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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79화 (178/256)

<179화>

가슴이 꿰뚫리는 것과 동시에 상처와 입에서 붉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치명상이었지만 서강림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차륜형이 해제되지 않았다.

버나가 죽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콰직!

버나는 다급히 서강림을 뿌리친 채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은 최후의 발악에 불과했다.

서강림이 추가 공격을 이어가려던 그때,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삐이익!

다급히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니 광대패 중 하나가 작은 호각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곧 머리 위에서 강력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천장이 곧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며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위에서 몸을 구르는 듯한 소리와 마수의 울음.

서강림은 그 진동의 원인을 눈치챘다.

‘백석갑어인가……!’

그의 예상대로 위에서는 피리 소리를 들은 백석갑어가 몸부림을 치며 땅을 구르고 있었다.

그 충격에 지반이 흔들릴 정도였다.

버나가 숨을 헐떡이며 서강림을 노려보았다.

‘서강림도 눈치챘겠지. 백석갑어가 날뛰기 시작했다는 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마련해 둔 장치였다.

통로가 좁아 백석갑어를 이쪽으로 불러들일 수는 없지만 지반을 무너트릴 수는 있었다.

점점 진동이 심해지고 천장 역시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서강림이 할 수 있는 것은 도주하거나, 버나와 전투를 이어가는 것.

버나 자신이 이길 수는 없지만 천장이 무너져 매몰될 때까지 버틸 수는 있었다.

서강림이 도주하거나, 같이 죽거나.

버나에게는 둘 다 괜찮은 결과였다.

그녀가 이를 악문 채 서강림의 판단을 기다리던 그때.

“신수아 씨! 바깥의 백석갑어가 날뛰고 있습니다!”

서강림의 외침을 들은 순간, 광대패를 상대하던 신수아의 발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신수아는 서강림을 한 번 돌아보더니, 곧바로 바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독고준과 이현도 그 뒤를 따라가려 하였으나 광대패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버나는 속으로 조소했다.

‘동료들을 대피시키려는 건가! 그나마 신수아 한 명만 살겠군. 하지만 서강림만큼은 여기서 보낼 수 없다……!’

백석갑어가 여길 무너트리기까지에는 몇 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버틴다면 자신의 승리였다.

버나가 ‘차륜형’을 해제한 뒤, 나머지 마력으로 작은 차륜들을 소환해 서강림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캉, 카강!

버나의 공격은 너무나도 비참하였으며, 초라하였으며, 필사적이었다.

이미 치명상으로 육체는 한계인 상황.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서강림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때,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쿠웅!

머리 위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달될 정도였다.

이제 천장이 곧 무너질 것이다.

버나가 자신의 승리를 예감하며 미소지은 그 순간.

[‘백석갑어’를 처치하였습니다!]

[공략자: 신수아]

[공헌자: 서강림, 독고준]

방금 전의 진동은 백석갑어가 쓰러지며 낸 소리였다.

버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간 게 아니라, 백석갑어를 처치하러 갔단 말인가?

-푸욱!

그때, 서강림의 검이 버나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녀가 단말마처럼 서강림의 이름을 외치려 했으나 입술만 달싹거릴 뿐.

버나의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버나가 죽은 것을 확인한 뒤, 서강림은 빠르게 반신화를 해제하였다.

귀문을 열면서 예전보다는 부담이 줄었지만, 여전히 몸 곳곳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팠다.

그때 바깥에서 신수아가 다급히 달려 들어왔다.

“강림 씨, 괜찮아요?”

서강림은 자신을 걱정하는 신수아를 보고 혀를 찼다.

그녀의 상태가 더욱 나빴기 때문이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고 독고준마저 감탄하고 있었다.

“이야, 신수아 씨 굉장하네. 백석갑어를 혼자 잡을 줄이야. 따라가려 했는데 광대패들 때문에 못 갔어.”

“일부러 안 온 건 아니고요?”

신수아의 실력이라면 백석갑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보낸 것이었지만, 상처 입은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이번 대마경의 공략자가 신수아라 다행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서강림은 쓰러진 버나와 광대패들을 살펴보았다.

그 사이 광대패들은 이현과 독고준에 의해 다 정리되어 있었다.

모두 죽은 것 같았다.

서강림이 산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자 독고준이 변명하며 말했다.

“아,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다 죽인 거 아니다? 쟤가 죽으니까 자결하더라고.”

독고준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으로 버나를 가리켰다.

나머지 광대패들은 리더인 버나가 죽자, 정보가 유출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눈치였다.

이 맹목적인 충성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 와중, 신수아는 제 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어 서강림은 그녀를 향해 물었다.

“신수아 씨, 무슨 일 있습니까?”

“아, 네. 좀 이상해서요. 저 유혈 충동이 발동되지 않았어요.”

인간의 혈액과 접촉할 경우, 능력치가 증가하지만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이능 ‘유혈 충동.’

신수아의 얼굴과 양손에는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데도 유혈 충동이 발동되지 않았다니?

서강림 역시 의아함을 느끼다, 쓰러져 있는 광대패의 가면을 벗겨냈다.

옆에서 내용물을 본 독고준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광대패, 내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집단인 것 같네.”

가면 너머에는 인간이 아닌 짐승의 얼굴이 있었다.

인간형 마수들은 많이 봐왔지만 이런 형태는 처음이었다.

신수아가 그것을 보고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 사람들…… 마수인거죠? 그래서 유혈 충동이 발동되지 않았나봐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영락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행동하는 것이 인간과 다를 바 없었고, 게다가 버나의 명령을 듣고 따른 걸 보면 어느 정도 지능도 있는 듯싶었다.

이런 유형의 마수는 본 적이 없었다.

‘버나도 인간이 아닌 건가?’

버나의 가면을 벗기고 얼굴을 확인해보니 이쪽은 인간이 맞았다.

다만 모르는 얼굴이었다.

자세한 것은 돌아가서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다.

버나는 마수가 아닌 인간이었지만, 이 정도라면 업보를 고려하더라도 훔칠 가치가 있었다.

[이능 ‘사주 훔치기’를 발동합니다!]

[숙련도가 충족되어, ‘사주 훔치기’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총 4가지의 항목을 훔치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느새 숙련도가 쌓여, 이능의 효과가 증대한 상태였다.

서강림은 항목 중 4가지를 훔칠 수 있다는 내용을 응시했다.

‘이렇게 성장하다 보면, 나중에는 사주를 전부 훔칠 수 있을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자신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경계는 언제까지 자신을 기다려줄까.

서강림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며 사주를 훔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다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하나가 남은 상황.

“이현 씨, 괜찮으십니까?”

서강림이 이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현은 문파원의 시신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죽은 이의 눈을 감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괜찮다.”

그 짧은 사이 이현의 얼굴은 황폐해져 있었다.

문파원들이 사망했고, 광대패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그가 날이 선 시선으로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서강림,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대마경을 공략하려 했지만 진전이 없어서, 뭔가 단서가 없을까 싶어 당신을 미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저 광대패는 너를 아는 눈치였다. 우연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서강림이 너무 타이밍 좋게 나타난 것도, 광대패와 구면인 것도 수상쩍은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서강림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 비호문 건물로 와주시죠.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광대패를 만났던 일은 함구해주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어째서냐? 광대패가 이곳에 들어온 걸 보호국에 알려야 그들도 대처를……!”

“보호국에서 광대패를 운영하고 있으니까요.”

그 말에 이현은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 되었다.

보호국이 광대패라니?

서강림은 보호국이 광대패인 척하며 어떤 짓을 저질러 왔는지 짧게 설명해주었다.

“이곳에서 광대패를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하면, 결국 이 아이템의 소재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서강림이 피의 잔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강력하고도 불길한 마력이 바다처럼 고여 있었다.

“그런 아이템은 없었다고 해봤자 보호국에서 납득해 줄 리 없고, 건네주면 놈들에게 좋은 일이죠.”

“…….”

“그러니 함구를 부탁드립니다.”

이현은 침묵을 유지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묵묵히 문파원들의 시신을 안아들 뿐.

신수아가 시신 옮기는 걸 돕는 사이, 독고준이 마경 중앙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살짝 흥분한 듯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공간은 참 이상하네. 대마경의 히든 이벤트 같은 거려나?”

그 질문에 서강림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있었다.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회귀 전에는 밝혀지지 않은 정보였으니까.

‘피의 잔이라. 이 대마경에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네.’

네 번째 대마경의 공략 조건은 마수의 섬멸이고 땅에 떨어진 피가 고여, 지하로 흘러 내려오는 구조였다.

피를 모으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그나마 빠르게 공략 되었지만 전생에서는 몇 달 동안이나 진전이 없었다.

그동안 모인 피의 양도 어마어마했을 터였다.

‘전생에서도 이현은 이 장소를 눈치채고 들어왔다가, 광대패에게 죽었던 거겠지.’

상황을 보니 광대패가 이곳을 우연히 발견했다기 보다는, 마치 이곳을 감시하던 중 이현이 들어온 것 같았다.

이미 예전부터 이 장소를 알고 있던 것처럼.

또한 운명 보호국은 대마경이 출현할 위치를 예상하여,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였다면?

‘운명 보호국이 대마경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나?’

교육 시설에 있던 첫 번째, 두 번째 문은 보호국이 만들어 낸 훈련장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가 이상했다.

각성의 날이 오기 전부터 교육 시설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키우려고 하는 곳이라니.

대마경이 정말로 보호국의 작품이라면…….

의문과 추측은 많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서강림이 대마경 내부를 노려보고 있던 중, 독고준이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일단 우리도 빠져나가자. 아무래도 곧 흑의문도 이쪽으로 올 것 같으니.”

서강림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쓰러진 광대패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인간의 형상이 아닌 시체들.

여러 의문이 더께처럼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 * *

“정말 아쉽게 되었습니다, 문주님. 비겁한 비호문만 아니었으면 네 번째 대마경을 공략할 수 있었을 텐데.”

차량의 진동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가운데, 차창에 이현의 얼굴이 비쳤다.

네 번째 대마경이 종료된 지 며칠이 흘러 있었다.

죽은 문파원의 장례식을 치르는 사이, 세상은 또다시 대마경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비호문이 대마경을 공략했다며 떠들어대는 언론, 그리고 커뮤니티들.

그 소란들을 보고 듣는 동안 이현의 표정은 그저 가라앉아 있었다.

운전사는 그 이유가 서강림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이현을 위로하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공략 조건을 찾아낸 사람은 문주님인데, 미행을 하다가 공을 가로채다니. 정말 비겁하기 짝이 없습니다.”

흑의문 문파원들은 장례식장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현이 갑자기 결계 안으로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서강림 일행이 찾아왔다.

그리고 공략에 성공한 사람은 신수아라는 알림창이 떴다.

누가 봐도 순서상으로는 이현이 먼저 진입했기에, 흑의문 문파원들은 새치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운전사가 격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 문주님도 부상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놈들이 공격한 거 아닙니까?”

“……마수에게 공격당했을 뿐이다.”

이현은 서강림의 말대로 광대패에 관한 것을 숨겼다.

그날 이후 그의 머리는 무척이나 복잡했다.

다른 곳도 아닌 보호국이, 광대패인 척하며 테러를 저지르고 있었다니.

그때, 차량이 건물 지하로 들어가더니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문주님, 비호문 건물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서강림이 했던 또 다른 부탁은 장례식이 끝난 뒤, 자신을 만나러 와달라는 것.

비호문 건물 근처에는 낮이나 밤이나 기자들이 상주해 있기에, 뒷길을 통해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문이 열리고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이현 만신.”

차분한 얼굴의 서강림이 이현을 맞이해주었다.

며칠 전, 그런 난리통을 겪었음에도 동요 없는 태도라니.

응접실로 안내받은 뒤에도 이현은 불퉁한 얼굴이었다.

“장례식에 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처리할 것이 많아서.”

“됐다. 네가 와봤자 기자들이나 더 몰려들었겠지.”

아직도 장례식 향냄새가 배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현은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일단 내 목숨을 구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뭐가 어찌 되었든, 네가 날 살린 것은 맞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현은 한편으로는 찝찝한 기색이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나를 불렀지. 네가 그때 말했던 보호국과 광대패……. 그게 정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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