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서강림은 신수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같이 있어서 신수아가 얻는 이득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의 곁에 있고 싶다 말하고 있었다.
“도망가도 끝까지 따라갈 거예요. 그러니까 포기하고, 제 곁에 있어 주세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신수아는 서강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강림은 저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생에서도, 전생에서도 그녀는 늘 저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보잘것없는 충삼품, 모두가 외면하던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도.
자신의 존재가 해악이 된다 생각해 문파를 뛰쳐나갔을 때도 신수아는 기어코 서강림을 찾아내 자신의 곁으로 데려왔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신수아 씨는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래요. 그런 거라고 칠게요.”
“경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혹시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까?”
“그건 비밀이에요.”
비밀이라고 해봤자 자신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서화경뿐이다.
서화경이 대체 어디까지 말했을지 알 수 없었으나, 어설프게 거짓말을 해봐야 들통날 것이 뻔했다.
서강림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도망 안 가겠습니다.”
그제야 신수아는 활짝 웃었다.
안도한 기색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서강림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예상했겠지만 무명이 남긴 검을 찾아 균열에 가려고 합니다.”
“혼자서요?”
서강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무명이 문장을 새겨주며 한 사람만이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신수아 역시 무명이 했던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 이상 매달리지는 않았다.
“알겠어요. 대신 앞으로는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 주세요. 알겠죠?”
서강림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거짓말이었다.
그녀에게 숨겨두고 있는 사실이 있었고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었다.
이 거짓말이 들통날 때,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부디 그녀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 * *
“하아,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최상급 마력제를 제조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현은 사무실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웬만한 일은 비서가 처리해주지만, 지금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워낙 거물이라 회피할 수 없었다.
운명 보호국에서 온 전화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었다.
보호국에서 이러한 독촉 전화가 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현이 보호국에 납품하던 물약들을 끊기 시작한 뒤부터 자주 걸려오던 연락이었으나 오늘은 유독 집요했다.
이현은 참을성 있게 응대했다.
“지금 전반적으로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터라……. 수급이 이루어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을 몇 번이나 설득한 끝에 전화를 겨우 끊을 수 있었다.
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찮게 되었군. 이제 재료가 없다고 둘러대는 것도 한계다.’
서강림과 손을 잡은 뒤부터 그는 보호국과 거래하던 물품의 양을 대폭 줄여버렸다.
특히 최상품으로 분류되는 물품들은 모두 빼놓고 있는 상태.
초반에는 그들도 이해를 하는 것 같았지만 몇 달이 다 되어가도록 재료가 없다는 변명이 먹힐 리가 없었다.
‘서강림, 그놈과 얽혀서 여러모로 귀찮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보호국에서 압박을 가해올 텐데…….’
그때, 눈앞에 알림창이 하나 떴다.
그것을 본 이현의 미간에 핏줄이 섰다.
[‘흙과 벌레의 왕’이 당신에게 무불 통신을 요청합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생각하기가 무섭게 서강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알림창이 떠 있었다.
그는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통신을 연결했다.
“나다. 무슨 일이냐?”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사 한마디 없었다.
애초에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머리를 통해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기분이 나쁜 와중, 부탁이라는 말에 이현은 혀를 찼다.
“네 놈 부탁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또 무슨 일이냐?”
“[이번 부탁은 이현 만신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차분했다.
이현은 그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빈정대는 어조로 물었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할 부탁이라면?”
“[그 전에 여쭤볼 게 있습니다. 흑의문에서는 언령에 의해 발동되는 극독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언독(言毒)은 흑의문에서 비밀리에 만드는 독극물 중 하나였다.
그 독을 섭취할 경우, 즉사하지는 않지만 체외로 배출되지도 않는다.
독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지정된 문장을 말하거나 들을 때였다.
때문에 비밀 유지를 위해 배신자나 첩자에게 먹여두는 독이었다.
은밀한 독이니만큼 제조법을 포함해 흑의문의 간부가 아니라면 존재조차 모른다.
그런 물건을 서강림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으나, 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애초에 그놈은 마치 두 번 산 사람처럼 이상한 것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군. 그런데 갑자기 언독은 왜?”
“[이현 만신은 지금 제 상태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그 질문에 이현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가 미간을 일그러트린 채 물었다.
“네 상태라면?”
“[저는 경계에 가까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현 만신이라면 눈치 채셨겠죠.]”
서강림의 상태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에게서 흘러나오던 흉흉한 기운이 이제는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자신의 상태를 말하며 언독을 찾는가?
의아해하던 그때, 이현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너, 설마. 내 마음에 들 부탁이라는 게……. 언독을 네가 먹겠다는 거냐?”
“[예.]”
자신을 죽여 달라 요청하는 사람치고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했다.
두려움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이현이 말을 잃고 있는 사이, 건너편에서 서강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지금 당장 절 죽여 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만약 제가 경계를 넘거나……. 불변하는 영원에게 몸을 빼앗길 경우, 언독을 발동시켜주시길 바랍니다.]”
“불변하는 영원? 그건 또 뭐 하는 놈이냐?”
서강림은 차분하게 불변하는 영원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의 몸을 빼앗기면 세계에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현은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어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부터 네놈에게서 흉악한 기운이 느껴졌던 게, 다 그것 때문이었던 건가.”
“[눈치가 빠르시군요.]”
“좀 닥쳐라.”
예전부터 서강림은 여러모로 위험한 존재라고 느끼긴 했지만, 그 원인을 알아내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역시 그는 살려두기에는 위험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스스로를 죽여 달라 요청하다니.
“너는 죽는 게 무섭지도 않냐?”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기껏해야 10살도 안 된 놈이었는데 우는 일도 웃는 일도 없었다.
자신이 어린 서강림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려 했을 때도 겁먹은 티라고는 조금도 없이, 무감한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던가.
오히려 제발 자신을 죽여 달라는 듯이 바라보던 그 눈.
“[……저는.]”
그때, 잠깐의 사이를 두고 서강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목소리였다.
“[저만 남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이현은 그 이야기를 듣고 서강림과 처음 조우했을 때가 떠올랐다.
끔찍하도록 흉흉한 기운을 흘리고 있던 어린아이.
사고로 인해 가족은 모두 죽고 홀로 남았다고 했다.
그 뒤로 서강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운명은 고독한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홀로 가거나, 홀로 묘지를 만들어야 하는 운명.
오롯이 혼자 가야만 하는 생.
“[부탁합니다, 이현 만신. 저는 제 주위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널 죽이라고?”
“[예.]”
그 담담한 대답에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현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 협력해준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없었다.
서강림이 경계를 넘게 된다면 스스로 죽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서화경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내키지 않았다.
차라리 서강림이 악인이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모두가 죽어도 혼자 살려고 발악을 하는 인간이었다면 마음 편히 죽었을 텐데.
그는 도리어 자신의 목숨보다 타인의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는가.
“[부탁합니다. 이 일을 맡아줄 사람은 이현 만신, 당신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현이 눈앞에 있었다면 그는 기꺼이 무릎을 꿇고 부탁을 했을 것이다.
이토록 간절하게 자신을 죽여달라 부탁하는 꼬락서니라니.
이현은 한참을 침묵하다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알겠다. 준비해두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독은 성능이 어떻습니까? 제가 웬만한 독은 먹히지 않는 체질이라 불발하면 곤란합니다.]”
“독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이건 실제로 저주에 가까운 계열이다. 네가 만독불침이라 해도 작동할 거다.”
“[다행입니다. 그러면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낸 뒤, 무불 통신은 종료되었다.
이현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란 말이야…….”
스스로 찾아와 죽여 달라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 신수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린 서강림에게 그런 폭언을 내뱉은 당신이야말로 악인이라고.
그때 자신이 했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서강림이 위험하다는 생각 역시도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 자신을 죽여 달라는 듯이 바라보던 어린 서강림의 눈이 떠올랐다.
“……쯧.”
그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짧게 혀를 찼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약 조제실로 향했다.
검은 옷자락이 수의처럼 흩날렸다.
* * *
어두운 방 안 곳곳에 피워둔 촛불이 일렁거렸다.
방 안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고 향을 피워둔 터라 기묘한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아이템들 덕분에 몸 상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상태였으니 이제 균열로 향해야 했다.
신수아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공유해둔 상태였다.
다들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가는 길이라도 보겠다는 것을 겨우겨우 말려 바깥으로 내쫓았다.
그렇다 한들 이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정작 이 방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비호문 일행이 아닌 외부인이었다.
“쯧, 귀찮게 여기까지 부르다니.”
이현은 팔짱을 낀 채 못 미더운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부른 것은 나였다.
가기 전, 만약의 사태를 준비해둬야 하니까.
이현은 삐뚜름하게 선 채로 내게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언독이다. 먹으면 제거 못 하는 건 알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