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흰 쥐로 변한 서강림이 졸졸 신도의 뒤를 따라갔다.
건물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배가 끝났음에도 다들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설백 눈쥐 고기를 챙겨두길 잘했어.’
그는 마경을 돌며 여러 마수를 잡았고, 재료를 얻기 위해 고기나 뼈, 피 등을 따로 모아 두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한빙 마경에서 잡았던 설백 눈쥐도 있었다.
‘도둑쥐’는 상대의 신체 부위를 섭취할 경우, 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이능.
대상은 인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마수의 신체를 먹을 경우 그 모습으로 변하는 것도 가능했다.
‘나와 다른 종족으로 변하는 건 부담이 심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소모되는 마력도 적고, 지속시간도 긴 편이다.
마수로 변할 경우에는 여러모로 부담이 크고, 단점이 많았다.
‘이 모습은 지속 시간이 짧아.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겠어.’
서강림은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히 신도의 뒤를 따라갔다.
신도는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째서 건물이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진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궁 같은 건물 내부를 한참 들어간 끝에 드디어 신도가 발을 멈췄다.
단단한 철제문.
그리고 문에는 수많은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역시 엄중하게 가둬놨군.’
유하랑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신도가 하나하나 자물쇠를 따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문이 닫히기 전, 서강림은 쏜살같이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향 냄새가 난다.’
안으로 들어오자 진한 향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내부는 전반적인 건물의 분위기와 확연히 달랐다.
방 내부는 호화스럽고 화려하게 치장이 되어 있었다.
종교적인 장식품도 여럿 보였다.
신도가 붉은 카펫을 밟고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무릎을 꿇었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옥좌에 앉은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붉은 비단과 금,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옥좌.
그곳에 앉은 사람은 어린 소녀였으며, 서강림이 잘 아는 인물이었다.
“성은교의 교주, 유하랑 님을 뵙습니다.”
방만큼이나 화려한 옷을 걸친 채, 옥좌에 앉은 소녀.
그 소녀는 성은교의 교주인 유하랑이었다.
“수고 많았네.”
앳된 목소리와 달리 유하랑의 어투는 무척 중후했다.
아무리 봐도 어린 아이인지라 그 말투는 더욱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금 유하랑이 16살이던가?’
겉으로 보기에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외양이었다.
오랫동안 감금을 당한 탓이었다.
16살, 중학교에 다녀야 하는 나이건만 유하랑에게 그런 일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신도는 유하랑을 향해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요즘 들어 식사량이 줄으셔서 많은 이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
“혹여라도 불편한 것이 있다면, 언제라도 불러주십시오.”
“그래, 알겠다.”
유하랑이 가보라는 듯이 손짓하자 신도가 뒷걸음질로 방을 나섰다.
방 안에는 유하랑 외에도 몇 여자들이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하니 시종을 드는 사람들 같았다.
유하랑이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혼자 먹겠다. 다들 물러가도록 해라.”
“하지만 교주님…….”
“물러가도록.”
기이한 풍경이었다.
마치 왕이 시녀들을 부리는 듯,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강림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하랑은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었구나.’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느낌이 달랐다.
유하랑의 엄명에 사람들이 주저 하다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나가 있겠습니다.”
몇 사람이 발소리도 내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갔다.
이제 이곳에는 유하랑과 서강림뿐이었다.
그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이제 유하랑을 데리고 여길 나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유하랑이 순순히 따라 나오지는 않겠지.’
유하랑은 자신이 ‘감금’ 당한 게 아니라 ‘보호’를 받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생에도 유하랑을 빼내는데 큰 곤욕을 치렀다.
‘유하랑을 설득하거나, 기절시킨 뒤 납치해야겠군.’
그렇게 상황을 살피던 중.
서강림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밥을 혼자 먹겠다며 사람들을 모두 물렸는데, 왜 먹지 않지?’
시선은 쟁반을 향해있지도 않았다.
도리어 서강림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뿐.
그때 유하랑이 입을 열었다.
“작은 쥐가 들어왔구나.”
흰 쥐가 흠칫 놀라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미 유하랑은 그마저도 파악한 눈치였다.
“쥐가 아닌가? 사람이 쥐 행세를 하고 있구나.”
그 말과 동시에 유하랑이 손을 뻗었다.
“네 모습을 드러내라.”
[이능 ‘도둑쥐’가 강제로 취소됩니다!]
순식간의 흰 쥐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곳에 인간이 나타났다.
서강림은 정체가 발각되었음에도 침착했다.
‘유하랑의 능력이라면 당연히 꿰뚫어 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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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 통찰안
[등급] 용일품(龍一品)
[설명] 대상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이능. 거짓과 참을 가려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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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 강제 해제
[등급] 신삼품(神三品)
[설명] 대상에게 발동된 이능을 강제로 해제할 수 있다. 이능을 건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제한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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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신삼품(神三品)은 급이 다르군.’
문주인 신수아와 똑같은 운명 등급인 신삼품(神三品).
또한 능력치 역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서강림이 틈을 노려 유하랑을 제압하려는 사이, 유하랑 역시 서강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새로 들어온 신도입니다. 교주님을 뵙고 싶어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서강림은 정체를 들켰음에도 태연히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유하랑의 성격을 알기에 선택한 대처였다.
유하랑은 서강림의 말을 듣고 불쾌해하기는커녕, 도리어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흐음, 그래? 당돌한 자로구나. 특이한 능력도 갖고 있는 듯하고. 쥐로 변하는 능력이라…….”
매일 갇혀 무료한 일상을 지내던 중,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
유하랑은 그 침입자에게 관심을 갖고 힐끗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서강림은 그런 반응을 살피던 중, 슬그머니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그것을 본 유하랑의 눈이 반짝거렸다.
“너, 그것 좀 가져와 보거라.”
“네, 교주님.”
서강림은 순순히 유하랑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건넸다.
유하랑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 신도들이 종종 이런 걸 사용하더군. 수마터폰이라고 하던가…….”
“네. 그런 물건입니다.”
“호오. 참 신묘한 물건이구나.”
서강림이 조작법을 알려주자 유하랑은 장난감이라도 본 아이처럼 들뜬 기색이 되었다.
그러나 퍼뜩 제정신을 차리고는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교주의 방에 들어온 것은 중죄이나, 내 너를 벌하지 않겠다. 대신 이 몸의 명령을 따르거라.”
“명령이라면?”
“바깥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와서 고하라.”
유하랑은 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호기심과 설렘이 얼굴에 희미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유하랑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이곳에서 지내왔으니 바깥이 궁금할 법도 하겠지.’
유하랑은 초등학교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철이 들기도 전부터 성은교에 들어와 교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 유하랑.
교주가 된 뒤부터, 유하랑의 세계는 오로지 성은교뿐이었다.
[학교? 가봤을 리가. 가본 적은 커녕 본적도 없어. 외부와는 단절된 채 살아왔으니까.]
수년이 지난 뒤, 유하랑은 자신의 옛 시절을 추억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유하랑은 씁쓸해 보였다.
[바깥 세상으로 나가본 적은 없어. 종종 마경에 가본 것도 외출이라면 외출일까.]
[성은교 사람들은 바깥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길 꺼려 했어. 그냥 타락하고, 더럽고, 혼탁한 세상이라고…….]
[그렇지만 궁금했어. 바깥세상에 뭐가 있을지.]
수년간 건물에 갇혀 생활하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서강림은 알 수 없었다.
와중에 유하랑은 잔뜩 들떠 서강림에게 말했다.
“바깥 이야기를 하기 전, 네 소개부터 해 보거라. 이름은 뭐지?”
“서강림입니다.”
“서씨 집안 아이구나. 요즘 바깥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유하랑이 재잘재잘 질문을 쏟아붓자, 서강림은 말로 하는 대신 영상 하나를 틀어주었다.
사람들이 놀이 공원에 간 영상.
그것을 본 유하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냐, 이 별세계는?! 마경의 일종인 것이냐?”
그 뒤로도 몇 가지 영상을 짧게 보여주자, 유하랑의 눈이 더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유하랑이 잔뜩 들떠 말했다.
“바깥 세상에는 신기한 것이 많구나! 네 덕에 재미있는 것을 많이 보았어. 내 특별히 네게 이 몸의 보물을 하사하마.”
“보물?”
“그래. 나를 데리고 저쪽으로 이동하거라.”
유하랑은 당연하다는 듯이 양팔을 내밀었다.
마치 자신을 안아달라는 듯이.
서강림은 말없이 유하랑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다리는 무척이나 앙상했다.
[나는 신성한 존재라서 땅을 밟으면 안 된다고 했어. 그래서 내 발로 걸어본 적이 없어.]
[이동은 휠체어를 타거나, 다른 사람이 안아서 옮겨줬지.]
[답답했어. 그렇지만 그것도 내 일이었으니까.]
오랫동안 걷지 않아 근육이 모두 빠진 다리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알고 있었음에도 서강림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와중에 당사자는 재촉을 할 뿐이었다.
“자, 얼른 빨리 나를 안고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이동하거라.”
“……알겠습니다.”
서강림은 유하랑을 번쩍 안아 들었다.
자신의 근력이 세진 것인지, 유하랑이 가벼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유하랑이 지시하는 곳으로 이동하자 장식품 사이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평소에는 아마 기어 다녔던 모양인지 상자는 아래쪽에 숨겨져 있었다.
“이게 내 보물이다. 너에게만 특별히 보여주마.”
유하랑은 잔뜩 들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든 보물을 보고 서강림은 침음했다.
그것은 보물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들이었다.
“가끔 신도들이 뭔가를 흘리고 갈 때가 있다. 그걸 몰래 모아놨지. 바깥세상의 물건이다.”
흔히 살 수 있는 과자, 망가진 이어폰, 명함, 떨어져 나간 캐릭터 스티커 같은 것들…….
보통이라면 쓰레기라고 불릴 법한 물건들이었다.
유하랑이 과자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이건 이 몸이 특별히 아끼는 보물이다. 아주 달고 맛있지. 예전에 신도 하나가 내게 몰래 주었다. 그 뒤로 오지 않았지만…….”
유하랑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이내 평소와 같은 뻔뻔한 얼굴로 돌아왔다.
유하랑이 과자를 서강림의 손에 올린 뒤 말했다.
“이 몸의 보물을 하사받은 건 너뿐이다. 영광으로 알 거라.”
“감사합니다.”
“착한 아이구나. 좋다. 내 상을 하나 더 주마.”
유하랑은 자신만만한 표정이 되어 서강림을 향해 말했다.
“너를 이 몸의 첫 번째 친구로 삼아주마. 특별히!”
말로는 상이라고 했으나, 도리어 유하랑이 더 기뻐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서강림은 슬쩍 튕겨보았다.
“한낱 신도인 제가 어떻게 유하랑님과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뭐? 그, 그렇지만……. 나랑 친구가 되는 것은 엄청난 상이다! 받거라!”