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 * *
[헌터 ‘서강림’의 이름이 널리 퍼집니다! 인간들이 당신에게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눈앞에서 인지도 상승을 알리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뜨고 있었다.
너무 자주 뜨는 바람에 수동으로 확인만 하고 알림은 꺼놓은 상태였다.
그런 메시지창이 뜨지 않아도 나에 대한 평가는 잘 알 수 있었다.
-서강림 미쳤다 놀이공원에서 싸우는 거 영화 찍는 줄;;;
-마수를 한 번에 제압하더라니까? 그 와중에 나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줬음.
-나 오늘부터 강림이 형 팬클럽 가입한다. 말리지 마라.
검색창에 ‘서’라는 한 글자만 입력해도 내 이름과 함께 여러 결과물이 출력되고 있었다.
놀이 공원에서 내가 싸우던 영상들은 수도 없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사람들이 당신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선행과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참 웃긴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의 비열함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선행을 이야기하다니.
물론 여전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서강림, 저 새끼 착한 척 하면서 뒤에서는 온갖 구린 짓 다 하는 거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서강림 겉으로만 착한 척 오지게 하는 위선자인데! 지난번 마경에서 마주쳤을 때 도와달라고 하는데 무시하더라.
-솔직히 서강림이랑 동급인 헌터 많은데, 다들 얼굴만 보고 빠는 거지. 기생 오래비같이 생겨 가지고는.
익숙한 리플이었으나, 차이점도 있었다.
예전에는 나를 비방하면, 그 아래로 동조하는 리플이 주르륵 달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나를 음해하는 내용에 따지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꼭 못생긴 애들이 억하심정 가지고 기생 오래비라고 하더라.
-서강림 욕할 거 없으니까 굳이굳이 짜낸 욕이 기생오래비인건가요? 웃기네요.
-또 얼굴 보고 빠는 애들 왔네. 서강림한테서 얼굴 빼면 뭐 남냐?
-교육 시설 수석 졸업생, 대마경 연속 공략자, 대형 마수 퇴치하고 사람들 구해낸 구원자, 그 외에 수많은 돈과 실력? 너는 뭐 남아?
상대방은 열이 올랐는지 육두문자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상당히 심한 욕임에도 나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태연해 보였다.
그나저나 나를 변호해주는 이 사람들, 다른 곳에서도 종종 보이던 닉네임이었다.
분명 다른 리플에서도 본 기억이 나는데.
주로 나에 대해 좋은 글을 적던 사람이었다.
좀 많이, 열성적으로.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서 잠시 아이디를 살펴보던 중, 한 글이 눈에 띄었다.
-나 설산에서 죽을 뻔했는데, 서강림이 찾아와서 살려줬어. 서강림 아니었으면 진작 요단강 건넜다.
설산에서 죽을 뻔했다고?
……이거 설마 윤겨울인가.
옆에서 같이 리플 다는 사람은 윤봄이고?
윤봄, 윤겨울로 추정되는 닉네임은 인터넷에서 꽤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올린 글 대부분이 나에 대한 미담이었다.
그 덕분인지 나에 대해 좋은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의 선량함, 정의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직 충분한 이야기가 모이지 않아, 신명이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한들, 나쁜 이야기보다는 전파 속도가 느린 모양이었다.
나야 사람들이 욕을 해도 상관없고 ‘비겁한 승리자’라는 신명도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신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할 뿐, 고명(高名)이든 악명이든 상관없다.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 연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도 나타나고 있었다.
원인은 대충 짐작이야 가지만…….
-신수아랑 서강림 같이 싸우는 거 봤냐? 케미 장난 아니던데.
-둘이 놀이 공원에 있던 거 보면 답이 나오죠?
-둘이 비밀 데이트 하고 있었나보다!!
우리 말고 다른 멤버들도 있었는데, 그쪽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화면에도 나와 신수아가 같이 찍히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나.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던 그때,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충분한 인지도를 충족하여, 무불 통신 시스템 접속이 가능합니다.]
오늘 본 것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직 신역 시스템을 열 수는 없지만, 무불 통신도 꽤나 쓸모가 많아 보였다.
인간으로서 사용해본 적은 있지만, 반신의 입장에서 써보는 것은 처음.
무불 통신에 접속하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뜨며 여러 가지 선택지가 나타났다.
[무불 통신에 연결할 인간 혹은 신을 고를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 당장 연결을 해보고 싶은 신이라면……. 역시 ‘첫 번째의 주인’이다.
하지만 무작정 접촉을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저쪽은 아직 내가 눈치챈 것을 모를 테니, 일단 이쪽은 다음으로 미뤘다.
남은 것은 인간에게 연락을 취하는 건데…….
나는 고민하다가 신수아의 방으로 찾아갔다.
“네, 강림 씨. 무슨 일이세요?”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무불 통신을 실험하려면, 상대방에게 인지도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해야 했다.
슬슬 신수아에게도 신격화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야 했으니, 그녀와 실험을 하며 설명하는 편이 나을 듯 싶었다.
“신수아 씨, 혹시 요즘 인지도가 오른다는 알림창이 뜨지 않나요?”
나는 그렇게 운을 띄운 뒤, 짤막하게 설명을 했다.
인지도, 신격화, 그리고 그 뒤에 사용이 가능한 시스템도.
그녀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그랬군요. 신격화라니……. 강림 씨의 말대로라면 저도 반신이 될 가능성이 있네요.”
“네. 그리고 지금 무불 통신을 사용해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은데,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네, 좋아요.”
신수아가 흔쾌히 수락하자, 나는 곧바로 테스트에 들어갔다.
신들이 무불통신을 통해 말을 걸어오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꽤 유용한 기능이 될 것 같았다.
[‘신수아’의 무불 통신에 접속을 시도합니다.]
[대상의 힘이 강력하여, 무단으로 접속할 수 없습니다.]
[대상이 수락하지 않을 경우, 통신이 불가능합니다.]
신이지만 무작정 연결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실망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다행이라 느껴졌다.
다른 신들 역시 나에게 쉽게 접속하지 못한다는 의미니까.
신수아의 도움을 받아 실험을 한 결과,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무불 통신에 접속하면 메시지를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야 공유가 가능하다.
화면은 1인칭이 아니라 쿼터뷰 형식으로, 내가 천장에서 신수아를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 것과 비슷한 구도였다.
신들이 마경에서도 자유자재로 메시지를 보낸 걸 생각하면 거리나 마경, 현세의 구분 없이 사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또한 신들이 후원을 해주던 것처럼 아이템 등을 보낼 수도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수아 씨. 생각보다 쓸모가 많을 것 같네요.”
실험을 통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은 다 확인했다.
활용하는 데에 따라 여러모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수아는 접속을 끊은 뒤 나를 보며 말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강림 씨의 신명…… 비겁한 승리자라니, 어울리지 않네요.”
어쩐지 접속할 때 표정이 별로 좋지 않더라니, 내 신명 때문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저야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강림 씨가 비겁하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신수아는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내가 욕을 먹는데, 자신의 일처럼 화를 내다니.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신수아에게 신명이 생긴다면 어떤 것이 붙을까 상상해보았다.
정의롭다거나, 올곧다거나 좋은 수식언이 붙은 신명이겠지.
인지도를 쌓고, 신격화에 들어서서 반신이 될 그녀를 상상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신을 증오하지만, 신수아 같은 신이라면 세상에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수아 언니, 봄이에요! 혹시 노트북 좀 빌릴 수 있어요? 저 키보드가 고장나서…….”
“아, 들어와.”
신수아가 문을 열어주자, 윤봄이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보고는 놀란 눈이 되었다.
“어라? 사부님? 왜 여기에……. 죄, 죄송해요! 좋은 시간 되세요!”
“그런 거 아냐.”
오해하고 도망가려는 윤봄을 빠르게 붙잡았다.
뭘 오해하고 있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윤봄에게, 나를 대신해 신수아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강림 씨랑 그냥 이야기 좀 하고 있었어. 안 가도 돼. 무슨 일이야?”
“아, 아니에요. 그냥 물건 좀 빌리려고…….”
윤봄은 조금 얼떨떨한 눈치로 굳어있었다.
나는 그런 윤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가 이상했다.
[‘윤봄’의 운명에 살(殺)이 끼고 있습니다.]
윤봄에게 살의 기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죽을 정도로 과격한 살은 아니지만, 분명히 어떤 종류의 불행을 예견하는 살이었다.
어제까지는 멀쩡했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 거지?
“윤봄, 오늘 마경이라도 갈 계획이야?”
“아뇨! 오늘은 마경 안 가요. 부모님이 올라오셨대서 겨울이랑 이따가 뵈러 가기로 했어요. 저희가 뉴스에 나온 거 보셨대요.”
윤봄은 뿌듯하다는 듯 헤실헤실 웃었지만, 살의 기운은 여전했다.
마경에 가는 것도 아니고 외출을 하는 것뿐인데 이런 기운이라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약속 장소 어디야? 태워다 줄게.”
“앗, 그래도 돼요? 저야 태워다주시면 좋긴 하지만……. 수아 언니랑 일 있으신 거 아니었어요?”
“괜찮아. 다 끝났어.”
신수아는 내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봄은 쭈뼛대다가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신수아에게 인사를 남긴 뒤 방을 빠져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윤겨울과도 곧 합류했는데, 역시 그에게서도 살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부가 우리 태워다 주는 거야? 잘됐다! 우리 엄마랑 아빠가 사부 꼭 보고 싶다고 했거든!”
“맞아요. 저희가 신세 지고 있어서, 한 번쯤은 꼭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둘은 신이 나서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나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알데바란은 너무 눈에 띄기에, 나는 예비용으로 사둔 승용차에 두 사람을 태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 사이 윤겨울이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누나, 지난번에 신고한 새끼들이 합의해달라고 연락 오네. 합의해?”
“그딴 거 없어.”
“그럴 줄 알았어. 아, 그 사이 또 어떤 새끼가 리플 달았네. 미친놈들, 어디서 우리 사부한테…….”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다 들렸다.
나는 뒤를 힐끗 보며 말했다.
“나는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사부. 아무것도.”
윤겨울이 헤헤 웃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에게서는 살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약속 장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살의 기운이 강해졌다.
약속 장소인 번화가에 가까워지자 윤봄이 말했다.
“사부님 덕에 일찍 왔네요. 약속 시간 좀 남았으니 근처 카페라도…….”
그때, 순간 목덜미에 차가운 것이 닿은 것 같았다.
뼛속까지 얼어붙을 듯한 강력한 살의 기운.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콰아앙!
근처에 있던 건물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차량들이 모두 멈춰서고, 요란한 클락션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달아 폭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누군가가 찢어질 듯 소리쳤다.
“아아악, 마수들이다!”
마수가 출몰했다고?
내 기억상으로는 전생에는 없던 사건이었다.
분명 놀이 공원 사태 이후 한 달 동안은 마수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