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아이는 마기 때문인지, 아니면 독을 먹은 것인지 혼절한 상태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배교자가 아이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자, 요한이 비명을 질렀다.
“그만, 그만해! 제발 아이만은……!”
“아이들을 살리고 싶나? 그렇다면 우리의 명령에 따르도록 해.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
요한과 이수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임 신부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자, 그저 서강림을 붙잡아 데려오기만 하면 돼. 그렇게 하면 이 두 사람은…….”
-서걱!
“으아악!”
그때 뒤편에서 비명과 함께 피가 튀어 올랐다.
배교자들이 다급히 주임 신부를 보호하는 사이, 그는 뒤편에서 나타난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검을 들고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사람은 서강림이었다.
‘서강림?! 보이지 않더라니 다른 길로 돌아온 건가……!’
어느새 인질을 잡고 있던 배교자들은 단말마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서강림은 다급히 인질들을 확보한 뒤, 요한과 이수호에게 합류했다.
그가 다급히 요한에게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위험한 상태입니다. 빨리 치료를 해야 합니다.”
“예, 예!”
요한이 다급히 기도를 올리자, 치유의 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
배교자들은 서강림의 등장에 바짝 경계 태세를 취했으나, 차마 덤비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 이수호는 불안함을 느꼈다.
‘주임 신부가 왜 이리 태연하지?’
중요한 인질 두 사람을 빼앗겼음에도 주임 신부는 주눅 드는 기색이 없었다.
여전히 여유만만한 태도로 그가 입을 열었다.
“이수호 사제, 무기를 내려놓도록 해. 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인질은 모두 이쪽에 있다. 왜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내가 인질이 그 둘 뿐이라고 말했던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이수호는 주임 신부를 응시했다.
주임 신부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으로 오며 지시를 내려뒀다. 우리가 지정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보육원의 아이들을 모두 죽여 제물로 바치라고.”
“……!”
“그 서강림과 광명십자회까지 왔으니, 우리도 보험은 있어야지.”
사악한 웃음소리가 마경 안을 가득 채웠다.
이수호마저도 그 말을 듣고 경악한 채였다.
그가 서강림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
“서강림 헌터! 지금은 물러나서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서강림은 단호하게 말하며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아이들은 조금도 관심이 없는 듯한 그 모습에, 이수호는 악인이라도 보듯 서강림을 노려보았다.
배교한 신부들이 아닌 서강림을 쓰러트릴 듯한 기색.
그 모습을 본 주임 신부가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역시 그런 아이들 따위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누가 애들을 죽게 내버려 둔다는 거지?”
서강림이 그를 고요히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비호문의 일행들이 수도원에 남은 신부들을 제압하고 있다.”
수도원에 도착해서 신부들의 사주창을 확인한 뒤, 서강림은 아이들의 사주창도 확인했다.
그러나 아이 중에 악마 들린 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아이들을 살려뒀을까?
악마가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인간 제물을 선호하는 그들이라면 어떻게든 보육원의 아이들을 이용할 것이었다.
때문에 서강림은 비호문의 멤버들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
“당신들이 성물을 파괴하여 신성력이 약해진 덕분에, 이단자인 비호문 멤버들도 들어올 수 있게 되었거든.”
“……!”
주임 신부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졌다.
가장 중요한 협박 수단 중 하나인 보육원을 빼앗기다니.
보육원이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요한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절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요한의 눈동자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들끓었다.
그것은 이수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태가 일변하자 주임 신부가 다급히 외쳤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모두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수밖에!”
주임 신부의 지시에 신부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서강림의 검이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콰가각!
서강림이 들고 있는 검에서는 신묘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희게 빛나는 그 검을 보자 주임 신부의 눈에 휘둥그레졌다.
‘뭐야? 저 무기는 대체……! 저 기운은 신철(神鐵)? 저런 걸 어디서 구했지?’
서천 꽃밭에서 가져온 울부짖는 이빨은 공격력 자체는 좋지만, 전기톱 형태라 사용에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서강림은 울부짖는 이빨의 날 부분을 녹여, 새로운 검으로 만들었다.
검이 마치 맹수의 이빨처럼 희고도 위협적으로 빛났다.
“제, 젠장! 서강림을 먼저 제압해!”
“이수호와 요한 역시 만만치가 않습니다!”
상공에서 날카로운 빛의 광선이 생성되어 신부들을 제압하는 한편, 요한은 뒤에서 보호막과 회복 이능으로 빠르게 보조하고 있었다.
배교자들이 압도적인 전력차에 놀라 주춤 물러섰다.
“어, 어째서 이렇게 강하지?”
“우린 분명히 악마의 힘을 빌렸는데……!”
배교자들은 안간힘을 다해 저항하려 했으나 신성력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수호도 요한도 강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두려운 상대는 바로 서강림.
그가 마치 악마처럼 날뛰며 신부들을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고 주임 신부는 경악하고 있었다.
‘제, 젠장! 서강림. 강하다고 듣기는 했건만……!’
그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것을 깨달았다.
원래의 계획은 서강림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를 현혹하여 악마 숭배자로 만든다면 자신들의 교세가 더욱 커지리라 예상했다.
때문에 서강림을 이곳으로 부른 것이었다.
강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광명십자회보다 서강림이 더 위험한 상대였어!’
이제는 서강림을 제 편으로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가 근처에서 헐떡이고 있는 신부 하나에게 다가갔다.
“주임 신부님, 도와주세요. 놈들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 알겠다. 내가 너를 구원해주지.”
-푸욱!
주임 신부의 팔이 신부의 가슴을 뚫고 빠져나왔다.
그의 손톱이 마치 칼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주임 신부가 양손을 피로 적신 채,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이시여! 이 제물을 받고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시체에서 흘러넘친 피가 바닥에 새겨진 문양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믐밤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주변의 모든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호신의 힘을 빌리려는 건가……!’
서강림이 다급히 주임 신부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그 사이를 배교자들이 가로막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베이고,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사력을 다해 서강림을 붙들고 늘어졌다.
배교자들이 목숨을 걸고 서강림을 저지하는 사이 주위에 마기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이 자신의 사도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의 일부가 이곳에 강신합니다!]
“베엘제붑께서 오신다! 위대하신 베엘제붑이시여, 제게 힘을……!”
그와 동시에 주임의 몸이 변형되더니, 꾸득꾸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에서 무언가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서강림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신이 직접 강신하다니……!’
수호신은 자신의 권속에게 힘을 빌려주기 위해, 그 몸에 강신을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주임 신부의 육체는 형태를 달리하였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파리의 날개가 자라나고, 두 눈동자는 벌레의 홑눈처럼 변형되었다.
“아아,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이시다!”
“주인께서 오셨다!”
방금 전, 제 동료 중 하나가 죽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베엘제붑을 찬양했다.
신부 옷을 입고 악마를 숭배하는 지독한 풍경.
주임 신부가 홑눈을 번뜩이며 서강림 일행을 노려보았다.
“저들의 육신을 높은 거처에 계신 분께 바치리라!”
-콰아아아!
그의 옷 속에서 수많은 파리 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의 파리라면 큰 위협이 되지 않을 테지만, 이것은 달랐다.
수많은 식인 파리가 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능 ‘보호막’이 발동됩니다!]
요한은 다급히 보호막을 생성하여 파리떼들을 막았다.
파리떼는 자살이라도 하듯 몸을 마구잡이로 부딪치며 보호막을 파괴하려고 했다.
서강림이 상황을 확인하고 곧바로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광염일장’이 발동됩니다!]
어둠조차 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불길이 파리들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토록 강한 불길을 맞았음에도 파리들은 멀쩡했다.
주임 신부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높게 웃었다.
“지옥의 불구덩이를 관장하는 악마에게 이깟 화염 정도야……!”
주임 신부의 속성은 화, 또한 그의 수호신 역시 불꽃에 강력한 내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꽃 사이에서 일렁이던 그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카가강!
주임 신부가 거리를 좁히는 것과 동시에 날카로운 창끝이 서강림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가 다급히 창을 튕겨냈으나 숨 쉴 틈도 없이 주임 신부의 연격이 들이닥쳤다.
쇠끼리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와중, 이수호는 경악하고 있었다.
‘대체 이 속도는 뭐지? 눈으로 따라잡기도 벅차다……!’
서강림과 주임 신부의 전투는 일반인이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난 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수호 정도의 능력자기에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방금 전, 주임 신부의 일격은 이수호조차 읽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주임은 그륵대며 웃었다.
“서강림, 역시 너는 대단한 그릇이야. 그렇지만 강신한 사도보다 빠를 수는 없지!”
그의 말대로 신의 힘을 빌린 주임 신부는 인간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특히 속도에 있어서는 이곳의 누구보다도 빨랐다.
서강림은 그의 날개를 벨 듯이 노려보았다.
‘베엘제붑의 날개가 강신해서 속도가 급격히 상승했어.’
지금 상황에서는 궁서의 포효를 발동시킨다 한들, 베엘제붑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급히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서리불꽃’이 발동됩니다!]
어둠조차 얼려버릴 듯한 강렬한 한기가 주임 신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어느새 주임 신부가 있는 자리는 그저 공백.
목소리는 서강림의 뒤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인간치고는 제법이구나.”
-푸욱!
서강림은 불이 붙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어느새 창끝이 서강림의 허벅지를 깊게 찌르고 들어와, 붉은 피가 흘러넘쳤다.
주임 신부가 그대로 창을 거두어 서강림의 목을 찌르기 직전, 주임 신부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크윽……!”
서리불꽃이 얼굴에 직격하자 시야를 빼앗기고 말았다.
데미지는 없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서강림은 보호막 안으로 들어서 있었다.
그것을 본 주임 신부가 히죽이 웃었다.
“결국 도망가는구나. 그래봐야 시간문제일 뿐이다.”
주임 신부의 주위로 식인 파리와 배교자들이 몰려들었다.
점점 보호막 위로 파리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요한이 서강림의 부상을 다급히 치료하며 말했다.
“서, 서강림 형제님. 이제 어떡하죠?”
-콰앙!
그 와중, 무언가가 보호막을 강하게 내리쳤다.
파리들 틈새로 주임 신부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주임이 무자비하게 보호막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깟 방어막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악취처럼 마기가 흘러넘쳤다.
이수호는 그 마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대로 여기서 죽는 건가?’
아무리 수호성인이 옆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 한들, 주임 신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성인의 무덤’이라는 이름답게 여기가 자신의 무덤이 될 것 같았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이 몰려오고, 그의 마음이 어둠에 꺾이려고 하려던 그 순간.
“이수호 사제님, 정신 차리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서강림의 목소리에 이수호는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를 마주본 순간 이수호는 잠시 숨을 멈췄다.
서강림의 눈빛이 너무 올곧았기 때문이었다.
저 괴물과 맞서 싸웠음에도, 서강림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이수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걸, 저걸……. 우리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예.”
서강림은 그렇게 대답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