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165화 (164/256)

<165화>

서강림이 수도원에 처음 도착하여, 사제들의 사주창을 확인했을 때.

보통의 사제라면 성인이나 천사에게 수호를 받지만, 이들은 사뭇 다른 존재를 모시고 있었다.

═══════════════

[신명] 높은 거처에 계신 분

═══════════════

언뜻 보면 선한 신처럼 보이지만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은 악마로 유명한 베엘제붑의 이명.

아무리 봐도 신의 사도에 어울리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두 명이 아니라, 전원이 악마를 신내림 받았지.’

사주창을 확인하자 전원의 신명이 변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성자가 아니라 미각성자라고 주장하던 신부들 역시 모두 신내림을 받은 상태.

그때 한 신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린 짐승아, 보기보다 눈이 밝구나. 저기 저 광명십자회의 개는 우리의 냄새만 간신히 맡았건만.”

신부는 서강림을 향해 온화하게 말했다.

사근사근한 그 말투는 너무도 다정하고 유혹적이었다.

신부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는 어둠의 경계로 향하고 있는 자.”

“…….”

“빛보다 어둠에 가까운 자거늘, 왜 우리와 적대하느냐.”

그 말에 이수호가 놀라 서강림을 돌아보았다.

정작 서강림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서강림이 반박하지 않자, 신부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분께서는 네가 원하는 것을 알고 계신다. 우리와 손을 잡자. 그리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리니.”

광명십자회조차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수도원 하나를 통째로 장악한 자들.

그들과 손을 잡는다면 어떤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수많은 신부가 그들을 둘러싼 채, 서강림을 압박해 왔다.

“네 이능에 대해 알고 있다. 죽은 자의 이능을 훔치는 이능이 있다하던데.”

변질된 신부가 고요히 웃으며 말했다.

그가 슬쩍 눈을 돌려 이수호를 바라보았다.

“광명십자회의 이능이라면 좋은 양분이 될 테지.”

“……!”

“또한 이 자 외에도 많은 제물을 준비해두겠다.”

이수호는 그 말에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공포 때문이든, 탐욕 때문이든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기 쉬운 상황.

서강림은 제 앞에 서 있는 이수호를 보다 입을 열었다.

“글쎄. 광명십자회보다는…….”

-촤악!

서강림은 망설임 없이 신부를 베어냈다.

신부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갔다.

서강림은 그들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너희의 이능을 전부 가져가는 편이 나을 것 같네.”

서강림이 공격을 가하자 신부들의 눈빛이 일변했다.

마치 마수의 것처럼 흉흉한 눈동자.

그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놈을 제압해!”

“그분께 제물을 바치자!”

그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서강림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악마들이 달려드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강림이 검을 들었다.

-카가각!

순간, 배교한 신부들은 이 마경에 빛이 한 줄기 내리쬐는 듯한 풍경을 보았다.

그것이 검광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격이 워낙 빨라, 그 동선은 보이지 않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빛만이 망막에 맺혔다.

“큭, 커헉……!”

“노, 놈을 막아라……!”

악마에게 순종을 맹세하고 얻은 힘이었건만, 그 힘은 너무도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배교자들이 서강림을 제압하려 했으나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사이로 종횡무진하는 서강림을 보며, 배교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악마.

이 어둡고 잔인하며, 압도적인 힘.

이것이 악마의 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얼굴에 뜨거운 피가 튀어 오름에도 서강림은 망설임 없이 적들을 베어나갔다.

어느새 배교자들은 모두 행동 불능에 빠졌다.

이수호와 요한이 합세한 덕분에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배교자들 사이에 서강림이 서 있었다.

이수호는 채찍에 묻은 피를 털어내다, 서강림을 향해 말했다.

“……당신, 어째서 이들과 손을 잡지 않았습니까?”

그 물음에 서강림은 시선만 한 번 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우문에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그는 마경 안쪽으로 발을 옮기며 말했다.

“서두릅시다. 안쪽에 아마 다들 몰려 있을 테니.”

먼저 발을 옮기는 서강림의 뒷모습을, 이수호는 잠시 지켜보았다.

방금 전 싸우던 그의 모습은 검은 악마처럼 보였다.

그에게서는 여전히 짙은 피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강림, 악인이라 생각했지만 단순히 그것과는 달라.’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어둠이 서강림의 그림자에 서려 있는 것만 같았다.

이수호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빠르게 서강림의 뒤를 쫓았다.

* * *

마경의 지하 깊은 곳에서 음산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하는 위층보다 훨씬 넓고, 고풍스러웠으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의 예배당은 한눈에 봐도 불길하고 수상한 장소였다.

악마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썩어가는 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피로 그려진 수상한 마법진, 그 위에 있는 제단.

“네놈들, 지금 이게 뭘 하는 짓이냐!”

그리고 그곳에 누워있는 사람은 이수호의 동료였다.

그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신부들은 반응이 없었다.

염소의 탈을 쓴 채, 이수호의 동료를 바라보고 있을 뿐.

그가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분명 바뀐 사람은 남윤기 한 명뿐이었을 텐데……!”

“한 명이나 눈치채다니. 광명십자회도 눈치가 빠르시네요.”

그것은 명백히 조롱하는 어조였다.

이수호의 동료가 울컥하여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광명십자회를 상대로 이런 짓을 하고도 넘어갈 것 같나! 실종된 신부도 이렇게 죽인 거냐!”

“죽였다니, 말이 심하군요.”

염소탈을 쓴 신부 중 하나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실종자 중 한 명이었다.

광명십자회에 제보를 한 사람이기도 했다.

“다, 당신……! 당신이 어째서 이런……? 대체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말에 신부들이 경박하게 웃기 시작하였다.

귀를 찢을 듯한 웃음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실종되었던 신부가 입을 열었다.

“광명십자회에게 연락을 했을 때,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너희에게 도움 따위를 요청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게 무슨……!”

“너희에게 연락을 한 뒤, 나는 신내림을 받았다. 천사의 음성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사실 악마의 홀림이었지.”

신내림을 하자며 접근하는 신 중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신들을 보통 허주라 부르곤 하였다.

‘높은 거처에 계신 분’은 수호성인이나 천사인 것처럼 시늉하며, 나이가 어리거나 마음에 빈틈이 있는 사도들을 노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분께서는 내게 힘을 주셨으니까.”

“정신 차리세요! 지금 당신은 속고 있는 겁니다!”

“네놈은 모르겠지! 악마라도 찾아오길 바라던 내 심정을! 천사나 수호성인이 찾아오지 않아, 사도가 되지 못한 내 마음을 네가 알 것 같아?!”

신부들이라 해서 모두가 각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모두에게 신명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 중에서는 강력한 힘을 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악마들에게 있어서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나는 한때 광명십자회가 되기를 열망했지. 각성하지도 못하고, 신명도 없어 나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러나…….”

-푸욱!

“컥, 커헉……!”

“이제는 내가 당신보다 더 강해……!”

배교자가 단검으로 광명십자회의 복부를 찔렀다.

급소는 피했으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던 배교자가 다시 한번 단검을 들어 올린 순간.

-콰앙!

앞쪽 통로에서 요란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신부들이 모두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신부가 다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대체?”

“침입자가…… 아악!”

통로 쪽에서 비명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굉음과 함께 안으로 들어선 이수호와 요한이 눈앞의 참상을 목격했다.

요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피에 젖은 제단과 흉흉한 마력이 감도는 온갖 아이템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광명십자회의 일원까지.

이수호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다급히 다가가려 했으나, 동료의 목에는 칼날이 닿아 있었다.

“일단 거기서 멈춰서시지. 더 이상 다가오면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신부들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 든 신부가 어둑한 그림자 사이를 헤치고 걸어 나왔다.

“요한 신부. 결국 여기까지 왔군.”

주임 신부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옆에서 광명십자회가 컥컥대며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임 신부가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정직 처분을 당했을 때, 그냥 그대로 도망가면 목숨은 부지했을 텐데 말이지.”

“……전 주임 신부님도 당신이 죽인 건가요?”

요한이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평소답지 않게 분노에 가득 찬 시선이었다.

주임 신부는 설교라도 하듯,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줬지. 이 수도원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였으니까.”

“대체 왜 이런 짓을……!”

주임 신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소질은 있는 인간이 많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모두 졸작. 딱 맞는 그릇이 없었는데…….”

“…….”

“당신이 서강림을 데려와 줘서 잘 됐어.”

그 말에 요한은 배교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서강림은 강한 헌터지만, 아직 어떤 신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

웬만한 신이라면 그를 탐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마침 서강림도 이 자리에 없는 걸 보니 잘됐군.”

“…….”

“이수호 사제, 요한 신부. 서강림을 붙잡아서 데려오도록 해.”

그 말에 이수호는 이를 악 다물었다.

그가 죽일 듯이 주임 신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를 배신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못할 것도 없지. 그래 봐야 서강림은 타인이니까.”

주임 신부는 빙긋 웃으며 광명십자회에게 시선을 주었다.

급소는 피했다지만 출혈이 심해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이 그저 창백했다.

이대로라면 죽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협조한다면 네 동료를 살려주지. 이대로 내버려 두면 곧 죽을…….”

“웃기지도 않는군.”

이수호의 목소리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동료가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그의 두 눈에는 다급함보다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우리는 이미 온 일생을 신께 봉헌했다. 너희 같은 놈들에게 협조하고 목숨을 구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역시 고귀하신 성직자다우시군.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주임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배교자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배교자들은 조용히 안쪽에서 누군가를 데려왔다.

그것을 본 요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신부들이 안고 들어온 것은 어린아이.

보육원의 아이였다.

“요한 신부. 당신은 어떨까? 교육 시설에서 만난 서강림보다, 당신이 오래전부터 알아 온 아이가 더 소중하지 않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