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고양이는 쥐에게 속아 십이지 연회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트남, 태국에서는 토끼띠가 아닌 고양이띠가 존재한다.
그 외에도 돼지띠 대신 코끼리띠, 멧돼지띠로 치환되는 경우도 있었다.
“응. 잘 아네. 차례를 빼앗긴 고양이는 쥐를 증오해서, 그 뒤로 쥐만 보면 쫓아다닌다는 거야.”
라나놋은 담담하게 말하며 자신의 클로를 내려다보았다.
그 클로는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보였다.
“왜 이런 소리를 하나 싶겠지? 뭐, 내가 고양이띠거든. 오해는 하지마. 고작 띠 때문에 네가 싫다는 건 아니야. 다만…….”
라나놋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그냥, 네 얼굴이 맘에 안 드네?”
[이능 ‘고양이의 원한’이 발동됩니다!]
[해당 마경에서는 십이지의 능력이 극대화합니다!]
“짜증 난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라나놋이 자리를 박차고 서강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새 라나놋은 고양이처럼 사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격력은 고양이가 아닌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와 다름없었다.
-채앵! 채앵!
발톱과 검이 마주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라나놋의 지금 모습을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야생동물 특유의 공격성과 본능이 발동되자,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이능의 효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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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 고양이의 원한
[등급] 귀일품(鬼一品)
[설명] 쥐의 특성을 가진 상대를 공격할 때, 능력치가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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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계열의 마수, 혹은 쥐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이능.
때문에 운명 등급도 낮고, 전반적인 능력치가 낮음에도 서강림과 비슷한 수준으로 싸울 수 있었다.
그때, 서강림의 비어있는 허리 쪽을 향해 라나놋이 다리를 휘둘렀다.
-촤악!
어느새 구두 끝에도 칼날이 빠져나와 있었다.
그러나 ‘생사의 경계선’을 입고 있던 덕에 공격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서강림은 날카로운 눈으로 라나놋을 살펴보았다.
‘광대패는 왜 이놈을 보냈지?’
라나놋은 분명히 강했다.
하지만 서강림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은 아니었다.
광대패나 라나놋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속도는 빠르지만 공격력은 낮아. 광대패는 날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야. 다른 목표가 있어.’
서강림의 시선이 클로에 닿았다.
치명상을 주기에는 무기의 길이가 짧았으나, 출혈을 유발하기에는 적절한 무기였다.
그가 툭 던지듯이 물었다.
“내 피를 노리는 건가?”
라나놋은 아까부터 급소가 아닌 다른 곳을 노리고 있었다.
그저 베어내는 것만이 목표인 사람처럼.
라나놋은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
“눈치가 빠르네? 역시 쥐새끼라 그런가. 그렇지만 알아봤자…….”
-촤아악!
클로가 날카롭게 서강림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간신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
라나놋이 고양이처럼 날이 선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네가 계속 막을 수 있을까?”
라나놋의 공격력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속도 하나만큼은 서강림과 박빙이었다.
라나놋이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서강림, 넌 강해. 하지만 이 마경에서는 고양이인 내가 더 유리하다고!”
“그래. 그렇겠지.”
서강림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라나놋이 그의 그런 반응에 미간을 일그러트리는 찰나.
서강림이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면 쥐가 아닌 다른 십이지를 불러오면 되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라나놋이 그것을 응시하며 속으로 서강림을 비웃었다.
‘영수를 소환하는 건가? 그래도 상관없어. 분명 놈의 영수는 아직 미성숙한……!’
그때, 소용돌이 안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방출되는 것을 느꼈다.
라나놋은 온몸의 털이 바짝 서고 말았다.
소용돌이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영수 ‘요롱이’가 소환됩니다!]
그것은 한 마리의 용.
서강림에 대해 보고 받았을 때, 분명 용을 데리고 다닌다고 듣긴 했었다.
‘하지만 저 크기는……!’
하늘에 떠 있는 그것을 보고 라나놋은 경악했다.
자신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저 적흑룡은 누가 봐도 성숙기에 들어선 단계였다.
‘분명 보고에는 아직 유년기라고 했었는데……!’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던 크기의 요롱이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그마하고 귀여웠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독기가 섞인 숨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이 마경에서는 십이지의 효과가 극대화되지. 용도 십이지에 해당하고 말이야.”
라나놋이 경악하는 와중, 서강림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다 서강림이 요롱이를 돌아보았다.
“요롱아.”
“크릉?”
“물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롱이가 라나놋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라나놋의 동물적인 본능이 맹수를 피해 도망가라 소리치고 있었다.
황급히 요롱이를 피해 도망치려는데 무언가가 다리를 턱 붙잡았다.
“도망치면 안 되지.”
서강림이 라나놋의 다리를 붙잡은 뒤, 요롱이 쪽을 향해 내던졌다.
당황한 라나놋이 요롱이를 향해 공격을 가하려던 찰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에서 끓어 넘치던 에너지가 훅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적대 대상에게 쥐와 관련된 요소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능 ‘고양이의 원한’이 해제됩니다!]
-콰드득!
“아아악!”
피할 새도 없이 요롱이의 이빨이 라나놋의 팔을 물어뜯었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넘치는 것과 동시에 물린 부위가 삽시간에 중독되어갔다.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한 라나놋은 그대로 쓰러졌다.
흥분한 요롱이가 그대로 숨통을 끊어놓으려 하자, 서강림이 만류했다.
“요롱아. 그 정도면 됐어.”
“크릉?”
“정보를 얻어내야 하니까.”
라나놋을 이대로 죽일 수는 없었다.
이번 습격의 목적이 뭔지, 아지트는 어디고 광대패의 우두머리는 누구인지 전부 털어내야 했으니.
서강림이 쓰러진 라나놋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콰지직!
허공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서강림과 라나놋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바닥을 짓이기듯이 뭉개고 튕겨져 나간 그것은 차륜(車輪).
가시 박힌 바퀴가 허공에서 맹렬한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십 수 개가 하늘에서 회전을 하고 있는 상태.
그때 누군가가 바퀴의 납작한 면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역시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다니까.”
바퀴에 앉아 있는 사람 역시 광대패인 모양인지,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목소리로 들어서는 여자 같았다.
가면이 코 아래까지만 가리고 있는 터라 입매만 간신히 볼 수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다고 해서 보냈는데, 역시 따라오길 잘했지 뭐야.”
광대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라나놋의 옆에 착지했다.
그녀는 라나놋을 번쩍 집어 들어 바퀴에 태운 뒤,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안녕, 서강림. 직접 보니 더 잘생겼네? 반가워. 난 버나라고 해.”
버나는 위트있고 친근감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서강림은 여전히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는 버나가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우와, 무서워라. 싸우려고 온 거 아니니까 진정해. 난 그냥 우리 고양이만 데려가려고.”
“데려갈 수 없어. 아니면 네가 남든가.”
중요한 정보원을 이렇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광대패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내야만 했다.
그 이야기에 광대는 고뇌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으음, 그건 곤란해. 우리 둘 다 할 일이 있거든. 대신 놓아주면 좋은 걸 하나 알려줄게.”
“…….”
“너도 지금 신수아나 다른 사람들한테 빨리 가고 싶잖아?”
-콰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강림의 칠지도가 버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공격으로 인해 피어오른 흙먼지가 가라앉자, 박살이 난 바퀴가 보였다.
어느새 버나가 바퀴에 타서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우리 고양이를 데려가서 미안해. 그러면 사과의 의미로 정보를 하나 줄게.”
버나가 거리를 벌린 채 말했다.
그녀의 입매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너에게 기대를 품고 있어.”
그분?
그 말에 서강림의 눈동자가 더욱 예리해졌다.
버나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더, 더 강해져야 해 서강림. 지금보다도 훨씬 더. 그래야 그분께서 기뻐하실 거야.”
“요롱아.”
서강림은 낮고도 위협적인 목소리로 요롱이의 이름을 불렀다.
요롱이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버나를 향해 돌진하였다.
거대한 입이 삼킬 듯이 달려든 순간, 또다시 차륜 하나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콰과곽!
“계속 싸우려고? 좋아. 그러면 상대해줘야지. 나 말고도 다른 광대들이 올 테니까.”
버나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살기를 품은 채 말했다.
그녀가 차륜 위에 올라타 서강림을 내려다보았다.
“곧 증원이 올 거야. 아무리 너라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걸?”
“버틸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서강림의 말에 버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서강림이 제 머리 근처를 날아다니는 모니터 드론을 검으로 가리켰다.
모니터에 비친 풍경을 본 순간, 버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
대마경 곳곳에서 굉음과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전투에 난입한 광대패의 수는 못해도 100여 명을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레이스는 거의 종반부에 다다른 상황, 대다수의 헌터와 만신들은 이미 지친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곧 끝날 것 같군. 헌터와 만신들이 전부 쓰러지면…….’
광대 중 하나가 사태를 파악하고는 빙긋 웃었다.
비록 그 웃음은 가면에 가려져 볼 수 없었지만.
그는 모니터 드론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광경도 모두에게 보여지고 있겠지.’
이곳의 전투는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었다.
광대패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기에 딱 좋은 이벤트.
쓰러진 만신과 헌터들을 포박하며 광대가 제 동료를 향해 말했다.
“생각보다 다들 약하네.”
“다들 별 거 아니었어.”
광대들은 즐거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근처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광대패 하나가 제 동료를 부르며 도망치듯 뛰어오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여, 여기……! 너무 강한 만신이……!”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려는 순간.
-콰아앙!
어느새 만신 한 명이 번개처럼 나타나, 광대를 주먹으로 쳐 날려버렸다.
쓰러진 광대를 뒤로한 채 신수아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너흰 뭐 하는 새끼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