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231화 (230/256)

<231화>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 시각.

미지의 알이 딱딱대며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문용녀가 흥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먹이를 투여하세요.”

“예. 투여하겠습니다.”

연구원들이 미지의 알 위로 피 몇 방울을 뚝뚝 흘려보냈다.

쇠비린내가 풍기자 알은 게걸스럽게 그것을 받아먹더니 심하게 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미지의 알’의 성장률이 100%에 도달하였습니다!]

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불길한 붉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방이 붉게 물드는 것과 동시에 서문용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콰지직!

박살이 난 알 사이로 흰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쏟아지듯 빠져나왔다.

연구원들은 다급히 몸을 닦아주고 옷을 입혔으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이건만, 다들 알에서 부화한 실험체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력을 투여한 실험체들은 모두 같은 외형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태어난 실험체는 신력이 부족했던 모양인지 머리카락만 하얄 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원래 피 주인의 얼굴이었다.

연구원이 서문용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O-100 실험체가 부화하였습니다만, 아무래도 신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외형보다 내용물이 중요해요. 등급은요?”

“예정대로 신일품 등급입니다.”

서문용녀는 문을 열고 들어가 실험체의 앞에 섰다.

멍한 눈으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실험체는 숙명이 가장 아끼는 그릇.

서강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문용녀는 손수 실험체에게 가운을 걸쳐준 뒤,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주 고귀한 자를 마주하는 듯이.

“제 43대 국장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국장이라 불린 실험체는 아직 이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서문용녀가 다른 연구원들을 보며 턱을 까딱거리자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험체가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사이, 서문용녀는 지시를 내렸다.

“모든 자원을 투여해서 3일 안에 국장님의 육체를 완성하세요. 그 뒤에 곧바로 신내림을 할 겁니다.”

일반적으로라면 실험체가 부화한 뒤, 최소 한 달 이상은 성장실에서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일이라는 말에 한 연구원이 다소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을까요? 신력도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신내림을 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상관없어요. 오래 살지 못하더라도 당분간만 버텨주면 되니까.”

서문용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원본이 손에 들어올 테니까요.”

지금 만들어진 실험체는 서강림을 얻기 위한 중간 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곧 숙명이 이 땅에 내려와, 진정한 그릇에 담길 것이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서문용녀가 옆에 서 있던 차사를 향해 말했다.

“자, 그러면 우선 비호문부터 처리하죠.”

22. 운명이 삶을 시험할지라도

“[금일 낮, 유이동에서 광대패가 습격을 감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보호국의 빠른 대처로 사상자는 없었으나, 건물이 전소하는 등 심각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여…….]”

보호국 휴게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낮부터 긴급 속보로 계속 흘러나오는 내용은 당연하게도 광대패에 대한 것이었다.

파괴된 건물이 화면에 비치더니, 곧 울분에 가득 찬 시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제 아이들이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용서가 안 돼요. 광대패 놈들을 다 죽여야 하는데……!]”

상당히 격한 내용이었음에도 인터뷰는 여과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뒤에도 다른 시민들이 한 마디씩을 보탰는데 모두 광대패에 대한 불안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 화면을 보던 차사가 지친 낯으로 말했다.

“미치겠어. 요즘 들어 광대패 놈들이 더 날뛰는 것 같다니까.”

“비호문보다 빨리 현장에 나가라고 윗선에서 쪼아대니 더 죽을 맛이야.”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불만을 토로하는 차사들은 불철주야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원래도 일이 많은 편이었지만 요즘은 더욱 업무량이 늘어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차사들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무명의 신역에 파견된 차사들이 대거 사망하는 일도 있었고, 그 외로도 사망자는 많았다.

마수도 위험했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광대패였다.

그놈들 손에 죽어간 동료가 몇이던가.

한 차사가 핏발 선 눈으로 중얼거렸다.

“광대패 놈들 거처를 다 털어서 아작을 내야 하는데…….”

“언뜻 듣기로는 정보 하나 얻었다는데? 놈들이 단서를 하나 흘렸대. 꽤 중요한 단서라던데.”

그 말을 들은 차사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광대패를 토벌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보다는 분노가 컸다.

그가 손에 든 종이컵을 신경질적으로 우그러트리며 말했다.

“이제 장례식은 그만 갔으면 좋겠다. 요즘 이상하게 더 늘어난 것 같은데. 지난주에 실종된 차사도 결국 못 찾았지?”

“응. 마경을 수색해봤지만 못 찾았대.”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 마경 내에서 차사가 실종된 사건이었다.

상당히 능력 있는 차사였는데 마경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고 했다.

차사 일이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요즘 비밀 임무에서 사라진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 시체도 못 찾았다니.”

“맞아. 대체 무슨 임무기에 공유조차 안 되는 거지? 그리고 수호신이 없는 차사들만 실종되던 것 같던데. 뭔가가 좀 이상…….”

“엇!”

그때 이야기를 나누던 차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복도에 팀장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나비 팀장님, 주성태 팀장님.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안녕하십니까.”

두 사람은 차사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거리가 꽤 멀어진 뒤에 주성태는 다소 감탄하는 어조로 말했다.

안나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반쯤은 감격이, 반쯤은 짓궂음이 배어 있었다.

“이야, 안나비가 팀장이라니. 막내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건 몇 년 전의 이야기 아닙니까.”

막내 차사로 일하며 궂은일을 하고, 교육 시설을 관리하던 것이 어느새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으나 막내 직원이 팀장 자리까지 올라오기에는 꽤 이른 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팀장급을 비롯해 수많은 차사가 죽거나 실종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안나비를 막내라 부를 사람은 주성태밖에 남지 않았다.

그 몇 년 사이 수많은 장례식이 있었다.

지난주만 해도 그랬다.

안나비는 빈 관에 섰을 때처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공 팀장님의 말씀대로라면 요즘 일어나는 광대패의 테러는 전부 보호국의 자작극이고, 마경에서 실종되는 차사들 역시 보호국의 짓인 거겠지……?’

안나비는 신역에서 돌아온 후, 광대패의 말을 듣고 보호국을 조사해보았다.

결정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수상쩍은 정황은 너무나도 많았다.

이번에 발생한 실종만 하더라도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고 넘어간 것이 대다수였다.

“무슨 생각해? 다 왔어.”

주성태가 어깨를 툭 치자, 안나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느새 회의실 앞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곳에 평급 차사는 없었다.

모두 타 지부에서 파견된 팀장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안나비와 주성태가 자리에 앉자 서문용녀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제 다 온 것 같군요.”

안나비는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팀장 회의라서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타 지부 팀장까지 불러올 정도면 예상보다 더 심각한 일인 것 같았다.

“다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면으로는 전할 수 없는 일들이 꽤 많아서요. 첫 번째의 주인의 신역이 붕괴되었고, 국장님의 병세도 차도를 보이셨습니다.”

국장이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꽤 오래전의 일이다.

생각해보면 안나비는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며, 한 번도 국장을 직접 마주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보안을 위해서라지만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안건이 있습니다. 드디어 광대패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누가 수장인지 알아낼 수 있었어요.”

그 말에 회의실 내의 공기가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서문용녀가 리모컨을 조작하자 흰 벽에 화면 하나가 떠오르며, 한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이 사람이 광대패의 수장입니다.”

“……!”

수장의 정체를 본 안나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성태를 비롯해 다른 팀장들 역시 동요하는 눈치였다.

그 와중 서문용녀는 고요히 미소 지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고, 그들의 새로운 왕을 맞이하러 갈 시각이었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날 것이었다.

숙명의 시간이었다.

* * *

주말의 하늘은 그저 맑고 청명하였다.

날이 점점 따뜻해지며 사람들의 옷은 얇아졌고, 주말인지라 놀러 가기에도 좋은 날이었다.

나들이를 하기에 완벽한 날이건만, 사람으로 북적여야 할 도심은 텅 비어 있는 채였다.

대신 진입로에는 요란한 클랙슨 소리와 항의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아니, 이렇게 도로를 막으면 어쩌자는 거야!”

도로 곳곳이 막혀 있어 진입이 불가능 하자, 차에서 내려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왕왕 보였다.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진입을 막고 있는 사람들은 비호문의 문하생들이었다.

문하생 중 한 명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소식 못 들으셨어요? 한 시간 전, 광대패가 테러 예고를 했지 않습니까.”

그의 말대로 약 한 시간 전, 광대패는 대대적인 테러를 예고한 상태였다.

그러나 항의하고 있는 운전자는 물러서는 기색이 없었다.

“그놈들이 예고하고 테러하는 거 봤어? 게다가 13곳을 동시 테러한다니! 거짓말일 게 뻔하잖아!”

“거짓말이라도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요즘 광대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 모르십니까?”

“아니, 니깟 게 뭐라고 나대?! 지금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슨…….”

-띠링

그때, 항의하던 운전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무시하려고 했으나 옆에서도 진동음이나 메시지 알림음이 들려왔다.

아니, 옆이 아니라 사방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휴대폰에 똑같은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오후 2시 01분, 대현동에 마경이 출현하였습니다. 시민들은 모두 인근의 대피소로 조속히 대피 바랍니다.]

마경이라고?

대현동이라면 이곳과 꽤 떨어진 장소다.

무시하고 휴대폰을 집어넣으려던 그때, 문자가 한 통 더 도착했다.

[오후 2시 01분, 강민동에 마경이 출현하였습니다. 시민들은 모두 인근의 대피소로 조속히 대피 바랍니다.]

[오후 2시 02분, 삼교동에 마경이 출현하였습니다. 시민들은 모두 인근의 대피소로 조속히 대피 바랍니다.]

[오후 2시 02분, 두영동에…….]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끊임없이 문자가 오고 있었다.

자신의 휴대폰 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알림음 소리.

어느새 문자는 열통을 넘어가고 있었다.

당황하여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콰아앙!

놀라 고개를 퍼뜩 들자, 도심 한가운데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을 본 모두가 같은 단어를 떠올리고 말았다.

재앙, 그것은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크기의 문에서 마수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도마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눈이 꼬리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마수 하나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문에서 사람 크기만한 마수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다들 대피하세요!”

문하생의 외침에 그제야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듯, 다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운전자들이 다급히 차에 올라타 대피하려 했지만 이미 뒤가 꽉 막혀 있어 도망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차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비호문 문하생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운전자도 심장이 터져라 달아나는 중이었다.

“미, 미친 저게 뭐야?! 왜 마수가……!”

“광대패가 테러를 한다더니, 설마 그놈들이 마수를 조종하나?!”

광대패가 테러를 예고했던 13 지역에는 광대패 대신 마경이 등장한 상태였다.

해당 지역을 봉쇄하고 대다수를 대피시켰으나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수들이 바리케이트를 넘어와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막아!”

문하생들이 다급히 마수를 막으려 했으나 머릿수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마수가 문하생들보다 적어도 세 배는 많아 보였다.

마수들이 그들을 비웃듯 빠르게 달려나가 시민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다들 비켜!”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던 와중, 운전자는 인파에 밀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대피하는 발들에 짓밟히며 비명만 지르던 그때, 그는 선뜩한 기운을 느꼈다.

-키이이……!

자신의 몸이 마수의 그림자에 뒤덮여 있었다.

거대한 마수의 아가리에는 수백 개의 이빨이 겹겹이 돋아난 상태였다.

두 눈에는 포식의 기쁨이 가득했다.

마수가 입을 쩍 벌린 채, 톱날 같은 이빨로 시민을 물어뜯으려던 그 순간.

“울어라, 지옥 참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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