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우리는 곧바로 차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현장은 그야말로 참극이었다.
수많은 인간에게서 살(殺)의 기운이 넘실대고, 그것이 모두 내 눈으로 들어오자 머리가 터질 듯싶었다.
경계의 힘이 활성화되면서 죽음의 기운은 날카로운 검처럼 예기를 띄고 내게 다가왔다.
사방에서 살의 기운이 범람하는 와중, 무너지는 건물 사이로 출몰하는 마수들이 보였다.
그때, 하늘에서 날카로운 날개소리가 들려왔다.
-키이이익!
언뜻 익룡을 닮은 마수가 요란하게 울며 도심의 하늘을 가로질러 왔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덩어리가 운석처럼 건물을 향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폭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나는 지상에 출몰한 마수들을 처치하며, 공중을 종횡무진하는 익룡들을 올려다보았다.
하필이면 공중이라니, 나와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도둑쥐’를 사용해서 날아오를 수는 있지만, 보는 눈이 많은 앞에서 그런 능력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그 순간, 익룡 한 마리의 머리가 폭파하는 것이 보였다.
-퍼어엉!
“누나, 왼쪽에 한 마리 더!”
“알았어! 후방 사수해!”
윤봄이 쏜 탄환이 정확히 익룡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두 사람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공중에 있는 마수들을 빠르게 격추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원거리 전에서는 두 사람을 상대할 사람이 없다.
두 사람이 공중을 처리하는 사이 나는 지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마수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윤봄과 윤겨울의 운명에 드리워졌던 살의 기운.
마수의 출연을 예고했다기에는 뭔가가 이상했다.
미각성자라면 모를까, 이 정도의 마수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윤봄과 윤겨울이 이곳에 온 이유가 떠올랐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블록 너머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 부근에서 강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젠장, 역시 다른 사람이 타겟이었던 건가.
나는 윤봄과 윤겨울에게 소리쳤다.
“두 사람, 부모님께 전화해봐!”
“네? 아직 이 근처에는 안 오셨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윤봄은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 않는 눈치.
나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르르륵……!
“다들 조심해! 물러나!”
“젠장, 이건 대체 어떻게 처리를……!”
그때, 길목 가운데에서 격렬한 전투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른 헌터들이 거대한 슬라임 형체의 마수와 전투를 치르는 것이 보였다.
한 헌터가 검을 들고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예리한 소리와 함께 마수의 신체 끝자락이 잘려 나갔으나, 그 사이로 산성 물질이 튀어 오르며 무기를 녹여냈다.
마수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잘린 단면에서 흘러내린 액체로 인해 사방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물리적 타격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주위만 부식되어 가고 있어요!”
“화염도 먹히지 않습……!”
-쩌저정!
나는 빠르게 ‘서리 불꽃’을 발동시켰다.
액체 상태의 마수라면 차라리 얼려버리는 것이 확실하고, 산성 물질도 빠져나오지 않는다.
삽시간에 얼음 동상이 된 마수를 보고 사람들이 당혹해하는 것이 보였다.
“뭐, 뭐지? 저 이능은 대체……!”
“서강림, 서강림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환호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급히 안쪽으로 달려갔다.
한 건물이 무너지고, 안에서 화염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윤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 사부님……! 안쪽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요!”
주위가 소란스러웠으나, ‘감각’의 효과로 안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윤봄과 윤겨울에게 드리워진 살은 자신이 아닌, 가족의 죽음을 의미했던 건가.
윤겨울이 이를 악물고 활시위를 당겼다.
[이능 ‘활의 노래’가 발동됩니다!]
상공에서 물로 만들어진 화살이 내리꽂히며 사방의 불을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윤봄이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를 파괴하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누나, 전화 다시 걸어봐!”
“전화가 안 걸려……!”
실마리가 되어주던 벨소리는 사라졌다.
그러나 윤봄의 부모님들이 죽을 운명이라면, 살의 기운이 강하게 깃들어 있을 것이었다.
사람들이 빠져나온 가운데, 건물 2층에서 죽음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쪽인가?
매캐한 연기 사이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을 쫓아, 나는 다급히 위층으로 달려갔다.
그때, 안쪽에서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제발……!”
한 여자가 쓰러진 남자의 앞에 무릎 꿇고 오열하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짓눌린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에게서도 강렬한 사망의 기운이 느껴졌다.
-으드득!
나는 잔해를 들어 올린 뒤, 남자를 끌어냈다.
의식은 없는 것 같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윤봄과 윤겨울이 다급히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빠, 정신 차리세요! 겨울아, 빨리 회복약!”
역시 이들이 쌍둥이 남매의 부모님인 모양이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살피는 사이, 나는 어디선가 시선을 느꼈다.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본 찰나, 그 너머에 있던 것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 가면.
광대패가 바깥에서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광대패는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광대패가 사라지자, 그제야 남자와 여자에게 드리워져 있던 살(殺)이 사라졌다.
마치, 그 자가 이들의 죽음이었던 것처럼.
* * *
“아이고, 제가 서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서 선생님!”
링거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병원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남자가 서강림의 손을 꼭 붙들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는 윤봄과 윤겨울의 부친이었다.
며칠 전,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활기차 보였다.
“진짜 그때는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좀 일찍 도착해서 애들 선물 사려고 집사람이랑 구경하고 있었는데…….”
“건물이 무너지고 불이 나서 이대로 죽는 건가 했어요. 서강림 씨가 들어왔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니까요!”
“원래도 팬이었는데, 더 팬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부가 모두 서강림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고 있는 와중 서강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남자의 다리 쪽에 시선을 한 번 줄 뿐.
끝없이 감사 인사가 이어지던 와중, 의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이제 회진 시간이라서요.”
“서 선생님께서 와주셨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부친은 서강림의 손을 꼭 잡고 있다가 아쉬운 듯이 놓아 주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아내가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빨리 쾌유하시길 빕니다.”
“……우리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서강림은 그렇게 인사를 남긴 채 빠져나왔다.
닫힌 문 너머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지만 다친 다리는 이능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잘려 나간 경우에는…….”
서강림은 묵묵히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던 중, 맞은편에서 오던 윤봄, 윤겨울과 마주쳤다.
윤봄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부님, 이제 돌아가시는 거예요? 병문안 와주셔서 감사해요.”
윤봄은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퀭했고 눈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서강림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리는 못 쓰시는 건가, 이제.”
“네. 그렇지만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때 돌아가실 수도 있었는데…….”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있던 윤겨울이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사부. 사부 덕분에 빨리 진입하지 못했다면 정말……. 돌아가셨을지도 몰라.”
서강림은 그 감사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부모님이 위기에 처한 원인이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광대패는 십이지 레이스 때 서강림에게 한 번 접촉해 왔다.
광대패에 들어오라고 제안하면서.
그런 와중, 동료의 가족이 테러에 휘말렸다.
마수들이 날뛰던 가운데, 다른 사람도 아닌 윤봄과 윤겨울의 부모님을 지켜보던 광대패.
아무리 봐도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건 일종의 협박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너의 주위 사람을 공격하겠다는 협박.
그때 윤봄이 머뭇대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저나 아니면 겨울이가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왜?”
“그게, 보호국에 입사하려고요.”
윤겨울이 미안하다는 듯이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보호국 차사로 들어가면 신체를 회복시키는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요즘은 거의 받기 어렵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성과를 올리면 가능하대.”
보호국 차사들이 누리는 복지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아이템을 받는 데에 제한이 생겼지만, 쌍둥이 남매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서강림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보호국에 가는 거야 자유지만, 나한테도 비슷한 아이템이 있어.”
“네?”
서강림은 놀란 눈이 된 두 사람에게 서천 꽃밭에서 있었던 일을 편집해서 설명했다.
더 이상 보호국에 회복 아이템이 없다는 것과 자신에게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광천수가 없어서 당장은 사용을 못 하지만, 대체할 물을 찾으면 바로 만들 수 있어.”
“…….”
“그렇게 되면 너희에게 줄게.”
보호국에 들어가더라도 아이템을 얻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 말에 윤겨울의 어깨가 떨리더니,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고마워요, 사부. 정말 고마워…….”
“…….”
“광천수라고 했죠? 그것만 구하면 되죠? 저랑 겨울이가 어떻게든 찾아낼 테니까……!”
두 사람은 흐느끼고 있었지만 상당히 안심한 눈치였다.
얼굴이 퉁퉁 부었어도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윤봄과 윤겨울은 병원에 더 남기로 하고, 서강림은 먼저 건물로 돌아왔다.
‘광대패 놈들, 예전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더 노골적으로 행동하는군.’
이대로 놈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한로야에게로 향했다.
한로야는 마침 작업을 끝낸 모양인지, 휴식을 하던 중 서강림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아, 서강림 씨! 마침 아이템 제련이 다 끝난 참이에요. 참 오래 걸렸네요.”
“감사합니다.”
한로야가 건네준 물건은 지금 서강림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자신과 광대패를 이어줄 중요한 통로.
서강림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좀 더 새벽이 깊어지길 기다렸다.
어느새 밤이 깊어 새벽 1시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방의 기운이 더욱 음산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축(丑)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는 축(丑)시, 귀신의 시간.
영기가 가장 강해지고 마수와 귀신들의 힘이 증폭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축시가 된 것을 확인한 뒤, 그는 품에서 방울을 꺼내 들었다.
녹이 슬고 부식 되어 있던 방울이 이제는 새것처럼 서강림의 얼굴을 반사하고 있었다.
-짤랑, 짤랑……!
짤랑이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명징하게 들려왔다.
방울이 아니라 영혼이 울리는 듯한 음색.
그리고 방 안의 마력이 격렬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강령하고자 하는 영혼의 이름을 호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