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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218화 (217/256)

<218화>

그 투박한 검날은 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스로만이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현시점에서 유일하게 무명을 해할 수 있는 무기.

무명이 그 검을 향해 살기를 내보이던 와중 서강림이 입을 열었다.

“이런 것이 존재하는 걸 보면 당신은 원래 인간이었던 신인 모양이군요.”

“……눈치가 빠르군.”

“당신의 진명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물어봐야 할 것이 많았다.

이대로 죽는다면 그 질문들은 어둠에 묻힐 것이다.

무명은 잘려나간 제 머리카락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섰다.

“나를 꺾는다면 모든 것을 알려주마.”

-촤아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종이 낱장들이 날아올랐다.

그것들은 서로 뭉쳐 종이로 된 천사의 형상이 되었다.

천사들은 서강림에게 달려들어 근거리에서 검을 휘둘렀고, 그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나면 원거리에서 무명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콰지직!

무명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그 움직임을 따라 공기의 흐름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조금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드는 상태였다.

서강림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번뜩였다.

[‘반신화’가 발동됩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울부짖는 이빨을, 한 손으로는 흰 단검을 들고 있었다.

흰 단검은 무명에게만 치명적일 뿐 천사들에게는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장검이 크게 궤적을 그릴 때마다 천사들의 머리나 날개가 잘려나갔다.

그가 천사의 사체를 짓밟고 그대로 무명에게 달려들었다.

-촤악!

공격이 들어갔으나 너무 얕았다.

애초에 단검의 길이가 짧아 치명상을 넣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날카로운 마력이 서강림을 향해 날아왔다.

-콰직!

옆구리에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뜨거운 피가 왈칵 쏟아지는 와중, 서강림은 물러서지 않고 무명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고통이 느껴졌으나 그는 억지로 그것을 무시했다.

아무리 이런 무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은 신.

부상을 각오하지 않고는 무명에게 닿을 수 없었다.

신력을 총동원하여 제 몸을 강화시킨 채 그는 무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흰 단검은 얕지만 확실하게 무명의 몸에 상흔을 새겨 넣고 있었다.

그의 몸에 적힌 문장에 금이 가자 주위에서 날뛰던 천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다음 문장을 지우자 무명이 조금씩 느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장을 하나씩 지워나갈 때마다 서강림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무명에게 새긴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상처들이었다.

그때 무명의 주먹이 서강림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피할 수도 없는 속도였다.

그가 주먹을 맞고 날아가 그대로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서강림이 피를 토하며 빠르게 다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으나 여전히 무명은 무방비했다.

곧바로 서강림에게 공격을 가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곳곳에 상흔이 남아 있었으나 무명의 위엄에는 상처가 없었다.

무명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확실히 눈이 밝고 현명한 것 같군. 내 몸에 새겨진 문장이 내 능력과 연관된 것을 눈치채다니.”

그의 몸에 새겨진 몇 개의 문장에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개중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워진 것도 있었다.

무명이 제 왼팔에 새겨진 빗금을 누르며 말했다.

“이 문장은 신수를 만드는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적혀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을 잃었다.”

지워진 문장에 피가 맺혀 흘러내렸다.

그가 또 다른 문장을 짚었다.

“이 문장은 내가 그 무엇보다 먼 곳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이 문장은 내 발걸음이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이게 해주었으며, 이 문장은 내가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너는 이 모든 것을 지웠다.”

지워진 문장들을 더듬으며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비탄이나 노여움은 없었다.

그저 끝을 알 수 없는 허무만이 고여 있을 뿐.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특히 네가 패배한다는 사실은.”

-콰과광!

서강림이 도주하려던 찰나, 그의 머리 위로 뇌격이 내리꽂혔다.

반신화를 했음에도 반응하기 어려운 속도였다.

그는 다급하게 피했으나 왼쪽 다리는 이미 숯처럼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캉, 카강…….

그 충격으로 들고 있던 흰 단검을 놓치고 말았다.

주워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서강림이 부들부들 떨며 손을 뻗었으나 무명이 먼저 흰 단검을 주워 들었다.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만약 네가 나를 꺾을 수 있다면, 네가 영원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자신의 승리를 서러워하고 있었다.

서강림의 나약함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진실로 서강림에게 패배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영원은 나의 존재를 약화시키기 위해 내 이름을 지웠다. 나의 사원을 파괴했고, 나의 역사를 소멸시켰다. 많은 이가 나를 잊으며 나의 힘도 줄어들었다. 나는 나약하고 가련한 신이다. 그러나.”

무료하던 얼굴에 서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너는 이런 나조차 쓰러트리지 못한다.”

무명은 눈물을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은 서강림이건만, 패배자는 무명처럼 보였다.

그가 흰 단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것을 찾아다 주어 고맙구나. 당장은 살 수 있겠군.”

-콰직!

그의 손에서 흰 단검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느꼈는지 손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검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서강림에게 이길 방법 따위는 없다.

무명이 조용히 서강림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스운 일이다. 회귀가 끝난 뒤에야 이런 일들이 일어나다니. 백영조차 단기간에 이런 수준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는데.”

“…….”

“백영이 아닌 너를 내 만신으로 삼았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었을까.”

서강림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절망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무명이 그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런 마음도 든다. 마지막으로 너에게 희망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서강림을 만신으로 삼는다면 수월하게 보호국을 쓰러트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만약 그들이 서강림을 생포하고 자신을 죽인다면 결국 영원의 뜻대로 흘러갈 뿐이다.

“미안하다, 작은 아이야. 그러나 네가 죽음으로써 세상은 좀 더 기회를…….”

-푸욱!

그때, 바닥에 누워있던 서강림이 검을 집어 들어 무명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그가 사용하던 장검, 울부짖는 이빨이었다.

무명이 안쓰러운 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도 알지 않느냐.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뿐…….”

그때, 무명의 입에서 왈칵하고 피가 흘러넘쳤다.

가슴의 상처는 아물 기색이 없었다.

고통보다도 당혹감이 먼저였다.

‘어째서지? 보호의 문장에는 아무런 타격도 없는데……!’

무명은 다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서강림은 그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위협적으로 칼날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명이 주술로 그 공격들을 막아내던 와중, 서강림의 얼굴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그 얼굴은……!”

거기에 있는 것은 서강림이 아닌 자신의 얼굴이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무명이 혼란에 빠져있던 와중, 서강림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버텨내고 있었다.

‘도둑쥐가 먹히고 있다……!’

서강림은 무명이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데미지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한 가지 가설을 세워두었다.

만약 도둑쥐로 무명의 모습을 훔친다면, 그 공격은 데미지를 줄까?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또한 마침 무명의 신체 일부 역시 손에 넣은 상태였다.

바로 검의 재료, 무명의 뼈였다.

[이능 ‘광염일장’이 발동됩니다!]

서강림이 불꽃을 피워 올렸다.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은 크기였다.

거대한 화구가 무명을 직격하자, 그는 몸이 타버릴 것 같은 열기와 통증을 느꼈다.

불타버린 왼팔이 여전히 거뭇했다.

회복이 되지 않는다.

무명은 그 사실에 충격을, 그리고 희미한 환희를 느꼈다.

그의 메마른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증명해봐라. 너의 자격을……!”

서강림은 그 외침 사이로 뛰어들어 무명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제는 일반적인 공격들도 무명에게 데미지를 주지만, 이름을 잃어버린 신은 여전히 강력한 존재였다.

서강림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대다수는 비껴가고 있었다.

‘도둑쥐로 인한 마력 소모가 너무 빠르다……!’

도둑쥐는 인간이 아닌 마수의 모습으로 변할 때 마력 소모량이 더욱 크다.

인간의 모습을 훔쳤으나 결국에 그것은 신의 유해.

신을 흉내 내는 대가는 예상보다 더욱 가혹했다.

‘시간을 끌수록 위험하다!’

반신화를 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은 나약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의 삶에 절망과 불리함은 늘 배경처럼 존재하는 것이었다.

뼈와 살을 내주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은 자신의 특기였다.

[이능 ‘투쟁 본능’이 발동됩니다!]

[이능 ‘궁서의 포효’가 발동됩니다!]

두 가지의 이능이 발동되자 투쟁심으로 인해 머리가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압도적인 힘으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온몸이 으깨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꼴사나운 모습이 되어야지만 겨우겨우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저 목을 물어뜯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비참한 꼴이 되어줄 수 있었다.

-카가강!

서강림의 검격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것은 더 이상 검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가장 깊은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이었으며, 살을 송두리째 베어내는 혹한의 냉기였고, 피비린내 그 자체였다.

그의 검이 무명의 몸에 상흔을 내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꽤 치명상인 것도 있었다.

무명은 서강림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인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자신을 불태우면서까지 나아가려는 저 집착, 저 광기.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인간을 봐왔지만 이런 인간은 처음이었다.

무명의 주술이 서강림의 살을 저미는 와중에도 그는 오로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콰과곽!

문장이 하나 더 지워졌다.

무명은 차마 그 공격의 궤적을 보지 못했다.

서강림의 공격은 어느새 더욱 빠르고, 더욱 예리해져 있었다.

또한 그의 몸에 나 있던 상처들이 어느새 아물고 있었다.

이변을 눈치챈 그때, 무명의 사방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콰과곽!

나무줄기들은 무명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했으나 그의 발목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이 공격, 누구의 공격인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명이 다급히 뒤편을 바라보자 어느새 신수아가 일어나 있었다.

그녀의 팔에 적혀 있던 문장들은 지워져 있었다.

신수아는 초록빛 눈동자를 불태우며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본 순간, 무명은 알 수 있었다.

대체 누가 그녀에게 신내림을 했는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이 기운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흙과 벌레의 왕’이 자신의 만신으로 신수아를 선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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