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그는 가볍게 질문을 던졌지만, 서강림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쉽게 답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과연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일까, 인간이 신화를 쓰며 신을 만들어낸 것일까.
서강림은 노트북을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신은 인간으로부터 태어났겠지.”
“그래. 많은 영웅이 사람들에 의해 신격화된 것처럼.”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신화가 있었다.
여러 신화에서는 신이 먼저 존재했고,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강림의 말대로 인간으로부터 태어나는 신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서강림이 그런 존재였다.
인간이었으나 영웅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고 신봉하면서 신격화가 진행되었다.
서강림 외에도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여럿일 것이었다.
“서강림 같은 경우는 실제 인물이지만, 가공의 이야기가 생명을 얻는 일도 있겠지. 충분한 믿음이 있다면.”
독고준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실험해보고 싶었어. 만약 내가 쓴 소설을 많은 이들이 믿는다면, 그것도 실재가 되지 않을까? 너를 숭배하는 가상의 종족이 만들어질지도 모르지.”
궤변 같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많은 신화는 인간의 믿음으로부터 탄생했을 테니까.
독고준이 모니터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소설에 그런 설정을 넣어봤어. 너를 숭배하는 종족이 생기지 않아도 손해는 없고, 생기면 좋은 거니까.”
그의 말대로 어느 쪽이든 간에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만약 자신을 숭배하는 가상의 존재들이 태어난다면, 자신의 신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나쁘지 않은, 아니 상당히 괜찮은 발상이었다.
확실히 독고준은 쓸모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긴 순간, 그는 그 생각을 취소했다.
서강림이 백스페이스를 누르며 원고를 삭제하기 시작하자 독고준이 빠르게 노트북을 낚아챘다.
“뭐 하는 거야?”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왜 나랑 신수아 씨가…….”
삭제하고 있는 부분은 키스신이었다.
이딴 내용을 쓸 줄이야.
서강림이 독고준을 노려보고 있자, 그는 소중하게 노트북을 꼭 껴안았다.
“어차피 삭제해도 백업은 해놨다고. 그리고 이 장면은 소설 내용상 꼭 필요해!”
“신수아 씨한테 실례야. 삭제해.”
서강림이 강하게 명령하자 독고준도 결국에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툴툴댔다.
“키스 정도로 너무하네. 아니, 애초에 왜 둘이 안 사귀어? 내가 봤을 때는 두 사람이 운명의 상대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네가 할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설령 서강림과 신수아가 서로에게 연애 감정을 품는다 한들, 제3자인 독고준이 함부로 말을 얹을 내용이 아니었다.
독고준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껌뻑였다.
“내가 할만한 이야기가 왜 아니야?”
“넌 제3자잖아.”
“제3자라니. 따지자면 내가 네 아버지 같은 존재인데?”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서강림이 광인 보듯이 독고준을 응시하자 그는 도리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쓴 소설로 너라는 신이 태어났으니, 너를 만든 내가 아버지 격이잖아?”
“…….”
“그렇지, 아들아?”
서강림은 감탄했다.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다채롭게 미칠 수 있단 말인가?
서강림은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그 장면은 삭제해. 나머지는 돌아와서 확인할 거야.”
광인을 말로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서강림은 아들 운운하는 말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서강림이 지시만 내린 채 방을 떠나가자 독고준이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강림아, 상견례 할 때 아빠 꼭 불러줘야 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독고준은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서강림은 쑥스러움이 많은 편이니, 연애 관련한 이야기도 숨길 가능성이 컸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들을 독고준은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정말 여러모로 궁금하단 말이지.’
서강림이 전해주는 정보들을 가지고 그는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며 추측해보고 있었다.
보호국의 정체, 서강림의 회귀, 백영의 존재 등에 대해서.
나름대로 가설을 세우기도 했지만 아직 정보가 부족했다.
‘서강림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내게 숨기는 건지.’
서강림이 자신을 온전히 믿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재촉하지 않는 건 이 상황이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정보는 더 갖고 싶단 말이야.’
독고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머지 원고를 부지런히 작성했다.
한참이나 키보드를 두들기던 독고준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늦은 새벽이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그의 손에는 도청 장치와 감시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지난번에 서강림 방에 잠입하는 건 실패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서강림 방은 부재중일 때 설치하고, 우선 근처 통로에라도 설치해둘까.’
그는 꽤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강림의 방으로 향하던 중, 독고준이 복도에 우뚝 멈춰 섰다.
그곳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라? 신수아 씨?”
서강림이 숙소 문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신수아였다.
독고준이 나타나자, 신수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하였다.
“무슨 일이죠? 이 야밤에.”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리고 찌를 듯한 시선.
그녀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독고준은 미소를 지은 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건 나야말로 할 말인데? 신수아 씨가 여기 왜 있어?”
어째서 신수아가 그의 방 앞을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내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독고준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 나를 기다린 거야? 혹시 내가 서강림 방에 잠입할까 봐?”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듣고 보니 당신을 막아야겠네요.”
그녀는 독고준이 들고 있는 감시 카메라와 도청기를 바라보았다.
신수아에게서 고요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고준이 접근하면 그대로 전투를 벌일 듯한 기세.
독고준은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야, 우리도 꽤 오래 알고 지냈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나한테는 냉정하다니까.”
“……가서 주무시죠.”
“흐음. 나는 왜 신수아 씨가 여기 있는지 궁금한데. 정말로 나를 막으려고 기다린 건 아닌 듯하고.”
독고준은 집요하게 신수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성격상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끝까지 버티고 늘어질 것이 뻔했다.
신수아는 작게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불침번 서는 거예요. 여기까지 암살자가 들어오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하하, 지극 정성이라고 해야 할지, 과보호라고 해야 할지.”
독고준은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신수아 씨의 그런 정신 나간 부분이 좋기는 해.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가서 잠이나 자세요. 그리고 서강림 씨한테는 비밀로 해줘요.”
“응, 응. 나는 두 사람 응원하니까. 그러면 신수아 씨도 좋은 밤 돼.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독고준은 다정하게 밤 인사를 남긴 뒤 자리를 떠나갔다.
그가 떠나간 뒤에도 신수아는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암살자를 대비하려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으나, 서강림을 지키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때, 서화경 선생님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강림 씨가 어떤 상태인지 영영 몰랐겠지.’
며칠 전, 강도현을 통해 서화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녀가 연락을 한 이유는 현재 서강림의 상태에 대해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신수아는 크게 동요했었다.
‘강림 씨, 경계에 어디까지 다가간 걸까?’
서강림이 경계에 다가가며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으나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신수아, 자신의 존재가 그 효과를 약화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그때, 내 방에서 잠들었구나.’
신수아는 서강림이 자신의 방에서 곤히 잠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그는 얼마나 평화로워 보였던가.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는 서강림을 자신의 방에서 재우고 싶었지만, 그가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때문에 신수아는 연락을 받은 이후 매일 밤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가 꾸는 악몽을 쫓아내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신수아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서강림이 짧게나마 좋은 꿈을 꿀 수만 있다면, 평생의 불침번이라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신의 밤이 잠시라도 편안할 수 있다면.’
그렇게 오늘도 신수아는 서강림의 수호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옅은 새벽빛이 드리운 뒤에야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자리를 뜬 뒤에도 숲 향기가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 * *
길일, 당일.
선생님이 지정한 시각까지는 약 10분 정도를 남겨두고 있었다.
나와 신수아, 그리고 요한 신부는 내 방에 모여 지정 시각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요한 신부는 무릎을 꿇은 채 우리를 위해 한참을 기도하고 있었다.
[이능 ‘빛의 인도’가 발동됩니다!]
보호 마법이 우리에게 깃들자, 희미한 빛의 파편이 주위에서 반짝거리다 사라졌다.
긴 기도가 끝난 뒤 요한 신부는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여전히 근심 어린 표정이었다.
“보호 마법을 걸어두었으니, 당분간은 회복력과 방어력이 상승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하아, 정말 걱정입니다. 이렇게 두 분만 보내야 하는 게. 다른 사람들도 두 분이 떠나는 걸 지켜보고 싶어 하셨지만…….”
오전에 도심에서 문이 다량 발생하며 문하생들을 비롯해 전투 인원이 외부로 차출된 상태였다.
어제 하루 종일 걱정하던 모습을 보면 차라리 이 자리에 없는 것이 나은 것도 같았다.
그가 조금 울상인 얼굴로 신수아에게 물었다.
“신수아 자매님께서 먼저 신역에 간다고 하셨죠? 혼자 가셔도 괜찮을까요?”
“네, 첫 번째의 주인이 처음부터 저를 적대하지는 않을 테니 혼자 진입해도 괜찮을 거예요.”
신수아가 무명의 신역에 방문하는 이유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였다.
신수아는 무명에게 자신을 더욱 키워달라 제안했고, 무명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무명이 정말로 순수한 목적으로 신수아를 불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명은 나의 적이었고, 그 적은 내 동료에게 신내림을 하고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 신이 신수아를 신역에 불러들였다면 목적은 하나다.
그녀에게 신내림을 하기 위해서겠지.
여기까지는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었으나 아직 의문인 부분도 있었다.
아직도 첫 번째의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첫 번째의 주인은 신수아와 연락을 끊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