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155화 (154/256)

<155화>

최필영은 죽었고, 영상 속의 최필영은 가짜였다.

내 이능인 ‘도둑쥐’와 최필영에게서 훔친 ‘분신술’을 합쳐서 만들어낸 가짜.

나는 운명 보호국에 끌려가기 전, 틈을 노려 내 분신을 만들어 둔 상태였다.

그리고 ‘도둑쥐’를 사용해 최필영의 모습을 빌렸다.

그는 기껏해야 목소리만 위조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의 모든 모습을 훔칠 수 있었다.

최필영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올린 뒤 폐기했으니, 보호국이 추적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다행이에요! 사부님의 무죄가 밝혀져서!”

윤봄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딱히 무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 사이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헌터 ‘서강림’의 이름이 널리 퍼집니다! 신들이 당신에게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헌터 ‘서강림’의 이름이 널리 퍼집니다! 인간들이 당신에게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내 이야기로 떠들썩한 모양이었다.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알림창과 함께, 다른 알림창도 뜨고 있었다.

[신명이 부여되며, 운명의 변조를 감지합니다]

[서강림의 운명 등급이 용삼품(龍三品)으로 상승합니다!]

반신화가 시작되며 운명 등급도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이제 용삼품, 사람들 사이에서는 용급만 되어도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을 받는 등급이었다.

벌레급에서 용급까지 올라오다니, 새삼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이제는 능력치가 올라가는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충삼품이었다면 아직도 한참 고생하고 있었을 텐데.

이제 공적치를 쌓고, 능력치를 올리는 것은 다소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다른 부분.

이제는 인지도를 쌓는 데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지도를 올려야 추가적인 기능들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충분한 인지도가 부족하여, 무불 통신 시스템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충분한 인지도가 부족하여, 신역 시스템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인지도로 인해 신격화 단계에 들어섰지만, 아직 여러모로 미흡했다.

아직 사용할 수 없는 기능도 많았고 반신화 역시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악명이 빨리 퍼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치료가 잘 안 되는데……. 일단 돌아가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요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뜨기 전, 나는 운명 보호국 건물을 힐끗 돌아보았다.

취조실에서 공주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강림 씨. 만약 당신이 정말로 범죄를 저질렀다면……. 조건에 따라 당신을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공주 팀장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언뜻 들으면 나를 안심시켜, 자백을 시키려는 것도 같았지만 그런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백을 하지 않더라도 ‘진실의 입’을 이용하면 진상을 밝힐 수 있었을 테니.

공주 팀장이 말한 조건이란 게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예전부터 나를 영입하려고 혈안인 사람이었으니, 아마도 그쪽일 것이었다.

그는 내 죄를 경감하거나 묻어주는 대가로 나를 영입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찝찝한 이야기였다.

보호국에 협조하는 대가로 죄를 사해주다니.

예전부터 운명 보호국이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뭔가가 여러모로 걸렸다.

나는 잠시 운명 보호국의 건물을 돌아보았다.

우뚝 솟은 빌딩이 마치 거대한 탑처럼 보였다.

16. 조우

누구나 유명해지면, 그 사람을 따르는 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회귀 전에도 수많은 팬을 자랑하는 헌터와 만신들의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회귀 전의 신수아 역시 그녀를 따르고 흠모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강함을, 아름다움을, 선함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각성자들은 비호문에 들어오고 싶어 했으며, 미각성자들은 연예인을 대하듯 신수아를 응원했다.

비호문 건물 앞에 수많은 팬이 모여 진을 치던 것이 생생했다.

……실제로 내 눈앞에 그런 상황이 펼쳐져 있기도 하고.

“서강림, 얼굴 한 번만 보여줘!”

“서강림 네가 헌터들의 귀감이다!”

“강림아, 난 최필영 영상 절대 안 믿었어!”

나는 건물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건물 주위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몰려와, 환호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화려한 플랜 카드들도 보였는데 거기에 적힌 내 이름이 상당히 낯설었다.

대마경을 연속 공략한 이후, 내 인지도는 빠르게 올라갔다.

물론 대마경보다 다른 사건으로 더 많이 거론되고는 있었지만.

최필영 조작 영상은 지금도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었고, 피해자인 나 역시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또 신수아와 찍힌 사진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내가 공주님처럼 신수아의 품에 안긴 채, 대마경을 빠져나오는 사진이었다.

그것 때문에 가십지에서는 우리의 관계가 연인이라느니, 그런 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었다.

인지도가 높아지니 나쁘지는 않지만…….

“우와, 사람 진짜 많네. 이거 바깥에 못 나가겠다.”

옆에 서 있던 장태헌이 바깥 인파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나였어도 놀랄 일이었다.

전생에서는 벌레 새끼 소리만 들었는데, 이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다니.

“보니까 형님 이름 앞으로 택배도 엄청 오던데. 문파 가입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

“응.”

내 휴대폰에는 지금 미친 듯이 전화가 걸려오는 중이었다.

그동안 연락 한번 없던 지인, 친척들을 비롯하여 타 문파에서 오는 러브콜이었다.

그 외로도 신들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지만 전부 무시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대마경 공략은 여러 번 했는데, 이번에는 특히 반응이 뜨겁네? 이렇게 팬들이 오는 건 처음 아니야?”

장태헌의 말대로 팬들이 이렇게 모습을 직접 드러낸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이런 호의를 보이는 원인은 대마경 공략이나 최필영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독고준 때문이었다.

“서강림, 뭐 봐? 우와, 사람들 많이 몰려왔네. 장난 아니다.”

어느새 독고준이 곁으로 다가와 바깥 풍경을 보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

“마감은?”

“다 하고 쉬러 나온 거야. 그나저나 서강림 팬들이 더 늘었네. 뿌듯하다.”

나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독고준이었다.

그는 나를 소설 속에서 화려하게 치장하고 포장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설 속의 ‘서강림’을 사랑했고, 그 여파가 현실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최필영 덕분인지 이번에 조회수가 많이 늘었더라고. 최필영 때문에 고생하던 네 모습에 같이 분노해주는 사람도 많았어.”

죽은 최필영이 본다면 기함을 토할 정도로, 소설은 잘 각색되어 있었다.

최필영은 밑도 끝도 없는 쓰레기로, 나는 그를 응징하는 처벌자로 나와 있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죽지 않았지만.

“……그나저나, 형님.”

그때 옆에서 장태헌이 입을 열었다.

그는 약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독고준을 보고 있었다.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어?”

갑작스러운 독고준의 등장에 장태헌은 얼떨떨한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서 독고준이 이 건물에 서식 중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감하다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참이니, 보는 것도 처음이겠군.

독고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서강림이 나를 납치 감금했어.”

누가 들으면 오해할 법한 발언이었다.

감금을 한 건 사실이지만.

나는 그의 발언을 정정해주었다.

“입주 형식으로 고용한 관계일 뿐이야.”

“뭐, 그렇다고 하네. 어쨌든 나도 이 건물에서 지내게 된 참이야.”

그 말에도 장태헌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형님, 괜찮겠어? 이런 놈을 데리고 있다니……. 이 자식이 교육 시설에서 한 짓 봤잖아.”

장태헌이 보이는 적의는 분명히 납득할만한 것이었다.

독고준이 그동안 보여준 기행과 악행을 생각한다면 달가워하는 쪽이 도리어 이상했다.

장태헌이 주먹을 꾹 쥐었다.

“독고준, 대체 뭐라고 형님한테 지껄인 거야? 순하고 마음 약한 형님을 속여서 여기 들어온 거겠지……!”

일단 내가 독고준을 감금한 거긴 한데…….

뭐라 부정할 새도 없이 장태헌이 독고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분명히 형님을 배신할 놈이야. 너 같은 놈은 여기에 있어선 안 돼.”

“서강림처럼 재미있는 주인공을 배신하다니, 그럴 리가.”

“계속 그놈의 주인공 타령……! 너 교육 시설에서도 다른 사람으로 주인공 갈아탄 적 있다며?”

“우와, 그건 내 흑역사인데 누가 말한 거야? 앞으로는 그럴 일 없어.”

독고준은 내가 약해지거나, 제 성에 차지 않는다면 나를 등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현재까지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지만.

독고준이 장태헌을 바라보다 싱긋 웃었다.

“그리고 나는 서강림에게 도움이 되니까 여기에 있는 게 나아. 최소한 너 같은 조연 나부랭이보다는 훨씬 서강림에게 도움이 되겠지.”

독고준은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

누가 봐도 장태헌을 자기 아래로 보는 시선.

장태헌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얼굴을 위협적으로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네가 나보다 형님한테 도움이 된다고? 나한테도 못 이길 놈이 말이 많네.”

“아하하, 네가?”

“한 판 붙어 보든가.”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낼 건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성격적으로도 그렇고, 사주 궁합만 봐도 상성이 나쁜 편이니까.

독고준은 장태헌의 도발에 살짝 고민하는 눈치가 되어 말했다.

“너 같은 조연 나부랭이에게 쓸 시간이 아까운데……. 내가 이기면 어떡할래?”

“네 명령대로 따라주지.”

“나쁘지 않네. 서강림, 괜찮아? 우리 둘이 싸워도.”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말려봐야 또 싸울 테고.

으르렁대는 장태헌을 앞세운 채, 독고준도 곧 자리를 떠나갔다.

아마도 둘이 붙는다면…… 높은 확률로 장태헌이 지겠지.

하지만 이 갈등이 장태헌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장태헌은 투쟁심이 강한 편이라, 독고준같이 자극을 주는 존재가 있는 편이 빨리 성장할 수 있겠지.

그 과정에서 고생은 좀 하겠지만.

-우우웅

그때 내 휴대폰이 다시 한번 울리기 시작했다.

꺼둘 수도 있었지만 오늘 오기로 한 손님이 있기 때문에 켜두고 있는 상황.

확인해 보니 그녀가 보낸 연락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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