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153화 (152/256)

<153화>

인지도는 활약이나 선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악신이나 악마 같은 악 계열이 수호신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악명 역시 인지도가 되어준다.

최필영이 했던 가장 큰 실수.

바로 그의 기사가 많은 사람에게 읽힐수록, 기사의 소재인 서강림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최필영보다도 서강림의 이름이 더욱 많이 거론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보통 기사를 읽을 때, 기자보다는 소재가 된 인물을 더욱 중시하니 말이다.

서강림의 말에 잠시 움찔했던 최필영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기사를 썼을 거라고 생각해? 너무 당당해서 속을 뻔했네.”

그가 입꼬리를 비틀며 서강림을 비웃었다.

“넌 수호신이 없잖아! 인지도가 올라가 봐야 아무 쓸모없다고!”

최필영의 말대로 신내림을 받지 않은 각성자는 인지도가 올라가 봐야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강림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알림창이 뜨고 있었으니까.

[‘서강림’의 인지도가 달성치를 초과하였습니다!]

[‘신격화(神格化)’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만신이 아닌 헌터는 인지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것이 헌터와 만신들의 상식이었다.

물론 ‘현재’에는 말이다.

몇 년이 지나자 인지도는 수호신뿐 아니라 각성자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일정치 이상의 인지도를 쌓을 경우, 각성자 자체가 신격화되는 것.

일반적으로 헌터가 충분한 인지도를 얻기까지에는 최소 몇 년이 걸린다.

하지만 신내림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서강림’에게 개입한 수호신이 없음을 확인합니다!]

[인지도가 분산되지 않습니다!]

신내림을 받으면 얻는 이득이 많아, 대다수의 헌터는 신내림을 받았다.

하지만 인지도의 대부분을 신에게 빼앗긴다.

반면에 신을 등지고 홀로 걸어가는 인간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명예가 주어졌다.

서강림은 인지도가 분산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에게 닥친 위기들을 역으로 이용했다.

독고준에게 소설을 쓰도록 만들고, 최필영을 자극하여 일부러 자신에 대한 비난 기사를 유도한 것.

그리고 대중은 서강림의 뜻대로 그에게 관심을 주고, 이야기를 하며 그의 이름을 널리 퍼트렸다.

그것이 비록 악명일지라도.

[인간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간이 당신의 비겁함과 강함,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신명 ‘비겁한 승리자’가 주어집니다!]

내용 따위는 상관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 관심이 악의든 선의든 간에 더 키운 뒤 통째로 삼켜 자신의 양분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 와중 최필영은 서강림의 태도에 당혹해하는 기색이었다.

‘서강림은 분명히 평범한 헌터일 텐데. 인지도가 올라가도 아무 소용…….’

최필영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다급히 검을 그러쥐었다.

그의 눈빛에 당혹감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그 사이 신내림을 받았나!’

서강림이 신내림을 받았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상황은 서강림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최필영은 이를 악물고 서강림을 노려보았다.

‘그래 봐야 놈은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야! 내가 훨씬 더 유리해!’

-카가강!

그와 동시에 최필영의 분신들이 서강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십 수 개의 검이 어둠을 갈랐다.

분신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와중 최필영이 악을 지르고 있었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눈도 보이지 않고 녹초가 된 마당에 이 인원을 이길 수는 없을……!”

-쩌저정!

그때, 무덤에 겨울이 찾아왔다.

서강림의 손에서 피어오른 서리 불꽃은 어둠 속에서 희게 피어올랐다.

싸락눈이 내리는 가운데 그대로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린 분신들이 보였다.

사방이 그저 눈에 서리, 얼음.

그건 이능이 아니라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최필영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인간의 경계를 반걸음 벗어나 있었으니까.

[‘반신화(半神化)’가 발동 중입니다!]

[신력(神力)이 신체에 깃들고 있습니다!]

[인지도에 비례하여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신들이 인지도에 따라 강해지는 것처럼, 서강림 역시 강화되어있는 상태.

그가 광속처럼 최필영에게 달려들었다.

최필영이 다급히 검을 들어서 막아냈으나, 충격을 모두 상쇄할 수는 없었다.

-까강!

완력에 밀려 최필영이 물러서자 곧바로 서강림의 공격이 연달아 이어져 왔다.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수명이 깎여나가는 듯한 느낌.

어느새 서강림의 눈동자는 짐승의 것처럼 금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에게서 새어 나오는 강렬한 기운.

차마 힘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순간, 최필영이 다급하게 외쳤다.

“나, 날 죽이면 너도 곤란해질걸?”

그 말에 서강림의 검이 멈췄다.

그가 어디 한번 지껄여 보라는 듯이 최필영을 내려다보았다.

최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내, 내가 여기 들어오기 전 너를 고발하는 기사를 올렸어! 이 상태로 나가면 넌 살인자 취급을 받을 거야. 하지만 날 내보내 주면 바로 정정 기사를 내보낼게!”

최필영이 덜덜 떨며 미소 지었다.

“약속할게!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너를 건드리지 않을게. 네 동료들도…….”

-서걱!

얼어붙은 바닥 위로 피가 튀었다.

더 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고요와 한기만이 무덤을 감돌 뿐.

그리고 최필영을 쓰러트린 순간, 서강림의 몸이 크게 휘청이며 한쪽 무릎이 꿇렸다.

그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력이 깃든 대상이 인간임을 확인합니다!]

[과도한 신력으로 인해, 그릇인 육체에 부하가 걸립니다!]

서강림은 곧바로 ‘반신화’를 해제했지만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장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 누군가가 폐에 진흙을 가득 채운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다.

고통 때문에 한참이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역시 인간의 몸으로 신력을 담는 건 문제가 있네.’

애초에 신은 죽은 이후에나 될 수 있는 것.

신력은 확실히 강한 힘이었으나 살아 있는 상태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대로라면 인지도가 상승하더라도 그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걸 다 받아내려면……. 내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나.’

인지도를 올리는 것만큼이나 그릇인 자신의 육체와 정신도 단련시켜야 했다.

최소한의 인지도를 채워 신격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그래봤자 겨우 걸음마를 뗀 단계였다.

그는 최필영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더 이상 최필영의 혀도,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상태.

비호문의 멤버들을 전생처럼 괴롭힐 일도 없을 것이었다.

서강림은 묵묵히 챙길 것을 챙기고는 자리를 떴다.

‘이제 2시간 정도 남은 건가.’

최필영도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탈출뿐.

최필영을 죽이는 현장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역소환했던 영수들을 다시 불러냈다.

“웅?!”

“캬앙!”

영수들이 서강림의 상태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쉬고 싶었지만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힘겹게 벽을 짚으며 한참동안 나아가던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림 씨? 강림 씨 맞아요?”

그 목소리를 듣고 서강림은 우뚝 멈춰 섰다.

지금 들려오는 것은 신수아의 목소리였다.

방금 전, 최필영의 분신들이 떠들던 것처럼 거리를 두고 목소리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사부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걱정 많이 했어, 형님.”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 어둠 속에서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미 죽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내가 정말 죽었을까, 서강림?】

최필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평소처럼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 목소리가 진짜일까?】

【저 목소리가 내 분신들이라면, 넌 죽을 테지.】

【가짜일까? 그래. 아무래도 가짜 같아. 한 번 죽여보지 그래?】

서강림을 시험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귀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어지러웠다.

목소리들과 함께 발소리가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게 만약 가짜라면 너는 죽은 목숨이야.】

최필영이 흉내 내던 목소리, 그리고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서강림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목소리를 착각할래야 착각할 수가 없었다.

서강림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그를 덥썩 잡는 것이 느껴졌다.

“강림 씨, 괜찮아요? 왜 이렇게 많이 다쳤어요? 설마 눈도 안 보이는 거예요?”

신수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쩐지 고통이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명은 일시적인 거니, 곧 해제될 겁니다.”

환청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냉정한 맨정신이 찾아왔다.

서강림은 신수아를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오지 않아도 됐는데요. 게다가 리셋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시간 얼마 안 남았다고, 강림 씨가 돌아오기만을 우리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나요?”

신수아는 그렇게 말하며, 서강림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 모습에 장태헌과 윤봄 뿐 아니라 서강림도 당황하고 말았다.

그가 벗어나려 했지만 신수아는 놓아주지 않았다.

“신수아 씨? 저 괜찮습니다. 내려주시면 제 발로…….”

“시간이 없어요. 상태 보니까 뛰는 건 무리고, 이게 빠를 것 같네요. 바로 탈출하죠!”

반신화 페널티로 인해 몸은 엉망진창이고, 눈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니 신수아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그리고 신수아에게라면 이런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신수아에게 몸을 맡겼다.

“……잘 부탁합니다.”

“좋아요. 꽉 잡아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두를게요.”

신수아가 서강림을 안아 든 뒤, 곧장 출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두 팔이 그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 * *

[대마경 종료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다들 나가! 곧 대마경이 닫힌다!”

대마경 종료가 임박해오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각성자들이 황급히 대마경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남아 있던 사람의 수는 한 줌 정도.

각성자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마경 내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혹시 내부에서 서강림 헌터를 봤습니까?”

“아직까지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 서강림 헌터의 상황을 알고 있나요?”

대다수의 기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서강림의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서강림과 그의 동료들의 귀환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

기자들이 초조하게 서강림을 기다리는 와중, 제한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대마경 종료까지 5분 남았습니다!]

종료시간이 5분 남자, 모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서서히 대마경의 문이 닫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기자들이 빠르게 속보를 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기사 올려. 서강림 헌터 사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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