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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86화 (185/256)

<186화>

서강림이 침잠하는 빛 속에서 공주를 응시했다.

‘양이백, 그 사이 공주를 풀어준 건가.’

공주를 놓칠 수는 없지만, 양이백이 죽게 된다면 모든 것이 끝날 뿐이다.

때문에 양이백은 위험을 감수하고 공주를 풀어주었다.

목과 가슴에서 배어 나온 붉은 피가 백의를 적시고, 양이백은 힘겨운 얼굴로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었다.

공주가 부상당한 양이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 참 보기 좋군요.”

시선에서는 분노와 조롱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죽이려 한 동료였으니까.

양이백이 핏기없는 얼굴로 말했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고. 보아하니 저 광대패, 실력이 상당해. 저 정도라면 그릇이 될 자질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공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릇이 될 자질이라니.

저 광대패가 정말로 그릇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양 팀장, 당신을 지금 당장 죽이고 싶지만……. 일단 이 상황부터 처리해야겠죠.”

공주는 그렇게 말하며 서강림을 돌아보았다.

어두운 사방에서 안광이 느껴졌다.

공주의 것이 아닌, 수많은 시체의 눈동자였다.

“광대패, 네가 와준 덕분에 기회를 얻었군. 고맙지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이능 ‘시체 소환’이 발동됩니다!]

공주가 이능을 발동시키자 연구소 전체가 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그러진 공기 사이로 수많은 발소리가 소환되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무덤의 냄새를 흘리고 있는 마수의 사체들이었다.

-크아아악!

죽지 못한 것들이 서강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옆구리가 썩어들어가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늑대형 마수가 이빨을 드러냈다.

생의 의지 없이, 오로지 살육의 꿈만을 꾸는 눈동자가 탁했다.

-콰가곽!

서강림의 검이 마수의 가슴을 꿰뚫었으나,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이미 죽은 시체, 급소는 큰 의미가 없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몸을 도륙하거나 태워버려야 하지만, 검 한 자루만으로는 부족했다.

‘분신들을 이쪽으로 부르기에는……. 저쪽도 상황이 좋지 않군.’

서강림의 분신이 쓰러트렸던 연구원과 경호원들이 이제 다시 부활한 참이었다.

분신들은 그쪽과 싸우느라 경황이 없어 보였다.

또한 분신의 수가 늘어날수록, 각 개체가 약해지기에 이 이상 수를 늘릴 수 없었다.

‘우선 공주 팀장을 쓰러트려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소환되는 시체들로 인해 제대로 공격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서강림이 제 앞을 가로막은 시체들을 베어내며, 공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때, 거대한 외눈 거인이 서강림의 앞을 가로막았다.

-크오오오!

외눈 거인의 주먹이 서강림을 향해 날아온 순간, 검이 뼈를 꿰뚫어버렸다.

통나무 굵기만하던 팔이 잘려나가는 와중, 서강림은 시야가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과도한 신력으로 인해 육체에 데미지가 가기 시작합니다!]

반신화의 페널티가 돌아오고 있는 상태였다.

인간의 몸이 담아낼 수 없는 기운.

서강림은 뒤로 물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누가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공주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서강림이라 한들, 팀장급을 두 명이나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다.’

이제 서강림을 생포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를 붙잡아 국장에게 보낸다면 자신 역시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미래가 눈앞에 놓인 것 같았건만.

-촤아악!

서강림은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칼 한 자루만으로 시체를 도륙하는 모습이 마치 검신처럼, 아니 악귀처럼 보였다.

공주가 끊임없이 시체를 소환해내는데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눈빛에 도리어 공주는 소름이 돋았다.

‘미친놈 아닌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의 기백이 온 공기를 제압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공주가 소환해낸 시체들이 사방에서 서강림을 향해 공격을 가해오는데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서강림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늑대형 마수의 몸에 칼을 박고, 그것을 발판 삼아 뛰어오른 순간.

“……!”

공주와 서강림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강림과의 거리는 고작 몇 미터 남지 않았다.

서강림이 그대로 공주의 머리를 부술 듯이 검을 휘두른 그때.

-콰과광!

후방에서 날아온 마탄이 서강림을 직격으로 강타했다.

양이백의 기습이었다.

충격에 서강림의 몸이 날아가며 바닥을 요란하게 굴렀다.

평소라면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그의 몸은 이미 한계였다.

[과도한 신력으로 인해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반신화’를 해제합니다!]

서강림은 뒤로 물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그의 눈동자는 원래의 흑색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공주는 여전히 핏기가 가신 얼굴로 양이백을 보았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기대도 안 했어. 쿨럭, 마무리는 공 팀장이 지어. 생포해야 하는 거 알지?”

“당연히 압니다. 놈을 잡아서 광대패의 수장에 대해 알아내야 하니까요.”

그들은 서강림을 사로잡았다 생각했는지 여유로운 태도였다.

서강림은 구석에 앉아 숨을 고르다, 재킷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가 두 사람을 응시하며 말했다.

“광대패의 수장이 궁금한가?”

가면 너머에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주는 그런 서강림을 보며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사지에 몰렸건만, 그에게서는 절망하는 기색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강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럼 지금 여기서 보여주도록 하지.”

서강림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푸르게 빛나는 보석.

강도현에게 주었던 소환석이었다.

공주가 사태를 눈치채고 다급히 서강림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너무 늦고 말았다.

서강림은 그대로 소환석을 박살냈다.

-콰직!

소환석이 유리처럼 바스라지는 그 순간.

마치 폭풍이라도 찾아오는 것처럼 연구소 내의 공기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공주가 부리던 시체들의 머리가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퍼버벅!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희가 날 찾았나?”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광대패의 수장, 서화경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으나, 가려지지 않는 압박감과 격이 느껴졌다.

공주가 다급히 시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쪽을 제압해!”

시체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서화경에게 달려들었으나, 그것이 비명으로 바뀌기까지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거대한 대검을 들고 휘두르자, 칼바람이 불어닥치며 시체들을 덮쳤다.

-콰과광!

시체들에게 목소리가 있다면 단말마가 이곳을 수놓았을 터였다.

그러나 칼바람을 맞고도 살아남은 시체가 다수.

공주는 이를 악물고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시체 소환’이 발동됩니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의 시체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맨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서화경과 서강림이 강하다 한들, 고작 수는 둘.

그러나 서화경이 광대패의 수장이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능 ‘구극병고’가 발동됩니다!]

이능을 발동하자 상공에 수많은 무기가 소환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화경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흩어진 이름들아, 사라진 넋들아, 한과 원을 풀지 못했다면 차라리 검이 되어라!”

그녀가 검을 들고 제 팔을 길게 베어냈다.

피가 바닥을 적시는 것과 동시에 상공에 떠 있는 무기들이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능 ‘초혼검령(招魂劍令)’이 발동됩니다!]

원령들을 불러내 조종하는 서화경의 이능.

어느새 땅에는 시체가, 하늘에는 귀신이 있었다.

어느새 상공을 가득 메운 불투명한 원령들은 서화경이 소환했던 무기를 쥐고 있었다.

복장도, 나이도, 성별도 모두 제각각인 가운데 그들의 눈동자만큼은 모두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살의와 원한의 색이었다.

“몰살을 명한다!”

서화경의 외침에 원령들이 검을 들고 시체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공주는 경악했으나,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다.

‘그래 봐야 병장기 따위로 시체들을 모두 무력화시키기엔 부족하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한들……!’

-푸욱!

그때, 날카로운 검 하나가 시체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러나 이미 심장이 멎은 시체에게는 큰 타격이 되지 않았다.

원래라면 그랬을 것이다.

-으득, 으드득……!

꿰뚫린 가슴으로부터 균열이 퍼져 나가더니, 곧 시체는 한줌 가루가 되어 무너졌다.

다른 시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서화경의 무기에 베인 것들은 독에라도 감염된 것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성한 독이었다.

[축성 받은 무기로 인해, 신성력이 증가합니다!]

광명십자회의 사도인 이수호가 광대패에게 준 첫 번째 선물.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무기는 현재 강력한 축성을 받아, 신성력이 증가한 상태였다.

시체들에게는 치명적인 속성이었다.

-콰드드득!

서강림 역시 서화경이 건넨 검을 들고, 시체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거대한 설인의 머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것을 보며 공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이미 늦었다. 우리의 목숨은 물론, 연구소도……!’

이대로 가다가는 광대패에게 연구소가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중요했다.

공주가 서화경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광대패, 항복하겠다! 너희에게 협조할 테니, 안전을……!”

-퍼억!

그때, 바닥에서 솟구친 철의 장벽이 공주를 강타해버렸다.

양이백의 짓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공주가 실신을 한 와중, 양이백이 서화경과 서강림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공 팀장. 말썽이라니까.”

아직 시체들이 남아 싸우고 있었으나, 상황은 불리했다.

양이백이 서화경과 서강림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러니까 우리가 못 잡았지. 졌어. 그렇지만…….”

그때, 서강림은 양이백의 몸에서 마력이 일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질적인 마력에는 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

서강림이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시체를 베어낸 뒤 양이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푸욱!

그의 검이 양이백의 가슴을 꿰뚫었다.

너무도 쉽게.

양이백은 마력으로 자신을 보호하지도 않은 채, 서강림을 보며 지친 숨을 내쉬었다.

“퇴사 전에 정리는 해놔야겠지.”

[이능 ‘불의 해일’이 발동됩니다!]

꿰뚫린 가슴을 통해 피가, 아니 피처럼 붉은 불꽃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용암이었다.

댐이 터지고 수문이 열린 것처럼 미칠 듯이 불길이 흘러넘쳐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서강림이 다급히 서화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선생님!”

-콰과광!

그 순간, 용암의 해일이 그들을 덮쳤다.

양이백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동귀어진.

어차피 자신은 죽을 것이고, 어느 쪽을 선택해도 죽는다면 모든 것을 어둠 속에 파묻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들이 있던 방뿐만 아니라 온 연구소로 불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가자 연구 자료도, 연구원과 서강림의 분신들이 타들어 갔다.

불이 여러 실험 장비에 닿아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오르고, 무너져간다.

빠져나갈 구석은 없었다.

불길은 이제 양이백마저 태우고 있었다.

자신을 보호할 마력마저 모두 사용한 탓이었다.

‘그래도 그건…… 지킬 수 있을 테지.’

양이백은 모든 것이 타오르는 풍경 속에서 스러졌다.

몸이 모래처럼 부스러지던 그때.

그는 언뜻 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듯싶었다.

-콰과과과…….

불길은 짧고도 강렬하게 연구소의 모든 것을 태우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방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곳곳은 무너져있고, 무너지지 않았다 한들 검게 타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는 지경.

-치직, 치직…….

잘려 나간 전선에서 단말마처럼 스파크가 일었다.

매캐한 탄내와 연기가 진동하는 가운데, 잔해 속에서 문이 하나 열렸다.

그곳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서강림과 서화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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