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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33화 (132/256)

<133화>

한낱 인간이 신 앞에서 버티고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급의 만신이라면 모를까.

용혈왕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서강림을 응시하다, 서패왕을 바라보았다.

“서패왕, 그만해. 이러다 저 둘 죽게 생겼어.”

용혈왕의 말에 서패왕이 서강림 쪽을 힐끗 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그제야 냉정을 되찾았는지, 주위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용혈왕은 싱긋 한 번 웃고는 고개를 틀었다.

“일단 물러가야겠군. 그러면 서강림, 다음에 보자. 혹 신내림 받고 싶으면 언제라도 불러. 쥐보다는 용이 낫지.”

“죽고 싶나, 용혈왕? 당장 꺼지지 않으면 실력 발휘를 하겠다.”

서패왕이 살기를 내뿜자 다시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결국 용의 신은 마지못한 얼굴로 퇴장하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독고준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와, 서강림. 신들한테도 인기가 많네?”

“……조용히 해.”

용혈왕이 사라지자 쥐의 신이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두 사람을 돌아봤다.

그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있었다.

“불청객 때문에 엉망이 되었군. 다들 정리하도록. 그리고 우선 1위였던 인간부터 데려오거라.”

그의 명령에 쥐들이 빠르게 방 안을 정리하고, 서강림을 안내했다.

그들이 서강림을 데리고 간 곳은 알현실.

쥐의 신이 제 자리에 비스듬하게 앉은 뒤, 서강림을 향해 말했다.

어딘가 모르게 피로한 기색이 비쳤다.

“방금 전에는 체통 없는 모습을 보였군. 나는 이곳의 주인이며 모든 쥐들의 신인 서패왕이다.”

사람을 닮았지만 자세히 보니 분명히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맨발은 분명 쥐의 것이었고 손톱 역시 그랬다.

그리고 또한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용혈왕도 그랬지만, 신들은 기본적으로 급이 다르군.’

마치 백영을 마주했을 때처럼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그 공기에 압도당하는 것만 같았다.

백영을 떠올리자 서강림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웃고 말았다.

‘신과 백영을 비교하다니.’

아무리 신일품이라 한들 인간.

하지만 분명 그때 백영이 보여준 힘은 신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서강림이 잠시 백영을 떠올리던 중, 서패왕이 입을 열었다.

“십이지 레이스 때의 공을 치하하고자 불렀다. 네 덕분에 내 인지도가 상당히 올랐으니.”

서패왕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강림을 반기는 기색이었다.

실제로 십이지 레이스의 인지도로 인해 서패왕의 지지율이 한층 더 상승한 상태였다.

그가 다소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너에게 내 특별히 상을 내리고자 한다.”

신이 내리는 특별한 상.

그 말에 서강림은 양손을 꾹 쥐었다.

그가 반드시 얻고자 했던, 얻어야만 했던 포상이었다.

서패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의 이름을 걸고 너의 질문에 대답해주겠다. 말해 보거라. 큰돈을 벌 수도, 귀중한 무기를 얻는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십이지 레이스의 최종적인 보상은 신과의 대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해주는 것이 보상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어떤 무기나 아이템보다 귀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서패왕이 서강림을 응시하며 말했다.

“다른 인간들은 1가지씩만 물어볼 수 있지만, 너는 우승자이니 조금은 특별해야겠지. 그러니 세 가지다.”

배당금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3가지의 질문을 하기 위해 서강림은 반드시 1위를 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

서강림은 마른 입을 열었다.

“어린 시절, 저에게 신내림을 하려던 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던 신의 그림자.

그러나 정작 그 신이 누구인지 서강림은 알지 못했다.

점괘가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신명이라도 알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네 녀석도 신기가 꽤 있었나 보군.”

서패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보아하니 짐승의 이빨 같은 것이었다.

“자, 한번 보자.”

서패왕이 탁자에 이빨을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쩌적!

서패왕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이빨들은 탁자에 닿자마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저 가볍게 흩뿌렸을 뿐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빨들이 깨지다니,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점을 치는데 사용한 아이템에는 신력이 깃든 상태였다.

그런 아이템이 이렇게 박살이 나다니.

서패왕은 놀라움이 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너에게 내려오려는 신이 매우 강력한 모양이군. 나조차도 들여다볼 수 없구나.”

다른 신도 아니고 서패왕은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신이다.

그런 서패왕이 제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라니.

서패왕은 제 앞에 앉은 서강림을 빤히 응시하였다.

“내 예상보다 네가 더욱 강한 모양이군. 이런 신이 너를 원하는 걸 보면.”

서강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고작 충삼품, 자신보다 강력한 그릇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왜 그 신은 자신을 노렸던 걸까?

“다음 질문을 해도 됩니까? 혹시 이빨이 부러져 더 이상 불가능한가요?”

아이템이 부서졌으니 남은 질문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서패왕은 씁쓸한 얼굴로 부서진 이빨을 쓸어 담았다.

“아직 여벌이 남아있으니, 가능은 하다. 다만 그 신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군.”

이제 남은 질문은 두 개뿐, 신중하게 질문해야 했다.

마지막 질문은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곳이 있으니,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서강림이 깊게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백영이 저를 노리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녀를 추적하는 동안 내내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만약 백영이 그 신의 만신이라면, 부모님을 살해한 것도 서화경을 노린 것도 이해가 간다.

신은 서강림을 절망으로 굴복시키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을 죽이려 했는가?

어린 시절 서강림에게 온갖 고통을 선사한 신이지만, 목숨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신이 마음을 바꿔, 괘씸한 자신을 죽이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강림은 다른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백영이 그 신의 만신이 아닐 가능성을.

“원수를 찾는 모양이군. 그 정도야 쉽지.”

서패왕은 다시 한번 점을 볼 준비를 했다.

만약 백영이 그 신의 만신이라면 또다시 이빨은 깨질 것이었다.

서강림이 집중하여 탁자를 응시한 순간.

-탁, 타닥…….

이빨이 탁자 위를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깨지지 않고 온전한 상태였다.

몇 개의 이빨이 날카롭게 허공을 향해 치솟은 형상이 되었다.

이빨이 깨지지 않은 걸 보아하니, 백영과 그 신은 무관한 모양이었다.

그 와중 서패왕은 결과를 보고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네 존재가 세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에, 너를 노린다고 나왔다.”

예상치 못한 답에 서강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자신이 세계의 운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 신과 백영이 별개라는 것만으로도 생각할 것이 많은데, 세계의 운명이라니.

“네가 강한 각성자이긴 하지만 세계의 운명을 논할 정도란 말인가. 너는 대체…….”

서패왕은 감탄과 경악, 그리고 탐욕이 어린 눈으로 서강림을 응시했다.

처음부터 서강림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결과를 보니 더욱 탐이 나는 눈치였다.

서패왕은 서강림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일단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생각할 것은 많지만, 우선 서패왕과의 문답부터 끝을 내야 했다.

세 번째 질문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기에, 질문은 바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서천 꽃밭으로 가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망설임 없이 요청이 흘러나왔다.

서패왕은 그 질문을 듣고 상당히 놀란 기색이 되었다.

“한낱 인간이 서천 꽃밭에 대해 어떻게 알지?”

“우연히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떤 신에게 부상을 회복시키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니, 서천 꽃밭에 답이 있다고 하더군요.”

신수아처럼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이능이나 아이템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했다.

특수한 아이템 몇 가지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뿐.

‘그 아이템은 서천 꽃밭에 있지만, 가는 방법은 알려지지 않았어.’

서천 꽃밭 역시 신역에 위치한 곳이기에, 보통의 방법으로는 갈 수 없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처럼 신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이었다.

서패왕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고 보니 너를 노리는 신들이 많았지. 너를 만신으로 삼고자 꽤 귀한 정보를 준 것 같군.”

서패왕은 점을 칠 필요가 없다는 듯, 이빨들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편한 자세로 앉아 입을 열었다.

“서천 꽃밭이야 내가 그 위치를 안내해줄 수 있지. 지금 당장 가겠나?”

“예.”

“그러면 나가보도록. 종자들이 너를 안내해줄 것이다.”

서강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한 번 푹 숙였다.

그가 나서려 하자 서패왕이 툭 던지듯 물었다.

“너, 내 만신이 될 생각은 없느냐?”

“예.”

“설마 용혈왕에게 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래, 알겠다.”

서패왕은 그에게 시선만 한 번 주고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내심 서운한 기색이었다.

서강림은 알현실을 나선 뒤, 잠시 복도에 서 있었다.

‘백영이 그 신과 무관하다면, 내 적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네.’

중요한 정보들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차라리 그 신의 만신이 백영이었다면 나았을지 모른다.

‘백영은 누구와 연결이 되어있을까? 내 얼굴을 몰랐던 걸 보면, 독자적인 판단은 아니었을 테고.’

질문이 세 개뿐인 것이 아쉬웠으나,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흐릿하게나마 적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으니.

그때, 쥐 한 마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서패왕 님의 지시는 들었습니다. 서천 꽃밭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혹 동료분도 함께 가십니까?”

“동료?”

“함께 온 독고준이라는…….”

“아뇨. 혼자 가겠습니다. 빨리 안내해주세요.”

점괘의 내용은 돌아가서 생각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당장 급한 일은 서천 꽃밭으로 가는 일이니.

혹여라도 독고준과 마주칠까 싶어 서강림은 발을 서둘렀다.

서천 꽃밭의 정보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쥐는 다행히 더 묻지 않고 서강림을 안내해주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여러 개의 수정구가 있는 방이었다.

“이쪽의 수정구를 통해 서천 꽃밭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돌아오실 때는 이것을 깨시면 됩니다.”

쥐는 수정구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구슬을 내밀었다.

그가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서천 꽃밭은 신역과 마경의 경계에 있는 곳. 상당히 강한 마수가 나타납니다. 그래도 가시겠습니까?”

“예.”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서강림은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가 망설임 없이 수정구에 손을 올려놓자, 빛과 함께 그 모습이 사라졌다.

-고오오오……!

얼굴에 와 닿는 공기가 바뀌어 눈을 뜬 순간.

수많은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꽃밭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상의 모든 꽃을 모아 놓은 듯한 아름다운 정경.

-콰과광!

그리고 그 사이로, 화약의 냄새가 풍겨왔다.

머리 위로 포탄이 폭죽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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