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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212화 (211/256)

<212화>

* * *

안나비는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 눈을 떴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아직도 몽롱한 감이 있었다.

눈앞이 뿌옇고, 머리가 빙빙 돌아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렸다.

왜 기절했지?

이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그녀가 고통 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려 애썼다.

흐릿한 기억이 표류하듯 떠올랐다.

자신을 비롯한 수십 명의 차사들이 무명의 신역을 확인하여 그곳으로 기습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와 싸우다가 공격을 맞고 실신을…….

“윽……!”

드디어 떠올랐다.

광대패의 가면을 쓴 남자가 자신을 공격했던 것이 벼락처럼 뇌리에 박혔다.

광대패와 마주했고, 패배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 그녀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살아 있지?’

자신은 살아 있었고 배에 난 상처도 치료된 것 같았다.

그들이 평소에 하던 짓을 생각하면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 자신은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

뒤늦게 다른 차사들이 와서 구해주기라도 한 것일까?

혼란 사이에서 뒤늦게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쓰러져 있는 차사들이 보였다.

자신이 오기 전, 광대패에게 무력하게 쓰러지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안나비가 다급히 그들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자신의 손과 발이 포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지 않았으니 안심하세요.”

안나비가 흠칫 놀라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가면을 쓴 여자가 있었다.

자신의 토우를 손쉽게 파괴하던 여자였다.

“……죽지 않았다고 하셨습니까?”

“네. 당신의 동료들은 모두 살아 있습니다. 기절했을 뿐이에요.”

그 말을 듣고 살펴보니 확실히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동료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죽일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안나비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의도입니까? 왜 우리를 살렸습니까?”

“그쪽과 우리는 적이 아니니까요.”

“그런 말을 제가 믿을 거라 생각합니까?”

안나비의 목소리는 그저 차가웠다.

자신들을 왜 살렸는지는 몰라도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광대패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당신들은 운명 보호국에게 속고 있어요. 광대패인 척을 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은 운명 보호국의 짓입니다.”

진실을 말했음에도 안나비의 시선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자가 하는 말이다.

거짓말임이 분명하기에 안나비는 그 말에 반문하지도,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고 있었다.

광대패 역시 안나비가 믿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딱히 실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렇게 말해봐야 당신 입장에서는 믿기 힘들겠죠. 증거나 믿을만한 증인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증거? 증거라고 해봐야 조작된 것일 게 분명했다.

안나비가 거부감이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던 그때, 무너진 책장 너머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이쪽은 아무래도 남자 같았으나 방금 전 자신과 싸우던 사람은 아니었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안나비는 이상하게도 그가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저 체격, 저 실루엣은…….

그때 남자가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안나비, 오랜만이군.”

그 목소리를 들은 안나비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러나 남자의 맨얼굴을 보자 안나비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남자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공 팀장님……?”

가면 너머로 드러난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얼굴, 공주 팀장이었다.

안나비는 그와의 조우가 반가운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공 팀장님이 왜 여기에 계십니까? 팀장님은…….”

공주 팀장은 죽었다.

분명히 그렇게 보고를 받았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떠났다가, 광대패에게 살해당해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그가 왜 광대패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 혼란에 빠져 있던 중, 공주가 입을 열었다.

“내가 죽었다고 설명하던가? 서문 팀장이?”

“……예.”

“우습군.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나를 죽이려 했다가 실패한 거다.”

공주 팀장, 정확히 말하자면 공주로 변신한 서강림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현재 그는 ‘도둑쥐’를 사용하여 공주로 위장한 상태였다.

그는 공주의 행세를 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운명 보호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광대패를 사칭하여 벌여온 악행들.

그리고 불변하는 영원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해온 실험.

대부분은 진실이었으나 약간의 거짓도 섞여 있었다.

“나는 뭔가 수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서 비밀리에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운명 보호국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서문 팀장이 나를 살해하려 했지.”

“…….”

“그러다 운 좋게 광대패가 연구소를 기습했고 나는 목숨을 건졌다.”

공주 역시 보호국과 한통속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봐야 안나비가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니까.

지금은 안나비를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설명이 모두 끝난 뒤, 안나비의 입술이 떨려오고 있었다.

“보호국에서 그런 짓을 했다는 겁니까? 저는,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분명히 동요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몇 년간 믿고 따르던 공주 팀장의 말이다.

내부 사정을 훤히 아는 그가 하는 말이었기에 그 누가 하는 말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공주는 조용히 안나비에게 손을 뻗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걸 안다. 증거도 없으니 더 혼란스럽겠지.”

툭, 툭. 안나비를 묶고 있던 밧줄이 끊겨 나갔다.

안나비는 포박이 풀린 뒤에도 공주를 공격하거나 도망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증거는 곧 네게 보여주겠다. 광대패와 마주쳤다는 사실은 밝혀도 좋지만, 나를 만났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길 바란다.”

“…….”

“그리고 지금 첫 번째의 주인을 찾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공유해줄 수 있나?”

“……그건 어렵습니다.”

“알겠다.”

첫 번째 질문에는 침묵, 두 번째 질문에는 거부가 돌아왔다.

그 말인즉, 첫 번째 질문에는 침묵으로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방비하게 등을 내보였다.

안나비가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걸 믿는다는 듯이.

“조만간 네 앞에 증거를 갖다주겠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공주는 그렇게 말한 뒤, 다른 광대패와 함께 자리를 떴다.

안나비가 따라오는 기색은 없었다.

멀지 않은 곳으로 이동해 인기척이 없는 곳에 다다른 뒤 두 사람은 멈춰 섰다.

신수아가 상대방을 힐끗 보며 무불 통신으로 말을 걸었다.

“[강림 씨, 연기 잘하네요.]”

“[고맙습니다.]”

어느새 서강림은 공주가 아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만일을 대비해 공주의 손톱을 갖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괜찮을까요? 안나비 씨가 우리 말을 믿을지……. 차라리 세뇌를 하는 게 나았을 것도 같은데.]”

“[납치 후에 세뇌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세뇌보다는 직접 설득하여 마음을 돌리는 게 장기적으로는 나을 겁니다.]”

안나비 정도의 실력자는 단번에 세뇌가 불가능하니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 안나비를 포박하여 데려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그렇게 세뇌를 해봐야 안나비 한 명만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일반 차사 중 대다수는 정의감이 투철하고, 광대패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광대패가 가짜였고, 실제로는 보호국이 흑막이었다는 것을 알면 곧바로 등을 돌릴 겁니다.]”

서강림은 안나비 한 명만이 아닌 일반 차사 전체를 편으로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뇌를 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눈앞에 보여주고 설득을 하여 뿌리부터 뒤흔드는 방법이 나았다.

“[공주 팀장이 아닌 제 맨얼굴로 설득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믿지 않겠죠. 위험하기도 하고.]”

안나비와는 인연이 있고, 그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말하자면 좋은 쪽이었지만 그래 봐야 깊은 관계를 쌓은 것은 아니었다.

서강림이 정체를 드러내고 설득을 시도해봐야 거부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리고 안나비가 보호국에 보고할 가능성도 있고.’

공주가 살아있다는 보고를 전달해봐야 서강림에게 큰 손해가 될 것은 없다.

반면 서강림이 이 신역에 찾아왔고, 광대패에 가담했다는 정보는 쉽게 넘겨줄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안나비에게 밑밥은 뿌려놓았으니 이제 다른 것을 고민해 봐야 했다.

그는 안나비와 마주치기 전 봤던 신수를 떠올렸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던 그것.

그것은 서강림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부리나케 달아나버렸다.

‘그 신수, 다른 종류와는 다르게 지성이 있어 보였지. 놓친 게 아쉬운데…….’

그것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왜 도망갔을까?

단순히 몸을 피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서강림은 더욱 깊은 곳으로 달려나갔다.

* * *

수만 권의 책이 사방을 가득 채운 방 한가운데 누군가가 오래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첫 번째의 주인, 무명이었다.

그가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사이 무언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첫 번째의 주인이시여. 초대한 손님이 신역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보고를 올리고 있는 것은 서강림과 조우했던 신수였다.

그것은 신역 내부를 감시하고 있던 중이었다.

무명은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드디어 왔구나. 보호국은 어떻게 되어가나?”

“생각보다 강합니다. 신수 중 다수가 사망하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무명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흰 옷자락은 피에 젖은 상태였다.

길게 베인 자상에서 스며 나오는 피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바로 회복될 상처였으나, 그것은 여전히 아물 기세가 없어 보였다.

‘보호국 놈들, 그런 것까지 준비했을 줄이야.’

보호국에서 습격을 감행한 것은 이틀 전의 일이었다.

이 장소를 알아냈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하였으나 모두가 한 줌의 필멸자일 뿐, 쉽게 제압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건만.

‘그걸 찾아내다니. 지독할 노릇이군.’

특수한 무기로 받은 공격은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보호국의 차사들을 모두 전멸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가 몸을 숨기고 있는 건 보호국 측에서 준비한 무기 때문이었다.

그 무기만 없다면 두려울 것은 없었다.

“놈들이 갖고 있는 단검은 어떻게 됐지?”

“죄송합니다, 주인이시여. 상대가 워낙 강적인지라 아직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보고에도 무명은 화를 내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보호국에서도 작정을 하고 급습을 하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알림창이 하나 떴다.

[‘신수아’가 무불 통신을 통해 연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알림창을 힐끗 본 뒤, 무명은 수신을 거부했다.

며칠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호국의 습격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태라 연락을 취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백히 무시를 하고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혼자 온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대동했다고 했지.’

신수아와 동행한 남자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정체는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었다.

높은 확률로 서강림일 것이다.

그는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신수아를 내 만신으로 삼으려 했으나, 예상과는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특히 서강림은…….’

회귀를 했다 하더라도 진즉 죽을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올 줄이야.

고작 해야 충삼품이건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파괴하면서 이곳까지 오고 말았다.

서강림을 떠올리는 무명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깃들었다.

‘그라면…… 불변하는 영원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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