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169화 (168/256)

<169화>

마지막으로 서화경을 본 것이 족히 몇 년은 흘러 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본 그녀는 마치 시간이 박제된 것처럼,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서화경은 오랜만에 제자를 만났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아 하는 기색이었다.

그리움, 그리고 후회.

서강림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서화경은 픽 웃으며 말했다.

“뭐냐. 생각보다 안 놀라는 거 같네.”

“……살아계실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서화경의 죽음에는 의문이 많았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시체.

영혼을 불러내려 해도 응답하지 않던 서화경.

애초에 자살을 택하는 것 자체가 서화경답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든, 도망치지 않고 상대와 맞서 싸우던 인간이었으므로.

때문에 서화경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하던 중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실제로 만나니 여러 감정이 들었다.

서화경은 서강림의 대답을 듣고 비스듬히 웃었다.

“그래? 내가 살아있을 줄 알았다니. 그러면 내가 광대패의 수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니?”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호국을 상대로 몇 년 동안 활동을 해오는 단체, 광대패.

그런 광대패를 이끌 정도의 인물이라면 상당한 초인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서강림이 알고 있는 초인 중 한 명은 서화경이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선생님이 광대패의 수장이었다니.’

언젠가 서화경과 조우하리라 생각하긴 했으나,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반가움도 있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런 감정을 삼킨 채, 서강림은 입을 열었다.

“일단 사람들을 내보내죠. 여긴 보는 눈도 많고.”

서화경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듯, 광대패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마경을 떠나갔고, 요한과 이수호 역시 부상자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모두가 빠져나가자 정말로 서강림과 서화경만이 남게 되었다.

서강림은 그녀가 혹 도망이라도 갈까, 입구의 앞을 막아선 채 입을 열었다.

“이제 좀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군요.”

“……그래.”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만이 남게 되자 서화경은 서강림에게 다가와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많이 컸구나, 강림아.”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서화경이 서강림의 얼굴을 매만지며 얼굴 곳곳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죽었던 자식과 다시 만난 어머니처럼.

서강림 역시 그녀와 해후를 풀고 싶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왜 죽은 척을 한 거고, 어쩌다 광대패의 수장이 되었는지.”

서강림의 물음에 서화경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녀는 한참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이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운명 중, 최선의 길이었기 때문이야.”

유서에 남겨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죽은 척 위장을 하는 것이 그녀가 선택한 가장 최선의 길이었다는 것.

“나는 오래전부터, 내 운명을 들여다보고는 했다. 그 덕에 운명 보호국에서 나를 스카우트하러 올 거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지.”

운명 보호국은 각성의 날 전부터, 능력 있는 각성자를 찾아 차사로 영입하곤 했다.

서화경 정도 되는 능력자라면 찾아올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선생님 성격상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셨을 테죠.”

“잘 아는구나.”

서화경이 씩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로 서화경이구나 싶었다.

자존심 강한 서화경은 누군가의 밑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네 말대로 나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내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내 미래는 크게 두 가지 중 하나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웃음소리는 사그라들고,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서화경은 말했다.

“운명 보호국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각성 범죄자로 누명을 쓰는 것. 두 가지의 운명이 준비되어 있었다.”

서강림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취조실에서 공주 팀장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신이 최필영 조작 영상으로 취조를 받았을 때, 그들은 조건에 따라 죄를 줄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 반대로 죄를 늘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보호국에 들어갈 경우도 가정해봤다. 그럴 경우, 나는 보호국의 개가 되어 더러운 일에 손을 댈 운명이었지.”

“…….”

“고정된 선택지 중, 나는 내 운명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서화경이 고른 최선의 운명은 죽은 척 위장을 하는 것이었다.

잠시나마 보호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죽은 척을 하고 평생을 살 수는 없었지. 나는 보호국을 파괴하기 위해, 광대패를 조직했다.”

“다른 광대패들은 어떻게 모인 겁니까?”

“보호국에 의해 각성 범죄자로 누명을 쓴 사람들이나,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데려왔지.”

“보호국은 영입을 거부하는 사람을 모두 그렇게 만든 건가요?”

“그건 아니야. 어떤 경우에는 스카우트를 거부해도 건드리지 않더군. 살려두더라도 보호국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았어.”

반대로 말하자면 서화경은 살려둘 경우, 보호국에 해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허공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광대패를 만들긴 했는데 보호국 놈들은 우리를 역으로 이용하더구나. 어느새 온갖 악행은 우리의 몫이 되어 있었다. 뭐, 인지도는 오르긴 했지만.”

그녀는 반쯤 농담 섞인 말을 던졌지만 씁쓸함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서강림은 묵묵히 이야기를 듣다가 입을 열었다.

“왜 저희에게 말하지 않으셨죠?”

“뭘?”

“저나 형에게 사실을 말해주실 수도 있었잖아요. 살아있다고, 보호국 놈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그랬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터였다.

서화경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강림아. 어린 시절 네가 했던 이야기 생각나니? 예지 능력이 있다면 모든 불행을 피해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물었었지.”

서강림은 자신이 했던 질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서화경이 했던 대답 역시.

“그리고 선생님은 미래를 읽고,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 해도 어떤 운명은 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셨죠.”

“그래. 내게는 보호국이 그런 종류의 운명이다.”

서화경의 미래 예지는 앞에 어떤 갈림길이 있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앞에 있는 모든 길에 함정이 있다면?

길 자체를 벗어날 수는 없고, 그저 함정이 있는 길 중 덜 위험한 곳을 골라 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광대패를 만들어 어떻게든 운명을 바꿔보려 하지만, 아직까지 내 미래는 암흑뿐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내가 살아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면 너희도 광대패에 들어오겠다 했을 테니.”

서화경은 여전히 아이 보는 듯한 시선으로 서강림을 보았다.

“아들들마저 보호국에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었으니까.”

자신을 아들이라 부르는 서화경을 보고 서강림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서화경은 이제 물러나 달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서강림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때는 저희가 약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저희가 도우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래서 너를 안 만나려고 했는데, 참 이상하지. 오늘 여기서 너와 조우할 미래는 읽히지 않았는데……. 왜 이런 미래가 발생한 건지 모르겠군.”

그 말을 들으며 서강림은 문득 회귀 전의 삶을 떠올렸다.

회귀 전에도 서화경은 메시아 수도원에 왔었을까?

서화경은 그 사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오늘 일은 못 본 셈치고, 다 잊거라.”

“그럴 순 없습니다. 저 역시 보호국에게 노려지고 있으니까요.”

“뭐? 왜? 널 스카우트하려는 거야?”

“아뇨. 정확하게 말하자면 백영이라는 사람에게 노려지고 있습니다.”

서강림은 미래를 봤다고 말하며, 백영에 대한 것을 설명했다.

또한 백영이 아무래도 보호국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말도 함께.

서화경은 의아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너에게 그런 미래가 찾아온다고? 잠깐 이리 와보거라. 널 좀 들여다봐야겠다.”

서강림은 순순히 서화경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을 꾹 잡자, 무언가가 자신의 영혼에 개입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강림이 그 침입을 받아들인 순간, 마주 잡은 손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윽……!”

“선생님! 괜찮으세요?”

서화경은 제 손을 부여잡은 채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그 짧은 사이 서화경의 손이 타들어가듯 흉이 지고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화경은 통증보다는 놀라움이 더 큰 것 같았다.

서화경이 저토록 당황하는 것은 살면서 처음 보았다.

“네 미래가 읽히지 않는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왜 과거와 미래의 흐름이 일그러져 있지?”

“일그러져 있다고요?”

“그래. 이건 말도 안 되는 흐름이다. 시간은 현재에서 미래로밖에 흘러갈 수 없는데, 이건 마치……. 시간이 역행을 한 것 같아.”

시간이 역행을 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회귀라는 단어가 곧바로 떠올랐다.

서강림은 말 그대로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으니.

혼란스러워하는 서화경을 보던 중, 그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그건 아마도…… 제가 회귀를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서강림은 서화경을 설득하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미래를 봤다는 것보다 미래를 직접 경험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었다.

회귀라는 말에 서화경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그제야 납득이 된다는 눈치였다.

그녀가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랬구나. 사실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본 네 미래는 사실 변변찮은 헌터로 살아가는 것이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강해지다니…….”

서화경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지금 가장 칭송받는 헌터를 바라보았다.

충삼품, 가장 약하고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서강림.

그런 서강림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려면 어떤 일들을 겪어야 했을까.

서강림은 서화경을 마주 본 채 입을 열었다.

“운명 보호국은 선생님만의 적이 아니고, 보통 상대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강하다 한들, 보호국에 혼자 대항할 수는 없으실 테죠.”

서화경은 반박하지 않았다.

혼자서는 무리인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지만 서강림을 위험에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침묵하고 있는 사이, 서강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운명은 바꾸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셨죠. 선생님께는 그 운명이 보호국이라 하셨고.”

“…….”

“저에게는 그 운명이 백영입니다. 제가 그녀를 다시 조우해도, 죽을 확률이 높겠죠. 선생님도, 저도 발버둥 쳐도 죽을 거라면 같이 발버둥치다 죽는 편이 그나마 낫지 않겠습니까.”

서강림은 건조한 얼굴로 같이 죽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과 달리 그의 눈빛은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눈빛을 보고, 서화경은 피식 웃었다.

“못 본 사이에 말발이 늘었네, 강림이.”

서화경의 표정은 한결 풀어져 있었다.

그녀가 서강림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했다.

“그래, 알겠다. 너와 협력하마. 대신 조건이 있다.”

“뭐죠?”

“네 동료들은 이 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그 말에 서강림은 침묵했다.

서화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성격상,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혼자 해결하려 했겠지.”

어렸을 때부터 서강림을 봐 온 서화경은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늘 혼자 짊어지고 가려는 성격임을.

“네게 협조하겠다. 단, 네 동료들에게도 너의 상황을 모두 이야기해. 그리고 그들의 협조를 구해라. 그게 내 조건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