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 *
“이봐, 찾았어?”
“아니, 아직 못 찾았습니다!”
“수상한 놈은 무조건 끌고 와. 쥐새끼든 뭐든 보이면 죽이고!”
여기저기서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도들은 건물 내를 쥐 잡듯이 조사하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미 모든 문은 막힌 상황, 딱히 탈출할 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서강림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아, 제능 씨! 어디 갔나 했었네.”
김제능을 데리고 왔던 신도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려던 서강림이 그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외부인 찾는 중인데, 아직 다들 발견을 못 했나 봐요.”
“어휴, 그러게. 또 어떤 몹쓸 놈이 들어온 건지…….”
눈앞에 침입자가 있음에도 신도들의 표정은 너그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서강림은 다시 김제능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손톱을 여유 있게 준비해둔 상태였다.
한 신도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자, 그러면 힘내서 더 찾아보자고. 아예 나갔으면 큰일인데…….”
“예. 찾아볼게요.”
서강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색하는 시늉을 했다.
시설 구조를 파악하는 한편,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유하랑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자신을 감싸려 했으니 분명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터였다.
교주의 위치이니 심한 처벌은 받지 않겠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쪽 방으로 돌아오진 않았군.’
사람들의 뒤를 따라 교주의 방 쪽까지 되돌아가 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강림에게 위치가 노출되어 다른 곳으로 옮긴 모양이었다.
‘찾더라도 데려가는 것이 문제야.’
유하랑은 유선민에게 세뇌를 당한 것인지, 이곳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유하랑이 유선민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해한다면?
‘전생에 신수아 씨도 유하랑이 거부해서 골머리를 썩였었지.’
어떻게 하면 유하랑을 데리고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누군가가 서강림을 불렀다.
“이봐, 거기!”
상급 신도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다가가자, 상급 신도가 서강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말했다.
“뭐, 이 정도면 힘은 좀 쓰겠지……. 급하게 의식을 준비해야 해서 손이 부족해. 따라와.”
의식이라는 말에 서강림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언뜻 그의 눈동자에 경멸과 증오가 비친 듯하였다.
‘의식은 1년 뒤에 치러질 예정이었어. 내가 들어와 일을 서두르는가 보군.’
그 뒤로도 신도는 힘을 쓸법한 사람들을 몇 명 골라, 지하로 내려갔다.
“자, 각자 짐을 나르도록 해.”
아래로 내려온 서강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최소 머리 위로 십수 미터는 공간이 있었고, 방금 전 예배를 드리던 강당보다도 넓어 보였다.
‘신도들을 이용해 여길 만든 건가?’
아직도 몇 신도들이 벽을 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굴은 흙으로 검어졌고, 손톱 아래도 새까맣게 물든 것을 보아 여러 날 이곳에 있던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주위로는 공사 자재나 도구 같은 것이 널려 있었다.
뭔가를 만들던 도중인 것처럼 보였다.
“자, 얼른 자재를 날라. 얼른.”
그 지시에 사람들이 다급히 목재를 나르기 시작했다.
지하 광장 중앙에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탑 같은 것이 있었다.
탑은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미완인 상태였다.
‘아직 준비가 미흡해 보이는데, 강행할 모양이군.’
사람들이 자재를 날라 탑을 어설프게나마 완성 시키는 사이.
나머지 신도들이 상급 신도의 지시에 따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은 놀라거나 불안해 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여긴 대체 어디지?”
“성은교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나……?”
사람들이 당황하여 두리번거리고 있자,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 사실에 사람들은 더욱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 문이 닫혔는데?”
“대,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던 중, 날카로운 마이크 하울링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쨀 듯한 소리.
그리고 곧 유선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모이셨습니까.”
지하 광장에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는 나무 탑의 꼭대기에 서 있었다.
대략 5m는 되어 보이는 높이.
그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 제가 해오던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언젠가 신이 찾아와, 우리 모두를 구원할 거라는…….”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원래는 신께서 오실 때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기다림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기에, 그 시기를 앞당기고자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선민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그가 차가운 눈동자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침입자를 찾아내지 못한 것 같더군요.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인지…….”
마이크가 다시 한번 쇠 긁는 소리를 냈다.
그 사이로 유선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목소리에 이능의 힘이 실려 있었다.
“모두, 칼을 꺼내서 자신의 팔을 찌르도록.”
-푸욱!
그 명령을 내린 순간.
사람들이 기계 같은 몸놀림으로 칼을 꺼내 자신의 팔을 찔렀다.
망설임도, 신음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피가 흘러넘치는 가운데, 유선민의 눈이 서강림을 향했다.
“저기 수상한 자가 있군.”
그와 동시에 수백 명이 서강림을 돌아보았다.
이 많은 사람 중, 그의 명령을 듣지 않은 사람은 서강림뿐이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유선민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 남자를 내게 데려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서강림에게 달려들었다.
팔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데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무표정한 얼굴들이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방금 전까지는 이성이 한 톨이라도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그저 인형에 불과해 보였다.
다 죽이면 금방 끝날 일이지만, 그러면 수습이 복잡해진다.
신도들을 제치며 오로지 유선민을 목표로 하던 그때.
유선민의 마력이 일렁거리며 화살의 형태를 갖추었다.
-콰과곽!
순식간에 사방에서 마력의 화살이 서강림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사이비라고는 한들, 유선민 역시 상당한 능력자였다.
서강림이 다급히 서리불꽃을 발동하여 얼음의 장벽을 만들어 냈다.
-캉, 카강!
마력 화살이 얼음 장벽에 부딪히며 파편으로 깨져 흩어졌다.
유선민의 연사 속도만큼이나 서리 장벽이 생성되는 속도도 빨랐다.
서리 불꽃은 강력한 방패인 동시에 창이었다.
빠르게 사방에서 돋아나던 서리 불꽃이 유선민을 그대로 덮치려는 순간.
[‘강제 해제’의 효과로 ‘서리 불꽃’이 취소됩니다!]
서리 불꽃은 한순간의 환영처럼,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유하랑의 소행이었다.
장벽 역할을 하던 서리 불꽃마저 사라지자, 날카로운 마력이 서강림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유선민의 공격은 집요했으며 빨랐다.
허벅지가 관통되며 틈이 생긴 그 순간.
마력은 형태를 바꾸어 서강림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이능 ‘구속구’가 발동됩니다!]
마력으로 형성된 쇠사슬이 순식간에 서강림의 몸을 얽었다.
유선민의 이능이었다.
진짜 쇠사슬이라면 완력으로 끊어낼 텐데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구속되었더라도 서리불꽃이나 광염일장을 쓴다면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능을 발동하려고 할 때마다 불길은 꺼지고 말았다.
유하랑의 강제 해제 때문이었다.
“잘 하셨습니다, 교주님.”
유선민의 칭찬에도 유하랑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꾹 깨물고 있을 뿐.
서강림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틀어버렸다.
‘유선민만이라면 이길 수 있지만, 유하랑이 협력하고 있다면 무리다.’
모든 이능을 해제시켜버리는 강력한 이능.
아군이라면 그 누구보다 든든하지만 적이라면 그저 두려운 존재였다.
유선민은 천천히 서강림을 향해 다가왔다.
“방금 전 봤던 놈과 얼굴이 다르군. 여러 명이 들어왔나? 아니면…….”
[이능 ‘관상’이 발동됩니다!]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관상’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능이 발동되지 않자 유선민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두 눈에는 서늘한 적개심이 가득했다.
“짐승 말고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었나 보군. 교주님, 이능을 해제시키세요.”
“……알겠다.”
곧 ‘도둑쥐’가 해제되고 서강림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유선민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다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서강림이군. 유명 인사께서 왜 여기까지 오셨지?”
“…….”
“수호신에게 계시라도 받았나? 아니면 보호국의 지시?”
서강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반응을 보고 유선민은 웃으며 말했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라도 했나 보군. 그렇지만 상관없어. 널 여기서 죽인다면…….”
“부교주.”
그때, 뒤에 있던 유하랑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얼굴에는 다급함이 가득한 상태였다.
“부교주. 약속이 다르다. 이 자는 살려주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이 자가 있다면 의식에 방해가 됩니다.”
“어차피 이제 의식을 수행할 게 아닌가? 의식을 치르겠다. 그러니 이 자는 안전하게 내보내다오.”
의식을 수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유하랑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 의식을 치르겠다는 말에 유선민은 미소 지었다.
그가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선은 좀 얌전하게 만들어야겠지만.”
유선민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서강림의 입에 욱여넣었다.
그는 반항하려 했지만 곧 몸이 시체처럼 늘어지고 말았다.
유하랑이 놀라 바라보자 유선민이 조용히 말했다.
“약을 먹고 잠시 기절했을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깨어날 테니.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시죠.”
혹여라도 이능을 써서 날뛰면 곤란해지니 약으로 잠재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의식을 치르기 시작하면 유하랑의 강제 해제도 사용하지 못할 테니.
신도들은 몸이 축 늘어진 서강림을 데리고 다시 탑 아래로 내려갔다.
방해꾼이 퇴장하자, 유선민이 목을 가다듬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은 불운한 운명을 살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날이 와도, 각성의 축복은 소수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유선민을 올려다보았다.
모두의 눈빛 너머에 간절함이 어려 있었다.
세뇌의 영향 때문인지 술에 취한 듯, 몽롱한 눈빛이었다.
“또한 각성을 했다 하더라도 많은 신이 우리를 외면했습니다. 우리는 신의 선택을 받기에는 너무도 약했습니다.”
유선민의 목소리가 지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마치 역병 같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에게도 신이 있습니다. 바로 유하랑 교주님께서 우리의 신이 되어주실 겁니다.”
그 말에 몇 사람들이 놀란 듯한 눈으로 유하랑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이.
유선민이 그 반응을 보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 전에 신이란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야겠군요. 보통은 절대자인 신을 생각하지만…….”
그가 빙긋이 웃었다.
“인간도 신이 되는 경우가 있죠. 조상신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조상신을 비롯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위인이 신이 된 것처럼.
유선민이 천천히 유하랑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빛은 그저 평화로웠다.
“무속 신앙에서는 인간이 강력한 신이 되는 데에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더군요.”
“…….”
“하나는 업적을 남겨 사람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유선민이 다정하게 유하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비참하게 죽어, 원과 한을 쌓는 것.”
유하랑의 주위에 경호원처럼 서 있던 신도들이 모두 칼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유하랑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선민이 신도들을 향해 양팔을 활짝 벌린 뒤 말했다.
“유하랑 교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 우리를 위해 신이 되어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