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217화 (216/256)

<217화>

무명은 강제로 신수아의 영혼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으나 점점 의식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머리 안쪽에서 당장 그를 받아들이라는 울림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받아들여, 신수아.

그에게 복종하고 그의 만신이 되어야 해.

그것이 세상을 위한 일이야.

“싫어, 싫어! 나는, 당신을……! 강림 씨!”

서강림은 신수아가 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

두 사람의 거리는 상당하였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오고 있었다.

신수아의 비명은 비통하다 못해 절망적일 정도였다.

서강림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신수들을 신속과도 같이 베어내고 있었으나 적이 너무 많았다.

‘시간이 부족해! 이대로 가다간……!’

도착하기 전 신내림이 끝나버리고 만다.

신수아가 거부하고는 있으나 점점 그녀의 이성이 무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고군분투를 하는 중, 무명은 그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도 정신력이 더 강하군.’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가 명령을 내린 순간 굴복했을 텐데, 신수아는 여전히 온몸으로 절규하며 무명을 거부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으나 경악할 정도는 아니다.

점점 신수아의 반항이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선한 아이야, 네가 세상을 구할 것이다.”

무명은 떨고 있는 신수아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어차피 이곳은 자신의 신역, 결국 그녀는 무너질 것이 뻔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첫 번째의 주인’이 신수아에게 신내림을 시도합니다!]

[신내림이 취소되었습니다!]

취소?

무명은 그 단어를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취소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적어 넣은 문장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텐데?

무명이 당혹한 시선으로 그녀를 살피던 중, 뒤늦게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대상에게 이미 수호신이 존재하여 신내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짧은 사이 누군가가 이미 신수아에게 내려오고 말았다.

대체 누가?

그때 뒤편에서 공기가 날카롭게 찢겨 나가는 것을 느꼈다.

-콰과광!

허공에서 불꽃이 무명을 노리고 강하했다.

무명은 마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사람처럼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력한 화구가 그를 덮치자 폭발과 함께 연기가 일고, 서강림이 무명을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서걱!

검이 무명의 목을 베고 지나갔으나 상처는 남아 있지 않았다.

도리어 무명이 손을 한 번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서강림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하지만 피 냄새는 없었다.

분신이 스러지는 것을 보며 무명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신수아는 그 자리에 없었다.

분신이 무명의 시선을 끄는 사이, 서강림이 신수아를 데리고 대피한 상태였다.

서강림은 기절한 신수아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꽉 끌어안은 채, 무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신수아를 데려가는 걸 막지 않았다.’

무명은 앞에서 공격한 것이 미끼라는 것도, 서강림이 신수아를 데리고 도주하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서강림을 막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경계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여기까지 왔나, 서강림.”

담담한 무명과는 달리, 서강림은 독이 바짝 오른 짐승처럼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에게서 흘러넘치는 기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위압감.

저 존재가 마음을 먹고 달려든다면 신수아를 지킬 수 있을까?

서강림이 날을 세운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무명은 당장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긴장된 공기 속에서 서강림이 말을 꺼냈다.

“방금 전.”

무명은 반응이 없었다.

서강림은 여전히 시선은 무명에게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당신과 신수아 씨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가.”

신수아가 무불 통신을 연결해둔 덕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무명의 목적은 결국 서강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영원을 막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명을 설득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편이 나았다.

물론 그에게는 원한도, 원망도 있다.

결국 전생에 백영을 보내 비호문을 몰살한 것은 무명의 짓이었으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으나 참아야 했다.

전생의 복수를 하느라 이번 생에 또다시 비호문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자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더라도 이용할 것은 다 이용한 뒤에 해야 했다.

서강림이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나를 죽이는 것보다 손을 잡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해본 적은 있다. 너는 내 예상보다 빠르게, 강하게 성장했으니까.”

무기질적인 어조로 무명이 말을 이어갔다.

“만약 이번이 마지막 세계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너에게 기대를 걸어봤을지 모른다.”

마지막 세계.

마지막이라는 그 울림이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무명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제 회귀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너는 너무 나약하다. 지금의 너로서는 아무리 해도 영원을 쓰러트릴 수 없다.”

“…….”

“이러다 너의 육체가 빼앗기게 된다면 그 뒤부터는 막을 방법이 없다. 너를 내 만신으로 삼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그래 봐야 너는 죽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었다.

지쳐 보이기도 했고 해탈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명이 우물 같은 눈으로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또한 보아하니 너는 경계에 상당히 가까워진 것 같구나. 이대로 가다가 경계를 넘고 이지를 잃어버린다면, 너는 마수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서강림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존재는 여러모로 위험했다.

그때, 조곤조곤한 어조가 들려왔다.

“자살하지 않겠느냐?”

너무도 평화로운 목소리였다.

자살이라는 단어에 다른 뜻이 있나 싶을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

서강림이 대답 대신 시선으로 응수하고 있자 무명이 말을 이어갔다.

“너의 부모를 죽이고, 너의 삶을 비탄의 구렁텅이로 끌고 간 것은 불변하는 영원이다. 네가 죽으면 그의 계획에 먹칠을 할 수 있다.”

서강림은 뒤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어둠인가 환상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자신의 귀에 속삭였다.

너는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고.

“너의 활약으로 보호국의 전력이 급감한 것 역시 감사하게 여긴다. 너의 복수는 내가 마저 해줄 테니 여기서 물러서라.”

너의 죽음으로 인해 이 세계가 안전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란 말인가.

“네가 나를 원망하는 것도 안다. 전생에 나는 백영을 보내 너의 동료들은 모두 죽였으니. 이 일이 모두 끝나면 나는 죽음으로 속죄하겠다.”

눈앞에 있는 것은 강대한 신이었으나 무력이 아닌 언어로 서강림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궤변이었으나 호소력이 있었다.

서강림도 스스로를 늘 경계하고 있었고,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으니까.

“확실히 제가 죽는 게 여러모로 안전하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렇지만 거부합니다.”

“어째서지?”

서강림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신수아의 무게와 체온을 느꼈다.

자신이 그림자 도둑에게 먹혀, 어둠 속에서 자살을 명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 그녀는 말했다.

죽지 말라고.

“내게 죽지 말라고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

“그리고 당신은 내가 나약하다 말했지만, 내 눈에는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차사들을 피해 이곳에 숨어 있고. 그리고 나는 예전부터…….”

서강림이 검을 겨누며 말했다.

“신이라는 족속들이 하는 말은 안 믿어서.”

-츠즈즛……!

그 말에 주위의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뇌운으로 가득 찬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명의 눈동자가 신력으로 기이한 빛을 띠는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말로 서로를 설득할 수 없다면 힘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겠군.”

곧바로 공격에 나설 수도 있을 텐데 여전히 무명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신수아를 힐끗 보았다.

“신수아를 뒤편에 놓아두어라. 이 싸움에 휘말려 그녀가 죽는다면 나 역시 곤란해지니까.”

“…….”

“나는 네 힘을 확인해보고 싶을 뿐이다.”

그의 말대로 이 상태로 신수아를 들고 싸울 수는 없었다.

서강림은 분신을 만들어 신수아 곁에 붙여두고는 뒤편으로 이동시켰다.

이제 이곳에 서 있는 사람은 무명과 서강림, 둘 뿐이었다.

“내게 가능성을 보여 주거라, 작은 아이야.”

서강림이 검을 그러쥐는 것과 동시에 첫 번째의 주인이 팔을 들어 올렸다.

무명의 팔 안쪽에 새겨진 문장이 일순간 빛을 번뜩이는 것 같았다.

“나를 쓰러트리고 너의 자격을 입증해라.”

-콰과광!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열린 것만 같았다.

끝도 없이 높아 보이는 천장.

마력으로 이루어진 수백 줄기의 공격이 서강림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이능 ‘가속’이 발동됩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공격은 음속이었으나, 서강림의 몸놀림은 광속과도 같았다.

무명의 공격은 겨우 그의 그림자에만 와닿을 뿐.

그가 빗줄기 사이를 달려나가는 것 같은 몸놀림으로 무명의 공격을 모두 피해가며,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유성탄’이 발동됩니다!]

또다시 하늘에 별이 맺혔고, 그 별의 주인은 서강림이었다.

이제는 무명이 피해야 할 차례였다.

그러나 그는 그저 태산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콰과광!

유성탄이 그의 온몸으로 쏟아졌다.

한 발 한 발이 그야말로 살인적인 파괴력이었다.

인간은 물론이고 그 어떤 마수라 할지라도 넝마가 될법한 공격.

사방이 먼지로 자욱해진 가운데 흰 옷자락이 흩날렸다.

무명의 것이었다.

그는 그 모든 공격을 받아냈음에도 멀쩡해 보였다.

“포기해라. 나 외의 그 누구도 내게 상처입히지 못……!”

그때, 흙먼지 사이에서 서강림이 뛰쳐나와 그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애초에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유성탄은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리고 방심시키기 위해.

-서걱!

흰 검이 무명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성탄의 공격에도 움직이지 않던 그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긴 흑발이 잘려나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며 그의 눈이 커졌다.

고작 머리카락일 뿐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하백헌이 갖고 있던 무기였다.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흰 단검.

머리카락이 잘려나감과 동시에 무명의 손끝에서 마력의 탄환이 발사되었다.

-퍼엉!

날카로운 마력이 서강림의 옷자락을 찢고 흩어졌다.

서강림은 공격이 날아들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무명의 간격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가 단검을 휘두를 때마다 무명의 시선이 빠르게 이동했다.

-카가강!

무명이 곧바로 얼음으로 된 장벽을 만들었으나 한 박자 느렸다.

흰 단검은 그의 살을 베어내고 옷자락을 베었다.

무명의 상체가 드러나자, 서강림은 그곳에 빽빽하게 적혀 있는 문장들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무명의 능력인가?’

방금 전, 무명은 신수아의 몸에 글귀를 적어 넣으면 그가 적은 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몸에 새겨진 저 문장들이 무슨 뜻을 갖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무명의 능력임은 확실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틈을 노리던 중, 서강림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아까 말했습니다. 나 외의 그 누구도 내게 상처입히지 못할 거라고.”

그 증거로 방금 전 서강림의 분신이 무명을 공격했을 때 데미지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베어내는 ‘절대검’을 발동시킨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서강림에게는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보호국이 이런 무기를 갖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는 흰 단검을 든 채 말했다.

검날에 몇 방울의 피가 맺혀 있는 상태였다.

“당신의 뼈로 만든 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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