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모습은 많이 달라졌고 거리도 멀었지만 신수아는 알 수 있었다.
저 용이 누구인지, 그리고 저 용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신수아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강림 씨……!”
서강림을 태운 요롱이가 빠른 속도로 상공을 날아오고 있었다.
얼굴을 스쳐 가는 칼바람 속에서 서강림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신수아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이 사력을 다해 골인 지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다들 무사했어.’
버나는 다른 광대들이 수세에 몰린 것을 확인하자, 빠르게 아이템을 사용해 도주했다.
서강림도 광대들이 물러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은 남아 있었다.
멤버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더 이상 살(殺)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서강림은 안도하며 요롱이의 갈기를 그러쥐었다.
안전은 확인했으니 이제는 다음의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그가 요롱이에게 지시를 내렸다.
“앞을 다 막아. 우리 멤버들 빼고.”
“크르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롱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입 안쪽에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화염탄에 사람들이 경악하여 비명을 질러댔다.
[이능 ‘화염탄’이 발동됩니다!]
[이능 ‘돌풍’이 발동됩니다!]
“아악! 미친, 저 용은 뭐야!”
“저걸 어떻게 막아!”
화염탄을 막을 방법도, 상공의 서강림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선두 차량은 아슬아슬하게 화염탄을 피해가며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염탄을 피하는 바람에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제 골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코스도 거의 끝자락, 골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강림은 선두와 가까워졌지만, 아직 뒤처진 상태.
요롱이가 이를 악물고 더욱 가속하는 사이, 사회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공중과 지상에서 격렬한 레이스가 진행 중입니다! 이제 슬슬 서강림 선수, 내려와야 할 텐데요!]
결승 지점에 둘러진 끈을 끊고 들어와야지만 골인으로 인정이 되는 구조.
상공을 날고 있는 서강림은 필연적으로 내려와야 했다.
“요롱아, 내려가.”
“크릉!”
골이 가까워지자 요롱이는 급강하하여, 배가 닿을 정도로 낮게 날았다.
아슬아슬하게 추격전이 이어지던 중, 뒤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왜애애애앵!
독고준이 백미러를 힐끗 보고는 피식 웃었다.
“다른 녀석이 가져갔었구나.”
그들을 맹추격하고 있는 차량은 다름 아닌 알데바란.
방금전까지 서강림과 독고준이 타고 있던 그것이었다.
알데바란은 앞을 가로막는 차량을 모두 들이박으며 질주하고 있었다.
[서강림 선수가 타고 있던 차량, 알데바란입니다! 다른 참가자가 차량을 탈취한 모양입니다!]
알데바란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선두와 속도가 가까워져 왔다.
어느새 선두를 달리는 참가자들과 나란히 서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위를 요롱이가 바짝 날고 있었다.
이제 코너만 돌면 골이었다.
그것을 본 선두가 앞서가고자 더욱 거세게 페달을 밟은 순간.
-콰아앙!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차량이 옆에 있던 참가자의 차량을 들이받고 말았다.
튕겨 나간 차량이 요롱이와 충돌하며 대연쇄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주위가 피어오른 먼지와 연기로 가득해졌다.
모니터와 전광판에도 뿌연 연기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골 직전에서 충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과연 골을 넘어간 사람이 있을까요? 올해의 우승자는……!]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너진 결승선의 아치형 장식물, 초토화된 코스.
그리고 그 사이로, 누군가가 골 너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끊겨 나간 결승선의 리본을 꾹 쥐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옷자락이 리본과 함께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서강림의 얼굴이 화면에 담겼다.
[―1위로 골인한 선수는 서강림, 쥐띠 진영입니다!]
골인 지점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에 서강림의 얼굴이 박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후속 주자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사회자가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공동 2위는 신수아, 독고준, 유하랑. 각각 호랑이, 쥐, 토끼에게 영예가 돌아갑니다! 그 뒤를 이어 들어온 5위는……!]
그 뒤로 12위까지 순위가 정해졌다.
비호문의 일원들은 모두 입상하였다.
신수아가 서강림을 바라보며 안도하고 있던 그때, 독고준이 어깨를 툭 쳤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독고준이 화면에 비친 서강림을 바라보며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주인공이라니까.”
그 소리가 들리기라도 했는지, 서강림이 몸을 틀어 독고준이 있는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독고준이 아니었다.
서강림은 신수아를 비롯해 다른 일행들의 상태를 빠르게 살폈다.
“다들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별일 없었어요.”
신수아는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경미한 부상이나 마력 고갈이 있을 뿐, 모두 무사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서강림은 뻑뻑해진 눈을 깜빡였다.
‘이제 경계를 보는 눈도 활성화를 멈췄어.’
광대들이 철수한 직후, 경계를 보는 눈은 자취를 감추었다.
살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을 터였다.
그가 출구로 향하며 말했다.
“우선 여길 바로 나갑시다. 치료부터 받는 게 좋겠습니다.”
경미하다고는 해도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들이 대마경을 빠져나와 현세로 돌아온 순간.
서강림은 눈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빛에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독고준이 그 모습을 보곤 키득거리며 웃었다.
“서강림, 앞으로 바빠지겠네.”
대마경의 입구 앞에 수많은 기자가 포진하여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다.
미친 듯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
전국에 서강림의 우승 소식이 전해지는 중이었다.
* * *
[1위로 골인한 선수는 서강림, 쥐띠 진영입니다!]
운명 보호국 1팀 팀장 사무실.
그곳에 비치된 커다란 모니터에 서강림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1등이라는 자막과 함께 송출되는 얼굴은,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무표정한 상태였다.
강도현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시름 놓았다.
‘무사히 끝났군.’
레이스가 시작될 때, 서강림이 무인도행을 뽑아 낙오된 순간부터 초조해하던 강도현이었다.
중간에 광대패가 난입을 했을 때에 비할 바는 되지 않았지만.
‘그나저나 광대패가 난입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있어도 되나?’
광대패가 등장했음에도 그는 보호국 건물에서 대기 중이었다.
강도현은 서문용녀를 힐끗 보며 물었다.
“저희 팀은 대기하는 걸로 충분합니까?”
“아까도 말했잖아. 2팀에서 알아서 할 거야.”
서문용녀는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대패의 습격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강도현이 묵묵히 침묵하다 물었다.
“2팀은 광대패가 올 걸 알고 있었습니까? 왜 저희 팀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까?”
잘 마무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대규모의 테러 행위였다.
어째서 2팀에게만 그 사실이 전달된 것인지 의아했다.
만약 자신이 미리 알았다면, 서강림에게 경고라도 한 마디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서문용녀는 여전히 모니터를 응시한 채로 말했다.
“국장님 지시였어.”
“국장님께서 혹시…… 습격을 예지하신 겁니까?”
“그래. 규모가 크지 않아 굳이 우리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고 하셨고.”
국장의 예지라는 말에 강도현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예지 능력자는 그 숫자가 소수이고, 예지를 한다 하더라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위험을 감지하더라도 ‘물가를 조심해라’ 정도의 예지만 가능할 뿐, 구체적인 상황이나 날짜까지 추측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국장은 달라. 예지의 범위가 너무 정확하다.’
국장은 특정일, 특정 장소에 광대패가 나타날 것을 예지하고 있었다.
그 정도 되는 능력자는 전국을 털어도 국장 정도밖에 없을 터였다.
국장의 강력한 예지 능력은 운명 보호국의 중요한 무기였다.
강도현도 예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서강림은 국장을 의심하고 있지. 국장의 예지에 서강림도 잡히고 있을까?’
국장이 과연 어디까지의 미래를 보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정확한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서강림이나 자신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1팀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거나……?’
그런 의문이 잠시 들었다가, 강도현은 의혹을 떨치려고 애썼다.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었다.
그때 서문용녀가 입을 열었다.
“이만 퇴근해봐. 아까부터 레이스 보는 내내 초조해하던데. 서강림이 무사해서 다행이네.”
그녀의 말대로 레이스가 시작될 때부터, 어딘가 모르게 얼굴이 창백하던 강도현이었다.
서문용녀가 가보라는 듯이 손짓하자, 강도현은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퇴근을 하는 발걸음이 약간 무거웠다.
‘정말로 백영이 보호국장이거나 주요 인물이라면 골치 아파지겠군.’
백영뿐만이 아니라 보호국 전체를 대상으로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 백영이 어디에 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걱정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현재의 일에 집중하고자 노력하며 건물을 나섰다.
밖으로 나와 걸어가던 중, 카페 쪽에서 짧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서강림, 저 새끼가 왜 1등이야!”
카페 테라스 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레이스 경기 생중계를 보고 있는 상태였다.
옆에 있던 사람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광대패가 난입했는데,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내가 얼마를 걸었는데!”
그가 이를 갈다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퍼뜩 말했다.
“광대패가 들어왔으니, 돈 건 것도 무효여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닌 것 같은데. 아까 배당금 얼마인지 다 나왔어.”
“아, 망했어! 나는 동부지부 교육생이 이길 줄 알고 그쪽에 돈 걸었는데!”
“난 그래도 쥐띠 진영한테 걸어서 조금 벌었어. 1등은 독고준으로 지정했지만…….”
모니터에는 두 번째 대마경의 결과와 함께, 레이스 배율이 떠 있었다.
십이지 레이스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레이스의 향방을 두고 도박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
마치 경마처럼 말이다.
각성자들이 대마경에서 혈투를 벌이는 동안, 바깥 역시 전쟁통 같은 상황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형, 나야.]”
건너편에서 서강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태연한 목소리를 듣자 안심이 되는 동시에 짐짓 짜증이 났다.
“무사하냐?”
“[기자들 피해서 빠져나왔어. 그나저나, 형.]”
서강림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돈 전부 나한테 걸었지? 내 배당금은 얼마나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