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보호막에 온통 금이 가는 와중에도 서강림만이 냉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반신화를 사용한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싸울 수야 있겠지만, 자신은 아직 반쪽짜리에 인지도도 부족한 상황.
이대로 부딪쳐 봐야 수세에 몰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저 초속의 날개를 처리한다면, 그때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었다.
그는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냄과 동시에 영수를 소환했다.
[영수 ‘리니’가 영계에서 소환됩니다!]
자그마한 기린이 등장하자, 이수호는 어리둥절한 기색이 되었다.
웬 새끼 사슴을 한 마리 불러낸단 말인가?
그다지 강해 보이지도 않은데.
“대체 이 사슴은 뭡니까? 이런 사슴 한 마리로 해결을 한다는 겁니까?”
“보면 압니다. 그리고 이수호 사제님, 도와주실 부분이 있습니다.”
“대체 뭐죠?”
서강림이 빠르게 지시 사항을 내리자, 이수호는 놀란 눈치였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파리들이 더욱 몰려들어 보호막 위는 그저 어둠이었다.
보호막에 사방으로 금이 가는 와중, 서강림은 병의 마개를 뽑아냈다.
“리니, 물잡이!”
“웅!”
[이능 ‘물잡이’가 발동됩니다!]
-콰아아아!
수탄은 보호막을 뚫고 식인 파리들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물세례에 식인 파리들이 한 차례 쓸려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주임 신부는 웃는 낯이었다.
“이 정도로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고작 수탄 따위로 신력이 깃든 공격을 막을 리 없었다.
잠시 쓸려나갈지언정, 식인 파리들은 다시 날아올라 놈들을 공격할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창백하게 안색이 질린 쪽은 주임 신부였다.
-기, 기기긱……!
수탄을 맞은 파리들은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듯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마치 불에 뛰어든 것처럼 온몸이 그을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타들어 가는 채로.
불길에서도 멀쩡하던 식인 파리들이 몰살당하자 주임 신부는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아니, 고작 물의 장벽 따위가 어떻게 신력을……!”
주임 신부는 당혹해하던 와중, 물의 장벽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도 보통의 마력이 아닌, 신성력.
서강림은 들고 있던 병의 내용물을 흩뿌리자, 그 물에 닿은 파리들이 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주임 신부가 눈을 번뜩였다.
“성수인가……!”
[‘성수’의 기운이 주위의 마기를 정화합니다!]
서강림은 상대가 베엘제붑인 것을 사전에 확인하고, 약점인 성수를 요한 신부에게 미리 부탁해두었다.
‘물잡이’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물의 장벽에 성수를 섞자, 그 효과는 물의 장벽 전체에 적용되었다.
주임 신부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래봐야 그게 끝이겠지. 이곳에는 물도 없을뿐더러, 네가 가진 성수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어둠이 쏟아져 나오듯, 파리 떼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리니는 더욱 큰 물줄기를 불러냈다.
“우우웅!”
어느새 상공에 거대한 물덩어리가 생겨나 있었다.
마치 강의 일부를 소환해낸 듯한 정경.
그 거대한 형상을 보고도 주임 신부는 두려움 없는 기색이었다.
‘그래 봐야 일반적인 물이다. 성수가 아니라면 큰 데미지는……!’
그러나 그때, 주임 신부는 물에 강력한 신성력이 깃드는 것을 눈치챘다.
처음 마주했던 물의 장벽보다 더욱 강력한 신성력.
그 근원은 바로 이수호였다.
[이능 ‘축성’이 발동됩니다!]
이수호는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광명십자회의 사도, 이수호가 갖고 있는 축성의 이능.
대상에게 강력한 신성력을 부여하는 이능이었다.
광명십자회의 강력한 이능인 축성의 이능을 이수호 역시 갖고 있었다.
첫 조우 때, 그의 사주창을 들여다 본 서강림은 이 힘을 이용하기로 미리 계획해둔 상태였다.
“서강림 헌터, 이제 준비 되었습니다!”
즉시 발동이 되지 않는 것이 단점이지만,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어느새 강력한 축성의 기운이 물 전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파도 같은 그 모습에 주임 신부는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어느 틈에 이런 계획을……!’
어느새 사방에 거대한 물의 구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치 성수의 바다를 담아온 듯한 그 압도적인 마력.
그는 질 수 없다는 듯이 식인 파리들을 끝없이 소환해냈다.
식인 파리들이 달려드는 순간, 서강림이 리니를 향해 소리쳤다.
“리니, 폭발시켜!”
“웅!”
-콰아아아!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거대한 해일이 몰아닥쳤다.
지독한 홍수가 찾아온 것처럼 사방으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성수에 맞은 신부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으, 으아악! 아파, 뜨거워!”
“살이 타 들어간다……!”
악마 들린 신부들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도망치려 하더라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종횡무진이던 파리들 역시 몸부림 한 번 치지 못하고 바닥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주임 신부님, 구원을…….”
신부들이 무력화된 가운데, 주임 신부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성수의 비를 맞아 온몸이 축축하게 젖었음에도 그는 타격이 없어 보였다.
주임 신부가 서강림을 노려보며 웃었다.
“준비성이 철저하군. 하지만 고작 성수 따위, 내게는 먹히지 않는다.”
그는 들고 있는 붉은 창을 들어 올렸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신삼품 무기인 ‘배교자의 창’.
이 마경의 숨겨져 있던 아이템으로, 악신의 권능이 부여된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다.
“그 얄팍한 보호막도 너희를 지켜주지 못한다!”
보호막은 어느새 한계에 달해, 모두 부서져 있었다.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었다.
서강림이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선 순간, 주임 신부가 광속과도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쐐애액!
베엘제붑의 강신한 이상, 속도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월등한 상태였다.
서강림이라 한들 그 창을 피할 수 없었다.
서강림의 급소를 노리고 창끝이 날아든 그 순간.
-콰각!
붉은 피가 뚝, 뚝 물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위로 떨어졌다.
서강림의 칼이 주임 신부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피와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서강림의 검이 다시 한 번 선을 그었다.
-서걱!
초속을 자랑하던 베엘제붑의 날개가 잘려 나가자, 주임 신부가 비명을 지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서강림에 손에는 잘린 한쪽 날개가 쥐어진 채였다.
‘왜지? 어째서 서강림이 나보다 빠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강림이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인가?
혼란에 빠져 있던 주임 신부는 잘려나간 제 날개를 보자, 그제야 서강림의 계획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 내 날개를 적시기 위해 이런 짓을……!”
방금 전, 성수의 비를 내리게 한 것은 두 가지 목적에서였다.
하나는 파리와 신부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또 하나는 베엘제붑의 날개를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베엘제붑이 강하단 한들, 성수에는 데미지를 받기 마련이다.
다른 신부들처럼 무력화되지는 않더라도, 분명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수를 머금고 무거워진 날개는 미미하게나마 느려진 상태였다.
그래도 여전히 빠른 속도였지만, 그 약간의 차이만으로도 서강림에게는 충분했다.
이제는 아예 잘려 나가기까지 한 상황이니, 더 이상 신속으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제 속도는 호각이고.”
서강림이 물웅덩이를 밟으며 걸어왔다.
얼굴은 성수에 젖어 있었으나, 주임 신부는 피에 젖은 얼굴을 본 것처럼 기겁하고 있었다.
그가 다른 신부들을 향해 소리쳤다.
“연락한 광대패에게는 아직도 답이 없는가!”
“아, 아직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믿고 있던 증원까지 소식이 없자, 주임 신부는 더욱 초조해졌다.
그가 창을 움켜쥐고 상황을 살피던 그때, 주위에서 음습한 기운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의 일부가 강신하려 합니다!]
주임 신부가 밀리자, 더욱 힘을 빌려주려는 모양이었다.
주임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직 베엘제붑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내 한쪽 날개를 잃었지만, 주인께서……. 으아악!”
기뻐하던 주임 신부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모습이 더욱 일그러지고 있었다.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이 강신하려 합니다!]
[사도의 육체에 큰 부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신이 강신을 할 경우, 해당 만신이나 사도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다만 큰 힘에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그릇으로는 신을 모두 담을 수 없다.
육체의 부담이 너무 크기에, 신이 온전히 강림을 해버리면 그릇은 결국 망가지고 만다.
때문에 수호신들은 만신의 육체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신체의 일부만을 변형시키거나, 아주 잠시 강신을 하곤 했다.
그러나 베엘제붑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제물이 더 필요…….”
주임 신부의 입에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의 것이 아닌듯한 그 목소리.
그와 함께 마경의 공기가 기이하게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서강림은 다급히 뒤로 물러서며 리니에게 소리쳤다.
“리니! 성수로 보호막을 만들어!”
“웅!”
-콰아아!
성수로 만들어진 보호막이 서강림 일행을 모두 감쌌다.
그와 동시에 주임 신부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입에서 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에 신부들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파리들은 서강림 일행을 향해 날아가지 않았다.
파리들의 목표는 그보다 손쉬운 먹잇감, 바로 살아남은 신부들이었다.
“대, 대체 무슨……!”
“주임 신부님! 어째서 우리들을……!”
온몸이 파리로 뒤덮인 채, 신부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쓸모없는 짓이었다.
순식간에 피냄새가 퍼져 나갔다.
파리떼에 뒤덮인 신부들은 곧 백골이 되었다.
이제 그들의 앞에 남아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그저 이 마경을 찢어버릴 듯한 기백만이 넘실거릴 뿐.
자욱한 피안개 사이로 기괴한 형상이 발을 내디뎠다.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이 절반 이상 강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