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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41화 (140/256)

<141화>

그렇게 말한 뒤, 신수아는 나무 거인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나무 거인은 산채로 타오르는 상태에서도 아직 무력화되지 않았다.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악과 분에 받친 모습이었다.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어어어!

불이 붙은 나무 거인은 한층 더 흉폭하게 날뛰기 시작하였다.

한 대라도 맞으면 즉사할 법한 위력.

하지만 신수아는 폭발하는 것처럼 뛰어다니며 나무 거인을 베어 내고, 공격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서강림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신수아다.’

용급 마수를 앞에 두고도 망설임 없이 그녀는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강림이 나설 차례였다.

어느새 종자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광천못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위이이잉!

서강림이 울부짖는 이빨로 종자들을 베어 내가며 길을 만들었다.

종자들이 그를 물어뜯으려 하였으나, 생사의 경계선 덕분에 들어오는 데미지는 없었다.

그 사이 신수아는 서강림에게 향하려는 마수들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콰과곽!

사방에서 나무들이 자라나 마수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그 틈을 노려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신수아라 한들, 용급 마수 여럿을 상대하는 것은 버거웠다.

상처가 빠르게 늘어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악착같이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긱, 기기긱……!

그 살기에 마수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서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녹빛으로 물들어 있건만, 마치 그 녹색이 핏빛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신수아가 숨을 몰아쉬며 적들을 살펴보았다.

‘이 정도라면 버틸 수 있어. 조금만 더 버티면……!’

신수아가 다시 자세를 취하고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수들을 찢고 베어내던 그 순간.

“……!”

그녀의 검이 멈추었다.

소름이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는 수많은 강적이 산재해 있었다.

그럼에도 신수아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등 뒤에서 비교도 할 수 없는 살기가 피부를 찢을 듯이 몰아닥치고 있었다.

본능적인 공포.

두려움.

역겨움.

절망감.

그녀가 떨리는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키, 키이익……!

거대한 피와 뼈, 살덩어리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혈악귀가 천 개의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크윽……!”

신수아의 귀와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도 모르게 무릎이 꿇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혈악귀는 곧바로 신수아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신수아는 다급히 검을 들었으나, 팔의 떨림을 막을 수 없었다.

죽음의 기운이 바로 턱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든 혈악귀를 막아보고자 방어 자세를 취한 그때.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신수아는 유리구가 깨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리구가 파괴되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멸망꽃이 빠져나왔다.

검은 꽃 한 송이가 혈악귀의 몸에 닿은 순간.

[아이템 ‘멸망꽃’이 발동합니다!]

-아아아아악!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비명이 혈악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듣는 사람조차 소름이 돋는 비명이었다.

혈악귀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신수아를 붙잡으려던 그때.

-촤아악!

날카로운 톱날이 혈악귀의 팔을 절단내 버렸다.

서강림이었다.

어느새 그가 신수아에게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여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아아아악!

혈악귀는 고통스러운 듯이 몸부림을 치더니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옆으로 시든 멸망꽃이 툭 떨어졌다.

[용일품(龍一品) 혈악귀를 퇴치하였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당신보다 강한 대상을 처치해, 추가 보상이 발생합니다!]

서강림의 앞에 빠른 속도로 알림창이 뜨고 있었다.

신수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쓰러진 혈악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즉사를 시키다니…….”

멸망꽃이 즉사 아이템이라 설명을 듣긴 했지만, 실제로 그 위력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안도의 한숨을 돌려도 될 상황.

그러나 서강림도, 신수아도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대기의 마력이 아직도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신수아 씨, 물러서요.”

서강림이 전투태세를 갖춘 채 말했다.

사방에서 살(殺)의 기운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혈악귀의 종자들에게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혈악귀의 종자’들이 성장을 끝냅니다!]

[‘혈악귀의 종자’들이 성체로 자라납니다!]

살아남은 혈악귀의 종자들의 몸이 울컥대며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성장은 순식간이었다.

-기, 기기익……!

어느새 혈악귀의 종자들은 모체만큼 커져 있었다.

아니, 더 이상 종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성체였다.

수는 넷, 아니 이제 다섯이 됐다.

신수아는 그 광경을 보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한 마리조차 멸망꽃으로 간신히 처치했는데 이제는 꽃조차 없었다.

그녀가 다급히 말했다.

“강림 씨. 이제는 정말 도망가야 해요!”

그나마 아직 혈악귀들은 성장이 다 끝나지 않았는지, 바로 공격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시간 문제였다.

신수아의 말대로 도망치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였다.

그러나 서강림은 도망치는 대신, 마수들을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방법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강림 역시 부상을 입어 곳곳에서 피가 흐르는 와중이었으나 목소리는 그저 침착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그 말을 들은 신수아의 눈이 커졌다.

“……확실히 가능성은 있네요.”

“그렇지만, 신수아 씨에게 위험부담이 커요.”

가능성은 있지만 위험 부담은 있다.

신수아의 팔을 복구하려다가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수아는 피를 닦아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가능성 있어 보여요. 한번 해보죠.”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녀는 도망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적을 마주 보았다.

“서강림 씨를 믿으니까, 해보겠어요.”

* * *

광천못에 가라앉은 광대의 두 눈이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탁해진 광천못, 이미 죽은 그녀의 몸뚱이에 희미한 백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새빨간 물속을 부유하며 바깥의 상황을 관망하는 중이었다.

‘혈악귀가 제대로 부화했구나.’

그녀는 그 광경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혹 부화에 실패할까봐 초조해하던 중이었다.

멸망꽃,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신수아 때문에 이변이라도 생기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더 이상 멸망꽃도 없고. 서강림과 신수아 둘이서는 아직 용일품 마수를 잡을 수 없다.’

광대패의 수장은 서강림이 죽지 않도록 보호하라 했지만, 더 이상 광대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죽은 영혼으로서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그래도 멍청한 놈은 아니니 도망갈 확률이 높았다.

‘비록 나는 죽었지만, 서천 꽃밭은 멸망하겠군.’

광대의 백이 소리 없이 웃었다.

혈악귀가 활약할 것을 기대하며 못 바깥을 바라보던 중.

광대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물이 맑아지고 있잖아?’

피처럼 시뻘겠던 광천수가 어느새 서서히 원래의 빛을 되찾고 있었다.

광대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어째서? 광천못은 자력으로 재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되었을 텐데?’

원인을 알 수 없어 당황하던 중, 광대는 물가에 서 있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마치 사슴처럼 자그마한 몸을 지닌 영수.

리니가 온 힘을 다해 이능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이능 ‘정화’가 발동됩니다!]

이능의 힘으로 인해 광천못은 빠르게 정화되고 있었다.

그 사실에 광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곧 서강림을 비웃었다.

‘광천수를 섭취하고 싸울 생각인가? 그걸로는 부족해.’

광천수는 분명히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그 광천수를 섭취하고 싸운다면 웬만한 마수는 격파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혈악귀는 고작 광천수 정도로 퇴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차라리 회복을 하고 도망가는 것이……. 어라?’

그때, 작게 물이 찰랑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수아가 연못의 얕은 부분에 발을 디딘 채 서 있었다.

광대는 신수아를 바라보던 중, 그녀의 손에 무언가가 들린 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검도, 무기도 아니었다.

신수아는 꽃잎이 모두 떨어져 나간 멸망꽃을 들고 있었다.

꽃대와 꽃술 부분만이 남은 꽃.

-키이이익……!

그 사이 혈악귀들은 그 추악한 몸을 이끌고 신수아와 서강림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서강림은 홀로 신수아가 있는 광천못을 사수하고 있었다.

“강림 씨, 조금만 더……!”

신수아는 눈을 질끈 감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혈악귀가 내뿜은 악취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광대의 백마저 그 위압감에 찢겨 나가려던 찰나.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신수아가 눈을 번쩍 뜨자, 광천못에서 나무줄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꽃망울이 맺혔다.

광대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멸망꽃’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멸망꽃은 시들었지만, 아직 꽃술 부분에 씨앗이 남아 있었다.

씨앗도, 광천수도 존재한다.

그저 꽃을 피울 시간이 부족할 뿐.

그리고 이능 ‘목엽지법’은 식물을 생장시키는 힘.

신수아의 능력이라면 멸망꽃을 개화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멸망꽃’이 개화합니다!]

광천못에서 꽃가지가 뻗어 나와 하늘 높이 자라났다.

그리고 그 가지 끝에 검은 꽃봉오리가 맺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개화하기 시작했다.

혈악귀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든 순간.

[이능 ‘돌풍’이 발동됩니다!]

요롱이가 숨을 토해내자, 거센 바람이 몰려왔다.

막 피어난 꽃잎들이 마치 벚꽃잎처럼 사방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빛깔을 지닌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그것에 닿은 마수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키에에엑……!

-그아아악!

비명과 죽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신수아는 서강림을 위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의 이름은 멸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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