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172화 (171/256)

<172화>

귀문이라는 말을 듣자 서화경의 얼굴이 굳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귀문을 연다고?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지?”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지금 신격화가 진행되는 중입니다.”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서강림은 반신이 되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 신력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육체와 정신을 강화하면 버틸 수는 있겠지만, 좀 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신력은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이지만, 살아있는 육체와는 상성이 맞지 않기에 육체에 부담을 준다.

그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정신과 육체를 강화시키는 것.

두 번째는 몸이 신력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변화를 주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안전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때문에 그가 선택한 방법은 두 번째, 바로 귀문을 여는 것.

귀문(鬼門)은 말 그대로 귀신들이 드나드는 길을 이야기한다.

영혼에 귀문이 열려있다면 그 문을 통해 귀신이나 신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통로가 열린다면 신기가 더욱 강해질 것이었다.

“귀문을 열어서 신기가 향상된다면, 반신화 역시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말대로 도움이 되긴 할 테지만.”

신기가 강해질수록 영력이 강해지고, 신과 소통하기 용이해지며, 죽은 것들을 통솔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유용한 방법임에도 서화경이 주저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귀문을 여는 것 자체가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었다.

서화경이 입술을 꾹 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강림아. 너도 알다시피 신이란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존재다.”

“예. 압니다.”

“귀문을 열면 너는 죽음에 더욱 노출될 테지. 인간보다는 귀신에 더 가까워질지 모른다.”

열린 문을 통해 그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

현세에 있을 때도 마경에 있는 것처럼 마기에 시달리며, 신과 귀신의 세계를 보게 될 것이었다.

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의 영혼은 안정된다.

하지만 서강림이 원하는 것은 안정도, 평화도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귀문을 열어주세요.”

회귀 전보다는 명백히 강해졌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백영을 쓰러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호국과 전면전에 나선다면 패배할 것이다.

인간으로 패배하느니, 살아있는 귀신이 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안 된다고 해도 고집 부릴 거지?”

“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망설이고,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서화경이 앉으라는 듯이 손짓했다.

“알겠다. 대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귀문을 닫을 생각이니, 그 뒤에는 떼쓰지 마라.”

서강림은 바닥에 앉은 뒤, 심호흡을 했다.

서화경이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자, 그녀의 마력이 체내로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문은 천천히 열리고 다 열릴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각오해라, 강림아.”

그 말과 동시에 마력이 영혼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숨통을 건드리는 듯한 기분.

그리고 서화경이 영혼의 깊은 곳을 움켜쥔 순간.

[귀문(鬼門)이 개방됩니다!]

극채색의 빛과 어둠이 서강림의 정신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물 밖으로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서강림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큭, 커억……!”

부러질 듯 깨문 잇새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게 꽉 쥔 주먹에 붉은 피가 고이는 중이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도 그 정도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영혼이 흔들리고 있었다.

서화경은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귀문을 열었을 때도, 저랬었지.’

서화경도 스승 아래에서 수련을 하던 시절, 자신의 귀문을 열었었다.

그때는 아직 각성자가 아니었지만, 무당으로서의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귀문을 연 순간, 서화경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끔찍한 풍경을 보고야 말았다.

수많은 신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 때마다, 뇌가 불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귀문을 절반도 열지 못한 채 물러나고 말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그나마 서화경은 꽤 오랫동안 귀문을 열고,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다른 동문들이 귀문을 열었을 때는 일이 분도 되지 않아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고 말았다.

‘강림이 역시 길어야 몇 분일 거다.’

때문에 그녀는 귀문을 여는 일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서강림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고통을 잠시라도 맛보면, 두 번 다시 요청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곧 극심한 거부반응이 일어나리라 생각하며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서화경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마수인가?’

근방에서 요란한 발울림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수들이 사람 냄새를 맡고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이제 슬슬 귀문을 닫으려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서화경이 손을 떼어내자 서강림의 몸이 휘청이며 꼬꾸라졌다.

쓰러지려는 서강림을 받아 눕힌 뒤, 그녀는 곧바로 검을 들고 일어섰다.

곧 마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오오오!

요란한 발울림과 함께 거대한 형체가 몸을 드러냈다.

그것은 외눈 달린 거인들

숫자는 못 해도 열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형형한 눈빛으로 마수들을 노려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내 아들이 잔다. 다들 조용히 좀 해라.”

-카가강!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화경의 주변으로 수많은 검이 날아올랐다.

허공을 수놓은 검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려 마수의 몸뚱이를 직격 했다.

몇 마리는 눈을 잃고 고통에 포효하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고통으로 인해 광분 상태에 빠진 마수들이 서화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참 안 듣는 놈들이군.”

서화경은 허공에 떠오른 검을 움켜잡은 뒤, 곧바로 앞에 있는 거인을 향해 달려갔다.

마치 광속과도 같은 속도로 달려든 그녀는 어느새 마수의 머리에 도착해 있었다.

새하얀 검이 마수의 입 깊숙한 곳에 박혔다.

-콰각!

서화경은 허공에 떠 있는 창을 집어든 뒤, 다음 마수를 향해 내리꽂았다.

수많은 명기가 마치 일회용처럼 쓰이고 있었다.

마수들 사이를 짐승처럼 뛰어다니며 그녀는 피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어느새 손끝이 마수의 피로 달아올랐다.

놈들이 구원 요청이라도 했는지 더 많은 거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이건 좀 귀찮은데.’

마수들을 처치를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실신한 서강림을 보호하며 싸워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차라리 강림이를 데리고 후퇴하는 편이……. 응?’

서강림이 누워있던 자리를 힐끗 보았으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거인에게 붙잡히기라도 한 것인가?

그때, 뒤편에서 마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거구의 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 사이로 검은 형체가 보였다.

서화경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서강림……?!”

어느새 서강림이 검을 들고 교전에 나서고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수들의 두꺼운 가죽이 싸구려 종이처럼 찢기고 베였다.

서강림이 보여주는 힘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귀문을 막 열고 난 상태로 움직일 수가 없을 텐데!’

눈을 뜨자마자 싸우는 서강림을 보자, 서화경은 이를 으득 갈고 양손에 단도를 쥐었다.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서강림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한 자루의 검인 것처럼, 날카롭게 적을 베어내고 꿰뚫었다.

-그, 오오오…….

두 사람이 합세하자 정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최후의 거인이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사방에 가득한 사체를 뒤로한 채, 서화경은 다급히 서강림에게 달려갔다.

“강림아, 괜찮니?”

“……예. 괜찮습니다.”

얼굴이 창백했으나 그 이상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서화경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귀문을 열었는데도 어떻게 멀쩡한 거지? 고작 몇 분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몇 분조차 버티지 못해 광인이 되는 자들을 수두룩하게 봐왔다.

서화경이 영문을 몰라 하던 그때, 서강림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데미지가 있던 모양이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서화경이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서강림은 일어서지 않았다.

도리어 왜 그러냐는 듯 서화경을 바라볼 뿐.

“강림아, 괜찮니? 일어나봐. 얼른 나가자.”

“아직 할 일이 남지 않았습니까.”

할 일이라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서강림이 그녀의 팔을 꽉 쥔 채 말했다.

“아직 귀문이 다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저앉은 것은 나머지 귀문을 열어달라는 의미였다.

서화경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너, 방금 겪어봤잖아. 귀문을 열면 무슨 일을 겪는지.”

“네. 확실히 겪어봤습니다.”

손에 깊이 파인 상처를 통해 피가 흘러내리고, 내상으로 인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강림의 눈빛이 포기를 모르는 듯, 귀기로 일렁거렸다.

“그리고 제게 어떤 힘을 주는지도요.”

귀문을 절반도 채 열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던 그 힘.

고통조차 감미롭게 느껴질 대가였다.

그가 서화경의 팔을 더욱 강하게 쥐며 말했다.

“저는 준비 됐습니다. 나머지 문도 열어주세요, 선생님.”

* * *

거처에서 모닥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서화경은 화로에 불을 붙이며, 일렁이는 불꽃을 응시했다.

방금 전, 마경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상태였다.

‘서강림, 귀문을 전부 열어버렸는데도 결국 버텨내고 말았어.’

귀문을 모두 열어달라는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서화경은 서강림의 귀문을 다시 한번 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몰아닥쳐 서강림은 몇 번이나 피를 토하고 실신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귀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도 미치지 않다니……. 경계의 효과인가?’

서강림은 업보를 쌓고 경계에 가까워지며, 살아있지 않은 것들에 익숙해져 갔다.

경계에 다가갈수록 강해지는 신력, 그리고 광기.

이미 비슷한 일을 겪고 있기에, 귀문을 열어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강림이 언제까지 버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서화경은 타오르는 화로를 응시하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강림이는 이상한 부분이 너무 많아. 특히 윤겨울이라는 녀석을 살렸다는 것도 그렇고.’

윤겨울은 교육 시설에서 죽었어야 마땅한 운명이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었다.

마치 서강림이 운명을 뒤틀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고정된 운명에서 한 가지를 바꾸는 데만 해도 수많은 희생이 필요한데.

‘강림이가 회귀를 했기 때문일까? 시간을 역행한 것이 운명을 바꾸는데도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녀는 매일 같이 치던 점을 다시 쳐보았다.

화로 속에서 매일 같이 반복되던 자신의 미래.

발버둥을 치지만 끝끝내 보호국에 의해 살해당하던 운명은 변함이 없었다.

서화경은 불길 속을 들여다보며 미래를 읽어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뭐지, 이 분기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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