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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20화 (119/256)

<120화>

“유하랑, 괜찮아? 휠체어 타는 게 낫지 않겠어?”

“이제 스스로 걸을 수 있다. 문제없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치 걸음마를 막 배운 아이처럼 다리가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혹여라도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바라보고 있자, 요한 신부가 말했다.

“다행히 근육이 없을 뿐, 기능에는 이상이 없더라고요. 신급이다 보니 회복도 빠른 편입니다.”

요한 신부가 재활 훈련을 도와주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회복할 줄이야.

유하랑이 우쭐한 얼굴로 웃었다.

“걷는 것쯤이야 금방이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다른 것도 빨리 익숙해질 거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딘가 유하랑은 조금 초조해보였다.

태연한 척을 해도 속으로는 불안할 거다.

거의 평생을 신이 되기 위해 감금되어 살아왔던 아이니까.

전생에도 사회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나저나 서강림, 내 신도들은 어떻게 됐느냐?”

유하랑은 걱정스러운 눈초리가 되어 물었다.

아직은 스마트폰을 쓸 줄 몰라 기사를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유하랑이 마음을 바꾼 것도 결국 자신의 목숨 때문이 아니라 신도들의 안전 때문이었으니 걱정할 법도 했다.

“신도들은 모두 무사히 풀려났어. 안심해.”

“다행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신이 되는 걸 선택했어.”

귀신도 신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하랑은 눈을 깜빡이다가 조금 안심한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약간 슬퍼보이기도 했다.

“그렇구나. 아버지는 결국 신이 되었구나…….”

“그래. 그러니까 유선민 걱정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돼.”

그 말에 유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짐짓 비장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걷는 것에 익숙해지면 마경에 가고 싶다. 내가 빨리 강해져야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

“마경은 됐어. 다른 공부부터 하자.”

“공부? 웬만한 건 다 배우긴 했는데.”

유하랑은 흔히 말하는 천재 타입이었다.

운명 등급이 신급인만큼 특출난 인재.

교단에 갇혀 지내는 동안 수많은 학문을 배웠고, 중학생이라지만 그 수준에 맞춰서 알려줘봐야 유하랑에겐 시시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유하랑도 모르는 게 많다.

일단 이 사회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거의 평생을 감금당해 살아온 탓에 유하랑은 일상적인 지식이 바닥이었다.

“일단 당분간은 놀아. 노는게 공부야. 다른 사람들이 너랑 같이 놀아줄 거야.”

잔뜩 논 뒤에는 유하랑이 해줘야 할 일도 있으니까.

유하랑 역시 내심 놀고 싶었던 것처럼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배가 고픈 모양인지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하랑은 민망한지 흠흠대며 말했다.

“그나저나 시장하구나. 어제 먹은 게 아주 맛있던데. 또 없느냐?”

“어제 뭘 먹었는데?”

“피처럼 붉은 음식이었다. 아이의 손가락처럼 길고 통통한 물체가 붉은 액체에 잠겨져 있었다. 지옥처럼 뜨거운 불길 속에서…….”

떡볶이를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또 처음 봤다.

이제라도 하나하나씩 알려줘야지.

그 전에 저 옷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누가 봐도 사이비 교주같은, 치렁치렁한 장식이 가득한 옷이라니.

나는 신수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신수아 씨. 부탁할 게 있습니다.”

“네. 뭔가요?”

“오늘 하랑이를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하랑이가 옷도 없고, 소지품도 없어서……. 신수아 씨께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남자인 나보다 여자인 신수아가 같이 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이죠. 그나저나 강림 씨는 같이 안 가나요?”

“네.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요. 집 문제도 그렇고…….”

“호텔을 떠나실 생각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인원도 많아졌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제대로 된 주거지가 필요했다.

신수아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말했다.

“일단 몇억 정도는 있긴 한데, 이걸로 집을 구해볼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구할게요.”

마경을 돌며 얻은 아이템과 영옥을 판매하며 꽤 많은 돈이 수중에 들어와 있었다.

대충 10억 정도는 있어서 작은 건물 정도야 구할 수도 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기왕 지내야 하는 거, 제대로 된 건물을 사두고 싶었다.

다만 그 정도의 액수는 당장 없었다.

내가 가진 희귀 등급의 아이템을 팔면 돈이야 들어오겠지만, 팔기에 아까웠다.

그리고 유하랑이 합류했으니 돈 문제는 조금만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다.

전생에도 유하랑은 자금 확보 담당이었으니까.

다만 어느 정도 군자금은 필요한데 말이지.

돈 벌 방법을 잠시 고민하던 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잠깐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요즘 팬이나 기자들이 종종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도어 렌즈를 통해 밖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직원이었다.

문을 열자 직원이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서강림 님. 쉬시는 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서강림 님과 만나기를 요청하신 분이 계셔서…….”

나와 만나기를 요청했다고?

옆을 힐끗 보자, 정장 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

보통 나와 합의되지 않은 방문객이라면 호텔 측에서 차단을 할 텐데, 동행까지 할 정도라면…….

“누구시죠?”

“의성 그룹 대표님의 비서입니다. 대표님께서 서강림 씨를 만나 뵙길 원하십니다.”

보통 인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성 그룹일 줄이야.

의성 그룹이라면 손에 꼽는 대기업 중 하나였다.

나는 비서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용건은요?”

“그건 대표님과 뵈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바로 나오시면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려면 직접 만나러 가야 하는 건가.

일단 의성 그룹 쪽에는 관심이 있기도 했으니 만나봐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나는 비호문 일행을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하랑이 잘 부탁합니다.”

“다녀오세요, 강림 씨.”

나는 비서의 뒤를 따라 건물을 나섰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고급스러운 외제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호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시선이 단박에 꽂혔다.

“얼른 가죠.”

또다시 별별 뉴스가 올라올 걸 생각하니 귀찮아졌다.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때, 스마트폰이 희미하게 진동했다.

[(긴급) 만신들에게 계시가 내려와. 두 번째 대마경이 열릴 것을 예고.]

방금 전에 뜬 긴급 속보였다.

전생보다는 빠른 출현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전생에서는 첫 번째 대마경을 공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두 번째 대마경도 몇 달 뒤에 열렸으니까.

시기상으로 보면 이맘때쯤 두 번째가 출몰할 법했다.

다른 뉴스를 살피며 정보를 확인하던 중, 또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아이템 ‘운명의 길잡이’가 발동됩니다!]

두 번째 대마경이 열린다는 소식과 동시에 ‘운명의 길잡이’가 작동을 시작했다.

설마 지난번처럼 환영이 보이는 것일까?

그러나 경계의 효과를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운명의 길잡이’는 메시지만을 출력했다.

[두 번째 대마경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십신 중 비겁에 충이 발생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갈등이나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소 난해한 점괘였다.

인간관계에서 비겁(比劫)은 적군이나 아군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즉, 마찰이 아군과 생길지 적군과 생길지는 모른다는 의미다.

두 번째 대마경은 개인전이다.

아군과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지만, 그렇게 큰 마찰은 아닐 터였다.

두 번째 대마경은 난이도가 낮고 위험도도 낮으니까.

그렇다면 내 적과 마찰이 생긴다는 걸까?

신아라나 성의결과 조우했을 때도 발동하지 않았던 ‘운명의 길잡이’가 지금 발동한 걸 보아서는…….

더 중요한 인물과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백영인 걸까?

“도착하였습니다.”

어느새 승용차는 진동 없이 매끄럽게 멈췄다.

밖으로 나오자 거대한 의성 그룹의 빌딩이 보였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니,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서강림 씨. 어서 와요.”

의성 기업의 대표, 양의성이 반갑게 나를 맞이하였다.

30대 후반 정도 되는 나이로, 대기업의 대표치고는 꽤 젊은 나이였다.

각성의 날 전에도 의성 기업은 대기업이었는데, 흐름을 잘 타 더욱 규모가 커졌다.

“자, 자. 앉아요.”

그가 손으로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양의성은 소파에 몸을 푹 눌러앉은 채, 느긋하게 웃고 있는 채였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개인적으로 팬이라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넉살 좋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순수한 목적으로 날 부른 건 아닐 테니까.

“마실 건 뭘 줄까요? 커피? 녹차?”

“음료는 됐습니다. 무슨 용건인지부터 듣고 싶습니다만.”

“단도직입적이라 좋네요. 대마경 공략자는 배포가 다르군요.”

양의성은 호탕하게 말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그가 턱을 비스듬히 괸 채 질문을 던졌다.

“서강림 씨, 그게 아십니까? 요즘은 웬만한 연예인보다 헌터나 만신이 유명하다는 거.”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만신의 활약에 열광했고, 그 어떤 직종보다 헌터와 만신에게 관심을 가졌다.

양의성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서강림 씨를 전속 모델로 채용하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의성 그룹이 아니더라도 다른 회사들 역시 헌터, 만신을 채용하는 추세였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승낙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이미 의성 그룹에는 전속 모델로 성의결 씨가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서요. 법정 공방 중에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고.”

목숨 아까우면 얌전히 감옥에 들어가라고 했는데, 내 충고를 허투루 들은 모양이었다.

독고준이 무슨 짓을 했으려나.

감금 정도로 끝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뭐, 그게 아니더라도 서강림 씨와는 꼭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모로 탐나는 인재니까요.”

“제 평판은 성의결과 달리 바닥인데요.”

“그렇지만 그만큼 주목을 받고 있죠. 평판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고 양의성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평판을 신경 쓴다면, 더더욱 서강림 씨에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우리 쪽에서 평판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계약금도 넉넉히 주죠.”

“계약금?”

내 질문에 양의성은 물고기를 낚았다는 듯한 눈빛이 되었다.

그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네. 30억 정도 준비해놨는데.”

양의성은 변변치 않은 액수인 것처럼 말하며,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가 내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나와 계약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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