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이능 ‘도둑쥐’의 등급이 증가하여, 대상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능 ‘천혈조(千血爪)’가 발동됩니다!]
-콰가가각!
발톱을 휘두른 순간, 천 개의 칼날이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피로 만들어진 칼날이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병마용들의 몸이 반토막이 났다.
이제 적의 수는 절반 이하.
[마력이 급속도로 소모되는 중입니다!]
누군가가 내 영혼에 칼을 박아 넣어 구멍이라도 만든 것처럼, 빠르게 마력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마수로 변할 경우 마력 소모량이 큰데, 그보다 더욱 속도가 빠른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해야했다.
-콰직!
나는 겁 없이 달려드는 병마용의 머리를 짓밟아 깨부수었다.
천년호의 이빨과 손톱은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했다.
병마용들이 기를 쓰고 달려들어도 천년호에게 그들의 무기는 닿지 않았다.
얇은 유리병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병마용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천년호는 재앙처럼 울부짖었다.
그 사이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마력 부족으로 이능 ‘도둑쥐’가 해제됩니다!]
이능이 해제되었다는 알림창이 뜬 것과 동시에, 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미 상황은 거의 다 종료된 참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하를 가득 울리던 병마용들의 울음소리는 한 줄기만이 남아 있었다.
【죗, 값을…….】
마지막 병마용이 반쯤 파괴된 상태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병마용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더 이상 마수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내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을 뿐.
병마용들의 파편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풍경이 꽤나 장관이었다.
-털썩
지친 영수들의 옆에, 나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심각한 마력 빈혈로 인해 손끝이 덜덜 떨려오는 중이었다.
상대는 전멸한 상태이니, 고작 마력 빈혈 정도로 투정을 부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리고 전부 쓰러트린 덕에 보상이 상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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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력] 66단
[체력] 62단
[민첩] 63단
[감각] 64단
[마력] 6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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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는 벌써 60단 중반에 가까워졌다.
또한 관에 들어있던 아이템들 역시 상당히 고가의 것들.
나는 관에 들어있던 것을 모두 수거한 뒤, 남은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대마경 종료까지 약 48시간.
제한 시간 안에 나가지 못할 경우, 남겨진 사람은 대마경과 함께 소멸해버린다.
시간이 조금 빠듯하기는 하지만 귀환까지 무리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영수들과 마력 회복약을 나눠 먹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들아, 서두르자.”
“웅!”
“캬앙!”
칼날 박쥐의 날개로 순식간에 계단을 돌파해 위로 향했다.
그리고 107층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알림창이 떴다.
[무덤의 시험이 발동됩니다!]
[첫 번째 번뇌가 시작됩니다!]
드디어 첫 번째 번뇌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귀환을 선택할 경우 발동되는 번뇌 시스템.
그로 인해 세 번째 대마경은 ‘번뇌의 대마경’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이 대마경은 총 108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병마용들의 수도 108개다.
108은 번뇌를 의미하는 숫자.
귀환을 선택할 경우, 특정 층수에 도달할 때마다 번뇌가 발동하는 시스템이었다.
[첫 번째 차례가 집행됩니다.]
[번뇌 중 랜덤하게 하나가 발동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번뇌는 ‘뜻’입니다.]
그 알림창이 뜨자, 머릿속에 누군가가 흙탕물을 붓는 듯 오만가지의 감정이 흘러들어왔다.
두려움, 상념, 망설임.
수백 명이 내 뒤에 서서,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차피 다 쓸모없는 짓일 텐데.】
【발버둥 쳐봐야 죽을 거야.】
【지독하구나, 서강림. 네가 죽으면 모두 끝날 일인데 발버둥치다니.】
내 영혼을 차가운 손으로 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어두운 감정이 몰려들어 내 목을 움켜쥐는 듯했으나,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이딴 목소리는 악몽 속에서 수백, 수천 번을 들었다.
이런 말에 눈물을 흘리거나, 멈춰 섰다면 나는 애초에 내 눈물의 바다에 익사해 죽었을 것이다.
내 귀에 수백, 수천 명이 소리를 지르고 비웃어도 상관없었다.
내 선택은 오로지 하나뿐.
나는 어둑한 대마경을 향해 나아갔다.
* * *
[대마경 종료까지 12시간이 남았습니다.]
“태헌 씨, 후방이요!”
“네, 조심하세요. 신수아 씨!”
무덤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마수들의 울부짖음 사이로 타격음과 총성 등이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서강림의 동료들이었다.
“젠장. 귀찮아 죽겠네.”
장태헌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마수는 모두 절멸하여 그들의 발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모든 마수를 쓰러트렸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너무 늦게 왔어. 형님은 괜찮겠지?”
몇 인원을 제외하고, 비호문 멤버들은 서강림의 메시지를 받은 뒤 최대한 빨리 대마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이 대마경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하루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12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점.
윤봄이 시무룩해져서 중얼거렸다.
“사부님, 우리한테는 혼자 가지 말라놓고 자기는 또 혼자 갔네…….”
“형님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네. 12시간 남았으면 슬슬 상층에 와야 하는 거 아냐?”
“혹시 그 기사 때문에 곤란에 처한 건지도 몰라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서강림이 홀로 대마경에 간 것도 신경 쓰이는데, 최필영의 악성 기사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
윤봄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그 기사는 뭔지……. 사부님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는데. 분명 조작일 거예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서강림을 살인자라 믿고 있었다.
서강림은 여러모로 곤경에 처한 상황.
우선 그를 빨리 찾아내야만 했다.
“통신 아이템을 이용해서 계속 사부님에게 말을 걸어보고는 있는데……. 답이 없네요.”
윤봄이 자신의 이어 커프를 매만지며 말했다.
장태헌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
“설명서 보니까 일정 범위 내에서만 작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사부님은 한참 지하에 있다는 거군요.”
대체 서강림이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침묵하던 중, 가장 먼저 발을 옮긴 사람은 신수아였다.
“일단 계속 살펴봐요. 혼자서 무리하고 있을 테니, 빨리 찾아야 해요.”
신수아는 무기를 점검한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깊은 무덤 어디에 서강림이 있을지 모르지만, 홀로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석관을 건드리자, 또 같은 물음이 흘러나왔다.
[전진하겠습니까, 귀환하겠습니까?]
* * *
[대마경 종료까지 5시간이 남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희미하게 주위를 밝히는 불빛 사이로 일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촤아악!
그림자 사이로 피가 튀며 마수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서강림은 피에 절은 얼굴로 어둠을 헤치고 나왔다.
그가 마수들을 해치우며 위로 향하고 있는 중, 저물대에 넣어둔 이어 커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부님. 어디 계세요? 저희 지하로 왔어요.]”
“[강림 씨, 들리나요? 들리면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신수아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서강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끼기긱!
그때, 뒤에 남아 있던 마수 하나가 서강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수가 서강림의 얼굴을 후려친 순간, 곧바로 서강림은 일격을 날렸다.
-푸욱!
마수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진 뒤, 서강림은 제 얼굴을 매만져보았다.
평소 같았다면 맞지 않았을 공격이었다.
그 모습을 본 요롱이가 쩔쩔매며 크게 울어댔다.
“컁, 캬앙!”
뒤에서 요롱이가 날카롭게 울어대도 서강림은 반응하지 않았다.
요롱이가 그의 정강이를 콱 깨물자 그는 그제야 멈춰 돌아봤다.
“캬앙!”
“미안. 나 아직도 귀가 안 들려서.”
[귀의 번뇌가 집행 중입니다!]
현재 발동된 것은 ‘귀’의 번뇌.
주위는 그저 적막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고요 속에서 제 혈관을 따라 도는 피의 맥박만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지금 귀의 번뇌만 몇 번째지.’
수많은 번뇌가 오가는 가운데, 몇 층 전부터 연속해서 ‘귀’의 번뇌가 그를 찾아왔다.
귀의 번뇌는 청각 차단이었다.
‘랜덤으로 걸리는 건데 귀만 자꾸 나오네.’
귀환을 하는 사람은 특정 층수에 도달할 때마다, 랜덤하게 번뇌가 발동되었다.
번뇌의 종류는 여러 가지로, 정신 계통의 번뇌가 꽤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나는 차라리 정신 계통 번뇌가 나은데, 계속 청각 차단이 걸리는군.’
경계의 악몽을 겪어왔던 터라, 서강림에게 정신 계열의 번뇌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청각 차단 역시 불편함은 있어도 다른 감각들이 뛰어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시간이네.’
이제 남은 시각은 4시간, 현재 위치는 19층.
빠듯하지만 못 올라갈 정도 아니었다.
그가 서둘러 18층에 진입한 순간, 천천히 청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귀의 번뇌가 해제됩니다!]
그러나 서강림은 안도할 수는 없었다.
아직 번뇌는 끝이 나지 않았으니까.
그가 예상했던대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다음 번뇌가 시작됩니다!]
알림창이 뜨는 것과 동시에 사방이 어둑해졌다.
하지만 서강림은 알 수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력이 사라졌다는 걸.
[당신에게 주어진 번뇌는 ‘눈’입니다.]
번뇌 중 최악의 번뇌인 ‘눈’.
시각을 차단해버리는 번뇌로 가장 골치 아픈 종류였다.
하지만 서강림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영수들을 불렀다.
“리니. 길을 안내해줘.”
“우웅!”
앞은 보이지 않지만, 옆에는 영수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서강림은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영수들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졌다.
‘확실히 눈의 번뇌는 괴롭네.’
‘감각’을 활성화하고 있더라도, 눈앞이 보이지 않으니 제약이 많았다.
그가 힘겹게 앞으로 전진하던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악-!”
서강림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방금 전 들려온 비명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가 홀린 것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