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언뜻 들으면 부드럽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권유.
아니, 명령에 가까웠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이수호를 응시했다.
“저는 당신이 아닌, 주임 신부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수호는 고요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일은 성당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 외부인이 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제 능력이 두렵습니까?”
그 질문에 이수호가 일견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 이수호가 나를 봤을 때.
나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익숙한 경멸과 거부감을 읽어냈다.
나는 살인과 절도에 관련된 이능을 가졌으니, 이수호 같은 성직자가 꺼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수호는 나를 응시하며 곧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꺼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닌 다른 헌터가 왔어도 돌아가라 했을 겁니다.”
보아하니 둘러대는 것은 아닌 듯싶었고, 거짓말을 못하는 성미 같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이수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임 신부님과 이야기해 볼 테니, 귀가할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이수호는 그렇게 말한 뒤, 성큼성큼 걸어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그의 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수호가 나에게 적의를 드러낸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다른 부분이 신경 쓰였다.
그들은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 타이밍 좋게 발생할까?
다른 곳도 아닌 광명십자회다.
아마 그들도 뭔가를 알고 이곳에 온 것처럼 보였다.
메시아 수도원은 광대패와 연관되어 있으니 분명 가벼운 사안은 아닐 것이다.
“아, 형제님. 오래 기다리셨어요? 제가 곧 숙소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끝냈는지 요한 신부가 나왔다.
그는 나를 수도원의 손님방으로 안내해주었다.
가장 외진 방에 자리를 잡은 뒤, 나는 입을 열었다.
“주임 신부와는 무슨 이야기를 하셨죠?”
“드디어 제가 제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상황을 봐서 정직을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임 신부는 우리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애초에 우리가 여기에 온 건 마경 공략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어째서 요한 신부가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물었을 때.
요한은 자신이 정직 처분을 당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교육 시설을 나온 뒤, 저는 바로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교육 시설에 있었을 때부터 끝나면 와달라고 요청을 받았으니까요.]
때문에 그는 첫 번째 대마경 공략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수도원으로 복귀해야 하지만 요한은 뭔가가 잘못된 것을 눈치챘다.
[그런데 수도원에 도착하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상하다면?]
[오랜만에 뵌 신부님들이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말을 하던 요한 신부는 약간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외모가 바뀌었다는 건가요?]
[아뇨. 외모는 똑같지만, 분명히 뭔가가 바뀌었습니다. 다른 사람처럼요. 그저 제 감일 뿐이지만…….]
요한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저도 착각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분명히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나 보군요.]
증거가 있었다면 그가 굳이 돌아오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요한은 정직 처분까지 받아, 실질적으로 수도원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사람이 바뀌었다고, 뭔가 이상하다고 주임 신부님께 말했지만 제 착각이라 하더군요. 계속 뭔가가 이상하다고, 조사를 부탁드렸지만…….]
[잘 안 됐나 보군요.]
[네. 위원회의 명령에 불복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정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주임 신부님도 사람이 바뀐 건가요?]
[그분은 아예 새로 부임을 하셨습니다. 원래는 다른 분이 주임직을 맡으셨는데…….]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주임 신부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그리고 방금 전 만난 주임 신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요한은 주임 신부가 수상하다고 말했지만, 주임 신부는 온화한 성직자의 모습이었다.
수상한 점은 없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요한을 믿어주지 않았겠지.
[그리고 몇 신부님이 이곳을 떠났습니다. 마경에서 실종되신 분도 계시고, 사정이 생겼다며 수도원을 떠나기도 하고…….]
신부들 중 일부는 사람이 바뀌고, 실종되거나 자발적으로 수도원을 떠나갔다.
확실히 수상한 지점이 많았다.
요한이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고맙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형제님께서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너무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말을 못 했는데…….”
“아닙니다. 기꺼이 도와야죠.”
“감사합니다. 서강림 형제님이 동행해주시다니……. 주임 신부님도 반기시는 눈치라서 좀 기분이 묘하군요.”
주임 신부는 요한이 마경 공략을 돕겠다고 하자, 혹시 내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나는 지금 꽤 강력한 헌터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 의뢰를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비호문의 다른 분들이 오시지 못해서 아쉽네요. 대부분 신내림을 받으셔서 어쩔 수 없지만…….”
성당 같은 장소는 신성력이 강해 같은 계열의 만신, 사도가 아닌 이상은 입장에 제약이 있었다.
나머지 멤버들의 경우에는 각자 다른 신을 모시고 있어, 성당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신수아는 입장에 제한이 없었으나, 그들은 아무래도 여자가 수도원에 머무르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핑계였을 것이다.
나만이 이곳에 오게 하기 위한 핑계.
주임 신부는 나를 반기는 척 했지만, 속내는 다를 터였다.
지금도 그는 나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나는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곁눈질했다.
창밖 너머로 맞은 편 3층 건물이 보였다.
주임 신부의 사무실이 보이는 위치였는데, 커튼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전부 가려진 것은 아니었다.
실금 같은 틈새로, 누군가의 눈동자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일 새벽에 마경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만……. 괜찮겠죠?”
요한의 말에 나는 시선을 틀어 그를 마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을 겁니다. 일단 요한 신부님도 쉬시죠.”
요한은 고개를 끄덕인 뒤, 불안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마경, 마경이라.
굳이 그곳으로 가는 걸 보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우선 커튼을 친 뒤, 다음 계획을 준비하기로 했다.
* * *
“예. 이야기했던 대로 요한 신부가 서강림을 데리고 왔습니다.”
주임 신부의 목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창가에 서서 서강림이 머무르는 손님방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커튼이 쳐져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유리창에 꽂힌 상태였다.
“일단은 마경에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만……. 괜찮을까요?”
사무실에는 주임 신부만이 있었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방금 전, 서강림을 맞이했을 때와는 달리 온화하던 눈매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참이었다.
“요한 신부가 뭔가를 눈치챈 것 같기는 합니다만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러한 보고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답이 돌아왔다.
주임 신부는 잠자코 듣다가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서강림을 데리고 와준 것은 잘된 일이니까요. 광명십자회가 개입한 것은 예상외였습니다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주임 신부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가 조용히 웃었다.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 * *
수도원의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생활을 시작하는 수도원이기에, 자정이 되었을 무렵에는 모두가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수도원이 죽은 것처럼 조용해진 가운데, 손님방의 창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이능 ‘은둔자’가 발동됩니다!]
서강림은 ‘은둔자’로 모습을 감춘 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창문이 열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위층 창문으로 올라갔다.
‘확실히 이 수도원에는 수상한 부분이 많아.’
서강림이 수도원에 도착하여 신부들을 살펴본 순간.
그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밝힐 수는 없기에 요한에게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좀 더 확실한 물적 증거가 있으면 좋겠는데.’
수도원 내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를 꼽자면 주임 신부의 사무실일 터였다.
서강림은 날렵하게 지붕 위를 건너 사무실로 향했다.
‘내부에 인기척은 없군.’
그는 사무실 내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하지만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서강림은 조용히 리니를 소환했다.
“우웅?”
허공에 나타난 리니는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서강림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이 안에 들어가려고 해. 자석뿔 이용해서 걸쇠 열 수 있겠어?”
“웅!”
[이능 ‘자석뿔’이 발동됩니다!]
금속 재질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자석뿔.’
안에서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금장치가 열렸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서자 적막한 어둠이 서강림을 반겨주었다.
‘여기에 뭔가 단서가 있을까?’
서강림은 밤에 활동하는 짐승처럼 매서운 눈으로 실내를 살펴보았다.
리니도 함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서강림은 낮에 이곳을 방문한 순간부터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역시나 성물이 없어.’
일반적으로 성당이나 수도원 내에는 십자가나 성모상, 로자리오 등의 성물(聖物)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 주임 신부쯤 되는 사람이라면 방에 장식이 한 두 개쯤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방에는 그 흔한 십자가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 외에 눈에 띄는 건 없는 것 같고…….’
서강림은 무언가를 잠시 생각한 뒤, 리니를 돌려보내고 조용히 복도 쪽으로 나왔다.
그가 밤의 수도원을 거닐며 내부를 수색하던 중.
1층 홀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십자가 앞에 발을 멈췄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십자가였다.
하지만 서강림은 그곳에서 강렬한 쇠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그가 십자가에 다가가 뒷면을 확인한 순간.
-채앵!
뒤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서강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세검이 서강림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강림의 움직임은 그보다 더욱 빨랐다.
“……!”
서강림은 어느새 근처에 놓인 촛대를 집어 들어 공격을 막아낸 참이었다.
그가 습격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마침 제 발로 잘 나타나주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