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카가각!
요란한 외침과 함께 마수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인간의 피가 아닌 마수의 피가 바닥을 적시고, 운전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사이 마수를 베어낸 검이 연이어 다른 마수들을 찢고 파괴했다.
운전자가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도, 독고준……?!”
“이야~ 정말 지독하게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단 말이지.”
비호문의 간부, 그 독고준이 피에 젖은 얼굴로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독고준은 싱긋 웃으며 운전자를 내려다보았다.
“말 안 들어 처먹는 엑스트라 나부랭이 따위는 죽는 게 속 시원하긴 한데…….”
“뭐, 뭐?”
“우리 주인공 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해야겠지?”
운전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친놈이라고 듣긴 했는데 진짜 미친 모양이었다.
그러나 위협적인 미친놈이었다.
“그쪽, 운 좋네. 빨리 튀지 그래? 계속 몰려온다.”
그 말에 흠칫 놀라 돌아보니, 독고준의 뒤편으로 마수들이 버글버글했다.
운전자가 다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독고준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 와중, 인이어를 통해 유하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고준, 상황은?]”
“아~ 여유 있어. 금방 정리할 것 같은데? 다른 쪽은 어때?”
“[다른 구역에서도 마수들이 대규모 등장하고 있다.]”
현재 유하랑은 비호문 건물의 상황실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모니터에는 파괴된 도시의 풍경이 비치고 있는 중이었다.
마수가 출현한 곳은 총 13 지역, 모두 인구가 밀집한 장소였다.
강도현이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미리 알지 못했으면 정말 생지옥이 되었겠군.”
“그나마 테러 예고를 내보낸 덕분에 민간인은 거의 없어 다행이지.”
오전에 있었던 광대패의 테러 예고는 비호문의 자작극이었다.
서강림은 비통의 날, 각지에서 마수가 출몰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전해두었다.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도.
[비통의 날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과정에서 보호국이 활약을 했어. 그 결과 사람들은 보호국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지.]
군대가 출동하였으나 대다수는 무력하게 패배하였고, 스포트라이트는 보호국의 차지였다.
비통의 날은 보호국에게 있어서 축제나 다름없었다.
또한 숙명에게도 큰 힘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무명은 그렇게 말했어. 비극이 찾아올수록 숙명의 힘은 강해진다고.]
인간은 비극이 찾아올 때 신을 찾고 자신의 운명을 저주한다.
수많은 사람이 죽는 비통의 날이야말로 숙명의 힘을 키우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서강림 입장에서는 그러한 사태를 막아야 했다.
출현하는 문 자체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지만, 사상자를 줄일 수는 있었다.
[가짜 테러 예고로 사람들의 진입을 막아줘. 그리고 마수를 토벌하면서 비호문의 인지도를 높일 거야.]
[13곳을 동시에 막을 수는 없을 텐데?]
[다른 문파들이 협조를 해줄 테니 괜찮아.]
현재 각 지역에는 여러 문파가 흩어져 있었다.
흑의문, ES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신수아의 언니가 문주로 있는 수라문까지.
덕분에 비호문 일행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한 지역에 모여 있는 상태였다.
[마수를 토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행들이 흩어지는 건 위험해. 다들 이날 죽을 팔자라고 하니까.]
비호문에 깊게 관여된 사람은 비통의 날에 죽을 것이라는 운세를 받았다.
모두 안전한 장소에 몸을 숨긴 채 그날을 버티는 것도 고려해보았다.
그러나 서화경은 숨는 것보다 마수들을 토벌하고 있는 쪽이 그나마 살 확률이 높다고 안내해주었다.
[숨어도 죽음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차라리 이걸 기회로 살려라. 싸워서 인지도를 높이는 편이 나아.]
서화경의 말대로 수많은 사람이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드론 여러 대가 도심 상공을 날아다니며 중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현재 13번째 대형 마수가 등장하였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빠르게 대피소로 이동하시어…….]
수많은 뉴스에 비치는 것은 비호문의 얼굴.
그 뒤를 이어 화면에는 도망치는 사람들이 포착되었다.
마수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 바람을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과곽!
누군가가 검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마수를 단숨에 도륙하고 있었다.
그 구세주 같은 모습을 보자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검은 용과 신수 기린을 대동하고 나타난 헌터.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서강림의 얼굴이었다.
[현재 비호문의 문주, 서강림 헌터가 토벌 활동에 나섰습니다! 빠르게 마수들을 처치하고 있으나 문에서 빠져나오는 마수의 수가 적지 않은 상태입니다.]
화면에는 서강림의 얼굴이 비쳤으나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다.
서강림이 만약을 대비해 만들어 둔 자신의 분신이었다.
비통의 날 전까지 돌아오겠다 했지만, 아직까지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중이었다.
그때 강도현의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흙과 벌레의 왕’이 무불 통신을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서강림에게 연락이 온 것이 이틀 전이었다.
그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너무도 반가운 알림창.
강도현이 급하게 무불 통신을 연결했다.
“서강림, 예측대로 마수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그는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약간의 사이를 둔 채, 서강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위험한 사람 있어? 보호국에서…… 행동에 나섰나?]”
“아니,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어.”
“[그러면, 쿨럭, 좀 더 버텨줄 수 있겠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잇새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에 고통이 묻어나고 있었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이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
목소리만 들어도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서강림, 무슨 일이야? 너 다쳤어?”
“[아니, 괜찮아. 쿨럭, 급하면 바로 복귀할 수 있어.]”
강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서강림이 부상을 입은 것 같아, 더 캐묻는 대신 빠르게 인이어에 대고 통신을 돌렸다.
“전원에게 알립니다. 서강림이 올 때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버틸 수 있겠습니까?”
비호문 일행은 마수를 처치하는 데에 사력을 다하고 있었으나 마수의 공세는 끝이 없어 보였다.
오늘이 죽는 날이라던 사주가 새삼 살에 와 닿았지만 약한 소리를 하기 에는 아직 일렀다.
서강림을 돕기 위해 수련을 하며 쌓아온 시간들.
고작 이런 마수들에게 밀릴 정도로 그들은 약하지 않았다.
비호문 일행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버틸 수 있습니다.]”
서강림은 지금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와 동행해 도울 수 없다면, 최소한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비호문 일행이 쉴 새 없이 마수들을 처리하는 모습이 화면을 통해 송출되고, 인지도는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강도현이 빠르게 상황을 확인하며 말했다.
“A 구역에 있는 문하생들이 고전을 겪고 있습니다. 갈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신수아입니다. 그쪽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몇 블록 떨어진 장소를 향해 신수아는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마수를 막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으나, 소모전인 이상 이쪽이 불리했다.
강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유하랑, 나도 현장에 나갈게. 혼자서 모니터링 가능하겠어?”
“해보겠다. 일단 큰 문제는 없으니…… 어?”
그때 모니터에 뜬 무언가를 확인한 유하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강도현도 내용을 확인하고는 이를 갈았다.
“……보호국 놈들, 역시 이런 식으로 나오는군.”
그는 곧바로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다시 한 번 신수아의 인이어에 강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수아 씨, 지금 보호국에서……!]”
-콰아앙!
강도현의 말은 귀 옆을 바로 스쳐 지나가는 폭음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신수아가 다급히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자, 날카로운 공격이 그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화살들을 동강내며 신수아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당신들은…….”
눈앞에 있는 것은 검은 양복을 걸친 운명 보호국의 차사들.
마수를 공격하려다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들은 명백히 신수아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차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사이 인이어를 통해 강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현재 비호문 주요 인물들에게 수배령이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광대패라고 하는군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파괴된 도시를 비추던 뉴스에는 비호문 일행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서강림을 제외한 주요 멤버들에게 모두 수배령이 내려져 있었다.
아나운서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운명 보호국에서는 비호문의 실체가 테러 집단 광대패였음을 밝혀냈으며, 현재 긴급 수배를 내렸습니다.]
[비호문의 간부인 신수아 헌터가 광대패의 실질적인 수장인 것을 확인. 용의자들을 1급 위험 용의자로 규정하였으며…….]
차사들 사이에서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걸어 나왔다.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신수아 헌터. 당신이 이 마수를 불러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당장 멈추고 체포에 응하세요.”
이대로 순순히 보호국에게 잡혀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예전부터 비호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순순히 항복해봤자, 이들이 자신을 몸 성히 내버려 둘 확률은 낮아 보였다.
“신수아 헌터.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보호국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저희가 광대패라고요? 그 증거는요?”
“며칠 전, 습격 현장에서 광대패의 혈액을 확보하였고 이미 대조 작업이 끝났습니다.”
뻔뻔한 거짓말에 신수아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미 날조된 증거, 무죄를 주장하더라도 먹힐 리가 없었다.
신수아가 여전히 경계 태세를 풀지 않자 차사들 역시 무기를 겨눈 채 말했다.
“정부 측으로부터 사살 허가 받았습니다. 이 순간부터 신수아의 토벌을 최우선 명령으로 수행합니다.”
-콰과광!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공격이 몰아닥쳤다.
신수아는 어느새 그 공격을 모두 받아쳐 내고 뒤로 물러나 있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차사들을 죽일 수는 없어.’
차사 중 대다수는 숙명에게 속고 있다.
그저 선의로,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러 나온 사람들을 죽여 봐야 좋을 일이 없었다.
그 와중 차사들은 전력으로 신수아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신수아는 공격을 흘려보낸 뒤,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콰직!
“커헉……!”
강권을 얻어맞은 차사는 그대로 기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전부터 느꼈지만 죽이는 것보다 산 채로 무력화시키는 게 더 어려웠다.
신수아가 차사들을 맨손으로 제압하던 그때, 다급한 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다들 조심하세요! 차사들 말고도 일반 헌터들 역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현재 요한 신부와 쌍둥이 남매는 차사가 아닌 일반 헌터와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비호문에게 수배령이 내려졌을 때, 누군가는 부정하고 오해가 있다며 그들을 변호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평소에도 비호문을 시기하고 깎아내리던 자들에게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비호문 새끼들이 광대패였다고? 위선자 새끼들 같으니.]
[잡으면 보상이 상당하던데?]
[쟤네 붙잡으면 우리 인지도도 확 오르는 거 아냐?]
[게다가 신수아가 마경을 불러낸 거라면서? 신수아만 죽으면 마경도 닫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