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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42화 (141/256)

<142화>

-아아아악!

혈악귀들이 발버둥을 치며 비명을 질렀으나, 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검은 꽃잎들이 혈악귀의 몸에 닿자 그것은 고통스럽다는 듯이 몸부림을 쳤다.

한참이나 발버둥을 치던 혈악귀들은 수백 개의 입으로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쿠웅……!

그 시체 위로 검은 꽃잎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제 역할을 다한 멸망꽃은 낙화하여 사라졌다.

적들의 목숨과 함께.

“윽…….”

힘겹게 버티던 신수아가 털썩 쓰러지자 서강림이 황급히 그녀를 받아냈다.

“신수아 씨, 괜찮습니까?”

“……이거, 두 번은 못 하겠네요.”

광천못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강력한 마력을 필요로 하는 멸망꽃이었다.

그런 꽃을 여러 송이나 키워내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버틸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때,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용일품(龍一品) 혈악귀를 쓰러트렸습니다!]

[용일품(龍一品) 혈악귀를 쓰러트렸습니다!]

[용일품(龍一品) 혈악귀를…….]

수많은 알림창이 뜨며 엄청난 양의 공적치와 영옥이 쌓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 와서 사투를 치른 끝에, 수많은 공적치와 영옥을 얻었다.

또한 그의 운명 등급도 변화하고 있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승리를 달성하였습니다!]

[서강림의 운명 등급이 귀이품(鬼二品)에서 귀일품(鬼一品)으로 변화합니다!]

이곳에서 죽을 가능성이 다분했건만, 서강림은 그 가능성을 역전시켰다.

그는 신수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가능성이었다.

신수아는 지친 모양인지 숨을 몰아쉬다가, 문득 광천못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사람은…… 누구죠?”

“광대패 중 한 명입니다.”

어느새 광천못의 물이 다 말라, 광대의 시체가 물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신수아를 비롯해 요롱이와 리니도 지친 듯 바닥에 늘어졌다.

“꽃놀이치고는 너무 힘드네요.”

신수아가 힘없이 농담을 건넸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꽃을 개화시켰으니, 얼마나 부담이 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서강림은 복잡한 마음으로 침묵하다, 괜히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온 겁니까?”

“십이지신을 만나러 갔다가, 질문권을 얻었어요.”

“대체 뭘 질문한 거죠?”

신수아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때, 불행의 새에 대해 이야기 했었죠?”

“네, 그랬었죠.”

“서강림 씨가 위험에 처한다고, 적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서……. 그 적이 누구인지, 어떤 위험인지 자세하게 물어봤어요.”

서강림은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질문권을 희생하다니.

“호제왕이 당신의 적에 대해 알려주다가 지금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도 덤으로 알려줬어요.”

“서천 꽃밭으로는 어떻게 온 겁니까?”

“길을 물어봤어요. 호제왕의 부탁을 몇 개 들어주는 대신에.”

신수아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할 이야기가 많아요.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해요. 이제 다 끝난 것 같으니…….”

“네. 그렇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신수아는 무슨 일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가장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 * *

사라 도령의 연구실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불이라도 난 것마냥 내부는 연기로 자욱했다.

사라 도령은 미간을 일그러트린 채, 담배를 연거푸 피우는 중이었다.

‘아직도 서강림은 소식이 없나?’

여전히 연구소 주변에는 마수들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서강림으로부터 연락도 없었다.

그가 새로운 담배를 집어 들었다.

‘역시 인간에게 맡기는 게 아니었나? 이렇게 된 이상, 위에 보고를 하는 수밖에…….’

사라 도령이 한숨과 함께 긴 연기를 내뱉은 순간.

그는 문득 주위가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공격이 끝났나?’

요란하던 마수들의 울음소리도, 포격음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서천 동자 중 하나가 다급히 안으로 달려왔다.

“꼬, 꽃감관 님! 마수들이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강림도 돌아왔어요!”

“뭐?”

사라 도령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천 동자의 보고대로 서강림이 막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저기 엉망진창이 된 그 몰골을 보고, 사라 도령은 재촉하듯 캐물었다.

“어떻게 됐지? 일은 처리했나?”

“네. 광천못을 오염시키던 인간을 처리했습니다.”

그 말에 사라 도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이내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놈은 어딨지?”

“죽었습니다.”

“뭐? 생포를 못 했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 누그러졌던 인상이 다시 흉악하게 돌변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뭘 하는 놈인지 알아내야 하는데 생포를 못했다니!”

“정체는 대략적으로 알아냈습니다. 광대패의 일원이라 하더군요. 서천 꽃밭의 꽃들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라 했습니다.”

그나마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되자 사라 도령은 거친 숨을 진정시켰다.

그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광대패? 현세에서 소란을 피우는 놈들이 있다고 듣긴 했건만…….”

현세의 일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건만, 이렇게 신역에까지 당도할 줄이야.

사라 도령이 입술을 잘근 깨물고 있자, 서강림이 말했다.

“그러면 약속했던 보수를 주시죠.”

생각에 잠겨 있던 사라 도령이 귀찮다는 듯 서강림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래. 알겠어. 따라와.”

그는 서강림을 데리고 연구소 안쪽의 화원으로 향했다.

보호 장치를 가동하자 세 송이의 꽃이 다시 눈앞에 드러났다.

사라 도령은 꽃을 챙겨 서강림에게 건넸다.

“자, 받아.”

꽃을 받은 뒤, 서강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진 것이 보였다.

서강림은 그것을 받고는 망설임 없이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면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라 도령은 떠나가는 서강림의 등을 바라보다,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내든 것은 한 자루의 총이었다.

서강림을 응시하는 사라 도령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멍청한 놈. 이대로 돌려 보내줄 줄 알았나?’

서천 꽃밭의 꽃은 일반인에게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특별히 운명 보호국에게만 꽃을 내주고 있는 것은 운명 보호국에 관여한 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신들이 점유하고 있는 힘을, 인간에게 쉬이 내줄 리가 없었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꽃을 내줄 순 없지.’

애초부터 서강림에게 꽃을 줄 생각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처리할 계획이었을 뿐.

사라 도령이 망설임 없이 그를 쏘려는 순간.

-콰과광!

그때,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구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폭음에 사라 도령이 당황하여 공격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가 다급히 서천 동자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지금 무슨 일이지? 보고해!”

“[꼬, 꽃감관 님! 마수들이 다시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뭐? 그게 대체 무슨……!”

-그오오오!

잠시 잠잠했던 마수들이 다시 날뛰며 서천 꽃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다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라 도령이 서강림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범인을 처리했다고 했잖아.”

사라 도령이 노기를 드러내도 서강림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사라 도령이 들고 있는 총을 응시하고 있을 뿐.

사라 도령이 당황하여 말을 돌렸다.

“광대패는 다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어?”

“광천못을 지키고 있던 광대패는 처리했습니다.”

“후우, 잔당들인가?”

사라 도령이 입술을 깨무는 사이,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파열음은 점점 심해져 갔다.

통신 장치를 통해 절망적인 보고들이 쏟아져 내렸다.

“[현재 마수들이 내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꽃감관 님, 1번 구역이 파괴되었습니다!]”

“[2, 2번 구역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빠르게 화재가 번지며 연구소 내부의 비상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하며 지시를 내리던 사라 도령이 서강림을 향해 소리쳤다.

“너,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으니 얼른 거들……. 이 자식, 대체 어디 갔어?”

난리통이 벌어진 사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그 사실을 확인한 사라 도령이 이를 갈았다.

‘젠장, 꽃만 갖고 도망간 건가…….’

그러나 서강림을 향해 분노할 여유가 없었다.

요란한 경고음이 연구소를 가득 채웠다.

그의 눈앞에 새빨간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씨드 뱅크에 침입자를 확인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사라 도령은 목에 칼이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다급하게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사라 도령이 들어선 곳은 연구실 깊은 지하.

서천 꽃밭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씨드 뱅크가 위치한 곳이었다.

씨드 뱅크는 서천 꽃밭에서 자라나는 모든 꽃의 씨앗을 모아놓은 장소.

그런 장소가 파괴되어 불타오르고 있었다.

초토화된 풍경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사라 도령이 분노에 차서 소리 질렀다.

“너, 광대패……!”

검은 가면을 쓰고 있는 광대패가 보란 듯이 씨드 뱅크를 파괴하고 있었다.

사라 도령이 들고 있던 총으로 광대패를 겨눴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그가 분노에 가득 차 광대패를 쏘려던 찰나.

-퍼엉!

광대패는 방아쇠를 당길 틈도 주지 않고 폭탄을 내부에 던져버렸다.

씨앗 보관통 중 하나가 폭발하며 내용물이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사라 도령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안 돼! 씨앗들이……!”

씨앗 보관통이 타오르자, 사라 도령은 본능적으로 씨앗을 구하러 달려들었다.

광대패를 제압하는 것보다 씨앗을 살리는 게 더 중요했다.

“안 돼, 안 돼……!”

그러나 불꽃의 세기가 너무 강했다.

그가 어떻게든 씨앗들을 살리려하는 사이, 광대패는 모습을 감추었다.

사라 도령이 분노에 가득 차서 소리쳤다.

“한낱 인간 따위가……!”

“꽃감관 님! 마수들이 연구소 안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은 사라 도령을 조롱하듯 더욱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연구소.

사라 도령의 노성이 찢을 듯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 * *

나는 멀리 떨어진 언덕에서 불타오르는 서천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축제의 현장처럼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

그 주위에서는 수많은 마수가 고삐라도 풀린 듯 날뛰고 있었다.

이 정도면 슬슬 이능을 해제해도 될 것 같았다.

[이능 ‘마수의 지휘자’가 해제됩니다!]

죽은 광대패에게서 얻은 ‘마수의 지휘자’.

그것을 사용해 몇 마수들을 조종해 서천 꽃밭으로 보냈다.

애초에 그들의 본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명령이라, 조종하는 것은 쉬웠다.

이능을 풀었음에도 여전히 날뛰고 있는 것처럼.

파괴되는 서천 꽃밭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내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잘 타네요.”

상대방은 광대패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생 많았습니다, 신수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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