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신수아의 발아래 쓰러진 광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쪽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제 동료가 쓰러지자 나머지 광대들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젠장, 잡아!”
“상대는 외팔이다. 별거 아니야!”
그들은 그렇게 외치며 신수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적이 몰려드는데도 신수아는 냉정한 얼굴로 그들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능 ‘백호산군의 넋’이 발동됩니다!]
[해당 마경에서는 십이지와 관련된 이능이 강화됩니다!]
-콰아앙!
백호산군은 호랑이를 다르게 부르는 말.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에 주위의 사물이 자비 없이 일그러졌다.
맹수의 기운을 마주하자, 모두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뒤로 호랑이의 형상이 일렁거리는 듯하였다.
“제, 젠장. 이까짓 쯤은……!”
광대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와, 신수아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너무 느렸다.
-콰앙!
신수아가 나무줄기를 조작해 광대를 지면에 내리꽂자, 입에서 피가 터져 흘렀다.
그가 컥컥대며 숨을 쉬려 애썼다.
신수아는 광대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린 뒤, 눈을 마주쳤다.
“너.”
“컥, 쿨럭…….”
“서강림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당장 말해.”
냉정한 얼굴로 신수아는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조차 날카롭게 벼려진 무기 같았다.
광대의 턱을 타고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서강림? 모, 몰라. 안다고 해도 말해줄 수…….”
“그럼 됐어.”
-콰직!
신수아가 그대로 광대의 머리를 붙잡아 지면에 내리찍었다.
근처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또 다른 광대가 마른 침을 삼켰다.
‘서강림의 일행들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하지만 상대도 지쳐있어!’
긴 레이스로 인해 신수아 역시 녹초가 된 상황.
지금 날뛰고 있는 것은 회광반조에 불과했다.
광대가 벽 뒤에서 뛰쳐나와, 이능을 발동하여 신수아를 공격하려는 순간.
“……어라?”
이능은 발동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또다시 한번 발동을 하려 해도 이능이 사라진 것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근처에 있던 작은 여자아이가 광대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겁하군. 떼로 몰려들어 공격이라니.”
유하랑의 눈동자도 마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주위에서 활개 치던 광대패들 역시 곧 이능이 취소가 되었다.
[이능 ‘강제 해제’가 발동됩니다!]
“뭐, 뭐야? 마력도 남아 있는데 왜 이능이 취소된 거지?”
“이능을 무효화하는 이능이 있는 것 같…… 으아악!”
이능이 취소되어 광대패가 멈칫하는 사이, 신수아의 나무가 파도처럼 그들을 쓸어갔다.
광대패들의 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했다.
한 광대패가 이를 으드득 갈며 다른 동료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금 선두 쪽과 전투 중인데, 인원을 더 보내주십시오!”
“[우리도 지금 상황이…… 아악!]”
통신 아이템 너머로 비명이 들려왔다.
광대가 고개를 들어 모니터 드론을 살펴보니, 그들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제압당하고 있는 것은 광대패였다.
-타아앙!
윤봄과 윤겨울이 세례하는 화살과 총알에 쓰러지는 모습이 잡히는가 싶더니.
[이능 ‘무형창’이 발동됩니다!]
[이능 ‘치유의 손’이 발동됩니다!]
반대편에서는 장태헌이 상처투성이인 상태로, 자신을 버리듯이 싸우고 있었다.
쓰러지려 할 때마다 요한 신부의 도움을 받아, 회복하여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예상보다 참가자들이 너무 강해……!]”
서강림의 일행, 그리고 보호국의 차사들이 빠르게 광대패를 제압하고 있었다.
그때, 연락을 취하던 광대 앞으로 신수아가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검이 크게 호를 그리며 그의 목을 날려버리려던 찰나.
목 바로 앞에서 칼이 멈췄다.
“헉, 허억……!”
“내 동료는 어디로 데려간 거지?”
광대가 공포에 질린 숨을 토해내는 사이, 신수아가 검을 겨눈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 톤은 낮았지만 거기에 배어있는 살기는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광대가 덜덜 떨고만 있자 신수아가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묻는다. 내 동료, 서강림을 어디로 데려갔냐고 묻고 있어.”
눈이라도 깜빡하면 그대로 베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
근처에서 광대패를 제압하고 있던 독고준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독고준은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신수아 씨, 진정해. 서강림은 곧 알아서 올 거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
“그야 당연히 서강림이니까 알아서 오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요?”
신수아와 독고준이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광대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중 침을 꿀꺽 삼켰다.
‘틈이 생긴 지금이 기회야……!’
기회를 포착하자마자 광대패는 빠르게 도주를 시도했다.
그때, 독고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너보고 도망가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어느새 독고준이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
광대가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보던 중, 독고준이 빙긋 웃으며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부식’이 발동됩니다!]
“도망 못 가게 손을 좀 봐놔야겠네.”
“끄아아악!”
이능 ‘부식’이 발동된 손이 닿자, 광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능을 발동시켜 살아남은 광대들을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촉수들이 활개치고, 땅과 생명체가 부식해가는 것을 보며 유하랑은 경악했다.
독고준은 상대를 적당히 손봐주고 유하랑을 돌아보았다.
“안녕, 넌 또 못 보던 캐릭터네.”
“캐릭터……?”
“잘 싸우더라. 앞으로가 기대돼.”
유하랑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독고준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소리와 함께 모니터 화면에 변화가 생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검었던 화면에 누군가의 모습이 잡혔다.
[운명 보호국 2팀 팀장, 공주입니다. 현재 통신을 다시 확보하였습니다.]
화면에 가득하던 노이즈는 사라지고, 어느새 가면을 쓴 공주의 모습이 잡혀 있었다.
그가 냉정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호국장님의 말을 대신 전합니다. 당신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광대패는 보호국 측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참가자들은 레이스를 재개해주십시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전광판의 숫자는 이 난리 중에도 착실하게 줄고 있었다.
방송을 확인한 광대들이 주저주저 뒷걸음질을 치던 중,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전부 퇴각해라! 부상자들을 데리고 탈출해!”
그 명령이 내려지자, 광대들은 이동 아이템을 꺼내 빠르게 사라져갔다.
차사들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들이 한발 빨랐다.
독고준이 그 광경을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뭐, 나쁘지 않은 이벤트…… 어라, 신수아 씨?”
신수아는 방송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코스의 반대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독고준이 당황하여 그녀의 팔을 덥썩 잡았다.
“수아 씨, 어디 가?”
“서강림 씨를 찾으려고요.”
“아직 레이스 중이라고 했잖아. 1등 해야지.”
그 말에 신수아가 독고준을 노려보았다.
녹빛이 도는 눈동자는 언뜻 귀기가 어린 것처럼 보였다.
“레이스보다 강림 씨가 더 중요해요. 얼른 찾으…….”
신수아가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쿨럭 소리와 함께 입에서 피가 흘러넘쳤다.
이능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몸 곳곳이 엉망이었다.
독고준이 다급히 신수아를 부축했다.
“이 몸으로 찾으러 가려고? 일단 레이스부터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 신수아. 나도 동의한다.”
옆에 있던 유하랑까지 설득에 합세했지만 큰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신수아가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애를 쓰던 그때.
-부아앙!
자동차 한 대가 굉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였다.
전투가 끝나자 다른 참가자들은 빠르게 레이스에 참가하였다.
그 뒤를 이어 나머지 비호문의 일행도 쫓아오고 있었다.
“다들 레이스를 계속할 생각 같네.”
독고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 광대패가 물러나자, 사람들은 곧바로 원래의 목적을 떠올렸다.
상위권들을 제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독고준이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신수아 씨, 우리도 얼른 쫓아가야 해. 그런데 알데바란이 안 보이네.”
알데바란은 방금 전의 소동 때문인지 보이지 않았다.
독고준이 근처에 있던 차량 중, 비교적 멀쩡한 것을 찾아내 올라탔다.
신수아는 아직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전 강림 씨를…….”
“왜 이렇게 서강림을 못 믿어? 서강림이 어디 가서 맞고 있을 위인이야?”
독고준은 거의 반강제로 신수아와 유하랑을 끌고 와 태웠다.
억지로 버티고 있는 신수아를 향해 독고준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 못 믿네. 서강림은 올 거야.”
“왜 그렇게 확신하죠?”
“서강림, 주인공이잖아? 곧 오겠지.”
말도 안 되는 논리였지만 신수아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독고준은 왜 이런 간단한 걸 모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옆 좌석에 올라탔다,
“그럼 밟는다. 꽉 잡아.”
서강림이라면 분명히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주인공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녀는 서강림을 믿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독고준은 페달을 밟았다.
-부아아앙!
엉망이 된 코스 위로 남은 자들이 마지막 경주를 벌이기 시작했다.
방송도 곧 원상 복구가 되어, 사회자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통신에 문제가 있었던 점, 양해드립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레이스가 재개됩니다!]
[방금 전, 선두에 있던 선수들이 대거 뒤로 밀려난 상황! 위기를 기회로 잡은 이들은 어떤 결과를 보여줄 것인가!]
독고준이 운전을 하는 사이, 신수아는 마지막 마력을 짜내 ‘목엽지법’으로 라이벌들의 길목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간 선두 차량에게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녀가 이를 아득 깨물며 억지로라도 이능을 발동시키려던 순간.
-콰과광!
하늘에서 불덩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화염탄이 코스를 가로막자, 선두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회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화염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남은 광대패의 짓일까요? 아, 저기……!]
신수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염탄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검고 붉은 용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