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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207화 (206/256)

<207화>

연락을 취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흉계를 품고 있다 한들, 우리는 그곳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신수아는 요한을 달래기 위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제가 먼저 들어가는 게 여러모로 유리해요. 강림 씨가 무불 통신을 이용해 상황을 지켜본 뒤 들어오기로 했거든요.”

“그편이 확실히 나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만약 첫 번째의 주인이 다짜고짜 자매님을 공격하면 어떡하지요?”

“걱정마세요. 아직 미흡하지만 신격화도 시작됐고,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요.”

신수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두려움은 조금도 없이, 그것이 응당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듯한 어조였다.

나는 그 태도가 믿음직스럽기보다는 불안하게 느껴졌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인 걸 아니까.

그녀가 또다시 자신을 희생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또한 신수아는 무명의 타겟이었다.

차라리 그녀가 가지 않는 편이 안전할지도 모른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그때, 신수아가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말을 꺼냈다.

“혹시 또 저 두고 갈 생각하고 있어요? 서화경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절대로 강림 씨 혼자 가지 말라고.”

선생님은 분명히 그렇게 지시했다.

그 지시 사항에 차마 반대 의견을 내지는 못했다.

내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신을 혼자서 쓰러트릴 정도로 강해진 것은 아니니까.

마음 같아서는 다른 멤버들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무기고 열쇠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았으나, 공주 팀장이 사망하며 열쇠는 기능이 정지하고 말았다.

내가 복잡한 심경으로 그녀를 보는 사이, 어느새 지정된 시각이 다가왔다.

신수아가 초대장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 먼저 갈게요. 나중에 봐요.”

신수아가 초대장을 찢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그녀가 보이고 있었다.

미리 무불 통신을 연결해 둔 덕분이었다.

“형제님, 신수아 자매님은 괜찮으신가요?”

“예. 괜찮은 것 같긴 합니다만…….”

그녀가 진입하자마자 습격을 받는 등의 상황도 가정하고 있었으나, 일단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무불 통신이 비추고 있는 신역을 빠르게 살폈다.

그녀가 서 있는 장소는 어둑한 실내였다.

언뜻 보니 거대한 도서관의 입구인 것 같았다.

그곳이 도서관이라는 걸 눈치채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은 그 장소가 파괴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강림 씨, 보이죠?]”

“네. 한 차례 전투가 일어난 것 같군요.”

거대한 도서관은 마치 폐허 같았다.

잘리고 찢기고 불태워진 책들과 무너진 책장들은 일종의 시체처럼 보였다.

다른 곳도 아닌 신역에서 이 정도의 전투가 발발했다니.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의문을 품음과 동시에 내 머리에 하나의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운명 보호국.

분명히 공주는 첫 번째의 주인의 신역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을 습격할만한 자들이라면 보호국밖에 없었다.

우리가 다섯 번째 대마경을 공략하느라 몇 달이 흘렀으니, 그 사이 이곳을 찾아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으나, 놀람은 곧 잦아들었다.

보호국의 습격은 계산 하에 들어가 있을 것이고, 선생님은 수많은 날 중 이날을 골랐다.

오늘은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날.

이들의 습격은 내게 해악이 아닌 기회로 돌아올 확률이 높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후퇴가 아니다.

그저 선생님을 믿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면 될 뿐이었다.

나는 상황을 살피며 신수아에게 물었다.

“첫 번째의 주인은 여전히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까?”

“[네.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다행히 침입자들과는 마주치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올 정도라면 보호국인 걸까요?]”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침입자가 보호국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신수아는 천자락으로 얼굴 아래쪽을 가리며 말했다.

“[얼굴이 들키면 좋지 않을 것 같네요. 여기서는 상점이 안 열리니, 올 때 위장할 물건 좀 갖다주세요.]”

지금 이 상황에서 보호국에게 얼굴을 들키면 좋을 것이 없다.

원래라면 상황을 더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빨리 합류하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나는 요한 신부에게 말했다.

“침입자가 신역을 먼저 방문했습니다. 대규모 전투가 발발한 것 같고, 아마 높은 확률로 운명 보호국일 것 같습니다.”

“보, 보호국이요?”

“예. 만일을 대비해서 그 사실을 강도현에게 알려주세요.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신역 시스템을 가동했다.

초대장으로는 신수아밖에 가지 못하지만, 유하랑이 초대장을 ‘통찰안’으로 분석해 좌푯값은 획득한 상태였다.

나는 광대패의 가면을 쓴 뒤 곧바로 이동을 선택하였다.

[‘첫 번째의 주인’의 신역 좌표를 확인하였습니다.]

[해당 신역으로 이동합니다!]

흰빛이 시야를 가리더니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신역에 도착하니 시각 공유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던 감각들을 느낄 수 있었다.

탄내와 오래된 책의 냄새, 곳곳에 남아 있는 격렬한 마력의 흔적.

여러 사람이 죽고 다쳤으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최악의 타이밍에 이곳을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단 신수아를 빠르게 찾아 다가갔다.

“[신수아 씨, 저 왔습니다. 괜찮나요?]”

혹여라도 주위에 누군가가 있을까 싶어, 나는 무불 통신을 통해 말을 걸었다.

구석에 있던 신수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잠시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녀가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졌다.

신수아는 내가 건네준 가면을 쓰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무 일 없었어요. 보아하니 전투가 일어난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죠?]”

“[네. 길어야 며칠일 것 같군요.]”

곳곳에 뿌려진 피들은 말라붙어 있었지만 아직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어제, 혹은 이틀 전쯤 싸움이 일어난 것일까?

첫 번째의 주인과 연락이 끊긴 것도 대략 이틀 전부터였던 게 생각났다.

차사들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주위에 시체가 없는 걸 보면 퇴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내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우리 두 사람만으로 차사들을 상대하기에는 벅찬 감이 있었다.

신수들을 불러내 싸울 수도 있겠지만, 요롱이와 리니를 보면 내 정체를 알아차리게 될 테니 소환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신역에서는 신수를 소환할 수 없기도 했지만.

우선은 상황을 더 살피기 위해 우리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봤던 현장도 꽤나 살벌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상태가 심했다.

안쪽의 풍경을 본 신수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심각하네요.]”

사방이 검고 붉은 액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붉은 것은 피일 테고, 검은 것은…… 아무래도 잉크나 먹 같았다.

피비린내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책장은 모두 무너져있고 책들은 타 들어간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런 풍경 따위가 아니었다.

근방에서 인기척과 함께 기이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끼이익……!

무너진 책장 너머에서 기괴한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쏟아지듯 다가왔다.

차사들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에 감사하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도 흉악했다.

그것은 희고 거대한 사슴처럼 생겼으나 머리에 가면처럼 두개골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그 사이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넘치는 중이었다.

텅 빈 눈동자에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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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종이 이각수

[등급] 용삼품(龍三品)

[설명] 종이와 먹으로부터 태어난 신수. 지정된 영역을 지키며, 초대받지 않은 자들을 배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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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익!

놈이 투레질을 하더니 그대로 나를 향해 돌진했다.

백과 흑으로 이루어진 몸뚱이 곳곳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의 피와 살점이 묻은 뿔이 나를 꿰뚫을 듯이 노리며 달려든 그때.

-콰직!

나는 돌진하는 이각수의 뿔을 그대로 붙잡은 뒤, 한 바퀴 몸을 틀어 등 위에 올라탔다.

놈은 뒤를 빼앗기자 놀라 발버둥을 치며 나를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 사이, 신수아가 번개처럼 날아들어 놈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다.

-으드득!

가슴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며, 가슴의 상처를 통해 검은 먹이 왈칵 쏟아 넘쳤다.

놈이 비틀거리는 사이 나는 곧바로 목을 날려버렸다.

목을 잃은 이각수가 버둥거리던 와중, 사방에서 기이한 울음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끼이이……!

돌아보니 똑같은 모양새를 한 놈들이 더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놈들 역시 부상을 입었다는 것.

난도질 된 책처럼 종이 부스러기를 흩날리며, 신수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지직!

나는 그대로 공격을 피하며 가장 앞에 선 놈의 뿔을 도려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놈들이 신수아에게는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 온 사람이니까.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콰과곽!

그러나 신수아는 망설임 없이 놈들을 도륙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나무줄기가 사슴들의 목을 꿰뚫고, 놈들이 비틀거리는 사이를 노려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어느새 모든 신수가 쓰러지자 신수아가 검을 거두며 말했다.

“[일단은 전부 처리했네요. 이 신수들…… 부상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쳤다면 꽤 곤란했겠어요.]”

상당히 강력한 신수였음에도 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차사들에게 입은 부상이겠지.

선생님은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우리를 이날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무명과 보호국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 말이다.

내 적끼리 싸워 저들끼리 피를 흘리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었다.

다만 불안한 지점은 있었다.

나는 아직 첫 번째의 주인이 누구이며, 어떤 목적을 지녔는지 모른다.

또한 어째서 보호국과 반목하고 있는지도.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 전에 보호국이 첫 번째의 주인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또한 공주는 무명이 갖고 있는 어떤 물건을 찾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보호국에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 이유에서 첫 번째의 주인은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

적의 적은 또 다른 적이지만 아군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첫 번째의 주인과 싸울 때를 대비해 어느 정도 보호국이 힘을 빼놓는다면 좋겠지만, 타이밍을 못 맞추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우선 첫 번째의 주인이 어디 있는지 확인을 해야겠지.

나는 죽은 신수를 바라보다 말했다.

“[이 신수들, 신수아 씨에게는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죠. 만약 신수아 씨랑 단둘이 마주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잘하면 무명에게 저를 안내할 수도 있겠네요.]”

그게 가능하다면 살아남은 신수를 찾아내 길잡이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은 내부의 상황을 더 파악해야 했다.

우리는 죽은 이각수들의 시신을 지나쳐 안으로 향했다.

황야처럼 넓은 도서관 내부를 살피던 중 신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그녀가 작게 속삭이자, 나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너진 필사실 안에 사람의 실루엣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죽은 신수 사이에 누워있는 차사의 시체들이 보였다.

열? 스물?

시체가 심하게 훼손되어 몇 명이 죽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들과 싸운 것이 상당한 강적이라는 것이었다.

차사들은 오랜 시간 보호국의 훈련을 받아온 전문가들이다.

그런 차사들이 이렇게 죽어 나가다니.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차사의 가면을 걷어냈으나 모르는 얼굴이었다.

가면을 벗었어도 죽음의 공포가 가면처럼 얼굴에 박제되어 있었다.

나는 애도하는 대신 죽은 차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에게는 정보가 필요했다.

[이능 ‘경계를 보는 눈’이 발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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