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풍덩!
그와 동시에 광대가 광천못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물의 색깔이 바뀌었다.
아까까지는 그래도 원래의 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붉기만 했다.
마치 온통 피로 가득 찬 듯한 저 색깔.
[광천못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오염도: 100%!]
[오염도가 상한을 초과합니다!]
순식간에 오염도가 올라가자, 광천못에서는 소름 끼치는 악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수관이 순식간에 광천수를 빨아 들였다.
[‘???의 알’의 수(水) 속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성장 상황: 100%]
[‘???의 알’이 부화합니다!]
-콰과광!
얇은 알껍질이 찢겨나가는 것과 동시에,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서강림마저 그 돌풍에 휩쓸려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우우웅!”
“캬앙!”
영수와 마수들도 비명을 지르며 바람에 휘날려 날아가고 있었다.
서강림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문 채, 밀려 나가지 않으려 버티며 적을 응시했다.
‘이미 늦은 건가……!’
충격파에 의해 대기마저 변한 것 같았다.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자, 밤이 찾아온 것처럼 칠흑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깨진 알 사이로, 무언가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악취가 느껴지고, 토악질을 할 것 같은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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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혈악귀
[등급] 용일품(龍一品)
[설명] 영력과 원한을 먹이로 하여 태어난 것. 수천의 피로 만들어진 이 마수는 알일 때 먹던 것을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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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퍽, 철퍽…….
양수와 피범벅이 된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마수는 이 세상의 모든 추악함을 이어붙인 것처럼 보였다.
뼈, 살, 피가 규칙도 형태도 없이 서로 엉겨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혈악귀가 그 거대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떨어진 피에서 무언가가 생겨났다.
-그르르륵……!
피에서 자그마한 마수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그 역시 수많은 생물을 오려 붙여 만든 듯한 종자였다.
그렇게 태어난 부산물마저도 하나하나가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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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혈악귀의 종자
[등급] 용삼품(龍三品)
[설명] 혈악귀의 피에서 태어난 종자들. 혈악귀가 완전히 깨어날 때까지 모체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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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종자가 혈악귀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혈악귀는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영수들마저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
“크르릉…….”
“우, 우웅……!”
서강림 역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혈악귀를 보호하고 있는 종자들은 하나 하나가 강력하고, 수까지 많았다.
저것들을 이길 수 있나?
마수들과 싸우느라 체력은 아슬아슬한 상태.
설령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해도 서강림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복귀용 아이템이 있으니, 이걸 사용한다면…….’
쥐가 주었던 구슬을 깨면, 서천 꽃밭에서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저물대에서 아이템을 꺼내는 대신, 무기를 더 강하게 그러쥐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회복 아이템을 얻을 수 없어.’
혈악귀가 정신을 차리면 분명 서천 꽃밭으로 향할 터였다.
서천 꽃밭이 파괴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세 가지 꽃도 소실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신수아를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저 마수를 퇴치해야 한다.’
이놈들을 전부 쓰러트리더라도, 혈악귀를 처치할 확률은 낮다.
그렇지만 혈악귀를 쓰러트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서강림이 광천못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대패는 연못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연못 위에 찢겨 나간 옷가지와 함께 가방이 떠올라 있었다.
‘저 안에 있는 멸망꽃이라면 혈악귀를 죽일 수 있다.’
아무리 혈악귀가 용일품이라 한들, 멸망꽃조차 버틸 수는 없을 터였다.
서강림은 광천못 쪽으로 몸을 틀며 말했다.
“리니, 요롱이. 엄호 부탁해.”
-키이익!
그의 앞을 혈악귀의 종자들이 가로 막았다.
종자들은 으깨진 유리조각 같은 이빨을 번뜩이며 서강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정형의 마수들이 퍼붓는 공격을 피해 서강림은 뛰어올랐다.
-서걱!
그는 혈악귀의 종자들을 베어내며 달리고 있었으나, 공격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갓 태어났지만 상대는 용급 마수.
종자들의 손톱과 이빨이 서강림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피가 터져 나왔다.
-캬아아악!
서강림은 그 모든 공격을 버텨가며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온몸에 불이 붙은 듯 고통이 밀려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직진만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콰아아앙!
근처에 있던 나무 거인이 그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손에 닿는 감각에 나무 거인이 히죽이 웃고, 종자들이 끝을 내려고 달려든 순간.
공격을 막아낸 서강림의 눈빛이 날카로운 금색으로 번뜩였다.
[이능 ‘투쟁본능’이 발동됩니다!]
그는 온몸의 마력을 불태우며 나무 거인과 혈악귀의 종자들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강림의 전신이 칼날로 변하기라도 한 듯,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마수들을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콰가가각!
혈악귀의 종자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놈들을 전부 처리하지는 못하더라도, 멸망꽃을 회수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오오오!
그러나 나무 거인은 서강림을 곱게 보내주지 않을 듯싶었다.
‘투쟁본능’을 발동시켰다 한들, 상대가 너무나도 강적이었다.
‘궁서의 포효를 발동해야 하나?’
궁서의 포효는 말 그대로 최후의 발악.
나무 거인을 쓰러트린다 한들, 아직 적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쓰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그때, 나무 거인이 서강림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콰가각!
검광이 번뜩이며 나무 거인의 팔을 잘라냈다.
그러나 검광은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두 개의 날카로운 빛이 마수의 몸에 선을 그은 것이 보였다.
서강림은 놀란 눈으로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강림 씨!”
익숙한 목소리, 여기에 있을 리 없는 얼굴.
서강림은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옥 같은 풍경 앞에 신수아가 서 있었다.
“신수아 씨? 여긴 어떻게……!”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방금 전의 일격으로 나무 거인의 팔 한쪽이 잘려 나갔지만, 아직 쓰러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나무 거인이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서강림과 신수아는 동시에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이능 ‘광염일장’이 발동됩니다!]
신수아가 키워낸 나무 덩굴이 거인의 다리를 붙잡은 사이.
서강림이 쏘아 올린 불꽃이 그곳에 닿아 빠르게 번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불꽃이 창공마저 불태울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신수아’의 운명이 ‘서강림’의 운명을 생(生)합니다!]
[‘신수아’와 ‘서강림’의 운명이 강하게 얽힌 것을 확인합니다!]
[이능 ‘광염일장’의 효과가 대폭 증가합니다!]
-그오오오!
나무 거인이 괴성을 지르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고통에 이성을 잃고 몸부림을 치자 여기저기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강림과 신수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나무 거인의 몸이 잘려나가며 불티가 휘날렸다.
발목이 잘려 나간 나무 거인이 천천히 스러지더니, 결국 요란한 소리를 내며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 사이 혈악귀의 종자들이 신수아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서강림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신수아’와 ‘서강림’의 운명이 강하게 얽힌 것을 확인합니다!]
[‘신수아’가 ‘서강림’의 ‘귀인(貴人)’임을 확인합니다!]
[‘서강림’의 능력치가 대폭 향상됩니다!]
꺼져가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처럼 서강림의 공격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방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몸에 활력이 돌고 있었다.
마수들의 몸에 핏빛 사선이 그어졌다.
-키이이익!
서강림이 마수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사이, 종자들이 그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 수많은 가시덩굴이 자라났다.
-콰과곽!
가시덩굴이 그대로 마수들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신수아의 눈동자가 살기 어린 녹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마수들이 가시덩굴을 피해 달아나면, 신수아의 검이 빠르게 놈들을 쫓았다.
수많은 마수가 몰려옴에도 그들의 공격에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운명을 생(生)하고 있음을 알기에.
맞댄 등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이 이토록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신수아가 빠르게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저기 있는 마수는 대체 뭐죠? 마치 저걸 보호하려는 것 같은데…….”
신수아가 혈악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혈악귀는 잠들어 있었으나, 수많은 종자가 모체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끝없이 생성되는 종자들을 전부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강림 씨. 보조할 테니 바로 도망쳐요.”
“아니, 도망칠 수 없습니다.”
“네?”
신수아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강림의 몸은 지금 만신창이었다.
곳곳이 피투성이에, 방금 전의 일격으로 뼈와 내장도 타격이 심했다.
“이 꼴로 싸우려고요? 지금 이 마수들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신수아가 말을 흐리며 광천못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혈악귀를 보는 것만으로도 핏기가 가셨다.
사주창을 보지 않더라도, 본능으로 느낄 수 있는 공포였다.
“대체 왜 도망가지 않으려는 거죠?”
서강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연못 근처에 있는 가방이 보입니까? 그 안에 검은 꽃이 있습니다.”
신수아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서강림이 마수들을 경계하며 말했다.
“그 꽃은 멸망꽃이라고 해서, 꽃잎에 닿은 대상을 즉사시키는 아이템입니다. 등급 상관없이.”
“…….”
“그게 있으면 마수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나무 거인은 타오르는 중에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또한 혈악귀의 종자들 역시 그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신수아는 마수와 서강림을 번갈아 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림 씨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중요한 일이겠죠.”
그녀가 검을 든 채 앞으로 나섰다.
신수아의 눈동자가 그 어떤 검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가세요. 강림 씨의 뒤는 어떻게든 제가 사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