두 감수하고 뛰어든 것이다.
서문용녀의 두 눈에 분노가 들끓었다.
“어디서 발버둥을……!”
-콰지직!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뇌룡이 수백 줄기의 섬광으로 변모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토우들이 신수아를 대신해 공격을 맞아주었지만 전부를 막지는 못했다.
번뜩이는 뇌격 사이로, 문득 신수아의 얼굴이 보였다.
온몸이 그을리고 있어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무너지는 토우들과 번개 사이를 가르며 달려오는 신수아.
번개꽃이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가운데, 꺼지지 않는 그 눈빛.
소름이 끼치도록 견고하며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푸욱!
신수아의 검이 가슴에 꽂히며 불이 붙은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서문용녀는 다급히 신수아를 걷어차고 뒤로 물러났다.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비껴갔지만 승부의 결과는 명확했다.
‘안나비랑 신수아만이라면, 어떻게든 쓰러트릴 수 있겠지만…….’
어느새 자신이 이끄는 차사들은 무력화되고 있었으며, 비호문 일행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장태헌과 독고준, 쌍둥이 남매와 요한 신부까지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신수아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보호국의 정체는 밝혀졌고, 이제 곧…….”
-쿠웅!
그때, 신수아는 입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하고, 피까지 얼려버리는 영하의 밤이 찾아온 듯한 이 기분.
분명히 태양은 멀쩡하게 떠 있는데도 그런 착각을 한 것은 공포 때문이었다.
공포가, 모든 빛과 열기를 삼켜버렸다.
방금 전 벼락을 온몸으로 맞았을 때조차 느껴보지 못한 공포.
신수아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무언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감히 고개를 들어 마주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힘겹게 치켜뜬 눈동자에 상대의 모습이 간신히 비쳤다.
그것은 언뜻 보면 차사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채,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신수아는 그 존재를 본 순간, 서강림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로지 생존 본능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장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위험 신호가 사정없이 자신의 머리를 울리고 있었다.
단순히 강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신역에서 무명과 싸웠을 때조차도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다른 일행들 역시 굳어 있는 와중, 서문용녀만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죄송합니다, 국장님. 제 선에서 처리를 해야 했는데…….”
새로운 보호국의 국장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국장의 목소리가 가면 너머에서 들려왔다.
“인질을 확보하라는 계시다. 다만 한 사람은 처리를 해두라고 하셨다.”
-카강!
국장이 들고 있는 검이 신수아를 노리고 날아왔다.
간발의 차이로 검을 막아냈으나, 즉사를 면했을 뿐이었다.
압력에 의해 신수아의 몸이 내던져지듯 날아갔다.
-콰과광!
“자매님!”
“수아 언니!”
그녀가 건물 잔해에 파묻히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비호문 일행들이 국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강림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백영이 마경에 찾아와 사람들을 몰살할 때와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있건만 국장은 그저 담담하게 그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신수아가 피를 토해내며 잔해에서 몸을 일으켰다.
인이어를 통해 강도현이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웅웅거리는 소리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망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럴 수 없었다.
서강림은 시간을 벌어 달라 부탁했으니까.
그는 약속했으니, 올 것이다.
자신은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될 뿐.
신수아의 눈동자가 강렬한 녹색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반신화’가 발동됩니다!]
신력이 자신의 몸을 태울 듯이 달구기 시작했다.
내장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고통.
이미 한 차례 반신화를 사용하며 신체는 한계에 도달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는 온몸의 피를 불태우며 국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들 막아요!”
일행은 사력을 다해 국장을 막으려 했으나, 공격을 가할수록 느끼는 것은 절망이었다.
장태헌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독고준의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넘치고 있었으며, 쌍둥이 남매 역시 공격을 받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요한의 보호막은 벌레의 날개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몇 초나 흘렀을까.
몇 분이나 흘러가고 있는 걸까.
영원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국장은 상처 하나 없이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반신화조차 하지 않은 만신일 텐데도 이런 힘이라니.
마지막까지 버티려 했으나 신수아 역시 한계였다.
쓰러지려는 신수아의 목을 국장이 덥석 틀어쥐었다.
-으드득…….
뼈가 부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그대로 비틀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신수아가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던 그때, 그녀는 뭔가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국장의 손이 떨려오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지 않으려고, 혹은 죽이려고 하는 듯한 저 손길, 저 망설임.
-콰과광!
그때 충격과 함께 국장이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수아가 켈록거리며 제 목을 더듬던 중,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흙먼지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강림 씨?”
그 사람은 서강림이었으나, 그를 알아보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서 흘러넘치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얼굴은 분명히 서강림인데, 마치 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이형의 존재 같았다.
서강림이라고는,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 기운.
-쾅, 콰과광!
서강림의 공격이 국장을 몰아세우자 태연하던 국장으로부터 당혹감이 느껴졌다.
국장을 향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사방의 풍경이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방금 전까지 비호문 일행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국장이 이제는 밀리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신수아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서강림은 지금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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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력] 측정 불가
[체력] 측정 불가
[민첩] 측정 불가
[감각] 측정 불가
[마력] 측정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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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림은 무자비하게 휘몰아 닥쳤으며 국장은 그 공격을 막아내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존재만으로도 일류 헌터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 국장이었건만.
그토록 강해진 서강림을 보며 신수아가 느낀 감정은 안도가 아닌 공포였다.
저걸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나?
고작 며칠 사이에 서강림은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해 돌아왔다.
대체 뭘했길래?
생각나는 것은 사주 훔치기뿐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운명을 강탈한 걸까?
서강림은 국장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었으나, 이미 치명상을 입은 사람처럼 피폐해져 있었다.
‘뇌가 타버리는 것 같다.’
그는 최후의 최후까지 균열에서 운명들을 빌려 돌아왔다.
업보는 쌓지 않았지만 망자들의 기억은 생생히 영혼에 박혀 있었다.
그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동안 차라리 업보를 쌓는 게 나았을 법한 고통이 밀려왔다.
운명을 빌릴 때마다 그는 타인의 죽음을 삼켜야 했다.
그 고통은 현실이었다.
칼에 머리가 날아갔고, 교살 당했으며, 익사하였고 불타 죽었으며 독에 내장이 삭아버렸고, 타살(打殺)당했으며 총에 맞아 죽었다.
대체 몇 번의 죽음을 경험했고, 몇 명의 기억을 짊어졌나.
그 자체가 또 다른 업이었다.
경계를 넘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마모되며 온 세상이 일그러져 녹아내리고 있었다.
경계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주위에 신수아가 있었음에도 경계는 그를 침식해 들어오고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득거리는 비웃음, 그를 유혹하는 목소리들을 무시한 채 그는 눈앞의 국장만 바라보았다.
국장은 안간힘을 다해 서강림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요청을 하기도 전, 영원이 그의 몸에 찾아왔다.
[‘불변하는 영원’이 만신의 몸에 강신합니다!]
[‘불변하는 영원’의 10%가 강신하였습니다!]
강신을 한 순간 국장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핏줄이 튀어나올 듯 도드라지더니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서강림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방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힘이었다.
국장의 공격이 한층 날카로워졌으나 그것이 바로 서강림이 원하던 것이었다.
‘드디어 강신이 시작됐다……!’
강도현으로부터 국장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강림이 곧바로 균열을 빠져나오기 직전.
그 상황을 들었던 백영은 한 가지 사실을 일러주었다.
[미지의 알이 남아 있다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영원이 만신에게 강신하려 할 때, 그 틈을 노려 죽여라.]
[왜 하필 강신할 때지?]
[강신은 말 그대로 신이 이 땅에 내려온 상태다. 그 상태에서 만신이 죽으면 신에게도 악영향이 발생한다.]
강신한 만신을 죽여 수호신을 약화시킨 뒤, 신역으로 찾아가 영원을 살해하는 것.
그것이 백영이 제안한 방법이었으며, 백영의 죽음이 전제된 방법이었다.
[그 육체가 죽으면 이 공간이 해방되어도 너는 돌아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상관없다. 영원을 죽일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