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197화 (196/256)

<197화>

미친놈은 한 명으로 충분했다.

다행히 장태헌은 더 이상 신 운운하는 대신, 팔짱을 낀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형님, 인지도를 올리는 작업은 언제까지 할 거야?”

“낙원국 전역에 퍼질 때까지.”

“흠…… 오래 걸리겠는데. 괜찮겠어? 이곳 시간이 바깥에 비해 3배 정도 빨리 흐른댔지? 그렇다고 해도 몇 달은 있어야 할 거 아냐.”

조금씩 자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는 있지만, 만족할만한 속도는 아니었다.

자신이 세뇌한 노예들이 여기저기 소문을 낸다고 해봐야 한계가 있으니.

그들에게만 전도를 맡긴다면, 목표를 이룰 때까지 최소 1년 이상은 걸릴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오랫동안 이곳에 있을 수는 없어.”

“그러면 나갔다 들어 왔다를 반복하게?”

“가급적 현세로 나가지는 않을 거야. 대신 그만큼 빠르게 전파해야지. 그래서 너랑 합류한 거고.”

서강림이 그를 힐끗 보며 물었다.

“네가 이끄는 도적단 규모가 제법 크던데. 꽤 유명하기도 하고.”

장태헌이 이끄는 도적단은 이미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다.

귀족들을 수탈하여 그 재산을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의적으로.

새로운 이름을 퍼트리는 것은 어렵지만, 기존에 있던 소문에 편승하는 것은 비교적 쉬울 것이었다.

도적단이 언급되자 장태헌은 그 의도를 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 앞으로 의적단은 흙과 벌레의 왕의 명에 따라 행동하는 단체라고 하면 되겠네.”

“부탁할게.”

“맡겨만 둬!”

장태헌이 씩 웃는 것을 보고 서강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적단이 서강림의 이름을 내세우며 활동한다면, 더욱 빠르게 이 나라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으리라.

다만 장태헌은 조금 걱정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의적단이 유명해도 한계는 있을 텐데.”

“그래서 다른 멤버들 도움도 받으려고.”

장태헌의 말대로 왕궁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걱정할 일은 없었다.

이미 왕궁 내부에도 서강림의 손이 닿아 있었으니까.

* * *

커다란 호수에 햇빛이 닿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궁전 근처에 있는 호숫가는 보기만해도 기분이 누그러질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때, 친위대 중 한 명이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막내, 이제는 좀 괜찮나? 요즘 좀 정신이 없어 보이던데.”

“아, 네! 괜찮아요!”

친위대의 질문에 윤봄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이곳에 막 빙의했을 때에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윤봄이지만, 이제는 궁 내의 생활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그리고 서강림이 맡긴 역할에도.

‘사부님이 궁 내에 도는 소문이나 역사, 신화 등을 조사해달라고 하셨었지. 왕에 대해서도.’

열심히 조사를 한 결과, 궁 내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이 나라의 신화에 대해서도 더 자세하게 조사했다.

‘예전에는 낙원국도 다른 나라와 비슷한 입장이었다고 나와 있었어.’

신화에 따르면 약 500년 전, 날개 달린 용이 낙원국을 찾아오며 판세가 바뀌었다고 나와 있었다.

날개 달린 용, 낙원을 수호하는 하늘은 자신을 섬기면 이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말에 따라 왕족은 낙원을 수호하는 하늘을 섬기고, 하늘은 왕족과 귀족들에게 특별한 힘을 선사해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왕족 가운데 강한 능력자가 탄생하고, 무력으로 주위 나라를 무너트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이 나라의 주된 신화였다.

그리고 그 신화를 증명하듯, 이 나라의 왕은 상당한 강자였다.

윤봄은 왕이 있는 곳을 힐끗 보았다.

‘사부님 말에 따르면……. 왕이 가짜일 거라고 하셨지.’

왕은 커다란 연못에 배를 띄워놓은 뒤,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군림왕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이종족이었다.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귀가 뾰족하고, 뿔이 나 있으며 동공이 길게 찢어졌다는 것.

나이는 40줄 정도라고 하는데, 고생한 티가 없이 멀끔하여 그보다 젊어 보였다.

양산 아래에서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그 모습은 왕이라기보다는 한량에 가까워 보였다.

윤봄은 요 며칠 왕을 호위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저께는 사냥, 어제는 연회, 오늘은 뱃놀이인가.’

이 나라의 왕, 군림왕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것은 이 자가 상당히 무능한 왕이라는 사실이었다.

국정은 살피지 않고 매일 같이 유흥과 향락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제오늘 하던 일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군림왕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군림왕은 원래 소심한 성격의 왕자라 했었다.

그랬던 그의 성격이 정반대로 돌변한 것은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였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는 선왕처럼 나태하고 잔인한 성격의 폭군으로 돌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국정은 등한시한 채, 향락만을 누리고 있을 뿐.

지금도 꼴을 보면 왕이라기보다는 무방비한 취객처럼 보였다.

윤봄이 그를 고요히 응시했다.

‘처음에는 내가 암살을 시도할까 했지만…….’

윤봄은 신역에서 수련을 하면서, 사격 뿐 아니라 암살과 관련된 능력들을 개발했다.

그녀의 가장 큰 원수는 운명 보호국이었으므로.

정면에서 상대하기가 어려운 적이라고 판단해, 대신 몰래 암살을 하는 방법들을 숙달했다.

‘겉으로는 허술해 보이지만, 확실히 왕은 범상치 않은 능력자야.’

사주창은 보이지 않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만으로도 격차를 알 수 있었다.

아니, 기운뿐만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보여준 모습을 통해서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오늘은 참 기분이 좋군. 날도 좋고, 술맛도 좋구나.”

군림왕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꽤 여러 병을 비웠는데도 그에게서 취한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시종이 술병을 기울여 빈 잔을 채워주자, 왕이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했다.

“그런데 말이지 꼭 술맛을 망치는 놈들이 있단 말이야.”

그 말에 술을 따르던 시종의 손끝이 우뚝 멈췄다.

그 역시 빙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슬그머니 위를 올려다본 그 순간, 군림왕과 시선이 마주쳤다.

시종이 다급히 뒤로 물러나려던 그 순간.

-서걱!

“컥, 커헉…….”

군림왕의 손이 마치 창처럼 시종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심장이 있는 위치였다.

시종의 몸이 움찔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와중, 군림왕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비싼 술에 헛짓거리를 하다니.”

-촤악!

그가 손을 빼내자 시종의 시체가 맥없이 허물어졌다.

군림왕은 시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술병을 집어 들어 그대로 호수에 부어버렸다.

그러자 수면 위로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신하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독살.

이 넓은 호수에 술 한 병을 뿌렸는데도 물고기가 즉사할 정도의 맹독이었다.

왕은 독살을 당할뻔했음에도 무심하게 빈 병을 내던질 뿐이었다.

“오늘은 술에 독을 탔나 보군. 저 시종 외로도 술에 손을 댄 놈이 누구였지?”

“저, 그, 그것이…….”

“됐다. 귀찮군. 그냥 다 정리해야겠어.”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 위에 있던 시종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무기도 없는 맨손이었으나, 그가 손날을 휘두를 때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시종들이 비명을 지르며 강으로 뛰어들고,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였으나 모두 쓸모없는 짓이었다.

어느새 시종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물이 흘러넘친 것처럼 배 바닥에는 붉은 피가 고인 채였다.

군림왕은 피바다 사이에서 중얼거렸다.

“아, 실수했군. 이제 술 따를 사람이 없구나.”

그는 그것이 퍽 아쉬운 눈치였다.

시종들은 죽었지만 아직 궁중 악사나 뱃사공, 친위대가 남아 있었다.

군림왕은 덜덜 떨고 있는 뱃사공을 향해 말했다.

“흥이 깨졌다. 이만 돌아가자. 오후에 회의도 있던 참이니.”

“예, 전하.”

살아남은 자들은 부랴부랴 환궁 준비를 서둘렀다.

왕이 패악질을 하는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이런 일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윤봄만이 주먹을 으스러져라 쥘 뿐이었다.

‘아무리 그림 속 세계라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신하의 목 한두 개쯤은 쉽게 자르는 폭군이라니,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군림왕이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은 그가 가진 무력 때문이었다.

‘지금 암살을 시도한 사람이 몇이나 죽어 나간 거지?’

윤봄이 이곳에 빙의한 이후로, 군림왕을 살해하려 한 각성자가 태반이었다.

대다수가 선택한 방법은 암살.

정면에서 쓰러트릴 가능성이 없기에 암살을 선택했지만, 결국 결과는 똑같았다.

‘꽤 강한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죽었어.’

군림왕은 친위대인 윤봄이 나설 찰나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노리는 적수들을 태연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죽여나갈 뿐.

그 모습을 보며 윤봄은 체감할 수 있었다.

‘나 혼자 암살하는 건 불가능하다.’

서강림이 자신을 만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암살을 시도해봐야 개죽음일 뿐.

자신이 나서봐야 시체만 한 구가 더 늘어날 뿐이었다.

윤봄은 그저 분을 삭이며,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왕은 태연한 얼굴로 궁으로 돌아왔다.

그가 피에 젖은 옷을 걸친 채, 회의실에 들어서자 이미 신하들이 모두 모여 있는 참이었다.

“그래, 무슨 일인지 고하도록.”

왕은 벌써부터 지루한 기색으로 자리에 앉았다.

온몸이 피에 절은 모습에 신하들이 주저하다 회의 안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그것이……. 이제 곧 열릴 하늘제의 준비로 인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고하라.”

“다름이 아니라 작년과 올해는 흉년이기도 하였던 터라 공물을 바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백성들이 많은 상황입니다.”

하늘제는 낙원을 수호한 하늘이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행사로, 매년 그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500주년인지라, 그만큼 축제의 규모가 컸다.

신하가 머리를 조아린 채 말을 이어갔다.

“또한 서강림이라는 자가 이끄는 사교도 때문에 민심이 흉흉한 상황입니다.”

장태헌이 합류를 하면서 서강림의 이름은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의적단이 활개를 친 곳에 서강림의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으니, 모두가 주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이 나라의 가장 큰 행사인 하늘제가 열린다.

그런 행사를 앞둔 만큼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사교도인 서강림이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을 해야 하는 노예들이 도망가고, 귀족들도 재산을 잃는 바람에 여러모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왕이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 서강림이라는 놈을 잡아 죽이면 될 것 아니냐? 도망간 노예 놈들을 잡아들여 일을 시키도록 하고.”

“그, 그게……. 서강림이 너무도 신출귀몰한 데다가, 노예들도 구속구를 풀어버린지라 추적이 쉽지 않습니다.”

군림왕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답답하고 짜증이 가득해, 또다시 누구 하나를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군림왕은 그러나 분을 억누른 채 말했다.

“그러면 어쩌라는 거지?”

“하늘제의 규모를 조금 축소하는 것이 어떨지 여쭙니다.”

“내게 들어오는 공물들을 줄이라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의 눈이 희번뜩 돌아가자, 겁을 먹은 대신들이 숨을 삼켰다.

이 이상 세금과 공물을 거두면 민심이 흉흉해질 것이었으나, 발언을 했다가는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군림왕이 으름장을 놓았다.

“하늘제는 이 나라의 신, 낙원을 수호하는 하늘께 바치는 봉헌제다. 그런데 그것을 줄이자고? 신을 모독하는 것인가?”

“하오나 민심을 잃어서는 아니 되는 일입니다!”

목숨을 건 충언이었다.

곧장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군림왕이 덜덜 떠는 신하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바마마, 송구하오나 소자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제 3 왕자였다.

현명하고 어진 인품인지라, 군림왕이 패악과 패단을 저지르면 그것을 적절히 막아주곤 하였다.

대신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 3 왕자님이라면 전하께서도 이야기를 들으실지 모른다……!’

냉혈한 군림왕이어도 아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신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제 3 왕자에 누군가가 빙의했다는 사실이었다.

“저는 세금과 공물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걷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3 왕자에 빙의한 독고준이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